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幸姬
⊙ 47세. 숙명여대 사학과, 고려대 경영대학원 졸업, 숙명여대 경영학 박사.
⊙ 한국코닝(주) 영업담당 이사·상무 역임, 現 한국코닝(주) 대표.
⊙ 47세. 숙명여대 사학과, 고려대 경영대학원 졸업, 숙명여대 경영학 박사.
⊙ 한국코닝(주) 영업담당 이사·상무 역임, 現 한국코닝(주) 대표.
이같은 한국 대표들이 모인 KCMC (Korea CEO’s Association of Multinational Corporations·다국적기업 최고경영자협회)의 대표자는 누구일까. 국내에서 학부와 대학원을 마치고 장기 해외파견 경험도 없는 40대 여성이 그 주인공이다. 2011년 3월 KCMC의 14대 회장으로 선임된 이행희 한국코닝(주) 대표다.
사원에서 계속 승진해 대표이사직까지 오른 CEO를 흔히 ‘샐러리맨의 우상’이라 부른다. 이행희 대표가 이런 경우다. 1988년 한국코닝 사원으로 입사해 2004년 대표이사 자리에 올랐다.
이뿐만이 아니다. 160년 전통의 외국 기업이 한국 법인 대표에 임명한 한국인 CEO, 유학이나 외국거주 경험이 없는 외국기업 CEO, 인문학을 전공한 첨단테크놀로지 기업의 CEO, 오너 일가나 전문직 출신이 아닌 여성 CEO 등등 이행희 대표는 국내 기업환경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힘든 경력을 갖고 있다.
이같은 이유로 이행희 대표는 2005년에는 AWSJ(아시아월스트리트저널)에서 ‘주목할 만한 아시아 여성경제인 10인’ 중 한 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당시 AWSJ는 “글로벌 기업들은 국내(현지) 인물이나 여성에게 대표직을 맡기는 경우가 드물고, 특히 한국에서 오너 일가가 아닌 여성으로서 CEO 자리에 오른 경우는 거의 없는데 이 대표는 이 모든 것을 극복해 낸 인물”이라고 소개했다.
KCMC는 어떤 조직
이 회장은 KCMC의 첫 여성 회장이기도 하고, 역대 회장 중 최연소이기도 하다. KCMC는 GE, IBM, 인텔, 필립스, BMW, 바스프 등 세계적인 기업들의 한국인 법인장들이 모인 조직이다. 현재 회원은 127명. ‘한국 땅에서 외국계 기업을 위해 일하는 한국인 대표’라는 특수성을 가진 기업인들이 1988년 첫 모임을 시작하면서 시작됐다.
이행희 KCMC 회장의 이야기다. “1980년대만 해도 외국인 지사장이 한국에 들어오면 몇 년간 매출이익만 쥐어짜내 승진해서 떠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외국기업의 한국인 대표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본사와 한국시장 양쪽 모두 득이 되는 방향으로 시장을 지속적으로 키워야 하는 입장이죠. 산업육성과 인적개발, 네트워크 형성 등을 보다 심도있게 고민한 것은 주로 한국인 대표들이었습니다.”
특히 당시 한국인과 한국정부는 외국기업의 국내 진출에 민감했다. 한국인 대표들은 외국의 자본과 기술을 열린 자세로 받아들이면 한국 경제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안타까워했고, 해결책을 내놓기 위해 뜻을 모으기 시작했다. 조선형 왕컴퓨터 사장, 장정훈 한국얀센 사장 등이 주축이 돼 ‘외국기업 한국인대표자 협의회’를 만들었다. 1988년 7월의 일이다.
외국기업의 한국인 대표들은 이를 중심으로 수십 명씩 모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사 경영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털어놓고 의논할 만한 상대를 만나기 어려웠다. 국내 경제단체에는 자격조건이 안됐고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나 주EU상공회의소에서는 주로 외국인들이 더 많아 뜻이 맞는 사람을 만나기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조직은 입소문이 나면서 점차 회원이 늘어났고, 5대 회장인 정영달(당시 한국애보트 사장) 회장 재임시 회원 수 100명을 돌파했다.
외환위기 이후 외국인 투자가 대폭 확대되면서 협의회는 사단법인 KCMC로 재탄생했다. 이를 주도한 사람은 제6대 회장인 전성철 현(現) 세계경영연구원장이다. 전성철 전(前) 회장은 “글로벌 스탠더드를 경험한 이들이 한국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들겠다”며 사단법인을 결성하고 사무실을 냈다. 10대 이강호 회장(한국그런포스펌프 대표) 때 와서는 대외 협업을 시도, 글로벌기업들의 한국발전 기여를 모토로 다양한 사회포럼과 행사를 통해 사회적 역할을 강화했다. 11대 이채욱 회장(당시 GE코리아 회장) 때 KCMC는 더 성장하게 된다. 새로 가입하는 회사가 연간 30개사 이상이었고, 분과위원회는 원래 4개에서 정부관계, 컨설팅, 커뮤니케이션 위원회 등을 추가하며 총 9개로 늘어났다. 청소년벤처포럼을 후원하고 CEO 강의와 지식교류 세미나, 교육프로그램을 강화했다.
KCMC 회원들은 골프를 해도 여성우대 없어
KCMC에 여성회원은 극히 드물다. 이 대표는 2005년부터 꾸준히 KCMC 활동을 해 오며 임원을 맡아 왔는데, 변함없는 모습과 일에 대한 열정을 보이면서 회원들의 신임을 얻어 14대 회장으로 추대됐다.
사실 인터뷰 전까지 ‘단아한 외모를 가진 40대 여성 CEO’에 대한 선입견이 없었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젊은 여성이어서 더 주목받는 것 아닌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는 “여성이라고 해서 차별이나 구별, 혜택 등을 두지 않는 것이 ‘글로벌 스탠더드’”라고 말했다.
“KCMC의 문화는 한국기업과는 확실히 달라요. 특히 외국기업 CEO들이 모여 있는 KCMC 같은 조직에서는 그런 현상이 더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KCMC 회장 자리를 맡긴 이유는 제가 KCMC를 잘 알고 열정이 있고, 또 커뮤니케이션도 잘할 수 있다는 점을 임원진이 높게 평가했기 때문인 걸로 알고 있어요.”
다국적기업의 한국법인 대표라 하면 외국에서 공부한 젊은 인재를 상상하는 사람도 많지만, KCMC의 임원진은 50~60대가 대부분이다. 모두 이 대표보다 나이가 훨씬 많다. 그러나 임원들은 만장일치로 이 대표를 회장으로 뽑았다. 나이와 성별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글로벌 기업 대표들의 의견이었다고 한다.
그는 처음 KCMC 회원들과 골프장에 갔던 날을 회상했다. “저는 영업현장에서 오래 일했습니다. 국내 기업인들과 모임이나 골프약속도 많았죠. 그럴 때면 제가 젊은 여성이다 보니 다들 저에게 많은 관심을 기울여 줬고, 남들보다 좋은 대접을 받곤 했어요. 골프장에서는 늘 잘 친다는 칭찬은 물론 점수를 좀 봐주기도 하고요. 그런 일들에 익숙해 있었는데 KCMC 회원들과 골프장에 처음 간 날 신선한 충격을 받았어요. 다들 저를 나이 드신 남성회원들과 똑같이 대하더라고요. 저를 여성으로 보는 사람도 없었고, 점수 봐주기 같은 건 있을 수 없는 분위기였죠. 그런데 신기하게도 훨씬 마음이 편하고 당당한 거예요. 세련된 매너로 서로를 편하게 하는 것, 이게 글로벌 스탠더드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행희 대표의 경력은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으로 시작됐다.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문화재관리국에서 일하다 단순·반복 업무에 싫증을 느낀 그는 좀 더 다이내믹한 일을 하기 위해 외국기업의 문을 두드렸고, 1988년 한국코닝에 입사했다.
코닝(corning)은 160년 전통의 특수유리 및 세라믹 제품을 생산하는 미국 기업이다. 자동차용 DPF(매연저감장치), LCD TV 및 태블릿 PC용 등 각종 유리, 광케이블, 광섬유 등 첨단소재 제품들이 주요 생산품목이다. 코닝은 1972년 한국사무소를 설립하면서 한국시장에 진출했으며, 1996년 100% 투자법인인 한국코닝주식회사를 설립했다. 최근 주목받는 제품은 디스플레이용 특수유리. 코닝의 제품인 ‘고릴라 글래스(glass)’는 스마트폰뿐만 아니라 소니 브라비아 TV와 삼성 갤럭시탭 등에 적용되고 있다.
이 대표는 입사 초기에는 비영업 부서에서 일했지만, 업무를 영업 분야로 확대시켜 나가면서 영업 일선에 나서기 시작했다. 그는 “인문학 전공자로서 첨단공학 분야의 영업이 어렵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제품 매뉴얼을 처음부터 끝까지 달달 외우고 다녔다”고 말했다. 몇 만 종에 달하는 제품을 모두 외웠다. 지나가는 자동차를 보면 그 차에 적용된 코닝 제품의 시리얼넘버가 줄줄 튀어나올 정도였다.
코닝의 주력제품들이 디스플레이와 광섬유 등 소비자에게 직접 보이지 않는 첨단제품인 만큼 상대방을 설득하며 영업을 하려면 제품에 대해 완벽하게 숙지한 후 이를 쉽게 설명할 수 있어야 했다. 얼마나 제품과 업계에 대한 공부를 많이 했는지 스스로 ‘코닝 공대(工大) 졸업’이라고 얘기할 정도다. 그는 일하는 동안은 여성이라는 점을 완전히 잊었다고 했다.
“일할 때 나이 묻는 사람 많더라”
“많은 여성이 일종의 ‘공주병’ 기질을 갖고 있어요. 노력은 많이 하지 않으면서 주목받길 바라죠. ‘나도 잘할 수 있는데 여성이라 안 시켜 주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하는 여성들을 주변에서 많이 봤어요. 안타깝더라고요. 투덜댈 게 아니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직접 보여 주거나 일한 결과를 보여 주면 되잖아요.”
30대 후반에 영업담당 임원이 되면서 에피소드도 적지 않았다. 아담한 체구에 앳돼 보이는 외모는 가끔 오해를 사기도 했다. 접대골프를 치러 가면 캐디로 오인받는 경우도 있었고, 업무적으로 처음 만났을 때 다짜고자 “몇 살이냐? 몇 학번이냐?”고 묻는 상대방도 많았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장에 가면 “당신 말고 책임자 오라고 해라”라는 경험도 있었다.
업무능력을 인정받으며 승진을 거듭해 온 그는 39세였던 2004년 한국코닝주식회사 대표이사 자리에 올랐다. 이전의 대표들도 한국인이긴 했지만, 모두 외부에서 스카우트돼 온 사람이었고 내부 승진자가 대표로 된 것은 처음이었다.
그는 스스로를 ‘일 중독자’라 불렀다. “제가 졸업할 때 여성이 기업에 취업하는 것은 비서직 말고는 드문 일이었죠. 여자가 직장이 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해 보이는 시절이었어요. 그렇다 보니 다닐 곳이 있다는 게 좋아서 열심히 일을 했죠. 일을 하다 보니 인정받았고, 인정받으니 즐거워서 더 일을 열심히 했습니다. 성공의 비결을 묻는 사람이 많은데, 무조건 열심히 한 것 말고는 비결이 없어요.”
유학을 가지는 않았지만 공부는 계속했다. 고려대 경영대학원에서 석사를, 숙명여대에서 경영학 박사를 취득했다. 숙명여대 경영학부에 겸임교수로 출강중이기도 하다.
그는 ‘일과 결혼한’ 싱글이다. “인간의 능력은 한정돼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대단하거나 특별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잘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하는 게 옳다고 생각합니다. 여성이 일도 하면서 가정도 가지려면 부모든 남편이든 자식이든 누군가 희생할 수밖에 없어요. 전 남의 희생을 딛고 제가 성공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습니다.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일을 하고 싶을 뿐이죠.”
그는 여대 출신이고, 여대에서 강의 요청이 들어오면 절대 거절하지 않는다고 했다. 여성 기업인으로서 후배들의 멘토가 되는 일은 본인의 의무라고도 말했다. “멘토 프로그램도 했었고, 개인적으로 멘토를 하고 있기도 해요. 제가 대학생 시절에는 여성 롤 모델이 전혀 없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여성 CEO들도 대부분 아버지나 남편이 일궈 놓은 기업에서 가업을 잇는 경우가 대부분이잖아요. 저처럼 신입사원부터 활동하다가 대표가 된 여성은 아마 제가 처음인 것 같아요. 여성 인재들이 사회에서 더 많이 활약했으면 좋겠습니다.”
회원들의 정보량 대단히 많아
이 대표는 KCMC에는 2005년부터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KCMC에 와 보니 국내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훌륭한 경력과 학벌, 능력을 가진 분들이 한곳에 모여 계시더라고요. 이런 글로벌 인재들이 젊은이들의 멘토가 되기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외국기업 한국법인에 한국인 대표들이 늘어난 것은 오래된 일이 아니다. 이 대표의 설명이다.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외국기업 대표 자리는 외국인들과의 경쟁이었거든요. 그런데 한국경제가 세계에 미치는 영향이 커지면서, 본사에서도 한국법인은 한국대표한테 맡겨야 한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최근 한국인 CEO가 부쩍 늘어났어요. 한국 문화가 독특하고, 해외경험이 많은 한국인들이 늘어나다 보니까 본사에서도 한국인을 대표로 세우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나 싶습니다. ”
그는 최근 한국인들이 다국적기업에서 많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푸르덴셜 황우진 전 대표도 최근 본사 전체 마케팅 총괄담당이 되는 등 한국인이 글로벌 기업에서 아시아총괄 또는 마케팅총괄 직책을 맡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어요. 한국인들이 세계적인 기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 젊은 세대에게 상당히 고무적인 일입니다. 이런 이야기들을 젊은이들에게 들려주기 위해 KCMC 회원들이 적극적으로 특강에 나서고 있습니다.”
그는 KCMC 회원들이 보유하고 있는 기술과 인맥을 비롯해 정보의 양이 방대하다고 설명했다. “어느 조직보다 우수한 인재가 모여 있기도 하고요. 세계에서 생산되는 정보가 모이는 곳이에요. 국내 어떤 집단보다도 정보의 양이 많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회원들의 정보와 경험을 우리끼리는 물론 사회 전체와 나누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기도 합니다.” KCMC는 사회봉사활동 외에도 CEO 강좌, 중소기업 컨설팅, 장학금 조성 및 전달, 글로벌 비즈니스 포럼 주최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글로벌 리더들의 솔선수범으로 국격 높여야
그는 “한국의 정치적·경제적 수준이 많이 올라간 만큼 이제 국격(國格)을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할 때”라며 스위스 출장에서의 일화를 소개했다.
“얼마 전 출장 갔다가 시간이 좀 나서 스위스를 돌아봤는데, 그때 국격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습니다. 마테호른을 볼 수 있는 관광지 체르마트에 갔는데, 그곳에서 내려가는 방향에 따라 이탈리아, 스위스, 프랑스로 나뉘어요. 그런데 어느 나라에 있느냐에 따라 화장실 상태가 엄청나게 차이가 나는 겁니다. 이탈리아의 화장실은 우리나라 1960년대의 푸세식 화장실 같더라고요. 그런데 스위스 화장실은 특급호텔 화장실 같은 겁니다. 혹시 청소하는 사람이 있나 하고 둘러봤지만 아무도 없었죠. 이용하는 사람들이 모두 깨끗하게 사용했던 거예요. 이게 바로 국격의 한 모습이구나 라고 느꼈습니다. 국격은 단시일 내에 쉽게 갖추어지는 게 아니겠지만 글로벌 리더들이 해야 할 일이 많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KCMC도 큰 역할을 하고 싶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