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임상시험·치료성적은 이미 세계적 수준… 국제 홍보는 아직 미흡
싱가포르 벤치마킹해 의료 브랜드 가치 높여야
崔漢龍 삼성서울병원 원장
⊙ 1952년 서울 출생.
⊙ 경기고·서울대 의과대학 졸업. 同 대학원 석박사.
⊙ 삼성서울병원 비뇨기과 과장·기획실장·진료부원장, 성균관대 의대 비뇨기과학교실 교수·
학생담당 부학장, 대한비뇨기종양학회 회장 등 역임.
⊙ 現 삼성서울병원 병원장.
몇 년 전부터 우리나라는 미래를 먹여 살릴 새로운 산업분야를 찾는 데 주력해 왔다. 다양한 산업이 후보군으로 오르내렸고 그중 유력한 분야로 떠오른 것 중 하나가 의료산업이다. 의료산업 중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은 해외 임상시험 시장 진출이었다. 당시만 해도 임상시험 분야는 우리에게 생소한 분야였으며, 아시아권에서는 대부분 호주가 독점하던 분야였다. 그러나 2004년부터 정부가 지역임상시험센터 육성사업을 추진, 국내 임상시험 시장은 급신장하게 됐다.싱가포르 벤치마킹해 의료 브랜드 가치 높여야
崔漢龍 삼성서울병원 원장
⊙ 1952년 서울 출생.
⊙ 경기고·서울대 의과대학 졸업. 同 대학원 석박사.
⊙ 삼성서울병원 비뇨기과 과장·기획실장·진료부원장, 성균관대 의대 비뇨기과학교실 교수·
학생담당 부학장, 대한비뇨기종양학회 회장 등 역임.
⊙ 現 삼성서울병원 병원장.
최근 개최된 ‘한국임상시험산업 국제경쟁력 강화세미나’에서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국제적으로 전 세계 임상시험 점유율 1.48%로 12위, 아시아권에서는 5위인 일본(점유율 3%) 다음으로 나타났다.
특히 도시단위로 비교할 때 휴스턴, 샌안토니오에 이어 서울이 세계 3위에 랭크돼 세계적인 임상시험 인프라를 갖춘 도시로 인식되고 있다. 2005년 0.32%인 임상시험 시장점유율은 2009년 11월 기준으로 1.48%까지 높아져 불과 4년 만에 임상시험 산업의 급성장을 이끌어낸 것은 경이적인 기록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급속한 성장은 지역임상시험센터 프로그램, 국가임상시험사업단 등 정부의 강력한 지원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임상시험 분야는 글로벌 신약 개발을 선도할 수 있는 핵심 분야이면서 그 자체로 막대한 경제적 이득이 발생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低평가된 한국 의료 브랜드
물론 앞으로 임상시험 분야에서 산업화를 이루기 위해선 해야 할 일과 투자할 일, 개선해야 할 일이 많지만, 이러한 결실 이면에 있는 우리나라 의료계의 높은 경쟁력은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해외환자 유치도 새로운 의료산업화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인천 송도 특구에 해외병원을 유치한다는 이야기가 거론됐고, 정부 차원에서도 향후 우리나라를 먹여 살릴 신수종(新樹種) 사업으로 여기고 이에 대한 다양한 정책을 내놓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28일 한국 의료 브랜드로 ‘메디컬코리아(Medical Korea)’, 슬로건으로 ‘스마트케어(Smart Care)’를 선정하고 해외환자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설 뜻을 분명히 밝혔다. 이번에 발표하는 브랜드는 한국 의료의 강점인 의료 기술의 우수성, 안전성, 적정가격에 초점을 맞추고 국가브랜드로서의 직관성, 대표성, 쉬운 발음, 확장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개발됐다고 밝혔다. 그런데 과연 우리나라의 의료경쟁력은 어느 정도일까.
재미있는 사례가 있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아시아 순방 중 심장질환 등 중증 응급질환이 발생했다고 가정해 보자. 이 경우 오바마 대통령이 가는 병원은 어디가 될까? 일본, 싱가포르, 인도, 호주 등 다양한 나라가 언급된다. 미국 본토로 갈 가능성도 작지 않다.
정답은 한국이다. 정확히 말하면 “삼성서울병원을 찾는다”가 백악관의 공식 후송 매뉴얼이다. 지난 1996년 우리 병원은 엄격한 평가와 실사를 거쳐 미국 백악관의 아시아 태평양지역 공식 후송병원으로 선정됐다. 미국 대통령이 아시아 태평양지역을 순방하다 응급상황이 발생하면 우리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다는 의미다.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유일한 사례이며, 독일 마인츠 미(美) 공군기지 병원에 이어 미국 이외 지역에서는 두 번째로 공식후송병원으로 지정받았다. 삼성서울병원뿐 아니라 국내 많은 병원의 국제경쟁력이 크게 높아진 것은 중요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현재, 안타깝게도 해외에서 우리나라에 대한 의료브랜드의 인식은 아직 낮은 수준이다. 이는 달리 말하면, 지금이 저평가된 한국의 의료브랜드를 널리 알릴 수 있는 적기라는 뜻이다.
실제로 일부 분야는 세계적 수준을 자랑한다. 이러한 질 높은 의학 수준을 해외에 잘 알리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해외환자 유치 경쟁력은 한국의 수준 높은 의료수준을 해외에 적극적으로 알리는 것부터 시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2억 달러 亞 의료시장 잡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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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이미 임상시험과 환자치료에서 세계적인 수준을 자랑한다. 사진은 로봇 팔을 이용한 수술 장면. |
1994년 한국 의사들이 미국 존스 홉킨스 병원에서 간 이식 연수를 받았다. 그리고 10년 후인 2005년, 연수를 진행한 미국 교수와 의료진이 한국에 찾아와 간 이식 연수를 받았다. ‘연수받던 나라’에서 ‘연수하는 나라’로 바뀐 것이다. 한국의 대형 병원들의 각종 암 수술 성적은 이미 세계적인 수준으로 성장했다. 한국 의료계가 국제적인 경쟁력을 이미 갖췄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 병원에서 조사한 바로는 태국, 싱가포르, 인도가 아시아 의료시장의 98%를 점유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아시아 의료시장의 38%를 차지하고 있으며, 연간 46만여 명의 환자를 유치해 연(年) 매출 12억 달러(약 1조3600억원)를 벌어들이고 있다. 환자의 구성은 가까운 인도네시아(52%), 말레이시아(11%), 미국·캐나다(5%) 순이다.
이에 비해 태국은 아시아 의료시장의 40%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연간 154만여 명의 환자를 유치해 12억7000만 달러(약 1조4300억원)를 벌어들이고 있다. 환자 구성은 영국(17%), 일본(15%), 미국(11%) 순이다.
아시아 3위 의료시장인 인도는 27만명이 찾고 있으며 연간 6억5600만 달러(약 7429억원)를 벌어들이고 있다. 주로 중동(40%), 아세안(ASEAN·35%), 미국·유럽(20%) 국가에서 찾고 있다.
이들 나라는 각자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태국은 관광을 중심으로 한 저가(低價) 의료시장을, 반대로 싱가포르는 고가(高價)의 의료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특히 싱가포르는 래플스 병원의 샴쌍둥이 분리수술 등으로 인해 국제적 의료인지도를 갖추게 됐다. 인도는 특정분야에 대한 저가 서비스로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공통적 특징은 비행시간으로 약 3시간30분 정도의 지리적으로 가까운 나라의 환자를 유치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 이들 3개국에 비해 더 높은 의료수준을 갖추고 있다. 반면에 국제적인 인지도는 많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약점을 보완하면, 좋은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 특히 극동지역을 중심으로 해외교포, 중동, 동남아 지역의 환자를 주요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아시아 의료시장은 32억400만 달러(3조6200억원) 규모로 성장했다. 시장규모는 매년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해외환자는 병원수익에 큰 도움을 준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막 아시아 의료시장에 진입하기 시작했다. 이미 싱가포르, 태국, 인도로 이어지는 3강 체제가 구축됐고, 그 축 속에 우리가 신규 참여하는 것만큼 높은 장벽을 뚫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아시아의 의료시장은 한 병원이 우수하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국가의 의료 이미지가 아주 중요하다. 대부분의 환자는 국가를 먼저 선정한 후 병원을 선택하는 것으로 조사된다. 즉 병원보다 한국 전반의 의료수준이 해외에서 인정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국가적 차원에서 준비해야
의료 글로벌 스탠더드를 이끌어내기 위해 준비해야 할 일들이 산적해 있다. 크게 국가적 차원과 병원 자체적으로 준비해야 할 것들이다. 우선 국가적 차원에서 중점적으로 추진해야 할 전략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의료산업의 체계적 발전을 위해 싱가포르의 부처 간 협력사례를 벤치마킹해야 한다. 한국관광공사, 보건산업진흥원, 출입국관리사무소, 외교통상부, 경제부처 간 긴밀한 협력체계가 이뤄져야 한다.
둘째, 국가 의료브랜드를 높이는 데 주력해야 한다. 우리가 잘하고 있는 것을 더욱더 널리 알려야 외국 환자들이 믿고 찾아올 수 있다.
셋째, 치료 목적의 비자 발급 프로세스를 개선해야 한다. 서류를 최소화하고 개발도상국 대상의 발급요건도 완화해야 한다. 환자를 동반하는 가족에게도 치료 목적의 비자 발급이 지원돼야 한다. 이를 위해 병원 내(內) 비자연장사무소를 개설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넷째, 적정진료비를 산정할 수 있도록 정부의 지원체계가 필요하다. 정부 차원의 네트워크를 이용해 주요 국제의료 대상 국가의 진료비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바탕으로 자율적으로 적정 외국인 환자 진료비 산정을 위한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다섯째, 의료사고 및 분쟁 해결을 위한 시스템이 필요하다. 의료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의료인력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국제진료 관련 통역을 육성해야 한다. 또한 외국인 환자 진료 계약서 표준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개별 병원 차원에서도 준비할 게 많다. 가장 먼저 외국 환자들이 편하게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전용시설을 갖춰야 한다. 기존 병원 시설에 외국인 환자를 추가로 받겠다는 생각보다는 외국인을 위한 전용시설에 대한 투자가 선행돼야 한다.
둘째, 외국인이 진료를 쉽게 받을 수 있도록 의료 전문 통역 인력을 육성하는 한편, 해당 국가의 문화를 이해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통역 인력을 채용하고 해당 국가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문화 강좌 등을 개최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셋째, 병원마다 자신들에게 맞는 특화된 맞춤식 의료 마케팅 전략이 필요하다. 그동안 우리 병원을 찾은 외국인 환자들은 첨단시설과 깨끗한 환경에 먼저 놀라고, 그 다음 우수한 치료성적과 친절함에 놀랐다고 한다. 그리고 얼마 후 그 환자의 추천으로 그 지역의 다른 환자가 찾아온다. 속도는 느리지만 ‘입소문 마케팅’으로 오는 환자들이 의외로 많다.
해외환자 유치가 아직 본격화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부터 착실히 준비하면 5년 후엔 우리나라가 아시아의 중심 의료시장으로 성장할 것이다. 우리는 잠재력과 능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고 자신한다. 서두에 언급한 임상시험시장이 급성장한 것 이상으로 해외환자를 유치할 수 있을 것이다. 해외 환자 유치는 우리나라의 새로운 산업분야를 창조하고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중요한 산업분야로 성장할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