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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의 書架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

“광화문 광장에 모인 한국 중산층들에게서 희망을 봤다”

글 : 하주희  월간조선 기자  everhop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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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길TV, 개국 1년 만에 구독자 32만명, 세계 최고령 시사 유튜버
⊙ “문재인 정권하에서 언론 자유 위협받고 있다”
⊙ “교육 부재가 이 나라를 망치고 있다”
⊙ “이번 총선 후 한국에도 의회 민주주의 정착할 것”
⊙ “황교안 대표, 어수룩해 보이지만 무서운 사람… 정직해서 정치는 못 한다”

金東吉
1928년생. 평안남도 맹산 출생. 연희대(연세대) 영문학과 졸업, 美 에반스빌대학 석사(역사학), 보스턴대학 철학박사 / 연세대 교수, 부총장, 《조선일보》 논설고문, 제14대 국회의원, 신민당 대표 역임 / 現 연세대 명예교수, 사단법인 태평양시대위원회 이사장 / 저서 《길은 우리 앞에 있다》 《링컨의 일생》 《한국청년에게 고함》 등 80여 권
사진=조준우
  목련의 마음을 헤아려본 적이 있는가. 백목련(白木蓮)은 북향화(北向花)라고도 불린다. 가만히 살펴보면 꽃송이들이 모두 한 방향으로 틀어져 있어서다. 북쪽이다. 꽃잎의 발육 차이 때문으로 과학은 설명한다. 목련은 겨울 끝자락을 견디며 꽃봉오리를 맺는다. 빈약한 햇살을 받아먹고 자라서인지 한 봉오리 안에서 꽃잎의 발육도가 다르다. 햇살을 받고 자란 남쪽 방향의 꽃잎이 그늘에서 자란 북쪽 방향 꽃잎보다 더 힘이 세고 빳빳하다. 그 차이 때문에 목련은 북쪽을 향해 고개를 돌린 채 개화한다. 아직 덜 자라 힘이 약한 쪽으로 꽃송이가 기울어서다. 그 모습이 꼭 어머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늘 자식만을 애달파하며 바라보는 어머니 말이다. 모든 자식은 그 어머니에겐 아직 덜 자란 아이처럼 보이는 법이니까.
 
 
  올해 93세, 세계 최고령 시사 유튜버
 
한때 이화여대생과 연대생들이 드나들던 카페였던 김옥길기념관 내 공간. 이제는 이곳에서 김 교수의 강연이 열린다.
  지난 3월 30일 서울 대신동의 김옥길기념관을 찾았다. 김동길(金東吉) 연세대 명예교수를 만나러 간 참이었다. 김 교수는 김옥길기념관 옆의 양옥에서 살고 있다. 자택 입구 옆엔 백목련 한 그루에 꽃이 한창이었다. 올려다보고 있으려니 은은한 환대를 받는 기분이 들었다.
 
  현관을 들어서니 큰 식탁이 있는 다이닝룸이 보였다. 왼쪽으로 몸을 돌리니 짧은 복도였다. 벽엔 김 교수의 사진들이 걸려 있었다. 사진을 보면서 김 교수의 방으로 들어섰다. 책장과 텔레비전과 꽃, 신문, 책상, 소파가 보였다. 김 교수의 집무실이자, 응접실이자, 서재다. 어느덧 백 세를 바라보게 된 김 교수가 그곳에 앉아 있었다.
 
  1928년생이니 한국 나이로 93세다. 조금 지쳐 보일 뿐 노화의 인상은 덜했다. 2시간 가까이 대화를 나누는데 목소리에서 좀처럼 힘이 빠지지 않았다. 통계나 연대를 떠올리는 기억력은 30대의 기자보다 훨씬 나아 보였다.
 
  그는 이곳에 앉아 동족들에게 매일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유튜브 채널 ‘김동길TV’와 홈페이지 ‘김동길닷컴(www.kimdonggill.com)’을 통해서다. 아마 세계 최고령 시사평론 유튜버가 아닐까. 지난해 2월 6일 개국했다. 10분 안팎의 논평이 대략 3일에 한 번씩 올라온다. 180회 가까이 방송했다. 구독자가 32만명이 넘는다. 이와는 별도로 ‘민립교양대학’이란 채널을 통해 세계사 강좌도 연재 중이다. 홈페이지에는 짧은 글을 매일 올린다. 주로 시사 논평이다.
 
  서가를 둘러봤다. 책장 여러 칸엔 책등이 낡아진 원서들이 줄줄이 꽂혀 있다. 사전과 성경 여러 권이 책장의 꽤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책장 곳곳엔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의 사진이 들어 있는 액자며 접시, 작은 청동상들이 도열해 있다. 자유의 여신상, 카우보이 모자, 종 등속이다. 밖은 코로나바이러스19로 난리인데 이곳에선 시간이 다르게 흐르는 듯했다.
 
 
  CNN, BBC 주로 시청
 
서재로 향하는 작은 복도. 젊은 시절 김 교수의 모습이 붙어 있다. 사진=조준우
  ― 세상 돌아가는 소식은 어떻게 접하시나요.
 
  “미국 방송을 많이 봅니다. CNN이나 BBC 방송. 자기 전에 뉴스는 꼭 보지요. 노인은 잠이 많지 않아서 새벽이면 일어나요. 앉아서 생각을 많이 해요. 열심히 보고 열심히 생각하지. 산다는 건 뭔가, 그런 생각도 하고. 오래 살고 있죠. 우리 집안에 아흔 넘어 산 사람이 나밖에 없어요. 친구들도 더러 남아 있지만 대개 다 갔어요. 중학교 다닐 때부터 알고 지낸 이들 중에 지금도 살아 있는 유명한 사람은 조순 서울대 명예교수뿐이에요.”
 
  ―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시나요.
 
  “젊을 땐 수영을 많이 했지. 건강관리를 안 하는 게 관리예요. 남북전쟁 와중에 누가 링컨 대통령에게 물었어요. ‘남북전쟁을 헤쳐가기 위해 어떤 정책을 준비하고 있습니까?’ 링컨이 답했어요. ‘정책이 없는 게 내 정책이요.’ 지금은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잠시 쉬고 있지만, 김옥길기념관에서 일주일이면 세 번씩 강의도 해요. 한 달에 한 번은 꼭 장수클럽 모임도 갖지요. 김남조 시인도 같은 회원이에요. 매번 20여 명씩 모입니다.”
 
  건강에 대한 그의 얘기가 이어졌다.
 
  “나이 든 사람 만나면 흔히 묻잖아요. ‘요즘 건강하십니까.’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라는 말도 하지요. 그거 다 권할 만한 말이 못 돼요. 오래 산다는 것도 어렵고 오래 살기까지 건강한 것도 어려운 거예요. 나이 들어 건강한 사람이 어딨어요.”
 
 
  정직한 정치인, 링컨
 
책등이 바랜 원서들. 김 교수는 “링컨 관련 책이 많았는데 모두 국회 도서관으로 보냈다”고 말했다.
  그는 평안남도 맹산에서 태어나 연희대(지금의 연세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미국으로 유학해 인디애나주 에반스빌대학과 보스턴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했다. 박사학위 주제는 ‘링컨’이었다.
 
  ― 왜 하필 링컨이었나요.
 
  “링컨은 정직한 사람도 정치를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습니다. 대통령 취임 후 이런 말을 했어요.
 
  ‘내 목적은 노예제도를 유지하는 것도 타파하는 것도 아니다. 미합중국을 지키는 것뿐이다. 노예제도를 그대로 둬야 합중국을 지킬 수 있다면 노예제도를 그대로 두겠다.’
 
  나는 이러이러한 철학을 갖고 있으니 꼭 이렇게 하겠다가 아니라 상황에 맞춰나가겠다는 얘기예요. 공부도 많이 했고 겸손했어요.”
 
  서가엔 예상보다 적은 책이 꽂혀 있었다.
 
  “링컨에 관한 책을 평생 많이 모았는데 국회 도서관에 다 기증했어요.”
 
  지난 3월호에 실린 김형석 연세대 철학과 명예교수의 인터뷰를 두고 ‘책 얘기가 생각보다 적다’는 독자 의견이 있었다. 서가를 주제로 한 인터뷰인데 말이다. 김형석 교수는 올해 101세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어느 만큼 세월이 흐르면 아무래도 독서가 힘들어지기 마련이다. 시력에 큰 문제가 없더라도 신체에 부담이 된다.
 
  100년 안팎을 살아낸 분들이다. 그 자체로 살아 있는 책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 와서 새로운 책을 읽으며 정보를 습득하기보단 자신의 인생 각 페이지를 반추하고 재해석하는 것만으로 충분할지 모른단 얘기다. 어떤 책이 재밌었는지, 책 정리는 어떻게 하는지 등의 질문을 준비한 게 겸연쩍어진다.
 
 
 
“천안함 폭침, 정부 입장에 조금도 변함이 없다”

 
  방바닥 한쪽에 놓인 신문이 보였다. 잘 보이게 놓여 있다. 지난 3월28일자 《조선일보》 1면이다. 머리기사의 제목은 ‘마지막 기회라 여겨 물었다, 천안함 누구 소행입니까’ 3월 27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천안함 유족 간에 오간 대화를 다룬 기사다. 이날 ‘천안함 46용사’ 고(故) 민평기 상사의 모친 윤청자(76) 여사가 분향하는 문 대통령에게 다가가 물었다. “대통령님, 누구의 소행인가 말씀 좀 해주세요.” 분향을 잠시 멈춘 문 대통령은 “정부 입장에 조금도 변함이 없다”고 답했다.
 
  김 교수는 이 에피소드에 상당히 흥미를 느끼는 듯했다.
 
  “아들을 잃은 어머니가 ‘누구 소행이냐 똑똑히 얘기해달라’고 묻지 않았어요? 지금까지 문 대통령이 될 수 있는 대로 그 말을 안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평소보다 확고한 태도로 답했어요. 이 어머니를 생각해봅시다. 한창 일할 나이의 아들이 북한이 보낸 어뢰에 격침됐어요. 떠나보낸 지 10년 동안 품고 있던 질문인 거예요.”
 
  그는 문 대통령의 이력에 의문을 표했다. 그러면서 현봉학 박사 동상 제막식에서 문 대통령과 만난 얘기를 꺼냈다.
 
  현봉학 박사를 잠깐 소개하면 이렇다. 세브란스의전 출신으로 미국에서 의학을 배우고 돌아와 6·25에 참전했다. 흥남철수 작전을 지휘한 김백일 장군과 앨먼드 장군 곁에서 통역을 하며 흥남철수를 도왔다. 2014년 보훈처 선정 전쟁영웅으로 뽑혔다. 보훈처 선정 전쟁영웅에는 대개 정통 군인만 선정됐다. 2013년 말 박승춘 당시 보훈처장이 ‘민간인 중에서도 전쟁영웅을 발굴해보라’고 지시한 덕에 현 박사의 존재가 조명됐다. 2016년 12월 19일 남대문 세브란스빌딩에서 동상 제막식이 있었다. 연세대가 기금을 모아 준비했다. 이 자리에 의외의 인물이 참석했다. 문 대통령이었다. 당시 유력한 대선 후보 중 한 명이었다. 원래 문 대통령은 참석 예정 인사가 아니었다. 뒤늦게 참석하기로 했다. 그때 문 대통령의 기념식 축사 일부다.
 
  “특별한 감회가 있어 참석했다. 저희 집안은 원래 함경남도 흥남이 고향이다. 비슷한 시기에 저의 아버지는 함흥농업학교, 현 박사님은 함흥고보를 다녔다. 현 박사님과 저희 아버지가 서로 알지 않았을까, 서로 만났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때 흥남부두에 모였던 10만명의 피란민 가운데 저의 부모님과 제 누님도 계셨다. 그때 현봉학 박사님의 활약이 없었더라면 북한 공산 치하를 탈출하고 싶어 했던 피란민들이 내려오지 못했을 거다. 저도 못 태어났을 거다. 현봉학 박사님은 10만명의 피란민들 그리고 피란 후에 태어난 2세들에게는 생명의 은인과 같다.”
 
  이날을 회상하며 김 교수는 말을 이었다.
 
  “현봉학 박사 동상 제막식에 나도 갔어요. 문 대통령이 왔더라고요. 그 자리에서 마치 본인이 흥남철수 때 도움을 받아서 온 듯이 얘기를 했어요. 미국 상륙선을 타고 부산엔 못 내리고 거제도에 내렸다고 말하잖아요? 거기서 태어나 살았다고 하는데 산 흔적이 별로 많지 않아요. 남한에서 태어난 게 맞는가, 사실 잘 알 수 없어요. 분명히 얘기하라고 제가 노골적으로 글로도 썼어요. 어디에서 태어났고, 아버지는 누구고 어떤 사람이었는지 말이에요. 모친께서 병이 났다는데 한번 가보지도 않았다잖아요? 장례식에 잠깐 들르고요. 이게 꿍꿍이속이라, 정체불명이에요. 이번에 문 대통령이 천안함 폭침에 대해 정부 입장에 조금도 변함이 없다 말해놓고도 찝찝할 거예요. 그것 때문에 시련을 많이 겪을 겁니다. 그 이틀 후에 북한에서 미사일 두 발 쏜 거는 그 보복 같아.”
 
 
  “세월호 시위 뒤에 또 다른 정부가”
 
  김 교수는 현대사의 중요한 시기마다 결정적인 논평을 날렸다. 어떤 경우엔 뒤돌아보면 너무 들어맞아서 예언처럼 보일 정도다. 두 가지가 생각난다. 하나는 노무현 대통령 자살이다. 2009년 4월에 쓴 칼럼에서 김 교수는 ‘노무현 대통령이 딜레마에 빠졌다’며 ‘도덕적인 과오는 바로잡을 길이 없으니 자살을 하거나 감옥에 가는 길이 놓여 있다’고 썼다. 해당 부분이다.
 
  〈인류의 역사의 어느 때에나 인간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것은 진실인데, 진실이 없으면 사람이 사람 구실 못 하게 마련입니다. 그런 자가 공직의 높은 자리에 앉으면 많은 백성이 고생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노무현씨는 정말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그가 5년 동안 저지른 일들은 다음의 정권들이 어떻게 바로잡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도덕적인 과오는 바로잡을 길이 없으니 국민에게 사과하는 의미에서 자살을 하거나 아니면 재판을 받고 감옥에 가서 복역하는 수밖에는 없겠습니다.〉
 
  그 다음 달 노 대통령은 투신했다. 김 교수의 홈페이지엔 그를 비난하는 이들이 몰려와 서버가 다운되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김 교수는 역사학자로서 연역적인 예측을 한 게 아닐까 싶다. 노무현이라는 사람의 성격과 당시 밝혀지기 시작한 사건의 전말을 종합해 말이다.
 
  다른 하나는 MB 정권 시기에 일어난 광우병 시위에 대한 분석이다. 그는 당시 ‘촛불 시위를 지켜보며, 저 뒤에 분명 또 다른 정부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는 말을 했다.
 
  ― ‘또 다른 정부’를 언급하셨지요. 현 정부를 가리키신 건가 봅니다.
 
  “그 사람들이 다 계획하고 있었던 거예요. 내가 볼 때 순진한 젊은 사람들 머리에서 그런 생각이 안 나오거든. 어디에 지휘 본부가 있는 거지요. 세월호도 그래요. 일반 사람들이 그 참사를 그렇게 활용할 수 있습니까? 이순신 장군은 12척의 배로 승리를 거뒀는데 이 정권은 배 한 척으로 승리를 거뒀다는 말이 나올 만큼이었지요. 그게 문재인 대통령 머리에서 나왔다고요? 그럴 리가요. 보라우, 문 대통령은 자기가 대통령 될 길이 열리자 곧 팽목항으로 갔어요. 방명록에 뭐라고 썼어요? ‘얘들아 고맙다.’ 고맙긴 죽은 게 뭐가 고마워요? 물속에서 죽은 어린 아이들한테 할 말입니까. 문제가 있는 거예요.”
 
 
 
언론 자유 위협하는 문 정권

 
  ― 평생 ‘자유주의’를 외치셨지요. 요즘엔 어떤 자유가 위협받고 있다 느끼십니까.
 
  “언론의 자유지요. 언론에 있는 사람들이 약간 마비될 만큼 말이에요.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1941년 연두 교서 연설에서 4대 자유를 주장했어요. 제1의 자유가 언론 자유예요(The first is freedom of speech and expression- every where in the world). 미국뿐 아니라 세계 어디서나 표현의 자유가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그러니 미국이 발전한 거예요. 두 번째가 신앙의 자유, 세 번째는 궁핍으로부터의 자유, 네 번째가 정치적 자유예요. 요즘 한번 보세요.”
 
  그는 구체적인 예를 들어가며 설명했다.
 
  “공직에 있는 인사가 현 정권을 비판을 했다고 합시다. 그러면 방송에 패널 네다섯 명이 나와서 이렇게 말해요. ‘올바른 일이다. 그렇지만 공직에 앉아 있는 사람이 그렇게 말하고 나오면 안 되지 않냐.’ 맨 끝에 꼭 나와요. 그게 묘한 겁니다. 맥이 탁 빠지는 거예요. 기운이 없어요, 쏘는 맛이 없잖아요 다들.”
 
  언론에 대한 그의 토로가 이어졌다.
 
  “옛날엔 잘못된 게 있으면 신문이 들고일어났어요. 자유당 정권이 왜 무너졌어요? 신문들이 합세해서 썼어요. ‘부정선거는 가만둘 수 없다.’ 이래서 자유당 정권이 무너졌습니다. 유신 체제가 왜 무너졌어요? 한국 언론들이 계속 쓴 거예요. ‘이게 무슨 민주주의냐.’ 그때는 언론인들이 이랬어요. ‘우리가 두려운 게 뭐 있어. 감옥? 감옥 갈게. 회사에서 쫓겨나도 좋다.’ 요즘엔 그런 거 없잖아요. 정치를 잘해서 그런 줄 알아요? 언론인들이 이런 식이에요. ‘가만히 있지 떠들어서 뭐해. 그래도 이만큼 돼가는데….’ 그러니까 언론의 자유는 점점 없어지고 나라는 어지러워지는 겁니다.”
 
 
  올바른 교육 부재가 원인
 
2015년 10월 2일 서울 연세대 부근에서 김동길 교수의 미수연이 열렸다. (왼쪽부터) 영화배우 신영균, 방우영 당시 연세대 명예이사장, 김동길 명예교수, 김봉균 반도에어에이전시 고문. 사진=《조선일보》 성형주 기자
  노 교수의 탄식은 계속됐다.
 
  “언론의 자유가 없는 반면에 학생들은 못 일어나요. 제대로 된 교육이 없으니 정의감도 없어요. 잘 먹고 잘사는 걸 좋아하지. 그러니 죄를 지어도 ‘n번방’이니 하는 악질 범죄나 저지르잖아. 사람도 아니에요. 그저 돈 버는 것밖에 관심이 없는 거예요. 이 정권의 사람들도 보세요. 북한과 하나가 되고 ‘우리 민족끼리’ 통일하는 게 어렵다는 걸 점점 알게 됐어요. 그게 확실해지니 다 자기 먹고살 거 걱정이에요. 청와대 있던 사람들 다 선거에 입후보시켜요. ‘떨어져도 공기업 가서 먹고살게 해준다’면서요. 한창 문제가 된 조국이니 하는 사람도요. 펀드니 뭐니 돈 때문에 그런 거예요.”
 
  ― 이렇게 된 원인이 뭘까요.
 
  “교육이 잘못됐어요. 무엇이 옳고 그른지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고 있어요. 전 1928년에 태어났어요. 일본 사람들 밑에서 수모받으면서 학교 다녔어요. 한국 사람은 사람답게 못 살았어요. 그러다 해방을 맞았어요. 요새 그러잖아요. ‘아무개는 토착 왜구다’ ‘아무개 집안은 친일파다’ 어리석은 거예요. 과거를 그렇게 대하는 건 잘못이에요. 이렇게 말해주고 싶어요. ‘당신들 그때 사정 알아? 그때를 살아보지 않았지. 한국 사람들 삶이 어땠는지 알아? 왜 독립운동하고 돌아온 분들 중 단 한 명도 친일파 잡자는 말을 안 했냔 말이야. 이승만, 김구, 조소앙 이런 분들 다 동포를 사랑했지 친일파 누구냐고 찾지 않았단 말이야.’”
 
  그의 얘기는 이어졌다.
 
  “제 형이 저보다 네 살 위예요. 그이가 일본 징병 1기생이었어요. 소집돼서 해방되기 얼마 전에 소만 국경에서 죽었어요. 나는 일제에 희생을 많이 당한 집안 사람이에요. 아무것도 모르는 인간들이 나와서 〈친일파 인명사전〉이니 명단을 만들어서 장한 일이나 한 것처럼, 그 인간들이 조국의 현실을 이렇게 만드는 거예요. 뭐가 뭔지 모르게 만들어놨잖아요.”
 
 
  이승만이 만든 대한민국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에 대한 평가로 그의 말이 옮아갔다.
 
  “대한민국을 이만큼 만든 건 누구냐. 이승만 아니었으면 대한민국 없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배재학당 1회 졸업생입니다. 배재학교 동창생 모임에 초대받아 갔더니, 한마디해 달래요. 이렇게 말했어요. ‘배재학당 나온 사람은 아무 일 안 하고 대한민국에서 편하게 살아도 된다. 1회 졸업생이 대한민국을 세웠다. 공화국을 세운 건 5000년 역사에 처음 아닌가.’”
 
  물 한 모금 입을 축이지도 않고 김 교수는 강의를 계속했다.
 
  “옛날에 말이에요. 보릿고개를 넘길 때쯤 농촌에 가면 얼굴이 누렇게 뜬 사람이 많았어요. 풀뿌리, 나무껍질 먹고 견뎠으니까요. 그걸 이겨내자고 나온 게 박정희(朴正熙) 대통령 같은 사람이에요. 저는 그때 감옥에 갔어요. ‘민주주의가 뭐 이따위야?’ 덤비다가 말이죠. 유신헌법(維新憲法)은 찬성할 자유는 있지만 반대할 자유는 없었어요. ‘반대하는 자는 15년 이하의 징역, 1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고 했어요. 한창 젊을 때니까, ‘아니 그런 법이 어딨느냐. 민주사회라면 찬성할 자유가 있으면 반대할 자유도 있어야 되는 거 아니야’ 학생들한테도, 강연에서도 그런 얘길 했습니다. 그때 대학교수였어요.”
 
  ― 그래서 구속되었나요.
 
  “곧 잡아가더군요. 그때는 박정희 대통령 한마디면 남산(중앙정보부)에서 딱 와요. 보안사령부에 잡혀갔어요. 일주일 조사받았어요. 그래도 동족끼리라 좋은 게 조사하는 사람이 이래요. ‘교수님이 무슨 죄가 있습니까. 저희도 곤란합니다.’ 그러면 저는 ‘그럴 수도 있는 거죠’ 이러면서 동족끼리 위로하면서 살았어요. 그러고는 서대문구치소로 보내졌어요.”
 
 
  유신헌법 비판해 15년형
 
1975년 2월 15일 박정희 대통령의 석방조치로 풀려난 김동길 교수가 안양교도소 앞에서 누님 김옥길 이화여대 총장(가운데)과 함석헌(왼쪽), 계훈제씨 등에 둘러싸여 출감 소감을 말하고 있다. 사진=조선DB
  ― 복역을 하셨나요.
 
  “재판을 받았어요. 1심인데 징역 15년에 자격정지 15년이 선고됐어요. 내가 재판장을 보면서 말했어요.
 
  ‘재판장, 나 항소 포기합니다. 나는 대학교수 하면서 징역 살 만한 나쁜 짓은 안 했다고 생각하는데, 15년을 살라고 하니 어차피 나가도 또 들어올 것 같아요. 아예 15년 살고 나갈게요.’
 
  재판장 얼굴을 보니 얼굴이 하얘졌어요. 교도관까지 찾아와요.
 
  ‘교수님 항소해야 합니다. 15년은 긴 세월입니다. 15년 징역에 항소 포기하는 사람 없어요.’
 
  항소 안 해서 형 확정되고 15년형 살러 안양교도소로 갔어요.”
 
  ― 15년 동안 징역을 사셨나요.
 
  “한 1년 사니까 나가라고 하대요. 항소한 사람은 항소서류 처리 때문에 나보다 하루 늦게 나왔어요.”
 
  ― 박정희 대통령을 별로 안 좋아하시겠네요.
 
  “코로나바이러스 시국에 세계가 한국을 칭찬한다잖아요. 사실이에요. CNN도 한국 칭찬해요. 한국의 의료진 훌륭해요. 우리가 알아야 할게요, 한국만큼 건강보험이 잘 되어 있는 나라가 전 세계에 또 없습니다. 옛날에는 돈 없는 사람은 병들어도 병원에 갈 생각을 못 했어요. 지금은 이 근처 세브란스병원에만 가도 환자가 너무 많아서 발 디딜 틈이 없어요. 건강보험제도가 만들어진 게 박정희 때예요. 얼마 전 세브란스병원에서 세상을 떠난 문태준이라는 이가 그때 보건복지부 장관을 했어요. 그들이 건강보험이란 걸 생각해내고 만들었기 때문에 한국 의료계가 그만큼 전진한 거예요. 이럴 때 국민들이 이런 사실을 알아야 해요.”
 
  결국 박정희 대통령을 원망하진 않는다는 얘기였다.
 
  “박정희가 잘못한 거 많아요. 그렇지만 건강보험 만든 것도, 경제를 이만큼 만든 것도 박정희 정권이에요. 박정희 땜에 감옥에도 살았지만, 한 번도 욕하지 않아요. 다 끝나면 잘한 걸 생각해야지, 그때 이것도 잘못했고 저것도 잘못했고. 그때 말하면 될 거 아니에요? 그때 말 못 했으면 입 다물고 있으란 말이에요. 그때는 한마디도 못 하다가 말이죠. 일제 강점기에 독립투사 하지 왜 가만히 있었어요? ‘누구는 창씨개명했으니 친일파다’, 웃기지 말라 그래요. 창씨개명 안 한 사람이 그때 누가 있었냔 말이에요. 물론 조순 같은 친구는 무슨 배경이 좋은지 안 했어요. 중학교 다닐 때에도 한국 이름 가지고 살았어요. 근데 나머지는 다 했어요. 왜? 상급 학교 진학하는 데 지장이 있다니까. 그런 세상을 살았습니다.”
 
  ― 과거를 트집 잡지 말자는 말씀이시네요.
 
  “얼마나 졸렬한 인간들이야. 과거를 다 받아들이고 서로 용서해야지요. 베트남의 호찌민이 가장 잘한 게 죽으면서 남긴 말이에요. ‘절대로 과거 생각하면 안 돼. 원수 갚으면 안 돼.’ 거기엔 미국이랑 사이좋게 지내라는 의미도 있는 거예요. 머리가 좋으면서 애국하는 사람의 마음속엔 그런 마음이 있는 거예요. 일제 강점기가 언제였는데 지금 ‘일본놈들 죽일 놈들이다’ 해. 그게 제정신으로 할 말이에요?”
 
 
  ‘대동강 변 기적’ 왜 없나?
 
  그는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가 휴전선 이북으로도 퍼져야 한다고 말했다.
 
  “아흔세 살이 될 때까지 내 염원은 조국의 자유민주주의입니다. 우리 선배들이 원했듯 장차 자유민주주의로 남북한이 통일돼야 합니다.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 그전까지 한반도의 유일무이한 합법 정부는 대한민국 하나였어요. 어느 나라 가도 편지를 쓸 때 ‘서울 코리아’면 됐어요. 요새는 ‘서울 사우스 코리아(South Korea)’, 아 자존심 상해요. 남북이 대등해지면 독일처럼 되지 않을까? 남북한은 독일과 달라요. 왜 그런 생각하냔 말이에요.”
 
  ― 대북 친화정책을 편다면서, 어째 통일은 더 멀어진 느낌이 듭니다.
 
  “북 세력은 더 강해졌습니다. 핵무기까지 만들었잖아요. 북한이 핵무기를 완전히 포기한다? 문 대통령이 그런 주장을 했어요. 핵무기를 완전히 포기하지 않는데 북한과 상담할 게 뭐가 있어요? 도와야 한다? 돕긴 뭘 도와요? 개성공단도 열어야겠다? 그게 사대주의적인 사고방식이지, 대등한 겁니까? 김정은이 말이에요. 자기 고모부를 하루에 해치운 사람이에요. 쏴 죽이고 불태웠다면서요. 그런 사람과 민주국가에서 같이 살 수 있습니까? 안 되는 건 안 된다고 해야지요. 어떻게 하자는 거예요. 민족끼리 통일하자? 그 세력하고 같이 살라는 거예요? 굶어 죽고 말지, 어떻게 살아요?”
 
  북한으로 화제가 넘어가니 그의 말투가 격해졌다.
 
  “북한에는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가 한 사람도 없다고요? 뭐 없을 수도 있죠. 나는 본래 북한 사람이니까 알아요. ‘야 저기에 환자 한 명 나오면 죽겠구나. 그냥 생기는 대로 없앨 거다. 환자가 없다고 해야 하니까…’. 그 생리도 모르고 말이죠. 아니, 나는 친북 반대 안 해요. 나같이 북한에서 온 사람은 북과 잘 지내는 게 좋은 거 아닙니까? 도와줄 수 있으면 도와주고. 그런데 이 정부는 대한민국을 망치겠단 겁니까?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입니다. 한강 변의 기적은 일어나는데 왜 대동강 변의 기적은 안 일어납니까? 자유가 없으니 그런 거 아니에요, 자유가.”
 
 
  北, 中에 사대주의
 
  ― 교육 현장에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제기가 있지요.
 
  “지금 전국 교육감 17명 중 14명이 전교조 출신이에요. 내가 전교조 자체를 나무라는 게 아니에요. 그들이 어떤 다른 의도를 가지고 초・중・고 학생들을 가르쳐온 거 아니냐 그 말이에요. 내가 아는 어떤 이가 손자랑 나눈 대화예요. 장관도 지낸 이예요.
 
  ‘할아버지, 이승만은 나쁜 사람이라면서요?’
 
  ‘너 어디서 그따위 소릴 들었어?’
 
  ‘담임 선생님이 그랬어요.’
 
  그럼 대한민국은 정통성이 없고 김일성의 인민공화국만 정통성이 있단 말이에요?”
 
  그가 경험한 북한엔 정통성, 정당성이라곤 없었다.
 
  “난 그때 김일성을 봤어요. 30대, 아주 젊었죠. 평양역 앞 광장에서 연설하는 것도 들었어요. 허위 날조된 인간이에요. 소련군이 만들어 내세운 사람이 김일성이에요.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고, 자유민주주의가 어떤 사상이고 그건 안 가르쳐요. 아이들이 어떤 걸 배우고 있는지 모르고, 그저 과외라도 시켜서 좋은 학교에만 들어가면 된다는 거예요. 전교조 교사들은 이념이 편향되어 있어요. 진보를 표방하며 말이죠. 아니 진보가 뭡니까. 의회정치가 자리 잡아서 정당정치가 기능해야 진보가 있고 보수가 있는 거예요.”
 
  ― 소위 진보 세력은 입버릇처럼 ‘재벌 해체’를 외치지요.
 
  “처음엔 그런 말도 했어요. ‘삼성을 해체해야 한다.’ 이 사람들이 뭐가 단단히 잘못된 사람들인가, 싶었어요. 자유민주주의 헌법하에서 대통령이 돼서 말이에요. 엉뚱한 정책을 만들어요. 삼성 해체는 이젠 어려우니까 안 하죠. ‘북과 남이 다 형제 아니냐?’ 그 말에 반대하는 거 아니에요. 나도 북에서 왔으니까. 그렇지만 말이에요. 북의 체제를 전혀 비판 못 하잖아요. 김정은은 문재인 대통령을 맹공격해도 이쪽에선 한마디도 못 해. 중국에 대해서도 말 못 해요. 그쪽에선 뭘 달래면 줘야 되고. 사대주의(事大主義)지 뭡니까. 끽소리도 못 하고 말이야.”
 
 
  광화문 집회에서 본 희망
 
2012년 6월 30일 서울 광화문에서 이북도민회 중앙연합회가 주최한 ‘종북척결을 위한 안보결의대회’에서 김동길 교수가 연설하고 있다. 사진=《조선일보》 허영한 기자
  ― 한국에서는 왜 의회민주주의가 정착이 안 될까요.
 
  “민중이 그만한 수준이 못 돼서 그렇습니다. 요전에 광화문 집회에 나와서 강연해달라고 해서 몇 번 나갔어요. 거기에서 처음 느꼈어요. 아, 역사의 발전과정에서 한국에도 이만큼 중산층이 생겼구나. 그 사람들이 왜 중산층인가 하면, 대개 대학 나온 사람들이 많아요. 그리고 먹을 게 있어요. 그 사람들은 경제가 2년은 나빠도 먹고살아요. 가난하지만 먹고살 수는 있단 얘기예요. 또 시위가 끝나면 청소하고 가요. 집안 살림하듯이 깨끗하게 해놓고 가요. 그 사람들 보면서 생각했어요. ‘아, 정치도 이제 마음대로 못 하겠구나’.”
 
  ― 광화문 집회에서 희망을 보셨네요.
 
  “민주주의는 그걸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의회정치를 못 한 건 의회정치를 지지할 민중이 없었기 때문이에요. 이제 중산층이 저만큼 생겼으니 의회민주주의를 하는 날이 옵니다. 이번 총선 후 의회민주주의가 자리를 잡을 겁니다. 아마 어쩌면 그런 시련 가운데서 하는 마지막 선거일 겁니다. 대통령 선거도 앞으로 달라질 겁니다. 북한은 절대 남한을 침략하지 못합니다. 핵무기 쏴대고 전쟁 내기엔 지금 세계 지도자들에게 주어진 과제가 너무 커요.”
 
  ― 코로나 사태를 말씀하시나요.
 
  “코로나 시국이 특히 독재 성향이 있는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어요. 아주 체면 없이 됐잖아요. 이게 자기네 마음대로 안 되거든. 요즘 트럼프 얼굴이 말도 못 해요. 사색이에요. 오늘 미국이 굉장히 시련을 겪고 있어요. 코로나바이러스에 아무 준비를 못 했어요. 그러나 미국이 지금 저렇게 흔들리는 거 같지만 거기에 중산층이 살아 있기 때문에 제자리로 갈 겁니다. 만약 지금 트럼프가 하듯이 앞으로도 미국이 흘러간다면 미국은 세계를 못 끌고 나갑니다.”
 
 
  “황교안은 좀 독한 사람”
 
  김동길TV 100회 특집엔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가 출연했다. 황 대표에 대한 평가가 궁금했다.
 
  ― 황교안 대표는 만나보시니 어떤 사람입니까.
 
  “그이? 좀 독한 사람이지. 보기와는 달라요. 순하고 어수룩하고 뭘 모르는 사람으로 다들 알지만 그런 사람 아니에요. 무서운 사람이에요. 자기의 원칙을 위해서 목숨 버릴 결심을 하고 사는 사람이에요. 정치는 못 하고 있죠. 곧이곧대로 하니까. 정직한 사람은 정치 못 해요. 아니, 공천 주는 걸 직접 하지 왜 남을 시켜서 그 난리입니까.”
 
  ― 젊은 시절에 함석헌 선생 밑에서 공부하셨지요. 《뜻으로 본 한국역사》를 보면 함 선생은 조선 민족의 역사를 ‘고난의 여왕’으로 표현하셨습니다. 우리는 지금도 고난의 시기를 통과하고 있습니까.
 
  “아직도 고난의 시기예요. 제정신을 못 차렸으니까요. 한반도는 자유민주주의로 통일이 돼야 해요. 그게 한반도의 숙제예요. 왜 한반도의 허리에 비무장지대가 있을까요. 북으로 2km, 남으로 2km, 4km 폭이에요. 4km면 10리예요. 10리 길이 동서로 350km, 평수로 계산하면 2억7000만 평 공간이에요. 그곳에 유엔본부며 부속 기관들 모두 옮겨오라고 요청하는 거예요.”
 
  ― 비무장지대에 유엔본부를 유치하자는 말씀인가요.
 
  “문명한 나라의 허리에 70년간 자연 상태로 내버려둔 땅이 어느 나라에 있습니까. 전 세계에서 환경보호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다 비무장지대에 들어가보고 싶어 해요. 유료 사파리를 만들어 유엔 운영비로 쓸 수도 있지요. 함석헌 선생 제자로서 함 선생의 뜻을 대변하는 거예요. 이 나라는 고난을 겪어왔어요. 남을 침략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어요. 그저 늘 당하며 여기까지 왔어요. 유엔본부가 한반도로 오면, 평화를 통해 이 민족이 장차 새로운 여왕이 될 수 있어요.”
 
 
  “DMZ에 유엔 유치해야”
 
  함석헌 선생을 말하며 김 교수의 얼굴이 아주 환해졌다. 평화・화해, 그가 정말 입에 올리고 싶었던 건 그런 단어들이 아니었을까. 누가 무슨 잘못을 했느니 하는 얘기가 아니라. 젊은 시절 그가 품었던 꿈, 읽은 책들이 궁금했다.
 
  ― 그 시절엔 어떤 책을 주로 읽으셨나요.
 
  “이북에서 중·고등학교를 마치고 해방되면서 내려왔단 말이야. 연희대학에 들어갔어요. 그때 좋은 교수가 많았어요. 처음엔 영문과를 갔어요. 지금 암송하는 영시가 다 그때 왼 시예요. 6·25사변이 났으니 공부를 제대로 못 했잖아요. 일제 때는 식민지 시기라 공부 제대로 못 하고. 그러니 공부 지식은 별로 없는 거지. 지금도 생각나는 책은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
 
  ― 문학을 읽으셨네요.
 
  “심취했지. 그러다 함석헌 선생을 만났어요. 신앙의 눈을 뜨게 해주셨어요. ‘편협한 크리스천이어선 안 된다, 넓게 받아들이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 시절엔 영어를 배우고, 기독교적 지식을 늘리고 토대를 닦는 데 관심이 있었어요. 기독교라는 게 도덕 없인 아무것도 아니에요. 함 선생님이 또 역사 공부를 했어요. 백낙준 박사님이 내 후원자였는데 서양사를 공부했거든. 나도 역사를 공부하자 마음먹고 그때부턴 미국 가서 역사공부를 했어요. 그렇게 역사가 내게 굉장히 중요한 과제가 된 거예요. 일제 강점기 때 배운 일본 시도 다 기억해. 어떤 사람이 나보고 ‘아, 석학이십니다’ 그러기에 말했지. ‘석학이 다 죽었나요?’ 앉은 자리에서 영시나 일본 시를 외니까 좀 묘한 노인 같지, 내가 아는 게 뭐가 있어. 아무것도 아니에요.”
 
 
  영원이 없으면 生은 허무
 
서재 한쪽에는 김 교수가 永遠으로 돌아가면 가장 먼저 만나고 싶다는 모친의 사진이 걸려 있다.
  ― 교수님은 정신이 참 젊으시네요.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이런 말이 나와요. ‘제때에 죽어라(Die at the right time).’ 그게 마음대로 안 돼요. 각오는 되어 있지. 늘 농담처럼 하는 말이 있어요. ‘나는 말 타고 가다 죽지 누워서 앓다 죽진 않는다.’ 노병은 죽지 않는다, 사라질 뿐. 나도 이제 사라지겠지. 그때까진 내가 할 일을 할 거예요.”
 
  ― 영원(永遠)을 믿으세요?
 
  “생명에 영원함이 없다면 인간처럼 허무한 게 없어요.”
 
  김 교수는 갑자기 시를 외기 시작했다. 토머스 칼라일(Thomas Carlyle)의 시 ‘오늘(Today)’이다.
 
  “보라 푸르른 새날이 밝아오나니/ 그대 생각하여라/ 이 하루를 헛되이 보낼 것인가/ 영원에서부터/ 이 새날은 태어나서/ 영원 속으로 밤이 되면 다시 돌아가리니/ 아무도 미리 보지 못한/ 이 새날은/ 너무나 빠르게/ 모든 이의 시야에서 영원히 사라지나니/ 보라 푸르른 새날이 밝아오누나/ 그대 생각하여라/ 이 하루를 헛되이 보낼 것인가.”
 
  다시 강의가 이어졌다.
 
  “빅뱅이론에선 대략 잡아 50억 년 전에 꽝 하는 소리가 나고 태양계가 형성됐다잖아요. 알 게 뭐야, 50억 년 전인지. 그전엔 시간이 없었나? 몰라요. 이제부터 50억 년 지나면 시간이 끝날까? 몰라요. 은하수에 별이 수도 없이 많다지 않아? 그런데 이 우주에 우리 은하 같은 게 또 수천억 개가 있다는 거예요. 시공간이 무궁무진해. 윤복준, 박태준씨가 작사, 작곡한 ‘기러기’라는 동요가 있어요.
 
  ‘울 밑에 귀뚜라미 우는 달밤에 길 잃은 기러기 날아갑니다. 가도 가도 끝없는 넓은 하늘로 엄마, 엄마 부르며 날아갑니다.’
 
  가도 가도 끝없는 공간을 이해할 수 있을까. 어떻게 알겠어요. 최소한 겸손한 사람이 좋아요.”
 
  ― 영원으로 돌아가면 가장 먼저 누굴 만나고 싶으세요.
 
  “간단하지, 어머니.”
 
  김 교수에게 손을 흔들고 그의 작은 성채(城砦)를 나섰다. 구면(舊面)의 백목련이 아까보다 더 환한 기색으로 배웅해주었다. 김 교수의 모친 같기도, 나의 어머니 같기도 한 꽃들 위로 석양(夕陽)이 내렸다.⊙
 
김동길 교수가 권하는 책 9
 
  1. 《뜻으로 보는 한국역사》, 함석헌
  2. 《월든》, 헨리 데이비드 소로
  3. 《크로이체르 소나타》, 레프 톨스토이
  4. 《제인에어》, 샬럿 브론테
  5. 《죄와 벌》, 도스토옙스키
  6. 《자유론》, 존 스튜어트 밀
  7. 《역사란 무엇인가》, E.H. 카
  8. 《세계사》, 레오폴트 폰 랑케
  9. 《잠 못 이루는 밤을 위하여》, 칼 힐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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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세환    (2020-05-05) 찬성 : 8   반대 : 3
정은이는 독재자라 젊은 나이지만 죽기를 바라고, 교수님은 오래오래 사시기를 비옵니다.
  현금성    (2020-05-05) 찬성 : 5   반대 : 2
대한민국 큰 어른으로서 돌아가시기전에 반드시 한국인의 정신과 얼, 정통성을 바로세우도록 분명한 깨우침을 주시기 바랍니다.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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