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민심 르포

달성·양산 사저에서 만난 퇴임 대통령의 길

잊힌 삶, 자연인으로 살아가는 길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kimchi@chosun.com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목록
  • 프린트
  • 스크랩
  • 글자 크게
  • 글자 작게
⊙ “또 정치 할라 카나…. 그만 다 잊었뿌지(잊어버리지).” “누구든 찾아올 수 있게 문 열어놓았으면….”(박근혜 사저 인근 주민)
⊙ 대구 간 박근혜… 쌍계오거리 사저를 ‘퀸즈빌리지’라 불러
⊙ “뭐가 좋아. 조용한 동네에 뭐… 시끄럽게 생겼니더.”(문재인 사저 인근 주민)
⊙ 경남 양산行 문재인… 舊사저 시세보다 높게 매각해 논란
⊙ “(문 대통령이) 잘못된 것 없는데 구속시킬 것 뭐 있노.” “있지. 있는데 그건 눈감아주고…”
⊙ 최규하 전 대통령 사저에 있는 1953년산 ‘나쇼날’ 선풍기
⊙ “전직 대통령 홀대? 감당해야 할 업일 수도”(최규하)
3월 24일 오후 대구 달성군 유가읍에 위치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저 앞 모습이다. 시민들이 몰려와 환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날, 상주~영천 고속도로 속리산 자락의 회인터널을 지나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대통령의 사저(私邸)가 정상일까? 아니, 정상적이지 않다는 확신이 점점 생겼다.
 
  왜 성채(城砦·성과 요새) 같은 저택을 가져야 하며 왜 또 다른 성채만큼의 경호처 건물이 필요할까? 이미 권력을 내려놨는데 삼엄한 경호는 누구를 위한 경호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재인(文在寅) 대통령은 2020년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 “퇴임 후 잊힌 사람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지난 3월 30일에도 “자연으로 돌아가 잊힌 삶을 살겠다”고 말했다. 오는 5월 9일 퇴임이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경남 양산 하북면 지산리 평산마을에선 막바지 사저 공사가 한창이었다.
 
  박근혜(朴槿惠) 전 대통령은 영어(囹圄)의 몸에서 풀려난 후 사저를 대납 매매해 정치적 고향인 대구 달성에 정착했다. 이곳에서 4선 국회의원, 대통령이 되었다. 지난 3월 24일 “이루지 못한 많은 꿈이 있다”면서 “못 이룬 꿈들은 이제 또 다른 이들의 몫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서울을 떠나 대구와 양산에 사저를 마련한 두 전·현직 대통령. 그들은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게 되었다.
 
 
  “박근혜를 보면 눈물 날라 칸다”
 
3월 24일 오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에서 퇴원하며 취재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특별사면을 받아 석방된 후 삼성서울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아왔다. 사진=조선일보DB
  기자는 먼저 박근혜 전 대통령 사저를 찾았다. 서울에서 승용차를 몰고 가다 잠시 상주주차장휴게소에 들렀다. 흉하게 잘려나간 석산(石山)이 보였다. 8부 능선을 직각으로 자른 모습이 위태롭게 보였다.
 
  다시 차를 몰았다. 중부내륙고속도로 대구 현풍톨게이트(TG)를 빠져나와 6km를 더 가면 사저가 나온다.
 
  우선 이 지역 명물이라는 곰탕집을 찾아 늦은 점심을 먹었다. 한 그릇 1만2000원. 맛에 비해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둘러 밥을 말아 먹는데 옆 테이블에서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는 소리가 들렸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였다. 기자가 온 걸 어떻게 알고…. 귀를 세웠다.
 
  “감옥을 그리 보내고…. 이게 무슨 짓들이고?”
 
  화를 내고 있었다.
 
  “그라게…. 사람들이….”
 
  음식을 먹으면서 4명의 남녀가 저마다 한마디씩 보탰다. 60대 중후반 나이로 보였다.
 
  “박근혜를 보면 눈물 날라 칸다. (그러더니 화제를 바꿔) 광우병 때 힘 다 뺐다 아이가.”
 
  윤석열(尹錫悅) 대통령 당선인의 청와대 집무실 이전과 관련한 얘기인가 싶었다.
 
  “어쩔 수 없다 캐도(해도) 어려운 기라. 허구한 날 싸울 게 뻔한데.”
 
  “문재인이는 무신(무슨) 잘못 없나. 지는 뭐…. (씹는 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시선 확 끄는 곳에 위치
 
  후루룩 곰탕에 만 밥을 먹고 다시 차를 몰았다. 대구 사는 지인이 “박근혜 사저로 가려면 내비(게이션)에 ‘쌍계오거리’라고 입력하면 된다”고 한 말이 떠올랐다. 테크노순환로에 들어서니 ‘대구경제자유구역’이라는 커다란 탑이 보였다. 쌍방향 6차선 도로가 시원하게 뚫려 있다. 서울과 달리 벚꽃이 절정이다.
 
  박근혜 사저는 대구 외진 곳에 있지 않았다. 시내 중심가에서 멀 뿐 대구 미래 먹거리의 상징인 ‘달성군 국가산업단지’에 위치하고 있었다. 사저 맞은편 세련된 DGIST(대구경북과학기술원) 건물이 시선을 끌었다.
 

  되짚어 보니 사저로 이어진 길은 현풍TG에서 쌍계오거리까지 일직선으로 연결돼 있었다. 그냥 한길로 쭉 이어졌다고 보면 된다. 사저도 시선을 확 끄는 곳에 위치해 있었다.
 
  쌍계오거리 주변엔 벌써부터 지지자의 물결이었다. 사저 위쪽 커피숍에 잠시 주차를 하는데 가까이서 실랑이 소리가 들렸다. “얌체주차하면 안 된다. 커피를 주문해야 한다”며 누군가가 핏대를 세웠다. 평일 오후지만 주차장이 벌써 만원이었다. 커피 한 잔을 뽑아 들고 천천히 사저로 걸어갔다.
 
 
  ‘퀸즈빌리지’
 
박근혜 전 대통령 사저 앞 모습이다. 곳곳에 현수막이 걸려 있고 박근혜 탄핵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길 한쪽에 컨테이너로 된 임시화장실이 있었다. 벌써 외지인들이 찾고 있다는 표식이다. ‘국화빵’을 파는 상인도 있었다.
 
  사저 쪽으로 좀 더 걸으니 ‘내 일생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라고 적힌 현수막 양쪽에 박정희(朴正熙)·박근혜 부녀(父女) 사진이 보인다. 입을 다문 아버지, 살짝 웃는 딸의 사진이 대조적이다. 군데군데 태극기와 더불어 미국 성조기가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어디가 사저, 어디가 경호처 건물인지 몰라 한 여성에게 물으니 이런 답이 돌아온다.
 
  “저기가 바로 ‘퀸즈빌리지’라예.”
 
  사람들은 벌써 ‘여왕의 집’ 내지 ‘여왕의 마을’로 부르고 있었다. 순간 한 남성의 목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리니 한 남성 옆으로 ‘사리사욕, 내각제에 눈이 멀어 깨끗한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시킨 패륜자들=국가 파괴범들이다’라고 적힌 현수막과 함께 인물사진이 보였다. 그의 말이다.
 
  “전체 67명인데요, 잘 보셔야 합니다. 여러분! 홍준표(洪準杓)가 박근혜 탄핵당할 당시에 뭐라고 이야기했느냐? ‘탄핵을 당할 만하니까 탄핵당했지’ ‘춘향인 줄 알았더니 향단이더라’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또 언론은 뭐라고 했습니까? ‘정윤회하고 밀회를 즐겼다, 정유라가 박근혜 대통령 딸이다, 세월호 7시간 때 마약을 먹고 잠을 잤다’ 그자들에 의해 5년 동안 우리 자유대한민국은 처참하게 무너졌어요.”
 
  많이 쉰 목소리로 열변을 토하는데, 손에 들고 있는 카메라(휴대폰)에 ‘우리공화당’이라는 로고가 적혀 있었다.
 
 
  “대통령이 좀 편안하게 쉬려고 (고향에) 왔는데…”
 
박근혜 전 대통령 사저 앞 공터에는 수많은 화환이 있었다. 화환 리본에 ‘이제 꽃길 걸으세요’ ‘환영합니다’ ‘사랑합니다’ 등의 문구가 적혀 있었다.
  사저 입구 ‘박근혜 포토존’ 앞에서 두 여성이 기자에게 사진을 찍어달라 부탁했다. 포토존에는 이런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님! 대구 달성으로 오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이제 붉은 달은 지고, 밝은 해(박근혜)가 뜹니다. 해야 떠라! 해야 솟아라!’
 
  그러고 보니 ‘밝은 해’ ‘박근혜’가 비슷하게 발음된다. 기발하다. 사저 앞에서 서성이는 중년 여성 몇 분에게 말을 건넸다.
 
  ― 누가 대구시장이 될까요.
 
  권영진(權泳臻) 시장이 3선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홍준표·김재원(金在原) 후보 간 2파전이 유영하 변호사의 출마로 복잡해졌다. 게다가 박 전 대통령은 공개적으로 ‘유영하 후원회장’을 자청하고 있다. 대구시장 선거 구도는 박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혼란에 빠져들었다.
 
  “아직까지 확실하게 노리는 사람은 모르겠는데 아마 유영하 변호사가 한다는 소문이 들리니까, 박 (전) 대통령을 그만큼 지원해줬기에 다른 사람들이 그… 그… 마음을 (봐서) 마이(많이) 지지해주지 않겠나 하는 생각도 드는데 잘 모르겠어예.”
 
  “김재원씨도 나올라 카다가(하다가) 유영하씨 나오니까 빠지고….”
 
  ― 빠진대요?
 
  “빠진다는 소문을 얼핏 들었거든요. 확실히는 모르겠는데 권 시장도 아마, 그때 박 대통령 옆에서 좀 일을 했던 분이잖아예. 그러니까 이렇게 스토리가, 내가 보니까 권 시장이 빠져주고 이제 이분이, 유영하씨가 올라붙으면서 박 (전) 대통령 곁에서 힘도 실어주고 뭐 좀 안 도와주겠나 이런 생각을 하고 있어예.”
 
  ― 어떻게 그렇게 잘 아십니까.
 
  “스토리가 딱 나오잖아. 딱 안 나옵니꺼?”
 
  되레 기자에게 반문했다.
 
  “홍준표씨도 정치는 잘하는데 민심이 어디로 흘러갈지…. 민심은 물길 흐르듯 흘러가기 때문에 그분도 깨끗하고, 하는 건 잘하니까.”
 
  바로 그때 취객의 소란이 들려왔다. 눈에 날이 선 채 불특정 다수에게 고함과 욕설을 하고 있었다. 뭐가 불만인지 몰라도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욕설은 아니었다.
 
  “그럼, 난 어떡하라고. ××놈들아. 다 죽어버려라.”
 
  사저를 지키는 경찰관들이 “집에 가라”고 제지하자 더 악을 쓰며 소리친다.
 
  “내가, 내 욕하는데 왜 그래!”
 
  사람들의 혀 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미친놈. 대통령이 좀 편안하게 쉬려고 (고향에) 왔는데….”
 
  사저 앞 공터에는 수많은 화환이 놓여 있었다. 화환 리본에 적힌 문구를 차근히 읽어 보았다.
 
  ‘힘내세요. 건강하소서’ ‘사저 입주 축하드립니다’ ‘귀향을 환영합니다’ ‘이제 꽃길 걸으세요’ ‘환영합니다’ ‘사랑합니다’ 등등 대개는 우리공화당 당직자들이 보낸 것들이었다. 박 전 대통령이 졸업한 고교 ‘성심여고 동창 ○○○’의 화환이 눈에 띄었다.
 
 
  “이 집을 무신 돈으로 샀노?”
 
박근혜 전 대통령 사저 뒷담. 손 두 뼘 높이로 알루미늄 새시창이 있고 360도 회전 CCTV도 보였다.
  많은 순례객과 함께 사저 담을 따라 걸었다. 저마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박근혜) 명예를 회복시켜야지.”
 
  “이 집을 무신(무슨) 돈으로 샀노? 연금이 나오나?”
 
  “또 정치 할라 카나…. 그만 다 잊었뿌지(잊어버리지).”
 
  “누구든 찾아올 수 있게 문 열어놓고, 아무라도 찾아온 이에게 물 한 잔 내줬으면 좋겠는데….”
 
  사저 뒤편에도 삼삼오오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내부를 들여다볼 수 없게 뒷담 위로 손 두 뼘 길이 이상의 알루미늄 새시창이 있고, 360도 회전 CCTV도 보였다. 사저 뒤편 경호를 담당하는 직원에게 물었다.
 
  ― 사람들이 몰려들어 박 전 대통령이 외부로 나오기 힘들겠지요?
 
  “우리 근무자들은 잘 모릅니다. (잠시 후) 사람들이 매일 찾아오니까 못 나오시는 것 같아요.”
 
  또 다른 옥살이를 할 것 같다는 생각, 높은 담을 허물어버리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자는 꼭 20년 전인 2002년 1월 중순쯤 박 전 대통령의 서울 삼성동 자택을 찾은 일이 있다. 집은 시간이 멈춘 듯했다. 생기 있는 반들반들한 집이 아니었다. 박정희·육영수 양친의 초상화와 사진 등 유품에 둘러싸여 있었다. 안방 벽이고 거실 선반에도 양친과 관련된 것뿐이었다. 장롱을 열면 어머니 육 여사의 손바느질 흔적이 있는 낡은 한복이 있을 것만 같았다. ‘어린이 박근혜’ ‘소녀 박근혜’ ‘퍼스트레이디 박근혜’ 같은, 성장을 짐작게 하는 사진은 없었다.
 
 
  비슬산 四王說 전설
 
  2층 피아노가 놓여 있는 서재에 조갑제 기자가 쓴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전 5권이 꽂혀 있었다. 책을 손에 들고 뭐라고 했는데 무슨 말을 했는지는 잊어버렸다.
 
  당시 삼성동 집에 경비원 2명이 숙직을 한다고 했다. 일반 가정집에 외부 경비원이 기거한다는 사실에 놀랐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달라졌는지 모르나 존경하는 인물로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 여왕(1533~1603년)을 꼽았었다. 알다시피 엘리자베스 1세는 어린 나이에 어머니가 사형당한 ‘비운의 공주’에서 여왕이 된 인물이다.
 
  지나가던 80대 노인에게 ‘박근혜의 귀환’을 물었다. 그는 “비슬산 마을에 내려오는 사왕설(四王說)이란 전설을 아느냐”고 되물었다.
 
  “사저는 비슬산(해발 1084m) 자락에 있지예. 산 정상 바위가 비파와 거문고를 켜는 형상과 닮아서 비파 비(琵), 거문고 슬(瑟)을 씁니더.
 
  풀이하면 4개의 임금 왕(王)을 떠받드는 견줄 비(比), 반드시 필(必)을 써요. 비슬산 정기로 4명의 왕이 배출된다는 전설이 있지.”
 
  그의 말을 듣고 ‘여왕의 귀환’이 떠올라 씁쓸했다.
 
  또다시 사저 속에 침잠하며 외로이 지내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높은 대문, 어두운 벽, 삼엄한 경비 속에 지내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과거 청와대 ‘혼밥’도 떠올랐다.
 
 
  ‘여왕의 힐’ 대신 단화를
 
  박근혜 사저 뒤편은 밭이었다. 트랙터가 밭고랑에 세워져 있었다. 방금 전까지 밭을 갈다가 잠시 자리를 떠난 듯했다. 농번기가 곧 시작될 텐데, 몸뻬바지 차림의 전직 대통령이 농사일을 돕는다면…. 물론 건강 회복이 먼저겠지만 말이다.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서거한 뒤 18년간 마음의 감옥에서 살았다. 숱한 정치 역경을 딛고 정상에 섰으나 탄핵을 당했고 국정농단 혐의로 4년9개월간 옥살이를 했다. 광화문 앞 촛불 함성 앞에 절망했을 것이다.
 
  그러나 냉정하게 생각하면 더는 잃을 게 없다. 누구도 경험할 수 없는 배신과 절망의 맨 밑바닥을 경험했다.
 

  무슨 미련이 남아, 무엇이 무서워, 또다시 육중한 철문과 높은 담장, 성채 안에서 살아야 할까. 탄핵 당시의 무시무시한 광기가 떠올라서일까. 언제 돌변할지 모르는 팔랑개비 민심이 두려워서일까.
 
  여왕의 힐 대신 굽 없는 단화로 바꿔 신고 사저 밖으로 나와야 한다. 가끔 서점에 들러 신간을 고르고 슈퍼마켓이나 재래시장을 찾아 주민들과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라도 나누면 좋겠다. “이 말을 들으면 이 말이 옳고, 저 말을 들으면 저 말이 옳다”고 두루뭉술하게 말해도 미워하는 이가 없을 것이다.
 
 
  그날의 얼굴
 
  박 전 대통령의 명예회복을 바라는 이가 들으면 펄쩍 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지혜로운 대구시민들은 이미 ‘탄핵의 강’을 건넜다. 강을 건넜기에 윤석열 당선인도 기꺼이 지지할 수 있었다.
 
  기자는 수첩을 꺼내 떠오르는 생각들을 메모했다. ‘이제는 시들지 않는 그림 꽃이 아니라 시드는 꽃으로 여생을 살았으면, 자신을 밧줄에 묶은 정적들을 용서할 수 있다면, 용서 못 할 원한조차 하늘에 맡겨버린다면, 대통령 때 이루지 못한 꿈에 연연하지 않았으면, 누구를 후원한다는 말은 이제 안 했으면, 하루하루 건강한 삶을 살았으면….’
 
  기자는 문득 박 전 대통령이 국민의힘 전신인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꼬마정당인 미래연합을 창당했을 2002년 6·13 지방선거 때가 생각났다. 연보랏빛 외투에 단화를 신고 유세 현장을 누비던 그의 모습을 멀리서 바라본 일이 있다.
 
  당시 미래연합은 대구와 경주, 상주 등지에 후보를 냈지만 한 석도 얻지 못했고 당(黨)은 얼마 못 가 깨졌다. 그러나 그의 앞에 멈칫하며 경원시하는 이들에게 먼저 다가가 손 내밀고 악수를 청하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그러고 보니 꼭 20년 전이다.
 
朴 사저 구입 관련 대구 소문들…
 
  기자와 만난 대구 지인 몇몇이 ‘이상한’ 이야기를 했다. 달성군 쌍계오거리 박근혜 사저가 처음 지어질 때부터 퇴임 후를 예상하고 지어졌다는 것이다. 근거는 없지만 그런 얘기가 들린다.
 
  현풍TG에서 대로로 곧장 달려올 수 있는 사저 위치, 돋보이는 주변 경관이 그런 설(說)을 뒷받침한다.
 
  시가로 25억원에 달하는 박근혜 사저 매입 비용은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이하 가세연) 측이 전액 부담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세의 가세연 대표가 21억원, 강용석 소장이 3억원, ㈜가로세로연구소가 1억원을 마련해 집을 샀다는 것이다. 다만 ‘증여’가 아닌 ‘대여’라는 게 가세연 측의 설명이다. 취득세 3억원은 유영하 변호사가 부모 선산을 팔아 마련했다고 한다.
 
  박 전 대통령에게 집을 판 이는 대구의 중소기업으로 성공한 자동차 부품회사인 (주)S하이텍의 서모 대표다. 박 전 대통령 재임 시절인 2014년 동탑산업훈장을 받았다. 그해 7월 청와대에서 열린 ‘대한민국 중소기업인대회’에 서 대표가 참석했다. 두 사람은 1952년생 동갑이다.
 
  등기부등본을 찾아보니 서 대표가 사저를 처음 등기했을 당시 집값의 채권최고액은 72억원. 흔히 채권최고액은 실제 채권보다 20~30% 높게 설정된다는 점을 가정하면 대략 60억원으로 추산된다. 당시 저당권자는 신한은행.
 
  3년 뒤인 지난 2020년, 이 집의 채권최고액은 30억원. 반토막이다. 실제 집값은 25억원? 근저당권자는 신한은행에서 대구은행으로 바뀌었다.
 
  일부 집값을 상환해서인지, 낙폭이 커서인지 명확하지 않지만 가격이 많이 떨어졌다. 어쨌든 1년 뒤 이 집은 25억원에 박 전 대통령 소유로 넘어갔다.
 
  경남 양산 하북면으로
 
경남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평산마을에 위치한 문재인 대통령의 사저 모습이다. 최근 가림막을 제거하고 모습을 드러낸 사저는 문 대통령의 경남고 동기 승효상 건축가가 설계했다.
  이튿날 다시 차를 몰아 경남 양산 하북면으로 향했다. 통도사TG는 경부고속도로와 연결돼 있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내비는 유료도로인 대구~부산 고속도로, 밀양~울산 고속도로를 안내했다. 톨게이트에서 빠져나와 지산리 평산마을로 구불구불 흘러 들어갔다.
 
  커다란 덤프트럭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바쁘게 달려가고 있었다. 도로 곳곳이 공사 중이었다. 문 대통령 사저 입주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통통제 안내문’이 있기에 훑어보니 ‘하북도시계획도로 인도 정비 공사’라고 적혀 있었다. 공사 발주처는 양산시 도로시설과. 도로 양쪽으로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금세 평산마을에 도착했다. 마을 입구로 들어서니 작은 입간판이 보였다. ‘우리의 사생활을 지켜주세요!’라며 촬영·마이크·확성기·드론을 사용하지 말라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속이 뜨끔했다.
 
  평산마을회관 앞에 섰다. 태극기와 새마을기, 양산시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코로나 감염 예방을 위해 운영을 중단한다’는 문구와 함께 마을회관은 굳게 닫혀 있었다.
 
  마을로 내려가 어느 할머니에게 물어보았다.
 
  ― 대통령 사저라는 곳이 어딘가요?
 
  “저기 큰길 있지요? 저기로 올라가면 돼요.”
 
  ― 많이 올라가야 되나요?
 
  “조금만 올라가면 돼.”
 
  ― 여기 몇 가구 사세요?
 
  “얼마 안 돼. (나중에 알아보니 45가구 100여 명이 살고 있었다.)
 
  논농사하는 집은 몇 집밖에 없고 다들 밭농사 좀 합니다. 콩도 하고 고추도 하고….”
 
 
  “시끄럽게 생겼니더”
 
  ― 대통령이 퇴임 후 온다고 하니 좋으시죠?
 
  “뭐가 좋아. 조용한 동네에 뭐… 시끄럽게 생겼니더.”
 
  ― 그래도 조용한 마을에 사람이 자주 찾으면 물건도 팔리고 좋겠지요.
 
  “여기 이 마을에 물건 파는 사람은 없어.”
 
  ― 마을 분위기는 좀 어떻습니까.
 
  “하나도 좋은 것 없습니더.”
 
  ― 그래도 좋지 않겠습니까.
 
  “모르지, 뭐.”
 
  또 ‘마실(마을)’ 갔다가 오는 다른 할머니에게 물어보았다. 그런데 단호하다.
 
  “모린다(모른다). 나는 모린다.”
 
  기자와 눈도 마주치지 않는다. 발걸음을 옮겨 이번에는 밭일하는 중년 남성에게 다가갔다.
 
  “(사저는) 여기서 조금만 올라가면 됩니다. 우리야 불편하지. (대통령이 온다고) 뭐가 달라지겠습니꺼.”
 
  ― 땅값도 오르고….
 
  “여기 주민들 땅 가진 사람 별로 없어요. 절(통도사) 땅이 많고, 스님 개인 게 아이고(아니고) 조계종 땅이라예.
 
  농사 크게 짓는 사람 몇 안 되고 직장 생활하며 출퇴근하는 사람도 있고. (근처 집을 가리키며) 이 집은 부산에 업체를 가지고 있는 분인데 별장처럼 이 집을 쓰고 있어요.”
 
  ― 외지인이 있군요.
 
  “외지인이… 10가구는 넘을 겁니다.”
 
  ― 대통령이 오면 이곳도 노무현 전 대통령 사저가 있는 봉하마을처럼 되지 않을까요?
 
  “에이~. 안 돼. 시설이 그리 안 돼 있어. (마을 앞 도로는) 차 한 대도 제대로 못 다니는데.”
 
  ― 오다 보니 공사차량이 많던데요.
 
  “도로공사가 아니라 산책로 만드는 거지. (통도사 위락시설인) 환타지아 쪽은 (도로를) 확장하는 거고, 그 밑 여기는 주민 산책로를 만드는 겁니더. 사저가 생기기 전에 이미 계획돼 있던 거라요. 길 넓히는 기(게) 아이고(아니고)….”
 
  ― 대통령 온다고 주민들이 모여 환영하자, 뭐 하자는 분위기는?
 
  “그런 건 없지. 그럴 필요도 없고, 오면 사실 귀찮지 뭐. 아니, 복잡하니까.”
 
  이번에는 마을의 다른 남성을 만났다. 60대 안팎으로 보였다.
 
  “우리는 취재를 원래 응하지 않습니다. 처음에 취재를 해가지고 제가 혼이 났어요. 신문에다가 안 한 말까지 보태가지고. 아예 시끄러운 것은 싫으니까.
 
  조용하면 되니까, 자꾸 와가지고 케사면(그러면) 분위기만 자꾸 이상해지지. TV조선, 《신동아》… 다 왔다 간 거 알고 있어요.
 
  자꾸 기자분들이 와가지고 신문에 내버리면 조용한 마을이 자꾸 시끄러워지니까…. 대통령이 잘하고 못하고 이런 건 모르고, 동네가 조용해야 되지…. 자꾸 시끄러워지면 머리가 아프니까. 조용하게 있으면 되지, 뭐.
 
  대통령에게 오지 말라 할 수도 없고, 안 그렇습니꺼? 조용하면 되지, 예.”
 
 
  “우리야 환영해줘야죠.”
 
3월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종정 성파 스님 추대법회가 열리면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합장을 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성파 스님에게 “퇴임 후 자연으로 돌아가 잊힌 삶을 살겠다”고 말했다.
  ― 오라 말라 할 수 없지요.
 
  “그러니까 대한민국 국민이 어디 가서 살 권리가 있는데, 또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는지) 모르겠고…. 그래서 될 수 있으면 취재 안 하는 게 좋습니다. 우리야 (대통령을) 환영하는 거죠. 뭐, 환영해줘야죠. 그 정도로 알고 가세요.
 
  이사 들어오는데, 거지가 이사 와도 주민들은 좋아해야지. 사람들이 밖으로 떠나는 것보다 들어오는 게 좋지.”
 
  ― 오다 보니 도로 공사를 많이 하던데요.
 
  “여긴 확포장 공사를 할 수 없어요. 도로를 넓힐 수가 없어요. 전부 통도사 땅이라. (통도사와 협의를 안 하면) 넓히려 해도 넓힐 방법이 없어요. 합의가 돼야 넓히든지 오그리든지.”
 
  지난 20대 대선에서 이 지역의 표심이 어디로 향했는지 궁금해서 알아보았다.
 
  경남의 총 득표수 215만6882표 중 윤석열 후보는 58.24%, 이재명 후보는 37.38%였다. 신기하게도 부산의 득표율과 비슷했는데 윤 후보 58.25%, 이 후보 38.15%였다.
 
  문 대통령이 취임 전에 살았던 경남 양산으로 좁힐 때 이 후보 득표율은 경남 전체보다 5%가량 더 나왔다.(윤 53.52%, 이 42.18%) 심지어 양산 시장(김일권)은 더불어민주당 소속이다.
 
  대통령 사저가 들어선 양산시 하북면의 표심을 알아보았다. 총 투표수 5130표 중 윤 후보가 65.6% (3364표), 이 후보는 30.6%(1568표)를 차지했다. 이상하게도 하북면 표심은 이 후보에게 차가웠다. 사저 민심이 반영된 것일까? 아니면 이 후보 개인이나 민주당에 대한 호불호가 반영된 것일까? 알 수 없었다.
 
 
  사저 공사 현장
 
문재인 대통령 사저 공사 모습이다. 새로 심은 듯한 나무들이 보이고 포클레인이 육중한 돌을 깨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 사저로 걸음을 옮겼다. 병풍처럼 펼쳐진 영축산(해발 1082.2m)이 인상적이다. ‘영남 알프스’(경남 밀양·양산과 울산시에 걸친 고산지역)란 말이 빈말이 아니다. 통도사 주변의 잘생긴 소나무도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간간이 개 짖는 소리, 낯선 새 울음도 들린다.
 
  그러나 사저 공사 현장 쪽으로 다가서자 절삭기 소리가 사납다. 포클레인 두 대가 작업 중이었고 정원석인지 몰라도 엄청난 양의 돌들이 쌓여 있었다. 공사 차량을 정리하는 이에게 다가가 물었다.
 
  ― 저 돌이 무슨 돌인가요?
 
  “지금 길 닦으며 치우는 거예요. 산에서 흙을 털어내니까 돌이 저렇게 많이 나와서….”
 
  가만히 보니 사저 유리창을 누군가가 닦고 있다. 작업자는 대략 8명 정도. 책을 엎어놓은 듯한 지붕은 수수한 느낌이 들었고 집 외벽은 옅은 회색빛이었다.
 
  현장에서 후진하는 덤프트럭이 보이고, 인테리어 공사 차량, LPG 가스 차량 등이 사저 안으로 들어갔다가 밖으로 나온다. 실내 마감 공사 중임을 예상할 수 있었다.
 
  승용차가 지나가다 멈추더니 내려서 기자에게 다가와 “사저가 저 건물이에요”라고 묻는다.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휴대폰 카메라를 연신 터뜨린다.
 
 
  이상한 거래…
 
  문재인 대통령 내외는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313번지와 363-2~6번지 3860㎡ 땅과 부지 내 2층 주택을 14억7000여만원을 주고 사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구체적으로 313번지(총 291㎡) 중 199㎡와 363-2번지(383㎡), 363-3번지(27㎡), 363-4번지(1871㎡), 365-5번지(164㎡)의 토지(총 799.81평)와 주택 매입에 10억6401만원, 대통령 경호처가 지분 및 소유권을 가진 313번지 중 92㎡와 363-6번지(1124㎡) 등 367.84평 매입에는 4억599만원이 쓰였다.
 
  이 사저를 짓기 위해 김 여사가 담보 없이 지인에게 11억원을 빌렸다. 또 문 대통령은 새 사저의 토지를 담보로 농협은행 청와대 지점에서 3억8873만원을 빌렸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구(舊) 사저(양산시 매곡동)를 둘러싼 논란도 최근 점화되고 있다. 구 사저가 26억2000만원에 팔렸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시시스템을 보면 2021년 공시가는 2억9000만원 정도다. 일반적으로 단독주택 기준 공시가는 실거래가의 50% 안팎으로 추정한다.
 
 
  과한 ‘대통령 프리미엄’
 
  시민단체인 경제민주주의21 공동대표 김경율 회계사는 “문 대통령 사저만 그동안 유독 기준시가 비율이 낮았거나, 아니면 유독 비싼 값에 팔렸거나 두 가지 중 하나다”며 “둘 다 문제다. 유독 기준시가 비율이 낮았다면 보유세를 비롯해 각종 세금을 덜 냈다는 의미이고, 유독 비싼 값에 판 것이라면 누군가에게 그 차액만큼 증여세 없는 증여를 받은 셈”이라고 주장했다. ‘대통령 프리미엄’이라 이해해도 과하다는 것이다.
 
  참고로 인근 단독주택 실거래가는 2015년 이후 적게는 2억2000만원에서 많아도 6억2000만원을 넘지 않았다는 게 김 회계사의 주장이다.
 
  한편 사저와 경계가 맞닿은 일부 주민이 조경 공사로 일조권이 침해되었다며 반발하고 있다. 경호용 가림막으로 심은 수목이 문제가 됐다. 현재 산철쭉 1480그루, 조팝나무 640그루, 영산홍 400그루 등 각종 조경용 수목이 심어지고 있었다.
 
  사저로 올라가는 작은 삼거리는 가끔 병목현상이 일어났다. 지나가는 차량과 공사차량이 자주 엉켰다. 경적 소리에 주민들로선 짜증이 날 것 같았다. 사저로 들어가는 길가에 세워둔 차량 수를 세어보았다. 트럭과 승용차, SUV 차량을 합쳐 스무 대가 주차돼 있었다. 짐작건대 공사 관계자 차량이다. 사저 안쪽 도로에 주차된 차량을 더하면 서른 대는 족히 돼 보였다. 덤프트럭은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공사현장을 누비고 있었다.
 
다른 대통령 사저는…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의 서울 동교동 사저는 1961년 입주해 1995년 일산으로 이사를 갈 때까지 머물렀다. 이 사저에서 55차례나 연금당한 기록도 남아 있다.
 
  대통령 퇴임에 앞서 동교동 1층짜리 사저를 2층 658㎡(199평)로 증·개축했다. 최근 대통령 차남(김홍업)과 삼남(김홍걸)이 동교동 사저 소유권을 놓고 다툼을 벌였다.
 
  동교동 자택 바로 옆에 지은 아태평화재단 건물은 2003년 11월 아시아 최초의 대통령 도서관인 ‘연세대 김대중 도서관’으로 탈바꿈했다.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은 퇴임 후 1998년 2월 24일 서울 상도동 사저로 돌아왔다. 아침 산책과 조깅을 하며 집 뒤편 고구동산에 올랐다. 1999년 상도동 지역 주민 100여 명으로 이뤄진 배드민턴 동호회에 가입해 2013년까지 매일 아침 집 근처 체육관에서 배드민턴을 쳤다.
 
  다만 퇴임 전에 대지 337.5㎡(102.1평)에 건평 90여 평의 상도동 2층 집을 개·보수했다. 30년이 넘는 건물로 벽체 균열이 심했기 때문이었다. 1992년 대선 당시 “퇴임하면 ‘본래 모습 그대로’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공언했었다.
 
  현재 상도동 사저는 부인 손명순(孫命順) 여사 사후 소유권을 사단법인 김영삼민주센터에 기부토록 돼 있는 상태다. 경남 거제도 땅 등 52억원도 센터에 기부했었다. 경남 거제시 장목면 외포리 생가 옆에는 거제시가 운영하는 ‘김영삼 대통령 기록전시관’이 있다.
 
  전두환(全斗煥)·노태우(盧泰愚) 전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살던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사저를 증·개축하거나 수리해서 살았다. 전 전 대통령의 연희동 사저는 추징금 2205억원을 내지 못해 압류와 공매 처분이 이뤄졌고 이후 소송이 벌어졌다. 소송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반면 노무현(盧武鉉) 전 대통령은 2008년 고향인 경남 김해 진영읍 봉하마을로 귀향했다. 봉하마을 사저에는 묘역과 추모의집, 산책로인 ‘대통령의 길’ ‘봉화산 숲길’ 등이 마련돼 있다. 작고 조용하던 이 마을은 민주화의 성지가 되어버렸다.
 
  “대통령 구속, 이젠 안 되는 기라”
 
  인근 마을 구판장을 찾았다. “대통령이 온다”는 기자의 말에 주민 몇몇이 자기 생각들을 쏟아낸다.
 
  “대통령 구속시키먼(면) 이젠 안 되는 기라. 전(前) 대통령 구식(구속)시키는 기(것이) 전례구마.”
 
  ― 이제는 그런 불행이 일어나선 안 되죠.
 
  “앞으로 그래 안 됐으면 좋겠다.”
 
  “그래도 명색이 대통령인데…. 당신이 대통령 구속 안 시키게 좀 하이소.”
 
  ― 제가 무슨 권한이 있다고….(웃음)
 
  “(마을 주민 몇 분이 이구동성으로) 그런 일이 일어선 안 되지.”
 
  “그런 일이 없어야지, 안 그렇습니꺼?”
 
  “세계적으로 우리나라가 1위다. 대통령 구속시키는 것. 맞잖아?”
 
  “(문 대통령이) 잘못된 것 없는데 구속시킬 것 뭐 있노.”
 
  “있지. 있는데 그건 눈감아주고…. 기본(적으로) 대통령이니까. 맞지?”
 
  “(맞장구치며) 좋은 말(씀)이지.”
 
  이분들의 선량한 눈빛에 인사하며 밖으로 나왔다. 더는 대통령의 불행과 국가의 불행이 반복돼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 대통령이 가끔 이 구판장에 들러 주민들과 막걸리를 나눌 수 있을까? 혹여 앉을 자리를 안 내어주어도 섭섭한 기색 없이 의자를 가져와 그들 곁에 앉고서 막걸리를 따라주고 자신도 한 잔 마시면 좋겠다는 상상을 했다.
 
 
  권력의 정점에 선 대통령이니…
 
  멀리 영축산을 바라보며 “술맛 난다”고 껄껄껄 웃고서 술값을 추렴하며 기꺼이 지전 몇 장을 꺼내는 것이다. 일부러 술잔을 엎지르거나 운동가요 말고 뽕짝 노래도 배워 젓가락 장단도 배워두면 어떨까?
 
  정치인이나 서울 손님들이 찾아왔다는 전갈을 받으면 비서진에게 “혼자 멀리 산행을 떠났다”고 하고선 비틀비틀 기울어진 밭둑을 걷거나 손님이 다 떠날 때까지 산그늘에 앉아 해 질 녘을 바라본다면…. 그렇다고 밀짚모자 쓴 농군 모습의 전직 대통령이 될 필요는 없다.
 
  기자는 수첩을 다시 꺼내 이렇게 적어본다.
 
  ‘아무리 가까운 고향 후배라도 절대 정치 후원회장 자리는 맡지 말고, 아무리 대가가 없다 해도 공짜로 수건 한 장, 이쑤시개 하나 받지 말며, 아무리 바빠도 마을 경조사는 잊지 말고, 아무리 천주교 신자라도 자주 통도사에 들러 ‘귀한’ 법문을 챙겨 들었으면 좋겠다.
 
  권력의 정점에 서봤던 대통령이니 퇴임 후 아무것도 얻으려 하지 말고, 아무것도 되려고 하지 말며, 아무것도 가르치려 하지 말고, 아무것도 구하려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경호처 직원들을 모두 서울로 돌려보내는 것도 좋은 선택일지 모른다….’
 
 
  서울 서교동 467–5번지
 
서울 서교동 최규하 전 대통령의 사저 모습이다. 최 전 대통령은 30여 년을 이 집에서 살았다. 생의 마지막도 이 집에서 맞았다.
  최규하(崔圭夏) 전 대통령은 퇴임 후 어떻게 살았을까?
 
  서울 서교동 467-5번지 최 전 대통령 가옥을 찾았다. 그는 청와대에서 163일간 머물다 1980년 8월 18일 사저로 돌아왔다.
 
  국가등록문화재 제413호인 이 집은 1972년 지어졌다. 1980년 대통령직을 사임한 후부터 서거한 2006년까지 줄곧 이 집에서 머물렀다. 산 햇수만 따지면 30년이 넘는다. 그러고 보니 예외가 있었다. 1984년 갑작스러운 폭우로 지하실이 침수되자 며칠 동안 친지 집으로 거처를 옮겼다고 한다.
 
  지하 1층, 지상 2층 복층으로 된 이 집은 건축면적 142.68㎡(43.2평), 연면적 330.05㎡(99.8평)다. 1970~80년대 정치적·사회적 변동을 겪었던 시기의 유적일 뿐 아니라 고인 생전의 청렴하고 검소했던 생활상과 유품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집 앞에 서서 시멘트 기와지붕과 단아한 적(赤)벽돌을 바라본다. 초인종을 누르고 싶은 마음이 든다. 실제 벨을 눌렀더니 이내 문이 열린다.
 
《조선일보》 1980년 8월 19일 자 7면에 ‘최규하 전 대통령 옛집으로’라는 기사가 실렸다. 최 전 대통령이 퇴임 후 서교동 사저 거실에 첫발을 내딛는 모습이다.
  최 전 대통령은 퇴임 후 이 평범한 마당에서 맨손체조를 하며 무료한 아침을 보냈다고 한다. 한쪽에 물 펌프가 보이고 9만7624km를 탄 ‘서울2보 6747’ 1995년식 현대 뉴그랜저가 주차돼 있다.
 
  현관문으로 가기 위해 6개의 계단을 올라간다. 방 창문으로 연둣빛 커튼이 보이는데 누가 고개를 빼꼼히 내밀 것만 같다. 좁은 거실에 1953년산 ‘나쇼날’ 선풍기 한 대가 놓여 있다. 1970년대 초 생산된 ‘금성RF-745’ 라디오가 반들반들 새것 같다. 안방 붙박이 장 안에는 쓰던 이불이 그대로 놓여 있고 벽에는 약국에서 홍보용으로 만든 온도계가 걸려 있다. ‘수정약국’의 전화번호 앞 번호가 두 자리다. 29-3525, 3598번.
 
  응접실 작은 창에 매달린 구식 에어컨은 최 전 대통령의 장남이 미국 근무 시절 쓰던 것을 가져와 설치한 것이란다. 에어컨 소리가 요란해 손님이 오기 전 잠시 켰다가 가면 꺼버렸다고 한다.
 
  최 전 대통령은 2006년, 아내 홍기(洪基) 여사는 2004년 작고했다. 세상을 떠날 때까지 연탄보일러로 긴 겨울을 보냈다. 비서들이 연탄을 구하기 힘들다고 볼멘소리를 했지만 가스나 기름보일러로 바꾸지 않았다.
 
 
  “선영을 찾아 잡초를 뽑거나…”
 
1988년 3월 1일 퇴임한 전두환 전 대통령이 서교동 자택으로 최규하 전임 대통령을 찾아 환담을 나누고 있다. 당시 두 전임 대통령은 서로 상석을 사양, 마주앉은 자세로 얘기를 나누었다. 사진=조선일보DB
  홍 여사는 남편이 장관, 국무총리가 됐어도 가정부를 두지 않고 손빨래를 직접 하고 다림질을 했다. 홍 여사가 쓰던 방에 들어갔다. 평소 사용하던 재봉틀과 바느질 도구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원래 이 방은 딸이 사용했지만 출가 후 홍 여사가 차지했다. 벽에 2006년 1월 달력이 걸려 있다. 문득 가슴 한편이 저려온다.
 
  1993년 《월간조선》 10월호에 최 전 대통령의 인터뷰가 실려 있다. “집 안에서 쭉 지내고 있는데 갑갑할 때면 선영을 찾아 잡초를 뽑거나 앉아서 바람을 쐬곤 한다”고 했다. 문장의 행간에서 퇴임 후 삶이 무척 무료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5공 군부가 서슬이 퍼럴 시절이어서일까? 다음은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전직 대통령이 바깥 활동이라는 것을 하면 언론에서 무엇이라고 가십을 쓰고 또 어디선가는 그걸 두고 이러쿵저러쿵 수군대기도 하지 않아요. 보세요, 작년 여름인가, 저쪽(전두환 전 대통령을 지칭)에서 제주도로 피서 갔다가 신문에 나고 난리 났지 않습니까? 노태우 전 대통령이 퇴임하면서 서민으로 돌아가 살고 싶다고 밝혔을 때, 그렇게 살도록 내버려 두겠는가라고 생각했는데 과연 그래요. 집 밖으로 나가면 말이 나고, 그러니 좋든 싫든 집 안에 가만히 있는 시간이 많아요. 전직 대통령에게는 집이 일종의 수용소인 셈이에요.”
 
  어느 대통령치고 고독하지 않았던 이가 있었을까. 다른 전직보다 최 전 대통령이 더 외로웠을지 모른다. 《월간조선》 기자의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언짢은 감정이 없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허허, 내가 중학교 여학생입니까? 그런 마음을 얹어 두게. 적이니 원수니 하는 말이 다 쓸데없는 것입니다. 그 사람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지 맙시다.”
 
 
  “감당해야 하는 업일 수도 있고…”
 
  또 기자의 “전직 대통령을 너무 홀대하는 것 같아 섭섭하지 않으냐”는 물음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습니까?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을 지낸 사람으로서 감당해야 하는 업일 수도 있고…, 부덕의 소치라고 생각해야지요.”⊙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월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NewsRoom 인기기사
Magazine 인기기사
댓글달기 0건
댓글달기는 로그인 하신 후 남기실 수 있습니다.

202207

지난호
전자북
별책부록
북스토어
프리미엄결제
2020년4월부록
  • 지난호
  • 전자북
  • 별책부록
  • 정기구독
  • 월간조선 2018년 4월호 부록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