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취재] 제15회 鄕軍 대학생 국토대장정 : 월간조선

6·25전쟁 75주년을 맞아 미국·호주에서 온 청년 등 국내외 62개 대학 남녀 학생들이 155마일(약 250km) 휴전선을 따라 비무장지대(DMZ)를 걷고 남침용 땅굴을 오르내리며 안보 최일선을 체험했다.

대한민국재향군인회(향군·회장 신상태)가 주관한 ‘제15회 대학생 휴전선 전적지 답사 국토대장정’(이하 국토대장정·단장 김성래 향군 안보처장)에 참가한 대학생·스태프 등 120명은 강원도 최북단 동부전선의 고성 금강산전망대를 시작으로 북한 땅을 내려다볼 수 있는 서쪽 끝 김포 애기봉전망대를 거쳐, 천안함이 전시된 경기 평택의 해군 2함대 사령부에 이르기까지 장맛비와 폭염으로 오락가락하는 날씨에도 걷고 뛰며 7박 8일(6월 23~30일)을 보냈다. 전세버스로 이동하며 총 1033km, 하루 평균 약 130km를 이동했고 이 중 60.2km는 도보 행군을 했다. 이들은 전방 사단 신병교육대(신교대)에서 먹고 자며 점호도 하고 불침번도 섰다.

15회째… 국가보훈부 지원으로 더 풍성해져

신상태 향군회장(오른쪽)이 제15회 대학생 휴전선 전적지 답사 국토대장정을 이끌 김성래 단장에게 국토대장정기를 수여하고 있다.

국토대장정은 2008년 제1회를 시작으로 올해로 15회째를 맞았다. 코로나19로 인해 2020년부터 2022년까지는 열리지 않았다. 향군 국토대장정은 전방 군부대에서 숙식하며 안보 견학을 할 수 있다. 향군은 지원자 가운데 심사를 거쳐 참가자를 선발하는데 참가비는 모두 무료이며 대장정에 필요한 물품도 모두 제공한다. 이는 국가보훈부·국방부·국방홍보원의 지원 덕분이다. 향군 관계자는 “국가보훈부가 적극 후원한 덕분에 이번 15회 국토대장정은 예년보다 다양한 참가자와 풍성한 체험으로 이뤄졌다”고 했다.

국토대장정 첫날인 6월 23일, 대원들은 국토대장정에 필요한 물품이 한데 담긴 배낭을 지급받았다.

6월 23일(1일 차) 정오를 넘길 무렵 서울 서초구 양재역 부근 향군본회 회관 앞은 청년들로 가득했다. 이들과 8일을 함께할 전세버스(중앙고속) 세 대도 국토대장정 대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에 오른 대원들은 강원도 최북단 고성으로 가는 길목인 홍천휴게소를 거쳐 오후 4시쯤 통일전망대 출입신고소에 도착했다.

대원들에게는 속을 가득 채운 배낭이 지급됐다. 전문 산악인들이 맬 법한 등산용 배낭에는 조끼부터 브랜드 티셔츠(3장), 반바지, 등산모자, 스카프, 우의, 침낭, 선크림, 태극기, 토시, 화장지 등 7박 8일 동안 먹고 자는 데 필요한 물품이 담겼다.

12개로 조(組)를 편성하고 조장과 부조장을 뽑고는 조별로 구호도 만들었다. 행군할 때 앞장서서 태극기와 향군기, 국토대장정기를 들 기수(旗手)도 뽑았다. 대원들은 2일 차에 있을 출정식 예행연습도 했다. 동해를 바로 옆에 둔 금강산콘도에 짐을 풀고는 저녁 식사를 한 뒤 개인 정비와 점호를 처음 가졌다.

6월 24일(2일 차) 대원들은 고성 통일전망대 출입신고소 인근에 있는 ‘호림유격전적비’로 걸어가 참배했다. 국토대장정의 첫 공식 일정이었다. 참배를 마치고는 버스를 타고 금강산전망대(717OP)로 이동했다. 717OP에 도착한 대원들은 북한을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게 신기한 듯 연신 북녘을 바라봤다. 10분이라는 짧은 관람 시간과 흐린 날씨가 아쉬웠지만 두 눈에 금강산과 구선봉, 해금강, 북한군 초소를 조금이라도 더 담으려고 애썼다.

“75년 전 희생 가슴 깊이 새겨야”

국토대장정 2일 차인 6월 24일, 출정식을 마친 대원들이 신상태 회장을 비롯한 향군 관계자들의 배웅을 받으며 행군에 나서고 있다.

금강산전망대에서 내려온 대원들은 통일전망대 앞 광장에서 출정식을 가졌다. 국토대장정 출정식은 6·25 기념식이 거행되는 장충체육관이나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등에서 주로 열렸으나 올해는 분단 현실을 직접 체감할 수 있는 최전방 현장에서 개최됐다. 태극기와 향군기, 국토대장정기, 12개 조의 조기(組旗)까지 총 15개 깃발이 동시에 움직이며 향군 신상태 회장에게 출정 신고를 했다. 신 회장은 이렇게 답했다.

“75년 전 조국의 운명이 위태로웠던 그날, 수많은 청년이 조국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쳤습니다. 이들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기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존재합니다. 우리는 이날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들의 희생을 가슴 깊이 새겨야 합니다. 이제 이 숭고한 희생정신을 계승할 주역은 바로 이 자리에 있는 여러분입니다.”

출정식이 끝나자 대원들은 통일전망대에서 제진검문소까지 약 5km를 행군했다. 국토대장정에서의 첫 행군을 마치고는 제진검문소에서 버스를 타고 두 번째 밤을 보낼 인제 12사단 신교대로 향했다.

군부대는 버스에서 내려 행군으로 입소

대원들은 부대 도착을 앞두고 버스에서 모두 내려 배낭을 메고 복장을 갖추고 부대까지 걸어 들어갔다. 버스를 타고 부대까지 들어갈 수 있음에도 이렇게 하는 이유는, 부대 방문 시 도보 입소를 원칙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부대 입소를 앞두고는 1km 이상 행군했다.

12사단에서 저녁 식사를 마친 대원들은 강당에 모여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주제로 한 안보 교육을 받았다. 이날 처음으로 불침번 근무가 시작됐다. 2인 1조로 1시간씩 교대했다. 불침번을 처음 경험하는 대원들은 졸린 나머지 멍하게 앉아 있거나 옅은 불빛 아래서 진중도서를 읽었다.

6월 25일(3일 차) 대원들이 가장 기대했던 일정인 인제 내린천 래프팅이 예정된 날이었다. 하지만 새벽에 내린 비로 안전사고 위험이 있어 래프팅은 취소되었다. 아쉬움을 남긴 채 래프팅 대신 춘천으로 이동했다. 대원들은 춘천대첩 기념공원에서 출발해 에티오피아 한국전 참전기념관까지 행군을 시작했다. 행군을 앞두고 비가 내리는 바람에 다들 우의를 입었다. 우의 속은 습도가 높고 통풍이 원활치 않아 힘들 텐데도 대원들은 지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대원들은 에티오피아 참전기념비 앞에서 묵념하고 참전기념관을 둘러봤다.

미국 조지아주에서 온 홍햇님 씨는 미국에서 태어났다. 외할아버지가 베트남전 참전 용사다. 홍씨는 향군 해외 지부에서 추천을 받아 이번 국토대장정에 참가했다. 춘천에 있는 에티오피아 참전기념비를 찾아 추모 묵념을 한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아프리카에서, 저 멀리서 한국을 돕기 위해 왔다는 게 아주 인상적이었어요. 너무나 고마운 일이잖아요.”

래프팅 대신 춘천 닭갈비

국토대장정 4일 차인 6월 26일, 7사단 신교대를 방문한 대원들이 군 장비를 체험하고 있다.

래프팅 대신 대원들에게 돌아간 혜택은 예정에 없던 ‘춘천 닭갈비’였다. 닭갈비를 먹고는 공군 제8전투비행단(8전비)이 있는 원주로 이동했다. 8전비는 대한민국 공군 특수비행팀 ‘블랙이글스’가 있는 곳이다. 블랙이글스의 곡예비행은 볼 수 없었지만 강당인 ‘김도현관’에서 공군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시간을 가졌다. 김도현관은 블랙이글스 소속으로 곡예비행을 하던 중 순직한 고 김도현 중령을 추모하기 위해 이름 붙인 공간이다. 김도현관에 모인 대원들은 현역 군인들과 질문하고 답하는 시간도 가졌다. 공군을 체험한 대원들은 공군에서 주는 저녁을 먹고 군가 ‘멋진 사나이’를 배우는 시간도 가졌다.

호주에서 온 이희주 씨가 건빵을 들어 보이며 웃고 있다.

6월 26일(4일 차) 8전비에서 하루를 보낸 대원들은 다시 북쪽으로 이동해 육군 7사단 관할인 화천으로 갔다. 화천 읍내를 지나 더 올라가서 케이블카를 타고 백암산 케이블카 전망대로 이동했다. 이곳은 민간인통제선(민통선) 안에 있는 유일한 케이블카다. 평화의댐과 북한의 금강산, 금강산댐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백암산은 6·25전쟁 마지막 전투인 금성전투가 치러진 곳으로 가곡 ‘비목(碑木)’의 현장이기도 하다. 전망대에 올랐지만 날이 흐려 북한 지역을 볼 수 없어 아쉬워하는 대원이 많았다.

백암산에서 내려와 평화의댐으로 이동했다. 이곳에서 점심을 마치고 안동철교를 건너 7사단 신교대로 이동했다. 신교대에서는 대원들이 군용 장비를 만져 보고 체험하는 시간을 가졌다. 군 경험이 없는 대원들이 가진 궁금증은 같은 조에 있는 군필자 대원이 설명해 해결하거나 즉석에서 신교대 관계자에게 물어보며 해소했다.

야간 행군 훈련병에게 “파이팅” 외치자 훈련병 “감사합니다”

7사단 신교대는 식당이 언덕 위에 있다. 우스갯소리로 “힘들게 올라가 밥을 먹었는데, 언덕을 내려오면 소화가 다 되는 것 같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저녁을 먹고 생활관(숙소)으로 돌아갈 때쯤 5주 차 훈련병들이 완전군장을 하고 야간 행군을 떠나고 있었다. 일부 남성 대원들이 이를 지켜보며 “파이팅! 파이팅!”을 외치자 훈련병들은 “감사합니다”라고 화답했다. 이들 훈련병은 오후 7시에 출발해 20km가량을 행군한 뒤 새벽 1~2시에 복귀했다.

7사단 신교대에 짐을 푼 대원들은 이날 밤부터 본격적인 장기자랑 준비에 돌입했다. 빡빡한 일정에서도 저녁을 먹고 한데 모여 해단식 전날 치러질 행사를 열심히 준비했다. 수줍음이 많은 대원, 춤을 전혀 모르는 대원들도 하나가 돼 함께 배우며 친해졌다.

6월 27일(5일 차) 5일 차 첫 일정은 파로호 안보전시관에서 시작했다. 파로호의 옛 명칭은 대붕호(大鵬湖)였다. 6·25전쟁 당시 국군 6사단이 중공군 3개 사단의 공세를 막아 낸 뒤 화천까지 쫓아가 섬멸하자 이승만 대통령이 이를 기념하기 위해 화천저수지를 파로호(破虜湖·오랑캐를 대파한 호수)로 명명했다.

이날은 10km가량 행군했다. 화천 미륵바위에서 붕어섬을 돌아 춘천 가는 길목까지 가는 코스였다. 예비역 육군 중령으로 올해로 3년째 향군 국토대장정을 책임지고 있는 김성래 단장은 항상 행군에 앞서 “향군!”이라는 구호를 선창했고 대원들은 “위 아 더 원(We are the one·우리는 하나)”이라고 소리쳐 화답했다.

8조 조장 김수환 씨는 비가 내리는 데도 조기를 들곤 열심히 걸었다. 김씨는 공군 병장으로 제대했다. 복학 후 한 학기를 열심히 보냈는데 번아웃이 왔다고 한다. 평소 걷는 걸 좋아해 국토대장정에 지원했다. 김 씨는 “어젯저녁 7사단 신교대에서 야간 행군에 나서는 훈련병을 보고는 과거 훈련병 시절의 나를 만나는 기분이 들었다. 그땐 왜 그렇게 겁을 먹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김 씨는 “자연을 체험하며 걷다 보니 복잡했던 생각이 정리되고 위로도 받았다”고 했다.

“땅굴 판 것도 대단하지만 찾아낸 게 더 대단”

강원 철원 제2땅굴을 견학 중인 대원들이 허리를 숙여 가며 비좁은 땅굴로 들어가고 있다.

화천 붕어섬에는 대원들을 위한 커피차(車)가 마련돼 있었다. 커피와 음료를 받아 들고 짧은 휴식을 가진 후 행군을 이어 갔다. 이날도 약 10km를 걷고는 버스를 이용해 15사단 신교대로 이동했다. 신교대를 2km쯤 남겨둔 지점에서 대원 모두가 차에서 내려 배낭을 메고 부대로 행군해 들어갔다.

신교대에 들어갈 때마다 훈련병들이 대원들을 멀리서 환영해 줬다. 훈련병들은 통제된 생활을 하기에 대원들과 대화는 할 수 없었지만, 생활관에서 창문을 열고 부대로 들어오는 대원들을 향해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대원들도 이에 화답하며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강원 철원 월정리역에서 추억을 남기고 있는 대원들.

6월 28일(6일 차) 이날도 날씨는 좋지 않았다. 철원에서 제2땅굴 체험과 옛 노동당사 견학으로 일정을 시작했다. 대원들은 비좁은 땅굴에 수시로 머리를 부딪쳤다. 안전모를 쓴 덕분에 별 탈은 없었다. “몇 번 부딪친 것 같냐”고 물으니 대부분 “10번 이상 부딪친 듯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남침을 위해 땅굴을 파내려 온 것도 대단하고, 이 땅굴을 찾은 국군은 더 대단하다”고들 했다.

국토대장정 대원들이 백마고지 전적비를 참배하고 있다.

대원들은 백마고지 전적비를 찾아 묵념하고 자유 대한민국을 위해 희생한 이들을 추모하는 시간을 가졌다. 전적비로 향하는 길목에는 자작나무 625그루가 심어져 있다. 백마고지는 철원 대마리(大馬里)에 있는데, 6·25전쟁 당시 포격으로 고지가 깎여 나가 정상이 하얗게 변한 모습이 마치 백마가 누워 있는 것 같대서 백마고지라는 이름이 붙었다.

DMZ 철책 따라 행군

장마철을 맞아 힘들게 행군을 이어 간 대원들은 민통선을 넘어 철조망 사이로 ‘59통문’이라는 표식이 적힌 철문에 도착했다. 이곳은 육군 5사단 관할 지역이다. 이 통문을 지나면 비무장지대(DMZ)다. 이 때문에 이곳은 사진 촬영도 금지됐다. 북쪽 산 정상에는 아군 GP(최전방 감시초소)가 안갯속에 자리하고 있었다. 대원들은 5사단 장병들의 호위를 받으며 행군을 시작했다. 코스는 ‘DMZ 평화의 길’ 공작새능선 구간이다. 남방한계선을 따라 서쪽으로 걷는 코스다. 6·25 발발 전까지만 해도 북한 땅이었다. 144초소 앞에는 ‘과거 적 전투 지역’이라는 표식이 있었다.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하며 역곡천(逆谷川)을 끼고는 공작새능선 3km가량을 걸었다. 역곡천은 북한 평강군에서 발원해 남북한을 오가며 흐른다. 화살머리고지를 감싸 흐른 뒤 연천 북방에서 임진강으로 합류한다. 대원들은 58통문을 앞두고 능선에서 빠져나와 이곳에서 유일하게 사진 촬영이 허락된 곳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날 공작새능선 코스가 대원들이 국토대장정 중 가장 만족스러워 한 행군이었다.

이날 밤 대원들이 머문 곳은 철원 6사단 신교대였다. 피곤할 텐데도 대원들은 하루 앞으로 다가온 장기자랑을 위해 장마철 습도 높은 날씨에도 땀 흘리며 안무를 가다듬었다.

유형석 씨는 지난해 10월에 제대했다. 바로 이곳 6사단 신교대에서 신병 교육훈련을 받았다. 국토대장정 일정 중 6사단 신교대가 있는 것을 보고 지원했다. 유 씨는 “6·25전쟁 75주년을 기념하는 뜻깊은 행사이자 군필자로서 선후배 전우분들에 대한 존경심을 가슴에 두고두고 새겨 기억하고 싶어 참가했다”고 했다. 그는 “국토대장정을 통해 좋은 사람들과 교류하고 연락하며 좋은 인연을 이어 가고 싶다”고 했다.

스타벅스 음료 들고 북한 땅 내려 봐

국토대장정 마지막 밤인 6월 29일 대원들이 조별 발표를 하고 있다.

6월 29일(7일 차) 철원 6사단 신교대에서 나온 대원들은 경기 파주로 이동했다. 역시나 행군을 시작하기 위해 버스에서 내리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이날 대원들이 걸어야 하는 길은 진흙탕으로 변해 있었다. 물웅덩이와 진창을 피해 걷다 보니 행군 속도가 평소보다 절반가량 더 걸렸다. 임진각에 도착한 대원들에게는 자유시간이 1시간가량 주어졌다. 이들은 인근 놀이공원에서 바이킹을 함께 타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김포 애기봉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김포 애기봉전망대에 올랐다. 날은 흐렸지만 망원경을 이용해 북한 선전마을을 살펴볼 수 있었다. 마을엔 썰렁하게 건물만 서있었다. 일부 대원들은 얼굴을 망원경에 댄 채 “저기 북한 사람이 보인다”고도 했다. 애기봉전망대에는 스타벅스가 있다. 대원들은 한 손에 음료를 들고 1.5km 떨어진 북한 땅을 내려다보며 분단 현실을 체감했다.

애기봉에서 내려와 경기 화성에 있는 덕산스포텔로 이동했다. 이곳에서 조별 발표와 장기자랑, 회식을 하며 15회 국토대장정의 마지막 밤을 함께했다. 조별 발표 주제는 ‘우리의 영웅들’. 국토대장정을 하며 느낀 소감을 발표하는 시간이었다.

“안보는 남의 일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일”

국토대장정 대원들이 틈틈이 연습한 장기를 자랑하고 있다.

6조 이하은 씨가 발표한 내용 중 일부다.

“걸으면 걸을수록 우리가 밟고 있는 이 땅, 이 길이 그냥 만들어진 게 아니라는 걸 느꼈습니다. 그동안 안보와 평화는 저희에게 너무 멀게만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국토대장정에서 깨달았습니다. 안보는 총과 탱크 같은 무기뿐만 아니라 누군가를 지키겠다는 책임감이라는 것, 평화는 아무 일도 없는 상태가 아닌, 소중한 걸 지키기 위한 희생의 결과라는 것을요.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국방의 최전선에서, 또 누군가는 일상에서 조용히 나라를 지키고 있습니다. 안보는 남의 일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일입니다. 고립된 최전방에서 묵묵히 복무 중인 장병들에게 감사함을 느꼈습니다. 애국심이라는 말이 더 이상 추상적인 단어가 아닌, 우리 마음속에 자리 잡은 진짜 감정이라는 걸 느꼈습니다. 우리의 관심이 행동으로 이어질 때 평화가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각자의 방식으로 대한민국에 보답하겠다는 마음을 더 단단히 다질 수 있었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국토대장정을 통해 우리는 수많은 영웅을 만났습니다.”

대원들은 조별로 포스트잇 메모지에 참전 용사와 호국 영웅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은 메시지를 적었다. 이 메시지는 국토대장정에서 대원들이 도보로 이동한 구간의 걸음 수마다 1원씩 적립해 만든 기부금(약 1500만원)과 함께 6·25전쟁 참전 국가유공자들을 위한 사업에 전달될 예정이다.

한미 장병과 함께한 初戰 유엔군 추모

국토대장정 대원들과 한미 장병이 우정을 다지는 시간을 가졌다.

6월 30일(8일 차) 마지막 날은 경기 오산 죽미령 유엔군초전기념관에서 한국군·미군 장병들과 함께 시작했다. 이곳은 6·25전쟁 당시 한국으로 급파된 스미스 특수임무대가 1950년 7월 5일 북한군과 처음 교전한 곳이다. 유엔군 참전을 알리는 초전(初戰) 75주년을 맞아 한미 장병의 희생을 기억하고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확인하고자 한국군 51사단 기동대대 장병 30명과 주한 미8군 장병 30명이 함께했다. 대원들과 한미 장병들은 기념관 옆 유엔군초전기념비에서 함께 추모 묵념을 하고 죽미령 평화공원에 함께 올랐다.

미8군을 대표해 왓킨스(Watkins) 주임원사는 “30명이 아니라 3000명을 (이번 행사에) 데려와야 했다. 역사를 기억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국토대장정 대원들과 한미 장병이 해군 2함대 사령부에 전시된 천안함을 견학했다.

대원들과 한미 장병은 평택의 해군 2함대로 이동해 천안함 용사를 추모하고 천안함을 견학하는 시간도 갖고 해단식까지 함께했다.

미국 텍사스에서 온 이의진 씨는 “천안함을 보고는 슬펐고 안타까웠다. 항상 대비를 잘해 놓아야 실전에서 잘 대응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이하은 씨는 언론학을 전공한다. 3학년인데 졸업 후 여군 장교로 입대하는 게 꿈이다. 이 씨는 미리 군 생활도 체험하고 다양한 경험을 통해 성장하고 싶어 지원했다. 군을 민간에 알리는 홍보 활동도 많이 한 덕분에 육군참모총장상도 받았다. 그는 장기자랑 준비 때도 안무에 자신이 없는 조원들을 위해 솔선수범하며 시범을 보였다. 그가 속한 조는 치어리딩을 준비했는데 “손을 펴지 말고, 팔꿈치를 펴라” “동작을 크게 크게 하라”고 지도했다. 버스를 타고 이동할 때면 영상을 보며 안무를 공부하고 이를 다시 조원들에게 알려줬다. 국토대장정 5~8조를 맡은 김혜영 부단장은 이 씨를 ‘분위기 메이커’라고 했다.

현역·예비역 병사부터 백혈병 극복한 이들까지

국토대장정에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이들이 참여했다. 현역 병사부터 예비역 병장, 군사학과 재학생, 군 간부 입대 예정자, 미국·호주 등지에서 온 해외 참가자, 백혈병을 극복하고 참가한 이들까지 다양하다.

미국에서 대학에 다니는 김정환 씨는 제201신속대응여단에서 복무했다. 그는 “군 복무 시절 향군 국토대장정을 소개하는 기사를 접하고는 ‘기회가 되면 꼭 참여하겠다’고 생각했다”며 “제대 후 실제 참가해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어 뜻깊었다”고 했다.

현역 병장 신분으로 휴가를 온 A씨는 현재 전방 GP에서 근무한다. 평소 DMZ에 대해 궁금한 게 많았는데 다른 부대, 다른 곳은 어떨지 궁금해서 지원했다. A씨는 “이번 국토대장정을 통해 6·25전쟁 당시 참전 용사들이 얼마나 많은 희생을 했는지 알게 됐다”고 했다.

“공군 8전비를 방문했을 때 김도현 중령의 희생정신을 듣고는 이것이 바로 군인정신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평시에도 국민을 위해 희생하는 군인상(像)을 봤기에 인상적이었습니다. 제2땅굴에 들어갔을 땐 제 동료인 수색대대원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알게 됐습니다. ‘아직도 발견하지 못한 땅굴이 많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국토대장정에 오기 전까지는 제가 근무하는 고지를 단순히 ‘지켜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는데, 그 배경을 이해하고는 왜 더 잘 지켜 내야 하는지 알게 됐습니다.”

3기 향군 대학생 기자 활동을 하는 주민우 씨는 “옛 청춘이 피로 지켜 낸 자유와 평화의 발자취를 직접 느끼고, 지금을 사는 청춘들이 땀과 노력으로 가꾸어 나가는 모습을 경험해 보고 싶어 지원했다”고 했다. 주 씨는 “6·25전쟁에서 희생된 외증조할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동작동 국립현충원에 다녀온 뒤로 ‘후손으로서 무엇인가 해야겠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며 “아직 증조할아버지의 유해를 찾진 못했지만, 증조할아버지의 영혼이 내가 걷는 155마일 휴전선 어딘가에 잠들어 계실 거라는 믿음을 갖고 전방을 걸었다”고 밝혔다.

끝까지 함께한 120명

7박 8일간의 국토대장정을 마친 대원들이 해군 2함대 충무관 앞에서 8일 동안 썼던 모자를 하늘로 힘껏 던지고 있다.

향군 국토대장정은 101명이 대원으로 참가해, 2명을 제외한 62개 대학 99명이 완주했다. 김성래 단장을 비롯한 스태프 등까지 120명이 마지막까지 함께했다. 13회부터 15회까지 3년 연속 국토대장정을 성공적으로 이끈 김 단장은 단원들에게 “의지가 결국 능력을 만들어 내고 개인과 공동체 발전에도 긍정적 영향을 준다”며 “힘들어도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완주하자. 여러분들의 고생이 결코 헛되지 않다. 이곳에서 좋은 인연을 맺고 건강하고 아름다운 인생을 만들어 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격려했다. 김 단장은 “평화가 결코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미래 안보 역군(役軍)으로 성장하는 젊은 대학생들을 보면서 큰 보람을 느꼈다”고 했다.

이번 향군 국토대장정에서는 ‘홈커밍 데이’도 열렸다. 5회, 6회, 14회에 대원으로 참석한 이들이 1박 2일 일정을 함께했다. 5·6회 대원과 스태프로 참가한 고려진 씨는 이번에 다시 스태프로 참가했고, 6회 대원으로 참여했던 오진희씨와 오윤정씨는 남편과 아이 손을 잡고 함께 참석했다.

해단식에서 신상태 향군회장은 “여러분이 새긴 국가에 대한 사랑과 공동체 의식, 자유와 평화를 지키려는 결의는 앞으로 여러분이 살아갈 인생의 가장 큰 자산이 될 것”이라며 “재향군인회는 앞으로도 여러분들과 같은 청년 인재들이 올바른 국가관과 안보관을 갖추고 성장할 수 있도록 계속 응원하고 함께할 것이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