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朴 당선인 신분 때 파견된 靑 경호팀, 집권 초 ‘보안 부실’ 이유로 교체
⊙ 교체된 팀의 몇몇 경호관, 탄핵소추 가결 후 朴 직무정지 때 즐거운 표정 연출
⊙ 경호관이라 밝힌 인물, 최씨의 국정농단 증거 전혀 없는 상황서 ‘최순실이 청와대를 제집 드나들 듯이 한다’고 방송국 제보
⊙ 자신의 목숨 맡긴 경호관에게 사실상 뒤통수 맞은 박근혜
⊙ 국내 첫 부녀 대통령 죽음과 배신에 모두 대통령 경호실 엮여
⊙ 문재인 대통령, ‘경호실 해체’ 대선 공약 폐기
⊙ 공수처·탈원전처럼 의지 갖고 밀어붙였으면 경호실 해체 공약 충분히 이행하고도 남았을 것
⊙ 교체된 팀의 몇몇 경호관, 탄핵소추 가결 후 朴 직무정지 때 즐거운 표정 연출
⊙ 경호관이라 밝힌 인물, 최씨의 국정농단 증거 전혀 없는 상황서 ‘최순실이 청와대를 제집 드나들 듯이 한다’고 방송국 제보
⊙ 자신의 목숨 맡긴 경호관에게 사실상 뒤통수 맞은 박근혜
⊙ 국내 첫 부녀 대통령 죽음과 배신에 모두 대통령 경호실 엮여
⊙ 문재인 대통령, ‘경호실 해체’ 대선 공약 폐기
⊙ 공수처·탈원전처럼 의지 갖고 밀어붙였으면 경호실 해체 공약 충분히 이행하고도 남았을 것
청와대 경호처가 경호관을 다룬 영화 중 최고로 꼽는 것은 1993년 개봉한 〈사선에서(In the Line of Fire)〉다. CIA 요원의 대통령 암살 시도를 막는 경호관으로 나오는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대통령을 향해 몸을 던지는 투혼을 발휘한다. 이런 모습은 영화에서나 가능한 것일까.
《월간조선》은 오랜 취재 끝에 대통령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대통령을 보좌하고, 최악의 상황을 맞아 대신 목숨을 걸 수도 있는 청와대 대통령경호처 일부 경호관이 박근혜 전 대통령을 배신한 정황을 포착했다. 박 전 대통령의 핵심 측근 중에서도 극소수만이 국회 탄핵소추 의결로 박 전 대통령이 직무집행 정지를 당했을 시기, 이런 사실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호처 내부의 끼리끼리 문화
2012년 12월 20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처음으로 여성 대통령이 탄생했다.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대선 후보였던 박 전 대통령은 전날 실시한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과반수 득표로 당선됐다. 이명박 정부는 대통령경호실법에 따라 당선인 신분이던 박 전 대통령에게 경호팀을 파견했다. 일반적으로 당선인 때부터 경호하면 대통령 취임 후에도 경호하고, 이후 승진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른바 박근혜 경호팀은 달콤한 꿈을 꿀 만한 위치에 있었던 것이다. 반면 이 팀과 경쟁 관계에 있던 그룹은 실망감이 상당했다. 당시 경호처 내부는 ‘끼리끼리 문화’가 심했다는 전언이다.
당시 청와대 관계자의 이야기다.
“청와대에 들어와서 보니, 경호실이 사실상 두 패로 나뉘어 있더군요. 한 그룹의 선두주자가 주요 보직을 차지하면 그 그룹 내 경호관들이 득세하고, 다른 그룹 선배가 잘나가면 그 그룹의 후배들이 함께 잘나가는 구조였습니다.”
그런데 박 전 대통령의 경호를 맡은 팀은 오래가지 못했다. 박 전 대통령이 자신의 경호팀을 교체한 것이다. 원래 경호를 맡던 팀 입장에서는 탄탄대로를 걸을 것이란 희망이 산산조각 나는 순간이었다.
당시 상황을 잘 아는 관계자들의 증언을 종합해보면,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지나치게 과장된 경호, 즉 과잉경호였다. ‘오버’하는 것을 질색하는 박 전 대통령과 경호 코드가 잘 안 맞았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보안’ 문제였는데, 첫 번째보다는 두 번째가 실질적 교체 이유일 가능성이 크다.
박 전 대통령은 여성이라 전직 남성 대통령과 ‘대통령 전용헬기’를 이용하는 방법이 달랐다. 예를 들면 남성 대통령은 헬기의 프로펠러가 도는 상황에서도 탑승했지만, 박 전 대통령은 프로펠러가 멈추고 나서 타는 식이었다.
박 전 대통령의 경호・의전 팀 정도만 알고 있을 법한 이런 사실이 사설 정보지를 통해 공개됐다. 의전팀에서 새어 나갔을 수도 있지만, 의전팀에는 전 정부부터 일하던 직원이 전무하다시피 해 남성 대통령이 어떻게 헬기를 이용했는지 알 수 없었다. 반면 청와대 경호처는 ‘장’만 바뀌지 그 외 직원은 정권과 상관없이 계속 일을 한다. 청와대 내 정권이 바뀌어도 사람이 바뀌지 않는 거의 유일한 부서로 보면 이해가 쉽다.
정보지에 대통령의 헬기 탑승법이 나왔다는 사실은 곧장 박 전 대통령에게 보고됐다. 보안을 중요시한 박 전 대통령은 경호팀 교체를 지시했다. 그렇게 해서 이 팀의 일원 일부는 좌천되고, 이 팀과 경쟁 관계에 있던 팀이 박 전 대통령의 경호를 맡게 됐다. 승진도 이들 차지였다.
박근혜 직무정지 때 즐거운 표정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2016년 TV조선은 대기업들에 대한 미르·K스포츠재단 강제 모금 의혹, 포스코 광고계열사 포레카 지분 강제 인수 의혹 등에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보이지 않는 손’이 최서원(순실)씨라고는 직접 언급하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최씨의 실명이 처음으로 언론에 나온 것은 2016년 9월 20일이다. 《한겨레》는 정동춘 K스포츠재단 이사장이 최순실씨가 다니는 스포츠마사지센터 원장이라고 보도했다.
이후 10월 24일 JTBC는 최씨 소유로 보이는 ‘태블릿PC’에 박 전 대통령의 연설문 등이 있다고 보도했다. 박 전 대통령은 다음 날인 10월 25일 1차 대국민담화를 발표하면서 최씨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인정했다. 검찰은 다음 날인 10월 26일 미르·K스포츠재단과 최씨 자택 등을 압수수색했다. 10월 27일엔 특별수사본부를 설치했다. 이틀 뒤인 10월 29일 검찰은 청와대 압수수색을 시도했지만, 청와대가 거부해 이뤄지지 않았다. 해외 체류 중이던 최씨는 10월 30일 귀국해 다음 날 검찰에 출석했다. 검찰은 미르·K스포츠재단 관계자들과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들, 재단에 출연금을 낸 기업 총수들도 불러 수사했다.
검찰은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대면 조사를 하지 못한 상태에서 11월 20일 최순실씨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을 기소하면서 박 전 대통령을 공범으로 명시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은 기소할 수 없었다. ‘대통령은 재임 중 기소되지 않는다’는 헌법상 특권 때문이었다.
국회는 12월 9일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가결했다. 박 전 대통령의 직무는 정지됐다. 청와대는 초상집 분위기였다. 큰 충격에 우울증을 앓거나, 원인 모를 다리 마비가 온 직원도 있었다. 그런데 박 전 대통령을 경호하다 좌천당한 경호팀에 있었던 몇몇 경호관은 달랐다. 당시 그들은 청와대 근처 식당과 커피숍 등에서 박장대소하는 모습을 자주 연출했다고 한다.
당시 청와대 관계자의 증언이다.
“모시던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됐는데, 웃는다는 게 말이 됩니까. 한두 번이면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볼 때마다 웃는 모습이었습니다.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자신들을 내친 박 전 대통령이 위기에 처한 것에 대해 ‘꼴좋다’고 ‘고소해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정윤회 문건’ 사건 전부터 방송사에 최순실 관련 제보
이런 와중에 청와대 정보 담당 부서에 놀랄 만한 제보가 들어왔다. 자신을 청와대 대통령 경호실(박근혜 정부 때 경호처에서 경호실로 격상) 경호관이라고 밝힌 사람이 2014년 말부터 ‘최순실 사태’가 터질 때까지 1년 6개월가량 한 방송사 보도국에 ‘최순실이 청와대를 안방 드나들 듯한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거의 매일 보냈다는 것이다.
취재 결과 이 제보 내용은 사실로 밝혀졌다. 여기서 정확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 이메일을 보낸 사람의 정체다. 자신을 대통령 경호실 경호관이라고 밝혔다고 해서, 이메일을 보낸 사람이 실제 경호관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다. 자신의 신분을 숨기기 위해 경호관이라고 사칭했을 수 있는 탓이다. 하지만 이메일을 보낸 사람은 사실상 경호관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제보를 보낸 시점은 이른바 ‘정윤회 문건’이 공개되기 전이다. ‘정윤회 문건’은 2014년 11월 공개됐다. 이 문건이 공개되기 전까지 ‘최서원(순실)’이란 사람은 소설 속 가상인물과 같았다. 소문만 무성했지 그의 존재에 대해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최순실이 청와대를 안방 드나들 듯한다’고 제보했다는 것은 청와대 내 최씨를 알고 있던 소수의 인물 중에 제보자가 있다는 말이 된다.
최씨를 알고 있었던 청와대 인사는 박 전 대통령을 제외하고 대통령 측근 비서관 3인방과 이영선·윤전추 전 행정관이 다였다. 이들은 최씨의 존재가 공개돼 봐야 대통령한테 좋을 게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최씨가 공식 직책 없이 애매한 위치에 있는데다가 직설적 ‘언행’이 언제든지 논란이 될 수 있는 점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 중 제보자가 있을 가능성이 제로에 가까운 이유다.
이들 외 최씨의 존재를 알 수 있는 곳은 경호실이다. 청와대를 드나들 경우 아무리 ‘A급 보안손님’이라도 경호실은 거쳐야 한다. 대통령비서실장이라 하더라도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청와대 본관으로 이동할 때마다 일일이 보안 검색을 받아야 한다. 이 때문에 방송사에 최서원 관련 내용을 제보한 이는 실제 자신이 밝힌 대로 경호관이거나 경호실에서 흘린 정보를 방송사에 전달한, 그러니까 경호실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인물일 가능성이 크다. 앞서 이메일을 보낸 사람을 사실상 경호관이라고 봐도 무방하다고 결론 내린 이유다.
토사구팽
당시는 최씨가 청와대를 드나들면서 어떤 일을 하는지 전혀 몰랐던 시기다. 경호실에서도 최씨가 청와대에 드나든다는 사실만 알았지, 그가 청와대 안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럼에도 최씨가 청와대를 드나든다는 제보를 방송사에 한 것은 박 전 대통령을 공격하려는 의도로밖에 해석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1년 넘게 매일 제보를 받은 방송사가 취재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경호실 내에서 공무상 비밀 누설을 하면서까지 박 전 대통령을 공격할 만한 그룹은 자신들이 석연치 않은 이유로 좌천당했다고 느끼는 전(前) 박근혜 경호팀일 가능성이 크다는 게 당시 청와대 관계자들의 증언이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던 청와대 관계자의 말이다.
“이런 의심(박 전 대통령의 경호를 맡았다가 좌천당한 경호관 일부가 방송국에 최서원씨 관련 이메일을 보냈다는)은 앞서 언급했듯 박 전 대통령이 직무정지를 당하고 청와대 관계자들의 분위기가 초상집처럼 가라앉았음에도 이들만은 즐거운 분위기였다는 사실과 맞물려 확신으로 변했다.”
박 전 대통령의 직무정지 기간에도 ‘세월호 사고 당일 박 전 대통령이 최씨와 함께 있었다’ 등 경호실이 아니면 모를 만한 내용이 공개됐다.
일각에서는 국정농단을 한 최씨가 청와대를 제집처럼 드나드는 사실을 제보한 것이 국익을 위한 공익제보지, 뭐가 배신이냐고 할 수 있겠다. 최씨가 청와대를 드나들면서 전횡을 했다는 증거가 있었다면 ‘공익’을 위한 제보가 될 수 있지만 그게 아닌 이상 공무상 비밀 누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는 지적이다.
게다가 이런 의심을 받는 경호관 중 한 명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후 경호처 내 구성된 일종의 ‘적폐청산 기구’ 역할을 한 부서에서 활동하며 전 정부에서 핵심 역할을 담당했던 경호관들에게 ‘적폐’라는 낙인을 찍어 좌천시키는 작업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에서도 승진에 실패하자, 사표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토사구팽(兎死狗烹)당한 셈이다.
경호처를 경호실로 격상시켜줬건만…
사실 국정농단 사태가 한창일 당시 정제되지 않은 정보만 보면 최씨는 박 전 대통령을 꼭두각시로 세워놓고 국정을 뒤흔든 사람처럼 보인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은 최씨를 자신의 옷가지를 챙겨주거나, 가끔 아이디어를 주는 도우미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렇기에 최씨에게 아무런 권한을 주지 않은 것이다. 권한 없이 소위 박 전 대통령의 이름을 팔며 행동해 법적 처벌을 받은 것은 최씨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이런 사실을 파악하지 못했거나, 하고도 눈감고 보고하지 않을 경우 최씨가 고해성사하지 않는 한 박 전 대통령은 이를 알 수가 없다.
게다가 현재 특별한 직책도 없는 문재인 대통령의 측근이라는 사람이 검찰총장 임명 전 윤석열 총장을 만나 예비 면접을 봤다는 이야기가 같은 편인 여권 내부에서 나오는 걸 보고, ‘최씨가 국정농단 혐의로 감옥에서 25년을 사는 게 과연 맞나’ 하는 의견도 많다는 분석이다.
이런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던 극소수의 측근은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이 기각돼 박 전 대통령이 업무에 복귀하면 이 사건의 실체를 명명백백하게 밝혀낼 심산이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2017년 3월 10일 박 대통령 파면을 결정했다. 경호팀 내용 또한 자연히 묻혔다.
박 전 대통령이 이런 사실을 알았다면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컸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 때 차관급인 경호처로 낮춘 것을 다시 장관급인 경호실로 격상시킨 게 박 전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박 전 대통령의 측근은 “박 전 대통령은 경호처의 간절한 요구에 따라 경호실로 격상해줬는데 결국 부질없는 일이 된 것”이라고 했다.
이명박 정부는 경호실을 대통령실과 합치면서 경호처로 낮췄다. 경호실을 대통령비서실장 밑으로 들어가게 했다. 명분은 ‘권위주의 탈피’였다. 이에 경호실은 A4 용지 8장 분량의 문건을 만들어 정치권을 상대로 호소했다.
문건에는 경호실이 대통령비서실장의 지휘를 받지 않는 독립적인 정부기관으로서의 지위를 인정해달라는 내용이 담겼다.
〈경호실이 대통령비서실장의 지시를 받을 경우 대통령 경호 업무의 전문성이 약화되고, 국가기밀이나 대통령 가족 사생활 등에 대한 보안 유지가 어려워진다. 대통령비서실장이 정치이념이 다른 당선인과 전직 대통령의 경호 책임을 맡으면서 정치적인 논쟁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다.〉
끼리끼리 문화 없애려던 박흥렬, 朴 구속 후 골프도 끊어
이들의 호소는 소용없었다. 후임 박 전 대통령은 경호처를 다시 경호실로 격상시키고 전직 육군참모총장을 경호실장으로 내정하면서 경호실에 힘을 실어줬다.
이와 관련 당시 여러 분석이 나왔는데,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경호실을 창설한 것이 크게 작용했다는 게 가장 설득력을 얻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63년 제3공화국 대통령에 취임한 뒤 같은 해 12월 14일 법률 제1507호로 대통령경호실법을 제정해 청와대 경호실을 창설했다. 초대 실장은 군 출신인 홍종철 국가재건최고회의 문교사회위원장이 맡았다.
그전까지 대통령 경호는 경찰의 몫이었다. 1949년 2월 대통령령 제59호로 구왕궁을 관할하던 창덕궁경찰서를 폐지하고 경무대경찰서를 신설했는데 이 경무대경찰서가 경호실의 시초였다. 당시는 경무대경찰서장이 대통령 경호 책임자였으며 경무계・사찰계・경비계 등으로 구성됐었다.
박근혜 정권 당시 청와대 관계자는 “전 육군참모총장 출신인 박흥렬 경호실장은 경호실 내 끼리끼리 문화를 없애려 무진 노력했다. 인사도 공평하게 하려고 애썼다”며 “경호실 내 권력 다툼의 일환으로 일부 경호관이 박근혜 전 대통령을 공격했다는 의혹이 있다는 것을 알면 큰 충격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실제 박 전 경호실장은 자신이 모시던 대통령이 ‘영어(囹圄)의 몸’이 됐다는 이유로 자신이 좋아하던 골프도 일절 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운명의 장난일까. 박 전 대통령이 자신의 경호를 맡던 일부 경호관으로부터 사실상 배신당한 것으로 보임에 따라, 선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과 경호실의 악연도 다시 입에 오르내린다.
경호실과 중앙정보부 사이의 충성경쟁 10·26사태 불러와
1979년 유신체제의 위기는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다. 그해 8월에는 YH무역의 여성 노동자들이 폐업 조치에 항의해 신민당 당사에서 농성을 벌이다 경찰의 진압 과정에서 1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신민당 총재던 김영삼 전 대통령은 9월 《뉴욕타임스》와의 회견에서 “박정희에 대한 지지 철회”를 미국에 요구했다. 그러자 여당은 10월 4일 김영삼의 의원직 제명 결의안을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10월 16일 부산과 마산에서 대규모 유신 반대 시위가 일어났고, 10월 18일 부산에 계엄령이 선포됐다. 현장을 지켜본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은 강경 진압을 고집한 차지철 경호실장에게 큰 반감을 품게 됐다.
두 사람 사이는 최악이었다. 경호실장이 된 차 실장은 박 전 대통령의 임기 말 철권통치를 주도했다. 그는 경호실 국기 하기식이란 거창한 군 행사를 벌이며 장관 등 정부 요인들을 불러모아 위세를 과시했다. 경호실장을 장관급으로 격상시키고 사설 정보팀도 운영하면서 김재규 부장을 끊임없이 견제했다. 김계원 전 비서실장의 회고록을 보면 김 부장은 김 실장에게 “대위밖에 안 지낸 자식이 장군, 장관 알기를 우습게 여겨! 내가 하는 일을 모조리 사사건건 방해하며 각하께 바르게 보고하지도 않고 내게 무조건 불리하게만 말씀을 드리니 각하께서 중정이 올리는 보고를 통 믿으셔야지요”라고 말한다.
10월 26일 오후 6시5분, 박 전 대통령은 궁정동 안가(安家)에서 김재규·차지철과 함께 만찬 자리에 앉았다. 40분쯤 지나 자리를 빠져나온 김 부장은 부하들을 불렀다.
“오늘 저녁에 내가 해치운다.”
“… 각하까집니까?”
김 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후 7시40분, 박 전 대통령이 합석한 가수 심수봉의 반주로 모델 신재순과 함께 노래를 부르고 있을 때, 김 부장은 욕설을 내뱉으며 차지철의 팔에 권총을 발사했다.
김 부장은 4~5초간 머뭇거리다 정좌한 채 눈을 감은 박 전 대통령의 가슴에 총을 쐈다. 김 부장의 부하들은 대기실과 주방에서 경호관들에게 총을 난사했다.
김 부장과 차 실장의 충성경쟁, 권력다툼이 10·26사태를 불러온 것이다. 국내 첫 부녀 대통령의 죽음과 배신에는 모두 대통령 경호실이 엮여 있었던 셈이다. 기구한 운명의 장난이 아닐 수 없다.
‘하나 된 충성, 영원한 명예’ 지켜지지 않아
대통령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경호처(문재인 정부서 다시 경호처로 격하) 직원 전체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이런 비극에 경호처가 엮인 데에는 몇몇 정치색 강한 경호관들 때문에 경호처의 모토인 ‘하나 된 충성, 영원한 명예’가 지켜지지 않기 때문이란 의견이 많다.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경호처의 일부 경호관이 정치적으로 판단하고 움직이다 보니 이런 사건에 연루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전직 경호처 관계자는 “솔직히 정권이 쇠락기에 접어들면 충성심은 약화하고, 다음 정권에 줄을 서려는 경향이 강하다”며 “그러니 모시던 대통령을 배신하는 것”이라고 고백했다. 그는 “하나 된 충성이 지켜지지 않으니, 당연히 영원한 명예도 없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물론, 정권 성향에 따라 ‘코드인사’를 감행하는 청와대도 이런 문제를 부추겼다는 분석도 있다. 또 다른 전직 경호처 관계자는 “청와대가 특정 정치 세력과의 친소 관계에 따른 인사를 하니, 정파에 따라 움직이는 경우도 생긴 것”이라고 했다.
사실 줄을 잘 선 경호관들에 한해 경호처는 꿈의 직장이라고 한다. 경호처 내부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는 “현 경호처의 경우, 그 자체가 권력화돼 있다. 실질 경호는 101경비단, 202경비단, 22경찰 경호대가 다 하고 경호처는 지시 위주로 근무했다”고 한다. 대통령의 일정이나 모든 행사에 경호 관련 최종 결정권을 갖는 곳이 경호처라며 경호상의 이유를 내세우면 누구도 반론을 제기하기 어렵다고도 했다. 그는 ‘지금(문재인 경호처)은 어떠냐’는 질문에 “경호처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했다.
경호처 업무에 대해 상세히 아는 전직 청와대 관계자도 “경호실은 청와대를 경비한다는 명목으로 비서실의 민정수석실 인사검증팀과 별도로 비서실 인사까지 자체 인사검증을 시행하는 등 막강한 권력을 향유했다”며 “운동수당, 심지어 품위유지를 위한 정장(옷) 비용까지 받고 있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 ‘경호실 해체’를 대선 공약으로
문재인 대통령도 경호처의 이런 문제점을 잘 아는 듯 보인다. 문 대통령은 사실상 노무현 정부 5년 내내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함께했다. 노무현 정부 마지막 해인 2007년 3월에는 비서실장을 맡았다. 청와대 내부, 특히 경호처의 본모습을 잘 안다고 볼 수 있다.
정치권 관계자는 “문재인 대통령은 경호실의 폐해를 누구보다 잘 느끼고 있었을 것”이라며 “‘대통령 경호실 폐지’를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던 것도 이런 이유 아니었겠느냐”고 했다.
실제 문 대통령은 20대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경호실 해체’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는 문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근무하면서부터 직접 그려왔던 구상으로, 상당히 애착을 갖고 있던 공약이었다고 알려졌다.
2017년 4월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문재인 대선 후보는 이같이 말했다.
“지금 대통령 경호실을 경찰청 산하 대통령경호국으로 이관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과거같이 엄격한 경호가 필요한 시대가 아니라고 본다. 국민과 장벽을 만드는 지나친 경호를 대폭 낮춰서 국민과 대통령이 가까이 만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야심 차게 내놨던 경호실 해체 공약은 폐기됐다. 청와대는 “대통령이 말해온 ‘낮은 경호’ 기조를 존중함과 동시에 현실적인 대통령 경호의 중요성과 절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재인 정부의 공약 이행률은 낮은 편이다. 2020년 5월 10일 문재인 정부 대선공약체크 사이트인 ‘문재인미터’에 따르면, 현 정부 집권 3년 동안의 공약 이행률은 14.0%에 그쳤다. 역대 정부의 공약 이행률도 30%가 채 되지 않은 게 사실이지만 이와 비교했을 때도 낮은 수치다.
한 가지 주목할 점은 현 정부·여당은 자신들이 꼭 추진해야 하는 공약은 국민의 뜻이라고 주장하며 밀어붙인다는 것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나 탈(脫)원자력발전소 정책 등이 대표적이다. 이 공약을 실천하기 위해 밀어붙인 것처럼만 했어도 경호실 해체 공약은 충분히 이행하고도 남았을 것이란 얘기다.
문재인 경호처가 이야기한 ‘낮은 경호’가 이런 것?
문재인 정부는 ‘낮은 경호’를 외치며 박 전 대통령이 격상시킨 경호실을 경호처로 급을 낮췄는데, 과연 현 경호처는 ‘낮은 경호’를 실천하고 있을까.
2019년 3월 문 대통령이 대구 칠성시장을 방문했을 때 사복 차림의 청와대 경호요원이 방아쇠에 손가락을 댄 채 기관단총을 노출해서 논란이 있었다. 당시 야당이 “민생 시찰 현장에서 경호관이 기관총을 노출한 것은 과잉 경호”라고 문제를 제기했지만, 청와대는 “무기를 지닌 채 경호하는 것은 정당한 업무 수행”이라고 반박했다.
2020년 10월 28일 문재인 대통령이 2021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위해 국회를 방문했을 때 경호처가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의 몸수색을 해 논란이 일었다. 전례 없는 신체수색이었다. 이날 경호처는 본회의장에 무장 경호관까지 투입했다. 야당은 “청와대 경호처가 무뢰배처럼 국회를 휩쓸고 다닌 것”이라고 비판했다. 청와대 경호처는 “정당 원내대표는 검색 면제 대상이 아니다”라고 했다.
2018년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평창 동계올림픽 북한 대표단으로 방남한 김영남·김여정 일행에 대해 최고 등급인 ‘국빈 A’급 경호를 했는데, 이 같은 경호 등급은 청와대 경호처가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청와대 경호처의 협조 요청에 따라 경호 인력과 장비를 배치한 것”이라고 했다.
김영남은 명목상 북한의 국가원수이고, 김여정은 김정은의 친동생인 만큼 경호 위험 등을 감안하면 적절한 경호 조치였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당시 평창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한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은 ‘국빈 B’급, 폐막식에 참석했던 이방카 트럼프 백악관 선임고문은 ‘국빈 C’급 경호를 받았다고 한다. 이 외에도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 네덜란드·스웨덴 국왕, 노르웨이·에스토니아·스위스·슬로베니아 대통령, 노르웨이·핀란드 총리 등에도 ‘국빈 C’급 경호가 이뤄졌다. 경호처가 동맹국인 미국의 부통령과 유엔 사무총장이 ‘국빈 B·C’급 경호를 받은 것과 비교할 때 북을 과도하게 극진히 대접한 것이란 지적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대통령의 일정이나 모든 행사의 최종 결정권을 갖는 곳이 경호처라며 경호상의 이유를 내세우면 누구도 반론을 제기하기 어려운 과거 경호처 모습을 그대로 답습 중이란 얘기다.
과거 경호실 모습 답습 중
이게 과연 문 대통령이 이야기한 ‘낮은 경호’일까.
현 정부는 경호실을 경호처로 격하하긴 했지만, 노무현 정부 때 잘나가다가 이명박 정부 들어서 좌천됐던 이들을 다시 핵심 위치에 임명했다. 이들은 전 정권 시절 고초를 겪었던 경호관들에게 힘을 실어준 것으로 알려졌다. 노무현 정부 때 경호처 ‘가족부장’을 지내고 노 전 대통령 퇴임 이후 봉하마을에서 경호팀장을 했던 주영훈 전 경호처장은, 취임 이후 지난 정부 경호처에 대한 ‘적폐청산’ 작업을 진행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측근들에 대한 특혜성 인사를 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에 이의를 제기했던 직원들에 대한 보복성 인사 논란도 제기됐다. 경호처에서 ‘내부 고발자 색출’ 등 임무를 수행했던 감찰 담당 경호관들은 2020년 초 정기 인사에서 대거 선호(選好) 부서로 영전된 것으로 확인됐다.
복수의 경호처 관계자들에 따르면 2020년 1월 정기 인사에서 경호처 감사관실 소속 경호관 6명 가운데 5명이 자리를 옮겼다. 5명 가운데 3명은 ‘수행부’로 발령 났다. 수행부는 대통령 최측근에서 근접 경호 업무를 수행하는 곳으로, ‘경호관의 꽃’이라고 불리는 최선호(最選好) 부서다.
감사관실은 현 정부 경호처 내에서 일종의 ‘적폐청산 기구’ 역할을 해왔다. 경호처 관계자는 “전 정권 청와대 고위 관계자들과 소위 ‘라인’을 만들었던 직원들을 감사관실이 앞장서서 솎아내는 작업을 진행했다”며 “감사관실 직원들은 같은 경호관이면서도 다른 직원들을 탈탈 털듯 취조해 직원들 불만이 많았다”고 했다. 한 경호처 직원은 “같은 경호처 직원을 상대로 너무 심하게 칼을 휘두른다는 이야기가 많았다”고 했다.
권양숙 여사 운전기사로 근무했던 최모씨가 3급으로 문재인 대통령 기동비서로 임명됐다는 사실이 《월간조선》 취재 결과 밝혀지기도 했다. 과거와 마찬가지로 경호관들의 정치성에 따른 인사를 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문재인 정부 경호처도 변한 게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영훈 전 처장 둘러싼 의혹
김정숙 여사에게까지 불똥
실제 문재인 경호처에서는 편향 인사, 무기계약직 여직원의 관사(官舍) 가사도우미 전용 의혹, 경호관의 김정숙 여사 수영 강습 논란 등도 잇따라 불거졌다. 2019년 4월 주영훈 전 처장이 경호처 무기계약직 여성 직원을 자신의 관사로 출근시켜 가사도우미 일을 시켰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경호처는 관련 의혹을 언론에 제보한 ‘고발자’에 대한 대대적 색출과 감찰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150명 이상의 경호관이 휴대전화 내역을 임의제출 형식으로 조사받았다. 경호처 일부 직원은 “조직에 회의감이 든다”며 사표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주 전 처장의 아내가 경호관 체력담당 교관에게 물리치료를 받았다는 보도도 나왔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관련 시설은 주 처장 아내뿐 아니라 다른 직원도 사용하고, 이는 관련 규정에 따른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주 전 처장을 둘러싼 각종 의혹이 번지는 과정에서 영부인 김정숙 여사에게까지 불똥이 튀었다. 청와대 여성 경호관이 김 여사에게 수영 강습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경호처 내부에서는 “주 처장의 과잉 충성이 낳은 결과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다.
불륜 경호처 직원 파면 요구 글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올라오기도
자신의 배우자와 불륜을 저지른 청와대 경호처 직원을 파면해달라는 글이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올라왔다가 하루 만에 비공개 처리되는 일도 있었다.
문제의 글은 2020년 4월 6일 오후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올라왔다. ‘대통령 경호처의 불륜 경호원을 즉시 파직하고, 대통령 경호처장의 진심 어린 사과를 촉구한다’는 제목의 글이었다. 자신을 ‘B국 대사관 직원의 배우자’라고 밝힌 청원인은 이 글에서 “청와대 경호처 경호원이 2019년 11월 한국-아세안 특별정상회의 계기 B국 담당 경호팀장으로 근무하면서, 제 배우자와 만난 후 깊은 관계를 맺었다”고 했다. 그는 “둘은 직접 만나 애정을 나누고, 수시로 SNS를 통해 깊은 교감을 나누었고, 함께 여행을 떠나기로 약속하는 등 파렴치한 행위를 했다”고 썼다.
청원인은 청원글을 올린 이유로 “경호처의 사과조차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2020년 3월 26일 청와대 경호처에 경호원 A씨와 자신의 배우자의 관계를 담은 진정서를 냈다고 한다. 그러면서 “불륜 경호원을 즉각 파직하고 경호처장은 진심 어린 사과를 해달라”고 했다고 한다. 그는 “A는 20년 가까이 근무한 베테랑 경호원으로서, 높은 수준의 공직윤리를 갖고 있어야 한다”며 “A는 ‘작고한 노무현 대통령을 봉하마을에서 보필했고, 자신이 향후 승진할 가능성이 높다’며 나의 배우자에게 과시했다고 들었다”고도 했다.
물론 주 전 처장 취임 이후 대통령 경호처가 기존의 권위적 경호에서 친화형으로 변화했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문 대통령이 자신의 공약이었던 경호처 폐지를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은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하락하고 있다. 집권 4년 차 지지율 하락은 레임덕으로 가는 분기점이 되기도 했다. 현직 대통령의 힘이 빠졌다고 경호처가 정치적 계산을 하기 시작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월간조선》은 오랜 취재 끝에 대통령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대통령을 보좌하고, 최악의 상황을 맞아 대신 목숨을 걸 수도 있는 청와대 대통령경호처 일부 경호관이 박근혜 전 대통령을 배신한 정황을 포착했다. 박 전 대통령의 핵심 측근 중에서도 극소수만이 국회 탄핵소추 의결로 박 전 대통령이 직무집행 정지를 당했을 시기, 이런 사실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호처 내부의 끼리끼리 문화
2012년 12월 20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처음으로 여성 대통령이 탄생했다.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대선 후보였던 박 전 대통령은 전날 실시한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과반수 득표로 당선됐다. 이명박 정부는 대통령경호실법에 따라 당선인 신분이던 박 전 대통령에게 경호팀을 파견했다. 일반적으로 당선인 때부터 경호하면 대통령 취임 후에도 경호하고, 이후 승진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른바 박근혜 경호팀은 달콤한 꿈을 꿀 만한 위치에 있었던 것이다. 반면 이 팀과 경쟁 관계에 있던 그룹은 실망감이 상당했다. 당시 경호처 내부는 ‘끼리끼리 문화’가 심했다는 전언이다.
당시 청와대 관계자의 이야기다.
“청와대에 들어와서 보니, 경호실이 사실상 두 패로 나뉘어 있더군요. 한 그룹의 선두주자가 주요 보직을 차지하면 그 그룹 내 경호관들이 득세하고, 다른 그룹 선배가 잘나가면 그 그룹의 후배들이 함께 잘나가는 구조였습니다.”
그런데 박 전 대통령의 경호를 맡은 팀은 오래가지 못했다. 박 전 대통령이 자신의 경호팀을 교체한 것이다. 원래 경호를 맡던 팀 입장에서는 탄탄대로를 걸을 것이란 희망이 산산조각 나는 순간이었다.
당시 상황을 잘 아는 관계자들의 증언을 종합해보면,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지나치게 과장된 경호, 즉 과잉경호였다. ‘오버’하는 것을 질색하는 박 전 대통령과 경호 코드가 잘 안 맞았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보안’ 문제였는데, 첫 번째보다는 두 번째가 실질적 교체 이유일 가능성이 크다.
박 전 대통령은 여성이라 전직 남성 대통령과 ‘대통령 전용헬기’를 이용하는 방법이 달랐다. 예를 들면 남성 대통령은 헬기의 프로펠러가 도는 상황에서도 탑승했지만, 박 전 대통령은 프로펠러가 멈추고 나서 타는 식이었다.
박 전 대통령의 경호・의전 팀 정도만 알고 있을 법한 이런 사실이 사설 정보지를 통해 공개됐다. 의전팀에서 새어 나갔을 수도 있지만, 의전팀에는 전 정부부터 일하던 직원이 전무하다시피 해 남성 대통령이 어떻게 헬기를 이용했는지 알 수 없었다. 반면 청와대 경호처는 ‘장’만 바뀌지 그 외 직원은 정권과 상관없이 계속 일을 한다. 청와대 내 정권이 바뀌어도 사람이 바뀌지 않는 거의 유일한 부서로 보면 이해가 쉽다.
정보지에 대통령의 헬기 탑승법이 나왔다는 사실은 곧장 박 전 대통령에게 보고됐다. 보안을 중요시한 박 전 대통령은 경호팀 교체를 지시했다. 그렇게 해서 이 팀의 일원 일부는 좌천되고, 이 팀과 경쟁 관계에 있던 팀이 박 전 대통령의 경호를 맡게 됐다. 승진도 이들 차지였다.
박근혜 직무정지 때 즐거운 표정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2016년 TV조선은 대기업들에 대한 미르·K스포츠재단 강제 모금 의혹, 포스코 광고계열사 포레카 지분 강제 인수 의혹 등에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보이지 않는 손’이 최서원(순실)씨라고는 직접 언급하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최씨의 실명이 처음으로 언론에 나온 것은 2016년 9월 20일이다. 《한겨레》는 정동춘 K스포츠재단 이사장이 최순실씨가 다니는 스포츠마사지센터 원장이라고 보도했다.
이후 10월 24일 JTBC는 최씨 소유로 보이는 ‘태블릿PC’에 박 전 대통령의 연설문 등이 있다고 보도했다. 박 전 대통령은 다음 날인 10월 25일 1차 대국민담화를 발표하면서 최씨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인정했다. 검찰은 다음 날인 10월 26일 미르·K스포츠재단과 최씨 자택 등을 압수수색했다. 10월 27일엔 특별수사본부를 설치했다. 이틀 뒤인 10월 29일 검찰은 청와대 압수수색을 시도했지만, 청와대가 거부해 이뤄지지 않았다. 해외 체류 중이던 최씨는 10월 30일 귀국해 다음 날 검찰에 출석했다. 검찰은 미르·K스포츠재단 관계자들과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들, 재단에 출연금을 낸 기업 총수들도 불러 수사했다.
검찰은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대면 조사를 하지 못한 상태에서 11월 20일 최순실씨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을 기소하면서 박 전 대통령을 공범으로 명시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은 기소할 수 없었다. ‘대통령은 재임 중 기소되지 않는다’는 헌법상 특권 때문이었다.
국회는 12월 9일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가결했다. 박 전 대통령의 직무는 정지됐다. 청와대는 초상집 분위기였다. 큰 충격에 우울증을 앓거나, 원인 모를 다리 마비가 온 직원도 있었다. 그런데 박 전 대통령을 경호하다 좌천당한 경호팀에 있었던 몇몇 경호관은 달랐다. 당시 그들은 청와대 근처 식당과 커피숍 등에서 박장대소하는 모습을 자주 연출했다고 한다.
당시 청와대 관계자의 증언이다.
“모시던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됐는데, 웃는다는 게 말이 됩니까. 한두 번이면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볼 때마다 웃는 모습이었습니다.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자신들을 내친 박 전 대통령이 위기에 처한 것에 대해 ‘꼴좋다’고 ‘고소해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정윤회 문건’ 사건 전부터 방송사에 최순실 관련 제보
이런 와중에 청와대 정보 담당 부서에 놀랄 만한 제보가 들어왔다. 자신을 청와대 대통령 경호실(박근혜 정부 때 경호처에서 경호실로 격상) 경호관이라고 밝힌 사람이 2014년 말부터 ‘최순실 사태’가 터질 때까지 1년 6개월가량 한 방송사 보도국에 ‘최순실이 청와대를 안방 드나들 듯한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거의 매일 보냈다는 것이다.
취재 결과 이 제보 내용은 사실로 밝혀졌다. 여기서 정확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 이메일을 보낸 사람의 정체다. 자신을 대통령 경호실 경호관이라고 밝혔다고 해서, 이메일을 보낸 사람이 실제 경호관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다. 자신의 신분을 숨기기 위해 경호관이라고 사칭했을 수 있는 탓이다. 하지만 이메일을 보낸 사람은 사실상 경호관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제보를 보낸 시점은 이른바 ‘정윤회 문건’이 공개되기 전이다. ‘정윤회 문건’은 2014년 11월 공개됐다. 이 문건이 공개되기 전까지 ‘최서원(순실)’이란 사람은 소설 속 가상인물과 같았다. 소문만 무성했지 그의 존재에 대해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최순실이 청와대를 안방 드나들 듯한다’고 제보했다는 것은 청와대 내 최씨를 알고 있던 소수의 인물 중에 제보자가 있다는 말이 된다.
최씨를 알고 있었던 청와대 인사는 박 전 대통령을 제외하고 대통령 측근 비서관 3인방과 이영선·윤전추 전 행정관이 다였다. 이들은 최씨의 존재가 공개돼 봐야 대통령한테 좋을 게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최씨가 공식 직책 없이 애매한 위치에 있는데다가 직설적 ‘언행’이 언제든지 논란이 될 수 있는 점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 중 제보자가 있을 가능성이 제로에 가까운 이유다.
이들 외 최씨의 존재를 알 수 있는 곳은 경호실이다. 청와대를 드나들 경우 아무리 ‘A급 보안손님’이라도 경호실은 거쳐야 한다. 대통령비서실장이라 하더라도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청와대 본관으로 이동할 때마다 일일이 보안 검색을 받아야 한다. 이 때문에 방송사에 최서원 관련 내용을 제보한 이는 실제 자신이 밝힌 대로 경호관이거나 경호실에서 흘린 정보를 방송사에 전달한, 그러니까 경호실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인물일 가능성이 크다. 앞서 이메일을 보낸 사람을 사실상 경호관이라고 봐도 무방하다고 결론 내린 이유다.
토사구팽
당시는 최씨가 청와대를 드나들면서 어떤 일을 하는지 전혀 몰랐던 시기다. 경호실에서도 최씨가 청와대에 드나든다는 사실만 알았지, 그가 청와대 안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럼에도 최씨가 청와대를 드나든다는 제보를 방송사에 한 것은 박 전 대통령을 공격하려는 의도로밖에 해석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1년 넘게 매일 제보를 받은 방송사가 취재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경호실 내에서 공무상 비밀 누설을 하면서까지 박 전 대통령을 공격할 만한 그룹은 자신들이 석연치 않은 이유로 좌천당했다고 느끼는 전(前) 박근혜 경호팀일 가능성이 크다는 게 당시 청와대 관계자들의 증언이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던 청와대 관계자의 말이다.
“이런 의심(박 전 대통령의 경호를 맡았다가 좌천당한 경호관 일부가 방송국에 최서원씨 관련 이메일을 보냈다는)은 앞서 언급했듯 박 전 대통령이 직무정지를 당하고 청와대 관계자들의 분위기가 초상집처럼 가라앉았음에도 이들만은 즐거운 분위기였다는 사실과 맞물려 확신으로 변했다.”
박 전 대통령의 직무정지 기간에도 ‘세월호 사고 당일 박 전 대통령이 최씨와 함께 있었다’ 등 경호실이 아니면 모를 만한 내용이 공개됐다.
일각에서는 국정농단을 한 최씨가 청와대를 제집처럼 드나드는 사실을 제보한 것이 국익을 위한 공익제보지, 뭐가 배신이냐고 할 수 있겠다. 최씨가 청와대를 드나들면서 전횡을 했다는 증거가 있었다면 ‘공익’을 위한 제보가 될 수 있지만 그게 아닌 이상 공무상 비밀 누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는 지적이다.
게다가 이런 의심을 받는 경호관 중 한 명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후 경호처 내 구성된 일종의 ‘적폐청산 기구’ 역할을 한 부서에서 활동하며 전 정부에서 핵심 역할을 담당했던 경호관들에게 ‘적폐’라는 낙인을 찍어 좌천시키는 작업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에서도 승진에 실패하자, 사표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토사구팽(兎死狗烹)당한 셈이다.
사실 국정농단 사태가 한창일 당시 정제되지 않은 정보만 보면 최씨는 박 전 대통령을 꼭두각시로 세워놓고 국정을 뒤흔든 사람처럼 보인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은 최씨를 자신의 옷가지를 챙겨주거나, 가끔 아이디어를 주는 도우미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렇기에 최씨에게 아무런 권한을 주지 않은 것이다. 권한 없이 소위 박 전 대통령의 이름을 팔며 행동해 법적 처벌을 받은 것은 최씨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이런 사실을 파악하지 못했거나, 하고도 눈감고 보고하지 않을 경우 최씨가 고해성사하지 않는 한 박 전 대통령은 이를 알 수가 없다.
게다가 현재 특별한 직책도 없는 문재인 대통령의 측근이라는 사람이 검찰총장 임명 전 윤석열 총장을 만나 예비 면접을 봤다는 이야기가 같은 편인 여권 내부에서 나오는 걸 보고, ‘최씨가 국정농단 혐의로 감옥에서 25년을 사는 게 과연 맞나’ 하는 의견도 많다는 분석이다.
이런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던 극소수의 측근은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이 기각돼 박 전 대통령이 업무에 복귀하면 이 사건의 실체를 명명백백하게 밝혀낼 심산이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2017년 3월 10일 박 대통령 파면을 결정했다. 경호팀 내용 또한 자연히 묻혔다.
박 전 대통령이 이런 사실을 알았다면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컸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 때 차관급인 경호처로 낮춘 것을 다시 장관급인 경호실로 격상시킨 게 박 전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박 전 대통령의 측근은 “박 전 대통령은 경호처의 간절한 요구에 따라 경호실로 격상해줬는데 결국 부질없는 일이 된 것”이라고 했다.
이명박 정부는 경호실을 대통령실과 합치면서 경호처로 낮췄다. 경호실을 대통령비서실장 밑으로 들어가게 했다. 명분은 ‘권위주의 탈피’였다. 이에 경호실은 A4 용지 8장 분량의 문건을 만들어 정치권을 상대로 호소했다.
문건에는 경호실이 대통령비서실장의 지휘를 받지 않는 독립적인 정부기관으로서의 지위를 인정해달라는 내용이 담겼다.
〈경호실이 대통령비서실장의 지시를 받을 경우 대통령 경호 업무의 전문성이 약화되고, 국가기밀이나 대통령 가족 사생활 등에 대한 보안 유지가 어려워진다. 대통령비서실장이 정치이념이 다른 당선인과 전직 대통령의 경호 책임을 맡으면서 정치적인 논쟁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다.〉
끼리끼리 문화 없애려던 박흥렬, 朴 구속 후 골프도 끊어
이들의 호소는 소용없었다. 후임 박 전 대통령은 경호처를 다시 경호실로 격상시키고 전직 육군참모총장을 경호실장으로 내정하면서 경호실에 힘을 실어줬다.
이와 관련 당시 여러 분석이 나왔는데,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경호실을 창설한 것이 크게 작용했다는 게 가장 설득력을 얻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63년 제3공화국 대통령에 취임한 뒤 같은 해 12월 14일 법률 제1507호로 대통령경호실법을 제정해 청와대 경호실을 창설했다. 초대 실장은 군 출신인 홍종철 국가재건최고회의 문교사회위원장이 맡았다.
그전까지 대통령 경호는 경찰의 몫이었다. 1949년 2월 대통령령 제59호로 구왕궁을 관할하던 창덕궁경찰서를 폐지하고 경무대경찰서를 신설했는데 이 경무대경찰서가 경호실의 시초였다. 당시는 경무대경찰서장이 대통령 경호 책임자였으며 경무계・사찰계・경비계 등으로 구성됐었다.
박근혜 정권 당시 청와대 관계자는 “전 육군참모총장 출신인 박흥렬 경호실장은 경호실 내 끼리끼리 문화를 없애려 무진 노력했다. 인사도 공평하게 하려고 애썼다”며 “경호실 내 권력 다툼의 일환으로 일부 경호관이 박근혜 전 대통령을 공격했다는 의혹이 있다는 것을 알면 큰 충격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실제 박 전 경호실장은 자신이 모시던 대통령이 ‘영어(囹圄)의 몸’이 됐다는 이유로 자신이 좋아하던 골프도 일절 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운명의 장난일까. 박 전 대통령이 자신의 경호를 맡던 일부 경호관으로부터 사실상 배신당한 것으로 보임에 따라, 선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과 경호실의 악연도 다시 입에 오르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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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1월 31일 박정희 대통령이 건설부를 연두순시하기 위해 차지철 경호실장(왼쪽 두 번째), 김재규 건설부 장관(맨 오른쪽)과 함께 정부종합청사로 들어서고 있다. 두 사람의 권력 다툼은 10·26사태를 불러왔다. |
두 사람 사이는 최악이었다. 경호실장이 된 차 실장은 박 전 대통령의 임기 말 철권통치를 주도했다. 그는 경호실 국기 하기식이란 거창한 군 행사를 벌이며 장관 등 정부 요인들을 불러모아 위세를 과시했다. 경호실장을 장관급으로 격상시키고 사설 정보팀도 운영하면서 김재규 부장을 끊임없이 견제했다. 김계원 전 비서실장의 회고록을 보면 김 부장은 김 실장에게 “대위밖에 안 지낸 자식이 장군, 장관 알기를 우습게 여겨! 내가 하는 일을 모조리 사사건건 방해하며 각하께 바르게 보고하지도 않고 내게 무조건 불리하게만 말씀을 드리니 각하께서 중정이 올리는 보고를 통 믿으셔야지요”라고 말한다.
10월 26일 오후 6시5분, 박 전 대통령은 궁정동 안가(安家)에서 김재규·차지철과 함께 만찬 자리에 앉았다. 40분쯤 지나 자리를 빠져나온 김 부장은 부하들을 불렀다.
“오늘 저녁에 내가 해치운다.”
“… 각하까집니까?”
김 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후 7시40분, 박 전 대통령이 합석한 가수 심수봉의 반주로 모델 신재순과 함께 노래를 부르고 있을 때, 김 부장은 욕설을 내뱉으며 차지철의 팔에 권총을 발사했다.
김 부장은 4~5초간 머뭇거리다 정좌한 채 눈을 감은 박 전 대통령의 가슴에 총을 쐈다. 김 부장의 부하들은 대기실과 주방에서 경호관들에게 총을 난사했다.
김 부장과 차 실장의 충성경쟁, 권력다툼이 10·26사태를 불러온 것이다. 국내 첫 부녀 대통령의 죽음과 배신에는 모두 대통령 경호실이 엮여 있었던 셈이다. 기구한 운명의 장난이 아닐 수 없다.
‘하나 된 충성, 영원한 명예’ 지켜지지 않아
대통령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경호처(문재인 정부서 다시 경호처로 격하) 직원 전체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이런 비극에 경호처가 엮인 데에는 몇몇 정치색 강한 경호관들 때문에 경호처의 모토인 ‘하나 된 충성, 영원한 명예’가 지켜지지 않기 때문이란 의견이 많다.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경호처의 일부 경호관이 정치적으로 판단하고 움직이다 보니 이런 사건에 연루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전직 경호처 관계자는 “솔직히 정권이 쇠락기에 접어들면 충성심은 약화하고, 다음 정권에 줄을 서려는 경향이 강하다”며 “그러니 모시던 대통령을 배신하는 것”이라고 고백했다. 그는 “하나 된 충성이 지켜지지 않으니, 당연히 영원한 명예도 없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물론, 정권 성향에 따라 ‘코드인사’를 감행하는 청와대도 이런 문제를 부추겼다는 분석도 있다. 또 다른 전직 경호처 관계자는 “청와대가 특정 정치 세력과의 친소 관계에 따른 인사를 하니, 정파에 따라 움직이는 경우도 생긴 것”이라고 했다.
사실 줄을 잘 선 경호관들에 한해 경호처는 꿈의 직장이라고 한다. 경호처 내부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는 “현 경호처의 경우, 그 자체가 권력화돼 있다. 실질 경호는 101경비단, 202경비단, 22경찰 경호대가 다 하고 경호처는 지시 위주로 근무했다”고 한다. 대통령의 일정이나 모든 행사에 경호 관련 최종 결정권을 갖는 곳이 경호처라며 경호상의 이유를 내세우면 누구도 반론을 제기하기 어렵다고도 했다. 그는 ‘지금(문재인 경호처)은 어떠냐’는 질문에 “경호처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했다.
경호처 업무에 대해 상세히 아는 전직 청와대 관계자도 “경호실은 청와대를 경비한다는 명목으로 비서실의 민정수석실 인사검증팀과 별도로 비서실 인사까지 자체 인사검증을 시행하는 등 막강한 권력을 향유했다”며 “운동수당, 심지어 품위유지를 위한 정장(옷) 비용까지 받고 있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 ‘경호실 해체’를 대선 공약으로
문재인 대통령도 경호처의 이런 문제점을 잘 아는 듯 보인다. 문 대통령은 사실상 노무현 정부 5년 내내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함께했다. 노무현 정부 마지막 해인 2007년 3월에는 비서실장을 맡았다. 청와대 내부, 특히 경호처의 본모습을 잘 안다고 볼 수 있다.
정치권 관계자는 “문재인 대통령은 경호실의 폐해를 누구보다 잘 느끼고 있었을 것”이라며 “‘대통령 경호실 폐지’를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던 것도 이런 이유 아니었겠느냐”고 했다.
실제 문 대통령은 20대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경호실 해체’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는 문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근무하면서부터 직접 그려왔던 구상으로, 상당히 애착을 갖고 있던 공약이었다고 알려졌다.
2017년 4월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문재인 대선 후보는 이같이 말했다.
“지금 대통령 경호실을 경찰청 산하 대통령경호국으로 이관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과거같이 엄격한 경호가 필요한 시대가 아니라고 본다. 국민과 장벽을 만드는 지나친 경호를 대폭 낮춰서 국민과 대통령이 가까이 만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야심 차게 내놨던 경호실 해체 공약은 폐기됐다. 청와대는 “대통령이 말해온 ‘낮은 경호’ 기조를 존중함과 동시에 현실적인 대통령 경호의 중요성과 절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재인 정부의 공약 이행률은 낮은 편이다. 2020년 5월 10일 문재인 정부 대선공약체크 사이트인 ‘문재인미터’에 따르면, 현 정부 집권 3년 동안의 공약 이행률은 14.0%에 그쳤다. 역대 정부의 공약 이행률도 30%가 채 되지 않은 게 사실이지만 이와 비교했을 때도 낮은 수치다.
한 가지 주목할 점은 현 정부·여당은 자신들이 꼭 추진해야 하는 공약은 국민의 뜻이라고 주장하며 밀어붙인다는 것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나 탈(脫)원자력발전소 정책 등이 대표적이다. 이 공약을 실천하기 위해 밀어붙인 것처럼만 했어도 경호실 해체 공약은 충분히 이행하고도 남았을 것이란 얘기다.
문재인 경호처가 이야기한 ‘낮은 경호’가 이런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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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월 22일 문재인 대통령이 대구 칠성시장을 찾았을 때 청와대 경호원이 방아쇠에 손가락을 건 채 기관단총을 노출하고 있다. 사진=하태경 국민의힘 소셜네트워크서비스 캡처 |
2019년 3월 문 대통령이 대구 칠성시장을 방문했을 때 사복 차림의 청와대 경호요원이 방아쇠에 손가락을 댄 채 기관단총을 노출해서 논란이 있었다. 당시 야당이 “민생 시찰 현장에서 경호관이 기관총을 노출한 것은 과잉 경호”라고 문제를 제기했지만, 청와대는 “무기를 지닌 채 경호하는 것은 정당한 업무 수행”이라고 반박했다.
2020년 10월 28일 문재인 대통령이 2021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위해 국회를 방문했을 때 경호처가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의 몸수색을 해 논란이 일었다. 전례 없는 신체수색이었다. 이날 경호처는 본회의장에 무장 경호관까지 투입했다. 야당은 “청와대 경호처가 무뢰배처럼 국회를 휩쓸고 다닌 것”이라고 비판했다. 청와대 경호처는 “정당 원내대표는 검색 면제 대상이 아니다”라고 했다.
2018년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평창 동계올림픽 북한 대표단으로 방남한 김영남·김여정 일행에 대해 최고 등급인 ‘국빈 A’급 경호를 했는데, 이 같은 경호 등급은 청와대 경호처가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청와대 경호처의 협조 요청에 따라 경호 인력과 장비를 배치한 것”이라고 했다.
김영남은 명목상 북한의 국가원수이고, 김여정은 김정은의 친동생인 만큼 경호 위험 등을 감안하면 적절한 경호 조치였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당시 평창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한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은 ‘국빈 B’급, 폐막식에 참석했던 이방카 트럼프 백악관 선임고문은 ‘국빈 C’급 경호를 받았다고 한다. 이 외에도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 네덜란드·스웨덴 국왕, 노르웨이·에스토니아·스위스·슬로베니아 대통령, 노르웨이·핀란드 총리 등에도 ‘국빈 C’급 경호가 이뤄졌다. 경호처가 동맹국인 미국의 부통령과 유엔 사무총장이 ‘국빈 B·C’급 경호를 받은 것과 비교할 때 북을 과도하게 극진히 대접한 것이란 지적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대통령의 일정이나 모든 행사의 최종 결정권을 갖는 곳이 경호처라며 경호상의 이유를 내세우면 누구도 반론을 제기하기 어려운 과거 경호처 모습을 그대로 답습 중이란 얘기다.
과거 경호실 모습 답습 중
이게 과연 문 대통령이 이야기한 ‘낮은 경호’일까.
현 정부는 경호실을 경호처로 격하하긴 했지만, 노무현 정부 때 잘나가다가 이명박 정부 들어서 좌천됐던 이들을 다시 핵심 위치에 임명했다. 이들은 전 정권 시절 고초를 겪었던 경호관들에게 힘을 실어준 것으로 알려졌다. 노무현 정부 때 경호처 ‘가족부장’을 지내고 노 전 대통령 퇴임 이후 봉하마을에서 경호팀장을 했던 주영훈 전 경호처장은, 취임 이후 지난 정부 경호처에 대한 ‘적폐청산’ 작업을 진행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측근들에 대한 특혜성 인사를 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에 이의를 제기했던 직원들에 대한 보복성 인사 논란도 제기됐다. 경호처에서 ‘내부 고발자 색출’ 등 임무를 수행했던 감찰 담당 경호관들은 2020년 초 정기 인사에서 대거 선호(選好) 부서로 영전된 것으로 확인됐다.
복수의 경호처 관계자들에 따르면 2020년 1월 정기 인사에서 경호처 감사관실 소속 경호관 6명 가운데 5명이 자리를 옮겼다. 5명 가운데 3명은 ‘수행부’로 발령 났다. 수행부는 대통령 최측근에서 근접 경호 업무를 수행하는 곳으로, ‘경호관의 꽃’이라고 불리는 최선호(最選好) 부서다.
감사관실은 현 정부 경호처 내에서 일종의 ‘적폐청산 기구’ 역할을 해왔다. 경호처 관계자는 “전 정권 청와대 고위 관계자들과 소위 ‘라인’을 만들었던 직원들을 감사관실이 앞장서서 솎아내는 작업을 진행했다”며 “감사관실 직원들은 같은 경호관이면서도 다른 직원들을 탈탈 털듯 취조해 직원들 불만이 많았다”고 했다. 한 경호처 직원은 “같은 경호처 직원을 상대로 너무 심하게 칼을 휘두른다는 이야기가 많았다”고 했다.
권양숙 여사 운전기사로 근무했던 최모씨가 3급으로 문재인 대통령 기동비서로 임명됐다는 사실이 《월간조선》 취재 결과 밝혀지기도 했다. 과거와 마찬가지로 경호관들의 정치성에 따른 인사를 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문재인 정부 경호처도 변한 게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영훈 전 처장 둘러싼 의혹
김정숙 여사에게까지 불똥
실제 문재인 경호처에서는 편향 인사, 무기계약직 여직원의 관사(官舍) 가사도우미 전용 의혹, 경호관의 김정숙 여사 수영 강습 논란 등도 잇따라 불거졌다. 2019년 4월 주영훈 전 처장이 경호처 무기계약직 여성 직원을 자신의 관사로 출근시켜 가사도우미 일을 시켰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경호처는 관련 의혹을 언론에 제보한 ‘고발자’에 대한 대대적 색출과 감찰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150명 이상의 경호관이 휴대전화 내역을 임의제출 형식으로 조사받았다. 경호처 일부 직원은 “조직에 회의감이 든다”며 사표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주 전 처장의 아내가 경호관 체력담당 교관에게 물리치료를 받았다는 보도도 나왔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관련 시설은 주 처장 아내뿐 아니라 다른 직원도 사용하고, 이는 관련 규정에 따른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주 전 처장을 둘러싼 각종 의혹이 번지는 과정에서 영부인 김정숙 여사에게까지 불똥이 튀었다. 청와대 여성 경호관이 김 여사에게 수영 강습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경호처 내부에서는 “주 처장의 과잉 충성이 낳은 결과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다.
불륜 경호처 직원 파면 요구 글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올라오기도
자신의 배우자와 불륜을 저지른 청와대 경호처 직원을 파면해달라는 글이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올라왔다가 하루 만에 비공개 처리되는 일도 있었다.
문제의 글은 2020년 4월 6일 오후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올라왔다. ‘대통령 경호처의 불륜 경호원을 즉시 파직하고, 대통령 경호처장의 진심 어린 사과를 촉구한다’는 제목의 글이었다. 자신을 ‘B국 대사관 직원의 배우자’라고 밝힌 청원인은 이 글에서 “청와대 경호처 경호원이 2019년 11월 한국-아세안 특별정상회의 계기 B국 담당 경호팀장으로 근무하면서, 제 배우자와 만난 후 깊은 관계를 맺었다”고 했다. 그는 “둘은 직접 만나 애정을 나누고, 수시로 SNS를 통해 깊은 교감을 나누었고, 함께 여행을 떠나기로 약속하는 등 파렴치한 행위를 했다”고 썼다.
청원인은 청원글을 올린 이유로 “경호처의 사과조차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2020년 3월 26일 청와대 경호처에 경호원 A씨와 자신의 배우자의 관계를 담은 진정서를 냈다고 한다. 그러면서 “불륜 경호원을 즉각 파직하고 경호처장은 진심 어린 사과를 해달라”고 했다고 한다. 그는 “A는 20년 가까이 근무한 베테랑 경호원으로서, 높은 수준의 공직윤리를 갖고 있어야 한다”며 “A는 ‘작고한 노무현 대통령을 봉하마을에서 보필했고, 자신이 향후 승진할 가능성이 높다’며 나의 배우자에게 과시했다고 들었다”고도 했다.
물론 주 전 처장 취임 이후 대통령 경호처가 기존의 권위적 경호에서 친화형으로 변화했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문 대통령이 자신의 공약이었던 경호처 폐지를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은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하락하고 있다. 집권 4년 차 지지율 하락은 레임덕으로 가는 분기점이 되기도 했다. 현직 대통령의 힘이 빠졌다고 경호처가 정치적 계산을 하기 시작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정정보도] <박근혜 배신 의혹 경호관, 文 정부서 경호처 적폐 청산 주도한 뒤 兔死狗烹>관련 정정보도문 본지는 2021년 1월호에 '박근혜 배신 의혹 경호관, 文 정부서 경호처 적폐 청산 주도한 뒤 兔死狗烹'이라는 제목의 보도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사실확인 결과 ①'박근혜 당선인 경호팀'이 과잉경호 및 보안부실 문제로 교체되었다는 내용, ②'박근혜 당선인 경호팀'의 경호관이 2014년 말부터 약 1년 6개월가량 방송국에 '최순실이 청와대를 안방 드나들 듯한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거의 매일 보냈다는 내용, ③'박근혜 당선인 경호팀'의 경호관이 문재인 정부 당시 경호처 내 '적폐청산 기구' 역할을 한 부서에서 활동하며 전 정부에서 핵심 역할을 담당했던 경호관들에게 '적폐'라는 낙인을 찍어 좌천시키는 작업을 주도했으나 문재인 정부에서도 승진에 실패하자 사표를 냈다는 내용은 확인 결과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져 이를 바로잡습니다. 이 보도는 법원의 판결에 따른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