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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 분석

분노에까지 이른 ‘司法불신’은 왜?

‘판사, 니들이 뭔데?’에서 ‘법복 입은 악마’까지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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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원의 오류주의, 엘리트주의는 잘 포장해서 박물관으로 보내야”(김인회)
⊙ 재벌 피고인의 집행유예율, 1심과 2심을 모두 합치면 72% 수준
⊙ 현실과 유리된 판결… 배심원 전원의 무죄평결에도 법관은 유죄판결
⊙ 판단력 좋고 두뇌 회전이 빠르다고 도덕적인 문제까지 완벽할 수 없어
1월 10일 오후 서울중앙지검에 설치된 양성태 전 대법원장의 포토라인.
  대한민국 사법부가 갈림길에 섰다. 법관은 사법개혁의 주체가 아니라 대상이 되었다. 법조의 세 수레바퀴(판사·검사·변호사) 중에 마지막 남은 사법부마저 흔들리고 있다. 법원을 두고 더는 무결점·무오류 조직이라 보는 이는 없다.
 
  작년 11월 27일 재판 결과에 불만을 품은 한 70대 남성이 김명수 대법원장이 탄 차량에 화염병을 던졌다. 지난 2007년부터 유기축산물 친환경 인증 사료를 제조, 판매해 온 이 남성은 2013년 친환경 인증을 받지 못하자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으나 패소하자 범행을 저질렀다. 법원을 회칠한 무덤이라 생각했을까. 그는 사법개혁을 하겠다는 사법부 수장에게 화염병을 던졌다.
 
작년 11월 27일 70대 한 남성이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출근하는 김명수 대법원장 출근 차량에 화염병을 투척하고 검거당했다. 터진 화염병을 진압하려 뿌려진 소화기 가루로 범벅된 대법원장의 출근 차량.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월 11일 전직 대법원장 중에서 처음으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가장 치욕스런 헌정사의 불명예였다. 검찰이 양 전 대법원장에게 적시한 범죄사실은 44개에 이른다.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소송 지연 ▲옛 통합진보당 의원 지위 확인 소송 개입 ▲법관 사찰 및 인사 불이익 ▲헌법재판소 내부 정보 유출 등 사법농단과 관련된 의혹들이다. 검찰은 지난해 11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을 구속기소 하면서 양 전 대법원장을 공범으로 적시했었다.
 
  전·현직 사법부 수장들의 굴욕은 한국 사법부의 위상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헌법적 가치와 법조실무의 위선, 법조계의 특권의식, 법조윤리 붕괴에 대한 불신이 분노와 함께 분출되고 있다.
 
  심지어 ‘법복 입은 악마’로 법관들을 묘사한다. 작년 8월 어느 법조 기자는 《대한민국 사법부 법복 입은 악마들》이란 무시무시한 책을 썼다. 이 기자는 “법 지식의 우월성을 내세워 비판의 사각지대에서 군림하는 사법부의 위선적 행태에 회의감을 느꼈다”고 책을 쓴 이유를 밝혔다. “법조 취재를 하는 동안 권력의 한 축을 담당하는 사법부가 독립성이란 이름으로 재량권을 남용하고 있는 현실을 뼈저리게 느꼈다”고도 했다. 일부 판사들의 오만과 위선을 ‘악마’에 비유한 법조 현장기자의 시각은 매우 거칠지만, 용기 있는 고백이다.
 
 
  담당 판사가 별안간 바뀐다. 바뀌어도 항의할 수 없다
 
2017년 12월 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신임 법관 임명식에서 김명수 대법원장이 한 신임 법관에게 법복을 입혀주고 있다.
  대부분의 착한 이웃은 법원 근처에 갈 일이 없다. 법관이 누구인지 알 필요가 없다. 법을 전공하지 않아도 살아가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나 세상에는 상식으로 통하지 않는 일이 종종 생겨난다. 나의 집 가까운 이웃 중에는 청교도만 살지 않는다.
 
  어느 날 무고(오해)를 당하거나 주차 시비가 붙고 실수로 사람을 다치게 할 수도 있다. 어쩌면 생의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법정에 누구나 설지 모른다. 그때는 검사의 옷자락, 변호사의 눈빛, 판사의 기침 소리 하나하나가 난생처음 겪는 생소한 것들이다. 생살여탈권을 쥔 살아 있는 신(神)처럼 보인다.
 
  그러나 법정 현실은 상상 이하이다. 높은 법대(法臺) 위의 판사는 자꾸 말을 끊는다. 하도 답답해 어떻게든 한마디 전하려 해도 “됐어요”라고 진술을 끊어 버린다.
 
  변호인에게 “거기”라는 고압적인 태도를 보인다. 들을 필요가 없다는 듯 “다음에 보자”거나 증인 신청을 기각하거나 “변론 요지가 충분히 전달되었다”고 하거나 “다른 급한 사건이 있다”거나 하여튼 자꾸만 모면하려 한다. 수사기록이나 소송기록을 안 읽어 쓸모없는 대화만 주고받다가 재판이 연기되는 경우 역시 비일비재하다. 수사기록이 판사들에게 편견을 준대서 미리 법원에 제출하지 않게 된 후로 더 그렇다. 이유 없이 재판이 해를 넘겨 미뤄지고 담당 판사가 별안간 바뀐다. 바뀌어도 항의할 수 없다.(대한변협과 서울지방변호사회의 ‘2017 법관평가 사례’ 참고)
 
  이뿐만이 아니다. ‘2017 법관평가 사례’에 따르면 한 판사는 여성 변호사에게 “나는 여자가 그렇게 말하는 거 싫어한다”고 말했다. 다른 판사는 황혼 이혼을 신청한 70대 원고에게 “(집 나와서 혼자) 그렇게 사니 행복하십니까?”라고 이상한 소리를 했다. 소송대리인에게 “지금 당장 답하라”며 몰아세운 판사도 있다.
 
  물론 사법부에는 평균적인 보통의 사람보다 훌륭한 판사들이 많다. 사법부가 비리의 온상이라는 비난은 들을지언정 법관 한 명 한 명을 누구도 그렇게 폄훼할 수 없다.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고약한 범죄자와 그들의 고용된 칼잡이, 공권력을 가장한 전문 총잡이를 상대로 편한 날이 없다고 푸념할지 모른다. 판사 입장에선 피고인의 읍소, 호소보다 증거, 물증이 더 중요할 수밖에 없다. 논점에서 벗어난 정황증거는 일고의 가치도 없다.
 
  하지만 단 한 번이라도 법정에 서본 사람은 판사에 대한 존경심을 갖기 어렵다. 피해자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판사가 신이 아닌 이상 100% 공정함이란 없으니까….
 
 
  석궁 테러 사건과 문재인 ‘노무현 재단 이사장’
 
석궁 테러 사건을 소재로 만든 영화 〈부러진 화살〉의 포스터.
  기자는 석궁 테러 사건을 잘 아는 A 변호사를 만날 수 있었다. 실명을 밝힐 수는 없다. 이 사건은 김명호 전 성균관대 교수가 복직소송에 패소한 후 재판장이었던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석궁으로 쏜 전대미문의 판사 테러였다. A 변호사가 《판사 니들이 뭔데?》라는 책을 기자에게 건넸다. 이 책은 2012년 출간될 당시 화제가 됐고 영화로 만들어졌다. 당시 영화 〈부러진 화살〉을 본 문재인 ‘노무현 재단 이사장’은 “변호사로서 볼 때 우리나라 사법현실과 재판제도의 문제점을 잘 그려낸 영화”라고 평했다.
 
  문재인 ‘이사장’이 말한 “우리나라 사법현실과 재판제도의 문제점”은 무얼 말하는 것일까. 다음은 《판사 니들이 뭔데?》에 나오는 ‘머리글’ 중 일부다.
 
  〈…판사들은 사법고시 붙은 것을 법을 위반하는 면허를 취득하였다고 착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멍청할 정도의 자신감, 상습적 거짓말, 위선, 대법원에 대한 맹종 등을 덕목으로 삼고 있는 인간들로서…〉
 
  김명호 전 교수는 1995년 대학별 고사 수학 문제에 오류가 있다는 주장을 제기한 뒤 재임용에서 제외됐었다. 책을 읽다 보니 이런 구절이 눈에 띄었다.
 
  〈…먼저 ‘법원이 판단했으면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승복해야지. 법치주의 국가에서 판결에 불만이 있다고 판사에게 석궁을 들고 간 놈이 무슨 할 말이 있다고 떠드느냐’라고 생각한다면 그냥 책 덮고 가라.
 
  1+1=3이라는 법원 판단도 승복해야 한단 말인가? ‘괘씸죄’라는 되지도 않는 말이 공공연히 나돌고, 입시 출제의 오류를 지적한 교수의 해고가 정당하다는 판사들이 판치는 나라가 법치국가라고? 웃기는 소리 작작 해라. 대한민국은 법치국가가 아니다.
 
  ‘허구한 날 판사가 법을 위반하는 재판 테러를 저지르고 있다’는 현실 직시는커녕 꿈에서조차 용납 못 할 그런 인간들에게 뭔 말인들 먹혀들어 갈 것 같은가? 시간 낭비하지 마라. 읽을 자격도 없으니 꺼져라.…〉

 
  분노와 증오로 가득한 책을 읽다가 ‘노예근성의 결과’라는 소제목에 눈길이 갔다. 그리고 그 아래 문장엔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다.
 
  저자인 김 전 교수가 법원 앞에서 1인 시위를 할 때의 얘기다. 법원 주변에서 피켓 시위를 하는 아주머니를 만났는데 그녀의 사건 담당 판사가 L씨였다. ‘권력추구형 인간들의 특성이 권력을 잡을 때까지는 남한테 욕먹는 것에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생각한 김 전 교수는 아주머니에게 L 판사의 이름을 피켓에 쓰라고 조언했다.
 
  하루도 안 돼 L 판사가 아주머니한테 다가와 “무슨 일이냐? 문제 있으면 사무실로 와서 얘기하라”고 말했다.
 
  이에 감격한 아주머니는 다음 날 피켓 구호에서 L 판사 이름 석 자를 지웠다. 김 전 교수가 “승소판결문 받을 때까지 압박을 가해야지, 왜 이름을 지웠냐?”고 물었더니 아주머니는 “판사님이 그렇게 찾아왔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했다.
 
  판결은 어떻게 났을까? 당연히 패소했다. 김 전 교수는 “이후 아주머니는 법원 주위를 헤매고 있다고 한다. 이게 대다수 한국 사람에게서 볼 수 있는 ‘노예근성’”이라고 썼다.
 
  만약 L 판사가 아주머니에게 유리한 판결을 했다면 오히려 불공정 재판 논란에 휩싸였을 것이다. 그러나 김 전 교수는 판사를 참혹하게 그렸다. 어쩌면 법정에서 판사를 한 번이라도 만난 사람이라면 김 전 교수의 생각에 조금은 공감할지 모른다.
 
 
  “하물며 풍파 몰아치는 벼슬길에서야…”
 
  우리가 기대하는 판사는 이런 사람이다.
 
  높은 법대에 앉아 왕처럼 군림하지 않고 창녀든 도둑이든 누구의 말에도 경청하며 거짓 읍소에 휘둘리지 않고 차분하게 중립을 지켜 판결하는 사람이다. 술 잘 먹고 접대 잘 받기보다 쓸쓸하고 외로우며 정의로운 외길을 걸었으면 하는 사람이다.
 
  많은 판사가 세상과 거리를 두고 산다고 한다. 전직 고위 법관 Y씨는 매일 점심을 구내식당에서 배달시켜 집무실서 혼자 해결했다는 말이 전설처럼 남아 있다. 그는 외부인은 물론 내부인과도 거리를 두고 홀로 지냈다.
 
  사실 지방법원 배석판사를 거쳐 지법 단독판사, 고등법원 배석판사, 대법원 재판연구관, 지법 부장판사, 고법 부장판사, 지방법원장, 대법관(대법원장)에 오르기까지 판사는 기꺼이 세상과의 단절을 각오해야 한다. 이 까마득한 피라미드 층계는 범(汎)법조에 형성된 아름다운 질서다. 이 질서를 누리기 위해 판사들은 등산 갈 때도 서열에 따라 일렬로 발걸음을 맞춘다고 한다.
 
  층계의 질서에서 일찌감치 탈락한 평판들도 세상과 유리되기는 마찬가지다. 판사들이 법복을 벗어 던져도 변호사밖에 할 일이 없다. 법원과 법정 주변을 기웃거리고 법리만 따지다 보면 평생 세상과 등지고, 법밖에 모르는 바보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단절된 법원에서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아갈까. 보통 사람들은 그들의 머릿속을 들여다볼 필요가 없다. 법관이 세상과 단절되든 말든 아무 상관이 없다. 그저 재판 결과만 정의로우면 된다.
 
  기자는 로스쿨 교수 4명이 쓴 《서초동 0.917》이란 책을 읽었다. 저자는 김희균 서울시립대 교수, 노명선 성균관대 교수, 오경식 강릉원주대 교수, 정승환 고려대 교수다. 다음은 책 속에 등장하는 사례다.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은 교육감 선거에서 박명기 후보에게 2억원을 제공하고 후보를 매수한 혐의로 2012년 1월 법원에서 벌금 3000만원의 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박 교수는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후보를 매수한 사람이 더 가벼운 처벌을 받은 법리에 사람들이 불만을 터뜨렸다. 흥분한 이들은 재판장 집에까지 찾아가 항의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엄밀히 말해 이 판결은 현행법이 정한 범위 내에서 형을 선고한 것이다. 위법이라고 말할 수 없다. 다만 대다수 시민이 선고 결과를 잘 납득하지 못할 뿐이다.
 
  국민의 법 감정이 폭발하는 이유는 양형 때문이다. 형의 상한과 하한 사이가 판사의 ‘재량’에 의해 결정된다. 이 ‘재량’ 중에는 한국에서 가장 무서운 죄라는 ‘괘씸죄’도 포함된다. 이 과정에서 재판 청탁이 오가고 심지어 금품도 오간다. 아니, 오갈 개연성이 있다. 한솥밥 먹는 동료 판사들끼리 인정상 거절하기 어렵다. 그래서 판사 스스로 자신을 빗대어 ‘관선(官選)변호인’ ‘고문(顧問)판사’라고 부른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공직자윤리위원장을 지낸 이상배 전 위원장은 기자에게 고려시대 문인 이규보 선생에 대한 일화를 들려주었다. 이규보가 여행 중에 나룻배를 탔다.
 
  배 두 척이 나란히 달려나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크기도 비슷하고 승객이나 짐도 비슷한데 저쪽 배는 벌써 건너편에 도착한 반면 이규보 선생이 탄 배는 머뭇거리고 있었다. 도대체 왜 그럴까 의아해하니 옆에 있던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다.
 
  “그야, 저 배는 사공에게 술을 먹였으니 사공이 온 힘을 다해 노를 저을 수밖에요.”
 
  “술을 먹여 사공을 기분 좋게 만들어 열심히 노를 젓도록 한 것이군요. 그렇다면 이쪽 배에 탄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럴 줄 알았으면 우리도 술 좀 먹일걸. 이제라도 돈을 얼마씩 걷어서 줄까?”
 
  “아니지. 우리도 정당하게 뱃삯을 내고 탄 건데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의견이 분분했다. 누군가가 이규보 선생에게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물었다. 선생은 탄식하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보잘것없는 배의 운항(運航)도 뇌물을 주느냐 안 주느냐에 따라 빠르고 느리며 앞서고 뒤처지는 일이 생기는 법인데 하물며 풍파 몰아치는 벼슬길에서야….”
 
  이 전 위원장은 “이규보 선생은 자신이 뛰어난 능력을 갖췄음에도 순탄하게 풀리지 않은 자신의 벼슬살이를 떠올리며 탄식할 수밖에 없었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이익을 보자고 뇌물을 주고받는 일이 나쁜 것은 분명하지만 주는 사람이 더 나쁠까요, 아니면 받는 사람이 더 나쁜 것일까요. 저는 주는 사람이 더 나쁘다고 생각합니다.
 
  따지고 보면, 뇌물과 선물의 구분도 애매합니다. 옛날 낙향한 정승을 후학이 찾아와 인사를 하는데 쌀 한 가마니와 필묵을 가져왔습니다. 정승은 필묵은 정으로 받고 쌀은 돌려보냈어요. 당시 쌀은 바로 돈으로 인정되던 시절이었죠.
 
  뇌물수수를 막기 위해선 권력을 지닌 공직군을 특별 관리해야 합니다. 일반 공무원은 뇌물 문제가 생기면 즉시 사법처리가 되지만 어떤 공무원(판사, 검사 등)은 사표 제출로 일이 덮입니다. 법 밑에 법은 너그러운 것일까요? 그런 면에서 이른바 ‘김영란법(청탁금지법)’은 지극히 초보적인 것이라 하겠습니다.”
 
 
  量刑에 무슨 정답이 있겠는가
 
  로스쿨 교수 4인이 쓴 《서초동 0.917》에는 양형에 대한 시민들의 불신과 시각이 담겨 있다.
 
  〈…물론 개별사건 사건마다 양형에 편차가 있다는 걸 모르는 국민은 없다. 양형에 무슨 정답이 있겠는가. 그럼에도 차이가 너무 크다는 게 문제다. 어떤 경우에는 보통 국민의 법 감정에 비해 너무 세고 어떤 경우에는 너무 약하다. 예컨대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법 위보다 너무 위에 있거나 너무 아래에 있다.…〉
 
  물론 판사들도 할 말이 있다. 판사는 판결 A.I.가 아니다. 감정과 정리를 지닌 인간이다. 수리 문제를 풀 듯 금형에 쇳물을 붓듯 양형 기준을 틀에 맞춰선 곤란하다. 법관 재량이 줄면 생계형 죄를 범한 일반 국민의 형량이 더 늘어난다.
 
  문제는 돈 없는 사람이 더 서글퍼지는 법적 현실이다.
 
  몇 해 전의 실제 사례다. 탈세 혐의로 구속된 B그룹 모 회장은 벌금 수백억 원을 내는 대신 50일 정도만 교도소에 살면 됐다. 그리고 해외로 도주했다 밤늦게 귀국해 교도소 노역장에 토요일 밤 유치됐는데 다음 날인 일요일이 되자 벌금 5억원이 탕감됐다. ‘황제노역’이란 말이 나왔다. 잠만 잤는데 노역 하루가 인정돼 벌금 5억원이 줄어든 것이다.
 
  그러나 생계형 범죄자는 계산법이 다르다. 1만5600원을 훔친 40대 이야기다. 교통사고로 시력을 잃고 일자리도 잃은 C씨는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사정은 딱하지만 이미 노숙을 하면서 3차례나 물건을 훔친 전력이 있어 가중처벌이 불가피했다.
 
  60대 노숙자 D씨는 대전의 한 편의점에서 냉장고에 진열된 2000원짜리 맥주 1캔을 꺼내 마신 뒤 돈을 내지 않아 징역 6개월을 선고받아 감옥에 갔다.
 
  수백억 원을 탈세한 이는 50일만 교도소에 있다가 집으로 돌아갔고 40대와 60대의 가난한 이웃은 각각 1만5600원, 2000원 때문에 감옥에 갔다. 흔히 말하는 ‘유전무죄 무전유죄’ 판결의 전형이다.
 
  작년 4월 23일 국회에서 ‘기업범죄 판결 경향과 양형 기준 효과에 대한 토론회’가 열렸다. 어찌 된 영문인지 당시 언론에서 거의 다뤄지지 않았다. 이창민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와 최한수 한국조세재정연구원 박사는 2000~2014년 사이 주요 기업 범죄 사건의 피고인 738명의 판결을 분석했다.
 
  그 결과, 양형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요인을 통제한 뒤에도 재벌과 일반인 피고인 사이에 ‘집행유예 선고율’ 차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피해액을 변제한 지배주주의 경우 재벌과 관련이 있는가 여부에 따라 1심에서 집행유예를 받을 확률이 약 27%p나 올라갔다.
 
  또 1심보다 항소심에서 집유 선고율이 크게 상승한다. 이날 토론회에서 최 박사는 “일반 범죄자에게서는 발견되지 않는 매우 독특한 현상”이라며 “지난 15년 동안 사법부의 재벌 편향성 정도는 약화되었지만 여전히 존재한다”고 했다.
 
  재벌 피고인의 집행유예율은 1심과 2심을 모두 합치면 72% 수준이다. 길거리 범죄인 폭행상해 죄나 일반인이 범한 ‘특경가법’ 위반범죄자의 집행유예 선고율보다 더 높다. 그 이유는 횡령, 배임액의 피해액 변제 같은 양형인자들이 재벌 피고인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이다.
 
  사법부 신뢰를 구축하기 위한 여러 개혁과제 가운데 ‘유전무죄 무전유죄’ 문제를 빼놓을 수 없다. 특히 기업 범죄 양형이 문제의 핵심이다. 법원이 기업 범죄 양형에 관대하다는 세평을 극복해야 한다.
 
 
  만졌느냐, 안 만졌느냐
 
언론에 보도된 ‘곰탕집 성추행 사건’ CCTV 영상의 모습이다. 이 사건은 “강제추행만으로 실형에 처하는 것은 상식적인 법 감정에 비춰봐도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왔다.
  작년 9월 ‘제 남편의 억울함을 풀어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와대 청원 글로 시작된 ‘곰탕집 성추행 사건’은 남녀 간 성대결 양상으로 비화될 만큼 화제가 된 판결이다.
 
  쟁점은 남성이 여성의 엉덩이를 만졌는지 여부였다. CCTV 영상이 공개됐으나 피해 여성의 진술만으로 재판부는 남성에게 징역 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현재 법정 구속된 상태다. 이를 두고 과도한 판결이란 비난이 쏟아졌다. 강제추행의 양형 기준은 보통 징역 6개월과 2년 사이다.
 
  대한변협 부협회장을 지낸 김승열 한송온라인리걸센터 대표변호사의 말이다.
 
  “단순히 엉덩이를 손으로 만진 이 사건은 상대적으로 성적 추행의 정도가 미약하나 남성이 ‘추행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등 판사가 보기에 ‘개전(改悛)의 정이 없다’고 보아 감경사항과 가중사항을 상쇄시켜 기본 양형 기준에 따라 징역 6개월을 선고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강간 등의 경우도 양측이 합의하면 집행유예가 내려지는 현실에 비추면, 강제추행만으로 실형에 처하는 것은 상식적인 법 감정에 비춰봐도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김 변호사의 계속된 말이다.
 
  “독일의 경우 기습추행은 심각한 경우에 한하여 강제추행으로 취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이와 비교해 우리나라의 기습추행에 대한 양형 기준이 너무 높다고 생각돼요. 또 피고인이 무죄라는 점을 명확하게 입증하지 못하면 유죄판결이 내려질 가능성이 높고 피고인이 피해자의 진술에 반대신문을 하는 경우 재판부가 ‘2차 피해’ 등의 이유로 차단할 가능성 역시 높습니다. 사실상 피고인에게 헌법상 보장된 방어권을 보장하지 않는 분위기가 강하다고 봐요.”
 
  작년 8월 인천의 어느 백화점 내 대형마트에서 1만원어치 물건을 훔쳐 달아난 단순 절도범 D씨가 재판에 넘겨져 징역 3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인천지법 형사12부는 국민참여재판을 통해 재판을 진행했는데, 배심원 9명 전원이 검찰의 공소사실 중 강도상해(A씨가 마트 보안요원을 피하려고 출입문을 밀다 보안요원이 다쳤다)는 무죄, 절도는 유죄라는 만장일치 평결을 내렸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을 종합하면 체포를 피하기 위한 목적으로 피해자에게 상해를 가했고 이는 체포라는 공격력을 억압하기에 충분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국민참여재판제도에서 배심원은 사실인정을, 법관은 법률적용을 담당한다. 이 제도는 법관이 경험치 못한 복잡한 사실인정과 법리적용 등을 혼자 짊어져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을 줄인다는 장점을 지닌다. 그러나 배심원 전원이 무죄평결을 내렸음에도 법관이 유죄판결을 내리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작년 8월 인천지법 판결이 그렇다. 김승열 변호사의 말이다.
 
  “사실인정에 있어 ‘합리적인 의심을 배제할 정도의’ 입증을 검사가 해야 하는데 배심원 모두가 무죄평결을 내린 경우라면 이는 보통 사람의 눈으로 볼 때 ‘합리적인 의심을 모두 배제할 정도의 입증에 이르지 못했다’고 보는 것이 상식적입니다. 그럼에도 법원은 유죄판결을 내렸어요.
 
  영미법계에서 볼 때 이런 판결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유무죄의 배심원 평결은 배심원만의 전속 권한이기 때문이죠. 물론 처벌형의 권고안은 단지 의견의 개진이어서 판사가 조정할 수는 있으나 유무죄의 사실인정에 관한 배심원 평결은 판사 역시 기속될 수밖에 없어요. 이는 형사법 기본원칙, 즉 ‘합리적인 의심을 배제할 정도의 입증에 이르지 못했다’고 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형사소송의 금과옥조는 “의심스러우면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국민참여재판의 모습이다. 배심원 전원이 무죄평결을 내렸음에도 법관이 유죄판결을 내리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영미법계와는 달리 한국의 국민참여재판(관련법 제46조의 제5항)의 평결은 ‘법원을 기속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사실인정에 관한 배심원의 만장일치 평결에도 법원이 뒤바뀐 판결을 내린 사례를 종종 볼 수 있다. 이는 문제의 소지가 상당하다. 예컨대 배심원 모두가 무죄평결을 내렸다면 이는 공소사실의 입증에서 “합리적인 의심을 할 만하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다시 ‘곰탕집 성추행 사건’으로 돌아가 보자. 피해자의 진술만으로 이뤄진 이 사건의 경우도 재판부가 ‘유죄추정의 원칙’을 적용한 사례가 아닐까. 형사소송 절차의 금과옥조인 ‘의심스러우면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또는 ‘무죄추정의 원칙’과 배치된다. 이러한 법원의 경직된 사고는 피고인 스스로 자신의 무죄를 입증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발전할 수 있고, 나아가 전체 형사소송 절차를 오도(誤導)할 수 있다.
 
  김 변호사의 계속된 말이다.
 
  “재판부가 일단 유무죄 판단을 내리면 그간 유무죄 판단 과정에서 고려했던 사항들은 더는 고려치 않고 폐기해 버립니다. 그리고 양형 기준에 적시된 요소만을 추출해 판단한 뒤 거의 기계적으로 양형을 적용하죠. 이 과정에서 내린 판결은 사안에 따라 상식과 너무나 괴리된 듯한 느낌이 들게 해요.”
 
  ― 피고인에게 유리한 상황을 재수사해 달라고 검찰에 요구할 수 있잖아요.
 
  “그럴 수야 있죠. 그러나 검사 입장에서 보면 일방적인 피고인 주장에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 수사할 이유가 없어요. 하고 있는 일도 벅찬데 재수사를 한다? 불가능하죠.
 
  아니면, 피고인이 선임한 변호인이 담당할 수밖에 없는데 변호사가 제대로 할 수 있을까요? 사법경찰관이 아닌 일반 변호사 사무실의 직원이 하기란 어려워요.”
 
  ― 형사(刑事) 절차에서 피고인 지위가 너무 열악합니다.
 
  “피고인이 무죄를 받기 위해선 스스로가 무죄를 입증해 재판부를 설득하여야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나 위험을 각오해야 하죠. ‘개전의 정이 없다’거나 ‘괘씸죄’로 가중처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죠. 미국에서는 사설탐정제도가 있잖아요. 전직 수사관을 고용해 피고인 등의 사실관계 조사 등을 할 수 있게 한 제도 말이죠. 이제는 우리나라도 고려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요?”
 
  김 변호사는 “민사보다도 형사사건에서 상식과 너무 괴리된 판결이 양산되는 부분이 있다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며 “원인을 제대로 살펴보아야 한다”고 했다. 법정형의 적정성, 입법적 업데이트 필요성, 특정 법조문의 무리한 확대해석 여부, 법 원칙의 충실 정도, 재판에 대한 적정한 통제제도의 완비 여부, 재판소원의 필요성, 사법절차적 기본권의 충실 정도 등등 손봐야 할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오판을 양산했고 사건을 조작한 판사들…
 
기자가 취재 과정에서 읽은 사법개혁을 촉구하는 책들. 법조계의 특권의식에 대한 분노를 담고 있다.
  대부분의 평판사는 시간과 싸워가며 판결문을 쓴다. 법원 권력에 관심이 없다. 재판하기도 벅차다. 출세길이 보이지만 그 길은 소수의 법관에게만 보일 뿐이다. “법원이 법관을 사찰해서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재판거래를 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무덤덤하다. 당장의 오늘, 내일의 판결이 무겁다. 개혁적인 대법원장이 취임하든 말든 나와 상관이 없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어쩌면 법관의 무오류주의, 엘리트주의 환상은 불가피해 보인다. 그래야 국민이 믿고 신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려운 선발 과정을 거쳐 법관에 임용된 만큼 그들의 판단은 보통 사람과 달라야 하고 보통 사람을 뛰어넘을 수 있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생긴다.
 
  그러나 그 지점에서 오류가 발생한다.
 
  법관들은 지고지순한 사람이 아니다. 그들의 사고는 초헌법적이지 않고 성자도 아니다. 무오류주의, 엘리트주의로 보는 외부의 시각에 실상은 자신의 내면이 얼마나 초라한지 누구보다 더 잘 알 것이다. 판단력이 좋고 두뇌 회전이 빠르다고 도덕적인 문제까지 완벽할 수 없다. 완벽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피를 토하며 절규하는 사법피해자들, 내부고발자들, 대법원장의 차량에 화염병을 던진 이들의 마음을 헤아려야 한다.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사회조정비서관과 시민사회비서관으로 재직한 김인회 인하대 로스쿨 교수가 작년 10월에 펴낸 《사법개혁을 생각한다》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법원의 무오류주의는 아무런 근거가 없다. 법원은 오판을 범할 수 있는 평범한 판사들로 구성되어 있을 뿐 아니라 과거사 사건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실제로 오판을 양산했고 적극적으로 사건을 조작하기까지 했다. 법관의 엘리트주의는 국민들의 지식수준, 교양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더욱 근거가 없어져 버렸다. 원래 법원의 무오류주의, 엘리트주의가 근거가 없는 것이었지만 지금은 근거라고 주장할 만한 외관도 남아 있지 않다. 법원의 오류주의, 엘리트주의는 잘 포장해서 박물관으로 보내야 한다.…〉
 
  기자는 이 글을 쓰기 위해 《사법개혁을 생각한다》 《대한민국 사법부, 법복을 입은 악마들》 《사법부, 법을 지배한 자들의 역사》 《판사 니들이 뭔데?》 《법원을 법정에 세우다》 《서초동 0.917》 등을 읽고 가까운 변호사들을 만났다. 읽으며 메모하고 기사 속에 녹였다. 일부는 그대로 인용했다. 좋은 책들이다. 이 책들이 사실을 비틀고 거짓을 과장했다고 해도 사법불신을 해소하기 위한 밑거름임에 틀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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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eokgung    (2019-01-23)     수정   삭제 찬성 : 0   반대 : 0
김태완, 개만도 못한 인간아
석궁사건이 왜 테러냐? 그리고 법원은 개혁 대상이 아니라 타도 대상이다.
석궁사건의 필연적 동기 = http://seokgung.org/crime.htm
석궁사건은 한국사회의 비리 부정에 대한 의거 = http://seokgung.org/seokgung/mkh/lhkang.htm

20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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