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통합당, '국민의힘'으로 개명...'국민'이라는 글자로 본 한국정당사

김병로-허정의 국민의당, 정주영의 통일국민당, 이인제의 국민신당, 안철수의 국민의당...DJ의 새정치국민회의만 집권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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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회는 8월 31일 당명을 '국민의힘'으로 최종 결정했다고 밝혔다. 통합당 비대위는 이날 오전 의원총회를 거쳐 당내 의원들에게 추인을 받은 뒤 다음달 1~2일 상임전국위원회와 전국위원회를 거쳐 당명 변경을 최종 확정한다고 밝혔지만, 이미 8월 31일 오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국민의힘’으로 당명 변경을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정당사에서 당명에 ‘국민’이라는 말이 들어간 정당들은 많이 있었다. 아마 그 효시는 1945년 9월 2일 백남훈 장덕수 윤보선 등이 조직한 한국국민당일 것이다. 하지만 이 한국국민당은 같은 해 9월 16일 창당된 한국민주당으로 흡수되고 말았다. 이승만 대통령의 측근이던 임영신씨가 만든 여자국민당이라는 정당도 있었는데, 1948년 11월 대한국민당으로 흡수됐다.
대한국민당은 신익희 윤치영 등이 만든 친이승만 정당이었는데 임영신의 여자국민당 외에도 지청천의 대동청년단 등이 합류했다. 하지만 신익희 등이 이승만과 거리가 멀어지면서 김성수의 한국민주당과 합류, 1949년 2월 민주국민당(민국당)을 만들면서 일단 해체됐다. 하지만 민주국민당이 내각제 개헌을 주장하고 나서자 1949년 11월 12일 윤치영 이인 등 친이승만 정치인들이 당을 부활시켰다. 대한국민당은 1951년 자유당 창당 전까지는 사실상의 여당 역할을 자임했다. 자유당 창당 이후에도 친여 성향의 정당으로 남아있다가 1958년 7월 해산하였다.

지금 국민들은 ‘국민의당’이라고 하면 안철수씨가 이끌었던 정당을 연상하겠지만 같은 이름의 정당이 이미 57년 전에 있었다. 5‧16군사혁명 이후 정당활동을 금지 당했던 구(舊)민주당계 정치인들은 1963년 1월 정치활동을 재개했지만, 곧 사분오열되고 말았다. 이들 가운데 민정당 민우당 신정당 등이 야권통합을 내걸고 그해 8월 국민의당 창당을 선언했다. 하지만 대선 후보로 누가 나설 것인가를 두고 윤보선 전 대통령을 내건 민정당계와 허정 전 과도정부 수반을 내건 신정당계가 내홍(內訌)을 겪다가, 결국 갈라서고 말았다. 이후 김병로 전 대법원장이 대표최고위원을, 허정 전 과도정부 수반이 대선 후보로, 당을 이끌었으나 1963년 11월 제6대 총선에서 국회의원을 두 명 배출하는데 그쳤다. 1964년 12월 민주당으로 흡수됐다.
국민당이라는 정당도 있었다. 1961년 1월 신민당이 제7대 대선 후보로 김대중 의원을 선출하자 이에 반발해 탈당한 윤보선 전 대통령이 진보당 출신 정치인 박기출씨 등과 함께 만든 정당이다. 1972년 10월 유신 선포 후 문을 닫았다.

1981년 제5공화국 출범 이후에는 한국국민당이라는 정당이 만들어졌다. 김종철 이만섭 김영광 이종성씨 등 구 민주공화당, 유신정우회(유정회) 등 출신 인사들이 중심이 되었는데,  제11대 총선에서 지역구와 전국구 합쳐서 25명을 당선시켜, 민주정의당, 민주한국당의 뒤를 이어 원내 3당으로 자리잡았다. 1985년 제12대 총선에서는 20명을 당선시켰다. ‘국민’자가 들어간 정당 중에서는 나쁘지 않은 성적이었지만, 본질적으로는 5공 정권이 만든 관제(官製)야당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1988년 10월 정치활동 금지에서 풀려난 김종필씨가 신민주공화당을 창당하자 일부는 민정당으로, 나머지는 신민주공화당으로 입당하면서 해체됐다.

‘국민’자가 들어간 정당 중 비교적 성공적이었던 정당이 1992년 1월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창당한 통일국민당일 것이다.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 이건영 전 3군사령관 등이 합류했다. 통일국민당은 그해 3월 제14대 총선에서 지역구 24명, 전국구 7명 등 31명의 당선자를 내면서 기염을 토했다. 탤런트 최불암 코미디언 이주일씨도 이때 금배지를 달았다. 대선을 앞두고 통일국민당은 YS와 갈등을 빚다가 민주자유당을 탈당한 박철언 김복동 유수호 의원 등을 받아들여 당세를 키웠다. 정주영 총재는 제14대 대선에서 16.3%를 득표, 3위를 기록했다. YS정권 출범 후 정권이 현대그룹에 대한 세무조사를 하는 등 전방위로 압박해오자 정주영 총재가 1993년 2월 의원직 사퇴와 탈당을 선언하면서 통일국민당은 해체 수순으로 접어들었다. 1994년 박찬종씨의 신정치개혁당과 합당, 신민당으로 간판을 바꾸어 달았다. 
‘국민’자가 들어간 정당으로 집권에까지 이른 정당은 김대중씨가 창당한 새정치국민회의가 있다. 1992년 제14대 대선에서 YS에게 패한 후 정계은퇴를 선언했던 DJ가 1995년 7월 정계복귀를 선언한 후 그해 9월 민주당을 고사(枯死)시키면서 창당했다. 1996년에 실시된 제15대 총선에서는 야당 분열의 결과 299석 중 79석을 차지하는 데 그쳤지만, 이듬해 자유민주연합(자민련)과 DJP 공조에 성공, 제15대 대선에서 DJ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정권을 잡았다. 2000년 1월 제16대 총선을 앞두고 전국정당을 지향한다면서 새천년민주당으로 간판을 바꾸어 달았다.
제15대 대선은 ‘국민’자가 들어간 또 하나의 정당이 선전(善戰)했다. 이인제씨의 국민신당이 그것이다. YS의 ‘깜짝 놀랄 젊은 후보’ 발언으로 일약 대권 주자 반열에 올랐던 이인제씨는 신한국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이회창씨에게 패하자 탈당, 1997년 10월 국민신당을 창당했다.  이만섭 서석재 김학원 원유철씨 등이 함께 했다. 이인제 후보는 492만 5000여표(19.2%)를 득표, 3위를 기록, DJ 당선에 혁혁한 기여를 한 후 1998년 9월 여당이 된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했다.

민주국민당은 2000년 제16대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과 새천년민주당 공천에서 탈락한 중진급 정치인들이 모여 만든 당이다. 한나라당 출신 김윤환 이수성 신상우 조순 이기택 박찬종, 새천년민주당 출신 김상현, 재야운동가 장기표씨 등 쟁쟁한 인사들이 참여했지만, ‘흘러간 물은 방아를 돌릴 수 없다’는 것을 입증했다. 춘천에서 한승수 의원, 비례대표 김숙자 의원 두 명이 당선되는 데 그쳤다. 한승수 의원은 DJ정부의 외교통상부 장관으로 입각했다. 2004년 제17대 총선에서 한 석도 얻지 못하면서 등록 취소됐다.
2005년 10월에는 자유민주연합을 탈당한 심대평 전 충남지사가 ‘중부권 신당’을 내걸고 국민중심당을 만들었다. 국민중심당은 2008년 2월 이회창씨의 자유선진당과 합당했다. 하지만 2010년 4월 심대평씨는 자유선진당을 탈당, 국민중심연합을 창당했으나, 그해 11월 다시 자유선진당으로 복당했다.
국민참여당은 2009년 9월 유시민 천호선 이병완 이백만 이재정씨 등 노무현 정권 인사들이 만든 정당이다. 2011년 12월 민주노동당 새진보통합연대 등과 합당, 통합진보당을 만들면서 사라졌다.
한나라당 정책위 의장을 지낸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은 2012년 제16대 총선을 앞두고 국민생각을 창당, 본인도 서초갑에서 출마했으나 원내 진출에 실패했다.

2016년에는 안철수 의원이  이끄는 국민의당이 창당됐다. 천정배 주승용 박주선 박지원씨 등 구 민주당계 호남정치인들이 대거 참여했다. 2016년 4월 제20대 총선에서 호남을 중심으로 지역구 25석, 비례대표 13석, 합계 38석을 확보, 기염을 토했다. 2016년 6월 29일 안철수-천정배 공동대표가 사임한 후 박지원 원내대표가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았다가, 이듬해 1월 정식 대표가 됐다.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 안철수 후보는 21.4%를 얻으며 3위로 낙선했지만, 제2차 전국당원대표자대회에서 당 대표로 복귀했다. 이후 호남계와 비호남계간의 갈등으로 내홍을 빚다가 2018년 호남계 의원 15명이 탈당하여 민주평화당을 창당하면서 당세가 급격하게 약화되었다. 그해 2월 바른정당과 합당하여 바른미래당을 창당하면서 문을 닫았다.

여기서 보듯 우리나라 정당사에서 ‘국민’이 들어간 정당은 DJ의 새정치국민회의를 제외하면, 대부분 군소정당으로 정치사에 큰 족적을 남기지 못하고 사라졌다. 외국에도 ‘국민’이라는 글자가 들어간 정당은 헤아릴 수밖에 없이 많다. 중국의 국민당, 인도의 국민회의당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중국 국민당은 대륙을 잃고 대만으로 쫓겨간 정당이고, 국민회의당은 인도의 독립운동과 건국을 주도했고, 건국 이후 상당 기간 집권했지만 네루 일족의 족벌정당이라는 비판을 면치 못했다.
공교롭게도  '국민의 힘'은 2003년 문성근 명계남씨등 친노인사들의 단체인 '노사모'와 대표적인 안티조선운동 단체인 '조아세(조선일보 없는 아름다운 세상) 등이 합세해 만든 '생활정치 네트워크 국민의 힘'과도 이름이 흡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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