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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이 좋다 / 세계인의 마음을 흔드는 부산의 매력 속으로

부산과 스포츠

철완 최동원, 야생마 김주성의 부산갈매기 바통, 허웅이 받는다

글 : 최우석  월간조선 기자  woosu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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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함 해 보입시더” 강병철 감독이 최동원에게 ‘1984년 한국시리즈 경기 7차전에 등판이 가능한지’를 물었을 때, 최동원은 이렇게 말했다. '불멸의 투수' 최동원의 말은 곧 부산의 정신이 됐다.
롯데 자이언츠 투수 시절의 최동원 선수. 사진=조선DB
  “부산은 정말 야구를 좋아하는 도시구나!”
 
  부산에선 1910~20년대부터 부산2상(옛 부산상고), 동래고보 등에서 조선인 야구 팀이 만들어졌다. 부산은 1940년대부터는 ‘야구 도시’로 불렸다. 경남중학교(6년제)가 청룡기 대회를 2연패 하고 황금사자기 대회를 3연패 할 때다.
 
  ‘태양을 던지는 사나이’로 불렸던 강속구 투수 장태영은 최고 인기 스타였다. 1970년대 고교야구 전성기 때는 야구 명문 경남고, 부산고, 경남상고(현 부경고), 부산상고(현 개성고)의 라이벌 대결도 대단했다. 라이벌에 진 학교 선수들과 학생들이 “학교의 명예를 떨어뜨렸다”며 비 오는 운동장에서 무릎을 꿇을 정도였다고 한다.
 
  부산 야구의 상징이 된 연고 팀 롯데 자이언츠는 프로 원년(元年) 팀이다. 롯데 자이언츠는 삼성 라이온즈와 더불어 모기업도, 팀 이름도 바뀌지 않은 유이한 팀이다. 정규리그 1위는 한 번도 없다. 그래도 롯데를 향한 부산 사람들의 열성은 타 지역민들과 비교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오죽하면 “신(神)은 부산에 최악의 야구팀을 주셨고 또한 최고의 팬을 주셨다”는 말이 나왔을까.
 
  롯데를 ‘꼴데’로 욕하고 다시는 야구를 보지 않는다고 했다가도 또 목이 터져라 응원하는 게 부산 사람들이다. 부산 야구 간판스타는 단연 최동원이다. 정면 승부, 불꽃 직구, 동료에 대한 의협심, 에두르지 않는 직설 등 그의 이런 상징들은 부산 갈매기들의 심성, 정서와 딱 맞아떨어진다.
 

  최동원은 연세대와 한국전력을 거쳐 1983년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했다. 최동원은 1988년까지 투수로 사직구장의 마운드를 지켰다. 최동원이 롯데 자이언츠 유니폼을 입었던 시기는 불과 6년이다. 그런데도 최동원이 부산 야구와 롯데 자이언츠의 상징이 된 것은 그가 보여준 임팩트가 너무 강해서다.
 
  최동원은 1984년 무려 한국시리즈 5경기에 등판해 4승 1패로 팀 승리를 모두 책임졌다. 1차전을 4대 0 완봉승으로 거둔 뒤 이틀 쉬고 마운드에 올라 완투승(3대 2)으로 기염을 토했다. 다시 2일 휴식 후 3일 만에 마운드에 오른 그는 패전의 멍에를 썼지만, 6차전과 7차전에 연이어 등판하며 2승을 다시 따냈다. 그는 피로도 잊은 듯 7차전에서 4실점 완투승을 거두며 혼자 팀 승리를 책임졌다. 최동원이 당시 등판 가능 여부를 묻는 강병철 감독에게 승리에 대한 투지를 드러내며 “마, 함 해 보입시더”라고 한 말은 부산의 정신이 됐다.
 
  부산이 낳은 ‘불멸의 투수’ 최동원의 이 명언은 2030부산세계박람회 부산 유치를 위한 사실상의 슬로건이다.
 
 
  “오늘은 무조건 이겨야 한다. 알긋나?”
 

  롯데 자이언츠 출신 야구 스타는 많다. 그래도 최동원 다음 선수를 꼽자면 투수로는 염종석, 타자로는 박정태, 이대호일 것이다.
 
  롯데 자이언츠 팬들의 마음에 전설로 남은 1992년 ‘신인’ 염종석의 성적은 35경기(선발 22) 등판, 17승 9패 6세이브 평균자책점 2.33이었다. 이 해에 염종석은 롯데 구단 역사상 단 2번뿐인 우승을 이끌었다.
 
  롯데 자이언츠의 우승 순간에는 항상 ‘안경 에이스’가 있었다. 1984년 한국시리즈 4승의 최동원, 그리고 1992년 불멸의 우승 신화를 쓴 염종석이 그 주인공이다.
 
  야구 사랑이 별난 부산에서 ‘박정태’는 고유명사로 통한다. 부산 사람들은 지금도 박정태를 ‘작은 거인’ ‘악바리’ ‘탱크’ ‘돌격대’ ‘오뚝이’ 등 다양한 별명으로 기억하고 있다.
 
  박정태는 1991년 롯데에 입단해 2005년 4월 은퇴할 때까지 롯데에서만 뛰었다. 통산 성적은 타율 0.296, 85홈런, 1141안타, 638타점, 531득점이다. 평범한 내야 땅볼을 치고도 1루까지 전력 질주하고, 포수를 부숴버릴 것처럼 홈으로 쇄도하는 근성은 박정태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박정태는 1999시즌 롯데가 한국시리즈에서 준우승할 때 주장을 맡아 강력한 카리스마를 보여주었다.
 
  한국시리즈 진출권이 달린 삼성과의 플레이오프 마지막 7차전때였다. 롯데는 삼성 이승엽과 김기태의 연속 홈런으로 0대 2로 지고 있다가 6회초 외국인 타자 호세의 홈런으로 1점을 따라붙었다. 이때 일부 대구 관중이 호세를 향해 오물을 던졌고, 흥분한 호세가 관중석을 향해 야구방망이를 날렸다. 호세에게 퇴장이 선언되자 당시 주장이었던 박정태는 “이런 상황에선 경기를 할 수 없다”며 롯데 선수들에게 철수를 지시했다. 몰수패를 당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박정태는 코치진의 만류로 선수들과 다시 그라운드로 돌아왔다. 경기 재개에 앞서 박정태는 선수들에게 말했다.
 
  “오늘은 무조건 이겨야 한다. 알긋나? 안 그러면 다 지기삔다.”
 
  롯데는 기적처럼 경기를 뒤집었다.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지만, 한화 이글스에 고배를 마셨다. 박정태는 당시 선수로서도 최정점을 찍었다. 1999시즌 박정태는 타율 3할2푼9리, 11홈런, 83타점을 기록했다. 박정태는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뛰었던 추신수(현 SSG 랜더스)의 외삼촌이기도 하다. 추신수는 박정태를 동경하며 초등학교 3학년 때 야구를 시작했다. 박정태는 일명 ‘흔들타법’으로 유명했다.
 
 
  ‘조선의 4번 타자’의 고향은 부산
 
2022년 8월 31일,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와 키움 히어로즈 경기에서 이대호가 1타점 적시타를 날리고 있다. 사진=뉴시스
  ‘조선의 4번 타자’ 이대호는 경남고 시절 투수로 더 유명했다. 1998년에는 팀의 에이스 투수로 활약하며 1998년 청룡기와 봉황기 우승을 이끌었다. 2001년 롯데의 2차 1라운드 지명을 받은 이대호는 계약금 2억1000만원을 받을 만큼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입단 직후 어깨 통증에 시달렸던 이대호는 투수에서 타자로 전향했다. 이대호는 2006년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하며 이름 석 자를 알리기 시작했다. 2010년 사상 첫 타격 7관왕 등극과 9경기 연속 홈런 신기록을 세우며 국내 최고의 타자로 명성을 떨쳤다.
 
  이대호는 일본 프로야구와 메이저리그에서도 활약했다. 2012~2013시즌 오릭스 버팔로스 소속으로 뛰었고, 이후 소프트뱅크로 이적해 2014~2015시즌에 활약했다. NPB 통산 성적은 570경기 타율 2할9푼3리, 622안타, 98홈런, 348타점이다. 소프트뱅크에서 뛰던 두 번째 시즌인 2015년에는 31홈런, 98타점을 기록했다. 상위권 성적을 냈던 이대호는 2015시즌을 마치고 메이저리그 도전을 선언했고, 시애틀 매리너스에서 2016시즌을 보낸 후 친정팀 롯데 자이언츠로 복귀했다. 이대호는 끝내 평생소원이었던 한국시리즈 무대를 밟지 못했다.
 
  4명의 슈퍼스타 외에도 롯데가 배출한 스타들은 즐비하다. 고(故) 유두열, 김용희, 김용철 등 1984년 한국시리즈 우승의 주역부터 1992년 우승을 이끈 고(故) 박동희가 대표적이다. 1999년 한국시리즈 진출을 이끌었던 마해영, 주형광 등도 있고, 2005년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한 팀에서 배출한 최초의 MVP인 손민한부터 강민호, 송승준, 손아섭, 전준우, 황재균 등이 있다,
 
 
  부산시, 2029 개장 목표로 사직구장 재건축
 
2029년 개장 예정인 사직야구장 조감도.
  사직야구장은 스타들의 땀과 혼이 깃든 곳이다 . 사직구장이 전용 야구장으로 사용된 것은 2008년부터였다. 개·보수 공사를 통해 종합운동장에서 전용 야구장으로 바뀌고 나서도 사직구장은 근본적인 노후화로 크고 작은 공사가 끊이지 않았다. 부산시는 총사업비 2344억원을 투자해, 2029년 개장을 목표로 사직야구장을 재건축한다. 복합스포츠 문화 공간으로 활용될 사직야구장은 관중의 안락한 편의시설을 갖추고, 햇빛으로 경기 관람에 방해되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구장의 방향을 변경했다. 전체 면적 중 8.8%는 시민을 위한 공간으로 조성된다.
 
 
  대우 로얄즈의 추억
 
  부산에서는 축구도 인기가 많았다. 부산 아이파크의 전신(前身)인 대우 로얄즈가 K리그 ‘최강’으로 군림했기 때문이다. 대우 로얄즈는 1983년 한국 프로축구 슈퍼리그에 원년 멤버로 참가, 4차례의 리그 우승을 이뤄냈다. 3년 뒤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최정상에 섰다. 또 1991년에는 K리그 21경기 연속 무패 행진을 펼쳤었다. 로얄즈의 간판은 김주성이다. 그는 로얄즈에 입단한 1987년부터 1999년까지 255경기 35골을 넣으며 팀에 공헌했다. 입단 첫해 김주성은 팀을 우승으로 이끄는 데 기여하며 신인선수상을 받았다. 김주성의 별명은 ‘야생마’였다. 폭발적인 질주력, 돌파 능력은 마치 야생마를 연상케 했고 트레이드 마크였던 긴 머리의 그를 ‘아시아의 삼손’이라 부르기도 했다.
 

  축구 명가 대우 로얄즈의 마지막을 장식한 스타는 말총머리의 안정환이다. 안정환은 몸싸움에 약한 듯하면서도 요리조리 뚫고 나가는 드리블이 무기였다. 2000년 대우 로얄즈를 인수한 현대산업개발은 2005년 ‘부산 아이파크’로 구단 명칭을 바꾸고 명가 부활을 노렸다. 하지만 1부 리그에서 고만고만한 성적을 내다 10년 만에 2부 리그로 떨어졌다. 그렇게 강등된 아이파크는 2019년 시즌까지 ‘2부 리그 강팀’ 구단으로 전락했다. 2020년 아이파크가 5년 만에 1부 리그로 승격하자 ‘축구 명가 귀환’에 팬들의 관심이 쏠렸지만, 1년 만에 2부 리그로 ‘귀환’해버렸다. 부산의 축구 인기가 예전 같지 않은 이유다.
 
 
  ‘허웅 경기 예매는 하늘의 별 따기’
 
농구선수 허웅. 사진=뉴시스
  축구의 빈자리는 농구가 채울 전망이다. KCC는 10월 개막하는 2023-2024시즌부터 팀 명 ‘부산 KCC 이지스’로 새롭게 출발한다.
 
  KCC는 부산을 연고로 하는 네 번째 프로 농구팀이다. 1997년 기아 엔터프라이즈가 부산에서 창단해 우승을 거머쥔 뒤 2001년 현대모비스에 인수되면서 울산으로 떠났다. 2년 공백 후 여수 코리아텐더 푸르미가 2003년 부산에 입성했다. 팀 이름을 부산 코리아텐더 맥스텐으로 바꾸고 맞이한 2003-2004시즌이었지만 1개월 만에 KTF에 매각되면서 부산 KTF 매직윙스(현 KT 소닉붐)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그러고 2009년 팀 이름을 KT 소닉붐으로 바꾸고 18년 동안 부산에서 뛰다가 2021-2022시즌을 앞두고 수원으로 이전했다.
 
  부산은 ‘야구의 도시’로 롯데 자이언츠가 인기를 누리지만 우승은 1992년이 마지막이다. KBL(한국농구연맹) 최고 인기 팀 KCC가 온다면 지역 스포츠 열기에도 호재가 될 전망이다. 이상민 코치와 최준용, 이승현, 허웅, 귀화 선수 라건아 등 스타 선수가 많다. 특히 ‘KBL 아이돌’ 허웅은 프로 농구를 대표하는 스타다. 전국 어디를 가든 그의 경기에 여성 팬들이 몰리고 있다. ‘허웅 경기 예매는 하늘의 별 따기’라는 말도 나온다. 원정경기서 홈팬보다 허웅 팬이 더 많은 광경도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부산 KCC 이지스는 올 시즌 가장 주목되는 팀이다. KCC는 막강한 전력이지만, 세부적 약점이 존재한다. 핵심 주전들이 대부분 새롭게 손발을 맞춘다. 비시즌 공수 조직력을 어떻게 갖추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이승현, 최준용, 송교창, 허웅의 롤 분배와 로테이션도 신경 써야 한다. KCC 전창진 감독은 “(우리가) 2강은 아닌 것 같다. 나머지 팀들도 만만치 않다. LG는 지난 시즌 상당히 강했고, KT는 허훈이 돌아온다. DB도 선수 구성만 놓고 본다면 상당히 탄탄하다”며 “우리가 공수에서 상승세를 탄다면 그 과정에서 팀이 상당히 탄탄해질 수 있다. 반면, 초반 조직력을 살리지 못한다면 고전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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