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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갑제의 시각

“윤석열 대통령의 일선 경찰 질타!”

세월호 사고와 해경 해체가 떠오른다!

글 : 조갑제  조갑제닷컴·조갑제TV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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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 특히 일선 경찰을 속죄양으로 삼고자 하면 박근혜의 海警 해체 같은 치명적 실수를 낳을 것
⊙ 민주당이 서울경찰청장, 경찰청장, 행정안전부 장관, 국무총리 등 수뇌부를 조준하는 것과는 반대
⊙ 박근혜, ‘해경 해체’ 무리수를 뒀다가 경멸과 원한을 동시에 사게 돼
⊙ 세월호 사건 당시 ‘슈퍼맨이 되지 못한 죄’로 기소됐던 해경 간부들, 대부분 무죄 판결 받아
⊙ 권력자의 화난 모습은 국민들을 불안하게 만든다
윤석열 대통령은 10월 30일 이태원 압사 사고 현장을 둘러보았다. 사진=조선DB
  이승만(李承晩)·박정희(朴正熙) 두 대통령의 위업이 잊히고 이명박(李明博)·박근혜(朴槿惠) 두 대통령이 감옥에 간 것은 국정(國政)엔 성공해도 정치에는 실패한 때문이다. 앞의 두 대통령은 자신들의 정치노선을 이어갈 정당을 만드는 데 실패했고, 뒤의 두 대통령은 정치의 핵심인 선동에 당했다. 마오쩌둥(毛澤東)은 ‘정치는 피를 흘리지 않는 전쟁이고 전쟁은 피를 흘리는 정치’라고 했다. 민주당 세력은 이런 생각으로 무장한 집단이다.
 
  윤석열(尹錫悅) 대통령 또한 안보엔 성공하면서도 정치에서는 실패하는 길을 걷고 있다. 보수적 가치를 스스로 저버린 무리한 청와대 이전과 이준석 몰아내기로 중도와 젊은 층이 떠나고 보수도 분열되어 지지기반이 거의 붕괴 상태이다.
 
  이태원 압사 사고 수습은 중대한 정치 행위인데 여기서도 실패할 가능성이 있다. 경찰, 특히 일선 경찰을 속죄양으로 삼고자 하면 박근혜의 해경(海警) 해체 같은 치명적 실수를 낳을 것이다. 13만 경찰은 과거 중앙정보부 기능까지 맡고 있는 체제 수호 기관인데 대통령이 결정적 순간에 이들의 도움을 받지 못하면 정권 유지에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1월 8일 이태원 압사 사고 관련 국가안전시스템 점검 회의에서 15분 정도 격앙된 말투로 경찰의 태만을 질책했다. 대통령이라기보다는 검찰총장 같은 말이었다. 대통령실은 이례적으로 이 동영상을 공개했다. 수습과 수사에 대한 가이드라인처럼 여겨진다.
 
 
  대통령의 분노
 
윤석열 대통령은 11월 7일 열린 국가안전시스템점검회의에서 경찰을 질타했다. 사진=뉴시스
  “이번에 이태원 사고를, 참사를 보면서 저는 대통령이 아니라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점이 있어요. 112시스템 이야기를 하는데, 112시스템이라는 건 기본적으로 범죄에 관한 신고입니다. 그러면 범죄가 어디에서 일어났는지 경찰도 모릅니다. 누구 집에서 일어났는지 음습한 뒷골목에서 일어났는지. 그래서 경찰에 신고하면 광역지방청 112센터에서 접수를 하면서 모니터에 신고자 위치가 뜨거나 연락을 받습니다. 그럼 그걸로 가장 가까운 지구대에 연락해서 경찰이 범죄 현장이나 피해자가 있는 곳으로 가게 만드는 게 112시스템입니다.
 
  이번에 이태원 해밀톤 호텔 옆 참사라는 것은, 거기에 상당히 많은 인파가 몰려든다는 정보는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겁니다. 구청뿐 아니라 경찰도 알고 있고, 회의도 했잖습니까? 방송에서 무지하게 홍보를 했어요. 그래서 137명의 경찰이 현장에 가 있었습니다. 저녁 6시40분부터 사람이 너무 많아서 사고 위험 때문에 경찰이 조치를 해줘야 된다는 신고가 들어왔습니다만 은밀한 곳에서 이뤄지는, 경찰이 모르는 범죄 신고가 아니고 경찰이 현장에 나가서 경찰도 같이 바라보고 있는 상황입니다. 112 신고가 11건이 왔는데 4건만 처리되고 7건은 처리가 안 됐다, 이런 보도들도 있는데 저는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이태원 해밀톤 옆 골목의 그 상황을 137명이 이태원에서 보고 있는 겁니다.
 
  6시34분부터 신고가 들어왔으니까 아마 그 전부터 밀집도가 아주 높아지고 인산인해를 이뤘겠죠. 사고 현장에 CCTV 기록을 17군데 것을 수사팀에서 수거해 갔다고 하는데 그걸 보면 아비규환의 상황이 아니었겠나 싶은데 그 상황에서 경찰이 권한이 없다는 말이 나올 수 있습니까? 교통사고가 나면 도로 통제하죠? 차선 통제하죠? 예를 들어서 도로에 있는 건축물이 무너지거나 지나가는 화물차에서 대규모로 물건 같은 게 떨어지면 즉각 경찰은 차선을 통제합니다. 그쪽으로 지나다니는 차도 위험할 수 있고 사람도 위험할 수 있기 때문에 경찰관 집무집행법에 따라서 즉각 통제해요.
 
  인파 운집으로 인해서 사고의 위험이 굉장히 높아지는 상황이고 112 신고가 들어올 정도의 상황이면, 거기에 현장에 다수의 경찰이 있었으면, 인파 밀집도를 떨어뜨리는 통행과 점유 공간을 넓혀줘야 되는 겁니다.
 
  집회나 시위가 있을 때는 도로까지 허가를 내준단 말이에요? 많은 인원이 와서 잘못하면 사람들이 밟히거나 해서 사고 날 것 같다고 하면 즉각 차선을 통제하고 차선을 차단하고 통행 공간으로 만들어준단 말이에요.
 
  (이태원 사고는) 어디 멀리 구석에서 벌어진 것이 아니라 주(主) 도로 바로 옆에 있는 인도에서 벌어진 사고입니다. 이 정도 되면 주 도로를 당연히 차단했어야죠. 그걸 왜 안 했는지 나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됩니다. 과거에 지금보다 더 시설이라든가 여러 통제하는 시스템이 덜 발달했을 때도 이런 식의 사고는 안 일어났습니다.”
 
 
  “저는 도저히 납득이 안 갑니다”
 
  “저는 경찰에 정말 묻고 싶어요. 왜 그 앞에, 6시34분에 인파가 너무 밀집해서 숨 쉬기도 어렵고 경찰에 통제 조치를 해달라고 112 신고가 들어올 정도의 상황이면 그 상황을 당시에 이태원 지구대든 용산서 경찰관들이든 130여 명의 경찰들이 현장에서 지켜보고 있었는데. 경찰서장이 늦게 왔냐 빨리 왔냐의 문제가 아니고, 왜 그런 도로 차단 조치를 해서 인파에 통행 공간을 넓혀주면 벌써 압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중앙선까지만 공간을 확보해줘도 해밀톤 호텔 옆골목에서 내려오려고 하는 숨통은 터줄 수가 있어요. 물론 만약 발 빠르게 대응했다고 그러면 그 이면도로, 주 도로 옆에 있는 인도에서 3.2m 폭의 좁은 골목으로 40m 올라가면 다양한 세계 식당 거리가 있다고 하는데, 나도 거기 잘 압니다만 그쪽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을 통제해서 여기 지금 위험하니 가지 마십시오, 나가는 사람만 놔두고 들어가려는 사람은 30m, 50m에서 막는 조치, 그거 당연히 했어야 되는데 내가 거기까지는 바라지 않습니다.
 
  그리고 137명이 못 할 상황이 아니에요. 추가로 서울경찰청에서 인원이 보강되거나 용산서에서 비상을 걸어서 경찰관들이 추가로 오지 않아도 충분히 그 상황에서 대응할 수 있는 건데 이게 도대체 왜 안 이루어졌는지, 저는 도저히 납득이 안 갑니다.”
 
 
  경찰이 태업했나?
 
  이다음부터 윤석열 대통령은 경찰이 고의적으로 태업(怠業)을 한 게 아닌가 몰아붙인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수사도 지금 이뤄지겠지만, 우리나라 경찰이 그렇게 엉터리입니까? 한국 경찰이 그렇게 엉터리 아닙니다. 교통사고 나면 즉각 출동해서 차선 도로 차로 통제 딱딱 하고. 집회나 시위나 행사 같은 거 있을 때도 경찰의 다양한 정보망을 이용해 경비 정보를 얻어서 (대응하고). 경찰의 정보 중에 제일 중요한 정보란 게 경비 정보잖아요, 안전하고 직결되는 거기 때문에.
 

  아니 이게 안전계획을 주최자가 세워야 됩니까? 주최자 보고 안전계획을 가져오라는 건 행정 편의 중의 하나지 안전계획이라고 하는 건 국가가 세워야 되는 거고 정부가 세워야 되는 거예요. 주최자 있는 행사라고 주최자가 안전계획을 세워야 됩니까? 그건 협조받는 거예요. 행사에 대한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해서 하는 것이지 주최자가 제출한 안전계획대로 하면 됩니까? 사고 나면 그 사람이 책임져야 돼요? 아닙니다.
 
  안전사고를 예방해야 될 책임은 어디에 있습니까? 경찰에 있어요. 소방서는 예방도 물론 하지만 사고 발생 직후부터 119구급대가 작동하기 시작하는 거고 사고를 막는 것은, 그리고 위험을 감지해야 되는 건 경찰에 있습니다. 그런데 경찰이 통상 늘 수집하는 경비 정보, 집회시위가 신고가 안 되어도 경비 정보로 이번에 뭘 할 것 같다라든지 또는 집회 신고는 5000명 됐는데 더 많은 인원이 올 것 같다든지 또는 여기에 사람들이 무지하게 많이 몰릴 것 같다든지 하는 그런 정보를 경찰 일선 용산서가 모른다는 것은 상식 밖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경찰이 그런 엉터리 경찰 아닙니다. 정보 역량도 뛰어나고.”
 
 
  검찰총장 출신답게 상황 파악은 정확하지만…
 
민주당은 이태원 참사 이후 국정조사와 특검 추진을 요구하면서 윤석열 정권 수뇌부를 겨냥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은 이어서 이태원 압사 사고의 책임을 일선 경찰로 특정하는 시각을 확실히 했다. 제도 미비가 아니란 것이다. 민주당이 서울경찰청장, 경찰청장, 행정안전부 장관, 국무총리 등 수뇌부를 조준하는 것과는 반대이다. 정치적으로 이게 옳은 접근일까?
 
  “왜 4시간 동안 물끄러미 쳐다만 보고 있었냐 이거예요. 현장에 나가 있었잖아요. 112 신고 안 들어와도 조치를 했었어야 되는 거 아닙니까? 이걸 제도가 미비해서 여기에 대응 못 했다고 하는 말이 나올 수 있냐 이 말이에요. 이태원 참사가 제도가 미비해서 생긴 겁니까? 저는 이건 납득이 안 됩니다. 저 정도 되면, 저런 압사 사고가 일어날 상황이고 6시 반부터 사람들이 숨도 못 쉴 정도로 죽겠다고 하면, 현장에서 눈으로 보고 있잖아요 지금. 그걸 조치를 안 해? 이태원 참사 문제하고 우리가 지금 논의하는 국가안전시스템 점검 회의하고는 차원이 다른 거니까 선을 분명히 그어야 되고 이게 시스템이 안 되고 제도가 미비하다는 얘기는 저는 여기서는 안 맞는 것 같습니다.”
 
  윤 대통령은 역시 검찰총장 출신답게 상황 파악을 정확히 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동시에 이 사고는 예견이나 예방이 가능했다는 생각을 갖고 있음을 짐작게 한다. 하지만 인파가 몰리면 사고가 날 수 있을 것이란 불안과 156명이 좁은 골목에서 압사할 것이란 예상은 전혀 차원이 다르다. 비가 온다는 예보와 시간당 200밀리의 폭우가 온다는 예보가 다르듯이. 폭 3m, 길이 40m이면 120평방미터인데 여기서 156명이 깔려 압사하는 사고를 예견할 수 있었을까? 윤석열 대통령과 언론은 대체로 사후적(事後的) 관점에서, 전지전능한 시각에서 책임을 추궁하고 있다. 그래서 맨 먼저 용산경찰서장이 도마 위에 올랐다.
 
 
  용산서장은 시위 현장에 있었다
 
  사고 당일인 10월 29일 오후 6시 조선닷컴이 올린 기사는 용산경찰서장이 그날 신경 쓴 곳은 이태원이 아니고 용산 대통령실 주변일 수밖에 없었으리란 점을 짐작게 한다.
 
  기사는 지난주에 이어 29일 오후에도 광화문과 용산 등 서울 도심 곳곳에서 대규모 집회가 열리고 있고 보수·진보 성향 단체들이 이른 오후 광화문 일대에서 집회를 마치고, 대통령실이 있는 서울 용산구로 행진하면서 도심 교통체증이 용산 일대로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그날 오후 5시쯤 서울 용산구 삼각지역 일대 도로가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등 양대 노총 공공부문 공동대책위원회 행진으로 통제돼 있었고 반대편 차선에선 신자유연대가 이들에 대항해 맞대응 집회를 열고 있었다.
 
  신자유연대는 그날 오후 4시부터 삼각지역 11번 출구 앞 인도와 3개 차로 140여 m를 점거하고 집회를 진행했다. 집회 진행자는 “곧 있으면 민주노총이 온다”며 “국민들은 윤석열을 지지한다는 걸 확실하게 보여주자”고 했다.
 
  조선닷컴 기자는 신자유연대 측과 공대위 측 간의 집회 방송 음량 대결이 시작됐다고 전했다. 경찰은 집회 소음이 계속해서 커지자 방송으로 이를 줄여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이임재 용산경찰서장은 이태원이 아니라 시위 현장에 있었다. 이태원에 인파가 몰려도 평화적 행사를 하는 사람들이라 사고가 날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대통령실 주변으로 몰려드는 좌우 진영 시위대가 더 걱정되었을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태원 사고를 막지 못한 직접 원인을 현장에 나가 있는 경찰의 태만으로 몰았는데 경찰은 사고 당일의 광화문·용산 시위 관리에 수천 명의 경찰력이 집중되어 대응 능력이 분산된 점을 더 무겁게 보려고 할 것이다.
 
 
  ‘예상하기 어려웠던 사고’
 
  지난 11월 7일 《한겨레》는 용산구의 한 설렁탕집 및 인근 가게 CCTV 에 잡힌 용산서장을 소개했다. 이임재 서장은 밤 9시24분 설렁탕집으로 들어왔고 식사는 밤 9시44분 끝났다. 이 신문은 “식사를 하던 도중 이태원 현장이 긴급 상황이라는 보고를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그러나 식사 중이나 식사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날 때도 다급한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그가 받은 긴급 상황 보고도 압사 사건이 아니라 인파가 많이 몰렸다는 정도였을 것이다.
 
  사고 이후에 되돌아보고 그때 ‘인파=압사 위험’이라고 판단했어야 한다고 비판은 할 수 있겠지만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일어난 적이 없는 유형(類型)의 압사가 그 순간 일어날 줄이야 누가 짐작이나 했을까? 1959년의 부산공설운동장 압사 사건, 그 이듬해 서울역 압사 사건, 그리고 최근의 인도네시아 축구장 압사 사건은 군중이 달리다가 밟혀 죽은 사고였다. 이런 사고를 영어권 언론은 ‘stampede’라고 하는데 이태원은 ‘crush’라고 했다. 오렌지 주스를 짜낼 때처럼 군중이 압착 사망했다는 것이다. 그만큼 예상하기 어려운 사고였다.
 
  《한겨레》는, 밤 9시45분 서장의 관용차 운전기사가 먼저 식당을 나와 골목에 주차됐던 차를 빼 식당 앞으로 댔고 서장은 밤 9시47분 웃옷을 벗은 채 맨 마지막으로 식당을 나왔으며, 식당 직원은 “(이 전 서장 등이) 따로 서두르는 기색은 없었다. 식사를 시킨 뒤 평범하게 먹고 나갔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식사 중 무전을 받기도 했느냐’는 질문에는 “그런 건 없었다”고 했다.
 
  《한겨레》는 “이 전 서장은 참사 당일 밤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퇴진 촉구’ 집회 관리를 마친 뒤, 함께 업무를 본 정보·경비 과장과 늦은 저녁 식사를 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서장은 그날 피곤하고 배고픈 상태였을 것이다.
 
 
  언론, 용산서장이 뒷짐 지고 걸었다고 힐난
 
  그는 관용차를 타고 10분 뒤인 밤 10시쯤 녹사평역 근처에 도착했으나 교통정체로 이태원 현장에 진입할 수 없었다. 사고 15분 전의 일이다. 차는 여러 우회도로로 진입을 시도했으나 실패했고, 서장은 오후 10시55분에서 11시1분 사이 사고 현장 근처인 앤틱가구거리에서 차에서 내려 걸어서 이태원 파출소로 갔다. ‘녹사평역에서 걸어서 약 15분이면 사고 현장인 이태원역까지 갈 수 있는데 왜 차 안에서 40분을 더 보냈느냐’는 게 언론의 힐난(詰難)이다.
 
  차 안에서 사고 상황에 대한 보고를 받고 지시를 하고 있었는지의 여부는 수사를 통해 밝혀질 것이다. 연합뉴스TV가 공개한 CCTV 영상을 보면 오후 10시59분 한 무리의 인파가 앤틱가구거리를 지나고 있었고, 그 뒤를 걸어가는 서장의 모습이 나온다. 이때 뒷짐을 지고 한가하게 걸었다고 또 비판을 받았다. 그는 밤 11시5분경 이태원 파출소에 도착했고 3층 옥상으로 올라가 현장을 보며 사고 대응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경찰청 특별감찰팀은 서장이 당일 행적을 허위 보고했다는 의심을 하고 있다. 용산경찰서 상황보고서에는 사고 발생 5분 뒤인 밤 10시20분 현장 인근에 도착했다고 적혀 있다는 것이다.
 
  용산서장의 이런 행동에 대하여 여당의 실력자 장제원 의원은 지난 7일 세월호의 이준석 선장과 비교하며 “참사를 고의로 방치한 것 아닌가. 언론에 드러난 상황을 보면 업무상 과실치사로, 살인 방조 세월호 선장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며 긴급체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인 그는 윤희근 경찰청장을 상대로 “‘검수완박’ 때문에 경찰이 경찰을 수사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지만, 1차적으로 참사 현장 관할 서장의 책임을 밝히는 게 첫 순서다. 그런데 이임재 이분의 수상한 행적은 미스터리 수준”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용산서장은 1시간20분 동안 뭘 하고 서울청장에게 11시36분에 보고를 하나. 제정신인가.”
 
  10월 29일 전 누가 “40m 좁은 골목에서 156명이 깔려 죽을 확률과 핵미사일이 서울 상공에서 폭발할 가능성 중 어느 것이 높을까”라고 물었다면 나는 후자(後者)라고 답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11월 초 북한이 신경질적으로 미사일을 쏘아대는 가운데도 윤석열 정부는 핵 민방위 훈련을 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의 안보 태업을 따라가고 있다.
 
 
  핵·미사일 대비 훈련은 대통령 책임
 
  2017년 12월 19일 김부겸 당시 행정안전부 장관은 국회 재난안전대책특별위원회에 나와 ‘북핵 대피 훈련을 할 경우 국민들 사이에 위기감, 불안감을 조장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아래는 당시 김부겸 장관이 자유한국당 강효상 의원과 나눈 질의응답 일부다.
 
  〈강효상: 최근 북핵 위기가 고조됨에 따라 미국의 선제타격 얘기가 지금 거론이 되고 있습니다. 미국의 선제타격 시에 예상되는 북한의 보복 공격 시에, 우리 정부도 대비책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부 차원에서 그런 대책이 있습니까?
 
  김부겸: 위원님 말씀하신 게 워낙 파장이 큰 문제여서 저희가 비상대비계획이라고 계획은 가지고 있습니다마는 정부가 집행에 옮기기에는 너무 부담이 큰 문제입니다. 사실 이런 토론은 국회에서 조금 일어나서 국민들이 그 논의를 지켜보면서 국민들이 그 상황을 납득해주시고 그런 필요성을 공감할 때에만 가능할 것 같습니다. 아니면 정부가 나서서 오히려 여러 가지 위기감을 조장한다든가 이런 국민들 사이에 큰 오해나 불안감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위원님께서 말씀하신 그건 국회에서 좀 토론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 발언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비판 여론이 거세게 일자 김 장관은 2019년 1월 초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내 발언의 취지는 정부는 비상대비계획을 갖고 있으나, 북한의 핵공격을 상정한 정부의 대응과 훈련은 국민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이에 따른 파장이 큰 사항이므로 국민과 국회의 동의를 얻어서 바람직한 방향으로 추진하겠다는 의미였다”고 주장했다.
 
  당시 천영우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전 외교안보수석비서관)은 “매월 하는 민방위 훈련에서 핵·미사일 대피 훈련에 역점을 기울여 실제 상황을 염두에 두고 제대로 해야 하고, 모든 국민이 대피 장소를 숙지하게 해야 한다”고 지적했지만 정부 방침에는 변화가 없었다.
 
  만약 김정은이 핵미사일을 발사, 서울 주민 10만 명이 죽었다고 치자. 윤석열 정부가 일본 정도의 대피 훈련만 했어도 그중 5만 명은 살릴 수 있었다며 윤 대통령이 제2의 세월호 선장처럼 살인방조를 했다는 비판을 장제원 의원이 할지 모른다.
 
 
  세월호 사고 수사의 再版이 안 되어야
 
  이태원 사고 수사가 세월호 사고 때처럼 무리할 경우, 그 부담은 윤석열 정부로 돌아갈 것이다. 세월호 사고 때 박근혜 대통령은 ‘해경 해체’라는 무리수를 두고, 검찰은 무리한 기소를 하여 무죄(無罪)선고가 많이 나왔다. 권력이 경멸과 원한을 동시에 산 것이다.
 
  작년, 2014년 세월호 침몰 사고 당시 초동 대처를 잘못해 세월호 승객 445명을 숨지거나 다치게 했다는 혐의로 기소된 김석균 전 해양경찰청장이 1심 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법원은 김 전 청장을 포함해 이 사건으로 기소된 해경 전·현직 간부 10명의 ‘구조 실패’ 혐의에 대해서도 전부 무죄를 선고했다. 일부 간부가 초동 대처 관련 기록을 사후 조작했다는 부분에 대해서만 유죄를 인정했다. 그간 검찰·감사원 등 7개 기관이 8차례에 걸쳐 세월호 관련 조사와 수사를 벌인 바 있다.
 
  법원은 김석균 전 청장 등 해경 지휘부의 기소 사실에 대해 “업무상 과실에 대해 유죄가 입증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사후의 전지전능적 시각을 배척한 것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세월호는 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49분 침몰하기 시작했다. 해경은 오전 8시52분쯤 이 사실을 알게 됐고 오전 9시30분 전후로 해경의 구조 헬기와 선박이 침몰하는 현장에 도착했다. 승객을 구조할 수 있는 ‘골든 타임’은 오전 9시50분쯤까지로 해경에 주어졌던 구조시간은 사실상 20분 정도였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재판부는 “당시 세월호와 직접 교신한 진도 해상교통관제센터(VTS)가 파악한 것 이상으로 상황을 알 수 없었던 김 전 청장 등으로서는 결정이 쉽지 않았고, 세월호 선원이 승객들에게 아무 조치를 하지 않은 상황까지 예상할 수 없었다고 보인다”고 했다.
 
  재판부는 세월호 사고에서 많은 사상자를 낸 원인에 대해 선장·선원의 무책임뿐만 아니라 세월호의 침몰 속도가 배의 구조적 결함 때문에 예상보다 빨랐다는 점도 지적했다.
 
  재판장은 선고 말미에 “세월호 사고는 모든 국민께 큰 상처를 준 사건이었고, 여러 측면을 살펴야 하고 법적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며 “재판부 판단에 여러 평가가 있을 것이 당연하고, 그에 대해서는 판단을 지지하든 비판하든 감수하겠다”고 했다.
 
 
  구조 艇長에게 징역 3년
 
  세월호 사고 수사 재판 과정에서 가장 억울한 사람은 아마도 김경일 정장일 것이다. 광주지방법원 형사 11부(부장판사 임정엽)는 2015년 2월 11일 세월호 사고 때 현장에 맨 먼저 도착, 구조 활동을 지휘, 승객 172명을 살리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해경 123경비정의 김경일 정장(당시 57세)에게 업무상과실치사 및 공문서허위작성 등의 죄를 적용, 징역 4년형을 선고, 법정구속하였다(2심에선 징역 3년, 대법원에서 확정). 재판부는 선고문에서 피고인에게 불리한 점과 유리한 점을 동시에 고려, 형량(刑量)을 정하였다고 밝혔다. 먼저 불리한 양형(量刑) 요소를 이렇게 설명하였다.
 
  〈피고인은 세월호 사고 발생 당일 사고 현장에 출동하였을 때 123정의 승조원들에게 눈앞에 보이는 사람들을 건져 올리도록 지시하였을 뿐 다수의 승객들이 세월호를 빠져나오지 못하였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들이 세월호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유도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이행하지 않았다. 피고인의 업무상 과실로 인하여, 적절한 퇴선 유도 조치가 실시되었을 경우 생존할 수 있었던 일부 승객들이 세월호를 빠져나오지 못하여 사망하게 되었다.〉
 

  재판부는 김 정장에게 유리한 양형 요소도 적었다.
 
  〈피고인이 사고 현장에 도착한 시점에 이미 세월호가 복원력을 상실한 상태에서 빠른 속도로 전복되고 있었고, 세월호의 선장과 선원들이 승객들의 퇴선 준비를 하지 아니하고 승객들을 유기한 채 세월호를 탈출하였기 때문에, 승객들이 선내(船內) 대기방송에 따라 대기하고 있는 사실을 몰랐던 피고인으로서는 짧은 시간 안에 승객들의 퇴선 유도를 위한 적절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그러한 조치를 이행해야만 했다.
 
  세월호의 전복 사고 및 피해자들의 사망 또는 상해에 관한 주된 책임은 회사의 이윤을 추구하기 위하여 승객들의 생명과 안전을 도외시한 청해진해운 임직원들과 자신들의 안위를 위하여 승객들을 저버린 세월호의 선원들에게 있다. 비록 피고인에게 승객들의 퇴선 유도를 위한 조치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업무상과실이 인정되지만, 피고인의 잘못은 구조작업을 수행함에 있어서 발생한 것이므로 위와 같은 청해진해운의 임직원들과 세월호 선원들의 잘못에 비하여 무겁다고 할 수 없다. 피고인은 34년 동안 해경으로 일하였으며, 이 사건 이전에 아무런 범죄전력이 없고, 처와 취업을 앞둔 두 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피고인이 잘한 점은 172명을 살린 일이고 잘못한 일은 퇴선 유도를 안 한 것과 허위공문서 작성이다. 계산을 제대로 하면 잘한 점이 훨씬 많고 잘못한 일은 이해할 수 있거나 그가 살린 목숨들에 비하면 사소하다. 그렇다면 무죄나 집행유예여야 하는데 징역 4년형이라니! 마녀사냥을 압박하는 정치와 언론의 작용이 판사들에게 미치지 않았을까? 이 재판이 세월이 지나 작년에 있었다면 다른 선고가 나왔을 것이다.
 
 
  슈퍼맨이 되지 못한 罪
 
  김경일 정장이 지휘하는 소형 경비정이 현장에 도착한 것은 9시30분, 절벽처럼 기울어가는 세월호에 접근, 구조용 단정(短艇)을 내려 세월호 선측(船側)에 붙여 사람들을 태우기 시작한 것은 9시38분, 시시각각 기울어가는 선체(船體)를 올려다보면서 자력(自力)으로 선실(船室) 바깥으로 나온 승객들을 집중적으로 구조하던 중 배가 전복된 것은 10시17분이었다.
 
  승객들을 구조할 수 있었던 시간은 9시38분부터 10시17분까지의 39분이다. 이것은 나중에 알게 된 시간이고 현장 상황은 더욱 급박하였을 것이다. 당시 거대한 선체가 모로 돌면서 넘어가는 모습을 해면(海面)에서 위로 쳐다보면서 구조 작업을 하고 있었던 해경은 배가 언제 엎어질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이런 절망적 상황에서 경비정과 구조 헬기, 그리고 해경의 연락을 받고 몰려온 어선들이 172명을 구조한 것은 ‘영웅적 행동’이었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 나의 판단인데 재판부는 정장에게 초인적 능력을 주문하였고, 못 미친 부분을 형사 처벌 대상으로 삼아 징역 4년형을 선고, 법정구속까지 한 것이다.
 
  사고 당일 오전 9시46분경 선장 이준석 및 조타실 내 선원들은 세월호의 조타실 앞에 도착한 해경 123정에 탑승하기 시작, 모두 탈출하였다. 이준석 선장은 김경일 정장에게 “내가 선장이다”고 밝힌 뒤 선내(船內) 정보를 전달, 적절한 조치를 취하도록 도왔어야 했는데 신분을 감추었다. 김경일 정장으로선 선장이 해야 할 일, 즉 승객들을 대피시키는 일보다는 구조 지휘관으로서 해야 할 일에 치중할 수밖에 없었고 이 부분에선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경비정, 헬기, 어선들이 몰려와 40~50분 안에 172명을 살렸던 것이다. 재판부의 선고 내용은 김경일씨가 처했던 시간과 공간적 제약을 무시하고, 평지에서 시간이 충분할 때나 할 수 있을 법한 일들을 나열한 뒤, 하지 않은 것을 추려내 업무상과실치사죄를 적용한 셈이다.
 
  완벽하게 좋은 조건에서 완벽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을, 불완전한 상황에서 불완전한 인간이 하지 않았다고 벌을 준다면 모든 인간은 법관 앞에서 슈퍼맨이 되지 않으면 감옥에 갈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이번에도 대통령이 앞장서고 여당까지 일선 경찰을 때리는 분위기에서 수사, 재판이 진행되면 비슷한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해경 해체가 결국 정권 붕괴로!
 
박근혜 대통령은 2014년 5월 19일 세월호 사고와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하면서 해경 해체를 선언했다. 사진=뉴시스
  나는 세월호 사고가 난 당일 저녁 거의 모든 언론이 암초 충돌설을 주장할 때 과적(過積)이 원인일 것이라고 조갑제닷컴에 올렸다. 배와 바다에 대하여 좀 아는 입장에서, 당하고 있는 해경이 안쓰러워 변호하는 글을 많이 썼다. 2014년 5월 19일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사고의 책임을 물어 해경 해체를 발표하였을 때 불길한 예감이 든 나는 이게 정권 종말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하였다.
 
  〈오늘(2014년 5월 19일) 대한민국 대통령은 언론의 선동에 굴복, 진실·정의·자유를 근간으로 하는 헌법정신과 국가이익에 배치되는 내용의 발표를 했다. 특히 세계적인 해양국가로 성장한 대한민국을 해경 없는 나라로 만들겠다고 선언하였다. 대통령의 연설은 그의 지도력을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약화시킬 위험성이 있다.
 
  그는 바다와 배를 모르는 기자들의 과장과 왜곡과 날조 보도를 그대로 수용했다.
 
  “이번 세월호 사고에서 해경은 본연의 임무를 다하지 못했습니다. 사고 직후에 즉각적이고, 적극적으로 인명(人命) 구조활동을 펼쳤다면 희생을 크게 줄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해경의 구조 업무가 사실상 실패한 것입니다”는 말은 우선 사실과 다르다.
 
  평온한 바다에서 과적, 급변침(急變針) 등의 사유로 큰 배가 갑자기 기울어 한 시간 반 만에 전복된 것은 세계 해난(海難) 사고 역사상 유례가 드문 경우이다. 그만큼 구조가 어려웠다는 이야기이다. 그럼에도 해경은 구조요청을 받은 뒤 세월호에 구조헬기와 구조정을 보내 배가 뒤집어지기까지의 40여 분 사이 172명을 구조하였다.
 
  언론의 보도 태도를 보면 왜 전원 구조하지 못하였느냐는 식이다. 해경은 결정적 제약 조건하에서 구조활동을 해야 했다는 사실을 망각한 폭론(暴論)이다.
 
  바다와 배에 무지한 기자들은 왜 해경이 선실에 들어가지 않았느냐고 온갖 비방을 쏟아놓지만 평평했던 배의 바닥이 수직의 벽이 되고 종국에는 하늘처럼 천장이 되는 상황에서 그런 이상적인 구조 작업은 인간의 힘으론 불가능하였다. 제한된 인력으로 제한된 시간에 무리하게 선실에 들어가려고 했더라면 구조대가 구조대상이 되었을 것이고 살릴 수 있던 사람을 놓쳤을 것이다. 다수 구조 전문가들도 선실 진입은 불가능하였다고 이야기하는데 박근혜 대통령은 그것이 가능하였다고 전제하고, 해경을 비방하는 기자들의 억지 주장을 고스란히 받아들여 해경의 구조작업을 실패라고 규정, 해체를 결정했다. 실패라고 규정한 것은 허위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고 그 오판을 근거로 하여 해경 해체라는 중요 국가 정책을 결정한 것이다. 2중의 잘못이다.
 
  오늘 대(對)국민 선언은 일시적으로 대통령의 인기를 회복시킬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그의 리더십에 치명적 타격을 가할 것이다. 해경의 구조가 실패하였다는 공언(公言)으로, 박근혜 대통령은 살릴 수 있는 생명을 죽게 하였다는 선동 세력의 공격에 아무런 방어 수단 없이 노출되는 처지가 되었다. 자업자득(自業自得)이다.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관(官)피아’라는 말을 썼다. 기자들이 만든, 과장된 용어를 국가의 공식문서에 담았다. 한국의 관료가 마피아라는 뜻이다. 대통령은 그렇다면 마피아 두목인가? 언론의 선정적 조어(造語)를 이성적이어야 할 국가가 수용하면 국가 이성은 마비된다.〉
 
 
  권력자는 원한과 경멸을 사지 않아야
 
  마키아벨리는 권력자가 피해야 할 것이 두 가지 있다고 했다. 하나는 경멸당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원한을 사는 것이다. 문재인 정권의 무자비한 전 정권 보복수사를 지휘하였던 윤석열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은 세월호 유족 사찰이란 누명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한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의 담백한 유서를 읽었을까?
 
  사고 방지의 책임을 형사적으로 추궁하는 것은 문명국가에선 거의 하지 않는 일이다. 미국은 약 3000명이 죽은 9·11테러에 대하여, 영국은 1500명 이상이 죽은 타이타닉호 침몰에 대하여 진상조사는 했지만 한 사람도 왜 막지 못했느냐, 왜 다 구조하지 못했느냐고 추궁, 감옥에 보내지 않았다. 이태원 사고를 처리하는 모습이 국격(國格)일 것이고 국격 유지는 대통령의 헌법상 책무이다.
 
  사고 그날 용산 대통령실을 향하여 진격했던 좌파 세력도 경찰력을 분산시켜 사고 예방력을 약화시킨 책임이 있는데 이 세력이 정권 타도의 기회를 노리고 있다. 1987년 6월 대시위 때 전두환(全斗煥) 대통령은 군대를 동원하지 않고 경찰력만으로 버티면서 6·29 선언을 구상, 정치적 돌파구를 마련, 노태우(盧泰愚) 정권을 만들어냈다. 윤석열 대통령도 그런 위기가 찾아오면 경찰력에 기댈 수밖에 없다. 2016~2017년 촛불시위와 탄핵사태 때 경찰이 시위 현장에서 누구 편에 섰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권력자의 화난 모습은 국민들을 불안하게 만든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및 당선인 시절 두 번 경주 태종무열왕릉을 참배했다고 한다. 한반도 최고의 명당에서 삼국통일의 정신을 이어받아 남북통일의 대망(大望)을 다졌으리라 본다. 삼국통일을 완성한 이는 무열왕의 아들 문무왕인데 그가 바로 민족사 최고의 정치인이다.
 
 
  문무왕의 심정으로 바라보라
 
  문무왕 8년(서기 668년) 11월 5일, 왕은 멸망시킨 고구려의 포로 7000명을 이끌고 경주에 돌아왔다. 그는 신하들을 데리고 선조의 묘에 배알, “백제와 고구려의 죄를 물어 국운(國運)이 태평하게 되었다”고 신고하였다. 이듬해 왕은 죄인들에게 사면령을 내렸다. 《삼국사기(三國史記)》 문무왕 조(條)에 적힌 내용은 감동적이다.
 
  〈지금 두 적이 평정되어 사방이 안정되었다. 적을 무찌를 때 공을 세운 자들에게는 이미 상을 다 주었다. 전사(戰死)한 혼령들에게도 명예를 추증하였다. 그러나 감옥의 죄수들은 아직 은혜를 입지 못하고 고통을 받고 있다. 이를 생각할 때 나는 먹고 잘 수가 없다. 국내의 죄수들에게 특사령을 내리니 오늘 미명(未明) 이전에 오역(五逆·임금, 부모, 조부모를 죽이는 것)과 사죄(死罪)를 범하지 않은 자로서 갇혀 있는 자는 범죄의 대소를 불문 다 놓아주라. 죄를 범하여 관직을 박탈당한 자는 다 복구시키고, 도적질한 자는 석방하되 도적질한 것을 갚을 능력이 없으면 징수를 면한다. 집안이 가난하여 남의 곡식을 취하여 먹은 자로서 농작이 부실한 곳에 사는 자는 갚지 않아도 된다. 농작이 잘되는 곳에 사는 자는 올해 추수 때 취한 본곡만 갚고 이자는 물지 않아도 된다.〉
 
  문무왕은 신상필벌을 엄히 하면서도 백성들, 특히 고통받는 이들을 극진히 보살피려 하였음을 알 수 있다. 문무왕(文武王)이란 시호(諡號)처럼 그는 문(文)과 무(武)의 교양을 겸하여 아름다운 균형감각을 가졌던 분이다. 불교의 자비심을 정치철학으로 삼았던 그런 인물이었으므로 백제·고구려 유민을 차별하지 않아 민족통합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문무왕의 심정으로 이태원 사고를 바라본다면 전화위복(轉禍爲福)의 돌파구가 생길지도 모른다. 아직 이름 없는 대통령실 이름을 문무대(文武臺)라고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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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은영    (2022-11-28) 찬성 : 0   반대 : 0
북한이 계획한 세월호의 침몰 범죄집단
정치 탄핵과 거짓된 정치 선동으로 국민을 속였다
세월호 지원비로 김일성 교과서를 배우다
지긋한 세월호 뱃지들아 김정은한테 가라

20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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