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강회사 철강영업 2팀장인 병석은 어느 아침, 낯선 새끼 시츄 한 마리와 함께 깨어난다. 손바닥만 한 강아지. 문제는 그가 개를 산 기억이 없다는 점이다. 재킷 안주머니에서 발견된 애완동물 매매계약서. 밤 10시50분, 술김에 ‘생명’을 구매한 흔적. 실수 없는 삶을 살아온 남자가 블랙아웃에 빠지면서 균열이 시작된다.
병석은 강아지를 돌려주기 위해 펫숍을 찾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냉정하다. “우리는 판매업입니다. 파양은 불가합니다.” 설사하던 강아지를 병원에 데려가며 그는 이름을 붙인다.
‘우보(牛步)’. 느리더라도 좋은 주인을 향해 가라는 뜻. 하루 치 치료비 59만원을 결제하고 집으로 돌아온 그에게 새벽 2시, 병원에서 전화가 온다. “호흡은 남았지만 위중합니다.” 그는 짧게 답한다. “알겠습니다.”
그러고는 동물병원 번호를 차단해 버린다. 다음 날 예정대로 홋카이도로 출장을 떠난다. 고객과의 골프 약속. 아홉 번째 홀, 세컨드샷. 백스윙과 다운스윙.
공을 쫓으려 고개를 든 순간, 빼곡히 심어진 나무 사이를 뚫고 나온 뾰족한 빛이 병석의 눈을 찌른다. 눈살을 찌푸리자 빛의 잔상이 붉게 쫓아오는 가운데 어두운 밤 주택가 골목에서 환하게 빛나고 있던 펫숍을 바라보는 순간이 떠오른다.
펫숍 유리창에 가만히 손을 대던 자신과 자신을 따라 하기라도 하듯 정확히 한 손을 유리창에 올리던 우보의 모습. 시츄를 품에 안고 도로의 경계석에 앉아 울던 자신의 모습이 겹쳐 떠오른다.
불쌍한 개를 산 건 착해지고 싶었던 욕망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것조차 자기기만이었다. 완벽한 샷의 순간, 병석은 텅 빈 ‘공(空)’ 속에 서 있다. 성공의 빛과 윤리의 공백이 하나로 겹치는 찰나… 그의 내면은 완벽히 윤리적 ‘0(zero)’로 수렴한다.⊙
병석은 강아지를 돌려주기 위해 펫숍을 찾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냉정하다. “우리는 판매업입니다. 파양은 불가합니다.” 설사하던 강아지를 병원에 데려가며 그는 이름을 붙인다.
‘우보(牛步)’. 느리더라도 좋은 주인을 향해 가라는 뜻. 하루 치 치료비 59만원을 결제하고 집으로 돌아온 그에게 새벽 2시, 병원에서 전화가 온다. “호흡은 남았지만 위중합니다.” 그는 짧게 답한다. “알겠습니다.”
그러고는 동물병원 번호를 차단해 버린다. 다음 날 예정대로 홋카이도로 출장을 떠난다. 고객과의 골프 약속. 아홉 번째 홀, 세컨드샷. 백스윙과 다운스윙.
공을 쫓으려 고개를 든 순간, 빼곡히 심어진 나무 사이를 뚫고 나온 뾰족한 빛이 병석의 눈을 찌른다. 눈살을 찌푸리자 빛의 잔상이 붉게 쫓아오는 가운데 어두운 밤 주택가 골목에서 환하게 빛나고 있던 펫숍을 바라보는 순간이 떠오른다.
펫숍 유리창에 가만히 손을 대던 자신과 자신을 따라 하기라도 하듯 정확히 한 손을 유리창에 올리던 우보의 모습. 시츄를 품에 안고 도로의 경계석에 앉아 울던 자신의 모습이 겹쳐 떠오른다.
불쌍한 개를 산 건 착해지고 싶었던 욕망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것조차 자기기만이었다. 완벽한 샷의 순간, 병석은 텅 빈 ‘공(空)’ 속에 서 있다. 성공의 빛과 윤리의 공백이 하나로 겹치는 찰나… 그의 내면은 완벽히 윤리적 ‘0(zero)’로 수렴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