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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튀’ 코인 거래소 트래빗 사건

“임신한 아내가 죽고 싶다고, 이혼하자고…”

글 : 김광주  월간조선 기자  kj961009@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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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해자 2만3000여 명, 피해 규모 145억원 넘어… 5년 만에 1심 판결 나와
⊙ “수수료 80%를 티코인 홀더 회원들에게 돌려주는 차별화된 수익 셰어 실시” 광고
⊙ 허위 입력한 원화 포인트로 이용자들의 가상화폐 매수… 사들인 가상화폐를 다시 매도해 실제 원화를 확보한다는 계획
⊙ 원화 출금 요청 대응하지 못할 것 예상되자 허위 보이스피싱 신고시켜 집금계좌에서 출금 불가능하게 해
⊙ “도저히 정상적이라고 볼 수 없는 방법으로 거래소 운영”(1심 재판부)
⊙ “기획 파산이라기엔 전무이사 P씨도, 대표이사 S씨도 일을 너무 열심히 했어요”(트래빗 전 직원)
⊙ ‘내 돈 돌려달라’ 요구에 “제가 무슨 돈이 있어요”(트래빗 이사 H씨)
사진=연합뉴스
  “그새 애가 다 컸으니까요.”
 
  5년이 걸렸다. 가상화폐 거래소 ‘트래빗’ 대표이사와 전무이사에게 각각 징역 5년에 추징금 50억원이 선고되기까지. 질질 끌던 형사 재판, 이마저도 1심이 끝났을 뿐이다. 돈을 돌려받기 위해선 따로 민사소송을 걸어야 했다. 지난 4월 25일 오후 2시50분경 서울서부지방법원 418호 법정 앞에서 만난 A(42)씨는 일정표에 적힌 ‘오늘의 재판 안내’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트래빗으로부터 4억7000만원이 넘는 돈을 돌려받지 못한 상태다.
 
  두 달 전인 2월 15일, 서울서부지방법원 제12형사부(재판장 권성수)는 배임, 사기, 사전자(私電子) 기록 등 위작(僞作), 위작 사전자 기록 등 행사, 위계(僞計)공무집행방해교사 혐의로 기소된 트래빗 대표이사 S씨 및 같은 혐의로 기소된 트래빗 전무이사 P씨에게 “투명하고 공정한 가상화폐 거래소 운영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훼손하였다”며 “엄벌이 불가피하다”고 질타했다. 이들은 이용자들의 현금과 가상화폐를 빼돌리고 거래소 데이터베이스(DB)를 조작했다. 또 이용자들의 출금 요청에 응하지 않을 핑계를 만들고자 아르바이트 직원에게 허위로 보이스피싱 신고를 하라고 시켰다.
 
  최근 가상화폐 거래소 ‘먹튀 주의보’가 내려졌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자금 부족 등으로 폐업하는 가상화폐 거래소가 늘면서 갑작스레 출금을 중단하는 거래소들이 발생하고 있다는 얘기다. 여러 사례가 있지만, 임원들이 적극적인 범죄 행위에 나서다 결국 그에 따른 중형까지 내려진 사례는 트래빗이 대표적이다. 트래빗의 파산 신청일인 2019년 6월 28일 기준, 트래빗으로부터 예치금을 돌려받지 못한 개인 채권자 수만 해도 2만3174명이다. 이들이 돌려받아야 할 돈의 총액은 102억원이 넘는다. 트래빗 측이 이날 서울회생법원에 제출한 파산 신청서에 따르면, 500만원이 넘는 돈을 돌려받지 못한 채권자 249명 가운데 민사소송을 제기해 지급 명령을 확정받은 이들은 11명에 불과하다. 1심 판결문을 통해 드러난 이 사건의 총 피해 규모는 145억원이 넘는다. 기자는 재판 과정을 지켜보며 피해자들과 트래빗 임직원들을 만났다. 이를 통해 가상화폐 거래소의 사기 수법을 알아보았다.
 
 
  8개월 만에 출금 중단
 
  트래빗이 설립된 2017년 12월 당시 법인 설립 자금은 2억8000만원 외에 특별한 자금이 없었다. 그에 비해 주목도는 높았다. 언론 보도 등에 따르면 트래빗은 단독 상장한 코인 25억원어치의 당일 완판 기록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2018년 11월 21일경 거래소의 수입은 한 달에 약 1200만원이었다. 반면 거래소를 운영하는 데 드는 비용은 한 달에 2억~4억원이었다. 추가로 거액의 투자가 이뤄지지 않는 이상 거래소를 운영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거액의 투자금을 유치하지 못한 트래빗은 결국 자금 부족으로 거래소를 개장한 지 8개월 만인 2019년 3월경 이용자들의 원화 출금을 전면 중단, 같은 해 6월경 파산 신청을 했다.
 

  트래빗은 작동 구조부터 다른 가상화폐들과 달랐다. 블록체인 기반의 가상화폐는 전송 내역을 저장한 전자 정보, 즉 거래원장을 여러 컴퓨터에 분산하여 저장시키고 검증한다. 반면 트래빗은 중앙 서버를 두고 거래소 이용자들의 현금 입출금, 가상화폐 입출금 및 거래를 단독으로 저장하고 검증하는 방식으로 운영됐다. 거래소 운영자가 제3의 기관으로부터 감시를 받지 않는 셈이다. 따라서 거래소의 계정에 현금 또는 가상화폐가 입금된 사실이 없어도 서버의 DB에 입금 내역을 임의로 수정하는 위작이 쉽게 가능했다. 이용자들로선 거래 시스템에 게시되는 정보를 믿을 수밖에 없었다. 입금 내역을 수정했다는 공지는 없었다.
 
 
  “급하게 푸시하면서 개장”
 
A(42)씨가 4월 25일 오후 2시50분경 서울서부지방법원 418호 법정에 들어가기 전 일정표에 적힌 ‘오늘의 재판 안내’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사진=김광주
  기술적 하자(瑕疵)도 심각했다. 트래빗 기술이사(CTO)로 재직하며 개발 및 시스템 운영을 총괄했던 임원은 재판부에 “거래소 오픈(개장) 당시 거래 기능은 작동했지만, 입출금 영역에서 조금씩 오류가 있어서 수작업으로 계속 대응을 해야 했다”며 “개발자 입장에서는 아직 테스트가 조금 더 필요한 단계라고 생각했지만, 급하게 푸시되면서 개장됐다”고 진술했다. 연구개발실장으로 재직했던 직원은 ‘거래소 개장 전 내부에서 직원들이 쓰는 컴퓨터와 서비스가 운영되는 서버를 분리하는 망 분리도 필요하다고 제안했었으나 퇴직 시까지 이뤄지지 않았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외부 기관도 우려를 나타냈다. 트래빗 개장 직후인 2018년 8월경 외부의 정보 보안 전문기업은 보고서를 통해 “(트래빗의) 사용자 인증은 보안 수준이 20%로 불필요한 계정 및 사용하지 않는 계정이 존재하고, 계정이 등록되어 있지 않은 그룹이 존재하여 취약”하다고 진단 내렸다.
 
  트래빗 대표이사 S씨와 전무이사 P씨는 무책임한 모습을 보였다. 1심 판결문에 따르면 이들은 주식회사를 운영하면서 재무제표나 손익계산서 작성의 기초 자료가 되는 매출·영업이익을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 S씨는 수사 기관에서 ‘트래빗 시스템상 수익이 얼마가 나는지 정산이 안 됐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P씨도 “트래빗 거래소의 시스템상 원화나 가상화폐가 입금된 내역도 조회가 정확히 안 되는 상황이었고, 그래서 수익이 얼마인지 알 수 없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재판부는 “도저히 정상적이라고 볼 수 없는 방법으로 거래소를 운영했다”고 판단했다.
 
 
  DB 조작·보이스피싱 허위 신고
 
  앞서 언급했듯, 트래빗은 적자에 허덕였다. 2018년 10월 30일경부터는 트래빗의 집금계좌(이용자들의 예치금을 보관하는 계좌)에 원화 잔고가 부족한 상황이 돼버렸다. 대표이사 S씨와 전무이사 P씨는 P씨가 등록한 계정으로 100억원의 원화 포인트를 허위로 입력했다. 허위로 입력한 원화 포인트로 이용자들의 가상화폐를 매수했고, 이렇게 사들인 가상화폐를 다시 매도해서 실제 원화를 확보한다는 계획이었다. 물론 이용자들에게는 아무런 고지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당사 자산 대비 예치금 내역의 정확한 수치는 영업 비밀상 공개할 순 없으나 고객 예치금 이상으로 유지 중’이라는 내용으로 허위 공지했다.
 
  이런 중에 이용자들의 원화 출금 요청에 대응하지 못할 것이 예상되자 S씨와 P씨는 허위로 보이스피싱 신고를 시키기에 이른다. 이들은 2019년 3월 2일경 아르바이트 직원에게 ‘중국에 있는 지인을 통해 전화를 할 테니 전화를 받고 집금계좌로 65만원을 송금한 후에 보이스피싱을 당했다고 신고를 해달라’라고 부탁했다. 이 아르바이트 직원은 실행에 옮겼고, 트래빗 집금계좌에 대한 압수수색 검증영장(금융계좌 추적용)이 발부됐다. 재판부는 “집금계좌에서 출금 자체가 불가능하도록 허위 보이스피싱 신고를 하는 등 적극적인 사술(詐術)까지 사용했다”고 지적했다.
 
  한편 트래빗은 가상화폐 ‘이더리움’을 기반으로 작동하는 ERC-20 토큰인 ‘티코인(TCO)’과 ‘티코알(TCOR)’을 자체 제작해 판매했다. 재판부는 티코인에 대해 “트래빗 외의 다른 거래소에서는 거래되지 않고 코인 자체의 특유한 특징도 없어 그 자체로 가치를 가진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S씨와 P씨는 티코인을 발행하며 최초 백서에 ‘트래빗은 수수료 80%를 티코인 홀더 회원들에게 돌려주는 차별화된 수익 셰어를 실시한다’는 내용을 기재했고, 트래빗 홈페이지를 통해 ‘트래빗의 사업 및 수수료 외 수익의 일부를 티코인 보유자들에게 배당한다’고 홍보했다. 하지만 거래소는 정상적으로 운영되던 상태가 아니었고, 거래소 수익을 산정할 수 있는 체계조차 갖추지 못했다. 따라서 티코인 보유자들에게 수수료 수익의 80%를 구체적으로 계산해서 지급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잘못한 부분, 처벌 피할 생각 없다”
 
트래빗 홈페이지 이용 종료 안내. 사진=A씨
  트래빗 소속 직원들은 ‘전무이사 P씨가 트래빗의 실질적 대표 역할을 수행했으며 경영에 깊숙이 관여했다’고 지목했다. 반면 P씨는 ‘트래빗을 개장한 2018년 7월경 이후에는 거래소 운영에 관여하지 않았고, 출·퇴근도 잘 하지 않았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P씨가 1심 판결로 구속되기 전인 지난해 7월 3일 그의 주소로 찾아가 공동현관에서 수차례 호출했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3개월 뒤인 그해 10월 15일 그와 연락이 닿았다. P씨는 통화에서 “지금 재판이 진행 중이라서 따로 얘기할 게 없다”며 “피해자들이 계속 얘기하는 은닉, (돈을) 빼돌린 사실은 없다”고 주장했다. 반면 《서울신문》은 2020년 7월 7일 트래빗과 관련해 “총 32억원어치의 비트코인 중 5억원 규모가 ‘믹싱 앤 텀블링(단시간에 수백 건씩 비정상적 거래를 일으키는 자금세탁 방법)’ 과정을 거쳐 해외 암호화폐 거래소 지갑으로 흘러간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P씨와의 대화다.
 
  ― 형사 재판은 어떻게 진행돼가고 있나요.
 
  “배임과 같은 부분에 대해선 저희도 (혐의를) 인정하고, 사전자기록등위작과 같은 것도 한 사실이 있기 때문에 인정을 했습니다.”
 
  ― 사기 등 다른 죄목도 포함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저희가 고의로 사기를 친 게 아니라고 반박하는 상황입니다.”
 
  ― 사후 어떤 조치를 취했습니까.
 
  “트래빗이 파산되고 나서도 (피해) 회복을 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 (피해자) 몇 명과 이야기를 해봤거든요. 그런데 입장 차이가 너무 컸습니다.”
 
  P씨는 “(재판이) 마무리되고 구속이 안 된다면 연락하겠다”고 했지만 1심 판결로 인해 현재 법정 구속 상태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제가 잘못한 부분에 대해 처벌을 피할 생각은 없습니다. 이 사업을 잘해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이 과정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중간에 사건을 좀 해결해보려고 했지만 피해자 측과 저희 측 의견이 너무 달라서 그것도 어려웠고요. (재판이) 마무리되면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말씀드리고 싶어요.”
 
  ‘잘못한 부분에 대해 처벌을 피할 생각이 없다’는 P씨의 말과 달리 1심 판결문에는 P씨의 증거 인멸 시도 정황이 의심되는 대목도 있다. 재판부는 “P씨는 주로 그의 처(妻) 계정을 이용해 가상화폐 거래를 했다”며 해당 계정의 거래 내역 전체가 삭제됐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삭제 행위가 비정상적인 거래 내역에 관한 증거를 없애려고 시도한 것 아닌가 하는 상당한 의심도 든다”고 밝혔다.
 
 
  “기획 파산은 아니다”
 
  임원이 아닌 일반 직원들은 회사가 기우는 걸 감지했을까. 트래빗에서 팀장급으로 재직했던 관계자와 연락이 닿았다. 이 관계자는 지난해 10월 9일 통화에서 “파산이 예고됐기 때문에 ‘회사에 남은 돈이 얼마 안 돼서 슬슬 (떠날)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들은 직원들 머릿속에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실제로 저를 비롯해 남아 있는 직원들이 다 돈(월급) 2~3개월분을 받지 못했다”며 “직원이 100여 명 있었는데 미지급 급여를 받아내기 위해 단체로 노무사를 미리 선임했다”고 했다. 또 “직원들의 단체 연락망을 통해 노무사의 안내를 받고 있었다”며 “직원들도 이미 파산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 처음부터 파산할 목적으로 회사를 설립한 ‘기획 파산’이었다고 볼 수 있나요.
 
  “임직원들이 최대한 피해 규모를 줄이려고 노력한 건 맞아요. 기획 파산이라기엔 전무이사 P씨도, 대표이사 S씨도 일을 너무 열심히 했어요. 그래서 이 회사를 의도적으로 파산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 대표이사 S씨와 전무이사 P씨의 배임 혐의는 어떻게 보시나요.
 
  “제가 보기엔 확실하게 있을 것 같아요. 어떠한 경우에도 이해해주면 안 되지만, 법인계좌의 가장 큰 문제점이 ‘고객 돈이랑 내 돈이랑 구분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 정도까지는 내 돈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부분까지 다 건드리는 거죠. 다만 처음부터 돈 먹고 도망갈 목적으로 회사를 세웠다고 하기엔 일을 너무 열심히 했고요.”
 
  ― 전무이사 P씨는 어떤 사람인가요.
 
  “개인적으로는 저에게 잘해준 사람이고, 고마움을 느끼지만 경영자로 봤을 땐 별로 신뢰하지 않습니다.”
 
  1심 재판부는 S씨와 P씨에게 중형을 선고하면서 “이 사건 사기 범행으로 인한 피해 규모만 145억원을 초과하고, 그 피해자들은 피고인들의 범행으로 현재까지도 상당한 경제적, 정신적 고통 속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최근 시점으로 돌아와서, 피해자를 만나봤다. S씨와 P씨가 형사 재판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았지만 돈을 돌려받기 위해선 갈 길이 멀다. 민사 소송 절차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대표가 마음만 먹으면 다 한다”
 
  “잠시만, 잠시만요. 잠시만 얘기 좀… ○○○이사 오늘 왔어요?”
 
  민사 재판은 1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서두에서 언급한 4월 25일 서울서부지방법원 418호 법정이다. 재판이 끝나자 문 밖으로 향하는 피고 H씨를 A씨가 다급히 뒤쫓았다. H씨도 트래빗의 이사로 재직했다. A씨가 거는 말을 애써 모른 체하던 그는 법원 앞에서 잠시 대화에 응했다. A씨는 이런 일이 익숙하다는 듯이 질문을 쏟아냈다. “○○○이사와 친한 사이입니까” “다른 임직원은 변호사 누구누구 쓴다고 하던데요” “월급은 받았나요”라는 등 다소 생뚱맞은 말도 섞여 있었다. 나중에 A씨에게 물었다.
 
  ― 그런 건 왜 물어봤나요.
 
  “재판에서 마주친 다른 임원들도 제가 말을 걸면 모른 척해요. 하지만 일부러 엉뚱한 소리를 자꾸 하면서 말을 걸다 보면 조금씩 대답을 해주더라고요.”
 

  A씨는 H씨에게 “여기서 판결 나오면 제 돈은 줄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왼쪽 옆구리에 클러치백을 낀 채 짝다리를 짚고 있던 H씨는 헛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제가 무슨 돈이 있어요.”
 
  멀어져 가는 H씨의 등을 향해 A씨는 “판결 나오면 돈 주셔야 합니다”라고 외쳤다. A씨는 이날 15분도 안 되는 재판에 출석하기 위해 20만원의 경비를 들여 부산에서 상경했다. 재판에 나올지조차 알 수 없는 피고의 얼굴을 보고 말이라도 걸면 돈을 되찾을 단서 한마디 건질 수 있을까 하는 심정이었다. 절박했다. 세 자녀가 있다.
 
  트래빗이 파산 신청한 2019년, A씨의 아내는 셋째를 임신한 상태였다. 셋째를 낳자마자 이리저리 돈을 빌리러 다녔다. 참다못한 아내는 “죽고 싶다”며 이혼을 요구했다. A씨는 아내에게 ‘돈을 꼭 되찾아 오겠다’며 이혼만은 다시 생각해달라고 빌었다. 그 돈엔 아내에게 입힌 트라우마를 조금이나마 회복시킨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의 아내는 지금도 민사 재판 결과에 따라 피해 금액을 돌려받지 못한다면 이혼하겠다고 마음을 굳힌 상태다. 피해자인 그가 되려 무시를 당해가면서도 트래빗 임직원들을 쫓아다니는 이유다.
 
  H씨에게 ‘아무리 대표와 전무이사라고 해도 DB를 위조할 접근 권한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이 사건 형사 절차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H씨는 “기본적으로는 못 하게 되어 있는데 위법을 저질렀으니 기소가 된 것”이라며 “대표가 마음만 먹으면 다 한다”고 했다.
 
 
  “징역 5년은 지나치게 낮은 형량”
 
경찰청 사이버수사국 사이버테러범죄 전문가그룹위원을 지낸 박주현 변호사. 사진=박주현 변호사
  이 사건 고소 대리인을 맡았던 법률사무소 황금률의 박주현 변호사는 “피해금액과 피해자의 수를 고려하면 징역 5년은 지나치게 낮은 형량에 해당한다”고 비판했다. 박 변호사는 이 사건에 대해 “가상화폐 거래소를 범죄의 도구로 활용한 전형적인 사례”라며 “수사기관에서 상당한 지연을 보였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 사건은 서부지검, 마포경찰서, 일산경찰서 등을 오가는 ‘핑퐁’이 있었다”며 “수사관, 검사, 관할 경찰서까지 바뀌기 일쑤였다”고 설명했다. 사건 기록을 살펴보면, 수사 검사는 세 번 바뀌었다.
 
  박 변호사는 또 “피고인들은 대형 로펌을 선임하여 상당한 금액을 변호사비로 지출했지만 피해자들에 대한 피해 회복에는 전혀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으며, 오히려 수사 지연에 힘을 쓴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대표이사 S씨와 전무이사 P씨가 선임한 변호사 두 명은 다섯 손가락 안에 꼽는 대형 법무법인 소속이다. S씨와 P씨의 교사(敎唆)로 허위 보이스피싱 신고를 한 아르바이트 직원은 국선 변호인이 변호했다.
 
  박 변호사는 “루나·테라 사태 등 가상화폐 사건이나 다단계 피해자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 피해자들의 눈물을 모아 대형 로펌 변호사비로 지급하면 형량이 줄어드는 일은 차제에 끊어져야 한다”면서 “피고인들이 돈을 써야 할 곳은 변호사 선임료가 아니라, 피해자들에 대한 손해배상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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