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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자의 인문학 〈9〉

프레더릭 포사이스의 《자칼의 날》과 파리–런던–로마–빈

“어디까지가 진짜인지는 비밀이다. 나는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픽션인지 독자뿐만 아니라 나 자신마저 혼동하게 만들 것을 염두에 두면서 써 내려갔다”

글·사진 : 문갑식  선임기자  gsmo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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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골, 당초 약속 어기고 알제리 독립 허용하자 6차례 암살 시도 이어져
⊙ 1962년 8월 공군 중령 장 바스티앵 티리 암살 시도 실패하자 극우파 비밀군사조직 OAS 결성해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최고의 프로페셔널 킬러’ 고용
⊙ “그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었느냐고? 나는 1962년부터 로이터통신 특파원으로 파리에서, 이른바 ‘드골 전문반’이 되어 집중적으로 취재했다. 그리고 암살 미수 사건도 자주 일어나 흥미를 느꼈고 나름 조사도 했다”(포사이스)
⊙ 자칼, 암살용 라이프와 신분증 위조… 덴마크 목사와 미국 학생으로 위장
⊙ 킬러는 싸늘히 대답했다. “암살자의 총탄으로부터 완전히 보호되고 있는 인간은 이 세상에 없는 법이오”
⊙ 자칼이 영국 MI6 소속 요원임이 드러나자 프랑스 최고의 형사 르벨 총경이 추적 시작
⊙ “지금까지 스파이스릴러의 걸작으로 여겨진 《맨추리안 캔디데이트》나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 같은 작품이 이제는 아동용 미스터리처럼 생각된다”(미국 《뉴욕타임스》)
자칼이 은신했던 밀라노의 안개 낀 풍경이다.
  유럽 쪽을 바라보는 영국 도버항(港)은 백악(白岳)이 장관이다. 여기서 배를 타고 45분이면 프랑스 칼레항(港)이다. 칼레 한복판에 샤를 드골(1890~1970) 전 프랑스 대통령과 아내 이본 방드루의 거대한 동상이 서 있다. 부부의 상(像)이 이곳에 세워진 이유는 두 가지다. 이본 방드루의 고향이며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군의 승리가 확실해지자 드골이 이곳을 통해 조국으로 돌아왔다.
 
  드골은 프랑스 지도자 중 가장 많은 암살(暗殺) 위협을 받았다. 그 이유를 살펴보려면 혼란하기 그지없던 1950년대 프랑스의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 제2차 세계대전 뒤인 1946년 11월 총선에서 패한 드골은 정계 은퇴를 선언한 뒤 칩거했다. 전쟁 회고록을 집필하는 일로 소일했다. 이때 프랑스는 1956년 이집트 수에즈 운하(運河)를 둘러싼 ‘수에즈 전쟁’에서 이기고도 져 체면을 구겼다.
 
  수에즈 전쟁의 발단은 1956년 7월 나세르 이집트 대통령이 운하의 국유화를 선언하면서 시작됐다. 이에 영국과 프랑스는 군사행동에 합의했다. 속셈은 서로 달랐다. 영국은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자국 식민지였던 이집트의 도전에 ‘대영제국’의 위상을 재확인시켜줄 필요가 있었다. 프랑스는 자국 식민지인 알제리의 민족해방전선을 암암리에 돕는 나세르 이집트 대통령에게 깊은 반감을 가졌다.
 
  영국과 프랑스는 이스라엘을 끌어들여 두 단계로 침공계획을 세웠다. 1단계는 이스라엘이 시나이반도로 진격하는 것이며, 2단계는 적절한 시기에 영국과 프랑스가 이스라엘과 이집트에 전쟁 중단을 요구했다가 나세르가 거절하는 순간 전쟁에 참여하는 것이었다. 이스라엘이 시나이반도의 주요 거점을 5일 만에 점령하자 10월 30일 영국과 프랑스는 두 나라에 선전포고를 했다.
 
  영국과 프랑스는 이스라엘과 이집트에 수에즈 운하 양쪽 20마일 밖으로 퇴거(退去)하라고 요구했다. 이스라엘은 응했지만 이집트는 불응했다. 사전 계획대로 영국・프랑스군은 이집트 비행장을 폭격하고 공수부대 등을 투입했다. 그사이 이스라엘은 시나이반도 전역을 손에 넣었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암초가 나타났다. 유엔이 침략을 멈추지 않으면 유엔군을 결성해 개입하겠다는 것이었다.
 
칼레의 광장에 있는 드골 대통령 부부 동상이다.
  결국 영국・프랑스 양국은 체면을 구겼고, 이스라엘은 애써 점령했던 시나이반도를 이집트에 되돌려줘야 했다. 2년 뒤, 이번에는 알제리가 프랑스에 반기를 들었다. 프랑스는 좌파 우파 가릴 것 없이 ‘프랑스의 알제리’를 외치며 식민지 유지에 집착했다. 알제리를 잃을 경우 아프리카 전체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광대한 프랑스 식민지 전역에서 독립 요구가 분출할 것이 뻔했다.
 
  당시 프랑스는 현실과 타협해 알제리 독립을 허용하려는 중도파 내각이 집권해 있었다. 이에 반발한 극우세력과 군부는 공공연히 쿠데타 위협을 가하는 상황이었다. 실제로 알제리 주둔군이 파리 공항에 공수부대를 투입하고 기갑부대를 동원해 의회를 점령한다는 식의 구체적인 쿠데타 시나리오까지 공공연히 거론될 정도였다. 극우파는 알제리에서 실제 행동을 보여주기에 이르렀다.
 
  알제리에서 대폭동을 일으킨 뒤 공수부대를 지중해의 섬 코르시카에 투입한 뒤 점령하고 남프랑스를 통해 파리로 진군(進軍)하기 시작했다. 궁지에 몰린 4공화국은 와해됐고, 극우파들은 드골이야말로 자신들의 편이라고 생각하고 드골에게 권좌(權座)에 앉을 것을 요구했다. 시골에 칩거하고 있던 드골은 내심 이런 상황을 반겼지만 겉으로는 딴전을 피우다 행동을 시작했다.
 
  드골은 육군 군복 차림으로 TV 연설을 했다. 그는 세 가지를 요구했다. 4공화국은 퇴진하고 헌법 개정을 약속한다면 임시정부 수반(首班) 자리를 수락하겠다는 것이었다. 연설 한 번으로 셋을 얻은 것이다. 좌파와 중도세력은 드골을 인정하지 않으면 정권이 공산당에 넘어갈 것을 우려해 드골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드골의 집권은 작은 불행이나 공산당의 집권은 큰 불행이다.’
 
  그런데 권력을 쟁취한 드골은 극우파의 기대를 저버리고 알제리 독립을 승인해버렸다. 이 결정 직후 1960년까지 프랑스는 모든 아프리카 식민지를 잃었다. 대신 영연방(英聯邦)과 유사한 ‘프랑스연합’이라는 국제기구를 결성했다. 맨 처음 암살 기도는 1962년 8월 공군 중령 장 바스티앵 티리에 의해 시도돼 성공하는 듯했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결국 극우파는 비밀군사조직인 OAS(Organisation Armée Secrète)를 결성해 거액의 돈을 모은 뒤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최고의 프로페셔널 킬러를 고용해 드골 암살을 추진한다. 이 암살의 전 과정을 다룬 것이 바로 프레더릭 포사이스(81)의 소설 《자칼의 날(The Day of the Jackal)》이다. 그는 《자칼의 날》을 쓰기 시작한 이유를 책 말미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1969년 크리스마스에 비아프라에서 돌아왔지만 돈도 없고 이렇다 할 일거리도 없었다. 그래서 드골과 비밀군사조직인 OAS에 대해 써보려고 생각했다. 1970년 1월 1일부터 타자기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날마다 하루에 8시간씩, 그 이상은 도저히 무리라고 생각될 정도로 열심히 자판을 두들겨 댔다.
 
  그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었느냐고? 나는 1962년부터 로이터통신 특파원으로 파리에서, 이른바 ‘드골 전문반’이 되어 집중적으로 취재했다. 그리고 암살 미수 사건도 자주 일어나 흥미를 느꼈고 나름 조사도 했다. 파리를 떠나고도 이 테마는 계속 내 머릿속에 남아 있었기 때문에 막상 쓰기 시작할 때는 이미 플롯까지 완성된 상태였다.
 
  어디까지가 진짜인지는 비밀이다. 나는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픽션인지 독자뿐만 아니라 나 자신마저 혼동하게 만들 것을 염두에 두면서 써 내려갔다. 단지 작품 속에 등장하는 테크놀로지는 모두 사실이다. 드골의 서재라든가 프랑스 경찰의 움직임도 사실이다. 등장인물도 가능한 한 실명을 사용했다.
 
  자칼은 나와 친한 친구 두 명의 성격과 사고방식을 한데 버무려 만들어냈다. 그리고 사실은 철저하게 조사했다. 물론 직접 취재도 필요했다. 어디 가서, 누구를, 또 어떤 식으로 물어봐야 목적한 답을 얻을지 정확하게 아는 것이 실로 중요한 문제였으니까.
 
  나는 대개 녹음이나 메모 없이 취재하는 편이다. 스토리를 쓰기 시작하는 초반부터 반드시 플롯 전체가 처음부터 끝까지 머릿속에서 질서정연하게 자리 잡을 필요는 없다고 본다. 글을 쓰려고 타자기 앞에 앉았을 때, 텔렉스 보내는 요령으로 타이핑하면 되니까. 그러면 아내가 매일 그것을 들고 이웃 동네까지 달려가 복사를 해오고, 한 부는 반드시 다른 장소에 보관한다. 즉 출판사에 보내는 것은 복사본이고, 오리지널은 나중에 세상에서 단 한 권뿐인 책이 되는 것이다.”

 
드골 대통령 암살 수뇌부가 머물던 로마의 전경이다.
  《자칼의 날》은 1963년 3월 11일 오전 6시45분, 한 사나이의 총살형 집행 장면으로 시작된다. 이브리 기지 영내에 한 프랑스 공군 중령이 얼어붙은 땅 위에 박힌 말뚝에 양팔을 뒤로 비틀려 묶인 채 30m 전방에 정렬한 총살대원들의 얼굴을 절망에 찬 표정으로 노려보고 있다. 그는 프랑스 대통령 암살을 기도한 OAS 암살단의 지휘자 바스티앵 티리 중령이었던 것이다.
 
  1962년 8월 22일 파리 변두리에 있던 OAS 일당은 프랑스 제5공화국의 대통령 샤를 장군은 마땅히 죽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들이 이런 결의를 다지는 사이 드골 대통령이 탄 차는 프티 클라마르 거리에 나타났다. 암살단은 시속 110km로 달리는 대통령 전용차 시트로엥에 12발의 총탄을 명중시켜 그중 두 발이 타이어를 터트렸다. 그날 오후 8시17분의 사건이었다.
 
  암살단이 쏜 몇 발은 차체를 관통했고 어떤 탄환은 뒷유리를 뚫었는데, 파편이 드골 대통령의 코앞 몇cm 앞에서 흩어졌다. “모두 엎드리십시오”라는 경호원의 말에 드골 부인은 남편의 무릎에 얼굴을 묻었지만 드골 대통령은 “또 시작했군”이라는 무심한 말을 하며 깨진 뒷유리를 통해 밖을 돌아보았다. 아브뉴 뒤 부아에서는 암살단 2진이 드골의 너덜너덜해진 승용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격수는 대통령 전용차와 나란히 질주하며 오만해 보이는 드골의 얼굴이 드러난 시트로엥의 뒤쪽을 향해 기관단총의 탄창이 빌 때까지 총격을 가했다. 이때 드골 대통령이 물었다. “왜 반격하지 않나?” 구사일생으로 사지(死地)를 벗어난 뒤 드골은 시골 별장까지 자신을 데려다준 헬리콥터 조종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 녀석들, 총도 제대로 쏠 줄 모르더군.”
 
  국가 원수(元首) 암살이 실패로 돌아간 후 프랑스 비밀 정보기관 ‘국외정보관리 방첩부’, 약칭 SDECE가 대대적인 인간사냥에 돌입했다. 총 7개 부로 구성된 SDECE에서도 5부는 ‘행동부’로 불린다. 이 사나이들은 거의가 코르시카 출신으로, 소설 따위에서 흔히 말하는 ‘불사신(不死身)’에 가장 가까운 인상을 풍기는 거친 사나이들이다. 포사이스는 그들의 단련 과정을 이렇게 설명한다.
 
  “기초 훈련으로써 육체의 한계에 이르기까지 단련을 거친 다음, 사토리에 이송되어 특별 훈련반에서 모든 전투 기술을 다지게 된다. 개인 화기를 사용하는 싸움, 맨주먹으로 하는 결투, 당수, 유도 등을 배우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무선 통신, 폭파와 사보타주, 신문(訊問), 고문, 유괴, 방화, 암살을 배운다….”
 
  SDECE 행동부에 의해 암살조직이 궤멸되는 순간을 오스트리아의 작은 호텔 방에서 지켜보던 사람이 있었다. 방송에서 전해지는 소식은 그의 가슴에 훗날 드골 대통령을 죽음 직전까지 몰아넣는 잇단 계획과 행동의 불을 지폈다. 그가 바로 그 방에 묵고 있던 OAS의 새로운 작전주임 마르크 로댕 대령이다. 로댕은 빈으로 로마에 있던 앙드레 카송, 볼차노에 사는 르네 몽클레르를 소환했다.
 
  그들은 암살자의 자격을 이렇게 정했다. 첫째, 외국인이어야 한다. 둘째, 프랑스 경찰에 알려졌거나 기록에 남아 있을지 모를 OAS 등의 단체에 소속된 사람은 안 된다. 셋째, 프로 살인업자여야 한다. 세 사람은 여기에 동의한 뒤 적격자 셋을 찾아낸다. 독일인, 아프리카인, 영국인이다. 암살의 3자 수뇌부는 하나씩 따지며 부적격자를 지워간다.
 
  첫째, 독일인은 나이가 들었고 이스라엘 모사드에 쫓기고 있다.
 
  둘째, 아프리카인은 조그만 나라의 깜둥이 정객(政客)쯤은 해치울 수 있을지 몰라도 프랑스 대통령을 저격하는 일은 감당해내지 못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세 사람이 영국인이야말로 드골을 저승으로 보낼 저승 차사라고 생각하는 순간 두 사람이 “그런데 이 영국인의 자료는 확실한가” 하고 묻는다. 그가 지금까지 해낸 업적이 도무지 인간으로는 해낼 수 없을 것 같은 일들이기 때문이다.
 
  “사실은 나도 그가 한 일을 알고 놀랐어. 그래서 더욱 면밀하게 조사했지만 말이야. 절대적인 증거가 있느냐고 캐묻는다면 분명히 말해서 하나도 없어. 그러나 증거가 있다고 하면 오히려 형편없는 놈이지. 어느 나라에 가나 위험한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경찰에선 체크할 게 아닌가. 어쨌든 단순한 소문 말고는 없는 사나이야. 공식 기록에 의하면 그는 눈처럼 결백하네. 비록 영국 경찰이 그를 리스트에 올렸다 할지라도 그에 대해선 의문 부호가 붙어 있을 뿐이야. 따라서 인터폴 서류철에도 당연히 기록이 없을 거야. 영국 경찰은 비록 SDECE에서 공식 조회를 요청한다 해도 그러한 인물에 대해선 문제시하지 않을 거야. 자네들도 알다시피 영국과 프랑스는 사이가 매우 나쁜 편이야. 영국 정부 당국에선 작년 1월 조르주 비도가 은밀히 런던에 갔었을 때도 프랑스에 대해선 침묵을 지켜왔을 정도였으니까. 어쨌든 영국인은 이런 작업에 적당한 인물이지만 한 가지 문제점이 있어. 비싸단 말이야.”
 
자칼은 항상 임무를 마치면 런던으로 돌아와 휴식을 취했다.
  암살 수뇌부는 빈에서 영국인과 만난다. 영국인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돈 때문에 일을 하고 당신들은 이상(理想) 때문에 일을 하고 있소. 서로가 체면치레를 하며 상대를 견제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오. 당신들은 나에 관해서 여러 가지로 조사하며 돌아다녔으나 그러한 조사는 반드시 조사를 당하는 사람에게 들려오는 법입니다. 당연히 나는 누가 나에게 흥미를 가지고 있는가를 알고 싶어졌소. 나에게 흥미를 가지고 있는 조직체를 이름을 확인한 뒤 이틀 동안 대영박물관에 다니면서 프랑스 신문철을 열람했죠. 그리하여 당신네의 조직에 대해서 충분한 지식을 얻게 되었소. 그래서 오늘 점심때가 지나서 당신들의 부하가 찾아왔을 때도 놀라지 않은 거요. 내가 지금 알고 싶은 것은 나에게 무엇을 시키려는 건지 바로 그것입니다.”
 
  로댕은 이렇게 답한다. “우리는 이미 여섯 번이나 그의 암살을 기도했으나 그 가운데 3회는 계획단계에서 탄로가 났고, 1회는 실시 며칠 전에 적에게 발각되었으며, 나머지 2회는 습격에는 성공했으나 결과적으로는 실패하고 말았소. 이 일을 맡을 수 있겠소?” 그러자 암살자가 싸늘히 대답한다. “암살자의 총탄으로부터 완전히 보호되고 있는 인간은 이 세상에 없는 법이오.”
 
  암살수뇌부와 킬러 간에 계약이 체결됐다. 50만 달러. 선금 25만 달러, 잔금 지불은 드골이 저세상으로 떠난 후다. 암호명은 자칼. 그 직후 7월까지 프랑스 전국의 주요 은행, 보석상, 우체국이 무장 강도단의 습격을 받았다. 거의 매일같이 곳곳의 은행이 권총, 총신을 동강 낸 단총, 기관단총 따위로 무장한 강도단에 시달렸다. 킬러에게 지급할 돈을 마련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그와 동시에 자칼도 행동을 시작했다. 먼저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프랑스 대통령’ 항목 뒤에 붙은 참고 서적 리스트를 얻어 그 책들을 모두 독파했다. 킬러는 그중에서도 드골이 직접 쓴 회고록 《칼날》이 마음에 들었다. 그는 언제 어디서 어떤 방법으로 저격할지를 고심하던 중 대영박물관에 들러 프랑스 신문 《르 피가로》의 묵은 신문들을 조사하기 시작했으며 마침내 아이디어를 얻었다.
 
  그것은 대통령이 취임한 1945년 이래 현재까지 해마다의 기록과 그 기사 내용을 비교해본 결과 얻어낸 해답이었다. 명예를 중시하지만 한편으로는 오만한 대통령은 어떤 특정한 날에, 몸이 좋지 않건 날씨가 나쁘건 가리지 않고 반드시 민중 앞에 그 모습을 나타낸다는 사실이었다. ‘언제’ ‘어디서’가 정해지자 자칼은 열두 가지 남짓한 방법을 검토한 끝에 ‘어떤 방법으로’까지 해결했다.
 
드골 대통령은 개선문을 자주 찾았다.
  드골의 암살은 나중에 증명된 바와 같이 미국 케네디 대통령 암살보다 훨씬 어려운 작업이었다. 자칼은 알지 못했으나 미국의 호의로 케네디 신변 경호 상태를 연구하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간 프랑스 담당관은 ‘시크릿 서비스(미 재무부 소속 비밀 검찰국)’의 경호 태도와 자세에서 드러난 문제점에 얼굴을 찌푸리고 귀국한 바 있었다. 프랑스 담당관이 미국 방식을 채용하지 않은 것은 현명한 일이었다. 1963년 11월 케네디는 댈러스에서 미치광이 같은 아마추어의 손에 암살됐다.
 
  드골은 그 뒤에도 무사하게 살아 은퇴하여 자택에서 영원한 수면을 취하게 된 것이다. 이제 자칼은 자신과 피부색과 체격이 비슷한 두 명의 여권을 훔친다. 첫 번째가 덴마크에서 온 목사, 두 번째는 미국 시러큐스에서 온 대학생이었다. 그는 변장에 필요한 목사용 셔츠, 나일론 점퍼, 구두와 셔츠 등을 사들이고 염색약까지 장만한다. 그리고 죽은 이들의 신원정보를 빼 ‘새 사람’으로 탄생한다.
 
  마지막으로 자칼은 암살용 라이플을 총기의 장인(匠人)을 통해 마련하고 서류위조가를 만나 신분증을 만든다. 두 사람과의 계약이 성사되자 자칼은 싸늘하게 경고한다. “앞으로 이 일을 누군가에게 발설하거나 나에 대한 조사를 한다는 소식이 들리면 그때는 당신이 죽어줘야겠소.”
 
  총기의 장인은 도버해협을 건너온 이 영국인에게서 단순한 악당에게서는 볼 수 없는 이질적인 것과 파악할 수 없는 강인성을 느꼈다. 그래서 살았다. 서류 위조의 달인은 촬영해놓은 사진을 이용해 돈을 더 뜯어내려다 불귀(不歸)의 객(客)이 되고 만다. 이제 모든 채비를 갖춘 자칼은 파리로 가 몽파르나스 역 인근의 ‘1940년 6월 18일’ 광장으로 간다. 그곳이 바로 암살 현장이 될 곳이다.
 
  옛날에는 렌 광장으로 불리던 것이 ‘1940년 6월 18일’ 광장으로 이름이 바뀐 것은 1940년 6월 14일 영국 런던으로 망명했던 오만한 지도자가 나흘 뒤 마이크 앞에 서서 프랑스인들을 상대로 호소한 날이기 때문이다. 드골은 그날 말했다. “우리는 전투에는 패했으나 전쟁에서는 패하지 않았다”고. 자칼은 광장에서 130m 떨어진 아파트 맨 꼭대기 층을 점찍어놓았다.
 
평화로운 몽마르트르 광장 어디선가 킬러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
  암살 준비가 진행되는 사이 의외의 곳에서 구멍이 뚫렸다. 암살 수뇌부의 경호를 맡은 거구의 폴란드인 코발스키가 신변 경호를 맡은 로댕에게도 말하지 않고 로마에서 프랑스 마르세유로 날아간 것이다. 친구에게 자기 외동딸을 맡겨놓았는데, 갑자기 친구로부터 외동딸이 백혈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자 코발스키는 이성이 마비돼버렸다. 이것은 SDECE 행동부의 공작이었다.
 
  코발스키는 고문(拷問)을 견디지 못하고 암살 모의와 ‘금발의 영국인’을 거론한 뒤 죽어버렸다. 프랑스 SDECE 행동부 보스 롤랑은 의문투성이인 ‘코발스키 진술서’를 밤새워 분석한다. 코발스키는 한 미지의 사나이에 대해 복잡한 감정을 가진 듯 ‘봉(좋다)’ ‘파쇠르(개새끼)’라는 말을 반복했다. 새벽 5시, 롤랑은 테이프리코더를 반복해 듣다 놀라운 사실을 발견한다.
 
  ‘봉’은 ‘블랑(금발)’이었으며 ‘파쇠르’는 ‘포쇠르(살인청부업자)’를 뜻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코발스키를 함정으로 몰아넣고 고문을 한 의미가 새로워졌다. 자칼은 금발의 외국인 살인전문가의 암호명으로, OAS 간부들은 로마의 호텔로 들기 전 그를 만났던 것이다. 롤랑은 그제야 지난 8주에 걸쳐 프랑스 전국을 뒤흔들었던 은행·보석상 강도 사건의 진상을 알게 됐다.
 
이번에 대화재로 소실된 노트르담 대성당을 자칼도 둘러보았다.
  금발은 OAS로부터 어떤 일을 맡았다. 그만큼 큰돈을 요구할 수 있는 일은 드골 암살밖에 없었다. 암흑가 보스를 처치해달라는 부탁을 했을 리는 없다. 프랑스 권부에 비상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이제 프랑스 제일의 형사인 형사국 차장 클로드 르벨 총경이 등장해 자칼과 맞설 차례다.
 
  르벨 총경이 맨 먼저 한 일은 미국 FBI, 영국의 스코틀랜드 야드(경찰청), 벨기에・네덜란드・이탈리아・독일・남아공의 형사 책임자들과 통화해 암살 음모를 알린 뒤 용의자를 추려내는 것이었다. 그 순간 자칼은 만반의 준비를 끝낸 채 런던→벨기에 브뤼셀→이탈리아 밀라노를 거치며 작전에 돌입했다. 놀랍게도 자칼의 존재는 스코틀랜드 야드의 끈덕진 형사 토머스에 의해 드러난다.
 
  “필비 사건은 지금까지도 우리 부서 안에서 쓰라린 패배로 기억되고 있는데 그자가 철의 장막 저쪽으로 도망간 것은 1961년 1월 베이루트에서였지요. 물론 그것은 나중에 안 일입니다만 당시 ‘서비스’(SIS·MI6를 통칭하는 말) 내부는 큰 혼란에 빠졌어요. 이동도 심했습니다. 아무튼 아랍 담당 부서 요원들은 모두 정체가 드러났거든요. 다른 부서도 적잖이 피해를 입었지요.
 
  맨 먼저 이동 명령을 받은 것은 카리브해 연안 지역의 주요 요원이었던 사나이였지요. 카리브로 옮기기 6개월 전까지 베이루트에서 필비와 함께 일해왔으니까 별수 없었던 거지요.
 
  이것과 거의 동시에 도미니카 공화국의 독재자 트루히요 장군이 시우다드트루히요(도미니카공화국의 수도 산토도밍고의 다른 이름. 1936년부터 1961년까지 대통령이었던 트루히요의 이름을 딴 것으로 그가 암살된 후 산토도밍고로 환원됐다) 교외의 을씨년스러운 도로에서 암살되었어요. 보고에 의하면 빨치산에게 당한 것으로 되어 있었지요. 독재자였기 때문에 적도 많았어요. 그러고 나서 바로 도미니카 주재 동료가 런던에 돌아와서 잠깐 동안 일을 함께했는데 그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어요. 트루히요의 차는 저격수가 쏜 한방으로 저지당하고 거기서 빨치산들이 습격하여 장군을 살해했다는 소문이 현지에 널리 펴져 있었다고요. 고속으로 달리고 있는 차를 150m쯤 되는 거리에서 겨누고 더욱이 방탄유리를 끼우지 않았던 운전기사 옆의 삼각창을 통해 운전기사의 목을 관통시켜 즉사케 했다니 무서운 솜씨지요. 그런데 묘하게도 저격수는 영국인이라는 소문이 있다는 겁니다.”

 
자칼이 은신했을 법한 낡은 파리의 아파트들이다.
  토머스는 이 말을 해준 SIS의 젊은 동료에게 그자의 기록이 남아 있는지를 부탁한다. 먼지가 풀풀 날리는 서류창고 속에서 한 명의 이름이 등장한다. ‘찰스 칼스롭’이다. 여기서부터 이 소설의 내용을 더 밝히는 것은 소설에 대한 불경(不敬)이 될 것이며, 독자들이 손에 땀을 쥐고 자칼과 르벨 총경의 대결을 즐길 권리를 박탈하는 것이자 작가에 대한 무례가 될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자칼’이라는 테러리스트가 있기는 했다. 1970년대를 풍미한 국제 테러리스트 카를로스 더 자칼이 그로, 본명은 일리치 라미레스 산체스다. 남미 베네수엘라의 부유층에서 태어난 그는 1970년대 전 세계를 공포에 떨게 한 PLO(팔레스타인 해방기구), 검은 9월단, 바더 마인호프 그룹 등 무장 조직의 청부를 받고 수많은 테러를 저질렀다. 테러 전문 용병인 셈이다.
 
  그는 1975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국제석유수출국기구 회의장을 급습, 각국 장관을 인질로 잡고 5000만 달러를 받고 사라졌다. 또 1972년 뮌헨올림픽 테러 사건 때 검은 9월단의 행동대원들을 교육하는 등 여러 건의 테러 배후에서 암약했다. 1994년 수단에서 체포된 뒤 프랑스로 압송돼 종신형을 받았다. 물론 이 자칼은 프레더릭 포사이스의 소설 《자칼의 날》의 자칼과는 무관하다.
 
칼레의 등대는 황량한 느낌을 준다.
  포사이스는 1938년 영국 켄트주에서 태어났다. 한때 투우사가 돼보려 스페인 그라나다대학에 유학했지만 결국 영국 공군에서 제트기 조종사가 됐다. 제대 후 저널리즘에 뛰어들어 3년간의 지방기자 생활을 거쳐 로이터 통신사에 들어가 해외특파원이 됐다. 프랑스어와 독일어가 유창해 처음에는 파리에 주재했지만 나중에 동베를린 주재기자가 됐다.
 
  베를린 장벽이 세워진 직후에 당시 동베를린에서 활약한 서방 측 기자는 포사이스가 유일했다. 이후 BBC에 들어갔다가 1968년 그만두면서 자유기고가가 됐다. 그는 자유기고가가 된 후 분쟁이 한창이던 비아프라에 들어가 그 참상을 〈비아프라 이야기〉라는 논픽션으로 그려냈는데, 펭귄문고로 출판될 정도로 호응을 받았다. 《자칼의 날》은 그의 첫 번째 소설이자 두 번째 작품인 셈이다.
 
자칼이 귀족부인을 살해한 듯한 고성들은 프랑스 남부에 산재해 있다.
  《자칼의 날》은 “독자들은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당황할 것이다”(《타임스》) “단순한 스릴러라기보다는 역사적 사실을 재구성한 작품”(《선데이 익스프레스》)” “역사의 한 단면을 절묘한 픽션으로 색칠했다”(《렉스프레스》)는 격찬을 받았으나 백미는 미국 《뉴욕타임스》의 서평(書評)일 것이다.
 
  “지금까지 스파이스릴러의 걸작으로 여겨진 《맨추리안 캔디데이트》나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 같은 작품이 이제는 아동용 미스터리처럼 생각된다. 독서삼매경에 빠져 문득 정신을 차리니 어느새 날이 밝았더라는 체험을 원하는 독자라면 이 책이 적격이다. 영화화된다면 틀림없이 걸작이 만들어질 것이다.”
 
  포사이스가 쓴 《오뎃사 파일》 《개들의 전쟁》 《네 번째 프로토콜》 《베테랑》 《아프간》 등은 스릴러의 고전으로 통하고 있다. 그는 2010년에 《코브라》를 발표할 정도로 여전히 정력적인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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