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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년 1월호

이명박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 대변인 李東官

“세계화와 성장을 고민할 때”

글 : 李政炫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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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단임제의 숙명입니다. 당대(當代)에 대통령이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은 힘들어요. 이제 정치 양극화에 대해 고민해야 합니다. 빈부격차가 확대되는 사회 양극화 못지않게 정치 양극화 역시 심각한 수준입니다. 한국정치가 조선왕조의 당파싸움을 닮아가고 있습니다. 무조건 상대방을 비판하고 반대하는 정당, 언론, 시민세력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무조건 반대합니다. 새 정부 역시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이동관
56세.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미국 하버드대 니만 펠로우. 동아일보 정치부 부장, 논설위원.
청와대 대변인, 홍보수석 비서관. 現 외교통상부 언론·문화협력대사(대통령 특임대사).
  “정책은 사람이 만드는 것입니다. 인수위 시절에 당선자의 생각과 정책을 뒷받침할 수 있는 건전한 정치세력을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작년 11월 초 서울시 종로구 정부중앙청사 별관 사무실에서 만난 이동관(李東官) 외교통상부 언론·문화협력대사의 표정은 예상보다는 밝았다. 이 대사는 2012년 5월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출마를 결심하고, 새누리당에 서울 종로구 공천을 신청했다. 새누리당은 종로구를 전략공천지역으로 선정하고, 홍사덕 전 의원을 공천했다. 당시 이 대사는 공천결과에 반발해 무소속 출마 가능성까지 언급했으나, 결국 결과에 승복했다. 2012년 8월 이명박 대통령은 그를 해외 언론 네트워크 구축, 국가홍보 등의 역할을 하는 언론·문화협력대사(대통령 특임 대사)에 임명했다.
 
  이 대사는 《동아일보》 정치부장을 지낸 언론인 출신이다. 2007년 공보단장으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 캠프에 참여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 후에는 청와대 대변인으로 악역(惡役)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정권이 중반을 지나면서 미운털 박히기 싫어서인지 적극적으로 정권을 위해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며 “나중에는 나 혼자밖에 없더라”고 말했다.
 
  이 대사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부터 대변인이었다. 그는 ‘MB의 아바타, 뼛속까지 MB맨’으로 불리며 이명박 정부의 영광과 좌절을 함께했다. 좌절이 너무 커서일까 한국정치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다. 특히 이명박 정부의 노력과 성과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 크게 분노하고 있었다.
 
  그는 평생 정치부 기자로 현실정치 주변을 취재했다. 그러나 주변에서 관찰하는 것과 직접 현장에 뛰어드는 것은 다른 듯하다. 이 대사는 대한민국의 정치 현실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5년 단임제의 숙명입니다. 당대(當代)에 대통령이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은 힘들어요. 이제 정치 양극화에 대해 고민해야 합니다. 빈부격차가 확대되는 사회 양극화 못지않게 정치 양극화 역시 심각한 수준입니다. 한국정치가 조선왕조의 당파싸움을 닮아가고 있습니다. 무조건 상대방을 비판하고 반대하는 정당, 언론, 시민세력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무조건 반대합니다. 새 정부 역시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구조에서는 세종대왕이 대통령이 되어도 좋은 평가를 받기 힘들어요.”
 
 
  “세계화와 성장에 중점”
 
  제18대 대통령이 직면할 현실 역시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인수위 운영에 대한 조언을 구하자, 이 대사는 이렇게 대답했다.
 
  —인수위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해 주세요.
 
  “정권 운영 프로그램을 짜는 곳입니다. 중요한 점은 정책과 사람은 함께 가는 것이라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저희는 너무 정책에만 집중했어요. 정책은 사람이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새 정부의 정책을 만드는 것 못지않게 정부와 함께 갈 사람과 책임지고 물러나게 해야 할 사람을 구분하는 작업 역시 중요합니다. 당선자의 생각과 정책을 뒷받침할 건전한 정치세력을 만드는 작업이 필요한 것이죠.”
 
  —이명박 정부의 인수위는 어떠했나요.
 
  “대통령의 의지는 정책 집중이었습니다. 사실 2007년 대선은 박근혜 후보와의 당 경선이 실질적인 본선이었죠. 10년 동안 누적된 좌파정권에 대한 분노가 표출된 선거였습니다. 그래서 후보로 확정된 이후 국정 운영을 위한 정책을 가다듬었습니다. 747공약(7% 성장, 4만 달러 소득, 세계 7위 경제), 비핵 개방 3000 구상(북한이 핵을 완전히 폐기하고 개방하면 10년 안에 국민소득 3000달러가 되도록 지원한다는 구상) 등이 후보 시절부터 구체적으로 마련됐습니다.”
 
  —인수위가 중점적으로 추진할 분야는 무엇이라고 보나요.
 
  “세계화와 성장에 대해 깊이 있게 논의해야 합니다. 과거 정부를 보면 나름의 시대정신이 있었어요. 김영삼 정부는 군정종식(문민정부), 김대중 정부는 수평적 정권교체, 노무현 정부는 권위주의 타파 등의 시대정신을 바탕으로 출범했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국민적 여망을 통해 출범했습니다. 경제를 살리려면 세계화와 꾸준한 성장이 불가피합니다. 새로운 정부 역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인적청산 못 해 촛불시위 촉발
 
  —당선을 위한 전략과 국정을 운영하기 위한 전략은 다르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당연합니다. 완전히 다릅니다. 일단 당선이 되면 최대의 과제는 일자리를 만들어서 양극화를 해소하고 규제개혁을 하는 일입니다. 규제개혁은 정치권에서 발목을 잡고 있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임기 초반 인수위 때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인수위에서 선택과 집중을 통해 구체적인 설계도가 나와야 합니다. 5년에 한 번씩 창고 속에 보관 중이던 낡은 정책을 꺼내는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됩니다. 밥상에 메뉴만 많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먹고사는 일에 집중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일자리 창출, 잠재 성장률 회복, 국제사회에서 위상 회복, 자원 외교 등이 중요합니다. 욕을 먹더라도 해야 할 일은 해야 합니다. MB정부에서는 의료·교육 규제 완화가 힘들었습니다. 투자개방형 의료법인을 만들어서 외국 환자를 끌어들이려 했습니다. 양질의 서비스 산업을 키우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반대가 심했습니다. 편의점에서 감기약 파는 것도 (반대 때문에) 겨우 됐어요. MB가 욕먹더라도 한 일이 많습니다. 그래서 손해도 많이 봤어요.”
 
  이 대사는 인터뷰에서 특히 ‘건전한 정치세력’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는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결정으로 촉발된 촛불시위의 원인을 정권교체 후 인적청산을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정권이 바뀌면 책임질 사람은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합니다. 새로운 정부 역시 골라 쓸 사람과 아닌 사람을 구분해야 합니다. 그러나 저희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500만 표 이상의 압도적인 차이로 당선됐기 때문에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모두 포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정권과 함께할 세력을 만드는 일을 소홀히 했습니다. 결국 좌파 10년 동안 사정(司正)기관, 언론사, 문화·시민 단체 등에 포진해 있던 반정부 세력이 제대로 정리되지 못했습니다.”
 
  촛불사태는 이명박 정부에 치명상을 안겼다. 이와 관련 인수위 시절부터 위기의 씨앗이 시작됐다는 주장이 있다. 2008년 초선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던 당시 한나라당 A의원은 MB정부의 인수위 시절을 이렇게 회상했다.
 
  “촛불사태는 정치의 부재(不在) 때문에 발생했습니다. 정무(政務)적 판단을 소홀히 했기 때문에 촉발된 사태입니다. 인수위 때부터 이명박 정부는 구름 위에 있는 것처럼 들떠 있었습니다. 10년 만에 정권교체를 했고 그것도 압도적인 차이로 당선됐습니다. 이명박 당선자는 마음이 급했습니다. 빨리 경제를 살려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했겠죠. 그래서 미국 쇠고기 수입을 서두른 것입니다. 미국이 최대 시장이니까요.
 
  제가 당시 농수산부장관에게 ‘너무 서두르는 것 아니냐. 미국 선거도 있고 국내 반발도 만만치 않을 텐데 서두르는 이유가 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장관은 ‘이미 노(盧) 정부에서 승인한 일로 절차상 문제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기업가(CEO) 대통령의 영향을 받아 정무 기능이 마비돼 있었습니다. 보통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 허니문(신혼) 기간이라고 해서 언론, 야당 등이 비판을 자제하는 것이 상식이죠. 그 기간에 추진력을 받아 할 일을 해야 하는데, MB정부는 촛불사태 때문에 정권이 출범하자마자 추진 동력을 잃어버렸습니다. MB정부는 정치를 소홀히 한 대가로 치명상을 입었습니다.”
 
 
  책임정치와 정치보복의 딜레마
 
  이동관 대사의 ‘건전한 정치세력 육성’ 주장은 ‘책임정치 실현’과 그 의미를 같이한다. 대통령이 바뀌면 새 정부의 철학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국정의 전면에 나서는 것이 당연하다. 이를 책임정치라고 부른다. 그러나 책임정치를 명분으로 정치보복을 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책임정치와 정치보복은 어찌 보면 백지 한 장 차이이다. 그에게 차이를 물었다.
 
  —책임정치가 정치보복으로 악용될 수 있습니다. 새 정부 역시 같은 고민이 있을 것입니다. 책임정치와 정치보복은 어떻게 다른가요.
 
  “정치보복이라는 것은 정상적으로 임기가 남아 있는데 합리적 절차를 거치지 않고 단지 전임 정부에서 임명됐다는 이유로 쫓아내는 것을 말합니다. 특별히 하자가 없는데 표적 수사를 해서 내쫓으면 정치보복이죠.”
 
  —이명박 정부는 어떠했나요.
 
  “이명박 정부는 그 작업을 소홀히 했습니다. 인수위부터 옥석(玉石)을 가리는 작업을 일관성 있게 했어야 했습니다. 예를 들면 정상적인 방식으로 그 자리에 갈 수 없는데 오직 정치적 연고로 자리를 차지한 사람은 물러나야 합니다.”
 
  —한국방송(KBS) 정연주 사장의 경우는 어떤가요.
 
  “정치도의(道義)의 문제입니다. 정연주씨가 KBS 사장으로 무슨 전문성이 있나요. 그분이야말로 정치적으로 임명된 것이 사실 아닌가요. 오직 코드 하나만으로 사장 된 사람입니다. 아직까지도 부당하게 자리에서 물러났다고 주장하고 다니는데 후안무치(厚顔無恥)한 일이죠.”
 
  —아쉬운 점은 없나요.
 
  “미국의 바이파티전십(양당정치제도)이 아쉽습니다. 미국 정치인들은 자신의 신념에 따라 크로스보팅(자유투표, 소속 정당에 반대하는 투표)하기도 하지만 소속 정당의 정책을 홍보하는 일에 적극적입니다. 소속 정당 의원들이 적극적으로 엠플리파이어(증폭기, 마이크) 역할을 합니다. 매주 의원들이 지역구에 내려가 소속 정당의 정책을 주민들에게 홍보합니다.”
 
 
  “네거티브 공격에 당했다”
 
2009년 4월 청와대 춘추관에서 이동관 대변인이 김은혜 부대변인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있다. 청와대는 녹색성장 실천을 목적으로 춘추관에 녹색자전거 10대를 비치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 언론은 MB의 측근 중심 인사를 집중 비판했다. ‘고·소·영’(고려대, 소망교회, 영남출신), ‘강부자’(강남부자) 등의 신조어가 등장했다. 인수위 인사들의 상당수가 소위 고소영, 강부자 출신이었다.
 
  그러던 중 인수위는 이경숙 위원장이 영어 ‘오렌지’를 ‘어륀지’로 발음하도록 가르쳐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발언한 ‘어륀지 사건’으로 크게 흔들렸다. 국민들을 아연실색(啞然失色)하게 만든 말실수였다. 당시 상황에 대해 물었다.
 
  —‘고소영’이라는 단어에는 부정적인 의미가 함축되어 있습니다. 대변인이 책임져야 할 일은 아니지만, 정권으로 봐서는 위기관리 실패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진보좌파 진영의 탁월한 네거티브(negative) 네이밍(작명술)이었습니다. 사회에서 발생하는 현상은 주로 만들어진 상징을 통해 대중에게 각인됩니다. 그래서 누군가 프레임(생각의 틀)을 상징을 이용해서 만들어 버리면, 아무리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을 해도 입증하기 힘듭니다. 고소영 정권이라는 비판이 그러했습니다. 그 사람들(진보좌파 진영) 정치적 상징을 만들어내는 능력은 정말 탁월합니다.”
 
  —새로운 정부 역시 과거와 같은 공격을 받게 될 것입니다.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요.
 
  “저희 이야기를 하면, 사실 ‘고·소·영’ 인사가 없는 것은 아니었거든요. 아쉬운 점은 대통령이 효율성에 집중했다는 점입니다. 일단 일에 집중하고 외부의 비판은 나중에 해결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고소영 정부가 아니다’는 상징적 사례를 만드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인수위 위원장을 당선자와 아무 연고가 없는 사람을 임명하든가, 호남 출신을 대폭 기용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선자는 ‘정치 깜짝쇼’는 하지 않는다는 입장이었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다 그 사람 책임이다’고 떠넘기면 되는데 그러지 않았습니다.”
 
  —인재(人材)풀을 넓히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과거에 비해 인재풀이 줄어든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는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습니다. 권력의 응집도가 강해야 넓게 쓸 수 있거든요. 박정희 시대에는 인재풀이 넓었습니다. 야당인사까지 데려다 썼죠.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권위주의 정부였기 때문입니다. 체제를 흔들 세력이 없으니 누구나 데려다 쓸 수 있었습니다. 계량화한다면 인재를 120% 활용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던 것이 점점 인재풀이 좁아졌습니다. 전두환 시절에는 90% 정도 사용했고, 김영삼 시절에는 그래도 3당 합당을 해서 쓸 수 있는 인재가 많았습니다. 그러다가 김대중 정권 시절에는 호남 정권이다 보니 확 줄었습니다. 사실 인재풀이 가장 좁았던 정부는 노무현 정부입니다. 코드 인사가 가장 심했습니다. 청와대 비서관들은 모두 자신의 참모 출신이었습니다.”
 
  —인수위가 구성된 후에 조직에 이름을 올리고 싶은 사람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실제 인수위 인사들 상당수가 이명박 정부에서 요직을 차지했습니다. 인수위는 어떻게 인력을 충원했나요.
 
  “인수위에는 중심부와 주변부가 있었습니다. 정권의 철학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중심에 있었습니다. DNA가 정부와 일치하는 사람들이 중심에 있었고 이들이 인력을 충원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참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 하이브리드형으로 발전했습니다. 인력 충원에는 기능적인 전문성을 중요시했습니다.”
 
 
  “MB정부 國政 철학 계승·발전”
 
2009년 12월 이동관 홍보수석이 청와대에서 열린 국가 경쟁력강화위원회 회의에 들어가면서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있다.

  —중심은 누구였나요.
 
  “경선과 대선 기간에는 6인회(이명박, 이상득, 박희태, 최시중, 이재오, 김덕룡)가 컨트롤 타워 역할을 했습니다. 이들은 대통령의 멘토였습니다. 6인회가 정책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인수위 구성과 조직은 정두언 의원이 주도적으로 참여했습니다.”
 
  —측근 중심으로 조직이 꾸려졌다는 비판이 많았습니다.
 
  “부정적으로만 볼 것이 아닙니다. ‘떴다방 정권’이니 하는 부정적인 평가도 있었지만 최소한 밥그릇을 중심으로 뭉치지는 않았다고 자부합니다. 탕평인사가 필요하기는 합니다. 그러나 일의 효율성을 생각할 때 정권과 DNA를 공유한 사람들이 일을 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5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가시적 성과를 내려면 정권의 가치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전면에 포진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특히 정권 후반부에 그런 분들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저희는 거꾸로였습니다. 후반부로 갈수록 정권의 가치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줄어들었습니다. 이들이 물러나지만 않았어도 이명박 대통령이 더욱 좋은 평가를 받았을 것으로 봅니다.”
 
  이동관 대사에게 향후 진로를 묻자, 과거 노태우 정부의 공과(功過)에 대해 이야기하며 향후 계획을 설명했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가 노태우 정부를 재평가한 《노태우 시대의 재인식》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사실 노 전 대통령은 업적이 많습니다. 북방외교를 성공시켰습니다. 일산, 분당 등 신도시를 만들어서 집값 상승도 억제했습니다. 그럼에도 노태우 정권에 대한 평가는 좋지 않습니다. 그것은 당시 정치세력이 모두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정치라는 것이 쉽게 말해 ‘뜻이 같은 사람들끼리 패거리를 만드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철학을 대변하는 조직을 만드는 것이죠. 지금은 이명박 정부가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하지만, 이 대통령 퇴임 이후 노스탈지아(향수)가 국민들에게 생길 것입니다. 그때를 대비해서 MB정부의 국정철학을 정리하고, 계승·발전시키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서서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 광복 이후 대한민국의 헌정사(憲政史)에서 성공한 대통령을 찾기는 힘들다. 이는 공(功)에는 야박하고 과(過)는 집중 부각시키는 정치문화에 기인한다. 새롭게 출범하는 정부의 인수위는 좀 더 객관적으로 전임(前任) 정부의 공과를 파악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역사가 발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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