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인 공부모임의 주제는 포스트코로나와 4차산업, 블록체인, 공유경제 등
⊙ 與 이낙연·이광재·정세균·홍영표 등 대권·당권 주자들 총선 후 속속 공부모임 나서
⊙ 野 김무성, 전직 의원들 공부모임 만들어… 보수 재집권 목표
⊙ 과거 거물 정치인들의 공부모임은 세력 확장 목적, 최근 공부모임은 ‘공부하는 정치인’ 만들기
⊙ 정치인들 사이에서 “공부하지 않고는 시대를 따라갈 수 없다”는 위기감 확산
⊙ 與 이낙연·이광재·정세균·홍영표 등 대권·당권 주자들 총선 후 속속 공부모임 나서
⊙ 野 김무성, 전직 의원들 공부모임 만들어… 보수 재집권 목표
⊙ 과거 거물 정치인들의 공부모임은 세력 확장 목적, 최근 공부모임은 ‘공부하는 정치인’ 만들기
⊙ 정치인들 사이에서 “공부하지 않고는 시대를 따라갈 수 없다”는 위기감 확산
- 지난 6월 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여야 의원들의 공부모임인 ‘우후죽순’의 제1차 정기토론회가 열렸다. 주제는 ‘새로운 미래와 한국 경제·사회: 무엇을 할 것인가?’였다.
지난 6월 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여야 의원들의 공부모임 ‘우후죽순’이 첫 토론회를 열었다. 주제는 ‘새로운 미래와 한국 경제·사회 무엇을 할 것인가’였다. 우후죽순의 공동대표는 더불어민주당 이광재 의원과 한병도 의원, 미래통합당 최형두 의원이다. 이광재 의원은 이날 “사람이 모이면 생각이 모이고, 사상이 생기고 사상이 모이면 세상을 바꿀 에너지가 생긴다”며 “여야가 마음을 모아서 대한민국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능력을 함께 키우면 좋겠다”고 했다. 토론회 발제자로는 블록체인 전문 투자사 대표(해시드 김서준), IT 전문가로 불리는 변호사(구태언) 등이 참여했고 발제 후 여야 의원들의 난상토론이 이어졌다.
우후죽순은 표면상으로는 여야 의원들의 모임이지만, 실질적인 주도자는 이광재 의원이다. 이 의원의 대권 도전을 뒷받침하는 싱크탱크가 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한 국회 관계자는 “여시재(민간 싱크탱크) 원장으로 2년 이상 활동하며 공부에 집중했던 이광재 의원의 내공이 느껴졌다”며 “이 의원이 대권에 도전한다면 그동안 축적한 4차산업과 IT, 중국 등에 대한 지식이 여타 정치인에 비해 월등해 그 저력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했다. 우후죽순에서는 ‘공부하는 정치인’ 이광재의 모습이 본격적으로 나타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앞서 대권주자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00여 명 규모의 싱크탱크 출범을 예고한 바 있다. 이 의원의 측근들은 포스트코로나 정책을 모색하기 위해 교수와 업계 전문가, 현역 의원들을 모아 싱크탱크를 구성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밖에도 정세균 국무총리, 당권주자인 김부겸·홍영표 의원 등이 기존 공부모임을 확대하고 세력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야당에서는 김무성 전 의원이 공부모임을 구성했다.
유력 대권주자들이 싱크탱크 또는 공부모임을 결성하는 일은 많았지만 이처럼 동시에 여러 명의 거물급 정치인들이 공부모임을 결성한 경우는 흔치 않다. 따라서 2022년 대선은 ‘누가 공부를 많이 했느냐’가 화두가 될 전망이다. 포스트코로나 시대와 4차산업 시대를 맞아 정치·행정·법률 분야의 전문가인 정치인들이 위기감을 느끼면서 앞다퉈 배움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이낙연, 기존 공부모임 확대 개편해 싱크탱크로
각종 대선후보 여론조사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전남지사와 국무총리 시절부터 해오던 공부모임을 싱크탱크로 확대 개편할 예정이다. 이 의원은 정책 제안을 듣기 위해 대학교수 등 전문가들과 주말을 이용해 공부모임을 가져왔는데, 이를 확대해 더 많은 전문가를 영입하고 싱크탱크로 출범시키겠다는 것이다. 이 의원은 더불어민주당 코로나19국난극복위원장을 맡고 있어 이 위원회 산하 본부와 태스크포스 조직에 포진한 전문가들이 싱크탱크에 합류할 가능성이 크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2년 대선 전 출범시켰던 ‘담쟁이포럼’, 2017년 대선 전 만든 ‘정책공간 국민성장’과 같은 싱크탱크 겸 지지자 모임 형식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에서는 이낙연 의원이 당내 기반이 탄탄하지 못한 상태여서 세력화가 시급하다고 느끼고 있는 만큼 싱크탱크 구성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고 있다. 4·15총선 후 가장 유력한 대권주자로 꼽히는 이 의원이지만, 당내에서 ‘이낙연 독주’에 제동을 거는 분위기가 감지되기 때문이다.
이낙연 의원이 오는 8월 전당대회에서 당대표에 도전할 뜻을 보이면서 당내에서는 “당권과 대권은 분리돼야 한다” “이낙연 한 명에게만 힘을 몰아줘서는 리스크가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당권에 도전하는 홍영표 의원과 김부겸 전 의원도 이낙연 의원의 독주를 견제하는 중이다.
특히 당내 실세 의원 모임으로 알려져 있는 ‘더좋은미래’가 이 의원의 대권가도 독주에 부정적인 시각을 보이고 있다. 우원식·우상호 등 86세대 의원들이 주축을 이루는 더좋은미래는 현역 의원만 51명에 달한다. 간사는 진선미 의원이며 21대 초선 의원 26명이 합류하면서 당내 거대 세력이 됐다. 이들은 6월 초 정례회동에서 “전당대회가 대선 전초전으로 흐르는 게 부적절하다”는 의견을 밝혔고, 이에 이낙연 의원이 서운함을 드러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당 안팎의 사정을 고려해 본격적인 (이낙연) 싱크탱크는 8월 말 전당대회가 끝난 후 출범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는 “여전히 86세대, 운동권, 친노·친문 세력이 주류인 민주당에서 이낙연 의원이 조직력을 갖추려면 공부모임과 싱크탱크를 활용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덧붙였다.
이광재의 ‘우후죽순’
또 다른 대권주자로 떠오르는 이광재 의원은 21대 국회 여야 의원 공부모임 ‘우후죽순’을 이끌고 있다. 2011년 강원도지사직에서 물러난 후 연구활동에 집중해온 이 의원은 중국에서 칭화대 객좌교수를 지냈고, 2016년 민간 싱크탱크 여시재(與時齋) 부원장을 거쳐 2017년부터는 여시재 원장을 지냈다.
여시재는 2016년 8월 출범한 미래전략연구소로 초대 이사장은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였고 정치권과 학계·법조계·재계를 총망라한 이사진을 꾸려 주목을 끌었다. 여시재는 설립 취지를 “통일한국의 변화와 동북아의 변화를 주도할 정책 개발과 인재 육성을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 출범 당시 여시재의 핵심은 설립자인 조창걸 한샘 명예회장, 홍석현 당시 《중앙일보》 회장, 이광재 의원이었고 이 의원은 여시재에서 3년여간 부원장과 원장을 지내며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쌓았다. 이 의원이 당내 공부모임 대신 여야 의원들을 두루 참여시킨 우후죽순을 설립한 것은 당내 세력화를 넘어 대권을 노리는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이광재 의원은 나이에 비해 광역단체장에 3선을 지내는 등 이미 당내에선 중진급이고 친노 직계인 만큼 단순히 당내 세력화보다는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며 “범보수세력까지 공략하겠다는 야심이 보인다”고 했다.
당권 도전하는 김부겸과 홍영표
8월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에 출마 예정이며 총선 전부터 대권 도전을 선언하는 등 당권과 대권을 노리는 김부겸 전 의원은 기존의 싱크탱크 생활정치연구소를 강화한다. 생활정치연구소는 지난 2009년 김 전 의원이 민주당 원혜영·박선숙·양승조·조정식 의원 등과 함께 정치인과 학자들을 중심으로 출범시킨 싱크탱크다. 당시 참여했던 의원들이 21대 국회가 시작되면서 상당수 국회를 떠난 상황에서 이 연구소는 김부겸 전 의원의 대권을 준비하는 싱크탱크로 불렸다. 김 전 의원은 마포의 생활정치연구소를 확대 개편해 새로운 사무실을 얻을 예정이다. 김 전 의원은 애초 대권 도전을 선언했다가 6월 초 당대표 출마를 선언하며 “당대표가 되면 임기(2년)를 채우겠다”고 밝힌 바 있다. 당대표가 되면 대권은 포기하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대권을 포기하는 것인지, 당권을 향한 포석인지는 명확지 않다는 것이 당내 분석이다. 따라서 김 전 의원이 싱크탱크를 활용해 ‘킹메이커’ 역할을 할지, 직접 대권에 도전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역시 더불어민주당 당권에 도전하는 홍영표 의원은 기존 의원 공부모임 ‘경국지모’를 적극 활용할 전망이다. 경국지모는 20대 국회에서 민병두 의원이 주도해 만든 공부모임으로 홍영표·최운열 의원 등 중도온건파 의원들이 참여하고 있다. 민 전 의원이 컷오프로 총선에 나오지 못하면서 현재 이 모임을 실질적으로 주도하는 인물은 홍영표 의원이다. 경국지모는 한 달에 두 번 모임을 갖고 경제전문가를 초빙해 수업을 듣고 토론을 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홍 의원은 경국지모를 당내 최대 공부모임인 ‘더좋은미래’에 비견하는 조직으로 키우겠다는 의지가 강한 것으로 전해졌다. 더좋은미래 의원들이 각자 사비를 출자해 싱크탱크인 더미래연구소를 만든 것처럼 경국지모도 별도 싱크탱크를 만들 계획도 있다.
정세균의 ‘광화문포럼’
정세균 국무총리는 20대 국회의원들로 구성된 ‘광화문포럼’을 6월부터 개편했다. 정 총리는 17대 국회에서 ‘서강포럼’이라는 의원 공부모임을 만들었고, 20대 국회에서 광화문포럼으로 이름을 바꿔 공부모임을 가져왔다.
광화문포럼은 의원 20여 명 정도가 활동해왔는데, 21대 국회 임기가 시작된 6월부터 참여자가 크게 늘어나면서 조찬 공부모임을 정기적으로 갖기로 했다. 더불어민주당의 초선 의원이 크게 늘어나면서 포럼에 참여하고자 하는 의원들이 늘어난 것이다. 정 의원 측은 광화문포럼이 대권 도전의 전초전 아니냐는 일부 언론 보도에 “전혀 아니다”며 펄쩍 뛰기도 했다. 그러나 이낙연 의원과 비슷한 길을 걷고 있는 정 총리가 대권에 도전할 것이라는 예측은 꾸준히 이어진다. 특히 김부겸 전 의원이 “당대표가 되면 대권은 포기할 것”이라며 당권에 집중할 뜻을 보이자 김부겸 당권-정세균 대권이라는 시나리오를 두 사람이 합의한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이 밖에 송영길 의원은 21대 의원들을 대상으로 한 공부모임인 ‘기후 변화와 그린뉴딜 정책을 연구하는 의원 모임’을 공개 제안하고 뜻을 함께하는 의원들을 모으고 있다. 이미 20여 명의 의원을 확보했으며 정의당, 미래통합당 의원도 참여할 예정이다. 더불어민주당 포용국가비전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김민석 의원도 이를 주제로 한 공부모임을 결성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김무성, 전직 의원들 모아 공부모임
한때 유력한 대권주자였던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는 6월 17일 ‘마포모임(가칭)’을 창립한다. 전직 의원 40여 명이 참여하는 이 모임은 보수 재집권을 목표로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6월 17일 진행되는 첫 포럼의 연사로는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이 나선다. 강연 주제는 ‘코로나19 극복, 플랫폼 정부와 경제 체질의 유연성이 관건’이다.
김 전 대표의 한 측근은 “국회를 떠났다고 정치를 떠난 것은 아니다”며 “보수 재집권과 민생이라는 같은 뜻을 가진 전직 의원들이 모이고 공부하는 기회를 갖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여당은 의석수가 많은 만큼 의원들 중에 다양한 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사람이 많다”며 “여러모로 불리한 상황에 놓인 보수세력이 뒤처지지 않으려면 공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4차산업, AI 등과 관련한 전문가와 교수들은 정치권의 강연 요청이 여러 건 겹쳐 있는 경우가 많다”며 강사 섭외도 쉽지 않다고 귀띔했다.
야권 대권주자로 꼽히는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원희룡 제주지사는 원외라는 한계 때문에 아직 정치권 공부모임은 결성하지 못하는 상태다. 다만 원 지사는 지난 6월 9일 국회에서 열린 미래혁신포럼에 연사로 참여하는 등 여의도 정치권과 접점을 늘려가고 있다. 미래혁신포럼은 미래통합당 장제원 의원이 이끄는 모임으로, 통합당 의원뿐만 아니라 무소속 홍준표·권성동 의원도 고문으로 참여하고 있다.
공부모임의 목적은
과거 대권주자들의 공부모임은 세력 확장용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과거 문재인 대통령은 2012년 대선 6개월 전 ‘담쟁이포럼’을 출범시켰고 2016년 10월 ‘정책공간 국민성장’을 만들었다. 국민성장 소장은 주미대사를 지낸 조윤제 서강대 교수, 부소장은 조대엽 고려대 교수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18대 대선(2012) 2년 전 국가미래연구원을 발족했고 원장은 김광두 서강대 교수였다. 수백명의 인재를 보유한 이들 싱크탱크는 대통령 후보의 ‘과외교사’가 됐고, 집권 후 국정에 참여해 정책을 만들어나갔다.
이때까지만 해도 대권주자의 싱크탱크 및 공부모임은 후보와 측근들의 공부 목적도 있지만 정치권과 학계를 어우르는 세력화와 집권 시 활용할 인재 확보가 주된 목표였다. 친박계였던 전직 새누리당 의원은 “박근혜 전 대통령은 공부모임을 통해 많은 이야기를 듣고 공부하는 한편 인재를 양성하는 통로로 활용하기도 했다”며 “최근 대권주자들의 공부모임은 ‘공부’가 1차 목적인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는 “1990~2000년대만 해도 정치인들이 받는 과외수업은 경제가 큰 부분을 차지했는데, 이제는 4차 산업혁명부터 따라가야 할 이슈가 너무 많아 제대로 공부하지 않고는 민심을 잡을 수가 없다”고 공부모임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원내 공부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미래통합당의 한 초선 의원은 “4차산업과 데이터, 블록체인, AI(인공지능) 등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제대로 법안 하나 만들 수 없다는 위기감이 의원들 사이에 퍼져 있다”며 “공부모임 제안이 올 때마다 시간이 되는 대로 참여하려 하고 있다”고 했다.
한편 대권주자들이 공부모임에 집중하는 데는 여야 수장을 거친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자극제가 됐다는 얘기도 나온다. 여야 정치인의 상당수는 20대 총선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의 수장, 21대 총선에서는 미래통합당의 수장이었던 김 위원장과 함께 일한 경험이 있다. 미래통합당 한 초선 의원은 “팔순이 넘은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지금도 치열하게 공부하는 모습을 보면 초선 의원들이 반성할 정도”라며 “기본소득 같은 경제 분야는 물론 데이터나 4차산업 등에 대해서도 당내에서 지식 수준이 가장 높을 정도”라고 말했다. 통합당 사무처의 김 위원장 측근은 “비대위원장으로 바쁜 일정 중에서도 남의 이야기를 듣고 책과 자료를 읽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며 “여야 모두 김 위원장과 한 번이라도 함께 일해본 사람들은 모두 자극을 받았다고 한다”고 했다. 그는 김 위원장의 공부하는 모습에 대해 “정치인들이 배워야 할 덕목”이라고 덧붙였다. ‘공부하는 정치인’이 대세가 되고 있다.⊙
우후죽순은 표면상으로는 여야 의원들의 모임이지만, 실질적인 주도자는 이광재 의원이다. 이 의원의 대권 도전을 뒷받침하는 싱크탱크가 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한 국회 관계자는 “여시재(민간 싱크탱크) 원장으로 2년 이상 활동하며 공부에 집중했던 이광재 의원의 내공이 느껴졌다”며 “이 의원이 대권에 도전한다면 그동안 축적한 4차산업과 IT, 중국 등에 대한 지식이 여타 정치인에 비해 월등해 그 저력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했다. 우후죽순에서는 ‘공부하는 정치인’ 이광재의 모습이 본격적으로 나타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앞서 대권주자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00여 명 규모의 싱크탱크 출범을 예고한 바 있다. 이 의원의 측근들은 포스트코로나 정책을 모색하기 위해 교수와 업계 전문가, 현역 의원들을 모아 싱크탱크를 구성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밖에도 정세균 국무총리, 당권주자인 김부겸·홍영표 의원 등이 기존 공부모임을 확대하고 세력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야당에서는 김무성 전 의원이 공부모임을 구성했다.
유력 대권주자들이 싱크탱크 또는 공부모임을 결성하는 일은 많았지만 이처럼 동시에 여러 명의 거물급 정치인들이 공부모임을 결성한 경우는 흔치 않다. 따라서 2022년 대선은 ‘누가 공부를 많이 했느냐’가 화두가 될 전망이다. 포스트코로나 시대와 4차산업 시대를 맞아 정치·행정·법률 분야의 전문가인 정치인들이 위기감을 느끼면서 앞다퉈 배움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이낙연, 기존 공부모임 확대 개편해 싱크탱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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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의 유력 대권주자인 이낙연 의원은 곧 100여 명 규모의 싱크탱크를 발족할 예정이다. |
정치권에서는 이낙연 의원이 당내 기반이 탄탄하지 못한 상태여서 세력화가 시급하다고 느끼고 있는 만큼 싱크탱크 구성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고 있다. 4·15총선 후 가장 유력한 대권주자로 꼽히는 이 의원이지만, 당내에서 ‘이낙연 독주’에 제동을 거는 분위기가 감지되기 때문이다.
이낙연 의원이 오는 8월 전당대회에서 당대표에 도전할 뜻을 보이면서 당내에서는 “당권과 대권은 분리돼야 한다” “이낙연 한 명에게만 힘을 몰아줘서는 리스크가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당권에 도전하는 홍영표 의원과 김부겸 전 의원도 이낙연 의원의 독주를 견제하는 중이다.
특히 당내 실세 의원 모임으로 알려져 있는 ‘더좋은미래’가 이 의원의 대권가도 독주에 부정적인 시각을 보이고 있다. 우원식·우상호 등 86세대 의원들이 주축을 이루는 더좋은미래는 현역 의원만 51명에 달한다. 간사는 진선미 의원이며 21대 초선 의원 26명이 합류하면서 당내 거대 세력이 됐다. 이들은 6월 초 정례회동에서 “전당대회가 대선 전초전으로 흐르는 게 부적절하다”는 의견을 밝혔고, 이에 이낙연 의원이 서운함을 드러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당 안팎의 사정을 고려해 본격적인 (이낙연) 싱크탱크는 8월 말 전당대회가 끝난 후 출범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는 “여전히 86세대, 운동권, 친노·친문 세력이 주류인 민주당에서 이낙연 의원이 조직력을 갖추려면 공부모임과 싱크탱크를 활용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덧붙였다.
이광재의 ‘우후죽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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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6월 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우후죽순’ 토론회에서 고민정 의원 등 참석자들과 대화를 하고 있다. |
여시재는 2016년 8월 출범한 미래전략연구소로 초대 이사장은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였고 정치권과 학계·법조계·재계를 총망라한 이사진을 꾸려 주목을 끌었다. 여시재는 설립 취지를 “통일한국의 변화와 동북아의 변화를 주도할 정책 개발과 인재 육성을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 출범 당시 여시재의 핵심은 설립자인 조창걸 한샘 명예회장, 홍석현 당시 《중앙일보》 회장, 이광재 의원이었고 이 의원은 여시재에서 3년여간 부원장과 원장을 지내며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쌓았다. 이 의원이 당내 공부모임 대신 여야 의원들을 두루 참여시킨 우후죽순을 설립한 것은 당내 세력화를 넘어 대권을 노리는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이광재 의원은 나이에 비해 광역단체장에 3선을 지내는 등 이미 당내에선 중진급이고 친노 직계인 만큼 단순히 당내 세력화보다는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며 “범보수세력까지 공략하겠다는 야심이 보인다”고 했다.
당권 도전하는 김부겸과 홍영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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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의원이 지난 5월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제3회의장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의 ‘경제를 공부하는 국회의원 모임(경국지모)’ 특별간담회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역시 더불어민주당 당권에 도전하는 홍영표 의원은 기존 의원 공부모임 ‘경국지모’를 적극 활용할 전망이다. 경국지모는 20대 국회에서 민병두 의원이 주도해 만든 공부모임으로 홍영표·최운열 의원 등 중도온건파 의원들이 참여하고 있다. 민 전 의원이 컷오프로 총선에 나오지 못하면서 현재 이 모임을 실질적으로 주도하는 인물은 홍영표 의원이다. 경국지모는 한 달에 두 번 모임을 갖고 경제전문가를 초빙해 수업을 듣고 토론을 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홍 의원은 경국지모를 당내 최대 공부모임인 ‘더좋은미래’에 비견하는 조직으로 키우겠다는 의지가 강한 것으로 전해졌다. 더좋은미래 의원들이 각자 사비를 출자해 싱크탱크인 더미래연구소를 만든 것처럼 경국지모도 별도 싱크탱크를 만들 계획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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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권 도전說이 도는 정세균 국무총리가 지난 6월 1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코로나19 전문가 간담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
광화문포럼은 의원 20여 명 정도가 활동해왔는데, 21대 국회 임기가 시작된 6월부터 참여자가 크게 늘어나면서 조찬 공부모임을 정기적으로 갖기로 했다. 더불어민주당의 초선 의원이 크게 늘어나면서 포럼에 참여하고자 하는 의원들이 늘어난 것이다. 정 의원 측은 광화문포럼이 대권 도전의 전초전 아니냐는 일부 언론 보도에 “전혀 아니다”며 펄쩍 뛰기도 했다. 그러나 이낙연 의원과 비슷한 길을 걷고 있는 정 총리가 대권에 도전할 것이라는 예측은 꾸준히 이어진다. 특히 김부겸 전 의원이 “당대표가 되면 대권은 포기할 것”이라며 당권에 집중할 뜻을 보이자 김부겸 당권-정세균 대권이라는 시나리오를 두 사람이 합의한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이 밖에 송영길 의원은 21대 의원들을 대상으로 한 공부모임인 ‘기후 변화와 그린뉴딜 정책을 연구하는 의원 모임’을 공개 제안하고 뜻을 함께하는 의원들을 모으고 있다. 이미 20여 명의 의원을 확보했으며 정의당, 미래통합당 의원도 참여할 예정이다. 더불어민주당 포용국가비전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김민석 의원도 이를 주제로 한 공부모임을 결성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김무성, 전직 의원들 모아 공부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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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가 여의도 국회에서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
김 전 대표의 한 측근은 “국회를 떠났다고 정치를 떠난 것은 아니다”며 “보수 재집권과 민생이라는 같은 뜻을 가진 전직 의원들이 모이고 공부하는 기회를 갖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여당은 의석수가 많은 만큼 의원들 중에 다양한 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사람이 많다”며 “여러모로 불리한 상황에 놓인 보수세력이 뒤처지지 않으려면 공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4차산업, AI 등과 관련한 전문가와 교수들은 정치권의 강연 요청이 여러 건 겹쳐 있는 경우가 많다”며 강사 섭외도 쉽지 않다고 귀띔했다.
야권 대권주자로 꼽히는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원희룡 제주지사는 원외라는 한계 때문에 아직 정치권 공부모임은 결성하지 못하는 상태다. 다만 원 지사는 지난 6월 9일 국회에서 열린 미래혁신포럼에 연사로 참여하는 등 여의도 정치권과 접점을 늘려가고 있다. 미래혁신포럼은 미래통합당 장제원 의원이 이끄는 모임으로, 통합당 의원뿐만 아니라 무소속 홍준표·권성동 의원도 고문으로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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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6월 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미래통합당 초선 의원 공부모임에 참석해 강의 전 발언하고 있다. |
이때까지만 해도 대권주자의 싱크탱크 및 공부모임은 후보와 측근들의 공부 목적도 있지만 정치권과 학계를 어우르는 세력화와 집권 시 활용할 인재 확보가 주된 목표였다. 친박계였던 전직 새누리당 의원은 “박근혜 전 대통령은 공부모임을 통해 많은 이야기를 듣고 공부하는 한편 인재를 양성하는 통로로 활용하기도 했다”며 “최근 대권주자들의 공부모임은 ‘공부’가 1차 목적인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는 “1990~2000년대만 해도 정치인들이 받는 과외수업은 경제가 큰 부분을 차지했는데, 이제는 4차 산업혁명부터 따라가야 할 이슈가 너무 많아 제대로 공부하지 않고는 민심을 잡을 수가 없다”고 공부모임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원내 공부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미래통합당의 한 초선 의원은 “4차산업과 데이터, 블록체인, AI(인공지능) 등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제대로 법안 하나 만들 수 없다는 위기감이 의원들 사이에 퍼져 있다”며 “공부모임 제안이 올 때마다 시간이 되는 대로 참여하려 하고 있다”고 했다.
한편 대권주자들이 공부모임에 집중하는 데는 여야 수장을 거친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자극제가 됐다는 얘기도 나온다. 여야 정치인의 상당수는 20대 총선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의 수장, 21대 총선에서는 미래통합당의 수장이었던 김 위원장과 함께 일한 경험이 있다. 미래통합당 한 초선 의원은 “팔순이 넘은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지금도 치열하게 공부하는 모습을 보면 초선 의원들이 반성할 정도”라며 “기본소득 같은 경제 분야는 물론 데이터나 4차산업 등에 대해서도 당내에서 지식 수준이 가장 높을 정도”라고 말했다. 통합당 사무처의 김 위원장 측근은 “비대위원장으로 바쁜 일정 중에서도 남의 이야기를 듣고 책과 자료를 읽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며 “여야 모두 김 위원장과 한 번이라도 함께 일해본 사람들은 모두 자극을 받았다고 한다”고 했다. 그는 김 위원장의 공부하는 모습에 대해 “정치인들이 배워야 할 덕목”이라고 덧붙였다. ‘공부하는 정치인’이 대세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