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註]
한 줌의 생명이 다해 가는 지금, 김성민 자유북한방송 이사장은 오는 7월에 시집(詩集) 출간을 앞두고 있다. 김 이사장은 몇 날 며칠 동안 시상(詩想)이 떠오르지 않을 때, 아직 살아 있다는 안도감과 함께 무기력함을 느꼈다고 했다. 북한군 대위 출신으로 1995년에 탈북한 그는 탈북자동지회 사무국장을 지냈고, 2004년 4월부터 북한 주민들에게 자본주의 사상을 전파하는 대북(對北) 방송인 자유북한방송을 운영해 오고 있다. 그는 2017년에 폐암 4기, 뇌종양으로 수술과 항암치료를 받고 호전됐다가 지난해부터 병세가 악화됐다. 암이 간으로 전이돼 ‘6개월 남았다’는 시한부 선고를 받았고, 최근 병원으로부터 더 이상의 치료가 무의미하다는 사실상의 사망 선고를 받고 병원 치료를 중단했다. 하지만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은 그는 그동안 쓴 시와 글을 묶어 출간을 준비 중이다. ‘자유의 아이콘’이 마지막 순간에 세상에 남기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곧 빛을 볼 시문 중 일부를 김 이사장으로부터 받아 소개한다.
한 줌의 생명이 다해 가는 지금, 김성민 자유북한방송 이사장은 오는 7월에 시집(詩集) 출간을 앞두고 있다. 김 이사장은 몇 날 며칠 동안 시상(詩想)이 떠오르지 않을 때, 아직 살아 있다는 안도감과 함께 무기력함을 느꼈다고 했다. 북한군 대위 출신으로 1995년에 탈북한 그는 탈북자동지회 사무국장을 지냈고, 2004년 4월부터 북한 주민들에게 자본주의 사상을 전파하는 대북(對北) 방송인 자유북한방송을 운영해 오고 있다. 그는 2017년에 폐암 4기, 뇌종양으로 수술과 항암치료를 받고 호전됐다가 지난해부터 병세가 악화됐다. 암이 간으로 전이돼 ‘6개월 남았다’는 시한부 선고를 받았고, 최근 병원으로부터 더 이상의 치료가 무의미하다는 사실상의 사망 선고를 받고 병원 치료를 중단했다. 하지만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은 그는 그동안 쓴 시와 글을 묶어 출간을 준비 중이다. ‘자유의 아이콘’이 마지막 순간에 세상에 남기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곧 빛을 볼 시문 중 일부를 김 이사장으로부터 받아 소개한다.
자유
다름 아닌 내 것임에도
날 때부터 우리에겐 없었던 그것
시장통의 물건이 아니면서도
우리의 부모들이 빼앗긴 그것
그것 없이는 살아도 죽은 목숨인
숨결이며 가치인 자유는
고향으로 안고 갈 우리의 맹세.
탈북, 그리고 운명
영문도 모르는 아픔에 꿈틀거리다가
문득, 부러진 나무
사라져 버린 반생처럼
만질 수 없는 반분(半分)의 고통이
허공을 움켜잡고 아프게 운다.
속살을 하얗게 드러내고 통곡하는 나무
동무여
그 나무는 나였다, 너였다,
되돌릴 수 없는 분단의 슬픔 위에
오늘을 사는 우리의 운명이었다.
엄마 생각
쫓기듯 고향을 떠날 때
마음속의 흙 한 줌 고이 얹어 드린 어머니
나, 어머니를 생각하면
깊은 밤 뜨개질 소리가 들려옵니다.
넘어져 우는 자식에겐
그리도 엄하시던 당신이건만
이웃집 창가의 화분 하나에도
그리 마음 쓰시던 어머니.
생각하면 모란봉 기슭의 개나리가
하얗게 피어오릅니다, 세월이 그 자리에
우뚝 멈추어 섭니다, 손수 지으신 모시 적삼 차림으로
대동강 기슭에서 언제나 웃으십니다.
타향 아닌 타향에서
때 없이 불러 보는 어머니
나, 어머니를 생각하면
속눈썹 가지런한 눈시울을 좁히시며
오늘도 미소하는 당신입니다.
그리움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고 난 뒤에야
그제야 난, 당신이 사랑임을 알았습니다.
묵묵히 꽃잎을 따다가 그 빈 꽃대를
버린 다음에야 고향이 그립다, 말을 합니다.
그렇게 나이를 먹어 가고 버린 것이 아쉬울 즈음에
용기를 내어 속삭이는 말, 너무 늦지는 않았나요.
미워했던 그만큼 당신이 그립습니다.
몹쓸 행군
고난의 행군 시절
눈보라 속에
몸은 굳었고
거리와 마을에
시체는 쌓였다.
기나긴 굶주림은
생명을 들에 버렸고
종 된 자의 고민은
천길만길, 나락으로
굴러떨어졌다.
탐욕스러운 횃불이여
불타올랐는가
가보처럼 물려받은
노예적 근성은
태양만 우러렀는가?!
무법과 광란의 세월
그 몹쓸 행군을
이겨 낸 사람들을
북조선의 영웅으로
세상은 기억하고 있다.
한 음절 단어에서 파생되는 연상어
‘해’와 ‘별’
수령과 당
‘물’과 ‘불’
맹세와 충성
‘눈’과 ‘쌀’
추위와 굶주림
세뇌(洗腦)가 승리한
지상낙원을 향해
차렷! 경롓!
숫자의 의미
통장과
카드의
안전번호
내 집
출입문과
사무실의
비밀번호
회원제 사이트엔
인증번호가 필수고
사는 곳의 우편번호도
기억해야 한다.
주민증 번호도
외워야 하고
마누라 전번 정도는
기억해야 하는 세상을 살다가
문득 떠오르는 총번호
조선노동당 당원증 번호
그런 내가,
부모님 생일은 잊기가 일쑤다.
넌 나에게
아침 이슬 머금은
초록 잎사귀처럼
내 맘에 살랑살랑 닿아.
종이배를 띄우면
어디든 닿을 것 같은
네 마음 강물 같아.
오늘도 넌 나에게
커피 한잔의 위로가 되어
노을 물든 창가에 머물러 있어.
인생 커피
죽음의 그림자와 마주한 순간
커피 맛을 알아 버렸다.
종이컵 속에 쉽게 털어 넣던
봉지 속의 달콤함, 너를 밀어낸 쌉싸름한 여유.
내 것이라 믿어온 과거를 밀어내며
낯설었지만, 간절함이 함께하는 향기가 새롭다.
희미했지만, 따사로운 인내가 머물러 있는
커피 한 잔에, 꺼져 가던 삶이 미소 지었다.
그리고 내일
인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나에게, 영웅적인 과거는 없었다.
기억하려거든 벗들이여
함께했던 모든 날을 기억해 달라.
솟구치는 열정, 불타는 결의를
한 뜸 한 뜸의 지혜로 모아
고향을 향한 사랑을 수놓았고
그것이 열정임을 깨우쳐 주었나니
벗들이여, 꺼져 가는 기억 속에
함께했던 추억들, 네가 있어 빛났던
모든 날, 모든 순간
그 모든 것에 감사하노라.
덧없이 가버린 줄 알았던
보잘것없던 날들도
당신이라는 이름으로 채워져
선명한 그림이 되었다.
소박했지만 진심을 나누었던
평범함이, 이제는 눈부신 추억이 되어
우리 안에 살아 숨 쉰다, 함께 웃고
함께 울었던 소중한 순간이여.
그러니 기억해 달라.
화려함은 없어도,
당신과 함께였기에 우리의 모든 순간이
찬란한 기억으로 남아 있음을.
詩의 생리
고난에 시달리면서
재난에 부대끼면서
꿋꿋이 맞받아 나가는 것
속세의 잔 싸움을 멀리 에돌아
구름처럼 자유롭게 떠다니는 것
밟히고 넘어지고
망각에 묻히고
그리고는 또다시 일어나는 것
선조의 유훈엔 향불로 타는 것
목숨 건 싸움에선 장검이 되어
영광의 제단에 바쳐지는 것.
꿈
어젯밤 바람이 거셌습니다.
(아닙니다. 내 마음엔 바람 불지 않은 날 없습니다.)
영문도 모르는 고통에 꿈틀거리다가
갈가리 찢어진 나무를 움켜잡았습니다.
(속살이 허옇게 드러난 나무의 깊숙한 곳에서
보기에도 끔찍한 액체가 뚝뚝 떨어졌습니다.)
만질 수 없는 심연(深淵)의 늪을 헤매고 또 헤맸습니다.
(남이 볼까 봐 입술을 깨어 물고 삼키는 눈물은
어제도 오늘도 그리움의 바다로 흘러갑니다.)
길은 있어도 못 가는 내 고향, 전할 길 없는 내 노래
아픈 그 길을, 어젯밤 꿈에 나 홀로 걸었습니다.
무제
우리 집 금붕어, 네가 흙난주였다는 걸 남조선에 와서야 알았어.
왕관을 뒤집어쓴 것 같아 금붕어의 왕이라 부른다는 흙난주, 제법 잘생긴 녀석이었는데 ‘싸그쟁이’를 너무 먹어치워 확~ 죽여 버릴까 생각한 적도 있었습니다. 고향 모란봉 골짜기, 케케묵은 물웅덩이에서 자라던 그 ‘싸그쟁이’가 언제부터 우리 집 금붕어의 먹이가 되었는지는 생각이 안 나지만, 하루도 빠짐없이 모란봉을 오르던 건 지금 생각해도 고역이었습니다. 인민학교 2학년 땐가, 두 눈 딱 감고 엄마에게 말했습니다. “일원이면 반 고뿌(컵)고 이원이면 한 고뿌래. 앞으론 산에 안 가고 공부만 할 수 있잖아.” 며칠을 졸라 댄 끝에 보물처럼 안고 온 일만 마리 정도의 ‘싸그쟁이’를 흙난주는 순식간에 삼켜 버렸고, 눈앞의 현실이 믿어지지 않아 나는 한동안 쩍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중학교를 졸업하던 해 ‘싸그쟁이’가 흙난주 따위의 먹잇감으로만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참 불쌍하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싸그쟁이’를 팔아 돈 버는 어른들이 부러웠고 나는 크면 지금보다 열 배는 더 큰 싸그쟁이를 양식해 부자가 되리란 생각을 품기도 했습니다. 흙난주의 탐욕에 기생하던 어른도, 아이도, 불쌍한 세월을 살았고 살고 있다는 생각이 지금도 어른거립니다.
※싸그쟁이: 물벼룩의 북한어. 늪이나 물웅덩이 따위에서 살며 껍데기는 달걀 모양이고 투명하지 않으며 겹눈이 크다. 물고기 먹이로 쓰며 양어장에서 번식시키기도 한다.
아웃사이더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 이정표를 잃은 여행자가 되어 버렸다. 과거를 등에 지고 새로운 길을 나서야 하는 방랑자의 운명 앞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가슴이 시리다. 익숙했던 모든 것을 뒤로하고 낯선 사람, 낯선 환경과 부딪쳐야 한다. 옳다고 믿어 왔던 작은 습관들까지 마음속 상처가 되어 버린다. 나도 이 사회의 구성원이 될 수 있을까…. 이 땅에서 살아갈 이유를 찾는 게 급선무란 생각이 드는가 하면, ‘남조선 사회’가 탈북자인 나를 필요로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마음은 다시 심란해진다. 혼자이거나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 거대한 열차의 보조석에 앉아 창밖의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는 듯한 기분, 그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시큰거린다. 때로 본능에 의존해야만 하는 자신의 처지가 안쓰러워 때론, 모든 것을 남 탓으로 돌리기도 한다.⊙
다름 아닌 내 것임에도
날 때부터 우리에겐 없었던 그것
시장통의 물건이 아니면서도
우리의 부모들이 빼앗긴 그것
그것 없이는 살아도 죽은 목숨인
숨결이며 가치인 자유는
고향으로 안고 갈 우리의 맹세.
탈북, 그리고 운명
영문도 모르는 아픔에 꿈틀거리다가
문득, 부러진 나무
사라져 버린 반생처럼
만질 수 없는 반분(半分)의 고통이
허공을 움켜잡고 아프게 운다.
속살을 하얗게 드러내고 통곡하는 나무
동무여
그 나무는 나였다, 너였다,
되돌릴 수 없는 분단의 슬픔 위에
오늘을 사는 우리의 운명이었다.
엄마 생각
쫓기듯 고향을 떠날 때
마음속의 흙 한 줌 고이 얹어 드린 어머니
나, 어머니를 생각하면
깊은 밤 뜨개질 소리가 들려옵니다.
넘어져 우는 자식에겐
그리도 엄하시던 당신이건만
이웃집 창가의 화분 하나에도
그리 마음 쓰시던 어머니.
생각하면 모란봉 기슭의 개나리가
하얗게 피어오릅니다, 세월이 그 자리에
우뚝 멈추어 섭니다, 손수 지으신 모시 적삼 차림으로
대동강 기슭에서 언제나 웃으십니다.
타향 아닌 타향에서
때 없이 불러 보는 어머니
나, 어머니를 생각하면
속눈썹 가지런한 눈시울을 좁히시며
오늘도 미소하는 당신입니다.
그리움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고 난 뒤에야
그제야 난, 당신이 사랑임을 알았습니다.
묵묵히 꽃잎을 따다가 그 빈 꽃대를
버린 다음에야 고향이 그립다, 말을 합니다.
그렇게 나이를 먹어 가고 버린 것이 아쉬울 즈음에
용기를 내어 속삭이는 말, 너무 늦지는 않았나요.
미워했던 그만큼 당신이 그립습니다.
몹쓸 행군
고난의 행군 시절
눈보라 속에
몸은 굳었고
거리와 마을에
시체는 쌓였다.
기나긴 굶주림은
생명을 들에 버렸고
종 된 자의 고민은
천길만길, 나락으로
굴러떨어졌다.
탐욕스러운 횃불이여
불타올랐는가
가보처럼 물려받은
노예적 근성은
태양만 우러렀는가?!
무법과 광란의 세월
그 몹쓸 행군을
이겨 낸 사람들을
북조선의 영웅으로
세상은 기억하고 있다.
한 음절 단어에서 파생되는 연상어
‘해’와 ‘별’
수령과 당
‘물’과 ‘불’
맹세와 충성
‘눈’과 ‘쌀’
추위와 굶주림
세뇌(洗腦)가 승리한
지상낙원을 향해
차렷! 경롓!
숫자의 의미
통장과
카드의
안전번호
내 집
출입문과
사무실의
비밀번호
회원제 사이트엔
인증번호가 필수고
사는 곳의 우편번호도
기억해야 한다.
주민증 번호도
외워야 하고
마누라 전번 정도는
기억해야 하는 세상을 살다가
문득 떠오르는 총번호
조선노동당 당원증 번호
그런 내가,
부모님 생일은 잊기가 일쑤다.
넌 나에게
아침 이슬 머금은
초록 잎사귀처럼
내 맘에 살랑살랑 닿아.
종이배를 띄우면
어디든 닿을 것 같은
네 마음 강물 같아.
오늘도 넌 나에게
커피 한잔의 위로가 되어
노을 물든 창가에 머물러 있어.
인생 커피
죽음의 그림자와 마주한 순간
커피 맛을 알아 버렸다.
종이컵 속에 쉽게 털어 넣던
봉지 속의 달콤함, 너를 밀어낸 쌉싸름한 여유.
내 것이라 믿어온 과거를 밀어내며
낯설었지만, 간절함이 함께하는 향기가 새롭다.
희미했지만, 따사로운 인내가 머물러 있는
커피 한 잔에, 꺼져 가던 삶이 미소 지었다.
그리고 내일
인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나에게, 영웅적인 과거는 없었다.
기억하려거든 벗들이여
함께했던 모든 날을 기억해 달라.
솟구치는 열정, 불타는 결의를
한 뜸 한 뜸의 지혜로 모아
고향을 향한 사랑을 수놓았고
그것이 열정임을 깨우쳐 주었나니
벗들이여, 꺼져 가는 기억 속에
함께했던 추억들, 네가 있어 빛났던
모든 날, 모든 순간
그 모든 것에 감사하노라.
덧없이 가버린 줄 알았던
보잘것없던 날들도
당신이라는 이름으로 채워져
선명한 그림이 되었다.
소박했지만 진심을 나누었던
평범함이, 이제는 눈부신 추억이 되어
우리 안에 살아 숨 쉰다, 함께 웃고
함께 울었던 소중한 순간이여.
그러니 기억해 달라.
화려함은 없어도,
당신과 함께였기에 우리의 모든 순간이
찬란한 기억으로 남아 있음을.
詩의 생리
고난에 시달리면서
재난에 부대끼면서
꿋꿋이 맞받아 나가는 것
속세의 잔 싸움을 멀리 에돌아
구름처럼 자유롭게 떠다니는 것
밟히고 넘어지고
망각에 묻히고
그리고는 또다시 일어나는 것
선조의 유훈엔 향불로 타는 것
목숨 건 싸움에선 장검이 되어
영광의 제단에 바쳐지는 것.
꿈
어젯밤 바람이 거셌습니다.
(아닙니다. 내 마음엔 바람 불지 않은 날 없습니다.)
영문도 모르는 고통에 꿈틀거리다가
갈가리 찢어진 나무를 움켜잡았습니다.
(속살이 허옇게 드러난 나무의 깊숙한 곳에서
보기에도 끔찍한 액체가 뚝뚝 떨어졌습니다.)
만질 수 없는 심연(深淵)의 늪을 헤매고 또 헤맸습니다.
(남이 볼까 봐 입술을 깨어 물고 삼키는 눈물은
어제도 오늘도 그리움의 바다로 흘러갑니다.)
길은 있어도 못 가는 내 고향, 전할 길 없는 내 노래
아픈 그 길을, 어젯밤 꿈에 나 홀로 걸었습니다.
무제
우리 집 금붕어, 네가 흙난주였다는 걸 남조선에 와서야 알았어.
왕관을 뒤집어쓴 것 같아 금붕어의 왕이라 부른다는 흙난주, 제법 잘생긴 녀석이었는데 ‘싸그쟁이’를 너무 먹어치워 확~ 죽여 버릴까 생각한 적도 있었습니다. 고향 모란봉 골짜기, 케케묵은 물웅덩이에서 자라던 그 ‘싸그쟁이’가 언제부터 우리 집 금붕어의 먹이가 되었는지는 생각이 안 나지만, 하루도 빠짐없이 모란봉을 오르던 건 지금 생각해도 고역이었습니다. 인민학교 2학년 땐가, 두 눈 딱 감고 엄마에게 말했습니다. “일원이면 반 고뿌(컵)고 이원이면 한 고뿌래. 앞으론 산에 안 가고 공부만 할 수 있잖아.” 며칠을 졸라 댄 끝에 보물처럼 안고 온 일만 마리 정도의 ‘싸그쟁이’를 흙난주는 순식간에 삼켜 버렸고, 눈앞의 현실이 믿어지지 않아 나는 한동안 쩍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중학교를 졸업하던 해 ‘싸그쟁이’가 흙난주 따위의 먹잇감으로만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참 불쌍하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싸그쟁이’를 팔아 돈 버는 어른들이 부러웠고 나는 크면 지금보다 열 배는 더 큰 싸그쟁이를 양식해 부자가 되리란 생각을 품기도 했습니다. 흙난주의 탐욕에 기생하던 어른도, 아이도, 불쌍한 세월을 살았고 살고 있다는 생각이 지금도 어른거립니다.
※싸그쟁이: 물벼룩의 북한어. 늪이나 물웅덩이 따위에서 살며 껍데기는 달걀 모양이고 투명하지 않으며 겹눈이 크다. 물고기 먹이로 쓰며 양어장에서 번식시키기도 한다.
아웃사이더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 이정표를 잃은 여행자가 되어 버렸다. 과거를 등에 지고 새로운 길을 나서야 하는 방랑자의 운명 앞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가슴이 시리다. 익숙했던 모든 것을 뒤로하고 낯선 사람, 낯선 환경과 부딪쳐야 한다. 옳다고 믿어 왔던 작은 습관들까지 마음속 상처가 되어 버린다. 나도 이 사회의 구성원이 될 수 있을까…. 이 땅에서 살아갈 이유를 찾는 게 급선무란 생각이 드는가 하면, ‘남조선 사회’가 탈북자인 나를 필요로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마음은 다시 심란해진다. 혼자이거나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 거대한 열차의 보조석에 앉아 창밖의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는 듯한 기분, 그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시큰거린다. 때로 본능에 의존해야만 하는 자신의 처지가 안쓰러워 때론, 모든 것을 남 탓으로 돌리기도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