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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원의 대중문화 속으로

‘젠더 전쟁’은 ‘문화 전쟁’이다

글 :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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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대 비판론은 ‘그때그때 다른’ 20대의 정치적 선택이 좌파 진영에 득이 되지 않는 방향으로 나타났을 때만 등장
⊙ 〈오멘〉 등 1970년대 美 공포영화 속에는 출산과 육아에 대한 혐오가 내포되어 있어
⊙ 40대 이상은 ‘진보와 보수의 갈등’, 30대는 ‘부동산 정책 갈등’, 20대는 ‘남성과 여성의 갈등’ 꼽아(2020년 서울연구원이 실시한 도시 갈등 관련 여론조사)
⊙ 미국에서도 밀레니얼 세대 남성의 공화당 지지도는 약간 올라간 반면, 여성의 민주당 지지 성향은 폭등

이문원
《뉴시스이코노미》 편집장, 《미디어워치》 편집장, 국회 한류연구회 자문위원, KBS 시청자위원, KBS2 TV 〈연예가중계〉 자문위원, 제35회 한국방송대상 심사위원 역임 / 저서 《언론의 저주를 깨다》(공저), 《기업가정신》(공저), 《억지와 위선》(공저) 등
2021년 5월 18일 성차별교육폐지시민연대 등 反페미니즘 단체 회원들은 청와대 앞에서 일부 교사집단이 학생들에게 페미니즘 세뇌교육을 했다고 주장하며 수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조선DB
  지난 3월 9일 치러진 제20대 대통령 선거는 출구조사 발표 직후부터 지금껏 다양한 이슈거리들을 생산하며 여전히 언론미디어를 달구고 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논점(論點) 중 하나로 20대 남녀 간 정치의식 차이, 세칭 ‘이대남’과 ‘이대녀’ 문제를 들 수 있다.
 
  대선 당일 지상파 방송 3사 출구조사 결과가 세부항목들로 나뉘어 발표되자마자 이 문제는 다시 한 번 떠올랐다. 만 18~29세 예상 득표율에서 남성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에게 58.7%가 투표한 반면, 여성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에게 58.0%가 투표했다. 반대로 20대 남성 36.3%가 더불어민주당에, 20대 여성 33.8%가 국민의힘에 표를 던졌다. 정치적 입장이 정확히 배치(背馳)되는 광경인 셈이다. 이를 두고 “데칼코마니 같다”는 논평(論評)까지 등장했을 정도.
 
  이 같은 데칼코마니 풍경은 물론 이번 대통령 선거가 처음은 아니다. 2021년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 당시에도 정확히 같은 현상이 눈길을 끈 바 있다. 당시 지상파 방송 3사 출구조사에 따르면 20대 남성 72.5%가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에게, 22.2%가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후보에게 투표해 압도적 표차를 보여준 반면, 20대 여성은 오히려 박영선 후보가 44.0%로 40.9%의 오세훈 후보를 앞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어마어마한 남녀 간 표심(票心) 차이는 전(全) 세대 중 가장 큰 것이었고, 이 탓에 ‘20대 남녀는 과연 같은 세상을 바라보며 살고 있는 게 맞는가’란 의문까지 자아낸 바 있다.
 
  그런데 이 같은 현상을 분석하는 언론미디어와 각종 논평가들 시각에는 늘 같은 문제가 존재했다. 이를 ‘이대남 현상’이라 규정지으며, 현(現) 20대 남성의 우파(右派) 정당 지지가 마치 전에 없던 기현상(奇現象)인 양 다루는 점이다. 이 같은 분석의 근간에는, 20대는 으레 사회주의 등 좌파(左派) 이념 성향이 강하며 좌파 정당 지지가 보편적이라는 고정관념이 자리 잡고 있다. 여기서 20대 남성만 툭 불거져 나와 우파 정당을 지지하니 이들에게 뭔가 유별난 문제가 있다는 식 논지(論旨)가 이어진 셈이다.
 
 
  김용민의 ‘20대 개새끼론’
 
  현실은 이 같은 고정관념과는 크게 다르다. 이를 증명하는 데 그리 오랜 역사를 되짚을 필요조차 없다. 당장 2007~2009년 사이 조용한 이슈거리였던, 비속어(卑俗語)가 등장하긴 하지만, 세칭 ‘20대 개새끼론’이 있었다. 2009년 당시 한양대학교 겸임교수였던 시사평론가 김용민이 충남대학교 신문에 기고한 글 〈너희들에게는 희망이 없다〉를 둘러싸고 논쟁이 일면서 ‘20대 개새끼론’은 수면으로 급상승했다. ‘20대 개새끼론’의 핵심은 단순했다. 당시 20대들이 ‘기대만큼 좌파적이지 않다’는 게 요지(要旨)였다. 해당 글은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집회에 20대들이 많이 참여하지 않아 촛불이 금세 사그라졌다는 원망(?)에서 시작한다.
 
  〈강단에서 학생들에게 물어봤다. 바쁘단다. 맞는 얘기이다. 취업하려면 입학식 끝나기가 무섭게 어학 실력 향상, 학점 관리, 스펙 쌓기에 혈안이 돼야 한다. 이 빡빡한 스케줄 속에서 틈을 내 연애도 해야 한다.
 
  어쨌든 아주 어렵게 이들에게 시간을 얻어낸다. 그리고 시국 집회 참석을 권유한다. 그러면 “그거 합법 집회인가요? 네? 집회 허가가 안 났다고요? 불법 집회네? 불법 집회를 왜 하는데요?”라는 질문이 돌아온다. (중략) 그렇게 해서 간신히 설득해 집회 장소로 데리고 나와도 이들의 ‘까칠함’은 꺾일 줄 모른다. “집회가 너무 선동적이네요. 정치적으로 세뇌시키려는 것 같아요.” 그래. 졌다. 네 팔뚝 굵다! (중략)
 
  그리고 다수가 2007년 겨울, 투표장에서 밑도 끝도 없이 ‘경제를 살리겠다’고 설레발 떠는 후보에게 표를 헌납했다. 이 후보의 부도덕한 과거를 충분히 숙지했음에도 말이다. ‘참을 수 없는 가벼운’ 현실 인식에 있어 기성세대와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2007~2009년에만 반짝 이런 현상이 일어났던 것도 아니다. 1990년대에도 비슷한 현상은 일어났었고, 아닌 게 아니라, 위 글을 쓴 김용민조차 본인이 20대였던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 당시에는 공개적으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지지한 바 있다. 이를 두고 2016년 좌파 진영 내에서 비판이 일자 “중1 이전부터 정치면을 읽은 터였습니다. 문제는 그 신문이 《조선일보》였다는 점”이라며 난데없이 《조선일보》 탓을 하고 넘어갔다.
 
 
  ‘그때그때 다른’ 20대의 선택
 
  어찌 됐건 이런 게 바로 20대 표심의 본질이다. 그야말로 ‘그때그때 다르다’. 갓 성인이 돼 스스로의 인생을 계획하고 이제 막 그 첫발을 내디디려는 시기, 자신의 미래 청사진 구축(構築)에 무엇이 직간접적으로, 그리고 단기적으로든 장기적으로든 도움이 될 수 있는지에 모든 사고(思考)와 행동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아직 무르익지 않은 식견(識見)으로나마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듯한 쪽을 고른다. 이러니 특정 이념 정당에 대한 충성도 역시 이미 이념적 정체성(正體性)을 성립시킨 세대들에 비해 크게 떨어지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고 보면 ‘20대 개새끼론’ 등 20대 비판은 이들의 저 ‘그때그때 다른’ 정치적 선택이 좌파 진영에 득이 되지 않는 방향으로 나타났을 때만 등장한다는 점도 알게 된다. 당장 ‘20대 개새끼론’조차도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20대의 민주당 지지세가 올라가자마자 씻은 듯이 사라져 버린 바 있다. 즉 좌파 진영 측에 불리할 때만 등장하는 논리라는 얘기다. ‘이대남 현상’도 마찬가지다. 사실 뭔가 특이한 일이 벌어진 것도 아니고, 지난 역사에서 숱하게 관찰돼온 모습들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20대’로 한데 묶어 비판할 조건이 안 되고 오히려 20대 여성층에서는 이전보다 훨씬 열렬한 지지가 따라주니 ‘이대남’이라는 개념을 띄워 올려 이들을 따로 구분해 비판하거나 조롱하려 할 뿐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대선을 둘러싸고 알 수 없는 이유로 분석의 대상에서 벗어나 있는 건 엄밀히 말해 ‘이대녀’ 쪽이라 볼 필요도 있다. 20대의 좌파 정당 지지는 애초 당연한 일이었던 적이 없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렇다. ‘이대남’들이 이렇게까지 표심 차원에서 이탈할 정도로 좌파 정권 내내 부동산 정책 등 청년 미래 구상에 핵심적인 정책 실패와 각종 정권 관련 비리들이 터져 나왔음에도 어째서 ‘이대녀’들은 오히려 좌파 정당 지지세가 그간 더 올라가고만 있느냐는 것이다.
 
 
  ‘정치적 올바름’
 
윤석열 후보는 대선 과정에서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려 ‘이대남’들의 마음을 잡았다.
  대선이 끝나고 그로 빚어지는 수많은 양상을 목격하고 나니, 이제는 그 원인 중 일부를 많은 이가 이해하고 있긴 하다. 페미니즘을 중심으로 한 각종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이슈들을 더불어민주당 측이 재빨리 흡수했기에 엄혹(嚴酷)한 청년 현실에도 ‘이대녀’들만큼은 더불어민주당 지지에서 돌아서지 않았다는 점을 말이다.
 
  정반대로, 왜 ‘이대남’들이 그토록 극적으로 국민의힘에 힘을 몰아줬는지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고 있다. 대선 과정에서 판세를 가른 결정적인 장면들 중 하나, 지난 1월 7일 윤석열 당시 후보가 페이스북에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단 한 줄짜리 게시물을 올리면서 급작스레 20대 남성층 지지가 폭등해 그 분위기가 대선 당일까지 이어지게 된 흐름을 모두가 지켜봤다.
 
  이렇듯, 말 그대로 ‘젠더 전쟁’ 상황이다. 특히 20대 젊은 층에 있어서는 더더욱 그렇다. 어제오늘 일도 아니다. 2020년 서울연구원이 실시한 도시 갈등 관련 여론조사에서도 서울시민들이 가장 심각하다고 느끼는 사회갈등으로 40대 이상이 ‘진보와 보수의 갈등’, 30대가 ‘부동산 정책 갈등’을 꼽은 반면, 20대는 ‘남성과 여성의 갈등’을 가장 많이 꼽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미 2020년 시점에도 20대들이 바라보는 세상과 직면한 현실에서는 무르익을 만큼 익은 갈등이었다는 얘기다.
 
  여기서 눈을 돌려 대중문화 분야 상황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현시점 대중문화는 사실상 사회의식과 시대 공기(空氣) 차원에서 ‘잠수함의 토끼’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젊은 층의 정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투표 성향 등에 대한 기계적인 해석보다 그들이 즐겨 향유(享有)하는 대중문화 면면(面面)을 살펴보는 쪽이 더 본질에 가깝게 다가설 수도 있다.
 
  위 서울연구원 조사에서 20대들이 입을 모아 ‘남성과 여성의 갈등’을 현시점 가장 심각한 갈등으로 꼽은 것도 그들이 자주 접하는 대중문화와 그 현상들을 통해 상황을 직접 목격해온 부분이 많기 때문이라 생각해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영혼 보내기’
 
‘영혼 보내기’의 시발이 된 영화 〈걸캅스〉.
  예컨대, 한국 영화 팬들 사이에서는 근래 세칭 ‘영혼 보내기’라는 신종 소비행태가 등장한 바 있다. 대중문화 소비로서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행태인데, 쉽게 말해 실제로는 특정 영화를 관람할 생각이 없으면서 해당 영화 집계 관객 수를 늘리고 그만큼 영화가 수익을 얻게 하려는 목적으로 영화표를 일단 예매한 뒤 관람은 하지 않는 행태를 말한다. 사실상 소비라기보다 기부(寄附)에 더 가까운 행태라고도 할 수 있다.
 
  이 같은 행태가 대중적으로 처음 가시화(可視化)된 건 2019년 한국 영화 〈걸캅스〉 개봉 당시다. 두 여형사가 여성이기에 사회에서 받는 불이익들에 맞서 디지털 성(性)범죄 사건을 해결한다는 내용의, 일정 부분 페미니즘 성향을 띤 액션 코미디다. 그런데 이 〈걸캅스〉가 초반 흥행에서 큰 재미를 보지 못하자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 여성 회원들이 〈걸캅스〉를 보러 갈 계획이 없어도 일단 표를 예매하자는 일종의 ‘운동’을 시작했다. 이를 두고 내 ‘몸’은 극장에 가지 않지만 ‘영혼’은 극장으로 보낸다고 해서 ‘영혼 보내기’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렇게 영화가 흥행이 돼야 영화의 홍보 효과도 더 커지고, 극장에서 밀려나지 않고 오래 상영될 수 있으며, 또 그래야 비슷한 페미니즘 사상을 지닌 영화들이 앞으로도 계속 나올 수 있다는 취지에서다.
 
  그런데 여기서 실제로 무슨 사정이 있어 영화를 보러 갈 수 없다는 게 아니라 해당 영화를 딱히 보고 싶지는 않지만 어쨌든 페미니즘을 지지하기에 ‘영혼 보내기’에 동참한다는 이들이 속속 등장했다는 게 주목거리다. 사실 〈걸캅스〉는 영화 비평가들의 비평 차원에서나 일반 관객 감상평 등의 차원에서 모두 졸속이라는 반응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즉 영화로서는 볼 만한 게 못 되기에 보지 않겠지만, 영화가 담고 있는 페미니즘 사상을 더 많이 퍼뜨리고 또 앞으로도 다른 영화들을 통해 더 퍼뜨릴 수 있도록 영화의 수익을 올려주겠다는 발상. 그리고 이 같은 ‘영혼 보내기’는 같은 해 베스트셀러 소설을 영화화한 또 다른 페미니즘 성향 영화 〈82년생 김지영〉에서도 다시 한 번 재현됐다.
 
 
  ‘시대착오적인 가사’
 
  최근에는 K팝 가사를 두고서도 한바탕 논란이 일었다. SM엔터테인먼트의 프로젝트 걸그룹 갓더비트의 노래 ‘Step Back’ 가사를 두고서다. 가사 자체에 무슨 큰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다. 자신의 남자친구에게 접근하는 다른 여자를 향해 “이쯤에서 물러나고 입 닫는 게 좋을 걸 / 아님 어디 한 번 기어 올라와 보던가”라며 엄포를 놓는 내용 정도다. 그럼에도 여성 이용자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인터넷 여초(女超) 커뮤니티들에서는 ‘시대착오적인 가사’라며 크게 반발하고 일부에서는 보이콧 움직임까지 보였다. 이 시대에는 여성으로서 당당하게 살아가려는 자세가 가사로 나와야지, 여자들끼리 서로 힘을 합치기는커녕 ‘고작 남자’를 두고 적이 돼 싸우는 내용을 다룬 이유가 대체 뭐냐는 것이다.
 
  상황이 여기까지 이르니 이에 대응해 동세대 남성층 문화소비도 점차 달라지고 있다. 정확히 위 ‘가사 논쟁’의 비판 지점으로부터 반대되는 형태, 즉 페미니즘에 기반을 둔 문화상품들을 거부하고 비판하며 그와는 다른 상품들을 소비하려는 자세로 말이다. 상황을 다룬 《K를 생각한다》의 저자 임명묵의 《조선일보》 2022년 3월 21일 자 칼럼 ‘[밀레니얼 톡] 젠더 갈등으로 확산하는 아이돌 팬덤’ 일부를 살펴보자.
 

  〈이미 걸그룹 시장에서는 여성과 해외 소비자층이 선호하는 ‘걸 크러시(girl crush·여자가 봐도 멋진 여성)’ 콘셉트를 둘러싼 공방이 다양한 팬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집단적 논쟁에 뛰어들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문화 전쟁’의 전사로 정립하는 현상은 결코 새로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정체성에 기반한 팬덤 갈등이 문화 시장을 넘어 다양한 정치, 사회적 갈등으로 확산되는 메커니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최근의 ‘이대남’들도 거슬러 올라가면 문화 콘텐츠를 둘러싼 투쟁을 통해 단련된 이들이었다. 이런 선례들로 미루어 보았을 때, 대통령 선거가 끝났다고 젠더 갈등이 사그라들리라 기대하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진짜 전선’에서 싸움은 이제야 시작된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美 밀레니얼 세대 男女도 극단적으로 갈려
 
  이제 다시 20대 여성층의 꿋꿋한 좌파 정당 지지 부분으로 돌아가 보자. 사실 이 같은 현상은 비단 한국에서만 일어나는 일도 아니다. 근래, 대략 2010년대 들어서부터는 자유세계 이곳저곳에서 똑같이 페미니즘 중심으로 ‘정치적 올바름’ 차원에서 젊은 여성층의 좌파 정당 지지세가 올라가는 추세다.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자료로 2018년 3월 20일 자 미국 조사기관 퓨 리서치 센터(Pew Research Center)에서 발표한 리포트, 〈유권자 정당 식별에 있어 넓은 성별 차이와 심화되는 교육 격차〉를 들 수 있다.
 
  해당 리포트에 따르면 미국 유권자 중 남성층은 1994년부터 2017년 사이 공화당/민주당 지지 성향 및 그중 어느 한쪽으로 기운 성향 차원에서 별 차이를 보이지 않는 반면, 여성층은 전반적으로 민주당 지지 성향이 유의미(有意味)하게 늘어난 것으로 파악됐다. 그런데 그 원인이 상당히 선명했다. 이른바 ‘밀레니얼 세대(1980~82년에서 1995~97년 사이 태어난 세대)’ 여성층이 이 같은 변화를 주도하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밀레니얼 세대 남성층은 민주당으로 기운 성향이 2006년 52%에서 2017년 49%로 오히려 줄어들고 대신 공화당 성향이 39%에서 41%로 소폭 상승한 반면, 동세대 여성층은 같은 기간 민주당으로 기운 성향이 54%에서 무려 70%로 폭등하고 공화당 성향은 36%에서 23%로 크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소셜미디어(SNS) 열풍도 관련?
 
  밀레니얼 세대의 이처럼 극단적인 남녀 간 이념 정당 지지 성향 차이는, 한국의 20대와 마찬가지로, 미국의 전(全) 세대 중 가장 큰 폭으로 차이가 벌어진 광경이었다.
 
  이에 퓨 리서치 센터 측은 단순히 지지 정당 구성원들의 면면을 두고 차이가 벌어졌다기보다 근본적인 이념적 성향 차이가 여타 세대에 비해 크게 벌어진 형태라는 해석을 내렸다. 여타 미국 언론미디어들의 해석을 살펴보면, 그중에서도 각종 신좌파적(新左派的) 이슈들, 즉 페미니즘, 인종차별 반대, 반전(反戰)주의, 반(反)권위주의 등의 차원에서 남녀 간 이념 성향 차이가 두드러지고, 역시 그 핵심은 페미니즘을 포함한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입장 차이라는 점을 들고 있다. 이렇게 사고의 격차가 크게 벌어지기 시작한 시점은, 퓨 리서치 센터 분석으로, 대략 2015년경부터로 파악된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 해석은 가지각색이다. 반복되는 해석으로 2010년대 들어 소셜미디어(SNS) 열풍이 크게 인 것과 “관련이 있는 듯도 하다”는 정도다. 어찌 됐건 이처럼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요구가 거세질수록 1990년대부터 이를 꾸준히 핵심 어젠다로 삼아온 민주당 측으로 여성층 지지는 계속 몰릴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한국과 상황이 다르지 않고, 시기적으로 한국과 미국에서 거의 동시 진행돼온 흐름이라고도 볼 만하다.
 
 
  출산율 저하와 젊은 여성층의 左傾化
 
1970년대에 미국에서 나온 공포영화 〈엑소시스트〉 〈오멘〉 등은 출산과 육아에 대한 혐오를 내포하고 있다.
  그런데 근래 몇몇 국내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는 더 나아가, 현재 한국이 겪고 있는 극심한 출산율 저하 역시 젊은 여성층의 좌경화(左傾化) 분위기와 관련 있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한다. 이 역시 미국 자료 기반이다. 미국 GSS(General Social Survey)는 2018년 조사 결과, 미국 성인 중 보수 성향 100명은 평균 208명의 자녀를 갖지만, 리버럴(liberal) 성향 성인들은 147명의 자녀를 갖는다는 통계를 내놓았다.
 
  물론 이 같은 자료는 도시권에 리버럴 성향-민주당 지지층이 많고 보수 성향이자 공화당 지지층은 상당수가 비(非)도시권에 거주한다는 통념에 비춰볼 때 언뜻 유의미한 자료로 비치진 않는다. 협소한 주거 공간 등 생활하기에 팍팍한 도시 환경으로 인해 도시 거주자들은 출산율이 떨어지는 것으로 잘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2018년 공식 통계로 미국의 도시화율, 즉 도시에 거주하는 인구 비율은 한국(81.4%)보다 높은 82.7%로 드러나고 있다는 점에서 아예 의미 없는 자료로 치부되기도 힘들다. 특히 신좌파 사고체계 자체가 전통적 성(性) 역할로부터의 해방과 전통적 가족 개념의 해체 등을 토대로 삼는다는 점에서, 젊은 여성층의 좌경화(左傾化)가 그 이념적 방향성만으로도 출산율에 일정 수준 이상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결론은 딱히 어색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흥미로운 부분은, 이 같은 여성층의 결혼 및 출산에 대한 거부감을 미국 대중문화산업에서는 이미 대중문화 콘텐츠로서 반영(反映)한 적이 있다는 점이다. 1970년대 초중반 미국 젊은 세대의 극심한 출산율 저하 상황을 두고서다.
 
  1970년대 전반, 특히 1972년에서 1976년 사이 미국의 출산율 폭락은 가히 기록적인 수준이었다. 이 같은 출산율 급감의 원인으로 주로 지목되던 게 이른바 ‘상대소득 가설(relative income hypothesis)’이다. 결혼 시기에 갖게 되는 자녀의 수는 절대적인 소득의 크기가 아니라 개개인이 기대하는 생활 수준과 실현 가능한 소득 비교에 의해 결정된다는 가설이다.
 
  쉽게, 1970년대의 젊은 층은 1950년에서 1973년 사이 이른바 ‘자본주의 황금기’에 성장한 세대이기에 자기 삶의 소득 수준에 대한 기대치가 높은데, 1970년대 들어서면서 경기가 둔화되고 결국 1973년 불황을 맞아 23년에 걸친 ‘자본주의 황금기’가 끝나는 시점이었기에 이에 따라 출산율도 급감했다는 논리다.
 
  그런데 미국 사회에서는 이후로도 몇 번이고 불황이 찾아왔지만 1970년대만큼의 출산율 급감까지는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또 다른 영향, 즉 ‘68 혁명’을 전후로 한 미국 젊은 세대 내의 신좌파 이념 열풍이 젊은 층 의식 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리라는 의견도 추가되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결혼과 출산 등 전통적 가정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여성에 대한 억압으로 치부하는 사고가 만연해졌기에 결혼과 출산에 대한 일종의 혐오감이 젊은 층 내에서 번져나갔다는 것이다.
 
  그리고 미국 영화는 일찍부터 이 같은 젊은 층 정서를 반영하는 공포영화들을 1960년대 후반부터 꾸준히 내놓고 있었다. 개중에는 1968년 작 〈악마의 씨〉, 1973년 작 〈엑소시스트〉, 1974년 작 〈그것은 살아 있다〉, 1976년 작 〈오멘〉 등 국내에서도 친숙한 대히트작들도 포함돼 있다. 모두 유아(幼兒) 또는 유소년 자녀에게 악마가 들거나 혹은 애초부터 악마와 같은 존재로 태어났기에 그 부모의 삶, 특히 엄마=여성의 삶을 망치거나 견디기 힘들 정도로 고통스럽게 만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야말로 출산과 육아에 대한 혐오가 여실히 반영된 내용인 셈이다. 대중심리, 그중에서도 대중문화 주 소비층인 젊은 층 심리를 가장 먼저 파악해 콘텐츠에 반영하는 대중문화의 ‘잠수함의 토끼’ 역할을 잘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다.
 
 
  男嫌 구심점 ‘메갈리아’
 
2016년 5월 21일 서울 강남역 인근에서는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의 피해여성을 추모하는 시위가 열렸다. 사진=조선DB
  그런데 이처럼 어지럽고 복잡하게 불붙은, 그래서 결국 정치 영역에까지 깊숙이 파고들어 간 ‘이대남’ ‘이대녀’들의 ‘젠더 전쟁’과 대중문화와의 관계는 단순히 대중문화의 ‘잠수함의 토끼’ 역할론에서 그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어쩌면 대중문화 자체가 이 같은 ‘젠더 전쟁’의 주된 원인 중 하나, 최소한도 발화(發火) 바탕 정도는 되고 있을지 모른다는 점도 만만찮게 지적된다.
 
  2015년 등장해 순식간에 인터넷상 페미니즘, 아니 사실상 남성 혐오 정서 전파의 구심점 역할을 한 인터넷 커뮤니티 ‘메갈리아’가 한 예다. ‘메갈리아’의 근간이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 디시인사이드의 ‘남자 연예인 갤러리’에 있다는 점은 이미 잘 알려진 바다. 정확히는 ‘남자 연예인 갤러리’에서 남자 아이돌 팬으로 활동하던 여성들이 어느 순간 남성 혐오 분위기로 돌아서더니 이후 메르스 첫 감염자가 남성이었던 점을 빌미로 메르스 갤러리로 진출해 해당 갤러리를 남성 혐오 게시판화시킨 것이다. 여기서 ‘메갈리아’ 탄생에까지 이른 것이다.
 
  앞선 《조선일보》 칼럼에서 임명묵 작가가 지금의 ‘젠더 전쟁’을 구성하는 젊은 남녀들도 “거슬러 올라가면 문화 콘텐츠를 둘러싼 투쟁을 통해 단련된 이들”이라 지목한 이유다. 대중문화산업의 갖가지 분야에서 탄생된 팬덤들이 곧 서로 누가 우위인지를 두고 ‘팬덤 전쟁’을 벌이게 되고, 그 과정에서 인터넷상 홍보와 음해, 공격, 방어의 방식들을 익힌 이들이 페미니즘 등 또 다른 사상들에 영향을 받아 그 ‘싸움의 방식’들을 이념전선에 써먹기 시작하면서 지금 같은 ‘젠더 전쟁’이 크게 불붙었다는 흐름을 쉽게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문화적 차원의 탐구 필요
 
  지금 대중문화 판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팬덤 전쟁’들을 그저 1970년대 ‘나훈아 대(對) 남진’ 대결처럼 우습고 가볍게 바라봐선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팬덤 전쟁’에서 멘털리티를 정립시킨 이들은 동시에 정치·사회적으로 꾸준히 입김을 과시하며 여론을 선동하는 이들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그렇게 돼가고 있다. 그리고 물론, 앞선 젊은 여성층의 좌경화 흐름에 대해서도, 단순히 소셜미디어(SNS) 때문이냐 아니냐 하는 차원을 넘어서, 문화적 차원에서 보다 넓고 깊이 있는 탐구가 필요하기도 하다. 선거 때만 반짝 화제가 됐다가 잊히기를 반복하면서 오히려 계속 양상은 심화(深化)되기만 하는 ‘젠더 전쟁’의 실마리라도 잡기 위해서는 이런 끈질긴 관찰과 조명이 필수불가결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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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달기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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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화    (2022-06-06) 찬성 : 0   반대 : 0
이빨빠지고 기운없는 나이가 되야 아...남자도 여자도 서로 필요했구나 아이도 필요했구나 알것지

20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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