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연의 품격

배우 송영창

“무대는 투쟁의 대상. 즐겨 본 적이 없다”

  •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kimch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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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8년 개띠 … 그악스럽고 불의에 침묵하는 악역에 출연
⊙ 1987년 연극 〈신더스〉로 백상예술대상 신인상 수상 … 올해로 연기 30년째
⊙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유일하게 에스트라공·블라디미르 모두 연기
⊙ “주연과 조연은 편의상 나누는 언어. 연기자가 있을 뿐”
영화 〈아저씨〉(2010)에서 송영창.
“중국 아들(아이들) 1억6000만명이 대마하고, 2600만이 매산베타딘, 1100만이 헤로인한다. 노다지다 말이다. 유엔(UN)이 그래 말해.
 
  3일이다. 중국 아들 잡아 둘 수 있는 게 3일이야. 그 사이에 샘플로 들여온 헤로인 못 찾으먼 동생노무 싸잡아가 인체 신비전에 보냈뿐다. 너거들 사람고기 장사하니까 그기 무슨 말인지 잘 알제? 삼청교육대 다시 세워가 싹 다 처넣어야 나라가 산다.”
 
  이 대사는, 배우 원빈의 어두운 누아르 영화 〈아저씨〉(2010년작)에서 오명규 사장의 섬뜩한 말이다. 오 사장이 바로 배우 송영창(宋永彰·60). 그는 경남 진해 출생이다. 해군 장성인 아버지(故 宋旺鎬, 해사 3기)를 따라 어린 시절을 경상도에서 보냈다.
 
  〈아저씨〉에는 이런 대사도 나온다. 만석(김희원 扮)이 오 사장에게 소리 지르며 “58년 개띠 오명규 사장님, 내가 한마디 할게. 판검사 똥구녕 핥아 봐야 스무 바퀴야. 알아들어? 이 58년 개띠야.” 스무 바퀴는 ‘징역 20년’을 의미한다. 그런데 오 사장인 송영창의 실제 나이가 58년생이다.
 
  우리 사회에서 58년 개띠들이 썰물처럼 밀려나고 있지만 배우 송영창은 여전히 메이저급 영화에 단골 조연이다. 대개 불같이 화를 내거나 그악스럽고 불의에 침묵하는 배역이 많다. 하지만 기자가 들어 본 그의 음성은 부드럽고 눈매는 서글서글하다. 악역과 정반대다. 그래서 더 섬뜩하게 느껴지는지 모른다.
 
  그는 카메라(무대) 앞에 서면 가면을 쓴 것처럼 홱 돌변한다. 어쩌면 연극(영화) 미학에서의 ‘가면’은 연기의 본질과 닿아 있는지 모른다. 배우는 마음에 없는 말을 해도 얼굴색이 안 변한다. 극중 배역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어렵게 배우 송영창과 연락이 닿았다. 시간 잡기가 어려웠는데 어찌어찌해서 간신히 대화를 주고받았다. 영화 〈아저씨〉의 오 사장이 58년 개띠인 이유를 묻자 “내가 58년생이라서 일부러 넣은 대사가 아니다”며 껄껄 웃었다.
 
  배우 배종옥이 작년 11월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대학시절(중앙대 연극영화과) 연기를 못해 “‘국어책은 집에서 읽으라’는 꾸중을 곧잘 들었다”며 이런 말을 했다.
 
  “우리 과에 끼 많은 친구가 많아 장기자랑하면 너무 웃겨서 떼굴떼굴 굴렀다. 그 속에서 주눅 들어 살았지. 당시 조교가 송영창 오빠인데, 나중에 고백하기를 ‘대학 때 널 보면 저게 나중에 뭘 할까 한심했다’고 하더라.”
 
  배종옥의 인터뷰를 전하니 그 역시 웃었다. 그때 송영창이 배종옥을 가르친 것처럼 지금은 배종옥이 후배들에게 연기수업을 하고 있다.
 
  “강의할 때 싹수가 있다고 생각한 후배 중에 연기자가 된 경우가, … 적어요. 거참 …. 하정우·김강우도 내 수업을 들었고, 그때 배종옥이도 있었고 김희애·전인화·박중훈·변우민이 학생 시절이었어요. 손현주·변우민이도 제가 조교할 때 학생이었죠.”
 
  — 그분들 지금은 톱스타들인데 연영과 시절엔 어땠나요.
 
  “(성공할지) 전혀 몰랐어요. 배종옥이나 손현주도 학교 다닐 땐 (연기를 잘할지) 몰랐는데 연기자가 된 경우예요, 하하. 특이한 친구라면 박중훈? 그 친구는 말론 브란도 흉내를 기가 막히게 했어요.”
 
 
  성공한 배우의 성격은 내향적·외향적?
 
송영창은 영화 〈변호인〉(2013)에 ‘이석주 판사’로 출연했다.
  송영창은 배우와 병행하며 1987년부터 2000년까지 대학에서 연기를 가르쳤다. 사실, 힘들고 가난한 연극을 평생 붙들기 위해선 웬만한 성격이어선 곤란하다. 감정을 쏟아내기 위해, 혹은 절제하기 위해 혹독한 수련을 거쳐야 한다. 거멀못 같은 뚝심과 고집은 필수다.
 
  그는 “가정환경이 중요하다”고 했다.
 
  “자라 온 환경이 성격을 만드니까요. 감정표현의 직업인이 배우잖아요. 그런데 우리가 가정·학교에서 감정을 숨겨야, 참아야 한다고 배웠거든요. 도덕·윤리가 그래요. ‘존경받는 인물’이란 감정을 절제한 이들이 대부분인데, 배우는 감정을 발산해야 하니까 힘든 거죠. ‘감정기술’을 익히는 게 정말 어렵습니다.”
 
  지나가는 말로 “가정사가 복잡한 배우들이 연기를 잘하겠네요”라고 하자 그는 의외로 맞장구쳤다.
 
  “평범한 가정에서 유복하게 자란 이들이 배우 되기가 가장 어려워요. 때론 종교도 연기에 걸림돌이죠. 결손가정이나 다툼이 잦은 가정에서 자란 배우 중에 성공한 이가 많아요. 감정기복이 심하고 욕도 잘하고 싸우기도 잘하는 분들이 관객 마음을 잘 흔들죠. 제가 연극 〈신더스〉에 출연할 때, 화를 내기가 얼마나 어려웠는지 몰라요. 살면서 화낼 일이 거의 없었으니까요.”
 
  그는 1987년 연극 〈숲속의 방〉으로 데뷔, 같은 해 〈신더스〉로 백상예술대상 연극 신인상을, 1989년엔 〈실비명〉으로 서울연극제 신인상을 탔다. 남들보다 빨리 주목받았다.
 
  “화를 내는 신(scene)이 〈신더스〉에 많았는데, 극중 화를 내는 연기가 어색하게 느껴졌어요. 하상길 선배도 저더러 어색하다고 자주 말씀하셨어요. 공연 들어가기 직전까지 그게 가장 큰 딜레마였어요. 그래서 진짜 화를 많이 내려고 연습했던 기억이 나요.”
 
  — 실제 성격은 어떤가요.
 
  “뭐 … 외향적이라기보다 내성적인 면이 많죠. 조교할 때 학생들이 절 무서워했어요. ‘학교생활 어려우면 찾아오라’고 했는데 한 명도 안 왔어요. 그때 175cm에 몸무게가 56kg 나갈 때였어요. 날카롭고 차갑게 느껴졌나 봐요.”
 
  — 지금은요.
 
  “80kg쯤 돼요. 아무래도 무대에 서려면 에너지가 있어야 하니까요. 투수가 빠른 공을 던지기 위해 체중을 늘리는 것과 똑같아요.”
 
  — 성공한 배우들 성격은 어떤가요.
 
  “외향적일 것 같은데 꼭 그렇지 않아요. 내성적인 분들이 훨씬 표현을 잘할 때가 많아요. 외형적인 이들이 오히려 어설프게 연기하는 경우가 많고요. 이런 말 있잖아요. 개그맨들이 집에선 안 웃긴대요.
 
  영화 〈반칙왕〉(2000)에 출연할 때 송강호씨를 처음 알았는데 그땐 유명한 배우가 아니었어요. 극중 그는 어눌하고 소심한 은행원, 저는 매일 그를 괴롭히는 은행 부지점장이었죠. 영화가 끝날 때까지 친해지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말수가 없어서일 겁니다. 그는 현장에서 참 조용한 성격이었고 연기할 때만 활기찬 모습이었어요.”
 
 
  에스트라공·블라디미르를 모두 경험한 유일한 〈고도〉 출신
 
1999년 8월 연극 〈가시밭의 한송이〉 연습장.
연출자 이윤택(왼쪽)이 윤석화, 송영창에게 연기의 미세한 디테일까지를 주문한다.
  서울 서교동 산울림 소극장의 사뮈엘 베케트 작, 임영웅 연출 〈고도를 기다리며〉가 떠오른다. 1969년 국내 초연 이후 45년간 1300회 넘게 〈고도〉를 무대에 올렸다. 임영웅 하면 〈고도〉, 〈고도〉 하면 산울림이 머릿속에 박혀 있다.
 
  반세기를 거치며 블라디미르 역에 정동환·송영창·한명구, 에스트라공 역에 박용수·안석환·박상종 등이 한 시대를 풍미했다. 그런데 두 역을 모두 경험한 유일한 이가 송영창이다. 에스트라공이 섬세하고 아이 같다면 블라디미르는 스케일이 크고 지적이다. 둘 다를 모두 지녔다는 의미일까.
 
  원래 임영웅의 캐스팅엔 겁이 없다. 그래서 주변에 적이 많다. 좋은 배우와 그렇지 못한 배우를 확연히 판별해 배역을 정하기 때문이다.
 
2008년 11월 연극 〈웃음의 대학〉에 함께 출연한 황정민(오른쪽)과 송영창.
  “제가 에스트라공 역을 맡았을 때 정동환 선배가 블라디미르 역을 했어요. 에스트라공을 연기할 때 제 몸무게가 62kg쯤 됐어요. 왜소한 편이었죠. 이후 살이 많이 쪘어요. 어느 날 연출가 임영웅 선생이 ‘넌 살이 쪄서 안 되겠다’셨어요. 그래서 블라디미르 역으로 옮겨갔고 제 대신 안석환이 에스트라공 역을 하게 됐죠. 순전히 살쪘다는 이유로 …(웃음).”
 
  여기서 잠깐. 블라디미르의 속사포 같은 대사를 음미해 보자.
 
  〈… 우리가 팔짱을 낀 채 옳으니 그르니만 따지고 있다고 해서 우리더러 인간이 아니라고 감히 말할 순 없겠지. 생각해 봐. 호랑이는 제 족속들을 도우려고 적에게 달려들거나 아니면 아예 쥐도 새도 모르게 굴속에 처박혀 있거든.
 
  자, 이제 문젠 호랑이가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이냐 이 말이야. 한데 다행스럽게도 우린 그 해답을 알고 있거든. 안 그래? 이 엄청난 혼란 속에서도 그건 분명하단 말야. 바로, 고도를 기다리는 거지. …〉
 
  — 두 배역 중 어느 쪽이 자연스러우세요.
 
  “글쎄요, 블라디미르를 연기할 때는 블라디미르가 주인공인 것 같고, 에스트라공을 하면 주인공이 에스트라공이라 생각했어요. 곰곰이 생각해 보면 〈고도〉의 주인공은 블라디미르더라고요. 중요한 대사는 다 해요.”
 
1997년 5월 말의 눈으로 인간세상을 그린 러시아식 악극 〈홀스또메르〉 공연모습. 왼쪽 앞부터 송영창, 정규수, 유인촌, 방은진.
  베케트의 〈고도〉는 기다림의 상징이다. 이 기다림을 통해 인간 존재의 부조리함을 되짚는다. 임영웅의 〈고도〉는 베케트의 고향인 아일랜드에서 호평을 받았다. 3시간이나 되는 지루한 부조리극을 전통 연희처럼 해학과 풍자를 담았기 때문이다.
 
  “두 배역 모두 일장일단이 있는데 당시만 해도 〈고도〉가 지루한 작품으로 소문이 났었어요. 그런데 대사 속도를 두 배 빠르기로 했더니 잘 먹혔어요. 관객들이 엄청 즐거워했어요.”
 
  대사가 빨라지면서 공연 시간이 20~30분씩 짧아졌고, 시작한 지 20분쯤 뒤에야 웃던 관객도 처음부터 반응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고도〉를 들고 베케트의 고향인 아일랜드에 갔어요. 호평을 받을지 모르고 간 거죠. 그곳 유력지 《아일리시 인디펜던트》가 대서특필했는데, ‘한국의 고도는 기다릴 만한 가치가 있었다’고 했어요. 같은 기간 아일랜드를 찾은 아버지 부시 대통령보다 기사 비중이 훨씬 컸대요.”
 
 
  ‘이 사람 아니면 이 역은 절대 안 된다’
 
김혜수와 함께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 〈첫사랑〉(1993).
  한때 그는 주인공을 도맡아 연기했다. 이명세 감독의 영화 〈첫사랑〉(1993년작)에서 김혜수의 상대 역으로 지저분하고 골초에 술꾼인 대학 연극반의 초빙 연출자 ‘강창욱’으로 분(扮)했었다. 이 영화는 평론가들 사이에 한국영화론 드물게 10점 만점에 10점을 받은 ‘초절정 순수영화’다.
 
  하지만 나이는 속일 수 없다. 마흔이 넘자 주연 대신 조연 섭외가 주로 들어왔다. 2000년 불미스런 일로 한때 대중 곁을 떠난 일도 있다. 물론 대학로 연극판에서는 지금도 주연으로 객석에 오른다. 2014년 9월 이순재, 고두심과 함께 연극 〈사랑별곡〉의 주인공으로 캐스팅됐었다.
 
  “꼭 주인공만 하라는 법이 없어요. 나이가 들면 주인공에서 조연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는 게 배우의 숙명이죠. 마치 늙고 병든 수사자가 무리에서 쫓겨나 하이에나의 밥이 되는 것과 같아요. 안성기 선배도 처음 조연(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을 맡았을 때 고민을 많이 하셨다고 해요. 한진희·박근형 선배도 젊었을 땐 다 주연이었지만 지금은 조연입니다.”
 
2014년작 연극 〈사랑별곡〉 포스터. 이순재 고두심과 함께 출연한 송영창.
  — 하지만 조연과 주연, 출연료 차이가 엄청나잖아요.
 
  “작품 속 역할과 의미가 다르니 어쩔 수 없어요. 2인극이면 모르지만 조연이 해야 할 역이 따로 있고 주인공 역이 따로 있어요. 때론 주인공이 빛을 못 보고 조연이 빛을 발하는 경우도 많아요. 영화 〈디어헌터〉(1978)에서 로버트 드 니로가 주인공이지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은 못 탔고, 조연인 크리스토퍼 월켄이 남우조연상을 탔거든요. 드 니로의 연기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월켄이 훨씬 연기를 잘했던 거죠. 아카데미상 수상자를 봐도 한 작품에서 주연·조연상을 모두 가져가는 경우는 드물어요. 배우 황정민은 얼마 전 출연한 영화 〈아수라〉에서 조연을 했어요. 다른 영화에선 죄다 주연이었는데 말이죠.
 
  숀 펜, 미키 루크, 더스틴 호프만, 제레미 아이언스, 브루스 윌리스 같은 스타들도 한땐 주인공만 했는데 요즘엔 조연이나 단역으로 나오거든요. 저도 젊었을 땐 주인공을 주로 맡았는데 마흔을 넘기니 점점 조연 역이 많아졌어요. 처음엔 ‘이제 나도 밀리는 건가?’ 하고 불안감이 밀려왔죠. 하하.
 
  하지만 지금은 배우 수명이 늘어났어요. 5년 전 돌아가신 장민호(1924~2012) 선생 같은 분이 큰 희망입니다. 돌아가실 때까지 무대에 섰으니까요. 배우 최민식만 해도 쉰여섯이고, 송강호는 쉰둘 … 옛날엔 상상도 못할 일이죠. 마흔이 넘으면 연기를 접는 경우가 허다했고 신성일 선배 같은 분들이나 40대에 주인공을 하다가 연기를 접었었죠.
 
  그런데 조연으로 밀리더라도 ‘이 사람 아니면 이 역은 절대 안 된다’는 이미지가 중요해요. 그게 배우의 존재 의미거든요. 주연이든, 조연이든, 단역이든 ….”
 
 
  “선한 역이든, 악역이든, 어리석은 역이든 관계없어”
 
2009년 1월 5일 오후 서울 대학로 〈연극열전2〉에서 배우상을 수상했다.
  배우는 아주 가끔, 자신의 습성과 닮은 캐릭터를 맡을 때가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역에 충실하다고 장담할 수 없다. 연출가 오순택은 “배우는 캐릭터와 배우 자신이 닮았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부터 배우 자신과 캐릭터는 멀어지고 결국 결별하게 된다”고 강조한다. 배우는 가면을 쓰게 마련이다. 가면(배역) 속에 온갖 본능과 욕망을 분출한다. 그 순간은 해방의 시간이다. 배우·관객이 함께 해방을 만끽한다.
 
  “세상이 다 선한 사람만 있으면 재미없겠지요.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고요. 화낼 일 없는데 화내는 것, 죄지을 일 없는데 죄지어 보는 것, 다른 사람이 되어 보는 것, 그게 연기자의 가장 큰 매력인 것 같습니다. 단지 연기이기 때문에 모든 게 용서되고 절대 해선 안 되는 것도 해 볼 수 있는 게 연기자일 거예요. 그래서 다양한 삶을 경험해 볼 수 있어 좋아요. 선한 역이든, 악역이든, 어리석은 역이든 관계없이요.”
 
  많은 배우가 캐릭터에 자신을 맞추려 하거나 자신에게 캐릭터를 맞추려 안간힘을 쓴다. 그 과정에서 자기분열에 빠지기도 한다.
 
  “보통 두 가지 부류의 연기자가 있는데, 하나는 작품보다 자신을 더 사랑하는 연기자, 다른 하나는 자신보다 작품 속 인물을 더 중요시하는 연기자가 있어요. 자기를 사랑하는 연기자는 작품보다 자기를 드러내기 위해 모든 역을 자기 자신에게 맞추고, 상대 배우들은 정말 힘들어지죠. 그런 배우 중에 톱스타가 된 이도 있지만 작품이 좋을 수 없어요.
 
  또 다른 연기자는 자기를 배역에 맞추기 위해 노력하고 연출가가 ‘왜 이 인물을 창조했을까’를 끊임없이 분석하고, 그 역에 자신을 맞추려 합니다. 상대 배우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낮추기도 하고요. 저는 후자(後者) 쪽이 진정한 배우라 생각해요.”
 
  — 젊어서 좋아하는 배우가 나이가 들면서 바뀌나요. 어떤 배우를 좋아하세요.
 
  “아뇨. 한번 좋아한 배우는 끝까지 좋아해요. 젊었을 땐 우리 배우보다 외국 배우를 보면서 느끼는 게 많았는데, 요즘은 후배들을 보면서 ‘연기 잘한다’고 느낄 때가 많습니다.”
 
  — 예를 들면 ….
 
  “제가 영화 〈해빙〉(2017)에 조진웅과 같이 출연했는데 연기 잘한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어요. 손현주·송강호·김윤석·유해진·손호준 이런 후배들을 보면서 ‘이 자식들, 연기 정말 잘하네 …’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옛날엔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보며 ‘별로’라고 생각했는데 요즘 와서 〈용서받지 못한 자〉 〈매디슨카운티의 다리〉를 보고 생각이 고쳐졌어요. 숀 코너리도 과거 007시리즈에 출연할 때는 ‘이게 뭐야’ 했는데 요즘 다시 보면서 바뀌었죠. 과거에 못 느꼈던 연기 깊이가 이제 보이는 것 같기도 해요.”
 
  올해로 연기 30년째인 송영창은 철저하게 사실적인 연기를 하는 배우다. 대본을 받아 들면 인물의 속내에서 작은 동작까지 계산해서 표현한다. 말투도 문어체적인 단어를 옮기는 것이 아닌 일상어 그대로다. 그래서 악역에서 어색함이 없이 섬뜩하게 느껴진다. 여러 감독들이 그를 캐스팅하는 이유도 ‘믿고 맡길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 〈깡철이〉(2013)에서 보듯 사실적 연기는 점점 완숙미를 더해 가지만 달라진 것이 딱 하나 있다. 연극에선 여전히 주연급이지만 영화에선 조연에 캐스팅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는 “어느 누구도 영원히 주인공일 수 없다”며 이렇게 말했다.
 
  “주인공만 하던 배우가 언젠가 조연할 생각을 해야 하는 게 무대고 배우의 인생입니다. 평생 한 번도 주인공을 못한 조연배우도 있겠지만 그것도 소중한 연기자의 삶이라 생각해요. 주연과 조연은 편의상 나누는 언어 같아요. 연기자가 있을 뿐이죠.”⊙
 
좋은 배우란?
 
  즐기는 배우 vs. 노력하는 배우
 

  배우 송영창은 ‘좋은 배우’를 이렇게 설명한다.
 
  “연극판에선 열심히 하는 배우보다 즐기는 배우가 더 무섭다고들 한다. 노력에 의해 만들어진 배우가 있는가 하면, 타고난 배우가 있다. 나는 노력하는 타입이다. 남들보다 무대 연습을 먼저 하고,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사건 심지어 배경음악까지 빠짐없이 찾아 읽고 듣고 확인해야 연기에 느낌을 실을 수 있다. 공연 3시간 전에 와서 대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외워 본다. 짧게는 1주일, 길게는 한 달 이상의 공연기간 동안 대본에서 손을 안 뗀다.
 
  3년 전 이순재 선배랑 연극 〈사랑별곡〉을 같이 했는데 그분은 무대에서 즐기는 스타일이다. 전혀 긴장하지 않고 그렇다고 엄청나게 에너지를 쓰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이순재 선배가 오래 연기하는 비결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호재 선배도 즐기는 타입이다.
 
  하지만 저나 윤석화 선배는 반대다. 엄청 긴장한다. 솔직히 무대에서 한 번도 즐겨 본 적이 없다. 무대는 나에게 투쟁의 대상이다. 객석에선 못 느낄 테지만 동료들은 내가 얼마나 투쟁하는지 다 안다.
 
  많은 배우가 대사를 어떻게 외우는지 궁금해한다. 나도 많은 사람에게 물어봤는데 정답이 없다. ‘그냥 외워질 때까지 외운다’다. 기억력 좋은 사람은 빨리 외우고, 기억력 안 좋은 사람은 좀 늦게 외우는 차이다. 특별한 방법은 아직까지 들어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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