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별책부록
  1. 2013년 1월호

김대중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 행정실장 羅鍾一

“청와대 이름 바꾸자는 논의도 했었다”

글 : 鄭蕙然 월간조선 기자  
사진 : 徐炅利 월간조선 기자  

  • 기사목록
  • 프린트
“어떤 인수위 전문서적에 ‘인수위 10조’가 있더군요.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에는 선거 때 있었던 일을 완전히 잊으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선거 때는 단순히 대통령 후보이지만, 당선된 순간부터는 나라의 책임을 맡은 대통령이니까 그에 맞게 행동을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선거 때 공약과 나라를 움직이기 위한 약속은 다르다는 것 말입니다”

라종일
73세.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서울대 정치학 석사, 영국 케임브리지대 정치학 박사.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헌법준비위원회 위원, 새정치국민회의 외무통일담당 특별보좌역,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행정실 실장, 국가정보원 1차장, 駐 영국대사관 대사, 일본대사관 대사,
청와대 국가안보보좌관, 우석대 총장 역임. 現 한양대 석좌교수.
  제15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1998년 2월, 인수위 활동을 마감하면서 《인수위 백서》를 발간했다. 인수위 구성, 초기 활동 범위, 임무 등을 자세히 적은 책이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활동 내용을 낱낱이 기록한 우리나라 최초의 기록물이다. 이종찬(李鍾贊) 전(前) 국정원장(당시 DJ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위원장)이 최종 책임자였는데, 이 기록을 실질적으로 주도한 사람은 라종일(羅鍾一) 전 DJ 대통령직 인수위 행정실장이었다. 나 전 실장은 대통령 선거운동이 한창이었던 1997년 8월에 이미 인수위 구성 준비를 시작했다.
 
  “선거운동해서 표를 얻어야지 무슨 대통령직 인수위냐는 말들이 많았지만 제 생각은 달랐습니다. 선거에 뛰어든 이상 무조건 이긴다고 생
 
  각했고, 이기고 난 뒤의 활동이 중요하다고 봤거든요. 대통령 당선자는 당선된 그 순간부터 수많은 일에 휩싸입니다. 당선연설이나 외신기자 인터뷰, 청와대에 인사 가는 것, 현충원 가는 것 정도라도 세팅이 돼 있어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이었습니다. 더구나 DJ정권은 과거의 혁명이나 권력 이동의 개념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정권이 넘어간 것 아닙니까. 그에 대한 준비를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DJ 대통령이 인수위 꾸릴 것을 지시한 것은 아니군요.
 
  “제가 말씀 드렸는데 별로 중요하게 생각지는 않는 것 같았습니다.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힘을 모으기도 빠듯한데, 이긴 이후까지 생각하기 뭣하다는 식(式)이었죠. 우연한 기회에 미국에서 대통령직 인수위에 참여한 경험이 있고, ‘인수위’라는 것 자체를 연구했던 미국인 두 명을 만나게 됐습니다. 그들과 대화하면서 인수위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고, 덕분에 확신을 갖고 인수위의 아웃라인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왜 그런가요.
 
  “임기 중에 해야 할 중요한 일들이 그때 대부분 정해집니다. 대통령의 권한이 제일 셀 때가 인수위 시절이죠. 사람들의 기대가 크고, 이때 중요한 일을 해야지, 갈수록 저항이 세집니다. 그때 운도 좋았습니다. 우리와 협력할 수 있는 신분이 아니었는데, 미국 인수위에 참여해 본 이들이 있어 셋이서 시작했죠.”
 
 
  ‘미국 대통령 인수위’ 관련 책 보며 준비
 
김대중 대통령이 지난 2001년 5월 11일, 라종일 주영 대사에게 신임장을 주고 있다.

  라종일 전 실장은 아직까지도 신분을 정확히 밝히기 어려운 그 미국인 두 명의 도움을 받으며 차츰 대통령직 인수위에 대해 지식을 쌓아갔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인수위’라는 것만 연구하는 학자가 제법 여러 명이고, 인수위에 대한 전문서적이 꽤 된다는 것도 이때 준비를 하면서 알게 됐다고 한다.
 
  “어떤 인수위 전문서적에 ‘인수위 10조’가 있더군요.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에는 선거 때 있었던 일을 완전히 잊으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대통령 후보 때 약속했던 일, 원한관계, 책임질일 전부를 말입니다. 대통령 후보 때의 약속은 전부 무효로 하라는 책을 읽고 놀랐었습니다.”
 
  —대통령 후보 시절의 공약을 안 지켜도 된다는 말입니까.
 
  “뭐 비슷한 얘기였습니다. 선거 때는 단순히 대통령 후보이지만, 당선된 순간부터는 나라의 책임을 맡은 대통령이니까 그에 맞게 행동을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선거 때 공약과 나라를 움직이기 위한 약속은 다르다는 것 말입니다. 또 하나 인상적인 것은 관료를 적으로 돌리지 말라고 돼 있었습니다.
 
  책에 따르면, 민선(民選)으로 권력을 잡게 되면 관료사회를 적으로 돌리기 쉽다고 하더군요. 민선에 의해 선출되지 않은 관리들이 어떻게 권력을 갖고 휘두를 수 있나, 국민의 선택을 받지 않았는데 저런 권력을 갖고 있으니 손을 봐야 한다는 식으로 말입니다. 이런 생각으로 관료사회의 폐해를 파헤치고 국민의 힘을 보여주려고 하는데 그러지 말라고 써 있었습니다. 관료들이 도리어 이들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방법이 100가지도 넘으니, 관료들을 적으로 돌리지 말라는 얘기였습니다. 그런 책들을 읽고, 미국 대통령직 인수위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말을 참고해 가며 인수위 준비를 했습니다.”
 
  라종일 전 실장은 ‘무에서 유’를 만드는 심정으로 인수위의 가이드라인을 만들어갔다. 그리고 김대중 당시 대통령 후보와 이회창 후보의 마지막 TV토론이 끝날 무렵에 대선기획위원회 위원장이었던 이종찬 전 국정원장을 인수위원장으로 정해 인수위원, 세부 위원회를 두는 등 밑그림을 그렸다.
 
 
  DJ 낙선 소회 담은 연설문 작성했다 파기
 
  또 그는 이즈음 이종찬 전 원장의 지시를 받아 ‘대통령직 수락 연설문’ 작성에도 매달렸다.
 
  “선거운동 기간에야 누구나 본인이 될 것이라는 확신으로 움직입니다. 하지만 실무 부서에서는 당선, 낙선 모두를 염두에 두고 일을 해야 합니다.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에 대비해 ‘대통령 수락 연설문’을 작성해 영문으로까지 번역을 마쳤죠. 이종찬 전 원장이 지시하지 않았지만, 저 혼자서 낙선할 경우에 대비한 연설문도 작성했습니다. 낙선 소회를 담은 짤막한 연설문이었는데, 대통령 선거 당일 밤 12시가 넘어가고 김대중 대통령의 당선이 확실시되자마자 찢어버렸습니다. 사실 기록보존차원에서 보자면 그때 그 연설문도 보관했어야 옳습니다.”
 
  라종일 전 실장의 예상처럼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되자마자 그의 일산 자택은 사람들로 인해 발디딜 틈이 없었다.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가 직접 그를 불러서 만나러 갔는데도, 수많은 사람으로 인해 저지당하기 일쑤였다. 넉 달 정도를 인수위 세팅에 몰두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대통령에 당선되고 보니 아쉬운 점도 여럿 눈에 띄었다.
 
  김대중 당선자는 라 전 실장에게 대략적인 내용을 듣고 난 뒤 직접 인수위 멤버를 구성했다. 국회의원들이 주로 인수위원으로 참여했는데, 당시 자민련과 연합정부(DJP)였기 때문에 자민련 측 의원, 새정치국민회의 측 의원이 뒤섞였다. 인수위원 25명 등 총 208명이 삼청동에 마련된 사무실에서 DJ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활동을 시작했다.
 
  “대통령제에서 연합정부라는 것은 사실 말이 되지 않는데 어쨌든 당시 상황은 그랬습니다. 인수위 시절부터 자민련에서 자기들을 좀 더 고려해 달라는 얘기를 많이 했습니다. 이종찬 위원장이 총책임자니까, 자민련 의원 중에서 한 명을 부위원장 시켜 달라는 요청을 여러 번 했는데 결국 뜻대로 이뤄지지 않았죠. 사실 DJP연합으로 정권을 창출했지만 새정치국민회의와 자민련은 성향, 배경, 지향점이 많이 달랐습니다. 인수위 시절에 두 당이 직접 부딪친 것은 아니지만, 자민련 측에서 섭섭했을 겁니다.”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는 매주 화요일 오후 4시에 직접 인수위 회의를 주재했다. 그리고 25명의 인수위원들은 매주 화, 금요일 오전 9시에 회의를 통해 인수위원회 활동을 이어갔다. 인수위를 하면서, 이전 정부에서 놓쳐버린 일을 처리한 경우도 있었다. 가령 ‘전임 대통령과 대통령 당선자 사이의 10시간 공백’ 등이 이 일이다. 라종일 전 실장의 얘기다.
 
  “인수위 행정실 업무를 하다 보니까 우리나라 국정운영에 공백기가 있더라고요. 전임 대통령의 임기가 신임 대통령 취임 전날 자정에 끝납니다. 그리고 신임 대통령의 권한이 대통령 취임식이 이뤄지는 오전 10시부터 생기더군요.
 
  전날 12시부터 취임식이 열리는 다음 날 오전 10시까지 국가의 중대사가 생길 경우 권한을 가진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전에는 이런 일을 전혀 몰랐죠. 그래서 전임 대통령의 권한이 끝나면서, 곧장 당선자가 취임식 이전이라도 전날 자정부터 모든 권한을 갖는 것으로 고쳤습니다.”
 
 
  DJ 취임 전에 안기부장 교체 요구 얘기 오가
 
  라종일 전 실장은 인수위 시절에 대해 ‘화장실 가는 짬조차 내기 어려울 정도로 바빴던 시절’로 기억했다.
 
  “사람들이 하도 많이 찾아오고, 처리해야 할 일은 한도 끝도 없이 많아서 어떤 위원은 화장실 갈 틈조차 없다고 했습니다. 정부부처 관리 중에서 인수위에 들어오고 싶어하는 이도 많았죠. DJ 인수위 시절에 논의됐던 것 중 하나는 ‘명칭 변경’이었습니다. 안기부(국정원의 전신) 이름을 바꾼 것도 이때였죠. 안기부 상징물, 표어도 바꿨죠. 기억이 확실치는 않은데 청와대 이름을 바꾸자는 얘기도 나왔습니다. 저는 반대 입장이었어요. 이름을 바꾸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없습니다.”
 
  —안기부 처리가 인수위 이슈 중 하나였군요.
 
  “이종찬 전 원장은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에도 안기부에 대해 의심을 거두지 못했죠. 안기부가 도청, 북풍공작 등을 통해서 국내 정권의 안보에 개입하는 것이 계속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결국 이 전 원장이 김대중 대통령께 대통령 취임 전에 김영삼(金泳三) 대통령에게 안기부장을 교체할 것을 건의하자는 얘기를 했는데, DJ가 그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인수위를 하고 있지만, 어쨌든 전 정권의 시대인 만큼 나중에 교체하면 된다는 식이었습니다.”
 
  —안기부가 국정원으로 이름을 바꾸고 1, 2실의 기능이 훗날 바뀌었지요.
 
  “네. 그건 철저히 DJ의 뜻이었습니다. 국내가 1차장, 북한 및 해외가 2차장이었는데 둘의 역할을 바꾸라고 했습니다. 국정원의 고유 기능은 해외와 북한 정보 입수가 우선인 만큼 1차장을 맡아야 한다는 것이 DJ의 강한 뜻이었습니다.”
 
  —제2 건국 얘기도 이때 나왔습니까.
 
  “인수위 시절은 아니고, 나중에 집권 후에 나왔죠. 하지만 그 생각 자체가 잉태된 것은 훨씬 전의 일입니다. DJ가 정계에서 은퇴를 하고 영국에 있을 때, 제가 만나게 됐습니다. 그때 그 자리에서 ‘나중에 정권을 잡으시면 제2 건국을 한다는 심정으로 일을 하셔야 한다’고 했는데 그 얘기를 귀담아들으셨던 모양입니다. 제 의도는 DJ가 다시 정치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나중에 DJ 대통령이 진짜로 그걸 시작했지요. 제2 건국 위원회도 만들고요. 하지만 사실 그런 것은 불가능한 얘기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어렵사리 대권을 잡으면 나라를 새로 만들어보겠다는 의욕이 생기는 모양입니다. 새로운 세상, 새판짜기 등이죠. 그런데 굉장한 오해예요. 세상은 있는 그대로 흘러가면서 조금씩 물줄기가 다른 곳으로 흐르는 것이지, 하루아침에 새로 물줄기가 나지 않습니다. 의욕과 현실이 잘 맞지 않는 일이 좀 벌어졌지요.”
 
  —DJ가 제2 건국을 생각할 정도로 체제 변화를 강력히 주장했습니까.
 
  “제2 건국을 내세운 것은 맞지만 과정상에서 급진적으로 일처리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인수위 사람들 사이에서도 ‘두고 보자’는 식의 얘기는 오가지 않았어요. DJ 역시 과거를 갚아주거나 남한테 복수를 하는 성향이 아니었습니다. DJ 좌우명이 ‘정치에 있어서 민중보다 두 걸음, 세 걸음이 아니라 한 걸음 앞서야 한다’입니다. 급진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특정 인물들이 DJ정부가 자기들을 혼낼까 봐 피해의식을 가졌던 것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한덕수 당시 산자부 차관, DJ 인수위에 강력히 반발
 
라종일(왼쪽) 국가안보보좌관과 이종석 NSC사무차장이 2004년 1월 5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 앞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

  라종일 전 실장은 인수위에 대한 인상적인 기억 중 하나로 정부부처 사람들의 행동을 꼽았다. 인수위에는 정부부처에서 파견 나온 사람들이 있었는데, 한 번씩 회의가 끝날 때마다 회의실 복도에서 전화기를 붙잡고 해당 부처에 전화를 하느라 바빴단다.
 
  “회의가 끝나면 한시라도 빨리 자기네 부처에 인수위에서 논의된 것들을 얘기하느라고 무척 바빴습니다. DJ 인수위 때 가장 반발했던 정부부처 중 하나가 산업자원부였습니다. 산자부의 통상 기능을 외교부로 옮기려고 했는데, 당시 한덕수(韓悳洙) 산자부 차관이 극렬하게 반대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기능이 외교부로 넘어갔고, 한덕수 당시 차관은 이후 외교부로 옮겼다가 총리까지 지냈지요. 세상 일은 참 모르는 겁니다.”
 
  라종일 전 실장은 인수위 시절에 국제신용평가기관 사람들과 면담을 나눴던 일도 인상적인 기억으로 꼽았다. 당시 우리나라의 당면 과제는 ‘IMF 조기 졸업’이었다. 인수위의 많은 활동도 당연히 ‘IMF에 대한 공부’, ‘금 모으기 운동’ 등 IMF 탈피에 맞춰져 있었다. 하루는 국제신용평가기관이 우리나라를 방문했다가, 정부부처로부터 홀대를 받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리고 그 임무가 자연스럽게 영국에서 공부했던 라종일 전 실장에게 넘어왔다.
 
  “사실 이전까지 우리나라 국민 중에서 IMF라는 기관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있었습니까. 국가신용을 평가하느니 하는 것들이 이상했던 때였죠. 더구나 우리나라 공무원들이 엘리트 의식, 주권의식이 있는데, 난데없이 국제신용평가기관이라며 노란 머리 녀석들이 찾아와서 국가신용을 채점하듯이 따져 물으니까 황당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해당 부처에서 홀대를 하니까, 이번에는 국제신용평가기관 사람들이 맘이 상했죠. 나중에 저한테 왔는데, 양쪽에 설명하느라 애를 좀 먹었습니다. 그만큼 국제금융, 신용등급평가 등에 대해 우리나라가 무지한 상태였습니다.
 
  그 사람들 질문 중 하나가 ‘IMF로부터 기금을 받으면 긴축이 기본인데, 그러면 분단국가인 한국이 안보는 어떻게 지키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답을 했습니다. ‘국방 예산을 줄이다 보면 위험하지 않겠느냐는 얘기 같은데, 국가 예산 외에 동맹관계, 국제여론, 국제정치가 현실적으로 작동된다. 이런 것들이 유기적으로 작동돼 한국의 안보를 지킬 수 있다’고요.
 
  그때 국제신용평가기관이 꽤 좋게 평가를 해서, 인수위에서 칭찬을 받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인수위 시절에 있었던 ‘금 모으기 운동’도 세계인들에게는 꽤 인상적이었을 겁니다. 인수위원들도 앞장서서 냈었죠.”
 
 
  인수위에 교수들 참여하는 것 반대
 
  —인수위원들 사이에서 정부 출범 이후에 어느 부처 장관으로 간다는 등 ‘내정’이 있지 않았습니까.
 
  “아니요. DJ 인수위 때는 그런 것은 일절 없었습니다. 오죽하면 이종찬 전 원장이 당연히 당신이 서울시장에 출마하는 것으로 알고 사무실까지 열었는데, DJ 대통령이 국정원장으로 발령을 냈잖습니까. 그때 인수위는 굉장히 순수했습니다. 제대로 된 정권교체는 DJ정부가 처음입니다. 인수위가 ‘점령군’처럼 행동한다는 얘기들을 하는데, 제 기억에 DJ 인수위는 별로 그랬던 것 같지 않습니다. 사실 인수위원들 면면을 보면, 이동복 위원(당시 자민련 의원)처럼 DJ 대통령이랑 노선이 다른 사람도 여럿이었습니다.”
 
  —요즘은 인수위에 대학교수들이 많이 들어가는데요.
 
  “저는 좀 반대입니다. DJ 인수위는 당시 현역 의원들이 참여했고요. 글쎄요. 대영제국 성공의 비결은 지식인을 박대했기 때문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지식인이 권력에 많이 참여하는 것이 옳지 못하다는 이론인데요, 지식인들은 세상사 경험이 적고, 자기 머리와 책을 통해서 생각하기 때문에 현실과 동떨어진 경우가 많습니다.
 
  지식인 홀대라는 것까지야 좀 심하지만, 그들이 인수위원이 돼서 현실적인 일을 기획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DJ 때도 국정지표심의위원회 같은 곳에 특별위원으로 교수들이 들어간 적은 있지만, 그들에게 중요 포지션을 맡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대선이 끝나면 인수위가 또 구성될 텐데 조언하고 싶다면요.
 
  “인수위 구성이나 아이템은 선거운동에 들어가는 시점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혹자는 이길지 질지 모르는데 무슨 인수위냐고 합니다. 이것은 절대 맞는 말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이긴 다음에 제대로 하는 거예요. 한 대통령이 국가를 운영하는 큰 밑그림이 인수위 시절에 그려집니다. 저는 최소 몇 달 전에, 대통령 후보가 표를 구하러 다니는 그 시점에 이미 인수위 작업을 끝마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월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