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적 성장 이룬 R&D 능력, 이제는 질적으로 도약해야
기초연구 분야에서 역량을 발전시키는 것이 글로벌 스탠더드의 기초
李載用 연세대학교 공과대학장
⊙ 1955년 서울 출생.
⊙ 신일高, 연세大 전자학과 졸업. 美아이오와주립大 전기학 석사, 전산공학 박사.
⊙ 포항공대 부교수, 연세대 IT연구단장, SK텔레콤 CEO아카데미 자문교수 역임.
現 연세대 공과대학 학장 겸 공학대학원장, 한국통신학회 부회장.
현재와 미래의 새로운 변화와 발전을 꾀하기 위한 세계의 경쟁이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그 핵심에는 과학기술이 있다. 한 사회가 지니고 있는 과학기술 능력은 그 사회의 경제적 수준과 지식 역량, 발전 가능성을 측정하는 중요한 잣대가 됐다. 수많은 인재와 자원이 과학기술 분야로 투입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기초연구 분야에서 역량을 발전시키는 것이 글로벌 스탠더드의 기초
李載用 연세대학교 공과대학장
⊙ 1955년 서울 출생.
⊙ 신일高, 연세大 전자학과 졸업. 美아이오와주립大 전기학 석사, 전산공학 박사.
⊙ 포항공대 부교수, 연세대 IT연구단장, SK텔레콤 CEO아카데미 자문교수 역임.
現 연세대 공과대학 학장 겸 공학대학원장, 한국통신학회 부회장.
지난 세기에 성공적으로 세계 경제와 사회를 이끌어온 국가들의 특징은 ‘효과적이고 지속적인 연구개발(R&D) 활동에 성공한 국가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R&D 활동을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 ‘사회의 인프라 및 다른 부문과 어떻게 연계시킬 것인가’, ‘그 성과는 어떻게 확산되고 공유돼야 하는가’의 문제는 계속해서 변화하는 과제다. 전(全) 세계가 새로운 기술에 기반해 글로벌 네트워크로 연결되고, 무형의 지식이 주요 자산이 된 현재의 시점에서 연구개발은 새로운 전략과 방법론을 추구해야만 한다.
특허 출원 많지만 기술이전은 낮다
우리나라는 지난 10여 년간 R&D에 대한 투입과 양적 성장에 있어서 지속적인 발전을 보여 왔다. 그 결과 정부의 연구개발투자 비율과 특허출원은 OECD 국가 중에서도 상위권에 진입하게 됐다.
하지만 여전히 풀어야 할 많은 과제를 안고 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는 세계 6위의 R&D 투입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기술무역수지는 지속적으로 악화돼 2007년에는 24억 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이것은 우리나라가 기술소비형 산업구조를 지니고 있지만 대부분의 기술을 해외로부터 수입하고 있다는 의미다. 국내에서 창출된 지식재산의 질적(質的) 수준이 아직 낮고, 적절하게 관리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은 국내의 특허출원이 많음에도 기술이전이나 사업화 지표는 매우 낮다는 데서도 잘 드러난다.
대학의 연구지표에서도 유사한 현상이 보인다. 한 정부출연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국내 톱10 대학의 양적인 논문 수준은 이미 미국 톱10 대학 수준에 도달해 있다고 한다. 특히 재료나 화학공정, 에너지자원, 정보 분야의 논문 성과는 미국 상위권 대학의 200% 이상을 상회하고 있다. 논문의 피인용 수와 논문당 피인용도 수준도 상당한 수준에 달했으나, 아직은 질적 측면의 제고가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지표들은 우리나라의 연구개발 역량이 그동안 양적으로 크게 성장했으나 질적 도약을 위해서는 기존의 방식과 다른 새로운 발전 전략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글로벌 R&D스탠더드, 정해진 법칙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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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8년1월18일, 한국과학기술원에서 신성장동력 창출을 위 한 산학연 전문가 간담회가 열렸다 |
R&D 분야에 있어서 글로벌 스탠더드란 무엇일까? 다른 분야와 달리, 과학기술, 특히 연구개발 분야에는 정해진 특정 목표가 있다기보다는 오히려 수월성(excellence)만이 유일한 스탠더드이자 목표가 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탁월한 R&D 스탠더드를 성취하는 과정에 어떤 정해진 법칙이나 어떤 프로토타입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치 무엇인가 있는 것처럼 보이다가도 어느새 자취를 감추고 새로운 혁신 모델들이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아이폰의 성공이 한 사례가 될 수 있다. 아이폰은 공통, 공용의 표준화된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툴을 활용해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이 적용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즉 다양한 지식과 아이디어의 결합을 통해 제품 자체의 진화가 가능하도록 설계했다는 데 성공의 비결이 있다. R&D 혁신의 메커니즘 자체가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어떠한 변화를 통해 글로벌 R&D 스탠더드를 주도할 것인가?
첫째, 개방적 혁신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개방적 혁신이란 본래 연구, 개발, 상업화에 이르는 일련의 혁신 과정을 개방해 외부 자원을 활용함으로써 혁신의 비용을 줄이는 것이다. 이를 통해 성공 가능성을 높여 부가가치 창출을 극대화하려는 기술혁신의 방법론을 의미한다. 주로 기업에 의해 활용되어 왔지만 최근에는 정부, 대학, 연구기관에서 그 중요성이 새롭게 인식되고 있다. 개방적 혁신의 가치는 무엇보다 특정 기업에 의한 지식 독점이 한계에 이르고 지식의 원천이 개인과 조직, 여러 집단으로 다양화되는 현상, 인력 유동성이 활발해지고 전 지구화되는 현상, 기술개발의 비용 증가와 제품 사이클 단축이라는 상황에서 필수불가결한 것이 되고 있다. 1990년대 이후 우리나라 대학과 연구기관, 기업의 연구능력과 혁신능력이 크게 신장됐다. 이제는 이들 사이의 상호보완적 협력 관계와 생산적 경쟁 관계 형성이 매우 중요한 시점이 됐다. 각 혁신 주체가 자신의 영역에서만 활동하게 된다면, 이것은 혁신의 비용을 증가시키게 될 것이다. 각 조직이 지닌 인적, 물적, 제도적 자원의 교류와 연계성을 증진시키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필요하다.
개방적 혁신이 조직화되면서 다양한 중개 조직의 등장과 역할도 커지게 될 것으로 예상되며 이에 대한 대비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나인시그마(NineSigma)와 이노센티브(InnoCentive)와 같은 인터넷 기반기술 중개인 집단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이들 중개인 집단은 세계 각국의 전문가로 구성된 ‘해결자(solver)’ 네트워크를 먼저 구성하고 이들을 기술 문제 해결을 의뢰하는 고객들과 연결시키는 비즈니스 모델을 바탕으로 활동하고 있다. 우리가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이러한 중개 사업의 성공 여부를 가능케 만드는 요인이 무엇인가에 있다. 그 요인 중 하나는 기업이 의뢰한 기술적 문제를 중립적 언어로 다시 표현함으로써 의뢰 기업의 익명성과 영업 비밀을 보호하면서 전문가들에게 문제를 공개하는 능력에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이러한 능력 양성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지만 이제는 이 분야에 대한 적극적인 접근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지식재산의 관리라는 두 번째 이슈와 연결된다.
지식재산권 보존 취약한 대학들
지식재산의 전략적 관리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기업들의 경우에는 점증하는 지식재산권 관련 분쟁과 소송을 거치면서 이에 대한 대응 능력을 키워 왔지만 대학은 이에 대해 여전히 취약한 상황이다. 우리나라 대학과 정부의 연구기관들은 특허를 R&D 성과지표의 하나로만 간주하는 경향이 강했다. 따라서 특허의 전략적 활용에는 상대적으로 무관심해 왔다.
이제는 지식재산을 중요 자산으로 활용할 수 있는 체계적인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 이는 대학과 연구기관의 기술 이전과 산학협력을 증대시키는 데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대학과 공공연구기관의 기술이전 비율은 2004년 20.8%에서 2007년 27.4%로 증가했지만 대학만 별도로 보면 각각 8.2%와 14.1%로 매우 낮은 수준이다. 대학에서는 지식재산 관리와 활용을 전문적으로 담당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하는 일이 중요하다.
개방적 혁신과 지식재산의 관리 문제 해결과 더불어 정부, 대학, 연구자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할 몇 가지 문제를 더 살펴보도록 하자.
글로벌 R&D 스탠더드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정부의 역할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기초연구에 대한 투자가 더욱 늘어야 한다. 국내 R&D의 성장에도 불구하고 기초원천기술의 확보가 미흡하고, 중점 과학기술 분야에서 세계적 수준과의 기술격차가 여전하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기초연구에 대한 투자 확대뿐 아니라 전략적 차원의 기초연구를 추진할 수 있어야 한다. 과거에 우리나라는 글로벌 생산 네트워크를 통해 혁신역량을 키워 왔지만 이제는 글로벌 혁신 네트워크에서 활동할 수 있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기초연구 분야에서 역량을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대학은 질적 수준의 연구역량을 발전시키고 지식재산의 관리 및 활용 능력을 키우는 데 더욱 주력해야 한다. 1990년대 중반 이후 국내 SCI 논문의 급속한 성장은 국내 연구진의 연구 역량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런 자신감을 바탕으로 질적 차원의 성장에 주력해야 한다. 이것은 대학 평가 및 연구역량 평가방식에 반영돼야 한다. 일본 도쿄대의 경우, 도쿄대 기술사업화 전문회사 (CASTI)와 도쿄대 전용 벤처캐피털 (UTEC)이 최근 좋은 성과를 거두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우리 대학도 기술이전 전문기관(TLO) 전문화와 전문펀드 운용 등을 위한 실질적인 조치 등을 실행해야 한다. 연구자들 스스로가 지식재산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자신과 연구자 집단 전체의 ‘윤리적 책임과 행동’에 대한 명확한 인식을 갖춰야 한다.
돌이켜 보면, 우리의 짧은 근대화와 산업화의 역사 속에서 새로운 도약을 모색할 수 있을 정도의 경제력과 과학기술 경쟁력을 갖추게 된 것은 놀랍고 자랑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지금은 지난 성공의 걸어온 길과 방법론에 의지하기보다는 도전하고 개척해야 할 새 길을 향해 우리의 모든 역량과 지혜를 모아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글로벌 R&D의 길, 우리는 이미 그 길에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