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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기억전쟁

통영시는 ‘김일성 찬양’ 윤이상을 왜 기릴까?

‘親北 윤이상’ 기념에 11년 동안 최소 ‘781억원’ 쓴 경남 통영시

글 : 박희석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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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년부터 본격화한 통영의 ‘윤이상 기념사업’
⊙ ▲기념공원 ▲기념관 ▲윤이상 음악여행길 ▲윤이상과 함께 학교 가는 길
⊙ 윤이상 기념관 하루 평균 방문객은 31명 수준(2022년 통영시 결산보고서)
⊙ 윤이상이 의장이었던 ‘범민련 해외본부’… 우리 사법부는 ‘이적단체’ 판시
⊙ 김일성 죽음에 “하늘 무너진 듯한 충격이… 몸이 쪼각 나는 듯”
⊙ 통영국제음악당, “처염상정은 선비의 꼿꼿함으로 일관한 선생의 일생 대변”
⊙ ▲음악제 156억원 ▲윤이상 콩쿠르·동요제 56억원 ▲기념관 운영·관리 23억원
⊙ ▲음악당 운영 지원 483억원 ▲기획 공연 55억원 ▲음악당 식당 지원 8억원
⊙ 2022년 기준 통영시의 재정자립도는 12.3%… 전국 165위
사진=월간조선
  ‘정율성 논란’과 관련해서 강기정 광주광역시장은 8월 22일, 페이스북 글을 통해 “광주의 눈에 그(정율성)는 뛰어난 음악가이고, 그의 삶은 시대적 아픔”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 아픔을 감싸고 극복해야 광주건, 대한민국이건 한 단계 성숙할 수 있다”며 “이는 150억원을 투자한 밀양의 김원봉 의열 기념공원, 123억원을 투자한 통영의 윤이상 기념공원 등과 결을 같이한다”고 내세웠다.
 
  강 시장은 2002년부터 계속 진행된 경남 통영시의 ‘윤이상 기념사업’을 언급하며 광주시의 ‘정율성 기념사업’ 역시 정당하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하지만 강 시장의 의도와 달리 ‘광주의 정율성 사랑’ ‘밀양의 김원봉 추앙’과 마찬가지로 통영의 ‘윤이상 기념’ 역시 국민적 공감을 얻기 쉽지 않은 사업이다.
 
  줄기차게 북한을 드나들었고, 독일 귀화 이후 공공연하게 ‘친북(親北)’ 활동을 지속하며 후일 ‘이적(利敵)단체’로 규정된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의 해외본부 의장으로 활동했던 윤이상(尹伊桑)을 경남 통영시가 기리는 것은 여러모로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크다.
 

  윤이상의 친북 행적이 알려진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윤이상 기념사업들이 막대한 세금으로 활발하게 진행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서는 《월간조선》이 2012년부터 문제 제기한 ‘광주 정율성’에 대해서는 11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야 마치 큰 문제가 최근에 발생했다는 듯이 들고일어나면서도, 윤이상에 대해서는 ‘세계적 음악가’란 식으로 치켜세우는 자칭 ‘보수’들 책임이 크다.
 
  윤이상의 친북 행적을 문제 삼으면 ‘냉전적 사고’ 운운하며 마치 자신은 ‘깨어 있는 시민’인 양 “정치와 예술은 분리해서 평가해야 한다”고 점잔을 빼는 그들 때문에 통영시의 ‘윤이상 기념사업’은 20년 이상 진행됐다. 그사이 천문학적 규모의 세금이 투입됐는데, 이에 대한 문제 제기는 없었다. 이에 《월간조선》은 ‘정율성 논란’과 강 시장의 발언을 계기 삼아 통영시의 ‘윤이상 기념사업’ 실상을 확인했다.
 
 
  통영은 ‘김일성 찬양’ 윤이상 추앙
 
통영시는 122억원을 들여 관내 도천동 윤이상 생가터를 비롯한 6414㎡ 규모 부지 위에 ‘윤이상 기념공원’을 만들었다. 공원 안에는 윤이상기념관, 윤이상 소장품 전시관, 윤이상 승용차 차고, 공연장 등 각종 기념시설들이 있다. 사진=월간조선
  경남 통영시의 ‘윤이상 기념’은 ‘광주의 정율성 사랑’ ‘밀양의 김원봉 추앙’과 다르지 않다. 윤이상은 김일성이 ‘민족의 재간둥이’라고 평했을 정도로 친북적인 활동을 공공연하게 했던 인물이다. 1950년대부터 북한 측과 지속적으로 접촉했고, 독일 귀화 이후 1970년대부터는 노골적인 친북 행각을 벌였다. 윤이상은 ▲민족반역자 ▲전쟁범죄자 ▲민족분단의 원흉인 김일성을 향해 “수령님!” 운운하며 불세출의 영웅이라도 된 듯이 떠받들었다. 북한의 김정은을 추앙하는 이른바 ‘백두칭송위원회’ 같은 자들과 같은 식으로 김일성을 찬양했다.
 
  북한 측 기록에 따르면 윤이상은 김일성 앞에서 “조국통일을 위해 앞으로 힘과 재능을 다 바치겠다”고 맹세했다. 북한 독재 정권의 대남적화 전략인 ‘주체사상’에 대해서도 “현시대에 맞는 사상”이란 식으로 동조했다. 김일성이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주체사상’은 인간을 능동적·자율적 주체로 보지 않는다. 피동적 객체로 볼 뿐이다. ‘개인’은 허용되지 않는다. 개인의 ‘집합’인 인민 대중만이 존재하며, 그 인민 대중은 ‘최고 뇌수’인 수령에 의해 영도될 때만 사회·정치적 생명을 부여받는다는 괴상한 주장을 하는 게 바로 ‘주체사상’이다. 북한 노동당은 과거 당 규약을 통해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를 ‘최종 목적’이라고 밝혔다. 이는 북한 정권과 이에 동조하는 자들이 입에 올리는 ‘통일’이 ‘적화통일’이라는 걸 의미한다. 북한 노동당은 지금도 당 규약에 “조선로동당은 위대한 김일성-김정일주의를 유일한 지도사상으로 하는 주체형의 혁명적 당이며, 온 사회의 김일성-김정일주의화를 당의 최고강령으로 한다”고 명시하는 등 ‘적화 야욕’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북한 기록에 따르면 이 같은 ‘대남 적화 망상’에 동조하고, ‘주체사상’을 신봉했던 자가 바로 윤이상인 셈이다.
 
 
  ‘이적단체’ 판정받은 범민련 해외본부의 의장
 
  윤이상은 말년에 북한의 대남적화 전략에 동조하는 범민련 해외본부의 의장(1990~1994년)으로 활동했다. 범민련 해외본부는 1994년 우리 사법부에 의해 ‘이적단체’로 규정된 곳이다. 당시 판결문(94도 930, 96도 2673) 내용은 다음과 같다.
 
  〈북한과의 접촉에 있어 일관된 조율과 신중한 정책 추진이 필요한 현 실정에서 학생들 또는 재야인사들의 무분별한 북한과의 접촉을 통한 통일논의 및 이를 위한 활동은 현 단계에서 통일을 촉진한다기보다는 반국가단체인 북한에 동조함으로써 오히려 대한민국의 존립, 안전이나 자유민주주의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고 볼 것이고, 범민련 북측본부의 구성원이 반국가단체의 산하기관인 점, 베를린 3자 실무회담의 공동선언문 중에서 일부 북한의 주장과 같은 한반도의 평화 보장을 위해 외국군 철수, 핵무기 철거, 휴전협정의 평화협정으로의 대체, 국가보안법을 비롯한 제반 악법의 철폐를 포함하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범민련 해외본부는 반국가단체인 북한 공산집단을 이롭게 할 목적으로 결성된 단체(소위 이적단체)에 해당함은 분명하고…〉
 
  법원이 1990년 11월 범민련의 이른바 남·북·해외 실무 대표들이 만난 ‘베를린 3자 실무회담’ 공동선언문의 이적성을 명시한 점, ‘3자 실무회담’ 이전에 이미 윤이상이 범민련 해외본부 의장직을 맡고서 4년 이상 활동한 점, 법원이 1994년 7월에 범민련 해외본부를 ‘이적단체’로 판시한 사실 등을 고려하면 윤이상이 자부한 ‘민주·통일 운동’의 실체가 무엇인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도 대한민국의 지방자치단체인 경남 통영시는 2002년부터 윤이상 관련 행사를 매년 개최했다. 윤이상 음악제를 위한 통영국제음악당도 만들었다. 도심 곳곳에 윤이상 관련 공간 또한 조성했다. 윤이상 거리 등을 만들어 지도에 표기하고, 관광객들에게 둘러볼 것을 권했다. 이런 작업들에 투입된 돈은 역시 국민 세금이다. ‘반국가단체’ 수괴 김일성을 찬양하고, 주체사상에 동조하고, 그의 사임 후 얼마 되지 않아 ‘이적단체’ 판정을 받은 단체를 이끌며 친북 활동을 죽을 때까지 한 ‘독일인’을 기리는 데 막대한 세금이 매년 지출되고 있다는 얘기다. 과연 이는 온당한 처사일까.
 
 
  1958년부터 북한 대사관 출입
 
  윤이상은 1917년 경남 산청군에서 태어났다. 산청군은 그의 외가가 있던 곳이다. 윤이상은 1920년에 가족과 함께 고향인 지금의 경남 통영시로 이주했다. 통영협성농상학원 재학 중 경성으로 상경해 화성학을 배운 그는, 1935년 일본으로 유학을 갔다. 오사카음악학원에 입학한 윤이상은 첼로 연주와 함께 작곡, 음악이론을 배웠다. 1936년 귀국해 음악교사로 잠시 일한 그는 1939년 다시 일본 도쿄에 가서 작곡을 공부했다. 해방 후에는 통영여자고등학교, 부산고등학교, 부산사범학교 등지에서 다시 음악교사 생활을 했다. 휴전 후 서울에서 음악 활동을 하던 윤이상은 1955년 서울시 문화상을 받았다. 그는 당시 받은 상금에 주변의 후원금을 더해 1956년 프랑스 파리 국립음악원으로 유학을 떠난다. 1957년에 서독으로 간 윤이상은 베를린 고등음악학교에서 작곡 기법과 음악이론을 배웠다. 1959년 학교 졸업 직후 발표한 ‘일곱 악기를 위한 음악’ 등이 현지 음악계의 호평을 받자, 윤이상은 서독에 정착하며 음악 활동을 계속했다. 여기까지는 ‘통영 출신 음악가 윤이상’의 얘기다. 그가 어디서든 음악 활동에 매진하면서 고국과 고향을 빛냈다면, ‘윤이상’이란 이름은 지금처럼 논란이 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윤이상은 ‘문제적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앞서 말한 그의 ‘친북’ 성향과 북한 관련 행각 때문이다. 윤이상은 독일 유학 초창기였던 1958년부터 동베를린 소재 동독 주재 북한 대사관에 출입했다. 그가 최초 접촉자인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이후 다수의 재독 한인 유학생과 장기 체류자가 동베를린에 드나들었다. 26명(이하 중복 포함)은 북한 측으로부터 돈도 받았다. 그 금액은 적게는 100달러, 많게는 1만5000달러다. 12명은 밀입북했고, 17명은 암호 조립 등 특수교육을 이수했다. 12명은 주변 인물 근황을 북한에 제공하거나 대북 접촉을 주선하기도 했다.
 
  재독 한인들의 행각이 드러난 계기가 바로 1967년 ‘동백림 사건’이다. 그 중심에는 바로 윤이상이 있었다. 당시 중앙정보부는 서독에 있던 윤이상을 대사관으로 유인해 조사한 뒤 강제로 귀국시켰다. ‘동백림 사건’과 관련해서 윤이상 등 66명을 검찰에 송치했다. 이 중 윤이상을 포함한 23명에 대해서는 ‘간첩죄’를 적용했다. 윤이상은 1심에서 무기징역을 받았다. 2심에서는 간첩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았다. 3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단, 최종적으로 ‘국가보안법’ 위반(동조, 탈출) 혐의로 징역 10년형을 받았다.
 
  현재 ‘동백림 사건’과 관련해서 “윤이상은 무고하다” “노무현 정부 당시 국가정보원도 윤이상의 결백함을 인정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동백림 사건과 관련해 문제가 된 것은 중정이 불법적으로 해외 교민을 납치하듯이 국내로 송환한 점, 무리하게 ‘간첩죄’를 적용한 점이다. 윤이상의 북한 관련 행적을 조작하거나 왜곡하지는 않았다는 얘기다. 노무현 정부 당시 과거사 진상 규명을 하겠다면서 만든 이른바 ‘국가정보원 과거 사건 진실 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의 결론도 이와 같다. 2007년 당시 노무현 정부는 《과거와 대화, 미래의 성찰》이란 보고서를 통해 ‘동백림 사건’에 대해 “간첩죄를 무리하게 적용해 사건 관련자들의 단순 대북 접촉 및 동조 행위까지 일반 국민들에게 간첩으로 확대, 오인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지적했을 뿐 윤이상의 대북 행각 사실은 부인하지 않았다.
 
  한편, 박정희(朴正熙) 정부는 1969년 윤이상에 대해 ‘형 집행 정지’ 결정을 내렸다. 윤이상 체포 과정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 여론이 고조됐기 때문이다. 특히 서독 정부는 한국 대사 추방, 차관 제공 취소 등의 강수를 뒀다. 부담을 느낀 당시 박정희 정부는 2년 만에 윤이상을 석방하고, 서독으로 돌려보냈다. 이후 윤이상은 죽을 때까지 고국 땅을 밟지 않았다.
 
 
  “력사상 최대의 령도자 김일성 주석님!”
 
  1971년 서독으로 귀화한 윤이상은 이후 노골적으로 친북 행보를 시작했다. 윤이상은 1995년 11월 사망 때까지 17회에 걸쳐 방북했고, 김일성과 자주 접촉했다. 정부는 1992년 국가안전기획부가 발간한 〈입북 자수 간첩 오길남 사건내용〉이라는 수사 결과를 통해 “윤이상은 북한의 정치노선에 따라 활동하는 북한의 문화공작원”이라고 밝혔다. 재독 유학생들에 대한 포섭 의혹도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김일성은 평양에 인원 150명 규모의 ‘윤이상 음악연구소’를 만들고, 윤이상이 머물 저택과 벤츠 승용차를 제공했다. 김정일은 평양 중심가에 ‘600석 규모’ 공연장이 있는 15층 건물을 새로 짓고 ‘윤이상 음악연구소’로 쓰게 했다. 윤이상 관현악단을 구성하고, ‘윤이상 음악제’도 매년 개최했다. 1992년에는 윤이상을 소재로 체제 선전용 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이 때문인지 윤이상은 김일성을 열렬히 찬양했다. 그는 1994년 7월, 김일성이 죽자 다음과 같은 조전을 보냈다.
 
  〈하늘이 무너진 듯한 충격과 이 몸이 산산이 쪼각 나는 듯한 비통한 마음으로 위대하신 수령님의 서거의 통지를 접하고 허탈 상태에 있는 이 몸이 병중에 있으므로 달려가 뵈옵지 못하는 원통한 심정을 표현하며 전 민족이 한결같이 우리 력사상 최대의 령도자이신 주석님의 뜻을 더욱 칭송하여 하루빨리 통일의 앞길을 매진할 것을 확신합니다. 1994.7.9 빠리에서. 치료 중에 있는 윤이상 부부〉
 
  ‘전쟁범죄자’ ‘민족반역자’ 김일성을 ‘우리 역사상 최대의 영도자’라고 찬양한 윤이상은, 그 이듬해 7월 김일성이 죽은 지 1년 됐을 때 아래와 같은 편지를 남겼다.
 
  〈위대한 김일성 주석님의 서거 1돐을 맞이하여 그 영령 앞에 심심한 애도와 흠모를 절감하오며 길이길이 명복을 비옵니다. 끝없이 우리 민족의 광영을 지켜주소서. 도이췰란드 베를린의 병원에서 윤이상 삼가 올립니다. 1995년 7월 8일〉
 
  ‘위대한 김일성 주석님’이라고 외치던 윤이상의 부인 역시 같은 날 “위대한 수령님” 운운하는 편지를 썼다.
 
  〈수령님! 위대하신 수령님! 수령님께서 사랑하시고 아끼시고 민족의 재간둥이라고 부르시던 저의 남편 윤이상은 오늘 병원 병석에 누워 있어 저와 같이 수령님 령전에 가서 수령님을 뵙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주 만사의 원리라고는 하지마는 수령님께서 저희들 곁을 떠나신 지 벌써 1년이란 세월이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저희들은 항상 수령님께서 저희들 곁에 계심을 느끼며 수령님을 추모할 때마다 그 인자하시고 인정 많으시고 눈물 많으신 우주와 같이 넓으신 덕성과 도량, 세상의 최고의 찬사를 올려도 모자라는 수령님, 살아계셨어도 그러하였고 돌아가신 뒤도 부디부디 불우한 저의 민족의 운명을 굽어 살펴주소서. 수령님 령전에 무한한 평화와 명복을 빕니다. 1995년 7월 8일. 리수자〉
 
 
  충무공도 옛 충무시에서 못 받는 추앙
 
‘안단테 윤이상 음악여행길’로 명명된 윤이상 기념공원 인근 ‘새미골 3길’ 골목에는 윤이상 얼굴과 각종 선전물이 벽화 형태로 전시되고 있다. 사진=월간조선
  이런 윤이상을 위해 대한민국의 지자체인 통영시는 2002년부터 기념사업을 본격화했다. 2000년과 2001년, 통영문화재단은 ‘통영현대음악제’란 이름으로 ‘윤이상 음악제’를 개최했다. 2002년에는 통영시가 이를 ‘통영국제음악제’로 확대하고, 재단법인 통영국제음악제를 설립했다. 2003년부터는 지금의 ‘윤이상 국제음악 콩쿠르’인 ‘경남 국제음악 콩쿠르(2009년부터 현 명칭으로 개칭)’를 시작했다.
 
  통영시가 작성·배포한 통영 관광지도 〈통영 여행〉에 따르면 통영의 대표적인 축제가 바로 ‘통영국제음악제’와 ‘윤이상 국제음악 콩쿠르’다. 통영시는 ‘통영국제음악제’에 대해 “작곡가 윤이상 선생의 음악 세계를 재조명함으로써 통영이 세계적인 음악 도시로 성장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국제적인 음악 축제”라고 주장한다. 해당 행사 개최 시기는 매년 3월이다. ‘윤이상 국제음악 콩쿠르’에 대해서는 “국제문화교류와 전 세계의 재능 있는 음악인을 발굴, 육성하기 위해 창설됐다”고 소개한다. 해당 행사 개최 시기는 매년 11월이다.
 
2017년 7월, 문재인 당시 대통령의 독일 방문에 동행한 그 부인 김정숙씨는 윤이상 무덤에 가서 동백나무를 심고, ‘대한민국 대통령 문재인, 김정숙’이라는 표지석을 설치했다. 사진=뉴시스
  통영시는 또 2013년에 윤이상을 기리는 ‘통영국제음악제’를 위한 부산·경남 지역의 첫 클래식 전문 공연장 ‘통영국제음악당’을 건립했다. 시내 주요 도로를 ‘윤이상 거리(총 연장 800m)’로 명명했다. 윤이상의 얼굴과 각종 선전물을 벽에 그려놓고, ‘안단테 윤이상 음악여행길’이라고 명명했다. 윤이상이 과거 음악교사로 일할 당시 출근하던 길을 ‘윤이상과 함께 학교 가는 길’이라고 명명해 주요 관광지로 소개한다. 또 윤이상 생가터를 포함한 6414㎡ 규모 부지에는 ‘윤이상 기념공원’을 만들었다. 통영에서 윤이상 말고 이런 대접을 받는 인물은 사실상 없다. ‘한산도 대첩’의 주인공, 충무공 이순신(李舜臣) 장군도 옛 충무시인 통영시에서 이런 대우를 받지 못한다.
 
  9월 3일, 경남 통영시 도천동 소재 ‘윤이상 기념공원’에 갔다. 2010년 3월 개관 당시 이곳의 이름은 ‘도천테마파크’다. 애초 ‘윤이상 기념공원’으로 기획됐으나, 각종 친북 행적과 ‘통영의 딸’ 논란 때문에 ‘윤이상’이 빠졌다. 문재인 정권 시기인 2017년 당시 대통령 부인 김정숙씨가 독일 베를린 방문 당시 윤이상 무덤을 찾아가 동백나무를 심어 화제가 된 이후 통영시 일각에서 공원 명칭 변경을 요구했다. 2018년, 통영시의회는 조례 개정을 통해 공원명을 ‘윤이상 기념공원’으로 바꿨다.
 
 
  윤이상 기념공원에 122억원
 
윤이상 기념공원 안에 있는 윤이상 전신상이다. 이 밖에도 윤이상 생가터 표지석, 착석 시 윤이상 음악이 재생되는 벤치, 윤이상 음악 감상 공중전화 부스 등의 윤이상 기념물이 있다.
  ‘윤이상 기념공원’에는 야외공연이 가능한 공연장이 있다. 공원 내 윤이상 기념관(지상 2층, 898㎡)에도 140석 규모의 공연장이 있다. 이 밖에 ▲윤이상 소장품을 전시한 ‘베를린 하우스(136㎡)’ ▲윤이상이 타던 벤츠 승용차 보관소(20㎡) ▲윤이상 전신상 ▲윤이상 생가터 표지석 ▲착석 시 윤이상 음악이 재생되는 벤치 ▲윤이상 음악 감상 공중전화 부스 등이 있다. 이를 조성하는 데 들어간 국민 세금은 ▲국비 41억5100만원 ▲도비(경남) 9억7500만원 ▲시비(통영) 70억3100만원 등 총 121억5700만원이다.
 
  참고로 통영시의 〈2022년 결산서〉에 따르면 이처럼 막대한 세금을 투입해 만든 ‘윤이상 기념관’의 방문객 수는 1만 명이 채 되지 않는다. 2022년 기준 9792명에 불과하다. 대관 수입은 375만2000원, 기념품 판매 수입은 245만8000원이다. 해당 시설이 매주 ‘월요일’에 휴관하는 걸 감안하면, 하루 평균 관람객은 31명에 지나지 않는 셈이다. ‘윤이상 기념’이란 해당 시설의 조성 목적도 논쟁의 대상이지만, 통영시가 지속적으로 세금을 투입해 ‘윤이상 기념시설’을 운영해야 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 대해서도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윤이상 기념공원’에서 나와 소위 ‘도천음악마을’ 일대를 둘러봤다. 통영시는 현재 해당 지역에 대한 도시재생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윤이상 기념공원’ 인근에 있는 통영시 ‘도천지구 도시재생 현장지원센터’는 정문 위에 “음악이 흐르는 도천, 마을 이야기에 윤이상(음악)을 입히다”란 문구가 있는 현수막을 내걸고 있다. 도시재생 사업의 목적이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윤이상 기념공원’에서 통영시립박물관 쪽으로 걷다가 윤이상 벽화들이 있는 골목으로 들어갔다. 이 골목의 이름은 ‘새미골 3길’인데, 졸지에 ‘안단테 윤이상 음악여행길’로 명명됐다. 해당 골목 주민들은 도로명 주소 판 외에 윤이상 이름이 적힌 악보 모양 주소 판을 집 앞에 하나씩 더 내걸고 있다.
 
  소위 ‘안단테 윤이상 음악여행길’에서 처음으로 마주한 윤이상 관련 벽화는 통영 앞바다와 첼로, 파안대소하는 윤이상 얼굴을 합친 그림이다. 이 벽화의 제목은 ‘고향(2020년 11월)’이다. 그 옆 팻말에는 “항상 통영을 그리워하였고, 끝내 고국 땅을 밟지는 못하였지만, 그의 숭고한 정신은 통영의 등대가 되리라”란 설명이 있다. “뜻이 높고, 품위나 몸가짐이 훌륭하다”는 의미로 ‘숭고한~’이라고 운운한 것일까. 그렇다면 과연 윤이상의 ‘숭고한 정신’은 무엇일까. 해당 사업 시행기관인 통영시는 대체 뭐라고 생각할까. 그의 ‘정신’이 ‘통영의 등대’가 된다면, 통영시는 과연 어떤 곳일까 하는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는 기술이다.
 
 
  ‘윤이상 음악제’ 위한 공연장에 520억원
 
통영시는 한려수도를 내려다보는 도남동 해변 언덕에 윤이상을 기리기 위해 520억원을 들여 ‘통영국제음악당’을 건립했다. 사진=월간조선
  같은 날 오후, 통영시 도남동 해변에 있는 통영국제음악당에 갔다. 이 시설의 건립 사유는 ‘윤이상 음악제 공연’이다. 통영시는 2002년부터 ‘통영국제음악당’ 건립을 추진했지만, 민간자본 유치에 실패해 무산됐다. 그러다가 ‘윤이상 국제음악당’으로 이름을 바꾸고, 국비를 요청했다. ‘윤이상’ ‘송두율’ 등 친북 인사에 호의적이었던 노무현 정부는 국비 240억원을 지원했다. 통영시는 2006년 도남동 소재 충무관광호텔 부지에 국비와 도비, 시비 등 총 480억원을 들여 지하 1층·지상 3층 규모의 ‘윤이상 국제음악당’을 짓는다고 밝혔다. 나중에는 호주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에 필적하는 세계적인 명품 음악당을 건립하려면 최소 1500억원이 필요하다며 정부와 경남도에 각 500억원을 추가로 요청했다. 이명박 정부 당시인 2009년, 문화체육관광부는 사업 타당성과 타 지자체와의 형평성을 고려해 이를 거부했다.
 
  2013년 11월, ‘윤이상 국제음악당’이 ‘통영국제음악당’으로 이름을 바꾸고 개관했다. 앞서 언급한 친북 행적과 ‘통영의 딸’ 논란 때문에 ‘윤이상’이란 이름을 전면에 내세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통영국제음악당’은 한려수도 경관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3만3058㎡ 규모의 대지 위에 지상 5층 건물(1만4618㎡)로 시공됐다. 1300석 규모 콘서트 홀과 300석 규모 다목적 홀 등을 갖췄다. 최종 사업비는 총 520억원이다. ‘통영국제음악당’은 당시 기준으로 부산·경남 최초이자 국내에서 네 번째로 큰 클래식 전문 공연장이다.
 
  실제로 본 통영국제음악당 규모는 대단했다. 인구 12만 명에 불과한 남해안 소도시, 통영과는 부조화하다는 인상을 줄 정도로 웅장했다. 경남 최초 관광호텔이 있던 자리여서 입지도 좋았다. 통영국제음악당 왼쪽에는 금호통영마리나리조트, 오른쪽에는 스탠포드호텔이 있다는 점을 고려해도 그렇다. 통영국제음악당 정문 앞 기둥에는 해당 시설 건립 취지를 알리는 표지판이 있다. 이를 통해 윤이상을 기념하기 위해 520억원을 투입해 통영국제음악당을 지었다는 점을 재확인할 수 있다.
 
  〈20세기를 대표하는 현대음악 작곡가 윤이상을 기리는 뜻에서 건설된 통영국제음악당은 7년간의 준비와 3년간의 시공을 거쳐 2014년 봄에 개관하였다. 통영국제음악당 외관은 유네스코 음악 창의도시 통영을 상징하는 갈매기를 모티브로 하여, 한려수도의 상징인 통영 앞바다를 배경으로 갈매기 두 마리가 음악과 자유를 향해, 그리고 통영의 미래를 향해 날아오르는 모습을 형화하였다.〉
 
 
  음악당 뒤편 바다 전망 잔디밭에 묻힌 윤이상
 
통영국제음악당 뒤편에는 윤이상 무덤이 있다. 2018년 2월, 통영시가 독일 베를린 공동묘지에 있던 윤이상 유해를 들여와 이곳에 묻고 ‘추모지’를 조성했다. 사진=월간조선
  통영국제음악당 뒤편에는 ‘윤이상 무덤’이 있다. 1995년 독일에서 사망한 윤이상의 무덤은 원래 베를린 공동묘지인 ‘가토우 공원 묘지’에 있었다. 2017년 7월, 문재인 전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씨는 윤이상 무덤에 가서 통영에서 가져온 동백나무를 심고, ‘대한민국 대통령 문재인, 김정숙’이라는 표지석을 설치했다. 그러면서 “조국 독립과 민주화를 염원하던 선생을 위해 고향의 동백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가져오게 됐다”고 말했다. 김씨의 추모 이후 ‘윤이상 유해 국내 송환’ 활동이 개시됐다. 2018년 2월에 국내로 반입된 윤이상 유해는 한 달 정도 공설 봉안당에 있다가 “통영 바다를 다시 보고 싶다”고 했다는 윤이상의 유언에 따라 통영국제음악당 뒤편에 묻혔다.
 
  윤이상 무덤 입구에는 ‘윤이상 선생 약전’이라는 안내판이 있다. 그 내용을 보면, 사전 정보 없이 이를 읽는 사람들은 윤이상에 대해 ‘독재 정권에 의해 핍박받은 ▲천재 음악가 ▲민주화 인사 ▲통일 운동가’란 선입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전략) 세계 음악계에서 작곡가로서 입지를 굳혀가던 선생은 1967년 이른바 동베를린 사건 때 한국 중앙정보부에 의해 서울로 강제 납치되어 험한 옥고를 치렀고 (중략) 1988년 민족합동음악축전을 제의하여 1990년 분단 45년 만에 남북한의 음악 교류를 성사시킨 업적을 비롯하여 조국의 민주화와 통일을 향한 대의에도 수많은 기여를 하였지만, 조국 대한민국으로의 귀국이라는 소망을 끝내 이루지 못하고 1995년 11월 3일 먼 이국에서 영면했다. 베를린 가토우 묘지에 안장되어 있던 선생의 유해는 탄생 백주년을 맞아 통영시와 베를린시의 합의에 의해 2018년 3월 20일 생전에 간절히 염원했던 고향 통영으로 이장되었다.〉
 
  현재 윤이상 무덤 위에는 묘비 역할을 하는 덮개돌이 있다. 그 돌 위에는 ‘처염상정(處染常淨)’이란 글귀가 있다. ‘처염상정’은 ‘탁한 곳에 처해 있어도 물들지 않고, 맑은 본성을 간직한다’는 뜻을 가진 사자성어다. 통영국제음악당 측은 이와 관련해 “선비의 꼿꼿함으로 일관한 선생의 일생을 대변한다”고 방문객들에게 주장한다. 요즘에는 조롱조로 많이 쓰이지만, 본래 ‘선비’란 “학식 있고, 행동과 예절이 바르며, 의리와 원칙을 지키고, 권력과 재물을 탐하지 않는 고결한 인품을 지닌 사람”을 말한다. 북한 김일성으로부터 온갖 지원금과 각종 특별 대접을 받고, 독재자를 찬양한 윤이상을 가리켜 ‘선비의 삶’이라고 강변하는 이 주장에 공감할 대한민국 국민은 과연 얼마나 될까.
 
 
  통영시 재정자립도 순위는 전국 165위
 
  이처럼 통영시는 막대한 돈을 들여 관내 곳곳에 ‘윤이상’을 접할 수 있는 공간과 시설을 조성했다. ‘윤이상 기념’ 행사도 지속적으로 개최했다. 그렇다면 통영시가 지금까지 ‘윤이상 기념’에 쓴 세금은 얼마나 될까. 《월간조선》이 입수한 자료와 통영시의 〈2012~2022년 결산 보고서〉를 취합해 파악한 내용에 따르면 지난 11년 동안 통영시가 ‘윤이상 기념’에 쓴 금액은 ▲통영국제음악제 156억원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 52억원 ▲윤이상동요제 4억5000만원 ▲윤이상기념관 운영·관리 23억원 등이다. 최소 235억원인 셈이다. 여기에 ‘윤이상을 기리는 뜻에서 건설한’ 통영국제음악당과 관련한 ▲운영 지원 483억원 ▲기획 공연 55억원 ▲레스토랑 지원 8억원을 더하면 781억원이 된다. 인구 12만 명에 불과한 소도시, 재정자립도가 12.3%에 불과해 전국 243개 광역·기초자치단체 중 그 순위가 165위에 머무는 통영시가 ‘윤이상’이란 인물을 기념하기 위해 매년 66억원에 달하는 세금을 쓴 셈이다. 통영시는 이에 대해 여러모로 적절한 세금 집행이라고 자부할 수 있을까. 그보다 먼저, 통영시민은 ‘윤이상 기념’에 이 같은 세금이 투입된다는 사실 자체를 알고 있기는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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