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칼럼

케인스 경제학 90년의 회고와 전망

1980년대 이후 통화주의에 밀렸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다시 주목

  • 글 : 오정근 자유시장연구원장·한국금융ICT융합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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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년은 《일반이론》 발간 90주년이자 케인스 서거 80주년
⊙ 방만한 재정정책의 원인을 제공? 《일반이론》에선 재정정책 언급 안 해
⊙ 신고전파의 가격 조정 메커니즘보다 유효수요 진작이라는 수량 조정 메커니즘 주장
⊙ 신고전파 케인지언, 後케인지언, 新케인지언 등장
⊙ 1970~80년대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은 케인스 학파의 팽창정책보다는 1·2차 석유 파동 탓

吳正根
고려대 경제학과 졸업, 동 대학원 경제학 석사, 영국 맨체스터대 경제학 석·박사 / 동남아중앙은행(SEACEN) 선임연구원 조사국장, 한국은행 국제연구팀장·통화연구실장·금융경제연구원 부원장, 고려대 정경대 경제학과 교수, 건국대 금융IT학과 특임교수, 한국국제금융학회 회장, 새누리당 혁신비상대책위원, 자유한국당 조직강화특별위원, 윤석열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지역균형발전특별위원회 간사위원 역임. 現 한국금융ICT융합학회 회장, 자유시장연구원 원장, 바른언론시민행동 공동대표 / 저서 《금융위기와 금융통화정책》 《팍스 아메리카나 3.0》 《구조전환기의 한국 통화금융정책》 등
1936년 런던의 서점가에 등장한 불과 5실링짜리 단행본 한 권이 세상을 바꾸어 놓았다. 그것은 다름 아닌 20세기 최고의 경제학자 케인스(John Maynard Keynes·1883~1946년)가 쓴 《고용, 이자 및 화폐에 관한 일반이론(The General Theory of Employment, Interest and Money)》이었다. 《일반이론》은 출간되자마자 중판을 거듭하면서 현대경제학의 체계와 방향에 일대 전기를 마련했다.
 
  케인스는 1883년 6월 영국 케임브리지의 하비가(街)에서 태어났다. 명문 이튼과 케임브리지대에서 수학했다. 특히 케임브리지대에서는 앨프리드 마셜(Alfred Marshall· 1842~1924년) 밑에서 경제학을 배웠다. 당시 신(新)고전파 경제학의 거장(巨匠)이었던 마셜로부터 배운 케인스가 후일 신고전파 경제학을 비판하고 ‘케인스 혁명’을 이룩한 것은 가히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고 할 만하다.
 
  케인스는 1906년에 인도로 건너가 2년 동안 근무한 뒤 다시 케임브리지 킹스칼리지로 돌아와 경제학 강의를 시작했다. 그는 학문 연구는 물론 현실 참여에도 적극적이었다. 그것이 후일 보다 현실적이고 정책 지향적인 《일반이론》을 탄생시키게 된 배경이 됐다.
 
  제1차 세계대전 중에는 재무부에서 근무했으며 1919년의 파리 평화회의에 재무부 대표로 참석하기도 했다. 그해 사직하고 케임브리지로 돌아왔다. 1차대전 후의 공황은 케인스로 하여금 자유방임주의 경제에 대한 문제점을 인식하게 했다. 그러한 그의 사상이 처음으로 반영된 저술이 《평화의 경제적 귀결(The Economic Consequence of Peace)》(1919년)이었다.
 
  2차대전 중에는 전비(戰費) 조달과 국제무역 및 통화 제도의 재건을 위해 노력하였는데 그 내용을 담은 책이 《전비를 어떻게 지불할 것인가(How to Pay for the War》(1940년)이다. 그의 국제통화 제도 창설 계획은 그가 영국 대표로 참석하였던 1944년 브레턴우즈 회의에서 채택됐다.
 
  1946년 4월 케인스가 심장마비로 운명하였을 때 《타임스》지는 “영국은 가장 위대한 영국인 한 사람을 잃었다”고 애도했다. 그는 영국의 위대한 경제학자일 뿐만 아니라 세계의 위대한 경제학자가 되어 있었다.
 
 
  ‘失業은 유효수요 부족에서 비롯’
 
1946년 3월 8일 IMF 이사회 창립 회의에서 케인스(오른쪽)와 미 재무부 차관보 해리 덱스터 화이트. 사진=퍼블릭 도메인

  《일반이론》은 신고전파 경제학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출발했다. 신고전파 경제학은 완전고용을 전제로 하고 있는데 그러한 상황은 현실적으로는 존재하기 힘든 특수한 경우라는 점에서 케인스는 고용 문제에 역점을 둔 자신의 이론을 ‘일반이론’이라고 했다.
 
  신고전파 경제학의 고용이론은, 실질임금은 노동의 가격이므로 실업(失業)이 존재하면 실질임금이 떨어져서 노동 수요는 증가하고 공급은 줄어들어서 노동은 항상 완전고용 상태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노동의 한계생산물은 고용이 늘어나면 감소하고 실질임금은 노동의 한계생산물과 일치하는 경향이 있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전제 위에서 만약 실업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노동의 한계생산물과 일치하는 실질임금을 노동자들이 받아들이기 거부하는 데 따른 자발적 실업이라는 것이다.
 
  케인스는 신고전파의 주장을 비판하고, 실업은 유효수요의 부족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했다. 유효수요란 기업가가 실제로 받게 되는 매출액을 말한다. 기업가는 매출액, 즉 유효수요를 예상하고 그 예상을 토대로 생산활동에 필요한 노동을 고용하게 된다. 만약 예상되는 매출액, 즉 기대유효수요가 공급액을 상회하게 되면 기업가는 고용을 더 늘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모든 공급액이 항상 유효하게 수요되는 것은 아니다. 또한 모든 공급액이 모두 유효하게 수요된다고 하더라도 이 경우가 반드시 노동시장의 완전고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유효수요의 수준이 노동시장에서 고용을 완전히 흡수하는 데 부족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케인스가 주장하는 ‘유효수요 원리’의 핵심이다.
 
  이런 의미에서 케인스는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는 세이(Say)의 법칙을 부정했다. 세이의 법칙에 의하면 가격이 신축적인 경제에서는 어떤 공급 수준에서도 항상 수요가 존재하기 때문에 불완전고용이란 존재할 수 없게 된다. 실업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한계생산물과 같은 실질임금을 받기를 거부하는 자발적 실업만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케인스의 유효수요 원리에서 보면 임금이 아무리 신축적이더라도 유효수요의 부족으로 비자발적 실업이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비자발적 실업을 임금의 하방(下方) 경직성으로만 설명하고자 하는 신고전파 경제학의 맹점을 짚은 것이 케인스 경제학의 본질이다. 케인스는 균형 달성을 위한 메커니즘으로서 신고전파의 가격 조정 메커니즘보다 ‘유효수요 진작’이라는 수량 조정 메커니즘을 주장한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고용을 증대시키기 위해서는 유효수요의 진작이 중요하다. 또한 유효수요의 진작을 위해서는 투자가 중요하다는 것이 케인스의 견해이다. 이는 자본주의 경제에서는 투자활동을 통해서 고용이 이루어지고, 그 결과 창출된 소득에 의해서 소비활동이 이루어져서, 그 투자와 소비의 합으로 나타내어지는 유효수요가 창출되기 때문이다. 케인스에게 기업가의 투자활동은 자본주의 경제활동의 원동력이다.
 
 
  ‘이자율은 화폐적 현상’
 
  케인스는 투자활동이 투자 수익에 대한 기업가의 장기적인 기대를 토대로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이 기대수익과 자본의 공급 비용을 토대로 이자율이 낮아지면 투자는 증가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케인스가 특히 강조하는 것은 이자율의 개념과 역할이다.
 
  신고전파는 이자율은 저축과 투자가 균형을 이루게 하는 가격이라고 보았다. 투자는 자본재에 대한 수요이며 저축은 자본재의 공급을 나타내므로, 이자율은 자본재의 수요와 공급을 균형시키는 가격이라는 것이 신고전파의 견해이다. 따라서 가격인 이자율이 완전히 신축적인 경우에는 저축과 투자는 항상 일치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케인스는 이자율을 화폐적 현상으로 보았다. 화폐시장에서 화폐 즉 유동성(流動性)의 수요와 공급을 균형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 이자율이라는 것이다. 저축은 소득에서 소비하고 남은 부문이다. 저축을 사람들은 이자를 가져다주는 금융자산 형태로뿐만 아니라, 이자는 없지만 즉각적인 유동성이 보장되는 화폐의 형태로도 보유하게 된다. 이자를 포기하고 화폐를 보유하는 것은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비하려는 심리적 요인 때문이다. 이러한 유동성을 보유하고 싶어 하는 심리적 현상을 케인스는 ‘유동성 선호’라고 했다. 이처럼 이자율은 근검절약에 대한 대가(代價)가 아니라 유동성을 포기한 데 따른 대가라는 것이 케인스의 주장이다.
 
  또한 케인스는 화폐 수요가 ‘거래적 동기’와 ‘예비적 동기’ 및 ‘투기적 동기’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다. 이 중 거래적 수요와 예비적 수요는 산출량 수준과 관련이 있는 반면, 투기적 수요는 이자율과 보다 밀접한 관계에 있는 것으로 보았다.
 

  케인스는 특히 종래 화폐가 교환 수단이나 가치 척도의 기능을 수행하는 거래적 수요만을 중시한 신고전파와는 달리, 가치 저장의 기능을 중시했다. 이것이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비하여 화폐를 보유하고자 하는 유동성선호이론의 기초가 됐다.
 
  또한 화폐 공급은 기본적으로 가계와 기업 및 정부의 화폐 수요에 대한 통화 당국의 정책 방향과 일반 상업 은행의 반응에 달려 있다고 보았다. 또한 이 통화 공급이 가격 수준보다는 이자율에 미치는 영향을 중시했다. 화폐 공급은 이자율의 변화를 통해서 투자 수요를 유발하고, 이것이 수요와 공급에 영향을 미쳐서 소득, 산출, 고용 및 가격 수준을 다 같이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이 점이 신고전파 화폐이론의 토대가 되는 화폐수량설과 기본적으로 다른 점이다. 화폐수량설은 화폐 공급은 산출, 고용 등 실물 부문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고 다만 명목가격에만 영향을 미친다는 이른바 ‘화폐의 중립성’을 주장했다. 반면 케인스는 화폐가 산출, 고용 등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화폐 생산 경제(monetary production economy)를 주장했다.
 
 
  거시경제학의 토대 마련
 
  이상에서 케인스 혁명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았는데, 그 의의로는 우선 거시경제학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케인스에 의해서 비로소 거시경제학의 체계가 정립되고 그를 토대로 계량경제분석 등 다양한 분석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그 결과 케인스는 ‘거시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리기도 한다.
 
  두 번째로는 완전고용과 가격 조정 메커니즘을 전제로 한 ‘세이의 법칙’을 거부하고 수량 조정 메커니즘을 토대로 한 유효수요의 원리로 고용 문제를 설명했다는 점이다. 그 결과 유효수요 진작을 위한 정부 개입의 여지를 제공함으로써 흔히 케인스를 방만한 재정정책의 원인을 제공한 학자로 비판하기도 한다. 하지만 케인스는 그의 《일반이론》 중 한 문단도 재정정책을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통화정책을 중시했다. 《일반이론》이 《고용, 이자 및 화폐에 관한 일반이론》인 이유다.
 
  셋째로는 화폐의 적극적 기능을 강조함으로써 화폐가 실물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화폐 생산 경제를 제시했다는 점이다.
 
  이와 같이 경제학의 발전 과정에서 일대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가져온 케인스 혁명은 다양하게 해석되고 발전하면서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
 
 
  신고전파 케인지언
 
  케인스가 《일반이론》을 통하여 종래의 신고전파 경제학을 비판하면서 새로운 거시경제학의 체계를 제시한 후 케인스 경제학은 여러 케인스 학파를 형성해 왔다. 따라서 오늘날 단순하게 케인지언(Keynesian)이라고 할 때는 어떤 학파의 케인지언을 의미하는지에 유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케인스 학파 중에서도 케인스 경제학을 신고전파의 방법론에 의해서 해석한 ‘신고전파 케인지언(Neo-Classical Keynesian)’과, 《일반이론》 원칙에 충실한 원칙론자인 ‘후(後)케인지언(Post–Keynesian)’, 그리고 가격을 고정된 것으로 가정하고 수량 조정 메커니즘을 토대로 불균형 거시경제학을 주장하는 ‘신(新)케인지언(Neo–Keynesian)’이 대표적이다.
 
  신고전파 케인지언은 IS-LM 분석 방법으로 널리 알려진 학파이다. 신고전파 케인지언은 케인스가 《일반이론》을 발표한 직후인 1937년에 존 힉스(John Hicks·1904~1989년)가 《에코노메트리카(Econometrica)》지에 발표한 〈케인스와 고전파(Mr. Keynes and the Classics)〉라는 논문에 기초를 두고 있다. 힉스는 케인스의 주장을 다섯 개의 방정식(상품시장을 설명하는 ‘소비방정식’과 ‘투자방정식’, 화폐시장을 설명하는 ‘화폐수요방정식’과 ‘화폐공급방정식’ 그리고 소비와 투자의 합으로 구성되는 ‘국민소득방정식’)을 이용하여 단순화, 정형화했다. 이것이 지난 반세기 동안 케인스 경제학으로 경제학 교과서마다 널리 인용해 온 유명한 IS-LM 분석의 기초가 됐다.
 
  여기서는 실업은 낮은 임금을 받기를 거부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비자발적 실업만이 존재하게 된다. 결국 비자발적 실업은 유효수요의 부족에서 비롯된다는 케인스의 주장과 달리, 임금의 하방 경직성에 기인한다는 신고전파의 주장으로 되돌아갔다. 이러한 분석 틀에 기반한 케인지언을 신고전파 케인지언이라고 하게 됐다. 후일 신고전파 케인지언의 케인스 해석을 ‘케인스 혁명에 대한 반(反)혁명(counter revolution)’이라고 하게 됐다.
 
 
  後케인지언과 新케인지언
 
  신고전파 케인지언의 케인스 해석이 케인스가 부정하고자 하였던 신고전파의 주장으로 되돌아간 점을 비판하면서 《일반이론》의 원칙에 충실하게 케인스를 해석하고자 하는 케인스 학파가 후케인지언이다. 이 학파는 힉스의 해석에 기초해서 발전해 온 신고전파 케인지언의 케인스 해석이 《일반이론》의 핵심을 간과하고 《일반이론》의 한 측면만을 단순화, 정형화함으로써 케인스의 본래 주장과 부합하지 않게 됐다고 비판한다.
 
  후케인지언은 현실세계에 존재하는 불확실성 하에서 기업은 투자와 생산 및 자금 조달에 대한 의사 결정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양한 투자 자산과 금융 수단이 존재하는 자본주의 경제에서는 투자와 자금 조달에 관한 개별 기업의 의사 결정을 둘러싼 이와 같은 불확실성은 경제를 불안정하게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경제에 내재하는 고용과 소득의 불균형은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이와 같은 투자 환경의 불안정성에 따른 것으로 본다.
 
  이러한 상황에서 화폐는 신고전파에서처럼 단순히 가치 척도와 교환의 수단으로서만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불확실성에 대비한 가치 저장 수단으로서 화폐 보유 동기를 유발하는 것이다. 그 결과 이자율은 저축과 투자의 균형가격이 아니라 화폐시장에서 유동성에 대한 수요와 공급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이자율은 자본의 한계효율과 더불어 투자의 결정 요인이 되어, 화폐가 소득과 고용을 결정짓는 적극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는 것이 후케인지언의 주장이다.
 
  신케인지언은 신고전파 케인지언이 균형에 도달하는 과정으로서 가격 조정 메커니즘을 강조하는 신고전파의 방법론을 토대로 케인스 경제학을 해석함으로써, 수량 조정 메커니즘을 강조한 케인스 경제학의 본질을 잘못 해석했다는 비판에서 출발했다. 신케인지언은 케인스 경제학은 단기에서는 가격과 임금이 고정되어 있다는 가정에서 출발하고 있다고 보았다. 신케인지언의 대표적인 학자인 A. 레이욘후푸트(A. Leijonhufvud)는 그의 《케인지언 경제학과 케인스 경제학에 관하여(On Keynesian Economics and the Economics of Keynes)》(1966년)라는 저서에서 케인스 《일반이론》의 핵심적인 메시지는 가격 조정보다 수량 조정이 더 빨리 일어나며, 시장의 불균형 상태가 경제의 정상적인 상태라는 점이라고 주장했다.
 
 
  통화주의의 한계
 
  올해는 《일반이론》 발간 90주년이자 케인스 80주기가 되는 해이다. 이상에서 개관한 바와 같이 그동안 케인스 경제학은 그야말로 다양하게 해석되고 발전하면서 변천해 왔다. 대체로 1970년대 초반까지는 신고전파 케인스 경제학이 거시경제학의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각국의 경제정책에도 다양하게 응용되면서 세계경제의 지속적인 고도성장에 기여해 왔다.
 
  그러나 1970년대 초반에 발생한 석유 파동은 세계경제를 인플레이션으로 몰아넣었고, 그 결과 그때까지 주류 거시경제학의 위치를 차지해 왔던 신고전파 케인스 경제학에 대한 비판이 제기됐다. 이에 따라 거시경제학 체계에 대한 다양한 대안들이 제시되기에 이르렀다. 인플레이션이 초미의 관심사로 대두된 가운데 물가 안정을 최우선 정책 목표로 삼는 ‘통화주의(monetarism)’가 풍미하게 되는가 하면, 신고전파 케인스 경제학의 주요 정책 수단이었던 총수요 관리정책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면서 정책 무력성 가설(policy ineffectiveness hypothesis)을 표방하는 ‘새고전파 거시경제학(New Classical Macroeconmics)’이 등장했다.
 

  그러나 미국 레이건 행정부와 영국 대처 행정부의 주요 정책 수단으로 원용되면서 1970년대 거시경제학계에 화려하게 등장하였던 통화주의는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초에 심각하였던 영미의 실업 문제를 설명하는 데 한계를 보였다. 통화주의에 의하면 고용은 자연실업률 수준에서 안정되었어야 했던 것이다. 합리적 기대 가설(rational expectations hypothesis)에 토대를 두고 있는 새고전파 거시경제학도 합리적 기대 가설 자체의 현실 적합성에 대한 논쟁과 더불어 실증 분석 상으로도 명쾌한 지지가 도출되지 않는 등 문제점을 노정했다. 이러한 가운데 위에서 살펴본 후케인스 학파와 신케인스 학파의 거시경제학도 새로운 거시경제학의 패러다임으로 제시됐다.
 
  이와 같이 1970년대 초반까지 주류 경제학으로 자리 잡아 온 신고전파 케인스 경제학에 대한 비판이 제기된 이후 새로운 거시경제학의 패러다임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오늘날 거시경제학은 가히 백가쟁명(百家爭鳴)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케인스 《일반이론》을 중심축 삼아
 
 
벤 버냉키 前 미 연준 의장. 사진=퍼블릭 도메인
여기서 중요한 점은 다양하게 제시되고 있는 여러 가지 패러다임의 거시경제학 체계들에도 불구하고 이 논쟁들이 모두 케인스의 《일반이론》을 중심축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통화주의와 새고전파 거시경제학은 기본적으로 케인스가 비판하면서 떠나오고자 하였던 신고전파의 세계로 되돌아간 것이다. 케인스 경제학을 신고전파의 틀 안에서 재해석한 신고전파 케인스 경제학을 비판한다는 것이 오히려 더욱 극단적인 신고전파의 세계로 되돌아가 버린 셈이라고 하겠다. 케인스가 비판한 화폐수량설이나 자유방임 사상이 다시 부활한 것이다.
 
  한편 신케인스 학파의 거시경제학은 가격 조정보다는 수량 조정 메커니즘을 강조한 점이라든지 유효수요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있는 점 등은 케인스의 주장을 반영하고 있으나, 가격이 신축적인 경우에는 ‘왈라스의 균형’에 도달한다고 주장함으로써 비록 가격이 신축적이라고 하더라도 유효수요의 부족으로 비자발적 실업이 존재할 수 있다는, 케인스와는 다른 패러다임에 서 있음을 보여 주었다.
 
  반면 후케인스 학파는 오늘날 소위 주류경제학의 위기는 케인스가 부정하고 떠나오고자 하였던 신고전파의 패러다임을 토대로 케인스 경제학을 잘못 해석한 데서 비롯됐다고 주장하면서 원래의 케인스 경제학으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가운데 2008년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는 경제학계에도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다. 2008년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당시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 의장 벤 버냉키(Ben Bernanke)는 ‘양적 완화(QE)’라는 전대미문(前代未聞)의 통화정책을 전격적으로 도입했다. 이미 경제가 극도의 불황으로 추락한 상황이라서 제로 금리를 도입한 가운데 더 이상 금리를 낮출 수 없는 상황에서 통화량을 무제한 푸는 정책을 양적 완화라고 한다. 중앙은행이 국채, 모기지 채권 등을 매입해 통화량을 늘리는 비전통적 통화정책이다. 2008년 11월 1차 QE를 시작으로 2010년 2차, 2012년 9월 3차 QE가 시행됐다. 이로 인해 버냉키는 ‘헬리콥터 벤’으로 불리며 과감한 부양책을 주도했다.
 
 
  ‘케인스가 돌아왔다’
 
  QE가 금융시장 안정과 경기 회복에 기여했다는 평가와 함께 버냉키는 2009년 ‘세계를 구한 인물’로 미국 《타임》지의 커버를 장식했다. 2022년 스웨덴 왕립 과학 아카데미는 “금융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실천적 해법을 제시했다”는 평가와 함께 그에게 노벨경제학상을 주어서 금융위기 극복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했다. 그의 정책은 글로벌 금융위기로 극도로 높아진 불확실성에 대비하기 위해 유동성을 보유하고자 하는 경향, 즉 유동성 선호가 이례적으로 높아진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특단의 통화정책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1970년대 석유 파동 이후 경제학계를 풍미해 온 통화주의가 퇴조하고 “케인스가 다시 돌아왔다”는 평가도 나왔다.
 
  사실 1970~80년대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은 케인스 학파의 팽창정책보다는 1·2차 석유 파동으로 인한 급격한 석유 가격 인상에 더 큰 원인이 있었다. 그런데도 1·2차 석유 파동에 주로 기인한 인플레이션이 케인스 학파의 팽창정책에 기인했다는 평가가 통화주의 학파를 중심으로 쏟아지면서 경제학도 통화주의 학파가 지배적이 되었다. 통화주의 학파의 기본 가정인 완전고용을 전제로 한 여러 이론들이 등장하면서 현실 문제에 제대로 해답을 제시하지 못하는 문제점을 노정해 왔다. 이런 가운데 버냉키 연준 의장의 양적 완화 정책이 등장하면서 다시 케인스 경제학이 중심 무대로 복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전망들이 등장한 것이다.
 
  1936년 《일반이론》으로 거시경제학의 체계를 처음으로 제시한 이래 발전을 거듭해 온 케인스 경제학은 9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거시경제학의 중심축에서 미래의 거시경제학 체계 정립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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