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와 싸우고 전체주의 위협 경고해 온 노재봉 전 국무총리 타계

“현 상황은 ‘보수 대(對) 진보’가 아니라 ‘자유민주주의 대 전체주의’의 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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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조선DB
노재봉 전 국무총리가 4월 23일 밤 타계했다. 향년 88세.
고인은 서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뉴욕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은 후 1967년부터 서울대에서 강단에 섰다.  토크빌에 정통했고, 현실을 명쾌하게 분석하는 탁월한 정치학자였다. 현실정치에도 깊은 관심을 가져 1970년대 중반 이철승 신민당 대표의 '중도통합론'에 영향을 주고, 1987년 6.29선언 과정에서도 조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88년에는 "광주 사태는 김대중 씨의 외곽을 때리는 노련한 정치기술에 의해 발생한 것"이라고 말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고인은 민주화 이행 과정에 있던 노태우 정권 시절 대통령 특보(1988.12~1990.3), 대통령비서실장(1990.3~1990.12)과 국무총리(1990.12~1991.5)를 지냈다. 대통령비서실장에 임명됐을 때에는 휴직을 할 수 있었음에도 사표를 내고 서울대를 떠나는 깔끔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총리 재직 중에는 법과 질서를 세우려 노력했다. 특히 1990년 봄 운동권 학생들의 '분신정국'에 강경 대응했고, 전교조의 위험성을 일찍부터 간파해 전교조 교사 해직 등을 강행했다. 노태우 정부가 민주화의 물결 속에서 그나마 표류하지 않은 데에는 고인의 공이 컸다. 당시 노태우 전 대통령이 노 전 총리를 후계자 중 하나로 고려하고 있다는 소문이 있었고, 이를 뒷받침하는 증언들도 있다.
하지만 이 때문에 좌파세력이나 '노태우 이후'를 노리던 YS 일파는 고인을 눈엣가시처럼 여겼다. 심지어 고인이 '악질 친일경찰 노덕술의 아들'이라는 터무니없는 루머가 나돌기도 했다 (그의 부친은 1960~1970년대에 유명했던 라전모방 창업주 노준용 선생이었다). 제14대 국회에 민주자유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등원했으나, 1995년 YS정권의 과거사 청산 수사의 와중에 스스로 정계에서 은퇴했다.
말년에는 공산전체주의의 위협을 경고하는 데 앞장섰다. 김영호 현 통일부 장관, 조성환 전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장, 서명구 박사, 유광호 박사 등 자유민주주의와 전체주의를 깊이 있게 연구하려는 후학들을 모아 공부하고 그 결과물들을 엮어 <한국자유민주주의와 그 적들> 등의 책을 냈다. 2017년에는 한국자유회의에 참여해 문재인 정권의 좌파정책을 비판했다. 문재인 정권 시절이던 2018년 <월간조선>(8월호)과 건국 70주년 기념 인터뷰를 했을 때에 고인은 이렇게 말했다.
 “‘1919년 건국’ 주장은 (대한민국) 전복(顚覆)을 위한 프로파간다이다.”
 “1948년 건국은 영국혁명, 미국혁명, 프랑스혁명에 비견할 만한 정치혁명이다.”
 “현 상황은 ‘보수 대(對) 진보’가 아니라 ‘자유민주주의 대 전체주의’의 구도다.”
 “지금 실질적으로 체제가 변하고 있다. 적폐청산은 숙청이다.”
 “한국이 대륙문명권으로 흡수된다면 더 이상 ‘자유’는 생각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사활적(死活的) 이익을 사수하겠다는 의지 없는 나라는 핵 (核) 가진 동맹국도 어쩔 수 없다."
기자는 생전에 노재봉 전 총리를 여러 번 인터뷰를 했는데, 그때마다 명쾌한 논리와 학문적 깊이, 그리고 애국심에 압도되곤 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빈소는 4월 25일 서울 강남성모병원에 마련된다. 발인은 4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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