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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수기

1년에 1000km 달리는 60대 은퇴 기자의 달리기 예찬

자존감 약해지는 50대 이상에게 특히 좋아

글 : 고기완  《한국경제신문》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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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8월부터는 산을 달리는 트레일런 입문… 지난 4월 대회에서는 22km 완주
⊙ ▲일단 시작하라 ▲계획을 세우고 달리기를 하라 ▲대회에 한두 번 참가하라
⊙ 4년 전 “아빠, 다리 너무 가늘어요”라는 아들의 말에 충격… 10km 달리기 대회 출전 제안받고 입문
⊙ 하체, 허리, 척추, 목근육 강해지면서 뻐근함 사라지고 중성지방·콜레스테롤 수치 정상화
⊙ 아내도 함께 달리면서 부부 사이도 좋아져

高基完
1963년생. 동국대 사회학과 졸업 / 《한국경제신문》 사회부장, 한경경제연구소 연구위원(부국장대우) 역임. 2023년 6월 정년퇴직 후 현재 1인 매체 뉴스크라시(www.newscracy.com) 운영
지난 4월 29일 열린 ‘코리아 50K 트레일런 대회’에 출전한 필자가 내리막 코스를 뛰고 있다.
  2019년 5월과 11월은 내 일기장에 위대한 달(月)로 기록돼 있다. 인류는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한 1969년 7월을 경이적인 달로 기록하고 기억하지만, 내게 있어 2019년 5월과 11월은 이에 못지않은 달이다. 그때를 떠올리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그해 5월 나는 처음으로 마라톤 대회에 출전해 10km를 뛰었다. 11월에는 21km(하프 마라톤)를 완주해냈다. 아폴로 11호가 날아간 38만km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달리기를 싫어했던(무릎 관절이 상할까 봐) 내게 10km와 21km는 지구와 태양만큼 먼 거리였다. 1989년 한국경제신문사 기자로 입사한 이래 내 사전(辭典)에 달리기 혹은 러닝(running)은 없는 단어였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난 지금 나는 달리기 마니아가 되어 있다. 뛴 거리를 마일리지처럼 쌓기 시작한 2020년 1월부터 지금까지 3600km 이상 달렸다. 매년 1000km 달리기를 실천한 결과물이다. 2020년 1000km, 2021년 1000km, 2022년 1000km는 달성했다. 올해도 1000km를 향해 질주하는 중이다. 이미 600km를 뛰었으니 4000km 고지(高地)는 점령되리라.
 
 
  56세 때 만난 달리기
 
  나는 비교적 늦은 나이인 56세 때 달리기를 만났다. 올해 60세가 되었으니 4년 경력자다. 달리기 입문(入門)은 2019년 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1월 첫 주 토요일 늦잠을 자고 있었다. 큰아들이 잠을 자고 있는 내 다리를 만지면서 이렇게 말했다.
 
  “아빠, 식사하세요. 근데 다리가 너무 가늘어요. 운동 좀 하세요. 종아리와 허벅지에 근육이 하나도 없어요. 다리근육이 빠지면 병이 찾아온다고 해요.”
 
  “응 알았어. 나 좀 더 자자.”
 
  아들의 지적에 건성건성 답한 나는 아들이 나간 뒤 두 다리를 들어 보았다.
 
  “그렇게 가는가?”
 

  아들이 진단한 대로 두 다리에는 만져볼 만한 근육이 없었다. 종아리는 유통기한이 지나 뭉그러진 단무지 같았고, 허벅지는 노지(露地)에서 썩고 있는 겨울 배추와 비슷했다. 상체와 하체를 받쳐주는 엉덩이 양옆 대퇴부는 움푹 패 있었다. 두 다리에 힘을 꽉 줘보았다. 순간 쥐가 났다.
 
  “으악. 아이고!”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고, 큰아들이 방으로 뛰어들어왔다. 1990년대 말 인기를 끌었던 TV시트콤 〈순풍산부인과〉의 한 장면 같았다.
 
  무엇인가 해야 했다. 당장 사내(社內) 헬스장에 등록했다. 월(月) 2만원. 헬스장은 새해 결심자로 바글바글했다. 살을 빼자, 근육을 키우자는 사람들이었다.
 
  독하게 마음을 먹었다. “담배는 20세기 문화다”고 생각해 1999년 12월 31일 단번에 끊어버린 나다. 1차 목표를 다리근육 강화에 두었다. 상체는 나중에. 한 달 동안 열심히 했다. 종아리근육, 넙다리뒤근육(햄스트링), 넙다리네갈래근(허벅지 옆앞근육)에 힘이 붙기 시작했다.
 
 
  달리기를 시작하다
 
필자가 달리기를 즐기는 중랑천길. 필자는 이 길을 ‘미시시피길’이라고 부른다.
  2월이 끝날 때쯤 운명(?)을 바꿔놓은 귀인(貴人)을 동쪽인가, 서쪽에서 만났다. 평소 눈인사를 나누는 사이였지만 말을 섞어본 적이 없는 같은 회사 직원 중 한 분이 내게 대뜸 제안을 했다.
 
  “마라톤 대회에 함께 나가보지 않겠습니까?”
 
  바로 손사래를 쳤다.
 
  “제가요? 에이, 저는 뛰는 것을 싫어해서 트레드밀(Treadmill·달리기 기구)도 거의 사용하지 않는데요.”
 
  제안은 고맙지만 사양하겠다는 완곡한 거절이었다. 그는 충분히 뛸 수 있다고 했다.
 
  “꾸준히 운동하셨으니 뛸 수 있을 겁니다.”
 
  꾸준히 운동했다는 말에 팔랑귀가 된 나는 되물었다.
 
  “얼마나 달리는 건데요?”
 
  “10km요.”
 
  “얼마요? 1km도 못 뛰는데, 10km요? 5km도 아니고 10km 뛰면 저는 죽을 겁니다.”
 
  그는 일단 나가보자고 재촉했다. 56세. 늦은 나이에 엉뚱한 짓을 하면 무릎뼈가 상한다고 생각한 나는 거듭 사양의 뜻을 전했다. 그는 며칠 동안 계속해서 대회에 나가자고 했다. 어느 순간 내 대답은 달라졌다.
 
  “그 대회 날이 언제인데요?”
 
  “5월 중순이요. 지금부터 트레드밀에서 연습하면 됩니다. 1km부터 3, 5, 7, 10으로 늘려가면 가능합니다. 대회에 나간다고 결정하면 제가 참가비를 대겠습니다.”
 
  2개월 동안 꾸준히 운동을 한 나의 대답은 부정에서 긍정으로 바뀌었다.
 
  3월, 달리기를 시작했다. 실내에서 뛰는 트레드밀은 내게 맞지 않았다. 대안은 미시시피(나는 중랑천을 미시시피라고 부른다) 달리기였다. 실내보다 실외 러닝이 체질에 잘 맞았다. 1km를 천천히 뛰어보았다. 3월의 천변(川邊). 차가운 바람이 지배적이었으나 냉기는 시원함으로 다가왔다. 거리를 조금씩 늘려나갔다. 5km를 뛸 수 있을까? 50대 후반기에 접어든 내게 5km는 정말 긴 거리였다. 지금은 엎드리면 코 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지만 당시엔 ‘한라에서 백두까지’였다. 첫 5km는 걷기와 뛰기를 반복했다. 이틀에 한 번꼴로 5km를 반복해서 훈련했다. 3월이 끝날 때쯤 걷기 없이 35분대로 완주(完走)했다. 45분 이상 걸리던 5km였다.
 
  10km는 5km와 완전히 다른 벽이었다. 연습만이 살길이었다. 나는 5km를 넘어 6, 7, 8, 9km를 차례로 정복했다. 개인적으로 등반가 엄홍길씨의 세계 최고봉 16좌 정복에 필적하는 쾌거(?)였다. 그러고 4월 말. 나는 드디어 쉬지 않고 10km를 달렸다. 서울 노원구 상계교에서 출발해 세월교~노원교~상도교~호장교~장암 아일랜드캐슬(의정부 방면)을 돌아오는 코스. 4월 한 달 동안 10km를 두 번 더 뛰었다. 최고 기록은 58분. 마(魔)의 60분 벽을 깼다. 개인 최고기록이었다.
 
 
  생애 첫 10km 대회 출전
 
달리기를 3년 이상 꾸준히 한 결과, 가늘었던 필자의 다리가 남들에게 자랑할 수 있을 만큼 좋게 변했다.
  나는 달리기를 권했던 귀인에게 준비됐다고 알렸고, 그해 5월 중순 주말 처음으로 마라톤 대회 10km 출발선에 섰다. 서울 상암축구장 앞에서 출발해 한강 둔치로 나간 뒤 행주산성 방향으로 가다 반환점을 돌아오는 코스였다. ‘머리를 올리러’ 간 나는 구름 같은 러너들 속에서 그를 놓치고 말았다. 가장 느리게 뛸 것으로 보이는 여성의 뒤를 따라가는 작전을 세웠다. 아뿔싸! 그녀는 초보가 아니었다. 무작정 따라가면 된다고 생각했다가 오버페이스에 걸렸고, 반환점을 돌기 전에 다리가 굳기 시작했다.
 
  “완주할 수 있을까? 걷지는 말자. 체면이 있지.”
 
  이를 악물고 뛰었다. 둔치와 상암을 연결하는 오버 브리지 경사는 살인적이었다. 내려갈 땐 천국이었으나 올라올 땐 지옥이었다. 낮은 강도로 쥐가 올라왔다. 종아리를 꼬집고 때렸다. 드디어 골인~. 나는 그대로 쓰러졌다. 이날 기록은 비밀이다. 완주 메달을 목에 걸고 만세를 불렀던 기억이 새롭다. 이날 나는 귀인으로부터 또 다른 제안을 받았다.
 
  “11월 하프 마라톤에 나갑시다.”
 
  10km 뛰는 데도 쥐가 났는데 21km라니. 나는 답을 하지 않았고 집으로 돌아와 완전히 뻗어버렸다.
 
  이후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나는 어느새 미시시피를 즐겨 뛰는 러너가 되어 있었다. 5월 말에서 6월 초로 넘어갈 무렵, 큰아들을 앞에 앉혀놓고 물어보았다.
 
  “아빠 다리가 지금도 그러니? 얇아? 아니지? 변했지? 이거 봐라. 만져 봐.”
 
  나는 다리에 힘을 빡 주고 아들 손을 잡아다 댔다.
 
  “우와. 아빠! 다리가 완전히 달라졌어요. 와! 잔근육. 종아리에 하트 근육이 생겼어요. 무릎을 감싸는 근육도, 허벅지근육도 짱입니다.”
 
  나는 둘째 아들과 아내도 불러서 뽐냈다. 두 다리는 하프 마라톤을 뛴 11월 이후엔 더 멋지게 변해 있을 터였다. 나는 귀인에게 “21km 예스”를 통보했다.
 
 
  하프 마라톤을 뛴다고?
 
필자는 2019년 11월 1일 중소기업중앙회 주최 하프 마라톤 대회에 출전, 완주했다.
  21km는 10km와 완전히 다른 수준이었다. 거리는 두 배지만 에너지는 네 배 더 드는 듯했다. 연습에 집중했다. 11km, 12km, 13km, 14km를 차례로 정복했다. 하지만 15km는 실패했다. 다리에 쥐가 나는 바람에 막판 1.5km는 걸어야만 했다. 수분을 섭취하지 않은 것이 실수였다. 아마추어 러너의 경우, 10km 이상의 장거리 러닝에서 수분 섭취는 필수였다. 무지(無知)의 대가(代價)였다.
 
  11월, 드디어 하프 마라톤 출발선에 섰다. 서울시청 광장을 출발해 청계천~한양대~금호동 응봉산을 돌아오는 21km. 6, 7, 8, 9, 10월 땀 흘리며 운동한 성과를 내야 했다. 10km 반환점을 km당 6분 속도로 돌았다. 관건은 후반. 15km를 넘자 묘하게 힘이 났다. ‘러너스 하이’ 포인트가 왔음을 직감했다. 운동력이 1차로 떨어질 때쯤 우리 몸은 한계를 견디기 위해 호르몬을 분비한다. 이날 나는 이것을 처음 경험했다. 몸은 더 가볍게 느껴졌고, 다리는 더 잘 움직였다. 호흡도 매우 안정적이었다. 몸이 붕 뜨는 듯했다.
 
  마지막 2km는 악으로, 깡으로 뛰었다. 2시간 페이스를 유지한 나는 “힘이 남은 분은 이제부터 뛰쳐나가도 좋다”는 페이스 메이커의 말에 질주를 시작했다. 외국 여성이 앞으로 뛰쳐나가기에 결사적으로 따라붙었다. 드디어 골인~. 기록은 1시간 57분 20초. 첫 하프 마라톤에서 2시간 이내로 골인했다. 잘 달리는 사람에게 이것은 그저 그런 기록이지만, 첫 도전인 내게 이것은 기적 같은 기록이었다.
 
  2시간가량을 쉬지 않고 달리기. 불가능하게 보였던 것을 성취했다는 기쁨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다. 순간 울컥했다.
 
 
  이제 과거의 몸이 아니다
 
  달리기는 우리 몸 건강에 아주 좋은 운동이다.
 
  첫째, 몸이 변한다. 내 현재 몸은 과거의 몸이 아니다. 달리기에 적합한 몸으로 체형이 완전히 바뀌었다. 매주 20~30km를 뛴 결과, 하체가 강해졌다. 종아리, 허벅지, 대퇴부 근육이 보기 좋게 자리를 잡았다. 근육이 세로로 길게 갈라져 누가 봐도 좀 뛴 다리로 보인다. 복부에 낀 지방이 사라져 가벼움을 느낀다. 잦은 팔 움직임 덕분인지 상체가 당당해졌다. 또한 허리와 척추에 힘이 생겼다. 선 자세와 걷는 자세가 달라졌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목근육이 강해진 덕분인지 뻐근함과 뻣뻣함이 없어졌다. 뛰기 이전 지하철 계단을 오르내릴 때 느끼곤 했던 무릎의 찌릿함도 사라졌다. 이젠 계단을 뛰어오를 정도다. 무엇보다 심폐(心肺) 기능이 좋아졌다는 것을 느낀다.
 
  둘째, 달리기는 ‘진화 부적응적 문제’를 해소하는 데 좋다. 나와 마찬가지로 현대인은 다리를 쓸 기회를 많이 잃어버렸다. 뛰거나 걸어야 할 거리를 버스, 승용차, 지하철, 심지어 킥보드로 이동한다. 계단 대신 에스컬레이터나 엘리베이터를 타려 한다.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은 유사 이래 가장 길다. 《움직임의 힘(The Joy of Movement)》의 저자 켈리 맥고니걸은 “움직임, 즉 운동은 인간에게 보내는 러브레터다”고 표현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오늘날 장거리 달리기는 주로 운동과 오락의 한 형태지만, 그 뿌리는 사람속(屬)의 기원만큼이나 오래됐는지 모른다”고 한 고(古)인류학자 대니얼 리버먼의 말을 소개한다. “달릴 때 행복을 느끼는 신경화학적 상태가 사냥과 채집으로 살아가야 했던 초기 인류에게 주어진 보상이었다”는 대목에 나 역시 동의한다. 이 책은 현대인이 그것을 잃어버렸다고 강조한다. 또한 “우리가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라고 부르는 것이 실은 우리 조상들을 서로 협력하게 하고 사냥의 전리품을 나눠 먹도록 부추겼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뛰기 위해 태어난다(We are born to run)”는 말도 있다. 인류가 ‘털 없는 유인원’이 됐을 때 그 목적은 긴 거리를 뛰는 데 있다고 한다. 해부학적으로, 인간은 다른 영장류(靈長類)와 비교해 피로를 견디는 지근섬유(遲筋纖維)가 많다. 이것은 미토콘드리아가 많아 산소를 연료로 더 많이 소비할 수 있도록 해준다. 인간은 또 항인대(項靭帶)가 있는 유일한 영장류여서 달릴 때 중심을 기가 막히게 잡는다. 항인대는 두개골 밑과 척추를 고정해주는 강한 구조물이다.
 
 
  어떤 알약도 안 먹어
 
  셋째, 달리기는 심혈관계(心血管系) 질환 개선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탄자니아 하드자족(族)에게서는 현대사회에 만연한 심혈관계 질환이 보이지 않는다는 인류학자 허먼 폰처의 연구 결과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연구팀은 “동일한 연령대의 미국인과 비교했을 때 하드자족은 혈압이 낮고, 콜레스테롤과 트리글리세리드, C-반응성 단백질 같은, 향후 심장마비를 예측하는 척도인 혈류 내 염증 수치도 매우 낮았다”고 발표한 바 있다. 현대인이 숲속 부족처럼, 먼 조상처럼 살 수는 없지만, 달리기 위해 태어난 인류의 진화 측면에서 주목해야 할 포인트는 존재하는 것이다. 나의 달리기 경험은 이런 설명을 받아들이게 한다.
 
  나는 지금 어떤 알약도 먹지 않는다. 이전엔 중성지방과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다는 진단과 함께 처방을 받곤 했으나 달리기를 한 이후 여러 대사(代謝) 질환 수치가 호전돼 정상 범위에 들어와 있다. 개인 차이가 있겠지만, 뛰는 것만으로도 웬만한 건강 문제는 공략 범위 안에 둘 수 있는 것이다. 운동화 신고, 운동복 입고, 땀을 흘리는 것만으로 건강을 챙길 수 있는 게 달리기다. 돈도 별로 안 든다. 일관성과 집중력이라는 비(非)금전적 계좌만 두둑하면 된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싼다
 
2022년 어느 여름날 10km 달리기에 앞서 중랑천 트랙에 선 필자. 군살이 하나도 없는 몸상태를 보이고 있다.
  달리기를 권하는 네 번째 이유는 어떤 연령층이든 달리기가 자기 주도력과 자존감을 높여준다는 데 있다. 특히 50대 중반 이후 사람들은 주도력과 자존감 하락으로 무엇인가에 쫓기는 듯한 느낌을 갖기 쉬운데, 달리기는 좋은 처방이 될 수 있다. 자존감은 자기 주도력이 발휘될 때 우뚝 솟는 경향이 있다. 달리기는 온전히 자기 몸으로, 자기 의지로, 자기 계획하에 하는 1인칭 운동이다. 한 주, 한 달, 6개월, 4계절 달리기를 계획하고 실천하고 성취하면 허리가 바로 서듯이 꺾이는 듯한 심리에 새 근육이 붙는다.
 
  달리기가 우울증, 불면증, 열등감을 치유한다는 분석은 당연한 결과다. 여러 연구 결과에 따르면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는 사람이 운동을 일주일 동안 안 하면 기분이 나빠지고 심하면 우울증과 불면증, 열등감까지 느낀다고 한다. 이 말을 뒤집으면, 이런 심리 상태를 달리기와 같은 운동으로 치유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이것은 호르몬 분비와 관계가 있다. 엔도카나비노이드(endo-cannabinoids)다. 이것은 통증을 가라앉히고 기분을 고양시켜주는데 육체적 수고를 보상하기 위해 나온다고 한다. 엔도르핀과 비슷하다. 호흡이 가빠질 정도로 달리면 엔도카나비노이드가 평소의 세 배 이상 분비되고 이 맛을 즐기려는 러너들은 자주 뛰게 된다. 현대 인류는 ‘뇌수용체-엔도카나비노이드-도파민-낙관’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를 스스로 끊으려 한다는 지적은 여러 점에서 옳다.
 
  달리기가 가진 여러 좋은 점을 길게 썼는데, 한마디로 정리하면, 달리기를 하면 잘 먹고 잘 자고 잘 싼다. 인생삼락(人生三樂)이 뭐 별것 있나? 잘 뛰니 잘 먹고, 잘 먹으니 잘 자고, 잘 자니 잘 배설하는 신체 리듬이 자리를 잡는다. 몸이 무겁거나 속이 더부룩하거나 머릿속이 복잡할 때 밖으로 나가서 가볍게 뛰어보자. 1km, 2km 뛰다 보면 피가 돌고 땀이 나면서 몸과 마음이 회복된다.
 
 
  이제 아내도 달린다
 
필자는 ‘코리아 50K 트레일런 대회’ 출전을 앞두고 경기도 의정부 사패산 정상 부근에서 맹훈련을 했다.
  달리기는 남다른 선물을 하나 더 선사했다. 달리기가 아내로 전이(轉移)되었다는 점이다. 아내도 달리기를 시작했다. 나의 성공이 자극제가 됐다. 1km를 살살 뛰고 1km를 걷더니 이제 5km와 10km를 거뜬히 뛴다. 급격하게 불었던 몸무게(한때 64kg)는 52~53kg로 줄었다. 우리는 러닝 부부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아무 때나 한 사람이 “나갑시다”고 하면 같이 5km나 10km를 뛰고 온다. 달리기를 함께한 이후 우리는 더 가까워졌다. 호흡을 맞추면서 미시시피 강변을 나란히 뛰는 부부의 모습을 상상해보시라. 아내는 요즘 달리기를 넘어 헬스장에서 거의 매일 2시간 이상을 보낸다. 턱걸이를 아홉 개나 한다. 인위적인 다이어트는 안 한다.
 
  달리면 시인, 화가, 철학자가 된다. 바깥에서 달리면 주변 환경이 오감(五感)을 자극한다. 4계절의 햇볕, 바람, 소리, 향이 다르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고, 봄꽃, 여름꽃, 가을꽃, 겨울꽃(눈꽃)이 만들어내는 색의 향연을 만끽할 수 있다. 달리다 보면 김소월의 시, 카뮈의 태양, 사르트르의 실존, 소크라테스의 한마디,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교향곡, 모네의 수련이 떠오른다. 내가 “달리기는 움직이는 철학”이라고 규정하는 이유다.
 
  달리기를 어려워하는 독자에게 선배로서 세 가지를 조언해주고 싶다. (1)일단 시작하라 (2)계획을 세우고 달리기를 하라 (3)대회에 한두 번 참가하라.
 
  나도 일단 도전하고 1년 러닝 계획을 세웠다. 첫해인 2020년 나는 ‘1년 600km 뛰기’ 계획을 세웠다. 주당 10km, 52주 1년 동안 뛰고(520km) 모자란 거리는 분기별로 네 번 20km씩 뛰어 600km를 달렸다. 2020년 1월 4일 시작한 일명 ‘미시시피 600’은 계획보다 일찍 달성되었다. 여기에 400km를 더해 1년 1000km 달리기로 계획을 바꿨다. 2021년 1000km, 2022년 1000km를 달성했고 누적 4000km를 향해 순항하고 있다.
 
  대회에 나가면 평소 접하기 어려운 강한 운동 열기를 느끼게 된다. 달리는 사람들 사이에 들어가면 잃어버린 생동감도 되찾게 된다. 상반기, 하반기에 각 두 번씩 참가하면 좋다. 춘천마라톤 대회, 서울하프마라톤 대회는 대표적인 행사다.
 
 
  새로운 도전 트레일런
 
필자는 4월 29일 ‘코리아 50K 트레일런 대회’ 22km 종목에 출전, 완주했다.
  작년 9월부터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트레일런(trail-run) 입문. 트레일런은 평지를 뛰는 마라톤과 달리, 산을 뛰어오르고 능선을 가로지르고, 내리막길을 뛰는 신종 장거리 달리기다. 우리나라에서는 10년 전부터 젊은이들 사이에서 알려졌으나 요즘 핫(hot)한 운동으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중이다.
 
  작년 9월 아내와 함께 청와대 옆~경복궁 한 바퀴~삼청동~삼청공원~북악산~칠궁을 도는 10km 트레일런 대회에 처음으로 참가했다. 이 대회를 준비하기 위해 서울 불암산, 수락산, 도봉산, 북한산을 걸으며 뛰며 맹훈련을 했다. 산속을 뛰는 재미는 평지를 뛰는 재미와 완전 다르다. 트레일런은 다리근육과 정신력을 극한 상태로 몰아넣는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UTMB 대회의 거리는 산길 170km다. 국내에선 2월부터 11월까지 대회가 끊이지 않고 열린다. 트레일런 이야기를 담은 유튜브 콘텐츠는 차고 넘친다.
 
  나는 지난 4월 29일 ‘코리아 50K 트레일런 대회’ 22km 종목에 출전해 완주했다. 동두천 왕봉산, 국사봉, 어등산을 뛰는 험난한 코스였다. 밤새 비가 내린 탓에 코스는 진흙탕이 되었고, 미끄러지고, 넘어졌지만 포기하지 않고 골인해 완주 메달을 획득했다. 나와 같은 연령대 참가자 중 4등을 했다. 몇 명이 참가했는지는 비밀이다. 마지막 오르막과 계단은 지옥이었지만 골인 뒤 천국을 느꼈다.
 
  에미넴의 노래 ‘Till I collapse’가 없었다면 나는 무너졌을지 모른다. 달릴 때 들을 만한 곡으로 몇 개를 소개하겠다. 시아(Sia)의 ‘Unstoppable’, 트래비스 바커의 ‘Let’s Go’, 스텔라 음왕기의 ‘Work’, 토비 맥키한의 ‘Move’, 하바나 브라운의 ‘Warrior’를 나는 즐겨 듣는다.
 
  나는 오는 10월 울산 울주에서 열리는 ‘울주 나인피크’ 대회에도 참가 신청을 했다. 9개 봉우리를 오르내리는 극한의 트레일런이다. 나는 이 중 2개 피크만 뛰는 종목(길이 28km)에 출전한다. 부담이 큰 도전이지만 완주할 계획이다.
 
 
  기적은 시작하는 데서 온다
 
  달리기를 가르치는 강사인 존 빙엄(John Bingham)은 “기적은 내가 완주했다는 게 아니라 내가 용기를 내서 시작했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달리기에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이 적지 않다. 달리면 무릎 관절이 상한다는 두려움이다. 심장 문제도 거론된다. 개인 차이가 있어 조심해야 하는 사람도 존재한다. 하지만 몸의 상태가 허락된다면 달리기를 시작하기를 권한다. 처음에 달리면 대개 무릎이 아프다. 오랫동안 뛰지 않아 근육과 관절이 달리기에 익숙하지 않은 탓이 크다. 기록 욕심, 속도 욕심을 내지 않고 생활 달리기를 한다면, 중년 이후 건강 문제를 관리할 수 있다.
 
  직장 생활에 지쳐 운동하기 싫다는 사람도 있다. 달리면 몸에 힘이 생기고 심리 상태도 안정돼 직장 생활에 더 집중할 수 있다. 시간이 없다는 사람도 있다. 운동은 시간을 내서 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더 오래 더 멀리 달리는 자신을 발견할 때가 분명히 온다. 그때 당신은 ‘과거의 당신’이 아니다. 트레일런을 하면서 이런 말을 자주 듣는다.
 
  “어머, 아저씨 멋져요.”
 
  “아, 예. 고맙습니다.”
 

  기분이 더 좋아진다. 물통을 꽂은 베스트(조끼)를 입고 산길을 달리는 나의 모습. 호흡이 거칠어지고 몸 또한 지치지만 마음은 강해진다.
 
  “나는 달린다, 고로 존재한다.”
 
  나는 달리는 시인이요 화가요 철학자다. 독자 여러분, 특히 은퇴를 앞둔 여러분! 오늘 달리기를 시작하기를 권한다. 달리기는 투자다. 일관성과 집중력만 투입하면 수익률은 200~300% 이상 된다.
 
 
  런 투어
 
  나는 지난 6월 《한국경제신문》 은퇴를 앞두고 ‘은퇴 여행’을 기획해서 다녀왔다. 서울을 떠나 고향인 대구 경북대학교 인근 산격동과 초등학교(문성국민학교)를 둘러보고, 진해, 경주, 포항, 영덕, 삼척을 여행한 뒤 돌아왔다.
 
  3박 4일 동안 현지에서 매일 아침 10km를 뛰었다. 경북대에서 문성초등학교까지 왕복 조깅을 하면서 산 넘고 물 건너 학교에 다니던 어린 시절을 회상할 수 있었다. 초등학교 정문에 서서 운동장을 바라보았다. 먼지를 뒤집어쓰면서 함께 놀았던 친구들이 손짓하는 듯했다. 경주 대릉원 일대와 삼척 해변가를 뛰는 기분은 정말 좋았다. 달리기를 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런투어(run-tour)’였음을 자랑해본다. 나는 러니즘(runnism)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가부좌를 틀고 명상(冥想)을 하는 것도 좋지만 움직임, 즉 달리기를 행복의 기본 조건으로 삼는 정신이다. 이런 점에서 나는 ‘러니즘의 창시자’라고 자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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