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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라오스의 새마을운동 현장을 가다

“한국이라는 새마을운동 실제 모델이 있어 의욕 샘솟아”

글 : 장원재  ㈜戰後70년 ‘생생현대사TV’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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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마을운동은 어느 나라에서든 도입과 실천이 바로 가능… 박정희 대통령은 영웅”
⊙ 새마을운동 이전 한국 보여주는 기록 영화 보여주자 “저 나라는 어디냐?”고 물어
⊙ 이승만, 1950년대에 라오스 파병 기도… 이후락 보내 현지 조사
⊙ 2009년 교민 홍종오·김호경씨 등의 노력으로 새마을운동중앙본부와 현지 연결
⊙ 선거로 뽑은 이장을 새마을 지도자로 추대… 비닐가림막 설치로 농가 소득 증대, 마을길 넓히기 사업 전개
항싱싸왕 마을의 새마을 지도자들
  라오스에는 바다가 없다. 내륙국(內陸國)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메콩강(江)이 모든 물을 대표한다. 메콩강은 티베트 고원에서 발원, 인도차이나 반도 남녘까지 유장(悠長)하게 흐르며 바다로 나아가는, 동남아를 합쳐 무려 여섯 나라에 걸쳐 있는 거대한 강이다. 유역면적(流域面積) 순으로 따지자면 라오스, 태국, 중국, 캄보디아, 베트남, 미얀마다.
 
  그래서 메콩강은 라오스 사람들에겐 어머니의 젖줄 같은 강이다. 수도 비엔티안도 메콩강 변에 있다. 강 너머가 바로 태국이다. 농카이라는 인구 4만~5만의 소도시다. 수도가 국경에 자리한 건 다소 특이하다.
 
  조금 경우가 다르긴 하지만, 비슷한 예가 있다. 미국 캔자스시티다. 도시 중앙에 캔자스강이 흐르는데, 강 서쪽은 캔자스주, 동쪽은 미주리주다. 캔자스주의 대표 이미지는 도로시. 1900년에 나온 〈오즈의 마법사(The Wonderful Wizard of OZ)〉의 배경이 캔자스주의 시골 마을이기 때문이다. 미주리주의 대표 이미지는 해리 트루먼(Harry Truman·1884~1972년) 미합중국 제33대 대통령이다. 1945년 4월부터 1953년 1월까지 재임했다. 2차 세계대전 승전을 마무리하고, 6·25 참전 결정을 내린 대한민국의 은인이다. 트루먼은 세계 기록 보유자이기도 하다. 단 10초 만에 파병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새벽에 걸려온 북한의 전면 남침 소식을 듣고 그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곧바로 결단했다. 첫 3초를 욕하는 데 쓰지 않았다면, 그의 기록은 10초가 아니라 7초였을 수도 있다. 트루먼은 북한을 나라로 인정하지 않았다. 당연히 북한군도 정식 군대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선전포고(宣戰布告)도 하지 않았다. 그는 북한 침략자들을 밴디트 레이드(Bandit Raid)라고 불렀다. ‘마적단(馬賊團) 습격’이라는 뜻이다.
 
 
  ‘육로로 국경을 건너는 특별한 소회’
 
라오스 수도 비엔티안의 버스터미널. 태국으로 가는 국제노선이 출발한다.
  불문학자 김화영(金華榮·82) 고려대 명예교수는 1990년대 중반에 발표한 수필에서 ‘육로(陸路)로 국경을 건너는 특별한 소회’를 피력한 바 있다. 프랑스 유학 시절, 여행 중 국경을 만나면 꼭 걸어서 건너갔다 왔다는 것이다. 친구들에게는 아무 감흥이 없는 일이지만, 그에게는 매번 가슴 벅찬 체험이었다고 했다. 그의 유별난 국경 의식을 동료들은 의아하게 생각했다고 한다. 김화영은 “이것이 삼면(三面)은 바다로 그리고 북쪽은 휴전선으로 가로막힌 분단민 의식은 아닐까”라고 썼다.
 
  그렇다. 한국인에게 육로로 국경을 넘는다는 건 특별한 일이다. 은연중에 통일(統一)을 생각하며 한국 현대사를 되새김질하는 비장한 의식(儀式)이다. 국내에선 육로로 국경을 넘는 일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건넜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국경을 건너는 일이 이렇게 간단해도 되는 것인가. 비엔티안 시외버스터미널에서 태국 농카이로 가는 버스 편은 편도 요금이 3300킵이다. 우리 돈으로 약 2300원 정도다. 버스를 타고 시 외곽으로 50분쯤 달리면, 라오스와 태국을 연결하는 ‘우정의 다리’가 나온다. 라오스 쪽에서 일단 하차, 출국 수속을 하고 다시 승차 후 다리를 건너 태국 쪽에서 내려 입국 수속을 하면 간단히 출입국 절차가 끝난다.
 
 
  악어강
 
  허무했다. 왜냐고? 메콩강이 누군가에겐 생사(生死)를 넘나드는 생명의 강이기 때문이다. 메콩강을 악어(鰐魚)강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 탈북민이다. 메콩강엔 실제로 악어가 산다. 탈북민들은 중국을 횡단해 남서쪽으로 내려와 라오스 밀림지대를 통해 밀입국한다. 그러고 메콩강을 건너 태국으로 건너가면 자유다. 적어도 어디론가 끌려가 북송(北送)당할 위험은 사라지는 것이다.
 
  하지만 도강(渡江)은 편안한 여행이 아니다. 폭이 좁은 쪽배는 안전 운행을 담보하지 않는다. 적발이 두려워 심야에 몰래 건너는 길이니 동력(動力)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다. 악어가 몰려들기에 생리 중인 여성은 탑승 금지다. 메콩강에서 얼마나 많은 탈북민이 목숨을 잃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소리소문 없이 사라져 간 숱한 넋이 있다는 건 확실하다. 태국은 밀입국한 탈북민을 ‘이민법 위반자’로 이민국 감옥에 수감한 뒤, 추방 형식을 통해 한국으로 보낸다. 그래서 한반도 통일 이후 메콩강은 만주의 쑹화강, 하이란강과 마찬가지로 우리 민족사의 중요한 역사적 현장이 될 것이다.
 
  라오스의 탈북민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기억이 하나 더 있다. 2013년 5월 탈북 고아 아홉 명이 북송된 사건이다. 천신만고 끝에, 꽃제비 출신 고아들은 2013년 5월 16일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안에 도착했다. 그러나 국제사회의 구조 노력에도 불구하고, 5월 말 북한으로 송환되었다.
 

  라오스 정부는 이들을 왜 북송했을까. 처음부터 북송하려 작정한 것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은 듯하다. 당시 라오스 외무부는 “한국 대사관에서 공식 면담 요청을 하지 않았다. 송환 이후인 29일에야 한국 대사가 라오스 외무부 차관을 찾았다”라고 발표했다. 듣기에 따라서는, 우리 정부가 탈북 고아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말처럼 들리기도 하고, 라오스 정부가 사건 처리 방향을 두고 한국 정부의 대응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말로도 들린다.
 
  진실이 무엇인지는 아직도 모른다. 다만, 생사의 갈림길에서 초조한 눈빛으로 카메라를 응시하던 탈북 고아 9명의 눈빛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당시 우리 대사관의 일처리는 미흡하기 그지 없었다. 북한 대사관은 사건 초기부터 탈북 고아 아홉 명의 면담에 직접 참여했다. 북한은 이들의 한국 입국을 필사적으로 저지했다. 그리고 성공했다.
 
 
  만수대창작사의 ‘예술과 건설’ 프로젝트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나라다 보니, 라오스에선 북한의 입김이 여전히 적지 않다. 무엇보다도, 라오스 중심가의 동상(銅像) 등 여러 기념물이 만수대창작사의 작품이다.
 
  만수대창작사는 북한 국방성(구 인민무력부) 소속으로, 1980년대부터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예술과 건설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김씨 일가를 위한 외화를 조달해온 조직이다. 김씨 일가 우상화 조형물의 머리 부분만 바꿔 ‘현지화한 작품’을 제작하는 것이 이들의 영업비밀이다. 기존의 디자인이 있고 군인을 파견해 인건비 추가 지출이 없으니, 남들보다 엄청나게 싼값에 일거리를 수주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경쟁력이 있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지난 2016년 결의 2321호를 통해 북한이 동상을 수출하는 행위를 금지했다. 2017년 추가 채택한 결의 2371호에서는 만수대창작사의 해외법인인 ‘만수대 해외 프로젝트 그룹’을 제재 명단에 올렸다.
 
  동상 일은 끊겼지만, 식당은 여전히 영업 중이다. 한때 열 곳 이상 성업 중이던 라오스 비엔티안의 북한 식당은 현재 세 곳으로 줄었다. 그중 한 곳을 방문해 저녁을 먹었다. 10명이 넘는 종업원이 모두 북한 여성이었다. 전원 평양의 상류층 자제임은 물론이다. 음식값은 현지 식당보다는 비싸지만, 한국보다는 쌌다. 다른 북한 식당과 마찬가지로 식사 이후에는 공연이 이어졌다. 춤, 노래, 경음악 연주 등이 어우러진 공연은 북한 식당만의 특징이자 쏠쏠한 외화 획득 수단이기도 하다. 음식값 이외에 팁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팁은 돈으로 직접 받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 비치한 꽃으로 받는다. 흥이 오른 손님이 꽃을 구입한 후 공연자에게 건네도록 하는 것이다. 조화(造花)를 써서 다음 날에도 재활용이 가능하도록 한 것이 포인트다.
 
 
  북한 식당의 ‘번지 없는 주막’
 
  공연의 서막은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북한 노래 ‘반갑습니다’ 연주와 합창이다. 이후 ‘번지 없는 주막’ ‘감격시대’ 등 식민지 시대 가요가 이어진다. 북한은 한류(韓流)의 열풍이 거세지자 ‘계몽기 가요’라는 명칭을 붙여 1930~40년대 노래들을 해금했다. 일부를 풀어 최신곡의 유행을 막자는 시도였지만, 효과가 거의 없었다는 게 주지의 사실이다.
 
  어쨌거나 해금의 결과로 ‘눈물 젖은 두만강’ ‘홍도야 우지 마라’ 등의 ‘계몽기 가요’는 북한에서도 합법적으로 널리 불린다. ‘번지 없는 주막’은 가사 내용이 시의적절(?)해 선곡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다. 식당에 다시 찾아오라는 뜻 아닌가.
 
  아는 노래가 연이어 나오니 반가웠다. 다만 아주 사소한 이질감은 있었다. 베이스는 ‘배스기타’로 일렉트릭 기타는 ‘앨트기타’라고 자막에 나온다. ‘감격시대’ 가사 중 ‘깃발’은 ‘기발’로 ‘뱃길’은 ‘배길’로 고쳐 부른다. 사이시옷을 쓰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희망봉 멀지 않다 행운의 뱃길아’라는 원래 가사를 ‘봄 희망이 멀지 않다 희망의 배길로’라고 바꿔 부른다. ‘배길아’라는 가사를 쓰면 발음하기에 어색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10년 전과 비교해 가장 크게 드러나는 특징은 ‘자제(自制)’다. 일단 선전 가요를 연주하지 않는다. 그래도 아주 뺄 수는 없으니 ‘백두의 말발굽 소리’라는 곡을 연주하기는 한다. 단, 가사 없이 드럼 연주만 한다. 화면으로 백두산 전경과 김정은의 승마 광경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그것이 전부다.
 
  이 밖에 레퍼토리는 ‘세빌리아의 이발사’ ‘산타루치아’ 등등 이념중립적이다. 무엇보다도 그들이 ‘초상휘장’이라고 부르는 배지가 사라졌다. 북한 종업원들 옷깃에 달려 있던 김일성 배지가 지금은 없다. 사소하다면 사소하지만, 이는 북한이 외부를 민감하게 의식하고 눈치를 보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돈 앞에선 장사가 없는 것이다.
 
 
  이승만의 라오스 파병 추진
 
  북한 이야기를 했지만, 이것이 아니더라도 라오스는 우리에게 심리적으로 먼 나라다.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버마(미얀마), 크메르(캄보디아), 싱가포르, 베트남, 필리핀 등은 모두 1970년대 대통령배 국제축구대회에 대표팀을 파견했다. 동남아시아에서 오직 라오스만 참가 기록이 없다.
 
  한국과 라오스는 1974년 6월 수교하고 1975년 2월 라오스로 공사가 부임했지만 1975년 7월 라오스가 공산화되면서 단교했다. 재수교한 때는 이로부터 20년이 지난 1995년 10월이다.
 
  이 이전에 라오스와 매우 긴밀한 관계를 맺을 수도 있었다. 월남전 이전 최초의 한국군 해외 파병 계획안이다. 1958년 라오스에서 좌익 쿠데타가 일어나 내전(內戰)이 벌어졌다. 이승만 대통령은 “국군을 파병해 라오스의 우익 정권을 돕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국방부에 지시했다. 라오스의 공산화가 인도차이나 반도 전체의 공산화로 이어질 것을 우려한 것이다. 인도차이나 반도의 공산화는 한국 안보의 심각한 위협일 터였다.
 
  이승만 대통령의 명령을 받고, 연합참모본부(지금의 합동참모본부)는 1959년 9월 21일 라오스 파병 계획을 작성했다. 국군을 파견해 라오스 왕국 내 공산군을 격퇴한다는 내용이었다. 파견 규모는 사단급, 여단급, 대대급 파견을 모두 검토했다. 군 수뇌부는 파견군 편제를 정글 작전에 적합하도록 구성하자고 했다. 해상수송 기동전단, 수송 비행대를 만들어 라오스 파견군을 지원하는 계획도 세웠다.
 
 
  이후락의 라오스 밀행
 
  국방부 정보기관 79호실 책임자가 비밀리에 라오스에 다녀오기도 했다. 현지에서 상황을 파악하도록 한 것이다. 그가 바로 중앙정보부장을 지내는 이후락(李厚洛·1924~2009년)이다. 이후락은 당시 베트남 대사 최덕신(崔德新·1914~1989년)의 도움을 받아 푸미 노사반 장군을 만나기도 했다. 노사반 장군은 1959년 12월 25일 무혈 쿠데타로 집권한 실력자였다. 이후락은 만남 결과를 이승만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했다. 하지만 국군의 라오스 파병은 미국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한국이 라오스 내전에 개입하면, 중국과 소련도 라오스 사태에 개입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승만 대통령의 라오스 파병 구상은 6·25 직후부터 검토한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과 대한민국 국무총리가 1954년 초 유엔군사령관(CINCUNC) 헐 장군에게 보낸 편지가 남아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미국이 동의한다면 공산주의의 침략에 대항하는 라오스의 투쟁을 지원하기 위해 한국군 1개 사단을 배치할 준비가 되어 있다”라는 내용이다. 헐 장군은 미국 정부에 이 제안 검토를 요청하겠다고 두 사람에게 답했다. 미국의 최종 결정은 1954년이나 1959년이나 동일했다.
 
  “한국의 인도차이나 전쟁 참전에 대해 자유세계의 다른 국가들은 부정적으로 반응할 것이고, 그 참전 제안을 받아들여서 얻게 되는 정치적으로 유리한 점보다 불리한 점이 현저히 크다.… 한국 국경선을 벗어난 범위에서까지 아시아에서 공산주의 침략에 맞서 싸우겠다는 한국 정부의 결정을 치하하되 한국군 1개 사단의 라오스 파견은 이 시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한다.”
 
 
  학사이 마을의 새마을운동
 
라오스 새마을운동의 산증인 홍정오 협력관(가운데).
  한국과 라오스 사이의 정서적 거리를 좁혀준 건 tvN의 배낭여행 프로인 〈꽃보다 청춘〉이다. 출연자들이 라오스의 방비엥 등을 여행하며 라오스의 풍경과 인심을 안방에 전했다. ‘코끼리 들어온 집’도 있다. 어린이대공원에서 탈출한 코끼리가 거리를 헤매다 들어간 식당이다. 이 코끼리의 고향이 바로 라오스다.
 
  라오스 사람들에게도 한국과의 심리적 거리를 좁혀준 사건이 있다. 새마을운동이다. 라오스는 새마을운동을 가장 활발하게 수입하고 있는 나라 가운데 하나다.
 
  라오스 새마을운동의 시작도 극적이다. 2009년 여름, 새마을운동중앙회에 비상이 걸렸다. 미얀마에서 벌어진 정치적 소요 사태로 교육생 파견이 불가능하다는 연락이 왔다. 모든 준비를 마친 상태에서 교육 프로그램이 무산될 위기였다. 동남아에서 교육생이 오면 취지에 맞게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지만, 누가, 어디서, 어떻게, 뭐를 보고 대상자를 섭외할 것이며, 설령 새마을운동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그들을 며칠 내에 한국으로 초청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
 
  새마을운동중앙회는 라오스 한국 대사관을 통해 현재 새마을협력관으로 활동하는 교민 홍정오(74)씨에게 SOS를 쳤다. 제주도가 고향인 홍정오 협력관은 재수교 후 가장 먼저 라오스에 터를 잡은 1세대 교민 가운데 한 명이다. 그는 학사이 마을 이장을 비롯한 주민들을 새마을운동중앙본부로 보냈다. 그러고 무사히 교육 일정을 마치도록 했다. 여권, 비자 발급부터 귀국 보증까지 해결해야 할 절차가 산더미 같았지만, 거의 일주일을 뜬눈으로 보내며 일한 결과다. 홍정오씨는 한국 대사관과 라오스 정부를 수십 차례 오가며 관계자를 설득하고 선처를 호소했다.
 
 
  “저 나라는 어디냐?”
 
항싱싸왕 마을 마을회관. 소득 증대를 이룬 뒤 건립을 시작했다.
  어떻게 이런 전격작전이 가능했을까? 배경이 있다. 학사이 마을은 이전부터 한국과 인연이 있었다. 재수교 후 가장 먼저 라오스로 건너간 교민 가운데 역시 제주도 출신인 김호경씨라는 분이 있다. 김씨는 농업 관계 사업을 하던 중 학사이 마을을 찾았다. 245가구, 1167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곳이었다. 낙후한 학교 시설을 본인 돈으로 고쳐준 것이 인연의 시작이다. 학사이 마을은 김씨의 자선 이후 새마을운동 비슷한 활동을 이미 자체적으로 하고 있었다. 한국과의 정서적 연결고리가 마련되어 있었기에 홍씨의 전격작전이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이다.
 
  홍정오 협력관은 라오스 사람들을 인솔해 한국으로 왔다. 교육 첫날 그들이 조심스럽게 건넨 라오스 말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새마을운동 이전의 대한민국을 보여주는 기록 영화를 보며 라오스 사람들은 “저 나라는 어디냐?”라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리고 1960년대엔 자기들보다 못 사는 나라가 이렇게 선진국으로 도약했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새마을운동이 라오스에 자발적으로 전파되는 통로가 마련된 것이다. 씨앗이 뿌려지자 나무가 자랐다. 시범마을을 지정했고, ‘지원 없이 우리끼리 해보겠다’는 자생마을도 생겨났다.
 
  지난 4월 말, 나무가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 보려고 라오스에 다녀왔다. 시범마을, 자생마을은 현재 어떤 모습인지, 주민과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현지 새마을교육은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살펴보자는 목적이었다. 새마을운동중앙본부의 안성일 국제협력국장, 이동현 국제사업팀 담당 그리고 행안부의 송기선 서기관의 출장길에 동행한 취재였다. 현지에서 홍 협력관이 합류했고 라오스 농림부 직원 짠타라 솜앁 씨가 현지 안내를 도왔다.
 
  비엔티안에서 동쪽으로 메콩강을 따라 80km쯤 내려가면 볼리캄사이주(州)다. 볼리캄사이에는 항싱싸왕, 폰응암, 후아이싸이 등 새마을운동 시범마을이 있다.
 
  “여기가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길도 넓히고’의 현장입니다.”
 
  홍 협력관의 목소리가 들뜨기 시작했다.
 
  “라오스는 6월부터 9월까지가 우기(雨期)입니다. 그런데 토질이 한국과 달라서 비가 오면 온 동네가 금방 진창으로 변하죠. 아스팔트로 포장한 큰길이야 괜찮지만, 마을 안에서는 통행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정도니까요. 그래서 새마을운동중앙본부의 지원을 받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이 마을 안길의 포장 사업이었습니다. 마을 전체를 위한 사업이니 스님들도 다들 나오시라고 했어요. 스님들이 처음엔 주저주저하셨는데 나중엔 먼저 나와서 자발적으로 열심히 일해주시더군요. 마을의 존경을 받는 스님들이 앞장서서 일하니까 마을 사람들이 다들 나와서 열심히 일했습니다.”
 
 
  홍정오 협력관과 비닐가림막
 
소득 증대의 공신 비닐가림막. 홍정오 협력관의 아이디어로 시작됐다.
  마을 안길 포장 사업의 효과는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다. 그 이전까지는 일 년에 9개월만 왕래하던 마을 사람들이 이제는 일 년 내내 수시로 편하게 이웃과 농토를 오간다. 사람만 오가는 것이 아니라 물자도 오간다. 그만큼 마음이 넉넉해지고 살림이 펴진 것이다.
 
  홍정오 협력관은 라오스 사람들에겐 신화적(神話的)인 존재다. 이유가 있다. 같은 물건이 시공간에 따라 용도가 바뀌는 건 인간사의 묘미. 라오스는 삼모작(三毛作)이 가능하기에 생육을 촉진하는 비닐하우스는 필요가 없다. 하지만 홍 협력관의 생각은 달랐다. 앞서 말한 우기엔 모든 채소 농사가 무위로 돌아간다. 비에 잠기고 우박에 뚫려 상품으로서의 가치가 사라지는 것이다.
 
  홍 협력관은 본인이 청년 시절 새마을운동을 하며 경험했던 비닐하우스가 대안이라고 봤다. 그가 붙인 이름은 ‘비닐가림막’. 비를 막아 채소의 상품성을 1년 내내 최상으로 유지하는 것이다. 우기뿐만 아니라, 하루에 한두 번씩 내리는 스콜에도 속수무책으로 상품성을 잃어가던 채소는 홍 협력관의 아이디어에 따른 비닐가림막 설치로 고도의 상품성을 획득함은 물론 마을의 소득 또한 단기간에 비약적으로 끌어올렸다.
 
  “비닐가림막은 기가 막힌 아이디어죠. 특화해서 다른 국가에 전파할 필요가 있습니다. 단기간에 소득 증대를 확실하게 이룩하는 방법이니까요. 동남아에서 새마을운동의 간판 사업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안성일 국장의 평가다.
 
 
  선거로 뽑은 이장을 새마을 지도자로 추대
 
한국의 지원으로 시설을 개·보수한 항싱싸왕 초등학교의 어린이들.
  항싱싸왕 주민들은 새마을운동 조끼에다 새마을기(旗)까지 들고 일행을 맞았다. 거의 전 주민이 나온 것 같았다. 초록 물결이었다. 어눌한 한국어로 부르는 새마을 노래도 인상적이었다. 이동현 국제사업팀 담당은 “새마을 노래의 현지 보급을 위해 라오스 어로 바꿔서 부르라고 해도 이분들이 한국어를 고집합니다. 한국어로 불러야 진짜 새마을 정신이 깃드는 느낌이 난다고 하네요”라고 했다.
 
  인근의 폰응암 마을은 가톨릭 공동체다. 라오스 전체 인구의 1% 남짓한 소수파다. 다시 얼마를 달려 후아이싸이 마을을 방문했다.
 
  라오스는 양력 4월이 새해다. 주민들은 씨암탉을 잡고 손목에 실매듭을 묶어주며 일행을 환영했다.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의식이라고 했다. 번듯하게 지어진 마을회관이 신년행사의 장소였다. 건물 입구와 벽 한쪽에는 ‘새마을’ 로고가 새겨진 명판이 선명히 자리했다.
 
  항싱싸왕과 폰응암에서도 마을회관 신축이 진행 중이다. 홍정오 협력관에 따르면, 마을 안길 포장, 비닐가림막 설치, 마을회관 건립이 라오스 새마을운동의 정해진 코스다. 라오스는 공산국가지만 특이하게도 마을 이장(里長)을 선거로 뽑는다. 새마을 지도자를 겸하는 이장은 마을회관에서 민주적 회의를 거쳐 마을의 대소사를 결정한다.
 
 
  “박정희 방법을 꼭 이식하고 싶다”
 
영남대 박정희대학원 박사 과정 진학을 꿈꾸는 통역사 체니 씨. 박정희 대통령은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의 영웅이라고 말했다.
  ‘마을회의’에서는 부녀 회원들도 동등한 발언권을 행사한다. ‘일하는 자’로서의 당연한 권리다. 자신감 넘치고 활발한 여성 새마을 지도자들을 만나는 건 또 다른 기쁨이다.
 
  새마을 교육의 통역을 담당하는 20대 후반의 여성 체니 씨는 제주대학교에서 석사를 마쳤다. 기회가 닿는다면, 콕 집어 영남대학교 박정희 새마을대학원에서 박사 과정을 공부하고 싶다고 한다. 오랜 꿈이란다.
 
  “박정희 대통령은 무기력하고 패배주의에 젖어 있던 한국 농촌 사람들의 정신 자세를 바꾼 분이죠. 정신혁명이 없었다면 한국의 발전, 새마을운동의 성공은 불가능했을 거라고 봅니다. 그래서 박 대통령이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어떻게 정신혁명에 성공했는지 그 점을 깊이 연구하고 싶어요. 박 대통령의 방법을 우리 라오스에도 꼭 이식하고 싶으니까요.”
 
  농업연수원 연수 운영 관리자인 콘쏨밭 짠솜 씨도 새마을운동의 열렬한 팬이다. 30대 여성 공무원인 그는 새마을운동의 성공 요인으로 인센티브 시스템을 꼽는다.
 
  “잘하는 마을은 더 도와주고 더 의욕적으로 일하도록 한 것이 성공 요인이죠. 누구나 똑같이 지원했다면 오늘날과 같은 성공은 없었을 겁니다. 불공평하지 않냐고요? 그럼 잘하는 사람이 피해를 받는 건 공평한 일인가요?”
 

  그녀에 따르면, 라오스 사람들에게 박 대통령은 ‘인류에게서 가난을 몰아낸 보배 같은 존재’다.
 
  “잘사는 나라는 많지만, 빠른 시일 내 최빈국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한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죠. 원조를 받던 나라가 지금은 원조를 주는 나라가 되었다는 건 그야말로 꿈같은 일입니다.”
 
  체니 씨도 말을 보탰다.
 
  “한국은 누가 언제 왜 어떻게 어떤 요인을 투입해서 오늘날의 경제 발전을 이루었는지 그 구체적인 로드맵이 확실한 유일한 케이스입니다. 온갖 종류의 어려움을 어떻게 돌파했는지도 새마을운동 지도자들의 증언을 통해 자료가 축적되어 있죠. 그리고 성공 모델 그 자체인 대한민국이 존재합니다. 구체적 계획과 성공 사례가 모두 손에 잡힐 듯하기에 어느 나라에서든 도입과 실천이 바로 가능합니다. 그래서 후진국이나 개발도상국 사람들에게는 새마을운동과 새마을운동의 창시자인 박정희 대통령이 영웅일 수밖에 없어요. 한국이라는 모델이 현실에 존재해 한국을 보고 따라 하면 된다 생각하니 의욕이 샘솟는 것이고요.”
 
 
  중국의 그림자
 
  하지만 라오스의 미래가 마냥 장밋빛인 것만은 아니다. 일대일로(一帶一路) 계획에 따른 중국의 영향력이 라오스 전역에 급속도로 미치고 있었다. 비엔티안 시내에 규모가 크고 번듯한 신축 건물은 모두 중국 자본이 짓는다는 이야기도 있다.
 
  현지인이 알려준 ‘문제의 장소’를 찾아갔다. 폰탄 마을(Phonthan Village)이라는 중국 타운 신축 공사장이었다. 소문에 따르면, 현 라오스 당국과 중국 정부 사이에 약 40만 중국인의 라오스 이주를 허용하는 양해가 이뤄졌다고 한다. 인구 800만 남짓한 라오스에 40만 명의 중국인이 이주한다면, 더구나 그들의 생활 수준이 평균적 라오스인보다 훨씬 위라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승만 대통령의 라오스 파병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새마을운동의 전파는 지금도 가능하다. 무엇보다도 라오스 사람들이 간절하게 원한다. 박정희 대통령은 “가난이 사라지면 인권이 신장되고, 각자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난다. 잘사는 것이 최고의 인권이며 복지다”라고 했다. 인권 신장은 전 인류의 공통과제다. 우리는 라오스의 인권 신장에 기여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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