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세상읽기] 미셸 우엘벡의 《복종》 : 월간조선

2015년 프랑스는 이슬람 테러로 홍역을 치렀다. 그해 벽두인 1월 7일, 이슬람 예언자 모하메드를 풍자하는 만화를 내보냈던 잡지 《샤를리 에브도》가 테러리스트들의 습격을 받아 이 잡지의 편집장을 비롯해 12명이 살해됐다. 그해 11월 3일에는 파리 곳곳에서 이슬람 테러리스트에 의한 총격사건이 발생, 130명이 목숨을 잃었다.

《샤를리 에브도》 사건이 있던 1월 7일, ‘문제적 작가’ 미셸 우엘벡의 신간 소설이 발간됐다. 소설의 제목은 《복종》! 2022년 프랑스에 이슬람 정권이 들어선다는 설정의 디스토피아 소설이다. 조지 오웰의 《1984》는 1948년에 36년 후의 미래에 대해 쓴 소설이었다. 다른 디스토피아 소설들도 멀게는 여러 세기 이후, 가까워야 한두 세대 이후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출간 당시 불과 7년 후의 프랑스를 그렸다.

약체였던 프랑수아 올랑드 정권이 레임덕에 접어들던 시기에 나온 이 소설은 《샤를리 에브도》 사건과 맞물리면서 논란의 중심에 놓였다. ‘이슬람 포비아(공포증)’를 조장한다는 비판도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그해 문학동네에서 번역, 출간했다.

프랑스에 이슬람 정권이 들어섰다!

소설의 주인공은 파리 제3대학에서 19세기 프랑스 문학을 가르치는 40대 중반의 교수다. 젊은 시절 상당한 수준의 학문적 성취를 이루었지만, 이후 그의 삶은 무료하다. 젊은 시절에 쌓은 명성을 소비하면서 학기마다 여자(그중에는 제자들도 여럿 있다)를 갈아 치우면서 사는 권태로운 삶…. 소설의 앞부분은 그의 삶만큼이나 심심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삶은 바뀐다. 2022년 프랑스 대선(大選)! 이 선거에서 전통적인 양대(兩大) 정당이었던 대중운동당(우파 드골주의당)과 사회당(좌파)이 몰락하고, 극우(極右) 국민전선과 이슬람박애당이 1, 2위로 약진한다. 사회당과 대중운동당을 비롯한 여러 정당들은 ‘파시스트 세력’의 집권을 저지하기 위해 이슬람박애당 후보 모하메드 벤 아베스를 지지한다.

그 결과 프랑스 최초로 무슬림 대통령이 등장한다. 아베스 정권은 이슬람 교육, 일부다처제 등 이슬람화 정책을 착착 펼쳐 나간다. 여성들이 가정으로 복귀를 강요당하면서 실업률은 낮아지고, 심심찮게 벌어지던 아프리카 출신 이민자들의 폭동은 줄어든다. 오일머니가 유입되면서 부동산 값이 올라가고 경기도 좋아진다. 모로코, 튀니지, 이집트 등 북아프리카 국가들이 EU에 가입하고, ‘이슬람 프랑스’는 새로이 외교의 중심이 된다.

유서 깊은 소르본 대학은 사우디아라비아 석유자본의 손에 넘어간다. 이슬람교로의 개종(改宗)을 거부한 학자들은 학교를 그만둔다. 하지만 적지 않은 교수들은 정권과 대학 당국이 제공하는 당근(엄청난 액수의 월급이나 일부다처제 아래서 합법적으로 가질 수 있는 젊고 예쁜 아내들)에 차례로 넘어간다. 처음에는 새로운 체제에 순응하는 것을 거부해 ‘파리-소르본 이슬람 대학’에서 해직(解職)됐던 주인공도 결국은 그 유혹에 굴복한다. 그러는 사이에 공화국 시민들의 자유는 서서히 사라져 간다. 여자들이 예쁜 옷을 입을 자유, 교육의 자유, 학문의 자유 등등….

얼핏 황당해 보이는 설정이지만, 내용은 탄탄하다. 소설 속에 나오는 여러 정치적 사건들과 비슷한 사건은 이미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

소설 속에서 대선 전 프랑스 도처에서는 내전(內戰)을 방불케 하는 총격전과 폭동이 벌어지는데, 실제로 2015년 11월 파리 테러 사건으로 130명이 죽었다. 북아프리카계 청소년들에 의한 폭동은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다. 파리를 비롯한 프랑스 대도시에서 무슬림 거주 지역들은 공권력이 미치지 못하는 그들만의 해방구(解放區)가 된 지 오래다.

극우 국민전선 후보가 대통령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좌·우파가 특정 후보를 ‘묻지마 지지’하는 현상도 이미 있었다. 2002년 대선 때는 국민전선 당수 장 마리 르펜이 대통령이 되는 걸 막기 위해 드골파, 중도우파, 사회당, 공산당 할 것 없이 프랑스의 모든 정파가 드골파의 자크 시라크 대통령을 지지했었다. 에마뉘엘 마크롱 현 프랑스 대통령이 2017년과 2022년 대선에서 승리한 것도, 국민전선의 후신인 국민연합(RN)의 마린 르펜(장 마리 르펜의 딸)이 당선되는 것을 막으려는 표가 마크롱에게 몰린 덕분이었다. 2년 뒤인 2027년 대선에서도 국민연합 후보는 대선 1차 투표에서는 이기더라도 2차 투표에서 결국 패배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작년 프랑스 총선에서도 1차 투표에서는 국민연합이 제1당이 될 것처럼 보였지만, 2차 투표에서는 그러한 상황을 막으려는 표심이 작용하는 바람에 제3당으로 내려앉았다.

3選 런던 시장은 무슬림

프랑스에서 무슬림 대통령 탄생은 가능할까? 아직 대통령이나 총리는 아니지만, 프랑스나 영국에서는 이미 무슬림 각료가 탄생했다. 파키스탄 출신 무슬림인 사디크 칸(노동당)은 런던 시장으로 세 번이나 당선되었으며, 유력한 총리 후보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힌두교도인 인도계 리시 수낵(보수당)이 이미 영국 총리를 지냈는데, 앞으로 무슬림 총리가 탄생하지 말라는 법도 없을 것이다.

‘설사 그렇다 해도 그게 우리와 무슨 상관이람? 그건 프랑스나 영국인들의 고민이다’라고 말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자는 이 이야기가 남의 이야기 같지가 않았다. 아, 그렇다고 오해는 말기를! 기자는 ‘이슬람의 한국 정복 계획’ 같은 걸 믿고 있는 건 아니다. 그보다는 기자에게 이 소설은 한 체제의 ‘정체성(正體性)’에 대한 고민으로 읽혔다. 자기 체제의 정당성·정체성을 지키는 데 실패한 체제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기성(旣成)의 체제가 ‘민주주의’라는 이름 아래 무너지고 전혀 다른 정체성에 기초한 체제가 들어서는 과정에서 대중과 지식인들이 보여 주는 비겁함에 대한 우화(寓話)라고 할까.

그런 경험은 우리에게도 생소하지 않다.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권은 ‘진보 정권’이라고 자칭했지만, 그들은 역대 정권과는 색깔을 달리하는 ‘좌파 정권’이었다. 그리고 6·3 대선의 결과에 따라서는 그런 색깔의 정권이 다시 들어설 수도 있다.

체제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담아

과거 소위 진보 정권 시기에 일어났고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많은 일들이 이 소설 속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우선 소설 속의 프랑스 정치 상황(실제의 정치 상황이기도 하다)은 대중운동당(우파 드골주의 정당)과 사회당이라는 익숙한, 그러나 실제로는 아무런 비전도 보여 주지 못하는 양대 낡은 정치 세력에 대한 환멸과 관련이 있다. 오래전부터 프랑스의 국민연합(구 국민전선)은 기성의 양대 정당 구도에 균열을 내면서 유력한 대안(代案) 정당으로 성장해 왔다. 마크롱 대통령이 앙마르슈(전진·당명은 ‘르네상스’를 거쳐 현재는 ‘앙상블’로 바뀜)라는 중도 실용주의 정당을 만들어 집권할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이런 사정은 이웃 나라들에서도 비슷하다. 금년 독일 총선에서는 ‘극우’ 정당 소리를 듣던 독일을위한대안(AfD)이 독일 정치의 양대 축(軸) 가운데 하나였던 사회민주당을 제치고 제2당으로 약진했다. 우리나라에서도 2016년 총선에서 안철수 의원의 국민의당이 돌풍을 일으킨 적이 있다.

프랑스의 무슬림 인구 비율은 현재 9%인데 2050년에는 18%로 늘어날 전망이다. 이런 나라에서 언젠가는 영향력 있는 이슬람 정당이 하나쯤 생기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경제니 지정학이니 하는 것들은 신기루일 뿐”

소설 속의 이슬람박애당은 앞서 잠시 존재했던 이슬람 급진주의 정당들과는 달리 온건하고 합리적인 이미지로 대중들 사이로 파고든다. “팔레스타인을 지지할 때도 온건한 태도를 취했으며, 유대교 지도층들과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고, 엄밀한 의미에서의 정치활동이 청년운동, 문화센터, 자선단체와 촘촘한 조직망으로 이어졌다.”

우리는 소위 진보 좌파 세력이 온건하고 중도 성향의 ‘시민단체’를 자처하고, 소외(疏外) 계층에게 다가가는 유사(類似) 복지단체의 모습으로, 혹은 백화점이나 언론사의 문화강좌를 통해 우리 사회의 ‘시민권’을 획득하는 데 성공한 사실을 알고 있다. 그들 덕분(?)에 이제 ‘공산주의자’들은 더 이상 ‘뿔 달린 괴물’이 아니라 ‘쿨하고 깨어 있는 시민’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특히 연예인이나 지식인들은 뭔가 ‘진보적’인 언동을 해야 ‘개념 있어’ 보인다.

소설 속 이슬람박애당의 핵심 어젠다는 교육이다. 이들을 관찰해 온 국내안보총국(DGSI) 요원은 이렇게 말한다.

“경제니 지정학이니 하는 것들은 신기루일 뿐이에요. 아이들을 장악하는 자가 미래를 장악한다, 그것으로 얘기 끝이죠. 그러니 유일하게 중요한 부분, 그들이 무슨 일이 있더라도 자기들의 주장을 관철하려 하는 유일한 부분이 바로 아이들 교육입니다.”

이 또한 우리에게도 익숙한 모습이다. 박근혜 정권 말기에 시끄러웠던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國定化) 논란이 좋은 예(例)다. 대통령이 국정화를 들고 나오자 야당과 전교조, 좌파 시민단체들이 총궐기했다. 이는 자기들이 강고하게 장악하고 있는 아이들에 대한 역사 교육 기득권(旣得權)을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는 결의의 표명이었다. 결국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면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는 없던 일이 돼버렸다. 보수 세력이 선거 때마다 분열하는 바람에 교육감 자리를 전교조 출신들에게 내준 것이 20년이 다 돼가는데, 그러고도 대선이나 총선에서 승리하기를 바라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일 것이다.

지식인들의 비겁

프랑수아 바이루 프랑스 총리. 사진=AP/뉴시스

하지만 무엇보다도 섬뜩하게 다가오는 것은, 체제가 둔갑하는 엄청난 지각(地殼)변동 속에서 언론과 지식인들이 보여 주는 나태함, 무능함, 비겁함이다.

대선을 앞두고 극단주의 세력에 의한 테러가 계속되고, 위험은 다가오지만, 언론은 침묵한다. 언론은 오히려 증대하는 이슬람 세력의 위험에 대해 경고하는 사람들을 나무란다. 그들이 극우 세력의 대두를 촉진할 수도 있다는 우려에서. 그리고 이슬람박애당의 집권이 눈앞으로 다가오자 언론은 일제히 침묵한다. 이 또한 익숙한 풍경이다. ‘좌익’을 ‘진보’라고 불러 주고, 특정 유력 정치인에 대해서는 입을 다무는 우리 언론들의 모습이 여기서 얼마나 다른가?

하지만 새로운 체제 속에서 지식인들은 하나둘 현실에 순치(馴致)돼 간다. 처음에는 별로 인정받지 못하던 ‘시시한’ 지식인들이 먼저 투항한다. 그리고 그 후에는 학문의 세계 속에서만 살아온 고매한 학자들, 주인공처럼 나름 실력 있는 지식인들도 그 뒤를 잇는다. 그들에게는 상상을 초월하는 고액의 급여, 학자로서 이름을 날릴 수 있는 기회, 그리고 여자가 주어진다.

그런 투항의 대열에는 정치인도 빠지지 않는다. 소설 속 모하메드 벤 아베스는 대통령이 되자마자 중도 성향의 기성 정치인을 총리로 발탁한다. 프랑스 국민들은 ‘신(神)의 한 수’라며 감탄한다. 이 인물이 프랑수아 바이루인데, 그는 실존 정치인, 그것도 현직 프랑스 총리다! 바이루는 과거 세 차례 대선에 도전했다가 낙마(落馬)했는데, 이 소설이 나온 지 9년 후인 2024년 마크롱 정부의 총리가 되어 현재까지 재직 중이다. 소설 속에서 바이루는 이슬람 정권의 총리가 되어 ‘국민통합’을 선전하는 ‘얼굴마담’ 역할을 한다. “비록 이슬람 정권이 들어섰지만, 프랑스공화국은 아무 것도 달라진 것이 없다”고 국민들을 설득하는, 아니 속이는 것이 그에게 주어진 역할이다.

이 모든 것들이 낯익은 풍경이다. 분명히 보수적(保守的)인 것으로 알려졌던 수많은 지식인, 언론인, 관료, 군인들이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권이 들어서자 자신의 평생을 부인하고 정권의 품에 안겼다. 김대중 정권은 보수 정권 출신 김종필·박태준·이한동 씨를, 노무현 정권은 박정희 정권 이래 역대 보수 정권에서 봉직했던 고건 씨를 총리로 앉혀 자신들의 색깔을 희석시켰다.

“후회할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을 것”

소설 속에서 주인공은 대선을 앞둔 혼란의 와중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미 정립된 사회 시스템 속에서 번영을 누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 시스템에서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으면서 별다른 두려움 없이 그것을 파괴하려 하는 사람들의 관점에서 생각하기란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바로 그런 태도가 자신들이 살아온 기독교적 세계를 사취(詐取)당하고 이슬람에게 ‘복종’해야 하는 디스토피아를 만들었다.

‘복종’을 받아들인 주인공은 이렇게 생각한다.

“후회할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그게 이 소설의 마지막 문장이다. 하지만 자신이 살아온 삶, 그 삶을 가능하게 한 가치관과 체제를 포기한 자에게 기다리고 있는 삶이 정말 ‘후회할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삶일까?

그렇게는 살고 싶지 않다. 지금까지 살아온 조국을 그렇게 잃고 싶지는 않다. 이미 정립된 사회 시스템 속에서 자유와 번영을 누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깨어 있어야 한다. ‘이 시스템에서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으면서 별다른 두려움 없이 그것을 파괴하려 하는 사람들의 관점에서 생각’하고, 그들을 경계하고, 그들에 대해 끊임없이 경고를 발해야 한다. 지금 누리고 있는 자신의 삶과 자유와 번영을 유지하고 싶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