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카이치, “장차 지구에 엄청난 변화 오고 일본 미래 불확실해질 것”이라는 마쓰시타 고노스케의 강연 듣고 정치 입문 결심
⊙ 당초 ‘탤런트 정치인’으로 여겨졌지만, 자민당 정무조사회장 맡으면서 정책통으로 성장
⊙ 새벽 3~6시 반까지 관저에서 ‘볜코카이(공부회)’ 한 후 오전 국회 답변 들어가
⊙ 정경숙, 인성 중심 자습·자율 공부 위주… 총리 2명 등 100여 명의 정치인 배출
劉敏鎬
1962년생.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일본 마쓰시타정경숙(松下政經塾) 졸업(15기) / 딕 모리스 선거컨설팅 아시아 담당, 《조선일보》 《주간조선》 등에 기고. 現 워싱턴에너지컨설팅 퍼시픽21 디렉터 / 저서 《일본직설》(1·2), 《백악관의 달인들》(일본어), 《미슐랭 순례기》(중국어) 등
⊙ 당초 ‘탤런트 정치인’으로 여겨졌지만, 자민당 정무조사회장 맡으면서 정책통으로 성장
⊙ 새벽 3~6시 반까지 관저에서 ‘볜코카이(공부회)’ 한 후 오전 국회 답변 들어가
⊙ 정경숙, 인성 중심 자습·자율 공부 위주… 총리 2명 등 100여 명의 정치인 배출
劉敏鎬
1962년생.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일본 마쓰시타정경숙(松下政經塾) 졸업(15기) / 딕 모리스 선거컨설팅 아시아 담당, 《조선일보》 《주간조선》 등에 기고. 現 워싱턴에너지컨설팅 퍼시픽21 디렉터 / 저서 《일본직설》(1·2), 《백악관의 달인들》(일본어), 《미슐랭 순례기》(중국어) 등
-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 사진=AP/뉴시스
‘미 퍼스트(Me First)’ 시대다. 나 자신, 내 가족, 내 직장과 내 나라가 우선이다. 우크라이나나 가자의 비극에 대한 뉴스가 매일같이 이어지지만, 일단은 나와 주변의 안전과 번영이 우선이다.
사실 ‘미 퍼스트’는 새삼스러운 상황이 아닌, 인간 본능이다. 그러나 20세기 말 한때 ‘미 퍼스트’가 아니라 ‘위(We) 퍼스트’ 심지어 ‘유(You) 퍼스트’가 대세가 되는 글로벌 시대가 도래했다. 2016년은 분기점이다. 영국의 브렉시트(Brexit)와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의 ‘아메리카 퍼스트’가 등장하는 순간, 잊고 지냈던 본능이 되살아났다.
‘아메리카 퍼스트’가 처음 나올 때는 뭔가 어색하고 부정적이었다. 그러나 브렉시트 통과 8년 만에 세계는 급변했다. 인간의 ‘미 퍼스트’ 본능이 상식이자 대세로 변했다.
복지와 인권의 모범국가라는 스웨덴을 보자. 2023년에 시리아·이라크·아프가니스탄·소말리아 출신 이민자들이 1000만 스웨덴 인구의 20%를 넘어섰다. 해외 출생 시민권자는 전체 인구의 25%에 달한다. 전 세계 난민들이 복지천국 스웨덴으로 몰려온 결과다. 스웨덴은 현재 유럽 최악의 총기 사망 국가다. 2023년 통계를 보면 100만 명당 4명이 숨졌다. 이민 폭증과 함께 남미 스타일의 대낮 총격전이 곳곳에서 벌어지기도 했다. ‘스웨덴=평화=인권=복지’는 20세기 추억에 불과하다.
결국 스웨덴은 ‘스웨덴 퍼스트’로 돌아갔다. 2023년에는 연간 망명자 신청자 수를 최대 ‘9000명’으로 줄이는 법이 제정됐다. 사실상 망명 금지 정책이다. 이민자 수를 법적으로 확 줄인 최초의 나라는 미국이 아닌 스웨덴이다.
‘재팬 퍼스트’ 참정당 돌풍
원래 아시아는 ‘위 아 더 월드’와는 거리가 먼 지역이었다. 위선적 슬로건은 넘치지만, 내부 문제 해결하기에도 바쁜 나라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다만 일본은 조금 달랐다. 다른 나라들에 비해서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고, 서방의 가치관에도 주목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1990년대 이후에는 ‘국제 공헌’에도 열심이었다.
하지만 일본은 아시아 국가 중에서 세계 곳곳으로 번져나가고 있는 ‘미 퍼스트’ 공기를 가장 먼저 파악한 나라이기도 하다. 그 결과 2025년 여름 ‘재팬 퍼스트’를 표방하는 정당이 혜성처럼 나타났다. 참정당(參政黨)이 그 주인공이다. 참정당은 일본이라는 국가를 앞세우기보다는 일반 국민·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일본인 퍼스트’ 정책을 내세워 등장 즉시 일본 열도 전체를 뜨겁게 달구기 시작했다.
그 좋은 예가 ‘일본 내 이슬람 신자 매장’ 문제다. 일본 내에는 30만 명의 이슬람 커뮤니티가 있다. 이슬람 신자들은 화장(火葬)을 하지 않는다. 사망 후 24시간 내에 매장(埋葬)이나 토장(土葬)을 한다. 이건 이슬람교도의 의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일본인은 100% 불교식 화장을 한다.
이슬람 커뮤니티는 장례를 위해 매장용 땅을 제공해 달라고 행정기관에 요청했다. 이들이 법적 소송에 나서면서, ‘요청’은 ‘요구’로 변했다. 일본인들로서는 황당한 일이었지만, 소수자 보호 및 다양성을 내세우는 ‘위 아 더 월드’ 시대에는 아무도 반대하지 못했다. 참정당은 이런 상황에 대해 이렇게 일갈했다.
“왜 이슬람 신자가 이교도(異敎徒) 땅인 일본에서 죽고, 일본에 묻히려고 하는가? 매장이 허용되는 모국으로 돌아가면 간단히 해결될 문제다.”
참정당은 이처럼 평균적인 일본인 눈높이에 근거한 생각과 정책을 열도 전역에 전파(傳播)했다. 중국인 관련 정책도 참정당의 핵심 이슈 중 하나다. 참정당은 이렇게 따진다.
“왜 중국 유학생은 소득세가 면세되고, 일본인 학생은 소득세를 내야만 하는가?”
이런 문제들에 대해 침묵해 온 리버럴 올드 미디어들이 참정당을 ‘극우(極右)’라고 매도하는 것은 예정된 수순이다. 그러나 인터넷 뉴 미디어는 참정당의 주장에 환호했다. 이 결과 지난 6월 도쿄도(東京都) 의회 선거와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참정당은 돌풍을 일으켰다.
‘다카이치 칼라’
지난 10월, 일본 최초 여성 총리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가 등장했다. 총리로 취임한 지 한 달 정도 지난 현재, 그에 대한 고공(高空) 지지율이 계속되고 있다. 집권 초기에 지지율이 높은 것은 세계 공통 현상이기는 하다. 하지만 다카이치 열기는 당초 사람들이 생각하던 것 이상이다. 이른바 ‘다카이치 칼라(タカイチカ一ラ)’가 하나둘 구체화되면서 국민들의 호감도가 비등했다.
‘다카이치 칼라’를 한마디로 압축하면 이게 바로 ‘재팬 퍼스트’다. ‘아직’ 다카이치가 본인 입으로, 또는 자민당 정책으로 ‘재팬 퍼스트’라는 말을 내세운 적은 없다. ‘능동 대응하고 할 말을 하면서, 자랑스러운 일본 외교를 전 세계에 전파하겠다’는 식으로 말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전쟁 발발을 ‘유사시(有事時)’라 둘러 말하는 나라가 일본이다. ‘자랑스러운 일본=재팬 퍼스트’로 해석하면 된다.
한국 인터넷상에서 젊은이들이 잘 쓰는 ‘최애(最愛)’라는 단어가 있다. 제일 좋아하는 사람, 지지하는 인물을 지칭할 때 사용하는 말이다. ‘팬덤’과 비슷하지만 정치적이라기보다는 문화적인 뉘앙스가 강한 말이다. 이 말은 10여 년 전부터 일본에서 등장한 ‘오시(推し)’라는 말과 사촌쯤 될 것 같다. ‘사부 카르차(サブカルチャ)’, 즉 중하(中下) 문화권에서 벌어지는 사람이나 상품에 대한 심적·물적 응원이 ‘오시’의 실체다. 원래 특정 아이돌에 대한 오타쿠(オタク) 반응에서 출발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음식·패션은 물론 트렌드 전체에 대한 지지·응원으로 확산되었다. 당연히 정치가도 ‘오시’ 대상이 된다.
‘아베의 아바타’ 넘어 ‘여자 트럼프’ 될 수도
2025년 일본 최고의 ‘오시’ 대상은 다카이치 총리다. 리버럴 올드 미디어가 보기에 다카이치 총리는 극우나 포퓰리스트, 나아가 성(性)을 앞세운 천박한 정치가로 비칠 수도 있다. 그러나 인터넷 뉴 미디어에서는 180도 다르다. 거의 90% 이상이 다카이치 지지자다.
다카이치에 관련된 거의 모든 것이 ‘오시’의 대상이다. 현재 다카이치가 애용하는 가방이나 옷은 주문 1년 뒤에나 구입할 수 있다. 다카이치가 사용하는 오렌지색 볼펜에서부터 진주 목걸이, 음식 등이 전부 국민적 ‘오시’의 대상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도쿄를 방문했을 때 다카이치는 트럼프의 팔짱을 끼고, 미국 항공모함에서 깡충깡충 뛰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한 정치인이 다카이치를 두고 ‘(트럼프의) 현지처’라면서, “국격(國格)을 잃은 비참한 상황”이라고 비난했다. “트럼프에게 웃음을 흘리는 다카이치가 부끄럽다”고 말한 논객도 있었다. 하지만 다카이치를 ‘오시’하는 이들의 맹공격으로 ‘현지처 발언’을 한 정치인은 바로 대(對)국민 사과를 해야 했다. 다카이치가 국회에서 소신 표명을 할 때 고함을 지른 야당 의원 두 명은 차기 총선에서 첫 번째로 낙선시켜야 할 대상으로 찍혔다. 11월 3일 기준으로, 일본인 82%가 다카이치를 지지하고 있다.
흔히 다카이치는 세상을 떠난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의 아바타, ‘여성 아베’라고 불린다. 필자가 보기에 다카이치에 대한 성원과 기대는 ‘이미’ 아베를 넘어서고 있다. ‘아베 아바타’ 정도가 아니라 독자적인 ‘다카이치 칼라’를 통해 ‘아베 2.0’으로 나아갈 인물이다. ‘여성 트럼프’가 될지도 모른다.
시진핑에게 중국 인권 문제 거론
다카이치는 11월 7일 국회 답변에서 “대만 유사시, 미군과 함께하는 집단적 자위권(自衛權)이 발동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질문에 나선 야당 정치인은 “전쟁이 아닌 평화를 보장하는 것이 총리의 임무”라고 질책했다. 다카이치는 이에 대해 “최악의 사태에 대비해 미리 준비하는 것도 정치가의 역할”이라고 맞섰다. 다른 일본 정치인들처럼 적당히 피해 가는 게 아니라 분명하고 확실하다. 이게 82% ‘오시’의 이유다.
다카이치는 경주 APEC 기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할 때 센카쿠(尖閣) 열도 문제는 물론, 대만, 홍콩, 신장 위구르 인권 문제까지 거론했다. 과거 일본 총리들은 쉬쉬하던 문제들을 전면으로 꺼낸 것이다. 중국 측은 당연히 반발했다. 중국은 과거사 문제를 가지고 일본을 공격하면서 다카이치가 중국 인권 문제를 거론한 것을 내정간섭이라고 비난했다.
경주 일중(日中)정상회담에서 필자가 주목한 부분은 총리 방중(訪中) 문제였다. 2019년 6월 오사카에서 열렸던 일중정상회담이 양국 안에서 이루어진 마지막 만남이었다. 의전상 다음번 양국 정상회담은 중국에서 열리게 된다. 이시바 시게루(石破茂)·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전 총리 모두 방중 정상회담에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다카이치는 방중 문제를 전혀 꺼내지 않았다. 다카이치는 독자적·능동적 대중 외교를 강조한다. ‘비위를 맞추거나 의례적 방문은 불필요하다’는 것이 다카이치 입장이다.
한국 공군기 급유 거부 사건
동아시아 역사를 돌이켜볼 때, 일본이 자기주장을 ‘강하게’ 펼 경우, 좋든 싫든 그 여파는 곧바로 한반도로 밀려온다. 멀리는 16세기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일본 통일과 임진왜란, 근대에는 1853년 페리 제독의 흑선(黑線) 등장과 1876년 강화도조약, 현대에는 1951년 9월 미일안보조약과 2년 뒤인 1953년 10월의 한미안보조약을 예로 들 수 있다.
과거 역사를 돌아보면, 미국과 서구의 변화에 가장 민감하게 대응한 나라는 일본이었다. 반면 중국은 비현실적 허세와 과장으로 반응한 나라였고, 가장 늦게 대처한 나라가 조선이었다. 쇠퇴하던 중국을 붙잡고 ‘우리끼리 쇄국(鎖國)’을 신앙으로 여기며 세계의 변화에 문을 닫았던 결과가 35년간의 식민지배와 총 400만 사상자를 낳은 한국 전쟁이었다.
그렇다면, 2025년 다카이치 정권의 출범은 한반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이미 그 전조(前兆)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10월 말 일본 정부는 공군 특수비행팀 블랙이글스가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열리는 에어쇼에 참가하기 위해 이동할 때 일본 오키나와현 나하 기지에 들러 급유(給油)할 수 있도록 허용해 달라는 한국 정부의 요청을 거부했다. 일본 내에서는 이를 계기로 양국 간 안보협력이 강화될 수 있다는 기대도 있었지만, 일본 정부는 블랙이글스 소속 공군기가 지난 10월 말 독도 상공에서 태극 문양 비행을 펼친 사실을 이유로 공식적으로 급유 불허를 통보했다.
통화 스와프 문제
경주 APEC 기간 열리는 한일정상회담을 앞둔 시점이었지만, 다카이치는 이재명 대통령이 불쾌할 것을 감수하면서 이런 결정을 내렸다. 어쩌면 아베 같았으면 적당히 넘어갔을지도 모른다. 한국은 이에 도쿄에서 열리는 군악(軍樂)축제에 한국 군악대 파견을 취소하는 걸로 맞대응했다.
이런 갈등은 일견 사소한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잠재적 폭발력은 엄청나다. 이재명 대통령이 일본의 반응을 확대 해석해 독도 주변에서 대규모 군사훈련을 벌인다고 가정해 보자. ‘반일(反日)’이 만병통치약인 나라에서 이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올라갈 것이다.
이에 맞서 다카이치는 어떻게 반응할까?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군사 맞대응은 일이 너무 커질 수 있어 보류하고, 다른 카드를 사용할 것이다. 가령 내년 상반기 끝나는 100억 달러 한일 통화 스와프 연장을 거부할 수도 있다. 이 경우 한국에는 경제적 쓰나미가 몰려올 것이다.
11월 초 한중정상회담에서 600억 달러 규모의 통화 스와프 연장이 발표됐다. 그러나 현재 외환(外換) 시장에서 원화는 계속 추락 중이다. 600억 달러 규모의 통화 스와프라고는 하지만, 달러가 아닌 중국 위안을 바탕으로 한 스와프이기 때문이다. 위안화 기반 1000억 달러보다, 일본 엔화를 기반으로 한 100억 달러 스와프의 효과가 훨씬 강하다.
통화 스와프 문제는 한국만이 아닌, 서울에 진출한 일본 금융업계의 문제이기도 하다. 한국이 금융위기에 처할 경우, 일본도 그 피해를 보게 된다. 하지만 차이가 있다. 일본에는 ‘일부’ 피해가 있겠지만, 한국에는 국가적 재난 수준의 피해가 올 수 있다.
미국 대통령이 야스쿠니 참배한다면?
최근 이재명 대통령의 대일(對日) ‘스마일 외교’를 의아하게 바라보는 한국인이 적지 않다. 문재인 정권 시절 강경 대일 외교나 이 대통령 자신이 과거에 내놓았던 강경 발언과는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일단 위안부·징용 같은 과거사 얘기가 사라졌다. 평소 이 대통령이 주장하는 실용 외교가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일본과 부딪치면 손해’라는 생각 때문일 수도 있다. 이유야 어쨌든, 필자는 긍정적으로 본다.
하지만 이재명 정부의 대일 외교를 보면 단기 미봉책일 뿐, 근본적인 차원의 변화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도쿄에서 무슨 정책이 나왔을 때 수동적으로 반응하기보다는, 미리 대응하는 선제(先制) 외교가 필요하다.
일본은 과거사·독도·야스쿠니신사 참배 문제를 21세기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 한국은 20세기 관점에서 보고 있다. 그나마도 중국에 편승한 일본관(日本觀)이 적지 않다.
필자는 머지않아 미국 관료, 더 나아가 대통령의 야스쿠니신사 참배가 실현될 것이라고 본다. 트럼프가 일본 총리와 함께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할 경우, 한국은 과연 어떻게 대응할까?
시진핑이 다카이치에게 역사 책임을 묻고 있지만, 약발이 떨어진 지 오래다. 일본 내 리버럴 미디어조차 시진핑의 ‘과거사 발언’에 무심하다. 다카이치는 1961년생, 일본 천황은 1960년생이다. 일본 수뇌부 모두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 전쟁과는 한참 떨어져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정말 일본과의 실용 외교에 생각이 있다면, 이렇게 달라진 21세기 일본에 대한 인식부터 새로이 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경숙의 마돈나’
한국에서 보면 ‘다카이치=극우 국수주의자‘로 비친다. 리버럴 올드 미디어의 일반적 평가다. 인터넷 뉴 미디어는 정반대다. ‘다카이치=신념과 원칙의 정치가’라고 본다.
다카이치를 올바로 보기 위해서는 1993년 이후 32년간 지속된 다카이치의 정치 행보를 알아야 한다. 다카이치 본인도 여러 차례 강조했지만, 다카이치의 정치 경력, 정치 철학의 출발점이 되는 것은 ‘마쓰시타 정경숙(松下政經塾·이하 정경숙)’에서의 경험이다.
필자는 31년 전인 1994년에 정경숙 15기로 입숙(入塾)했다. 정경숙에 들어간 첫 외국인이었다. 5기인 다카이치는 필자의 10년 선배다. 나이는 거의 비슷하지만, 기수가 10년이나 앞섰기 때문에 직접 대면할 기회는 별로 없었다.
정경숙에서 공부하는 동안, 다카이치에 대한 얘기를 수없이 들었다. ‘정경숙의 마돈나’라고나 할까? 정경숙의 여성 비율은 전체 졸업생(300여 명)의 10% 선이다.
필자가 입숙하기 1년 전인 1993년, 정경숙 출신 중의원(衆議員) 15명이 ‘무더기’로 탄생했다. 당시 이른바 자민당 ‘55년 체제’가 무너지면서 신당(新黨) 바람이 불었는데, 젊은 정경숙 출신 정치 지망생들이 신당에 들어가면서 대거 당선된 것이다. 정치 지망생은 아니었지만, 필자가 정경숙에 흥미를 갖게 된 가장 큰 이유도 당시 중의원 15명 당선 뉴스 때문이었다.
1기생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전 총리도 이때 첫 당선됐다. 하지만 당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사람은 바로 다카이치였다. 당시 32세의 최연소 여성 당선자였고, TV 진행자로 이미 전국적 지명도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511명의 중의원 가운데 여성 당선자가 14명에 불과해 여성 의원 자체가 매우 적었다는 것도 다카이치가 전국적 스타가 될 수 있었던 이유였을 것이다.
다카이치는 평소 자신이 정경숙을 통해 ‘정치 입신(立身)’을 굳혔고, 자신의 ‘미션’도 발견했다고 말해왔다. 다카이치는 당초 정치인이 되려고 정경숙에 들어간 게 아니었다. 정경숙 생활 1년 반이 지난 뒤부터 비로소 ‘정치 입신’을 결심했다.
지금은 교육 기간이 짧아졌지만, 다카이치나 필자가 공부할 당시 정경숙 교육 기간은 5년이었다. 정경숙에서는 5년 동안 무엇을 할까?
일단 정경숙을 만든 숙주(塾主), 마쓰시타 고노스케(松下幸之助· 1894~1989년) 연구가 기본이다. 마쓰시타는 파나소닉, 나쇼날 브랜드로 유명한 마쓰시타 그룹 창업주다. ‘경영의 신(神)’으로 불리는 인물로, 지금도 일본 경제계에서는 신화(神話)로 통한다.
‘정치가 변해야 일본이 변한다’
마쓰시타는 84세 되던 1979년, 미래 지도자 양성을 위해 사재(私財) 70억 엔을 들여 정경숙을 세웠다. ‘정치가 변해야 일본이 변한다’는 신념의 소산이었다.
정경숙에 들어가는 데는 특별한 자격이나 경력은 필요치 않다. 마쓰시타의 유지에 따라, 5년 동안 매달 월급 30만 엔과 연구비 20만 엔이 지급됐다.
정치 지망생의 경우 정경숙 졸업 전부터 지역구 정치 활동에 뛰어든다. 이름을 알리고, 현지 커뮤니티에 들어가 자신의 정책 비전을 알린다. 정경숙에서 받은 자기 월급과 연구비를 전부 정치 활동에 투자한다. 정경숙 선후배들은 서로 기부하거나 도우미 활동을 통해 도움을 주고받는다. 정경숙 선후배와의 대화를 통해 ‘정치와 돈’, 나아가 선거운동, 전술·전략에 관한 노하우도 습득한다.
정경숙은 올해 설립 46주년을 맞았다. 생전의 마쓰시타는 “문부대신(교육부 장관) 하나 나오면 (정경숙이) 성공한 것”이라고 말했다. 2025년 현재 정경숙의 성과는 마쓰시타의 기대를 훨씬 뛰어넘는다. 전체 졸업생 300여 명 중 총리 2명과 중의원, 참의원(參議員), 시장, 현지사, 지방의원, 정당 관계자 100여 명을 배출했다. 정경숙 선후배들은 정치 이념·정당이 달라도 유대(紐帶)가 남다르다.
정경숙은 도쿄에서 남서쪽으로 60km 떨어진, 쓰지도(辻堂) 주변에 있다. 그리스풍 건물에다 기숙사와 강의실을 겸비한 곳으로, 청춘의 상징인 쇼난(湘南) 바다에서 500m 떨어져 있다. 쇼난은 소설가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慎太郎)의 전후(戰後) 베스트셀러 《태양의 계절》의 무대이기도 하다. 평소에도 해풍(海風)이 강하지만, 태풍 시즌이 되면 바닷모래가 방 안까지 밀려든다.
교육은 어떤 식으로 이뤄질까? 입숙 이후 최소 1년간은 기숙사에서 집단 생활을 해야만 한다. 하루 일정은 아침 5시 반부터 시작된다. 기상과 함께 바다 백사장까지 조깅을 한 뒤, 6시 체조와 정경숙 청소에 들어간다. 거의 1시간 정도 걸리는, 종교의식에 준하는 청소다. 마쓰시타가 “대망(大望)을 논하기 전에 자기 주변부터 청소하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청소 이후 정장을 입고 아침 8시 조회에 들어간다. 강의와 공부는 9시부터 시작된다. 학문적·기능적 연구보다는 ‘먼저 제대로 된 인간이 돼라’는 수양론 강의가 대부분이다. “서로가 서로의 스승이 될 수 있다”는 마쓰시타의 말에 따라, 인성(人性) 중심 자습·자율 공부가 기본이다. 사회 각계각층의 존경받는 어른들이 찾아와, 자신의 인생 체험과 철학을 들려준다. 필자가 공부했던 시기에는, 태평양 전쟁에 참전했던 기업 총수, 1972년 일중국교정상화 당시 외교 관계자, 도쿄 의과대학 출신 컴퓨터 소프트 프로그래머 등이 정기적으로 들렀다.
마쓰시타 고노스케의 경고
1985년 가을, 정경숙을 찾은 91세의 마쓰시타는 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 5년 이후, 지구 전체에 엄청난 변화가 나타날 것이다. 일본의 미래도 불확실해질 것이고, 여러 가지 어려움이 한꺼번에 밀려들 것이다.”
1985년 일본은 버블 절정기였다. 하버드대에서는 《재팬 이즈 넘버원》이라는 책을 출간하고, 많은 이가 조만간 일본 경제가 미국을 넘어설 것으로 보았다. 아르바이트를 일주일만 해도 파리 여행이 가능하던 풍요의 시기였다. 숙생 대부분은 마쓰시타의 이 어두운 예언을 ‘설마’ 하면서 웃어넘겼다.
그러나 다카이치는 91세 노인의 예언을 놓치지 않았다. 다카이치는 마쓰시타의 예언을 듣는 순간, 자신이 미래의 일본에서 할 일이 무엇인지 생각했다고 한다. 결론은 정치인이 되어야겠다는 것이었다. 다카이치는 후일 “마쓰시타의 말을 듣기 전까지만 해도 정치는 남의 일로 생각했다”고 고백했다. 정경숙 숙생 대부분은 정치계 진출을 꿈꾸었지만, 학계·언론·사회단체로 나가는 사람도 많았다. 그러나 다카이치는 “세계가 급변하고, 일본이 어두운 시대로 접어드는 상황이라면, 정치가 일본의 희망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도달했다. 권력, 돈, 명예 때문이 아니라 마쓰시타의 예언을 듣고 미래에 대응하기 위한 자신의 ‘미션’을 깨달았기에 정치에 입문하기로 한 것이다.
당초 ‘탤런트 정치인’으로 여겨져
마쓰시타의 예언은 적중했다. 1990년 독일 통일과 1991년 구(舊)소련 붕괴로 새로운 시대, 즉 글로벌 대가 시작됐다. 하지만 일본은 도쿄 주식 대폭락과 함께 ‘일본 넘버원’ 신화가 사라지면서 ‘잃어버린 30년’이 시작됐다.
필자가 정경숙에 있던 시절, 정경숙 내에서의 다카이치에 대한 평가는 ‘탤런트 정치가’ 정도였다. TV 사회자 경력도 있고 해서, ‘한순간 반짝 빛나다가 사라져 버릴 정치인’으로 여겨졌다. 노다 전 총리는 정경숙 재학 당시 마쓰시타도 인정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다카이치를 ‘미래의 총리’라고 본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일단 일본에서 여성 총리가 탄생할 수 있을지부터 의문이었다. 사람들은 다카이치를 상냥하고 밝은 모습 때문에 모두에게 도움이 될 ‘분위기 메이커’ 정도로 생각했다.
사실 경력 면에서 다카이치는 역대 총리들 근처에도 못 간다. 처음 장관급에 오른 것은 정치 입문 13년 뒤인, 2006년이었다. 제1차 아베 내각에서 과학 기술 정책 담당 대신이 된 것이다. 아베와 다카이치는 1993년 중의원에 첫 당선된 정치 동기생이다. 아베가 여러 요직을 거치면서 총리에 오를 때까지 다카이치는 장관 경험을 한번도 하지 못했다. 정치 동기 아베 덕분에 처음으로 장관에 오른 셈이다.
‘지독한 일벌레’
다카이치가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은 2012년 제2차 아베 내각 때부터다. 그는 자민당 정무조사회장으로 2년 이상 일했다. 정무조사회는 국가 정책을 연구, 심의, 발의해 정부(내각)에 넘기는 기구다.
필자가 알기에 중의원 대부분은 정무조사회장 자리를 피한다. 수많은 정책과 하루 종일 씨름을 해야만 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권력, 돈, 사교, 명예와는 거리가 먼, ‘정책 오타쿠’ 자리다. 당시 다카이치는 아베 정권의 핵심적인 ‘우향우(右向右) 정책’들을 ‘직접’ 만들어냈다.
지난 11월 7일, 다카이치의 새벽 3시 관저 출근이 세계적 뉴스가 됐다. 국회 답변을 위해 새벽 3시부터 참모들과 ‘볜쿄카이(勉強會·공부회)’에 들어간 것이다. 볜쿄카이는 모여서 떠들고 마시면서 세(勢)를 과시하는 한국 정치판의 ‘공부 모임’과는 다르다. 다카이치는 이날 새벽 3시부터 6시 반까지 공부를 끝낸 뒤 오전 국회 답변에 응했다.
다카이치는 ‘지독한 일벌레’로 유명하다. 정무조사회장 재직 당시, 아예 자민당 건물 안에서 살았다고 한다. ‘일벌레’의 운명일까? 다카이치는 2021년 기시다 정권 때에 다시 정무조사회장으로 발탁된다.
다카이치를 ‘천한 웃음이나 파는 싸구려 총리’라고 보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러나 정책 토론에 들어갈 경우, 다카이치를 능가할 수 있는 사람이 일본 열도 전체를 통틀어 몇 명이나 될지 궁금하다. 다카이치의 발언과 정책은 5년 동안 자민당 정책 최고책임자로 일하면서 체득한, ‘오타쿠 일벌레’로서의 확신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원칙과 신념의 정치가’ 다카이치의 기반이다.
‘미 퍼스트’는 글로벌 대세다. ‘위 아 더 월드’는커녕, ‘한·미·일 공조(共助)’ ‘한·미·일 3각 동맹’이란 말도 슬그머니 사라지고 있다. 트럼프는 경주 한미정상회담 당시 ‘한미동맹’이 아닌, ‘한미 커뮤니티(community)’란 단어를 사용했다. 이것도 각자도생(各自圖生), ‘미 퍼스트’ 시대의 도래를 보여주는 사례일 것이다. 다카이치의 ‘재팬 퍼스트’도 빠른 속도로 아시아와 전 세계로 퍼져나갈 것이다.
‘한·미·일 공조’라는 말이 사라지고 있다
당연한 수순이지만, 곧 ‘코리아 퍼스트’도 등장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을 보면 헷갈린다. 한국이 아니라 북한이나 중국을 우선시하는 정책과 발언이 난무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APEC 정상회담 직전 미사일을 발사하자, 이재명 대통령은 “북한이 오랫동안 잘 참았다”라고 말했다. 서해 침탈을 일상화하고 있는 중국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반중 시위 금지법’ ‘중국 관광객 노비자’ ‘중국제 태양광·풍력 장비 수입’ 정책을 보면 ‘차이나 퍼스트’로 나가고 있는 듯하다. 이래서야 ‘코리아 퍼스트’ 정책이 나온다고 해도 그게 얼마나 힘을 받을 것인지, 정말 국익(國益)에 도움이 될 것인지 의문이다. ‘정권 지지율 띄우기’용 ‘코리아 퍼스트’ 정책은 결국 국민과 국가에 손해가 될 것이다.
‘다카이치 칼라’는 분명하고 확실하다. ‘착한 웃음’이 깔리겠지만, 원칙과 신념으로 밀어붙일 것이다. ‘실용 외교’를 내세워온 이재명 정부의 실력을 보여줘야 할 무거운 숙제가 기다리고 있다.⊙
사실 ‘미 퍼스트’는 새삼스러운 상황이 아닌, 인간 본능이다. 그러나 20세기 말 한때 ‘미 퍼스트’가 아니라 ‘위(We) 퍼스트’ 심지어 ‘유(You) 퍼스트’가 대세가 되는 글로벌 시대가 도래했다. 2016년은 분기점이다. 영국의 브렉시트(Brexit)와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의 ‘아메리카 퍼스트’가 등장하는 순간, 잊고 지냈던 본능이 되살아났다.
‘아메리카 퍼스트’가 처음 나올 때는 뭔가 어색하고 부정적이었다. 그러나 브렉시트 통과 8년 만에 세계는 급변했다. 인간의 ‘미 퍼스트’ 본능이 상식이자 대세로 변했다.
복지와 인권의 모범국가라는 스웨덴을 보자. 2023년에 시리아·이라크·아프가니스탄·소말리아 출신 이민자들이 1000만 스웨덴 인구의 20%를 넘어섰다. 해외 출생 시민권자는 전체 인구의 25%에 달한다. 전 세계 난민들이 복지천국 스웨덴으로 몰려온 결과다. 스웨덴은 현재 유럽 최악의 총기 사망 국가다. 2023년 통계를 보면 100만 명당 4명이 숨졌다. 이민 폭증과 함께 남미 스타일의 대낮 총격전이 곳곳에서 벌어지기도 했다. ‘스웨덴=평화=인권=복지’는 20세기 추억에 불과하다.
결국 스웨덴은 ‘스웨덴 퍼스트’로 돌아갔다. 2023년에는 연간 망명자 신청자 수를 최대 ‘9000명’으로 줄이는 법이 제정됐다. 사실상 망명 금지 정책이다. 이민자 수를 법적으로 확 줄인 최초의 나라는 미국이 아닌 스웨덴이다.
‘재팬 퍼스트’ 참정당 돌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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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정당의 선거 포스터. ‘일본인 퍼스트’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
다만 일본은 조금 달랐다. 다른 나라들에 비해서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고, 서방의 가치관에도 주목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1990년대 이후에는 ‘국제 공헌’에도 열심이었다.
하지만 일본은 아시아 국가 중에서 세계 곳곳으로 번져나가고 있는 ‘미 퍼스트’ 공기를 가장 먼저 파악한 나라이기도 하다. 그 결과 2025년 여름 ‘재팬 퍼스트’를 표방하는 정당이 혜성처럼 나타났다. 참정당(參政黨)이 그 주인공이다. 참정당은 일본이라는 국가를 앞세우기보다는 일반 국민·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일본인 퍼스트’ 정책을 내세워 등장 즉시 일본 열도 전체를 뜨겁게 달구기 시작했다.
그 좋은 예가 ‘일본 내 이슬람 신자 매장’ 문제다. 일본 내에는 30만 명의 이슬람 커뮤니티가 있다. 이슬람 신자들은 화장(火葬)을 하지 않는다. 사망 후 24시간 내에 매장(埋葬)이나 토장(土葬)을 한다. 이건 이슬람교도의 의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일본인은 100% 불교식 화장을 한다.
이슬람 커뮤니티는 장례를 위해 매장용 땅을 제공해 달라고 행정기관에 요청했다. 이들이 법적 소송에 나서면서, ‘요청’은 ‘요구’로 변했다. 일본인들로서는 황당한 일이었지만, 소수자 보호 및 다양성을 내세우는 ‘위 아 더 월드’ 시대에는 아무도 반대하지 못했다. 참정당은 이런 상황에 대해 이렇게 일갈했다.
“왜 이슬람 신자가 이교도(異敎徒) 땅인 일본에서 죽고, 일본에 묻히려고 하는가? 매장이 허용되는 모국으로 돌아가면 간단히 해결될 문제다.”
참정당은 이처럼 평균적인 일본인 눈높이에 근거한 생각과 정책을 열도 전역에 전파(傳播)했다. 중국인 관련 정책도 참정당의 핵심 이슈 중 하나다. 참정당은 이렇게 따진다.
“왜 중국 유학생은 소득세가 면세되고, 일본인 학생은 소득세를 내야만 하는가?”
이런 문제들에 대해 침묵해 온 리버럴 올드 미디어들이 참정당을 ‘극우(極右)’라고 매도하는 것은 예정된 수순이다. 그러나 인터넷 뉴 미디어는 참정당의 주장에 환호했다. 이 결과 지난 6월 도쿄도(東京都) 의회 선거와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참정당은 돌풍을 일으켰다.
‘다카이치 칼라’
지난 10월, 일본 최초 여성 총리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가 등장했다. 총리로 취임한 지 한 달 정도 지난 현재, 그에 대한 고공(高空) 지지율이 계속되고 있다. 집권 초기에 지지율이 높은 것은 세계 공통 현상이기는 하다. 하지만 다카이치 열기는 당초 사람들이 생각하던 것 이상이다. 이른바 ‘다카이치 칼라(タカイチカ一ラ)’가 하나둘 구체화되면서 국민들의 호감도가 비등했다.
‘다카이치 칼라’를 한마디로 압축하면 이게 바로 ‘재팬 퍼스트’다. ‘아직’ 다카이치가 본인 입으로, 또는 자민당 정책으로 ‘재팬 퍼스트’라는 말을 내세운 적은 없다. ‘능동 대응하고 할 말을 하면서, 자랑스러운 일본 외교를 전 세계에 전파하겠다’는 식으로 말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전쟁 발발을 ‘유사시(有事時)’라 둘러 말하는 나라가 일본이다. ‘자랑스러운 일본=재팬 퍼스트’로 해석하면 된다.
한국 인터넷상에서 젊은이들이 잘 쓰는 ‘최애(最愛)’라는 단어가 있다. 제일 좋아하는 사람, 지지하는 인물을 지칭할 때 사용하는 말이다. ‘팬덤’과 비슷하지만 정치적이라기보다는 문화적인 뉘앙스가 강한 말이다. 이 말은 10여 년 전부터 일본에서 등장한 ‘오시(推し)’라는 말과 사촌쯤 될 것 같다. ‘사부 카르차(サブカルチャ)’, 즉 중하(中下) 문화권에서 벌어지는 사람이나 상품에 대한 심적·물적 응원이 ‘오시’의 실체다. 원래 특정 아이돌에 대한 오타쿠(オタク) 반응에서 출발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음식·패션은 물론 트렌드 전체에 대한 지지·응원으로 확산되었다. 당연히 정치가도 ‘오시’ 대상이 된다.
‘아베의 아바타’ 넘어 ‘여자 트럼프’ 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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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 10월 28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함께 요코스카에 있는 미 해군 기지에서 항공모함 조지 워싱턴호에 올랐다. 사진=AP/뉴시스 |
다카이치에 관련된 거의 모든 것이 ‘오시’의 대상이다. 현재 다카이치가 애용하는 가방이나 옷은 주문 1년 뒤에나 구입할 수 있다. 다카이치가 사용하는 오렌지색 볼펜에서부터 진주 목걸이, 음식 등이 전부 국민적 ‘오시’의 대상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도쿄를 방문했을 때 다카이치는 트럼프의 팔짱을 끼고, 미국 항공모함에서 깡충깡충 뛰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한 정치인이 다카이치를 두고 ‘(트럼프의) 현지처’라면서, “국격(國格)을 잃은 비참한 상황”이라고 비난했다. “트럼프에게 웃음을 흘리는 다카이치가 부끄럽다”고 말한 논객도 있었다. 하지만 다카이치를 ‘오시’하는 이들의 맹공격으로 ‘현지처 발언’을 한 정치인은 바로 대(對)국민 사과를 해야 했다. 다카이치가 국회에서 소신 표명을 할 때 고함을 지른 야당 의원 두 명은 차기 총선에서 첫 번째로 낙선시켜야 할 대상으로 찍혔다. 11월 3일 기준으로, 일본인 82%가 다카이치를 지지하고 있다.
흔히 다카이치는 세상을 떠난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의 아바타, ‘여성 아베’라고 불린다. 필자가 보기에 다카이치에 대한 성원과 기대는 ‘이미’ 아베를 넘어서고 있다. ‘아베 아바타’ 정도가 아니라 독자적인 ‘다카이치 칼라’를 통해 ‘아베 2.0’으로 나아갈 인물이다. ‘여성 트럼프’가 될지도 모른다.
시진핑에게 중국 인권 문제 거론
다카이치는 11월 7일 국회 답변에서 “대만 유사시, 미군과 함께하는 집단적 자위권(自衛權)이 발동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질문에 나선 야당 정치인은 “전쟁이 아닌 평화를 보장하는 것이 총리의 임무”라고 질책했다. 다카이치는 이에 대해 “최악의 사태에 대비해 미리 준비하는 것도 정치가의 역할”이라고 맞섰다. 다른 일본 정치인들처럼 적당히 피해 가는 게 아니라 분명하고 확실하다. 이게 82% ‘오시’의 이유다.
다카이치는 경주 APEC 기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할 때 센카쿠(尖閣) 열도 문제는 물론, 대만, 홍콩, 신장 위구르 인권 문제까지 거론했다. 과거 일본 총리들은 쉬쉬하던 문제들을 전면으로 꺼낸 것이다. 중국 측은 당연히 반발했다. 중국은 과거사 문제를 가지고 일본을 공격하면서 다카이치가 중국 인권 문제를 거론한 것을 내정간섭이라고 비난했다.
경주 일중(日中)정상회담에서 필자가 주목한 부분은 총리 방중(訪中) 문제였다. 2019년 6월 오사카에서 열렸던 일중정상회담이 양국 안에서 이루어진 마지막 만남이었다. 의전상 다음번 양국 정상회담은 중국에서 열리게 된다. 이시바 시게루(石破茂)·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전 총리 모두 방중 정상회담에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다카이치는 방중 문제를 전혀 꺼내지 않았다. 다카이치는 독자적·능동적 대중 외교를 강조한다. ‘비위를 맞추거나 의례적 방문은 불필요하다’는 것이 다카이치 입장이다.
한국 공군기 급유 거부 사건
동아시아 역사를 돌이켜볼 때, 일본이 자기주장을 ‘강하게’ 펼 경우, 좋든 싫든 그 여파는 곧바로 한반도로 밀려온다. 멀리는 16세기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일본 통일과 임진왜란, 근대에는 1853년 페리 제독의 흑선(黑線) 등장과 1876년 강화도조약, 현대에는 1951년 9월 미일안보조약과 2년 뒤인 1953년 10월의 한미안보조약을 예로 들 수 있다.
과거 역사를 돌아보면, 미국과 서구의 변화에 가장 민감하게 대응한 나라는 일본이었다. 반면 중국은 비현실적 허세와 과장으로 반응한 나라였고, 가장 늦게 대처한 나라가 조선이었다. 쇠퇴하던 중국을 붙잡고 ‘우리끼리 쇄국(鎖國)’을 신앙으로 여기며 세계의 변화에 문을 닫았던 결과가 35년간의 식민지배와 총 400만 사상자를 낳은 한국 전쟁이었다.
그렇다면, 2025년 다카이치 정권의 출범은 한반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이미 그 전조(前兆)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10월 말 일본 정부는 공군 특수비행팀 블랙이글스가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열리는 에어쇼에 참가하기 위해 이동할 때 일본 오키나와현 나하 기지에 들러 급유(給油)할 수 있도록 허용해 달라는 한국 정부의 요청을 거부했다. 일본 내에서는 이를 계기로 양국 간 안보협력이 강화될 수 있다는 기대도 있었지만, 일본 정부는 블랙이글스 소속 공군기가 지난 10월 말 독도 상공에서 태극 문양 비행을 펼친 사실을 이유로 공식적으로 급유 불허를 통보했다.
통화 스와프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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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는 10월 30일 경북 경주 APEC 정상회의 기간 중 한일정상회담을 가졌다. 사진=뉴시스 |
이런 갈등은 일견 사소한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잠재적 폭발력은 엄청나다. 이재명 대통령이 일본의 반응을 확대 해석해 독도 주변에서 대규모 군사훈련을 벌인다고 가정해 보자. ‘반일(反日)’이 만병통치약인 나라에서 이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올라갈 것이다.
이에 맞서 다카이치는 어떻게 반응할까?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군사 맞대응은 일이 너무 커질 수 있어 보류하고, 다른 카드를 사용할 것이다. 가령 내년 상반기 끝나는 100억 달러 한일 통화 스와프 연장을 거부할 수도 있다. 이 경우 한국에는 경제적 쓰나미가 몰려올 것이다.
11월 초 한중정상회담에서 600억 달러 규모의 통화 스와프 연장이 발표됐다. 그러나 현재 외환(外換) 시장에서 원화는 계속 추락 중이다. 600억 달러 규모의 통화 스와프라고는 하지만, 달러가 아닌 중국 위안을 바탕으로 한 스와프이기 때문이다. 위안화 기반 1000억 달러보다, 일본 엔화를 기반으로 한 100억 달러 스와프의 효과가 훨씬 강하다.
통화 스와프 문제는 한국만이 아닌, 서울에 진출한 일본 금융업계의 문제이기도 하다. 한국이 금융위기에 처할 경우, 일본도 그 피해를 보게 된다. 하지만 차이가 있다. 일본에는 ‘일부’ 피해가 있겠지만, 한국에는 국가적 재난 수준의 피해가 올 수 있다.
미국 대통령이 야스쿠니 참배한다면?
최근 이재명 대통령의 대일(對日) ‘스마일 외교’를 의아하게 바라보는 한국인이 적지 않다. 문재인 정권 시절 강경 대일 외교나 이 대통령 자신이 과거에 내놓았던 강경 발언과는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일단 위안부·징용 같은 과거사 얘기가 사라졌다. 평소 이 대통령이 주장하는 실용 외교가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일본과 부딪치면 손해’라는 생각 때문일 수도 있다. 이유야 어쨌든, 필자는 긍정적으로 본다.
하지만 이재명 정부의 대일 외교를 보면 단기 미봉책일 뿐, 근본적인 차원의 변화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도쿄에서 무슨 정책이 나왔을 때 수동적으로 반응하기보다는, 미리 대응하는 선제(先制) 외교가 필요하다.
일본은 과거사·독도·야스쿠니신사 참배 문제를 21세기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 한국은 20세기 관점에서 보고 있다. 그나마도 중국에 편승한 일본관(日本觀)이 적지 않다.
필자는 머지않아 미국 관료, 더 나아가 대통령의 야스쿠니신사 참배가 실현될 것이라고 본다. 트럼프가 일본 총리와 함께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할 경우, 한국은 과연 어떻게 대응할까?
시진핑이 다카이치에게 역사 책임을 묻고 있지만, 약발이 떨어진 지 오래다. 일본 내 리버럴 미디어조차 시진핑의 ‘과거사 발언’에 무심하다. 다카이치는 1961년생, 일본 천황은 1960년생이다. 일본 수뇌부 모두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 전쟁과는 한참 떨어져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정말 일본과의 실용 외교에 생각이 있다면, 이렇게 달라진 21세기 일본에 대한 인식부터 새로이 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경숙의 마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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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쓰시타 고노스케. 사진=파나소닉 코리아 |
다카이치를 올바로 보기 위해서는 1993년 이후 32년간 지속된 다카이치의 정치 행보를 알아야 한다. 다카이치 본인도 여러 차례 강조했지만, 다카이치의 정치 경력, 정치 철학의 출발점이 되는 것은 ‘마쓰시타 정경숙(松下政經塾·이하 정경숙)’에서의 경험이다.
필자는 31년 전인 1994년에 정경숙 15기로 입숙(入塾)했다. 정경숙에 들어간 첫 외국인이었다. 5기인 다카이치는 필자의 10년 선배다. 나이는 거의 비슷하지만, 기수가 10년이나 앞섰기 때문에 직접 대면할 기회는 별로 없었다.
정경숙에서 공부하는 동안, 다카이치에 대한 얘기를 수없이 들었다. ‘정경숙의 마돈나’라고나 할까? 정경숙의 여성 비율은 전체 졸업생(300여 명)의 10% 선이다.
필자가 입숙하기 1년 전인 1993년, 정경숙 출신 중의원(衆議員) 15명이 ‘무더기’로 탄생했다. 당시 이른바 자민당 ‘55년 체제’가 무너지면서 신당(新黨) 바람이 불었는데, 젊은 정경숙 출신 정치 지망생들이 신당에 들어가면서 대거 당선된 것이다. 정치 지망생은 아니었지만, 필자가 정경숙에 흥미를 갖게 된 가장 큰 이유도 당시 중의원 15명 당선 뉴스 때문이었다.
1기생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전 총리도 이때 첫 당선됐다. 하지만 당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사람은 바로 다카이치였다. 당시 32세의 최연소 여성 당선자였고, TV 진행자로 이미 전국적 지명도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511명의 중의원 가운데 여성 당선자가 14명에 불과해 여성 의원 자체가 매우 적었다는 것도 다카이치가 전국적 스타가 될 수 있었던 이유였을 것이다.
다카이치는 평소 자신이 정경숙을 통해 ‘정치 입신(立身)’을 굳혔고, 자신의 ‘미션’도 발견했다고 말해왔다. 다카이치는 당초 정치인이 되려고 정경숙에 들어간 게 아니었다. 정경숙 생활 1년 반이 지난 뒤부터 비로소 ‘정치 입신’을 결심했다.
지금은 교육 기간이 짧아졌지만, 다카이치나 필자가 공부할 당시 정경숙 교육 기간은 5년이었다. 정경숙에서는 5년 동안 무엇을 할까?
일단 정경숙을 만든 숙주(塾主), 마쓰시타 고노스케(松下幸之助· 1894~1989년) 연구가 기본이다. 마쓰시타는 파나소닉, 나쇼날 브랜드로 유명한 마쓰시타 그룹 창업주다. ‘경영의 신(神)’으로 불리는 인물로, 지금도 일본 경제계에서는 신화(神話)로 통한다.
‘정치가 변해야 일본이 변한다’
마쓰시타는 84세 되던 1979년, 미래 지도자 양성을 위해 사재(私財) 70억 엔을 들여 정경숙을 세웠다. ‘정치가 변해야 일본이 변한다’는 신념의 소산이었다.
정경숙에 들어가는 데는 특별한 자격이나 경력은 필요치 않다. 마쓰시타의 유지에 따라, 5년 동안 매달 월급 30만 엔과 연구비 20만 엔이 지급됐다.
정치 지망생의 경우 정경숙 졸업 전부터 지역구 정치 활동에 뛰어든다. 이름을 알리고, 현지 커뮤니티에 들어가 자신의 정책 비전을 알린다. 정경숙에서 받은 자기 월급과 연구비를 전부 정치 활동에 투자한다. 정경숙 선후배들은 서로 기부하거나 도우미 활동을 통해 도움을 주고받는다. 정경숙 선후배와의 대화를 통해 ‘정치와 돈’, 나아가 선거운동, 전술·전략에 관한 노하우도 습득한다.
정경숙은 올해 설립 46주년을 맞았다. 생전의 마쓰시타는 “문부대신(교육부 장관) 하나 나오면 (정경숙이) 성공한 것”이라고 말했다. 2025년 현재 정경숙의 성과는 마쓰시타의 기대를 훨씬 뛰어넘는다. 전체 졸업생 300여 명 중 총리 2명과 중의원, 참의원(參議員), 시장, 현지사, 지방의원, 정당 관계자 100여 명을 배출했다. 정경숙 선후배들은 정치 이념·정당이 달라도 유대(紐帶)가 남다르다.
정경숙은 도쿄에서 남서쪽으로 60km 떨어진, 쓰지도(辻堂) 주변에 있다. 그리스풍 건물에다 기숙사와 강의실을 겸비한 곳으로, 청춘의 상징인 쇼난(湘南) 바다에서 500m 떨어져 있다. 쇼난은 소설가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慎太郎)의 전후(戰後) 베스트셀러 《태양의 계절》의 무대이기도 하다. 평소에도 해풍(海風)이 강하지만, 태풍 시즌이 되면 바닷모래가 방 안까지 밀려든다.
교육은 어떤 식으로 이뤄질까? 입숙 이후 최소 1년간은 기숙사에서 집단 생활을 해야만 한다. 하루 일정은 아침 5시 반부터 시작된다. 기상과 함께 바다 백사장까지 조깅을 한 뒤, 6시 체조와 정경숙 청소에 들어간다. 거의 1시간 정도 걸리는, 종교의식에 준하는 청소다. 마쓰시타가 “대망(大望)을 논하기 전에 자기 주변부터 청소하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청소 이후 정장을 입고 아침 8시 조회에 들어간다. 강의와 공부는 9시부터 시작된다. 학문적·기능적 연구보다는 ‘먼저 제대로 된 인간이 돼라’는 수양론 강의가 대부분이다. “서로가 서로의 스승이 될 수 있다”는 마쓰시타의 말에 따라, 인성(人性) 중심 자습·자율 공부가 기본이다. 사회 각계각층의 존경받는 어른들이 찾아와, 자신의 인생 체험과 철학을 들려준다. 필자가 공부했던 시기에는, 태평양 전쟁에 참전했던 기업 총수, 1972년 일중국교정상화 당시 외교 관계자, 도쿄 의과대학 출신 컴퓨터 소프트 프로그래머 등이 정기적으로 들렀다.
마쓰시타 고노스케의 경고
1985년 가을, 정경숙을 찾은 91세의 마쓰시타는 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 5년 이후, 지구 전체에 엄청난 변화가 나타날 것이다. 일본의 미래도 불확실해질 것이고, 여러 가지 어려움이 한꺼번에 밀려들 것이다.”
1985년 일본은 버블 절정기였다. 하버드대에서는 《재팬 이즈 넘버원》이라는 책을 출간하고, 많은 이가 조만간 일본 경제가 미국을 넘어설 것으로 보았다. 아르바이트를 일주일만 해도 파리 여행이 가능하던 풍요의 시기였다. 숙생 대부분은 마쓰시타의 이 어두운 예언을 ‘설마’ 하면서 웃어넘겼다.
그러나 다카이치는 91세 노인의 예언을 놓치지 않았다. 다카이치는 마쓰시타의 예언을 듣는 순간, 자신이 미래의 일본에서 할 일이 무엇인지 생각했다고 한다. 결론은 정치인이 되어야겠다는 것이었다. 다카이치는 후일 “마쓰시타의 말을 듣기 전까지만 해도 정치는 남의 일로 생각했다”고 고백했다. 정경숙 숙생 대부분은 정치계 진출을 꿈꾸었지만, 학계·언론·사회단체로 나가는 사람도 많았다. 그러나 다카이치는 “세계가 급변하고, 일본이 어두운 시대로 접어드는 상황이라면, 정치가 일본의 희망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도달했다. 권력, 돈, 명예 때문이 아니라 마쓰시타의 예언을 듣고 미래에 대응하기 위한 자신의 ‘미션’을 깨달았기에 정치에 입문하기로 한 것이다.
당초 ‘탤런트 정치인’으로 여겨져
마쓰시타의 예언은 적중했다. 1990년 독일 통일과 1991년 구(舊)소련 붕괴로 새로운 시대, 즉 글로벌 대가 시작됐다. 하지만 일본은 도쿄 주식 대폭락과 함께 ‘일본 넘버원’ 신화가 사라지면서 ‘잃어버린 30년’이 시작됐다.
필자가 정경숙에 있던 시절, 정경숙 내에서의 다카이치에 대한 평가는 ‘탤런트 정치가’ 정도였다. TV 사회자 경력도 있고 해서, ‘한순간 반짝 빛나다가 사라져 버릴 정치인’으로 여겨졌다. 노다 전 총리는 정경숙 재학 당시 마쓰시타도 인정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다카이치를 ‘미래의 총리’라고 본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일단 일본에서 여성 총리가 탄생할 수 있을지부터 의문이었다. 사람들은 다카이치를 상냥하고 밝은 모습 때문에 모두에게 도움이 될 ‘분위기 메이커’ 정도로 생각했다.
사실 경력 면에서 다카이치는 역대 총리들 근처에도 못 간다. 처음 장관급에 오른 것은 정치 입문 13년 뒤인, 2006년이었다. 제1차 아베 내각에서 과학 기술 정책 담당 대신이 된 것이다. 아베와 다카이치는 1993년 중의원에 첫 당선된 정치 동기생이다. 아베가 여러 요직을 거치면서 총리에 오를 때까지 다카이치는 장관 경험을 한번도 하지 못했다. 정치 동기 아베 덕분에 처음으로 장관에 오른 셈이다.
‘지독한 일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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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베 신조 전 총리와 총무장관 시절의 다카이치 사나에(앞줄 오른쪽). 2014년 9월 3일 도쿄 총리 관저에서 찍은 사진이다. 사진=AP/뉴시스 |
필자가 알기에 중의원 대부분은 정무조사회장 자리를 피한다. 수많은 정책과 하루 종일 씨름을 해야만 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권력, 돈, 사교, 명예와는 거리가 먼, ‘정책 오타쿠’ 자리다. 당시 다카이치는 아베 정권의 핵심적인 ‘우향우(右向右) 정책’들을 ‘직접’ 만들어냈다.
지난 11월 7일, 다카이치의 새벽 3시 관저 출근이 세계적 뉴스가 됐다. 국회 답변을 위해 새벽 3시부터 참모들과 ‘볜쿄카이(勉強會·공부회)’에 들어간 것이다. 볜쿄카이는 모여서 떠들고 마시면서 세(勢)를 과시하는 한국 정치판의 ‘공부 모임’과는 다르다. 다카이치는 이날 새벽 3시부터 6시 반까지 공부를 끝낸 뒤 오전 국회 답변에 응했다.
다카이치는 ‘지독한 일벌레’로 유명하다. 정무조사회장 재직 당시, 아예 자민당 건물 안에서 살았다고 한다. ‘일벌레’의 운명일까? 다카이치는 2021년 기시다 정권 때에 다시 정무조사회장으로 발탁된다.
다카이치를 ‘천한 웃음이나 파는 싸구려 총리’라고 보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러나 정책 토론에 들어갈 경우, 다카이치를 능가할 수 있는 사람이 일본 열도 전체를 통틀어 몇 명이나 될지 궁금하다. 다카이치의 발언과 정책은 5년 동안 자민당 정책 최고책임자로 일하면서 체득한, ‘오타쿠 일벌레’로서의 확신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원칙과 신념의 정치가’ 다카이치의 기반이다.
‘미 퍼스트’는 글로벌 대세다. ‘위 아 더 월드’는커녕, ‘한·미·일 공조(共助)’ ‘한·미·일 3각 동맹’이란 말도 슬그머니 사라지고 있다. 트럼프는 경주 한미정상회담 당시 ‘한미동맹’이 아닌, ‘한미 커뮤니티(community)’란 단어를 사용했다. 이것도 각자도생(各自圖生), ‘미 퍼스트’ 시대의 도래를 보여주는 사례일 것이다. 다카이치의 ‘재팬 퍼스트’도 빠른 속도로 아시아와 전 세계로 퍼져나갈 것이다.
‘한·미·일 공조’라는 말이 사라지고 있다
당연한 수순이지만, 곧 ‘코리아 퍼스트’도 등장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을 보면 헷갈린다. 한국이 아니라 북한이나 중국을 우선시하는 정책과 발언이 난무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APEC 정상회담 직전 미사일을 발사하자, 이재명 대통령은 “북한이 오랫동안 잘 참았다”라고 말했다. 서해 침탈을 일상화하고 있는 중국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반중 시위 금지법’ ‘중국 관광객 노비자’ ‘중국제 태양광·풍력 장비 수입’ 정책을 보면 ‘차이나 퍼스트’로 나가고 있는 듯하다. 이래서야 ‘코리아 퍼스트’ 정책이 나온다고 해도 그게 얼마나 힘을 받을 것인지, 정말 국익(國益)에 도움이 될 것인지 의문이다. ‘정권 지지율 띄우기’용 ‘코리아 퍼스트’ 정책은 결국 국민과 국가에 손해가 될 것이다.
‘다카이치 칼라’는 분명하고 확실하다. ‘착한 웃음’이 깔리겠지만, 원칙과 신념으로 밀어붙일 것이다. ‘실용 외교’를 내세워온 이재명 정부의 실력을 보여줘야 할 무거운 숙제가 기다리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