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인터뷰

이종찬 전 국정원장이 말하는 국정원, 윤석열, 민주당, 한일 관계

“책임질 수 있는 대통령이 여당 당수 해야”

글 : 정광성  월간조선 기자  jgws89@chosun.com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목록
  • 프린트
  • 스크랩
  • 글자 크게
  • 글자 작게
⊙ “文 국정원은 기사회생하지 못할 정도로 파괴돼… 敵 비위 맞추는 정보기관으로 전락”
⊙ “文 정부 시절 국정원에서 ‘中情 최악의 부패 시대인 김형욱 시대에도 이렇게 타락하지 않았다’는 말 돌아”
⊙ “대통령이 실컷 자고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맑은 머리로 집무하는 것이 바람직”
⊙ “민주당, 이재명을 대표로 선출한 것은 큰 실수”
⊙ “한일 관계는 ‘김대중-오부치 선언’ 살펴야. 피해자로서 용서하는 마음이 중요”
⊙ “尹 대통령 아버지 자체가 주관이 뚜렷하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분”

李鍾贊
1936년생. 육사(16기), 서울대 행정대학원 졸업 / 육군 소령 예편, 중앙정보부 기획조정실장, 민정당 창당 발기인, 국회의원(4선), 민정당 원내총무·사무총장, 국회 운영위원장, 정무장관, 민주당 상임고문, 국민회의 부총재, 국정원장 역임 / 現 우당기념관장, 신한대 한민족평화통일연구소 초대 이사장
  최근 국가정보원이 대대적인 인사를 단행했다. 2·3급 간부 100여 명이 보직을 받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 핵심 보직을 맡았던 인사가 다수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문재인 정부 때 임명된 1급 간부 20여 명 전원이 교체된 데 이어 윤석열 정부 출범 6개월여 만에 국정원 간부진 물갈이 인사가 마무리된 것이다. 일각에선 보복성 인사라는 우려가 나온다. 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국정원장을 지냈던 박지원 전 원장은 “인사 학살”이라고 비판한다. 반면 긍정 평가하는 이들도 있다. 국정원의 내부 이야기를 듣고 싶어 이종찬 우당이회영선생교육문화재단 이사장을 찾았다.
 
  이종찬 이사장은 김대중 정부 당시 초대 국정원장을 지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안기부장(국가안전기획부장)으로 임명되어 국정원장으로 물러났다.
 
 
  “몰랐다면 무능, 알았다면 이적 행위”
 
  ― 이번 국정원 인사 어떻게 봅니까.
 
  “문재인 정부 시절 대한민국 정보요원들은 북한을 적(敵)으로 생각지 않고, 이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던 겁니다. 국정원이 변질했다는 얘기죠. 북한하고 싸우려 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북한을 도울 수 있을지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정보기관 요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 DJ 정부 당시에도 그런 분들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그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국정원장 시절, 김정일이 노동당에 내려보낸 비밀 지령문을 입수했습니다. ‘긴장해라. 지금의 평화적 분위기는 통일로 가는 길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다. 서로 상부상조하는 것뿐이다. 무장을 해제하면 안 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요원들에게 그 얘길 하면서 ‘지금 아무리 남북대화를 한다고 해도 우린 딴마음 먹지 말아야 한다. 총을 놓아선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죠.”
 
  ― 문재인 정부가 국정원을 완전히 망가뜨렸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문재인 정부 당시 국정원에 이런 말이 생겼다고 합니다. ‘중앙정보부 최악의 부패 시대인 김형욱 시대에도 이렇게 타락하지 않았다’고요. 문 전 대통령은 국정원을 타락시키고, 기능을 마비시키고, 인사를 문란케 했으며, 국가기밀을 무책임하게 공개했습니다. 사실을 몰랐다면 무능(無能)의 극치이고, 알고도 내버려 뒀다면 분명한 이적(利敵) 행위입니다. 책임을 져야 합니다.”
 
 
  “정보 왜곡기관으로 전락”
 
1998년 5월 안기부 부훈을 “정보는 국력이다”로 바꾼 후 김대중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부훈석 제막식을 가졌다.
  ― 역대 정권과 비교해 어떤 평가를 내릴 수 있나요.
 
  “사실 정보기관을 파괴한 역대 대통령이 두 분 있습니다. 한 분은 국정원을 다시 옛날 중앙정보부로 되돌려 무소불위 권력을 휘두르게 했습니다. 정보도 모르는 시청 공무원을 분수에 맞지 않는 자리에 기용해 정치개입, 이권, 부패의 길로 국정원을 타락시켰습니다.
 
  다음은 문재인 정부로 국정원은 기사회생하지 못할 정도로 파괴됐습니다. 대공(對共)수사를 강화하기는커녕 활동을 제약하고 오히려 뛰어난 수사관이 불이익을 당했다는 것이 중평입니다. 국가 정보 최고의 기밀이 담겨 있는 서버를 정체가 불분명한 이들에게 열람케 하고 죄를 뒤집어씌워 처단했습니다.”
 
  ― 서버를 열람했다면 국가 기밀이 유출된 것 아닙니까.
 
  “국가 기밀이 길가에 쓰레기처럼 공개됐고, 정보기관 기능을 마비시켰습니다. 국정원이 대북첩보 수집기관이 아니라 북한이나 종북 세력의 비위를 맞추는 정보 왜곡기관으로 전락했습니다. 기관의 간부들은 정보기관요원으로 적절치 않은 인물들만 골라 인사했습니다. 심지어 ‘문재인 충복’이란 자가 으스대며 정보기관 소속 건물을 개인 위안소로 만들 정도로 타락했습니다.”
 
  ― 김대중 정부 당시 안기부 개혁을 어떻게 맡게 된 것입니까.
 
  “자세히 설명하자면 우리나라에서 정보기관으로부터 가장 큰 피해를 본 정치인이 누구입니까? 김대중 전 대통령(이하 DJ)일 것입니다. 주변에 많은 분이 DJ에게 안기부를 ‘해외정보처’로 개명하고 조직을 과감하게 축소해서 해외 정보만 담당하게끔 하라고 권고한 것이 사실입니다. DJ도 한때 그런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때 나는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으로 국가 정보의 중요성에 대해 충언했습니다. 좀처럼 양보하지 않는 DJ에게 집요하리만큼 설득했어요. 결과적으로 나에게 국가정보기관 개혁을 맡기더라고요.”
 
  ― 당시 어떤 방향의 개혁을 추진했나요.
 
  “나는 ‘SAVAK(이란 정보기관), No! MOSSAD(이스라엘 정보기관), Yes!’라는 구호 아래 대대적인 개혁을 단행했습니다. 국가정보기관이 흔히 범하기 쉬운 국내 정치개입, 민간기업을 상대로 한 이권운동, 국민사찰, 인권유린 등을 근절시켰죠.”
 
  ― 개혁을 하면서 많은 인원을 감축한 것도 사실 아닙니까.
 
  “당시 한 500명 정도를 감축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아마 ‘해외정보처’로 바뀌었으면 1200명 이상 해고됐을 겁니다. 그리고 당시 IMF 사태로 인하여 정부기구를 축소하라는 것이 방침이었고, 이러저러한 이유로 감축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러나 나는 국가정보기관을 유지했습니다. 그리고 ‘국가정보원’으로 개명하여 정보기관의 위상을 높이고 영어로는 위압적인 기관 냄새가 나는 에이전시(Agency) 대신 국민을 위해 봉사하라는 뜻에서 서비스(Service)로 바꿨습니다. 그래서 NIS, National Intelligence Service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발전하는 추세에 맞추어 모든 정보원에게 PC를 제공해 정보보고 IT 시대를 열었습니다.”
 
 
  ‘대공수사완박’
 
  ― 현재 국정원의 대공수사가 경찰로 넘어갔습니다. 경찰이 잘할 거라 보십니까.
 
  “나는 문재인 정부가 ‘검수완박’ 하기 전 첫 단계로 ‘대공수사완박’을 계획적으로 추진했고, 끝내 실현했다고 평가합니다. 대공수사 기능을 경찰로 넘기는 것은 한마디로 간첩을 잡지 말라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왜냐하면 대공수사는 고도의 기술과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사건이 하루아침에 수사가 종료되는 일은 전무(全無)합니다. 간첩을 잡기란 모래밭에서 바늘 찾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죠. 이런 작업을 몇 년간 지속해 단서를 잡아야 하는데 어떻게 순환보직 하는 경찰이 대공수사를 한단 말인가요?”
 
  ― 경찰 내부에서도 대공수사권이 넘어오는 것을 환영하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아마 그럴 겁니다. 간첩이나 이적 행위를 하는 자들은 쌍수로 환영할 것이고, 결국 주사파들의 희망대로 대공수사는 사라지고, 국정원의 유능한 요원들을 월급이나 타 먹는 돼지로 타락시키려는 음모였다고 생각합니다.”
 
  ― 지금의 국정원을 평가한다면.
 
  “완전히 타락한 채로 윤석열 정부에 인계됐습니다. 문재인 시대 국정원은 본연의 임무를 내버리고 적에 대한 경각심은커녕 오히려 비위를 맞추는 정보기관으로 전락했습니다. 문재인 정권에서처럼 수상한 사람들이 판치는 그런 정보기관이라면 해체가 답입니다. 마비된 서버를 복구하고, 여기에 손을 댄 마수들을 응징하여야 합니다. 조선왕조실록을 임금도 고치지 못한 전통을 살리고 정권이 국정원 기록을 주무르지 못하게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합니다.”
 
  ― 윤석열 정부 6개월이 지났습니다. 어떻게 지켜보았습니까.
 
  “초기에 실수가 많았습니다. 용어도 서투르고, 행동도 자리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이 학습하는 재주가 워낙 출중하니깐 단시일에 극복하고 이제는 다소 원숙하다는 평을 듣게 됐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자제하고 인내하며 포용하는 마음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그동안 윤석열 정부의 잘한 점과 부족했던 점을 꼽는다면.
 
  “윤석열 정부는 국민이 불러낸 정부입니다. DJ와 YS(김영삼 전 대통령)는 일생을 싸워 대통령 자리에 올랐습니다. 반면 윤 대통령은 짧은 시간에 대통령 자리에 올라갔어요. 이를 행운으로 봐서는 안 됩니다. 문재인 정부의 실패한 5년을 지켜본 국민이 ‘도저히 안 되겠다, 이러다가 대한민국호(號)가 침몰한다’는 절박감에서 불러낸 것입니다. 윤 대통령은 한시도 국민적 열망을 잊어선 안 됩니다.”
 
 
  “윤 대통령, 구질구질하게 자라지 않아”
 
2021년 6월 9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서울 중구 남산예장공원 개장식에서 죽마고우의 아버지인 이종찬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건립위원장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조선DB
  ― 부족한 부분 타개할 방법은 뭐라고 보십니까.
 
  “앞서 말했듯이 윤 대통령에게 부족한 점은 만기친람(萬機親覽)하려 한다는 점입니다. 과감하게 장관들에게 일을 맡기라 권하고 싶어요. 다소 부족하고, 못마땅하더라도 장관이 책임감을 느끼게끔 업무를 맡겨야 합니다. 대통령이 머리가 아프고 혼란스러우면 그에 따른 피해가 더 큽니다. 실컷 자고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맑은 머리로 집무하는 것이 국민의 입장에서 더 바람직합니다.”
 
  널리 알려진 이야기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죽마고우가 이철우(李喆雨) 연세대 로스쿨 교수이다. 서울 대광초등학교와 서울대 법대를 함께 다녔다. 이 교수의 부친이 바로 이종찬 이사장. 이 이사장은 아들과 어울렸던 윤 대통령을 유년 시절부터 봐왔고, 부모끼리도 자주 소통하던 사이였다고 한다.
 
  ― 윤석열 대통령을 50년 가까이 봐왔는데 어떤 사람입니까.
 
  “어린 시절부터 구질구질하게 자라지 않았어요. 아마 윤 대통령의 아버지가 외아들 기를 살려주려고 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윤 대통령의 아버지 자체가 주관이 뚜렷하고 불의(不義)와 타협하지 않는 그런 분이십니다. 주변 사람들을 잘 챙기고 굉장히 통솔력이 있는 사람이죠.”
 
  윤기중(尹起重·1931~) 연세대 응용통계학과 명예교수는 연세대 경제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한 뒤 1967년 일본 히토쓰바시대 대학원을 수료했다. 그러나 박사 학위는 없다. 1960~70년대만 하더라도 실력이 뛰어나면 석사 학위만으로도 강단에 설 수 있었다. 또 “간단한 논문을 작성해 다른 대학 소속 교수들에게 심사받아 통과하면 박사를 주던” 관행이 있던 시절이었지만 거부했다고 한다. “그런 식으로 박사가 된들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것이었다.
 
  윤기중 교수는 한국통계학회장과 한국경제학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대한민국 학술원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 윤 대통령의 부친이 일본 문부성 장학생 1호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일수교 직후인 1967년 히토쓰바시대 대학원으로 유학 갔어요. 국내 일부 학자들은 ‘품앗이 박사’를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하지 않았습니다. 석사임에도 굉장히 실력 있는 교수였죠. 아마 윤 대통령의 팔전구기(八顚九起)가 아버지한테서 물려받은 것이 아닌가 싶어요.”
 
  ― 어린 시절 집에도 자주 놀러 왔었나요.
 
  “아들과 친구니 자주 놀러 왔죠. 제 아내와 윤 대통령 어머니가 친분이 있어 자주 왕래했습니다.”
 
 
  “광복회, 근본적으로 바꿔야”
 
  ― 김원웅 광복회장 시절 문제들이 계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솔직히 대한민국 좌파는 좌파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김원웅 전 회장을 추대한 사람들이 누굽니까. ‘진보’ 인사들이에요. 광복회 이름으로 커피전문점 같은 것을 해서 수익을 다 챙긴 것 아닙니까. 정말 추잡스러운 일입니다.”
 
  ― 일련의 사건으로 광복회 이미지가 안 좋아졌습니다.
 
  “그것 때문에 박민식 보훈처장이 고민이 많더라고요. 그런데 광복회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해요. 광복회의 정관이 잘못되어 있습니다. 광복회 회원의 수가 수천 명인데 60명 극소수의 대의원에게 전권을 주었어요. 그들의 손에 회장 선거가 좌우되게 규정돼 있어요. 60명이면 매수가 가능하고, 외부의 영향을 받기가 쉽습니다. 민주적 제도는 아닙니다. 총회나 총회에 준하는 전국적인 약 500명의 대의원이 선출하는 방식이면 매수는 안 됩니다. 선거 거래도 어렵습니다. 이렇게 선출되는 회장이라야 정통성을 갖습니다.”
 
  이종찬 이사장은 질문에 대해 얘기하면서 자신이 육사에 입교할 당시 겪었던 일을 털어놓았다.
 
  “육사 필답시험에 합격하면 구술시험을 봐야 하는데 구술시험을 보려면 정부의 국장급 이상이거나 군 장성의 추천서가 필요했습니다. 저는 아는 사람이 없어 광복군을 하셨던 장군 두 분의 추천서를 받아 갔습니다. 당시 생도대장이 일본군 지원병 출신이었습니다. 생도대장이 제 추천서를 보고 이분들을 어떻게 아느냐고 묻더군요. 사실대로 말하니 ‘너도 소위 독립운동가 가문이냐’면서 소리를 지르더군요. 주눅이 들어 말도 제대로 못 하고 나왔어요. 당시 군 내부는 일본군 지원병 출신들이 대세였고, 광복군은 힘이 없을 때였습니다.”
 
 
  “이재명, 지도자 덕목 갖추지 못해”
 
  ― 한 언론 인터뷰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해 정치인이기 이전에 인간으로서 실패한 사람이라고 평가하셨는데 어떤 의미인가요.
 
  “지도자로서의 덕목을 갖추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성남시장 재직 시만 봐도 형을 정신병원에 가두고, 형수에게 도저히 넘겨버릴 수 없는 ‘쌍욕’을 했는데 그 정도의 인격을 갖고 나라의 지도자가 되겠다고 나선 자체가 국민을 속일 수 있다는 부정한 마음입니다.”
 
  ― 그래도 거대 야당 대표까지 되지 않았습니까.
 
  “민주당이 이재명을 압도적으로 지지해 대표로 선출한 것은 큰 실수입니다. 곧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민주당이 뻔히 대장동, 백현동 비리를 알면서도 그를 선정한 것은 당의 한계입니다. 민주당은 김대중 시대의 당 색깔을 잃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 지사적 풍모가 사라지고 시정잡배가 날뛰는 정당이 돼가고 있습니다. 일시적으로 (국민을) 속일 수는 있어도 영원히는 못 속입니다.”
 
  ― 이재명 대표에 대한 여러 가지 의혹이 해소될 거라 보십니까.
 
  “모든 의혹을 풀고 다시 출발하는 것이 자기의 정치생명을 위해 바람직한 길이라 생각합니다. 이게 민주당을 위해서도 좋은 길입니다. 그런데 이재명은 너무 많은 약속을 하고 너무 쉽게 그 약속을 저버렸습니다. 어떤 경우 아침과 저녁 말이 틀려서 혼선을 주었습니다. 그러니 신뢰를 잃는 게 당연합니다. 그가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국민은 ‘저 말이 언제 바뀌지?’ 이런 의문이 계속된다면 민주당도 피로해질 것입니다. 언제 카멜레온처럼 색이 변할지 알 수가 없습니다.”
 
 
  하토야마 전 총리에게 우당특별상 수여
 
하토야마 유키오(가운데) 전 일본 총리가 2023년 1월 11일 서울 중구 조선호텔에서 ‘우당 특별상’을 받았다. 왼쪽은 부인 미유키 여사, 오른쪽은 이종찬 이사장.
  (재)우당이회영선생교육문화재단과 (사)우당기념사업회(회장 윤형섭)는 지난 2019년부터 우당상과 영석상을 수여하고 있다.
 
  우당상은 우당(友堂) 이회영(李會榮·1867~1932년) 선생의 독립운동 정신을 구현한 이에게, 영석상은 독립운동에 전 재산을 바친 우당의 둘째 형 영석(潁石) 이석영(李石榮·1855~1934년) 선생을 기리기 위해 사회공헌과 봉사활동에 앞장선 기업에 주는 상이다. 대한민국 수립 100주년에 즈음해 3·1문화재단에서 준 상금 5000만원을 종잣돈으로 두 개의 상을 제정했다.
 
  ― 작년 12월 네 번째로 시상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처음은 대한성공회 김성수(金成洙) 대주교가 받았습니다. 2회는 김자동(金滋東·1928~2022년) 대한민국 임시정부기념사업회장, 3회 때는 영국 외교관으로 북한 주재 초대 영국 공관장(대리 대사)을 지내며 우리나라에 많은 이바지를 하신 제임스 호어(James Hoare), 그리고 4회는 고려대 총장을 역임한 홍일식(洪一植) 박사에게 수여했죠. 이번엔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일본 전 총리에게 우당특별상을 수여했습니다.”
 
  ― 하토야마 전 총리에게 주는 특별상은 어떤 의미입니까.
 
  “하토야마 전 총리는 자유민주당을 창당한 가문에서 성장해 자민당에서 정치를 시작했습니다. 그럼에도 장기 집권하는 자민당을 떠나 ‘민주정치는 정당 간 정권교체가 중요하다’는 뜻에서 민주당을 창당해 자민당과 경쟁해 승리했고, 결국 총리가 됐습니다. 그분은 일본의 전전정치(戰前政治)를 비판하고 ‘일본이 거듭나야 한다’는 소신에서 불행한 과거사를 반성하고 행동으로 옮긴 분입니다. 하토야마의 우애정신이 세계평화에 기여할 것입니다. 이번 시상이 한일 관계 개선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한일 관계, 국내 정치에 이용하면 안 돼”
 
  ― 문재인 정부에서의 한일 관계는 최악이었습니다.
 
  “정말 최악이었죠. 문재인 대통령은 일본과의 정상회담이나 국빈 방문을 한 번도 못 한 유일한 대통령이 됐습니다. 이유에 대해서는 일본도 잘못이 있지만, 우리가 먼저 반성해야 합니다.”
 
  ― 어떤 반성을 해야 하나요.
 
  “첫째, 한일 관계는 역사적으로 해묵은 민족감정이 내재해 있기에 이를 자극하거나 국내 정치에 이용해서는 안 됩니다.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정부가 어렵게 타결한 위안부 문제부터 시작해 일체를 부정했죠. 그리고 ‘죽창가’를 외치고, 한쪽을 ‘토착왜구’라 매도했습니다.
 
  둘째, 한국과 일본, 중국은 서로 이사할 수 없는 지정학적 조건 위에 놓여 있습니다. 상호 친선과 협력은 필연적입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중국에는 분에 넘치게 우호적이면서 일본은 무시했습니다.
 
  셋째, 외교나 국제 관계는 영속성이 있어야 합니다. 이전 정권들이 이룩한 관계를 계승하여 발전시키는 것이 민주정치의 근본입니다. 그러나 박정희·이명박·박근혜 정부가 일본 정부와 맺은 역사를 부정했습니다. 그 결과, 일본은 앞으로 한일 관계가 ‘불가역적’이어야 한다는 모욕적인 조건을 제시했죠.”
 
  ― 최악의 상황인 한일 관계 타개를 위한 해결 방안은 무엇입니까.
 
  “한일 관계는 이른바 ‘김대중-오부치 선언’이 중간 기점이라 생각합니다. 우리의 불행한 역사를 일차적으로 청산한 것이 박정희 전 대통령이 타결한 한일국교 정상화라 한다면 그 후에는 DJ-오부치 선언이었습니다. 이후로는 한 발짝도 전진하지 못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다시 DJ-오부치 선언에서 시작하겠다고 한 말은 적절했습니다.”
 
  1998년 10월 일본을 방문한 김대중 당시 대통령은 일본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가진 뒤 이른바 11개항의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오부치 총리는 과거사와 관련해 “통절(痛切)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통해 동북아 평화와 안정, 협력을 다짐했었다.
 
 
  “용서하는 마음 있어야 반성하는 마음도 생겨”
 
  “DJ는 ‘한국이 너무 과거 지향적이고, 일본은 너무 미래만 강조하는 모습이라 이를 50%씩 가미하자’고 말했습니다. 김-오부치 선언이 바로 과거와 미래가 같이 담긴 선언입니다. 이 정신에 따라 해결하면 발전하게 될 것입니다.”
 
  ― 위안부, 과거사 등 양국 앞에 놓인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까요.
 
  “하토야마 전 총리에게 우당상을 수여한 것도 해법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가해자 일본의 반성과 사과만 주장해왔습니다. 이제는 피해자의 용서와 화해의 중요함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홀로코스트 박물관 문에 이런 문구가 있습니다. ‘용서하라! 그러나 절대로 잊지 마라(Forgive but never Forget).’ 우리도 피해자로서 용서하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용서하는 마음이 있어야 반성하는 마음도 생깁니다.”
 
  이종찬 이사장은 “이번에 시상한 우당특별상에도 용서와 화해의 정신이 담겨 있다. 비록 우당이 일제에 의하여 체포되어 고통스럽게 희생됐고, 일가족 6형제가 모두 불행했지만, 우리부터 화해의 손길을 내밀자는 게 우당특별상의 정신”이라고 말했다.
 
  “저는 (진보 쪽 인사들이 그 의미를 폄훼하려 해도) 두렵지 않습니다. 먼저 일본에 용서의 손길을 내미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우리가 먼저 용서하고 양국 관계를 한 단계 발전시켜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죽창가’는 그만 부르고 ‘우리 함께 미래로’를 부르는 시기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유럽의 독일과 프랑스 관계를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야 합니다.”
 

  ― 한일 관계에 대해 문 전 대통령에게 충고를 한 적도 있지 않습니까.
 
  “네, 있죠. 2019년 5월에 사회원로 초청 모임에서 말했어요. ‘소위 독립운동가 가문에 있는 사람이 이런 얘기 해서 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일본 국왕이 바뀐 이 시점이 한일 관계를 개선해야 할 기회입니다. 새 국왕의 발언을 보니 굉장히 평화주의자더라. 즉위식 때 문 대통령이 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말씀드렸죠.”
 
  ― 문 전 대통령이 뭐라고 하던가요.
 
  “아주 그냥 펄쩍 뛰면서 ‘대법원 판결을 나 보고 무시하라는 얘기인가. 나는 못 간다’고 하더군요. 대법원에서 강제노역 판결이 나온 이후라 그것을 의식한 것 같았어요. 그래서 ‘지금처럼 생각하면 절대로 한일 관계를 풀 수 없다’고 했죠. 이후 원로모임이 있어도 부르지 않더군요.”
 
 
  “軍개혁도 필요”
 
  ― 여야를 떠나 대한민국이 시급히 풀어야 할 문제는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윤 대통령이 말한 3대 개혁이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봅니다. 노동, 교육, 연금개혁이지요. 여기에 저는 인구개혁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원래 문재인 정부에서 해야 할 것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윤석열 정부에서 무조건 해야 한다고 봅니다.
 
  무엇보다 저출산 문제가 심각합니다. 1년에 몇백억씩 쓰는 저출산 예산이 어디에 쓰이는지 아는 이가 없습니다. 최근 TV를 보니 육군 대위 부부가 다섯 쌍둥이를 낳았더군요. 아이들이 대학 갈 때까지 국가에서 책임져 주는 것이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는 길입니다. 다섯 쌍둥이 낳기도 어렵지만 키우기도 어려워요. 여기저기 흩어진 예산을 한곳에 집중시켜 아이 한 명당 100만~200만원을 지급하면 저출산 문제가 해결된다고 봅니다.
 
  지금 현실적으로 노동개혁을 먼저 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노동개혁에 대한 의지가 확고했습니다. 일단 노조는 지금 쇠퇴기에 들어섰다고 보면 됩니다. 일부 민노총 간부들은 노동쟁의가 아니라 완전히 종북(從北)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개인적으로 군(軍)개혁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 군개혁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지금처럼 육·해·공군으로 나눌 필요가 없어요. 통합군으로 만들되 필요한 부분은 떼내야지요. 예를 들어 드론, 우주, 미사일 같은 부대를 창설하면 됩니다. 드론이 왜 공군에 들어갑니까. 무인기가 어떻게 공군에 들어갈 수 있나요. 육·해·공군은 제1차·2차 대전 이후에 나온 것인데 지금은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군 출신이 꼭 국방장관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렸으면 좋겠습니다. 성공한 CEO를 데려다 시켜보십시오. 아마 군 출신보다 잘할 겁니다.”
 
 
  “소선거구제로 바꿀 때 반대했다”
 
  ― 끝으로 하실 말씀이 있으면 해주십시오.
 
  “얼마 전 윤 대통령이 말한 중대선거구제에 대해 저는 동감하는 바입니다. 지금 표로 계산하면 41(국민의힘) 대(對) 48(더불어민주당)이에요. 의석수는 2대 1입니다. 차이가 많이 나죠. 중대선거구제를 하면 이 차이가 줄어듭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소선거구제로 바꿀 때 나중에 지역감정이 생길 것이라고 저와 박태준 전 포스코 회장이 제일 크게 반대를 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됐습니까. 영호남의 지역감정은 극에 달했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다시 바뀌어야 해요.
 
  그리고 책임 정치가 필요합니다. 대통령이 여당 당수가 되어야 해요. 책임도 안 질 사람들을 데려다 젊다고 대표 시키고, 경제 전문가라 맡겨선 안 됩니다. 정말 책임질 수 있는 대통령이 여당 당수를 해야죠. 과거 DJ나 YS도 당수였습니다. 누군가 책임지는 정당 체제를 만들어야 합니다.”⊙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월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NewsRoom 인기기사
Magazine 인기기사
댓글달기 1건
댓글달기는 로그인 하신 후 남기실 수 있습니다.
  cbn34@hanmail.net    (2023-01-27) 찬성 : 1   반대 : 3
이종찬씨 당신은 북한에 돈 바친 김대중 때 국정원장 이었지요 그걸 왜 막지 못했나요 그리고 김영삼 김대중이 일생을 싸워서 대통령을 했다구요 ? 일생을 데모만하고 국가 발전에 반대만 하다 대통령한 인간들입니다. 그들이 한국 발전을 위해 한 일이 무었이지요 ?

202306

지난호
전자북
별책부록
북스토어
프리미엄결제
2020년4월부록
  • 지난호
  • 전자북
  • 별책부록
  • 정기구독
  • 월간조선 2018년 4월호 부록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