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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

잡지 창간호 수집하는 정우용 동화기술 대표

“어릴 적 교과서 보고 눈시울 붉히는 사람 많아”

글 : 오동룡  조선뉴스프레스 취재기획위원·군사전문기자  goms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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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년 4월 《월간조선》 창간호는 4·19 스무 돌 기념호
⊙ 고향인 충북 영동 도서관에 책 기증하다 창간호 수집
⊙ 한창기의 지리지 《한국의 발견》과 구술 역사책 《민중 자서전》은 역작
⊙ 《현대문학》은 표지의 매력 대단… 김환기, 이중섭, 천경자 작품 등장
⊙ 고사리손으로 쓴 교지 창간호… 초등학교 교지는 드물어
사진=오동룡
  지난 6월 23일, 장대비로 앞을 분간할 수 없는 자유로를 더듬어 파주 출판도시엘 갔다. 과학기술 전문출판사 동화기술 정우용(鄭愚用·76) 대표가 기자에게 《월간조선》 창간호를 함께 보자고 한 날이었다. 지난날 명색이 《월간조선》 기자로 지냈었는데 지금껏 창간호 내용 한 번 제대로 훑어보지 않았다는 자괴감이 들었다. ‘1980년 4월호, 창간호’란 글자가 뚜렷한 창간호에는, 한국 1세대 전위예술 화가 김구림(金丘林)의 〈흔들리는 전구〉 그림이 선명히 찍혀 있었다.
 
  정우용 대표는 “잡지를 창간하는 이들은 창간호에 혼신(渾身)의 노력을 쏟아붓게 마련”이라며 “그런 이유로 잡지 창간호가 수집가들에게 매력이 있는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월간조선》 창간호는 4·19 스무 돌 기념호였다. 강단에서 쫓겨났다 1980년 복직한 김찬국(金燦國) 연세대 신학과 교수, 이문영(李文永) 고려대 법대 교수, 김동길(金東吉) 연세대 영문과 교수, 안병무(安炳茂) 한신대 교수, 한완상(韓完相)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의 감회 어린 글이 실렸다.
 
 
  《월간조선》 창간호
 
정우용 대표가 《월간조선》(1980년 4월호)과 《신동아》 창간호(1931년 11월호)를 들어 보이고 있다.
  또 한편에선 원로 헌법학자 유진오(兪鎭午) 전 신민당 총재와 권영성(權寧星) 서울대 법대 교수가 ‘민주의 길’ 특집 코너를 통해 ‘민주주의는 자아의 자각에서 출발한다’란 제목으로 대담을 나누고, 최근 경북 영양의 고향집 ‘광산문학연구소’가 전소(全燒)돼 실의에 빠진 소설가 이문열(李文烈)이 소설 〈충적세(沖積世) 그 후〉로 등장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으로 시작하는 ‘꽃’의 시인 김춘수(金春洙)는 ‘모자를 쓰고’로 《월간조선》 발간을 축하했다.
 
  〈초라니(하회 탈놀이에 등장하는 방정맞은 하인-필자 주),
  남도 사투리로는
  초랭이,
  방정초랭이라고 한다.
  유카리나무는 키가 얼마나 클까 하고
  유카리나무에는 어떤 꽃이 필까 하고
  예루살렘까지 밀밭길을 가고 있다.
  나귀도 없이 별만 보며〉

 
  판권의 정가 ‘1500원’이 세월의 간극(間隙)을 일깨워주고 있을 때, 편집진의 ‘창간호 후기’가 눈길을 끈다.
 
  〈대자연의 해빙(解氷)과 함께 캠퍼스에도 봄이 왔다. 학원을 떠나야 했던 학생들도 돌아오고, 교수들도 인종(忍從)의 세월 끝에 다시 강단에 서게 되었다. 김동길·김찬국·안병무·이문영·한완상 교수들의 글은 물론, 정계의 원로 우양(友羊) 허정(許政)씨가 오랜만에 쓴 글을 얻게 된 것은 《월간조선》 창간호의 큰 수확이었다. 첫 호를 내면서 독자 여러분의 성원과 함께 채찍을 받고 싶다.〉
 
 
  고향에 책 기증하다 창간호 수집
 
  경기도 파주 교하읍 문발리에 있는 정우용 대표의 동화기술 사옥 3층. 벽면은 그가 1980년대부터 모은 각종 정기간행물 창간호와 시·소설의 초판본으로 빼곡했다. 한국출판인협회 이사를 지낸 정 대표는 과학기술 전문서적 출판 45년 한길을 걷고 있는 원로 출판인이다.
 
  서울시립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서울신문》에 입사한 그는 그곳에서 출판일을 하다 독립했다. 1970년대 산업화의 부작용으로 공해 문제가 이슈로 떠오르자 정 대표는 1977년 과학기술 전문출판사인 ‘동화기술’을 설립했다. 1980년 환경청이 신설되고 국내 대학에는 환경공학과가 개설되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동화기술이 펴낸 《알기 쉬운 대기오염학》 《소방학개론》 《폐수처리공학》 등 환경서적, 소방서적, 산업안전서적, 토목공학 관련 과학기술 서적은 4500여 종에 달한다. 정 대표의 아들도 고교 시절 아버지의 출판사 교열을 돕다 환경공학과로 진학했다. ‘미생물 연료전지(microbial fuel cell·MFC)’ 실용화에 앞장선 정석희 전남대 환경에너지공학과 교수다.
 
  정우용 대표가 잡지 창간호와 시·소설 초판본 수집에 나선 것은 고향에 책 기증을 하면서부터였다. 정 대표는 1995년부터 고향인 충북 영동군 황간면의 문화관과 도서관, 그리고 서울시립도서관에 문학과 교양 도서 1만여 권을 기증해왔다.
 
  정 대표는 “당시 고향에 ‘청소년 공부방’이 생겼다는 말을 듣고 반가운 마음에 도서를 보내기 시작했다”면서 “이때 단행본과 잡지의 영속성(永續性)에 눈뜨게 돼 초판본과 창간호를 모으기 시작했다”고 했다. 현재까지 정 대표는 각종 단행본 초판 1쇄본 3000여 권, 일간·주간·계간·월간 등 정기간행물 5000여 종을 수집했다.
 
 
  문화인 ‘한창기’
 
한창기 선생. 사진=창비, 조선일보DB
  정우용 대표는 “1987년 민주화 이후 언론 자유화와 함께 출판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며 “1980년대와 1990년대가 한국에서 가장 많은 출판물이 쏟아져 나온 시기”라고 회상했다. 그때 그가 만난 인물은 《뿌리깊은 나무》를 발간했던 한창기(韓彰璂·1936~1997년) 사장이었다. 그는 《브리태니커 사전》 영업사원에서 출발해 출판 문화인으로 굵고 짧게 살다 간 한창기 사장이 자신의 ‘롤 모델’이라고 고백했다.
 
  한창기는 전남 보성 벌교 출생으로 서울대 법대를 나와 세일즈맨의 삶을 택했다. 판검사가 자신의 길이 아님을 깨달은 그는 독학으로 연마한 영어 실력으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한국지사 창립자가 됐다. ‘브리태니커로 발생한 수익금을 한국의 전통문화 창달에 쓰겠다’고 미국 본사에 제안해 동의를 얻었다고 한다.
 
  정우용 대표는 “1976년 3월 《뿌리깊은 나무》가 처음 나왔는데, 우리 잡지들이 ‘국한문 혼용’과 ‘세로 쓰기’가 정석이던 시절에 이 잡지는 ‘한글 전용’과 ‘가로 쓰기’로 우리나라 잡지사의 새 장을 열었다”고 했다. 당시 《신동아》 발행부수가 2만 부이던 시절에 《뿌리깊은 나무》는 6만~8만 부까지 발행될 정도로 돌풍을 일으켰다. 정 대표의 말이다.
 
  “《뿌리깊은 나무》는 잡지 형식에만 혁명성을 담은 것이 아니라 내용에 ‘민초(民草)들의 삶’까지 담았어요. 선생은 브리태니커 부사장까지 놀랄 정도의 영어 실력자였지만, 제호를 《뿌리깊은 나무》라고 지을 정도로 우리말과 글을 사랑했습니다. 1980년 8월 신군부가 ‘사회정화’라는 명목으로 정기간행물 172종을 폐간시킬 때 《뿌리깊은 나무》도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종간호에 종간사(終刊辭)도 없고 미륵보살 표지로 밋밋한 걸로 보아 갑자기 폐간당했다는 느낌이 듭니다.”
 
  정 대표는 “그러나 선생은 굴하지 않고 1984년 11월 여성 종합문화지 《샘이 깊은 물》을 창간하며 여성잡지 시장에 새바람을 불어넣었다”며 “일반 여성잡지와 차원을 달리하는 잡지였다”고 했다.
 
 
  장돌뱅이 돈이 왜 구린지 알어?
 
한창기 선생이 1976년 3월 창간한 《뿌리깊은 나무》와 1984년 11월 창간한 여성 종합문화지 《샘이 깊은 물》. 두 잡지는 ‘한글 전용’과 ‘가로 쓰기’로 우리나라 잡지사의 새 장을 열었다.
  한창기 선생은 《뿌리깊은 나무》를 발간하는 한편, 남한 땅 종합 인문지리지 《한국의 발견》 11권, 이름 없는 민중의 구술 역사책 《민중 자서전》 20권, 충실한 해설을 단 《민중 자서전》을 펴냈다. 서가에 꽂힌 《민중 자서전》은 제목만 봐도 가슴이 아리다. 미색 종이가 아직도 세월을 견디며 단단하다. 책 제목만 얼핏 봐도 민초들의 진솔한 삶의 언어가 살아서 펄펄 뛴다.
 
  〈이부자리 피이놓고 암만 바래도 안 와(성춘식 구술), 장돌뱅이 돈이 왜 구린지 알어?(이진룡), 이 ‘계동 마님’이 먹은 여든 살(이규숙), 어떻게 허먼 똑똑헌 제자 한 놈 두고 죽을꼬?(신기남), 이제 이 조선톱에도 녹이 슬었네(배희한), 옛날엔 날 사공이라고 혔지(서영옥), 그때는 고고롬 돼 있제(이봉원), 사삼사태로 반 죽었어, 반!(김승윤), 동래사람은 팔만 올리도 춤이 덴다 캤어(문장원), “에이, 짠한 사람!” 내가 나보고 그라요(채정례), 여보, 우리는 뒷간에 갔다온 데가 없어(이광용)…〉
 
  정우용 대표는 《뿌리깊은 나무》와 《샘이 깊은 물》 《한국의 발견》 《민중 자서전》 등 한창기의 역작 전집을 소장하고 있다. 고서적·고미술품 경매사이트 ‘칸옥션’ ‘코베이옥션’에 검색만 해도 그의 전집은 수천만원을 호가한다. 한눈에 보기에도 《뿌리깊은 나무》 창간호는 강렬했다. 표지 위쪽에 훈민정음 서체의 제호를 큼지막하게 박고, 표지의 나머지 공간은 사진 한 컷으로 꽉 채웠다.
 
  쌀을 한 움큼 퍼 올리는 농부의 거친 두 손을 클로즈업한 사진이다. 정 대표는 “이 사진은 ‘농부’와 ‘쌀’이라는 두 개의 이미지를 통해 민초의 생명력, 전통의 존재 의미를 성찰하도록 했다”며 “컬러 사진이지만 전체적으로는 갈색 톤으로, 전통·흙·민중의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부각하려 했던 것”이라고 했다.
 
  정 대표는 “한창기는 평생 독신으로 지냈으나 사람들은 그가 ‘1남 1녀’를 두었다고 말한다”며 “그 1남이 《뿌리깊은 나무》이고, 1녀는 《샘이 깊은 물》이다”고 했다. 옹기·백자 반상기 현대화와 잎차 대중화에 헌신한 한창기는 문화재 6400여 점을 수집하다, 1997년 간암으로 타계했다. 제2의 간송(澗松) 전형필(全鎣弼·1906~1962년)의 삶을 산 것이다. 한창기가 세상을 떠나고 그의 유족들은 재단법인 ‘뿌리깊은 나무’를 설립해 컬렉션을 보관하다 순천시에 기탁했고, 전남 순천시가 박물관 부지를 제공함으로써 2011년 ‘순천 시립 뿌리깊은 나무 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소년지》 창간호 소장
 
  한국의 잡지 역사는 120년을 넘나 든다. 한국인에 의한 최초의 근대 잡지 《친목회회보》는 1896년 2월에, 한국 최초의 종합 잡지인 《소년》은 1908년에 창간됐다. 잡지의 날은 매년 11월 1일로, 정부가 근대 잡지의 효시인 육당 최남선(崔南善)의 《소년》 창간일(1908년 11월 1일)을 기념해 1965년 지정했다. 개화기 신문화 운동의 선구자였던 최남선은 청소년들을 위해 최초의 종합잡지인 《소년》을 발행하면서 이 잡지에 권두시로 ‘해에게서 소년에게’라는 최초의 신체시를 실었다.
 
  〈처얼썩 처얼썩 척 쏴아아.
  따린다 부순다 무너버린다.
  태산 같은 높은 뫼 집채 같은 바윗돌이나
  요것이 무어야 요게 무어야.
  나의 큰 힘 아느냐 모르느냐 호통까지 하면서
  따린다 부순다 무너버린다.
  처얼썩 처얼썩 척 튜르릉 꽉.…(1연)〉

 
  정우용 대표가 소장하고 있는 《소년》은 1908년판 ‘제1년(권) 제1호’다. 그는 “사연을 이야기할 수 없는 강릉의 소장자로부터 어렵게 구한 창간호다”며 “권두시로 등장한 ‘해(바다)에게서 소년에게’를 읽으면서 암울한 식민시대에 청소년들에게 희망을 주려는 민족 지도자의 고뇌가 읽혔다”고 했다.
 
 
  표지가 ‘예술’인 잡지
 
《현대문학》은 수집가들에게 ‘귀하신 몸’이다. 한국의 가장 오래된 문예지라는 상징성을 넘어 표지 장정이 하나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김환기, 이중섭, 천경자 등 당대 최고의 서양화가 작품이 매번 등장했다.
  작가와 작가 지망생들의 필독서인 월간 《현대문학》은 정우용 대표가 아끼는 정기간행물 컬렉션 가운데 하나다. 1955년 창간호부터 1965년에 나온 10주년 기념호까지 100권을 한 권도 빠트리지 않고 소장하고 있다. 《현대문학》은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문예지다. 수십 년 동안 박경리(朴景利), 조정래(趙廷來), 최인호(崔仁浩), 이문열 등 600명이 넘는 문인이 기고하는 등 그 자체가 ‘한국 현대문학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대문학》은 최근 권당 수십만원에 거래될 정도다. 정 대표는 “수집가들이 볼 때 《현대문학》은 콘텐츠보다 표지의 매력이 더 크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1950년대와 1960년대를 풍미했던 김환기(金煥基), 이중섭(李仲燮), 천경자(千鏡子) 등 당대 최고의 서양화가들의 작품이 매번 표지에 등장했다. 정 대표는 “내가 표지가 예쁜 《삼천리》 잡지를 애타게 찾는 것처럼, 《현대문학》은 표지 하나만으로 수집가의 소유욕을 발동시킨다”며 “내가 입수한 《현대문학》은 전질의 상태가 매우 좋다. 잡지 하나가 한 폭의 동양화”라고 했다.
 
  정 대표는 1972년 이어령(李御寧)이 창간하고 삼성출판사가 발행한 《문학사상》을 독특한 잡지로 꼽는다. 이 문예지는 현대문학 분야에서 미발표나 미정리된 작품들을 발굴해 소개하는 ‘이 작품을 묻는다’라는 기획을 통해 총 800편의 작품을 다뤘다. 특히, 윤동주(尹東柱)·이상(李箱)·이상화(李相和)·김소월(金素月) 등에 관한 자료들은 주목할 만하다.
 
  정 대표는 “무엇보다 책의 표지가 문인의 초상화라는 것이 독특한데, 창간호는 소설가이자 화가 지망생 이상의 얼굴이 등장한다”며 “이상의 친구인 화가 구본웅(具本雄)이 모자를 쓰고 파이프를 문 어두운 얼굴의 이상을 그린 작품 〈친구의 초상〉(1935년경)을 표지로 썼다”고 했다. 《샘터》 잡지도 정 대표의 소장 목록에 들어 있다. 그는 “《샘터》는 천경자 등 유명 작가들의 작품이 들어 있어 고급스러운 느낌”이라며 “필진도 김동리(金東里), 주요한(朱耀翰), 최규남(崔奎南), 김소운(金素雲) 등 정상급 필진이 등장한다”고 했다.
 
 
  이병철 회장의 ‘미술사랑’
 
정우영 대표는 가장 아끼는 노천명의 시집 《사슴의 노래》, 김남조 시집, 김광균의 《와사등》, 윤동주 시집, 춘원 시가집, 이상화 시집, 김소월 선집, 김춘수 시선집, 조구마(趙久馬)의 《실낙원의 봄》 등 수많은 시집을 보관하고 있다.
  정우용 대표는 1976년 가을 발행한 《계간미술》 창간호를 가리키며 “이 잡지엔 삼성가와 한국 미술계의 역사가 담겨 있다”고 했다. 삼성과 미술과의 인연은 1965년 삼성 창업주 이병철(李秉喆) 회장이 그해 2월 6일 55회 생일에 맞춰 개인 재산의 사회 환원을 약속하며 삼성문화재단을 설립하면서 시작됐다.
 
  1965년 8월 14일, 한일국교가 정상화되면서 재벌가의 고미술품 수집은 본격화됐다. 1974년 3월 국회에서 박물관법 논의가 시작되면서 그해 9월 삼성문화재단은 국세청과 감사원의 대대적 조사를 받았고, 변칙 상속 탈세 혐의가 밝혀져 호된 비판을 받는다. 1975년 2월 이병철 회장은,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에게 ‘한국의 전통적인 건축 양식을 기저로 한 현대건축’을 조건으로 내건 미술관 설계 공모를 하겠다고 보고한다.
 
  1975년 7월 홍라희(洪羅喜)씨가 《중앙일보》 출판문화부 부장으로 취임하고, 이듬해 1976년 삼성문화재단은 《계간미술》을 창간했다. 정우용 대표는 “이병철 회장의 뜻에 따라 《계간미술》은 국내 정상급 판화 작가들의 오리지널 판화 작품을 창간호부터 15호까지 선물로 넣었다”며 “1978년 8호(가을호)엔 원본 넘버링 ‘49/2,000’이라고 표시된 판화가 강환섭(康煥燮)의 작품이 접지돼 들어 있다”고 했다.
 
 
  보진재가 인쇄한 《훈민정음 해례본》
 
정우영 대표가 소장하고 있는 친필 서명 단행본. 신익희 전 국회의장이 이항녕 전 홍익대 총장에게 서명해 준 《여행기》.
  정우용 대표는 희귀 잡지를 많이 보유하고 있다. 그가 부산광역시 중구 보수동 고서점이나 서울 중구 청계천로의 평화시장 서점가를 훑으면서 찾아낸 고서적 희귀본은 구체적으로 밝힐 수 없으나 저마다 입수 ‘사연’을 갖고 있다고 한다. 예컨대 《월간조선》 창간호의 경우, 부산 보수동에서 희귀본 소장가 김모(88세)씨가 다른 이에게 팔려던 것을 설득해 입수한 것이라고 한다.
 
  정 대표가 모은 고서는 훈민정음 해례본(1946년 10월 보진재 발행)이 있다. 그는 “훈민정음 해례본 인쇄는 보진재(寶晉齋)가 했다”며 “김진환(1874~1938년) 창업주로부터 4대째 가업을 이어오면서 《문장》 《청년》 등 일제 시대 잡지와 1970년대 대학예비고사 시험지, 전 세계 성경책의 30%를 인쇄한 파주 출판단지의 107년 인쇄기업이 안타깝게 경영 악화로 2019년 문을 닫았다”고 했다.
 
  정 대표는 9세기경 편자 미상의 강희맹의 《촌담해이》, 송세림의 《어면순(禦眠楯)》, 성여학의 《속어면순(續禦眠楯)》 따위를 모아 엮은 《고금소총(古今笑叢)》도 갖고 있다. 1924년(대정13년) 6월 발행한 《신문학》과 《옥루몽》도 있다.
 
  친필 서명이 들어간 단행본도 정 대표의 수집 목록이다. “이렇게 예쁜 사인은 처음 본다”는 느낌이 드는 작가 이외수(李外秀)의 사인 단행본, 황석영(黃晳暎)과 조병화(趙炳華) 시인의 사인 단행본, 조병옥(趙炳玉) 민주당 당수의 친필 서명이 담긴 《나의 회고록》(1959년), 해공 신익희(申翼熙) 전 국회의장이 이항녕(李恒寧) 박사(전 홍익대 총장)에게 서명해 준 《여행기》(1954년) 등 수두룩하다.
 
  중앙고보 교사를 지냈던 역사학자 이병도(李丙燾) 선생이 붓으로 멋들어지게 ‘贈爲中央女中圖書室 맡았던 李丙燾 呈’이라는 서명을 쓴 《조선일보》 조광사가 발행한 《현대조선문학전집-평론집》도 있다. 정 대표는 “최초의 출판·인쇄전문박물관을 설립하신 김종규(金宗圭) 삼성출판박물관장은 서명본만 모아 책자를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책의 서명은 스토리가 가득하다”고 했다.
 
 
  대중오락잡지 《명랑》
 
1970년대 발행된 타블로이드판 《주간조선》. 라디오 프로그램 〈광복 20년〉에서 이승만 대통령의 목소리 대역으로 나온 성우 구민씨와 이 대통령의 양자 이인수 명지대 교수가 표지를 장식했다.(사진 중앙)
  정우용 대표는 1956년 신태양사 대표 황준성(黃俊性)이 발행한 월간지 《명랑(明朗)》에 대한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명랑》은 《아리랑》지와 더불어 1980년 신군부에 의해 폐간당하기 전까지 대중문화의 매개체 구실을 톡톡히 했다. 《명랑》은 표지에 여배우의 사진을 실었는데, 20대의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영화’라는 영상매체의 뒷얘기를 전하는 잡지였다. 《명랑》을 본 독자들은 ‘영화’를 보지 않고도, 영화를 본 사람보다 더 적나라하게 영화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었다고 한다.
 
  “1998년 ‘대한민국 50주년 전시회’가 예술의전당에서 열렸을 때, 하루는 여배우 문희씨(백상재단 이사장)가 나타났답니다. 고서화집 전시장을 둘러보다가 《명랑》 잡지 표지에 등장한 자신의 전성기 때 사진을 보고, 전시회 중임에도 잡지를 달라고 했답니다. 전시회가 끝나려면 일주일을 기다려야 한다고 해도 사람을 보내 매일 사정을 하는 바람에 사례를 받고 결국 남정임(南貞姙)씨가 등장한 《명랑》 잡지로 교체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정우용 대표는 신문도 꾸준히 모으고 있다. 1970년 발행한 《주간조선》(62호) 타블로이드판을 보여주었다. 가격은 20원. TBC 라디오 연속극 〈광복 20년〉에서 이승만(李承晩) 대통령 목소리 대역으로 전 국민적 인기를 얻은 성우 구민(具珉)씨가 이 대통령의 양자 이인수(李仁秀) 명지대 교수와 1960년대를 회상하며 대담을 나누는 기사다.
 
조선총독부의 보통학교 교재 《글씨쓰기본(書キ方手本)》과 국어, 산수, 자연, 실과 교과서들. 갱지에 컬러인쇄가 정겹게 느껴진다. 정 대표는 ‘국어’ ‘향토’ ‘해솟는 동산’ ‘조선문학’ 등 북한의 1950년대 교과서도 소장하고 있다.
  정 대표는 신문 관련 창간호나 기념호는 모두 소장하고 있다고 했다. 기자에게 “《조선일보》 창간 100주년 기념호(2020년 3월 5일 자)가 있느냐, 창간 이후 97년 3개월 만에 달성한 지령 3만 호(2017년 6월 24일)가 있느냐”고 물었다. 기자가 “없다”고 멋쩍게 말하자 “여유분이 있으니 드리겠다”고 했다.
 
  정 대표는 조선총독부의 보통학교 교재 《글씨쓰기본(書キ方手本)》부터 컬러로 인쇄된 국어, 산수, 자연, 실과 교과서를 모두 모았다. 북한의 1950년대 교과서, ‘국어’ ‘향토’ ‘해솟는 동산’ ‘조선문학’ 등도 소장하고 있다. 그는 “옛날 교과서를 보면 어릴 적 추억이 떠오르는지 눈시울을 붉히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교지는 ‘추억 보따리’
 
  정우용 대표는 특이한 창간호를 많이 모았다. 바로 교지(校誌)다. 1980년대 중후반 복사기가 일반화되기 전까지, 교지는 등사기로 인쇄했다. 잉크가 스며들지 않는 원지(파라핀이 도포된 종이)라고 불리는 종이를 줄판(가리방·がり版) 위에 놓고, 골필(骨筆)이라는 끝이 뾰족한 금속 필기구로 파라핀 층을 제거하면 잉크가 스며든다. 줄판으로 긁은 원지를 등사기의 망판 위에 놓고 잉크를 묻힌 롤러로 밀면 종이 위에 글자가 인쇄되는 원리다.
 
  정 대표는 “중·고교 교지는 그 수가 많지만, 초등학교 교지는 경희초등학교, 리라초등학교 등 형편이 넉넉한 학교들이 드물게 출판해 귀한 편이다”라며 “교장 선생님부터 기성회장, 학부형 회장, 학생들이 온 정성을 기울여 만든 교지는 읽으면 그야말로 ‘추억 보따리’가 풀리는 느낌이다”라고 했다.
 
  소백동인회의 《새마을》 창간호(1964년 7월)에 등장하는 5학년 3반 정동희의 작품 ‘회전그네’다.
 

  〈빙그르르
  동무들이
  거꾸로 서서
  걸어다니네
 
  빙그르르
  지구가 돌았네
  골이 아프네〉

 
  정우용 대표는 “인터넷으로 신문을 보는 세대가 늘었지만 여전히 전자책은 세력을 얻지 못하고 종이신문이 건재하다”며 “선배들의 손때 묻은 책을 찾는 사람이 이어지는 한 출판은 희망이 있다고 본다”고 했다. 그는 창간호가 발견됐다는 소식만 들리면 부산, 대구, 광주, 대전 등 어디라도 당장 달려간다.
 
  어렵게 손에 넣은 책은 먼지를 털고 제본풀로 붙여 투명 비닐봉지에 담는다. 그의 수집 작업을 45년 고서를 취급한 이근희(李根熙) 이가고서점 대표가 전국 유통망을 동원해 돕고 있다. 정 대표는 “1950~1960년대 발간된 책들을 보면 은행잎이나 극장표, 연애편지까지 나오곤 했다”며 “1980년대 발간된 도서부터는 그런 낭만이 사라졌다”고 했다.
 
 
  출판단지에 문학관 설립 목표
 
경기도 파주 교하읍 문발리에 있는 정우용 대표의 동화기술 사옥.
  정 대표는 “7년 전 폐암 진단을 받고 술·담배를 끊으면서 창간호 수집에 더 골몰하게 됐다”며 “지난 50여 년간 한국의 대표적인 출판인으로 활약해온 윤형두(尹炯斗) 한국출판문화진흥재단 이사장이 창간호 수집에 많은 조언을 해주신다”고 했다. 범우사를 설립한 윤형두 회장은 대한민국 출판계의 ‘대표선수’다.
 
  정우용 대표는 “윤형두 회장은 모교인 순천대에 3만 권에 달하는 책을 기증한 데 이어 국보급 유물인 《초조대장경(대반야바라밀다경 제565권)》과 《재조대장경(대방광불화엄경 제54권)》 인쇄본을 기증하기도 했다”며 “자료를 꾸준히 모아 ‘자그마한 문학관’을 파주출판단지에 만들어 자료가 필요한 연구자한테 제공할 생각”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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