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별책부록
  1. 2012년 4월호

30 뉴질랜드 통가리로 노던 서킷

마오리 부족 신화가 담긴 성스러운 땅

글 : 안광태 여행작가  

  • 기사목록
  • 프린트
⊙ 걷는 거리 : 50km
⊙ 걷는 시간 : 3박4일
⊙ 코스 : 화카파파~케테타히 산장~통가리로산~
    화카파파
⊙ 난이도 : 매우 힘들어요
⊙ 좋은 계절 : 10월~이듬해 6월









가늘게 화산연기를 내뿜고 있는 나우루호에와 만년설에 감싸인 순백의 루아페후가. 나우루호에와는 마치 영화 <반지의 제왕>의 ‘운명의 산’을 떠올리게 한다.
  뉴질랜드는 크게 두 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북섬과 남섬이다. 그 땅에 사는 양의 숫자는 4000만 마리, 소는 1000만 마리, 사슴은 200만 마리나 된다. 하지만 인구는 고작 400만명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래서 그런지 뉴질랜드는 어디를 가나 여유롭고 평화롭다. 그러나 뉴질랜드는 환태평양 조산대에 자리 잡고 있어 활화산이 끓어오르고 있다. 북섬에 있는 로토루아의 간헐천과 통가리로(Tongariro) 국립공원의 활화산들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마오리 부족이 국가에 헌납한 땅, 세계복합유산 지정
 
  뉴질랜드를 대표하는 화산 통가리로 국립공원은 북섬 중앙부에 위치해 있다. 뉴질랜드의 관문 오클랜드와 수도 웰링턴의 중간 지점이다. 통가리로 국립공원에는 북섬의 최고봉인 루아페후(2797m), 나우루호에(2287m), 통가리로산(1967m) 세 개의 화산이 있다. 까마득한 옛날 아오테아로아(뉴질랜드의 마오리 이름)의 타우포 호수를 끼고, 나티투화레토아(Ngati Tuwharetoa)라는 마오리 부족이 살았다. 어느 날 그 부족의 제사장이 백성을 위하여 바다 같은 타우포 호수를 건너 통가리로 땅을 탐험하다가 도중에 심한 눈보라를 만나 절체절명의 위험에 처했다. 생사의 기로에 선 그는 마오리 선조의 고향인 하와이이키를 향해 간절히 기도하며 불을 불렀다. 마침내 그의 기도에 응답하여 환태평양 조산대라 불리는 바다 밑을 통하여 불이 건너왔다. 그 불은 통가리로 땅에서 화산으로 폭발했고, 그 열기가 제사장을 살렸다. 그런 까닭에 오늘날까지도 통가리로 국립공원은 마오리들에게 산 이상의 신성(神聖) 그 자체이다.
 
  1887년 나티투화레토아의 추장이었던 테헤우헤우투키노 4세가 성스러운 통가리로 땅을 백인들로부터 지켜 내기 위하여 국립공원으로 지정해 달라고 요청하며 국가에 헌납한다. 이에 통가리로 땅은 뉴질랜드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된다. 세계에서도 네 번째이다. 그리고 1993년 자연과 문화, 두 가지 측면 모두에서 그 중요성을 인정받아 세계 최초로 복합 세계유산으로 등재된다.
 
  통가리로 노던 서킷은 코를 찌르는 화산연기 속에서 활화산의 표면을 오르내리는 경이로운 트랙이다. 완벽한 화산의 전형인 나우루호에를 가운데 두고 루아페후와 통가리로산 사이를 한 바퀴 빙 도는 트랙이다. 그래서 어느 곳을 출발점으로 하든, 어느 방향으로 돌든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노던 서킷 출발점은 국립공원 관리공단 격인 DOC(Department of Conservation) 화카파파 방문자 센터 100m 아래 나우루호에 플레이스라 불리는 길 끝에 있다.
 
  인적 뜸한 트랙에 밟히는 화산석을 벗 삼아 느긋하게 미끄러져 들어갔다. 화이호호누 산장으로 향한다는 표지판을 뒤로하자 키 작은 너도밤나무 관목 숲과 풀숲이 반복하며 이어졌다. 얼마 후 표지판과 함께 본격적으로 검은 용암지대가 시작되었다. 1만5000년 전, 루아페후가 토해 낸 용암이 흘러내린 것이다. 용암지대를 이리저리 헤집고 나아가자 쏟아지는 물소리가 바람을 갈랐다. 화산암을 뚫고 20m 높이에서 떨어지는 타라나키 폭포다. 폭포를 뒤로하고 오렌지색 화살표를 따라 진흙탕 길을 오르내리자 드디어 타마 안부에 도착했다. 타마 안부는 나우루호에와 루아페후를 잇는 능선이 잘록하게 연결되는 부분이다. 타마 안부 분기점에서 하부 타마 호수(1240m)는 왕복 20분, 상부 타마 호수(1314m)는 왕복 1시간 거리다.
 
  강한 비바람에 시달리며 타마 호수에 이르자 청금석의 우아함과 천고의 고고함이 빛을 발했다. 상·하부 타마 호수는 분화구에 물이 고인 칼데라호다. 주능선을 타고 코앞으로 이어지는 나우루호에 또한 영화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운명의 산’ 그것처럼 구름 속에서 잠깐 잠깐 모습을 드러내 호수의 신비감을 한층 더해 주었다.
 
  타마 안부를 내려서 황량한 고원지대를 두 시간 가량 계속해서 나아가자 요정이라도 살 것 같은 작은 빨간 집 한 채가 숨어 있었다. 1904년에 세워진 옛 화이호호누 산장이다. 뉴질랜드에서 가장 오래된 산장으로 두 개의 작은 방을 가진 초기 산장의 전형이다. 날아드는 화산재 속에서 100년 넘게 버텨 온 산장은 1968년 은퇴하여 지금은 산악 역사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새롭게 지어진 화이호호누 산장과 캠프장은 화이호호누 시내 건너편에 자리하고 있었다. 반대편 방향으로 통가리로 노던 서킷을 돌고 있던 몇몇 트레커들이 빗속에서 찾아온 지각생을 반갑게 맞아 주었다.
 
오렌지색 표지를 따라 타마안부로부터 내려오고 있는 트레커. 통가리로 노던 서킷은 대부분 시계방향으로 트레킹한다.

 
  기기묘묘 화산지형과 형형색색 식물 군락
 
  케테타히 산장으로 향하는 둘째 날 아침은 녹음을 깨뜨리는 싱싱한 햇살이 깨웠다. 전날 흠뻑 젖은 옷가지들은 산장 관리인 앤이 난로를 피워 준 덕택에 그럭저럭 말라 있었다. 뉴질랜드 국립공원 산장 관리인은 대부분 여성이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DOC 산장 관리인들은 2주 근무 후, 1주를 휴식하고 매번 산장을 순환하며 근무한다고 한다.
 
  화이호호누 산장을 뒤로하고 우거진 너도밤나무 숲을 벗어나자 세상 천지가 훤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드넓은 남쪽 고원 너머로 만년설에 뒤덮인 루아페후가 아직도 떠나기 싫어하는 구름 부스러기들과 숨바꼭질을 하고 있었다. 북서쪽 나우루호에 또한 잔설에 쌓인 완벽한 원뿔 모양의 몸매를 자랑하며 감질나게 내비쳤다. 마지막 숲을 지나자 기기묘묘한 화산지형과 형형색색의 특이한 식물 군락이 그림처럼 펼쳐졌다. 시원스레 뻗어 있는 동쪽 카이나마와 능선과 눈을 맞추며 몇 개의 시내를 건너고 구릉을 넘자 오투레레 산장에 도착했다.
 
  옆으로 작은 폭포를 감추고 있는 오투레레 산장은 케테타히 산장과 화이호호누 산장의 중간 지점이다. 외계 혹성 같은 주변 경관 덕에 산장의 야외 테이블에서 즐기는 점심은 그야말로 압권이다. 산장을 지나면서 본격적으로 오투레레 계곡의 진면목이 펼쳐진다. 울긋불긋 알록달록 세상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식생과 풍경이 정말이지 그곳은 지구가 아니라 어느 외계 혹성의 표면이라는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오투레레 계곡을 지나자 에메랄드 호수와 눈 덮인 봉우리들이 나타났다. 1800년 전, 화산 폭발로 생겨난 에메랄드 호수는 레드 크레이터의 동쪽 사면을 따라 모두 세 개가 있다. 호수에 다가가면 신비로운 푸른 빛깔과 함께 유황 냄새가 코를 찌른다. 에메랄드 호수를 뒤로하자 설산에 둘러싸인 엄청난 넓이의 분지가 나타났다. 센트럴 크레이터다. 오투레레 계곡에서 넘어온 길은 그곳에서 통가리로 알파인 크로싱(Tongariro Alpine Crossing) 트랙과 만난다. 케테타히 산장을 향하여 나지막한 구릉 하나를 오르자 눈밭에 싸인 호수 하나가 짙푸른 하늘을 담고 있었다. 마오리들이 타푸(Tapu·성역)라 부르며 신성하게 여기는 블루 호수다.
 
  호수를 지나 노스 크레이터의 산록을 따라 내려가자 자욱하게 수증기를 뿜어내는 온천과 함께 마침내 케테타히 산장이 눈에 들어왔다. 케테타히 온천 역시 마오리들이 타푸로 여기는 곳으로 예부터 유명한 온천이다. 지금은 마오리 재단이 사유지로 보호하고 있기 때문에 출입 및 온천이 금지되어 있다. 2시간 남짓 거리에 있는 케테타히 출입구는 투랑이로 가는 47번 도로와 연결된다. 유명한 통가리로 알파인 크로싱은 그곳에서부터 반대편에 있는 망아테포포 출입구까지를 말한다. 통가리로 노던 서킷은 통가리로 알파인 크로싱을 포함하는 트랙이다.
 
  다음 날 아침, 발아래 세상은 온통 구름바다에 가려져 있고 통가리로만이 홀로 솟아 외로운 섬이 되어 있었다. 케테타히 온천의 유황 냄새를 맡으며 전날 내려왔던 협곡을 거슬러 통가리로 산 정상을 향하여 노스 크레이터를 가로질러 설벽에 붙었다. 사방으로 그려 내는 활화산의 진풍경에 홀려 정신없이 눈밭을 오르자, 어느새 더는 갈 곳이 없었다.
 
  통가리로 산 정상에 서니 구름바다 건너 아득히 먼 서쪽으로 또 하나의 눈 덮인 섬이 신기루처럼 떠 있었다. 에그몬트국립공원의 타라나키 산(2518m)인데, 가까이에서 보면 일본의 후지 산(3776m)과 놀라울 만큼 닮았다. 눈을 돌려 남쪽을 보자 가늘게 화산연기를 내뿜고 있는 ‘운명의 산’ 나우루호에와 만년설에 감싸인 순백의 루아페후가 심장을 멈추게 했다. 전형적인 원추형 화산인 나우루호에는 사실 통가리로 산에 속하는 하나의 분화구이다. 아직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나우루호에는 9년마다 한 번꼴로 폭발하고 있다.
 
  응고된 용암 호수인 노스 크레이터를 뒤로하고, 남동쪽에 있는 레드 크레이터로 내려갔다. 이름 그대로 시뻘건 레드 크레이터 안에는 지금은 잠시 쉬고 있는 마그마 분출구가 지옥의 문처럼 섬뜩하게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다. 서쪽 방향으로 급경사를 내려서자 거대한 원형 경기장을 닮은 드넓은 평지에 다다랐다. 통가리로와 나우루호에, 그리고 레드 크레이터로 둘러싸인 사우스 크레이터다. 사우스 크레이터를 건너자 나우루호에의 턱밑인 망아테포포 안부에 도착했다.
 
  망아테포포 안부에서부터 소다 스프링 계곡 아래로 내려설 때까지는 엄청난 용암 지대이다. 산자락 전체가 용암으로 새까맣게 덮여 있다. 용암 지대를 내려서니 두꺼운 용암을 뚫고 솟아난 맑은 샘물이 작은 폭포를 이루며 쏟아져 내렸다. 소다 스프링이다. 온통 새까맣기만 한 용암지대에서 푸른 이끼와 풀들이 새삼스럽다. 소다 스프링이 만들어 낸 망아테포포 시내를 따라 얼마를 걸으니 망아테포포 산장이 내려다보였다. 산장을 지나자마자 화카파파 마을과 망아테포포 출입구로 갈라지는 삼거리가 나타난다. 푸케카이키오레(1692m)를 우측으로 하고, 나지막한 푸케오나케(1225m)를 좌측으로 한 채 루아페후의 위용에 한동안 넋을 빼앗기자 마침내 출발지였던 화카파파 마을로 되돌아왔다.
 
● 통가리로 노던 서킷 가이드
 
  통가리로 노던 서킷은 보통 3박4일 걸리지만, 중간마다 트랙에서 벗어날 수 있는 출입구가 자리하고 있기에 일정을 조절할 수 있다. 뉴질랜드 DOC(Department of Conservation)는 수많은 뉴질랜드의 트레킹 코스 중에서 모두 아홉 곳을 선정하여 특별 관리하고 있다. 남섬에 여섯 곳, 북섬에 세 곳이 있다. 이른바 ‘그레이트 웍스(The Great Walks)’다. 그중 가장 유명하고 참으로 특색 있는 코스가 바로 통가리로 노던 서킷이다. 산행에 앞서 화카파파 방문자 센터를 꼭 방문해야 한다. 산행 중에 묵을 산장(Hut)이나 캠프장을 예약하고, 산행에 필요한 지도나, 기상정보 등을 얻을 수 있다.
 
 
  ● 교통
 
  통가리로 노던 서킷의 출발점이자 종착점인 화카파파 마을은 내셔널 파크와 투랑이에서 셔틀버스가 운행된다. 내셔널 파크에서 오전 7시에 출발한 셔틀 버스는 화카파파 마을($10) 및 망아테포포 출입구($25)를 들른다. 투랑이에서 출발하는 셔틀버스는 케테타히 출입구($20), 망아테포포 출입구($20), 화카파파 마을($30)을 모두 들른다. 내셔널 파크는 뉴질랜드의 관문인 오클랜드에서 인터시티 버스와 기차로 5시간 소요된다. 투랑이는 오클랜드에서 인터시티 버스로 6시간 소요된다.
 
 
  ● 숙식
 
  내셔널 파크와 투랑이, 화카파파 마을에는 유스호스텔에서부터 최고급 호텔 그랜드 샤토까지 다양한 종류의 숙소와 식당이 있다. 통가리로 노던 서킷상의 산장과 캠프장을 이용하려면 그레이트 웍스 패스(Great Walks pass)가 필요하다. 산장 이용료는 성인 $20 어린이 $10이며, 캠프장은 성인 $15 어린이 $7.5이다. 패스는 투랑이와 화카파파 마을에 있는 DOC 방문자 센터에서 구입할 수 있다.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월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