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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첫 여성 시각장애인 국회의원 미래통합당 김예지 의원

“미래통합당의 ‘약자와의 동행’ 앞장설 것… 약자는 보호 대상 아닌 함께 가는 친구”

글 : 권세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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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래한국당 인재영입 1호가 된 사연, “한선교 대표 전화, 처음엔 연주 의뢰인 줄”
⊙ 장애인 당사자 아니면 해결할 수 없는 일들 해결하는 국회의원 될 것
⊙ 늘 어려웠고, 싸워야 했고, 도전해야 했던 인생… 이 사회의 인식 전환에 앞장서고 싶어
⊙ 정치인이면서 생활인, 예술인, 청년층으로 국민 공감 얻기 위해 노력할 터
⊙ ‘조이’로 인해 안내견에 대한 인식 바뀌는 것 느껴져 보람

김예지
1980년생. 숙명여대 음악대 졸업, 미국 피바디음악대 석사, 위스콘신메디슨대학 피아노교수법 음악예술학 박사 / 前 유니온앙상블 예술감독, 現 한국장애예술인협회 이사, 21대 국회의원
사진=조준우
  지난 3월 11일, 미래통합당이 21대 총선을 앞두고 출범시킨 비례전문정당 미래한국당이 1호 영입인사로 시각장애인 피아니스트 김예지씨를 발표했다. 그때 주변에서는 ‘신선하다’는 반응과 ‘우려된다’는 반응이 공존했다. 그 이전에도 지체장애인 국회의원은 많았지만 시각장애인 국회의원은 17대(2004~2008) 한나라당 비례대표 정화원 의원이 유일했다. 정 전 의원이 국회에 입성하면서 2005년 본회의장에 음성지원시스템과 점자투표시스템이 설치됐지만 시스템은 10년 이상 사용되지 못했다.
 
  첫 여성 시각장애인 국회의원인 미래통합당 김예지 의원에게는 점역(점자번역)이 가능한 보좌진과 점자프린터, 점자정보단말기, 음성지원노트북 등이 제공된다. 물론 안내견 ‘조이’도 본회의장 등 국회 시설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 한때 정화원 전 의원 안내견의 본회의 입장을 국회 사무처가 막은 전례가 있어 잠시 논란이 되기도 했지만, 어떤 시설도 안내견의 출입을 제한할 수 없다는 장애인복지법 제40조에 따라 조이는 현재 국회 어느 곳에서나 김 의원과 동행하고 있다. 조이는 김 의원의 세 번째 안내견으로, 2018년부터 2년째 함께하는 중이다.
 
 
  문체위 최초의 장애인 의원
 
미래한국당이 지난 3월 11일 1호 영입인재 발표식을 가졌다. (왼쪽부터) 미래한국당 이종명 의원, 한선교 대표, 김예지 피아니스트, 정운천 의원.
  무더운 7월 중순 국회 의원회관에서 김 의원을 만났다. 의원실에 들어서자 안내견 조이가 먼저 나와 꼬리를 흔들며 손님(기자)을 맞았다. 선한 눈을 가진 리트리버종이다. 뒤이어 나온 김 의원은 “(조이가)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걸 좋아한다”고 했다. 1980년생으로 미래통합당 의원 중 세 번째로 젊은 김 의원의 첫인상은 화사한 외모와 차림새, 하이톤의 목소리를 지닌 여느 젊은이와 같았다.
 
  ― 국회 생활에는 적응이 됐습니까.
 
  “저보다 조이가 더 잘 적응하고 있는 것 같아요(웃음). 아직 본회의도 제대로 참석하지 못했고, 상임위(문화체육관광위원회) 회의에도 들어가보지 못해서 국회에 완전히 적응했다고 하긴 힘들어요. 하지만 이미 법안도 여러 건 발의했고,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 상임위는 1순위로 문체위를 신청했고, 배정받았죠.
 
  “문체위에 장애인 의원은 처음이라고 합니다. 이전까지 장애인 국회의원은 무조건 보건복지위원회로 배정됐다고 해요. 하지만 저는 예술인이고 문화 분야에서 제가 해야 할 일이 많다고 생각해 문체위를 신청했습니다.”
 
  ― 국회에 시각장애인을 위한 시스템이 충분하지 않은 건 아닌지요.
 
  “점자번역 가능한 보좌진, 점자프린터, 표결시스템 같은 건 잘 돼 있어요. 국회의 하드웨어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점은 없고, 다만 물리적인 접근성보다 정보접근성이 저에겐 좀 더 필요해서 그 점에 더 신경 쓰고 있습니다. 특히 법안은 단어 하나하나 꼼꼼히 읽어야 하기 때문에 점자로 읽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죠. 체력을 더 길러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릴 때 피아노 연주자 꿈 키워
 
  김 의원은 선천적 시각장애인이다. 병명은 선천성 망막색소변성증. 태어날 때부터 눈이 보이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어린 시절엔 부모 사랑을 듬뿍 받으며 예쁜 옷 입기 좋아하는 평범한 아이였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시야가 좁아지며 눈이 잘 보이지 않기 시작했고, 유명하다는 병원을 두루 찾아다녔지만 결국 장애를 받아들이고 일반 초등학교가 아닌 서울맹학교에 입학했다. 김 의원의 어머니는 시력을 잃어가는 딸에게 “네 눈에 별이 가득해져서 눈이 부셔서 못 보게 된 것”이라며 “웃으면 더 눈이 반짝반짝 빛날 것”이라고 했다.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부터 바이올린과 플루트 등 악기를 다룰 줄 알았던 그는 눈이 잘 보이지 않기 시작하고 바깥 활동이 줄어들면서 음악에 더 집중하게 됐고, 피아노 연주자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초·중·고는 맹학교를 다녔지만 대학(숙명여대 피아노 전공)은 장애인전형이 아닌 일반전형으로 과 수석으로 2000년 입학했다. 각 대학에 전공별로 시각장애인 전형이 있긴 하지만, 기악 전공의 경우 전공 특성상 장애인 전형이 없다. 해당 학과에 장애인이 지원조차 한 적도 없었다. 시각장애인이 음악대 수석으로 입학했다는 소식에 언론의 관심이 쏟아졌고, ‘인간승리’ ‘역경을 이겨낸 기적’ 등의 찬사가 쏟아졌다.
 
  ― 12년간 맹학교를 다니다 대학에 가니 학교생활이 어렵지 않았습니까.
 
  “지금은 학교마다 장애학생지원센터라는 게 있고 도우미 학생과 함께할 수 있게 해주기도 해요. 그런데 그때만 해도 그런 게 전혀 없었습니다. 학교에서도 저 같은 학생을 처음 받았으니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던 것 같아요. 특수전공도 아니고 음대니 교수님들도 당황하셨겠죠. 제 입장에선 오지 말라 하지 않은 것만 해도 감사할 지경이었습니다.”
 
  ― 모든 과정이 역경을 헤쳐나가야 하는 과정이었겠군요.
 
  “남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 보는 교재도 저는 볼 수가 없잖아요. 학기 초에 교재를 받아서 점자번역을 하면 학기 말이나 돼야 교재를 볼 수 있는 형편이었습니다. 교양과목은 점자나 음성교재가 있는 경우도 있는데 전공(피아노)은 그런 게 아예 없어서 제가 알아서 일일이 교수님들에게 실기나 연주로 대체하겠다고 말씀드렸죠.”
 
  ― 적극적인 성격은 그때부터 자리 잡았나요.
 
  “무엇 하나 제가 나서지 않으면 할 수 있는 게 없었으니까요. 그땐 지금보다 젊어서인지 더 적극적이고 편견과 맞서 싸우려는 강한 자세가 있었습니다. 한번은 음악사 시간에 교수님이 ‘헨델(독일 음악가로 ‘음악의 어머니’로 불림)이 노년에 장님이 됐다’고 설명하기에, 제가 손을 번쩍 들고 ‘그런 표현을 쓰시는 건 곤란하다’고 말했죠. ‘옛날에는 그런 말을 썼을 수도 있고 책에도 그렇게 써 있겠지만, 지금은 2000년대이고 학생을 가르치는 교수님이 그런 언어를 사용하면 안 된다’고 했어요. 그런 하나하나부터 고쳐나가야 사회가 변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 그때부터 정치인의 기질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만.
 
  “대학 입학 이후 지금까지는 어딜 가도 (장애인은) 제가 처음인 경우가 많았어요. 늘 어려웠고, 싸워야 했고, 도전해야 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늘 했고, 대학 때부터 장애인 권익에 대한 활동을 많이 하게 됐습니다.”
 
 
  대학 때 안내견 처음 만나
 
미래통합당 의원총회에 참석한 김예지 의원과 안내견 ‘조이’.
  김 의원이 시각장애인 안내견과 함께하게 된 때도 대학 시절이다. 그는 2000년 삼성안내견학교를 통해 안내견 ‘창조’를 만나게 됐고, 미국 유학을 함께한 ‘찬미’와 현재의 ‘조이’까지 20년째 안내견과 함께하고 있다.
 
  ― 조이 덕분에 안내견에 대해 잘 모르던 사람들에게 안내견이 많이 알려진 것 같습니다.
 
  “본회의장 출입 논란 등 여러 일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안내견에 대해 인식하게 된 건 정말 잘된 일이죠. 모든 공공장소나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다는 걸 모르는 분들도 많았으니까요. 안내견 자체가 뭔지 모르는 사람도 아직 많아요.”
 
  ― 모든 시각장애인이 안내견과 함께하는 건 아니다 보니 안내견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안내견과 함께하는 일은 장애인 본인에게도 사실 큰 부담이 되는 일입니다. 안내견을 ‘내가 편의를 제공받겠다’는 뜻으로 이용하려면 힘들어요. 생명체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제가 돌봐줘야 하고 교감해야 하고, 제가 힘들 때도 있어요. 서로 도움을 주고받아야 하는 존재라 책임감이 없으면 함께할 수 없습니다. 안내견학교에서도 누가 신청한다고 다 분양해주는 게 아니라 파트너(장애인)에 대해 면밀히 심사를 합니다. 시각장애인에게 편의성으로만 보자면 안내견보다 흰 지팡이가 더 효과적이에요. 제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으니까요. 또 안내견은 동선이나 활동 등 제가 모든 걸 숙지한 다음에 가르쳐줘야 하기 때문에 더 번거로울 수도 있고요. 제가 먹이를 주고 목욕시키고 배변처리하고 컨디션이 안 좋으면 돌봐줘야 하는 등 반려견과 똑같기 때문에 도움을 받겠다는 생각만으로 분양받을 수 있는 건 아닙니다.”
 
  ― 그렇다면 대학 1학년 때부터 분양받는 사람은 별로 없겠군요. 부담감과 책임감이 함께해야 하니까요.
 
  “예전부터 개를 키우고 싶었는데 장애인이 개를 키운다면 주변에 반대가 많잖아요. 그래서 저에게는 안내견이 딱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대학에 와 보니 늘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고, 강의실이건 식당이건 어딜 가도 도와줄 친구와 함께 가야 하니…. 매번 친구에게 시간을 맞춰야 하는데 제가 스스로 모든 걸 하고 싶었어요.”
 
  ― 미국 유학 갈 때도 안내견과 함께했죠.
 
  “석사 과정 때는 혼자 갔어요. 저 한 몸 챙기기도 힘든 유학 초반에 안내견까지 제가 돌보기는 너무 힘들고 안내견도 힘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2년의 석사 과정을 마치고 박사 과정에 들어갈 때 안내견 ‘찬미’를 만나 함께 미국으로 갔죠.”
 
  ― 미국의 안내견 문화는 어떻습니까.
 
  “제가 2000년대 초반부터 안내견과 함께할 때 주변 시선에 얼마나 많이 시달렸겠어요. 대중교통 이용하기 힘든 것은 물론이고요. 시각장애인 안내견이라는 게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제가 안내견과 함께 걷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할 정도로 안내견에 대한 인식이 자리 잡혀 있어요. 배려하고 양보하는 것은 물론이고요. 미국에서는 하네스(가슴줄)를 차고 있는 개는 ‘서비스독(service dog)’으로 알고 배려를 하는데, 한국에서는 하네스는 물론 ‘시각장애인 안내견’이라고 써 있는 옷을 입히고 다녀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또 지나친 배려와 관심도 장애인들에게는 부담인데 미국에서는 그런 어려움이 전혀 없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안내견과 돌아다닐 때 주위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게 들려요. 시각장애인은 청각이 예민하니까요. 그런데 미국에서는 그런 일이 없었습니다.”
 
 
  유학-박사학위-연주활동-정치입문
 
김예지 의원은 숙명여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하고 미국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대학 졸업 후 나 스스로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음악교사 될 생각에 교육대학원에 다니던 김 의원이 유학길에 오른 것은 공부가 좀 더 필요해서였다.
 
  “한국에서 예술인으로 성공하려면 인맥이 있든지, 유명 대학을 나오든지, 유력 콩쿠르에서 입상하든지…. ‘스펙’이 있어야 해요. 장애인이고 스펙 없는 제가 혼자 서려면 학위는 따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유학 준비 역시 쉽지 않았다. 영어 공부를 하기 위해 토플 책을 점자로 변환하는 데 많은 노력과 비용이 소요됐다. 결국 김 의원은 2014년 미국 위스콘신 음악대학에서 피아노 연주와 교습법을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박사학위 논문과 함께 김 의원이 개발한 3D 촉각악보가 미국 언론에 소개되기도 했다. 귀국 후 연주회와 방송, 강의 등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던 김 의원은 지난 3월 ‘미래한국당 영입인재 1호’가 됐다.
 
  ― 누가, 어떻게 영입을 제안해왔습니까.
 
  “어느 날 한선교 미래한국당 대표가 제게 전화를 했습니다. TV를 통해 누군지 아는 분이고, 과거 음악회 사회도 자주 보던 분이기 때문에 처음엔 연주 의뢰인 줄 알았어요. 전화로 이런저런 얘기를 했는데 한번 만나자고 하시더군요. 만났는데 말씀도 잘하시고, 문화 부문에 공통 관심사도 많고, 얘기가 잘 통해서 이런저런 사는 얘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한참 있다가 영입 제안을 하시더라고요. 그날은 생각해보겠다고 답했고, 그 후 오래 생각하지 않고 하겠다고 했지요.”
 
  ― 정치에 관심이 있었나요. 제안을 받아들인 계기가 있습니까.
 
  “대학 때부터 계속 장애인에 대한 인식 개선과 장애인 권익 활동에 참여해왔습니다. 법을 만들어달라고 정치인들에게 요청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하던 차에 직접 법을 만들고 고쳐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어요. 기회가 항상 있는 것은 아니다 보니 한번 정치에 참여해보고자 했습니다. 그때 한 대표는 ‘지금까지 하던 일을 국회에서 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제가 장애인 권익 관련 활동을 한 내용을 다 알고 계시더라고요.”
 
  ― 국회에서 가장 젊은 편에 속하는데, 보수 야당에 들어가는 데 대한 부담감이나 거부감은 없었습니까. 주위 반응은 어땠나요.
 
  “한선교 대표에게 제가 ‘정치를 하나도 모르고, 국회의원 하려면 입당하고 정당에서 활동한 사람이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씀드렸는데, ‘그런 건 그런 사람들이 할 일이고, 김예지는 김예지가 할 일이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결심했는데, 결심하기 전까지 부모님 외에는 알리지 않았어요. 영입 발표가 나고 나니 주위에서 ‘왜 보수 정당에 들어가느냐’는 우려와 비난이 꽤 많이 있었고, ‘빨리 입당 철회하라’는 분들도 있었어요. 하지만 저는 지금까지 제 뜻대로 살아왔고, 이번 일(입당)도 제가 결정한 거라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제가 하는 일에 여야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차별을 없애고 약자와 함께 가는 세상을 만드는 데 여야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국회의원 김예지
 
  지난 6월 1일 21대 국회 임기가 시작됐지만, 미래통합당 초선 의원들은 아직 표결도 제대로 못 해본 상황이다. 상임위원장직을 놓고 여야가 한 달 이상 극한 대치를 벌였고, 국회의장 선출 때 미래통합당 의원들은 본회의장에 입장했다가 표결을 거부하고 바로 퇴장했다. 상임위도 7월 중순까지 여당 단독으로 열린 적이 몇 번 있을 뿐 미래통합당 의원들은 참석하지 않았다. 김 의원은 본회의와 상임위는 아직 제대로 경험하지 못했지만 법안 마련, 의원 총회, 의원 모임 등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 국회의원이란 어떤 직업이라고 생각합니까. 지내보니 어떤지요.
 
  “지금까지는 법안을 읽고 수정하고 발의하는 업무를 주로 했는데요, 법을 바꿀 수 있다는 데 보람이 커요. 법안을 하나하나 읽다 보면 ‘아, 이래서 이런 문제들이 해결이 안 됐구나’라는 생각도 많이 듭니다. 저에게 주어진 4년의 시간 동안 이런 일들을 많이 해놓고 싶어요. 정말 당사자가 아니면 알 수 없는 일들을 제가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국회는 일반 직장과 달리 긴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이 많은데요.
 
  “사실 국회에서 가장 놀라운 점이 그거였어요. 정해놓은 시각이 있는 게 아니라는 거죠. 의원 총회가 오후 2시에서 4시로, 6시로 계속 바뀌기도 하고 본회의 시각도 바뀌더라고요. 정치인들이 이렇게 긴박하게 많은 일을 하는지 밖에서는 잘 몰랐어요.”
 
  ― 메신저나 소셜미디어(SNS)로 신속하게 연락을 받거나 대처할 일도 많은데, 어떻게 대응하는지요. 물론 보좌진도 있지만요.
 
  “메신저나 소셜미디어는 아이폰 보이스오버(편집자 주‐ 아이폰에서 기본설정 변경을 통해 스마트폰의 모든 내용을 음성으로 읽어주는 서비스)를 이용하기 때문에 어려움이 없어요. 소셜미디어 댓글은 이동시간에 차 안에서 주로 합니다. 아이폰은 시각장애인용 앱 같은 걸 쓸 필요 없이 기본설정에 보이스오버가 있어서 스마트폰 이용하는 데는 불편이 없어요. 국산 폰에도 약자에 대한 환경이 잘 돼 있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습니다.”
 
  ― 정치인들에 대한 시각은 좀 변했나요.
 
  “과거 TV에서 정치인들을 볼 때는 부정적인 시각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직접 들어와 보니 정말 국회의원이 일을 많이 하는 사람들이구나, 많은 가치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른 의원들도 다 만나본 건 아니지만 만나보니 좋은 분들도 많이 계셨어요. 또 저를 이끌어주신 미래한국당의 한선교 전 대표, 원유철 전 대표, 그리고 미래통합당의 황교안 전 대표, 주호영 원내대표와 이종배 정책위의장 등 당 지도부, 김종인 비대위원장 모두 배울 점이 많은 분인 것 같습니다.”
 
  ―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 대표가 조이를 쓰다듬어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건 좀 오해가 있었어요. 안내견을 좀 만진다고 해서 엄청난 일이 생기는 건 아니죠. 걷고 있을 때나 제가 모르게 만지는 건 안 되지만 저와 이야기한 후에 쓰다듬고 인사하는 정도는 당연히 괜찮습니다. 그날 황 대표를 처음 가까이서 보게 됐는데, 조이와 인사하고 싶어 하시더라고요. 몸을 낮춰 인사하셨고 조이도 사람을 워낙 좋아해서 분위기가 좋았는데, 기사가 황 대표를 비난하는 식으로 나와서 당황스러웠지만 해명할 기회가 없었어요.”
 
 
  의정활동 방향은 ‘의식 전환’
 
2019년 4월 장애인의 날 기념식에서 세계 최초로 3D 촉각악보를 발명한 공로로 ‘올해의 장애인상’을 받은 김예지 의원.
  김 의원은 국회 입성 후 이미 10여 개 법안을 발의했다. 새로운 법안을 발의하기보다는 각종 법안에서 문제점이 있는 부분을 수정하는 개정안을 마련하고 있다. 저작권법에서 장애인의 정보접근성을 확대하거나 공직선거법에서 장애인의 참정권을 보완하는 식이다.
 
  ― 발의한 법안들이 대부분 장애인 관련 법안은 아닙니다.
 
  “지금까지 장애인 의원들이 많이 있었지만 장애인 관련 법에 집중하느라 놓쳤던 부분에 제가 집중하고 있습니다. 장애인 관련 법의 뼈대는 서 있는 상태이지만 다른 법에서 장애인을 배려하는 부분이 좀 취약해요. 각 법안에서 장애인 관련 내용들을 다 찾아서 바꾸거나 추가하고 있어요. 기존 정치인들이 이런 분야는 잘 모르고, 몰라서 못 했을 것 같습니다. 당사자가 아니면 알 수 없는 부분들을 제가 하나하나 다 찾아내서 보완하려 합니다. 또 장애인을 위한 법이라고 해도 장애의 종류와 정도에 따라 적용돼야 할 범위가 다르거든요. 그런 부분들을 다 개선하고 싶어요. 예전에 제가 권익활동할 때 국회의원들을 향해 제안하면서 왜 이런 걸 안 하는지, 왜 들어주지 않는지 섭섭하게 생각한 적도 많았는데, 이게 당사자가 아니면 느낄 수 없는 일들이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4년 동안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4차산업시대에 장애인의 정보접근성도 이슈가 되겠군요.
 
  “장애인들이 비장애인과 똑같은 수준으로 정보에 접근하는 건 힘들겠지만 어느 수준까지는 정보접근성을 확보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요즘 키오스크(무인주문 및 결제 기계)가 많아졌잖아요. 그런데 시각장애인들은 키오스크에 접근조차 할 수 없어요. 점자나 음성 기능을 넣은 키오스크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터치스크린 기반의 기계는 시각장애인들에겐 아예 접근이 불가능해요. 이런 부분들을 법적으로 개선하는 게 제가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법을 만들어도 장애인들이 뭘 하려고 관공서에 가면 공무원들이 관련 법이나 서류를 모르는 경우도 많아요. 그래서 장애인복지법에 지자체가 장애인 관련 정책 수립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홍보하도록 하는 조항을 보완하고 있습니다.”
 
 
  ‘국민친구’ 역할 할 것
 
피아니스트인 김예지 의원은 올해 말 세종문화회관 에스씨어터에서 독주회를 갖는다.
  김 의원은 장애인 국회의원인 동시에 미래통합당 의원으로서 포부도 보였다. 그의 페이스북 배경사진에는 ‘공감하며 함께 울고 소통하며 함께 웃는 국민친구’라는 글귀가 있다.
 
  “김종인 비대위원장께서 ‘약자와 동행’이라는 키워드를 내놓았잖아요. 약자는 보호 대상이 아니라 함께 가는 친구라는 게 우리 당의 입장입니다. 저도 ‘국민친구’ 역할을 하려 합니다.”
 
  그는 장애인 국회의원인 동시에 청년 국회의원이기도 하다. 미래통합당의 80년대생 의원은 그와 지성호(1982년생), 배현진(1983년생) 의원이 전부다.
 
  ― 부동산과 교육 정책의 실패로 현 정부에 대한 청년층의 분노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만족할 수 있는 정책은 없다고 생각해요. 다만, 정부는 청년세대가 무슨 이유로 힘들어하고 뭘 필요로 하는지, 그리고 정책 담당자들이 그 사실을 알고 있는지 돌아봤으면 합니다.”
 
  ― 청년과 약자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저는 4년 지나면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갈 사람이라 정치인보다는 한 국민의 입장에서 생각하려 합니다. 사실 작년에 잡아놓은 연주 일정이 올해 두 건이나 있어요. 12월 19일과 20일에는 세종문화회관 에스씨어터에서 독주회도 해야 합니다. 음악적인 감을 잃지 않으려면 의원생활 하면서 연습도 연주도 해야 하므로 바쁘고 힘든 건 사실이죠. 하지만 정치인이면서 생활인으로서 김예지가 우리 사회에 기여할 부분도 많다고 생각합니다.”
 
  ― 실례되는 질문이지만, 외모도 항상 신경 쓰고 다니는 걸로 보입니다. 화장이나 코디는 스스로 합니까.
 
  “어릴 때부터 예쁜 걸 좋아하고 옷 고르는 걸 즐겼고, 엄마가 많이 도와주셨어요. 대학 시절 이후엔 연주활동을 오래해왔기 때문에 메이크업이나 스타일링을 남들이 해주는 경우도 많아서 오랜 기간에 걸쳐 배웠죠. 지금도 메이크업 유튜버 채널을 가끔 참고도 하고요. 외부 행사가 있을 때는 도움을 받지만 평소에는 화장과 코디를 스스로 다 합니다.”
 
  인터뷰가 진행되는 두 시간 내내 김 의원은 적극적이면서 높은 목소리 톤을 유지했다. 그는 “인생 자체가 도전이었고, 앞으로도 계속 도전할 것”이라고 했다. 또 “늘 편견에 맞서면서 싸워왔는데, 지금 태도는 예전보다는 많이 부드러워진 것”이라며 웃었다.
 
  김예지 의원이 좀 더 편견 없는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한선교 전 대표가 그를 왜 영입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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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찬수    (2020-08-06) 찬성 : 1   반대 : 0
김예지 의원이 여러분야의 장애인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해주길 바란다 ... 힘내라 ... 김예지 의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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