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까이, 잡지 이야기 <3>] 감동을 넘어 영감을… 《월간독자 Rea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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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독자 Reader를 알기 전부터 발행인인 윤학(尹鶴) 변호사를 알았다. 그리고 그 이전부터 가톨릭 다이제스트를 구독하고 있었고 지금도 구독 중이다.

 

글쟁이 윤 변호사의 에세이가 잡지 맨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게 특징이라면 특징. 늘 감동하며 읽게 되는데 이번 달은 어떤 내용일까, 다음 달은 또 어떤 내용일까 하며 기다려진다.

 

월간독자 Reader7월호에 실린 윤 변호사의 고정코너 [목마름의 잔치 사랑의 잔치]에 실린 <흰물결 작가 탄생기>를 읽는다. ‘흰물결은 윤 변호사가 운영하는 흰물결 아트센터와 흰물결 갤러리(서울 서초구 반포대로 150)의 이름에서 따왔다. ‘흰물결이란 이름은 왠지 영적인 설렘 이 느껴진다.

 

이 흰물결 아트센터에 월간독자 Reader가톨릭 다이제스트편집실이 있다. 아트센터에서 다양한 문화사업을 하는데 흰물결 스토리 콘서트, 결혼 아카데미, 건강 아카데미, 에세이 스쿨을 운영 중이다.


화면 캡처 2023-06-17 074804.jpg


"그래! ‘흰물결작가라고 하자그리고 더 좋은 글을 쓰도록 격려해주자"


이번 달 윤 변호사의 글 <흰물결 작가 탄생기>는 에세이 스쿨을 통해 글을 가르치며 경험한 이야기를 썼다.

 

<“글쓰기처럼 쉬운 것은 없다. 여러분이 글쓰기를 어려워하는 것은 학교에서 글을 잘못 배웠기 때문이다. 잘못 배운 독을 빼주면 여러분도 글을 잘 쓸 수 있다.”

 

에세이 스쿨에서 써낸 그들의 진솔한 삶이 거기 있었다. 나는 감동의 눈물을 흘리곤 했다.

이 세상 그 어떤 작가도 우리 삶을 그보다 더 아름답게 그려내 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 글쓰기 광고 한 줄 보고 찾아온 사람이 보통 사람인가!

수백 편의 아름다운 글이 세상에 쏟아져 나왔다. 덕분에 독자들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선한 사람들의 글을 읽으며 '위안을 받았다' '희망을 얻었다'는 편지를 수없이 보내왔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그동안 유력 일간지를 읽으면 '작가'라는 분들이 우리네 삶과는 동떨어진 이야기를 그럴듯하게 포장만 하는 것 같아 쓴웃음이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알맹이 있는 삶을 살았더라면 그런 글은 결코 쓰지 못할 텐데. (중략)

 

얼마 전 신문에서 작가로 등단시켜 책을 내준다며 돈을 요구하고, 타이틀을 얻기 위해 그 요구에 응하는 작가가 많다는 기사를 읽었다. 얼마나 부끄러운 '작가' 타이틀인가.

그런 작가들과는 격이 다른 호칭을 찾아야만 했다.

그들은 어두운 삶의 바다에서 흰물결을 일으켜 오지 않았는가. 그래! ‘흰물결작가라고 하자. 그리고 더 좋은 글을 쓰도록 격려해주자.

 

나는 흰물결작가 임명장을 주기로 했다. 문예잡지에서는 2회 이상만 글이 실려도 작가라는 소리를 듣지 않는가. 그렇다면 흰물결작가는 훨씬 더 높은 기준으로 선정하자!>

 

윤 변호사는 아름다운 일, 가치 있는 일은 가슴에 그 씨앗(‘문을 두드려라. 열릴 것이다는 씨앗)을 품기만 해도 열매가 맺힌다는 것을 나는 에세이 스쿨을 통해 분명하게 체험했다앞으로 수천 명의 흰물결작가가 이 세상에 하얀 물결을 일으켜 나갈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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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게 변치 않는 것이 있다면 '사람'에 대한 관심 입니다"


기자가 월간독자 Reader에서 가장 즐겨 읽는 코너가 [좌담회 생각의 힘]이다. 다양한 사람들의 절대 소박하지 않은고백이 담겨 있다. 진솔한 삶의 지혜를 육성으로 배울 수 있다. (기자는 인터뷰나 대담, 토론회 등을 취재하며 구어체를 문어체로 바꾸는 작업이 얼마나 고되고 신경이 쓰이는 일인지 잘 안다.)


6월호에 이어 7월호에도 김남삼 작곡가, 김동희 간호사, 김동우 조각가, 김주영 천주교 춘천교구장, 김준희 광장동 성당 사목회장, 전익수 다담마이크로 대표, 신승민 은평성모병원 수간호사, 하광룡 변호사의 좌담회가 실렸다. 6월호에는 김동희 간호사, 하광룡 변호사의 말씀이 인상적이었고 7월호에는 김주영 주교의 말씀이 가슴에 남았다. 김 주교의 말씀을 인용해 본다.

 

<저는 제 뜻대로 된 일이 별로 없는데(웃음) 제 어릴 때 꿈은 지휘자였습니다. 음치였지만 노래 부르는 것도 좋아했죠.

중학교 때 첫 용돈 받은 걸로 베토벤 교향곡 3, 5, 6, 9번 테이프를 사서 한번 들을 때 마다 정()자 표시를 했더니 한 100번 들었더라고요. 테이프가 늘어질 때까지 들으면서 혼자 지휘를 한 거예요. (웃음)

하지만 음악가의 길은 걷지 못했어요. 저는 지금도 신학생들한테 혼자 있는 시간에 악기를 배운다고 하면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 해요. 혼자만의 시간을 음악과 같이 보낸다는 게 혼자 사는 우리에게는 좋은 일 같아요.

저는 5대째 가톨릭 가정에서 태어났고 신앙이 좋은 할머니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성직의 길을 걷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그 길의 끝에서 '이건 도저히 내가 할 일이 아니구나' 하고 도망치려 했는데 주임신부님이 동료와 선배 신학생들과 작전을 짜 제 마음을 돌려놨죠.

신부가 돼서도 유학을 권유하는 윗분께 가기 싫다고 세 번이나 말씀드렸는데 그 자리에서 야단만 맞고 결국 갔다 왔어요. 지금 이 좌담회 초대에도 거절 못하고 오게 됐잖아요? (웃음)

하여튼 그래도 제게 변치 않는 것이 있다면 '사람'에 대한 관심입니다.

신학교 들어갈 때 꼭 물어보는 질문이 있습니다. "왜 신부가 되려 하느냐?" 저는 "어려운 사람, 가난한 사람과 함께하고 싶어 신부가 되려 한다"고 대답했어요. 로마 유학 시절 프랑스 리옹 근처의 '떼제 공동체'를 방문하게 됐는데, 한국인 한 분이 뭐 하는 사람이냐' 물어요. 신부라고 했더니 자기는 목사래요. 목회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고 싶어서 1년 안식년을 내고 거기서 2주 정도 사셨대요.

제가 내일 로마로 돌아간다고 하니 동행하고 싶다고 해요. 차로 가면서 거의 열두 시간을 이야기했는데, 그때 만약 내가 개신교 가정에서 태어났으면 목사가 됐겠다생각했어요. (웃음) 7대 종단이 모일 때 함께 자리해 스님들과 얘기해 보면 제가 불가에 태어났으면 중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도 들었죠. (웃음)

우리 신앙인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성경에 비추어 생각해 보는데 사실 성경의 핵심이 세상이나 사람과 동떨어져 있는 얘기가 아니에요. 교회에서만 사랑 얘기 듣는 게 아니고 자비가 꼭 불교에서만 듣는 게 아니라 이해와 배려 이런 게 다 세상 안에 있는 거죠.

저는 교우들과 생각을 나눌 때 진짜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는다고 해요. 교회에서 맨날 얘기하는 사랑도 보이지 않고, 지금 사회가 추구하고 있는 평화와 일치란 개념도 추상적인 것으로 머리에만 있는 거거든요.

신학교에서 인식론을 가르친 교수님이 한 학기 내내 하시는 말씀이 있는 게 있는 것이 아니고 없는 게 없는 것이 아니다였어요. (웃음) 그때는 도대체 이해가 안 됐는데 점점 그게 맞는 것 같아요.

저는 생각이 많아서 생각을 줄이려고 해도 욕심을 줄이는 것처럼 어렵더라고요. 생각을 줄이려고 가만히 침잠하는 기도 시간을 많이 가지려고 합니다.>


"아버지는 왜 자꾸 아이들을 데려온 걸까?"


김 주교의 "생각을 줄이려고 침잠의 기도 시간을 많이 가지려고 한다"는 말의 행간을 음미해 본다.

이 외에 7월호에 실린 서혜영 씨의 <내 딸, 언제까지 귀여울까?>, 이수진 씨의 <그 사람만 보였다>, 이영자 씨의 <아버지는 왜 아이들을 데려왔나>도 오래 기억에 남을 글이었다.

또 6월호에 실린 윤학 변호사의 <돌아온 고약한 친구>, 이기선 씨의 <아버지의 삶 안으로>, 윤희빈 씨의 <아버지 소원 들어주느라 결혼하고>, 박지혜 씨의 <더 뛰라고 하세요>도 정말 감동적인 사연이었다. 아니, 모든 글들이 인상적이었다.


<어릴 때 우리 집은 사람이 스쳐 가는 집이었다. 경찰공무원으로 유별났던 아버지 덕분이다. 석탄 열차 타고 놀다가 삼척에서 인천까지 온 아이가 있었다. 아버지는 삼척 경찰서를 통해 어렵 게 아이 부모와 연락이 닿았다. 그 부모는 귀한 막내아들이 죽은 줄 알았단다. 그 아이는 우리 집에서 보름 정도 지내다 갔다. 그럴 때마다 엄마가 화를 내면 아버지는 밖으로 나갔다. 아버지는 왜 자꾸 아이들을 데려온 걸까?

4대 독자로 외롭게 자란 아버지에게 사람은 너무도 귀했다. 아이들이 나쁜 길로 갈까 봐 부모를 찾을 때까지 우리 집으로 데려와 지내게 했다.

- 이영자 '아버지는 왜 아이들을 데려왔나'에서>

 

기자는 언젠가 윤학 변호사와 글쓰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우리가 글을 못 쓰는 이유가 뭘까요.

 

잘못 배웠기 때문입니다. 국어시간에 글의 기승전결이라든지 화려체니 건조체니 하는 것부터 배우잖아요. 저는 문법 무시하고 문체 잊어버려라고 말해요. ‘글은 아무렇게나 쓰는 것이라는 점을 각인시키죠.

그런데 강조점은 있어요. ‘가슴속에 있는 것을 쓰되 그림을 그리듯 써라고 말해요. 글만 한 진짜 그림이 없어요. 그림보다 더 그림이 글입니다.”

 

맞습니다.

“‘주제니 소재니 다 필요 없다. 네 가슴속에 있는 것을 써라. 그럼 제일 좋은 게 나온다고 말합니다. 사람의 가슴속에 있는 것이 나오면 어떤 톨스토이보다 더 훌륭한 톨스토이 글이 되거든요.

왜냐하면 자신이 직접 경험한 게 진실이지 누구한테 간접적으로 들어서 전하는 것은 이미 왜곡되기 마련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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