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어민 교사와 함께 영어 동화책을 읽고 있는 방배영어센터 어린이 회원들.
朴成重(박성중) 서초구청장은 취임 직후부터 “세계적인 名品(명품)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는 언어가 통하는 도시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잉글리시 프리미어 서초(English Premier Seocho)’ 프로젝트를 수립, 2012년까지 주민의 30%가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그 일환으로 설립된 것이 서초구 내의 권역별 영어센터다. 지난해 5월 방배영어센터가 문을 연 것을 시작으로 올 4월 반포와 양재영어센터가 나란히 개원했으며, 내년에는 서초 영어센터가 문을 열 계획. 방배영어센터는 민병철어학그룹이, 반포·양재영어센터는 웅진씽크빅이 위탁 운영 중이다.
이들 영어센터는 영어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는 영어도서관과 다양한 상황체험을 통해 재미있게 영어를 배울 수 있는 신개념 영어몰입교육 공간이다. 저렴하면서도 수준 높은 영어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2만 권의 영어 도서를 갖춘 국내 최대 규모의 영어도서관인 반포영어센터는 문을 연 지 두 달 만에 회원 수가 1200명을 넘어섰다.
조기 유학 필요 없는 서초구 영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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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5월, 문을 연 방배영어센터. |
반포1동 주민센터 2층에 위치한 반포영어센터를 찾은 날, 한여름을 방불케 하는 무더운 날씨였지만 도서관만은 책을 읽는 아이들과 엄마들로 북적거렸다.
도서관 이용료는 月(월) 2만원이다. 한 번에 4권씩 1주일간 대출할 수 있다. 아이가 책을 빨리 읽는다면 중간에 얼마든지 다른 책으로 바꾸어 갈 수 있어 읽고 싶은 만큼 무제한 대출이 가능하다.
초등학생 아이를 데리고 왔다는 30대 주부 朴善兒(박선아)씨는 “외국에 나가면 집 근처에 도서관이 있다는 게 가장 부러웠는데 우리 동네에도 이런 영어도서관이 생겨 정말 좋다”고 말했다.
교사 한 명과 두 명의 학생이 짝을 이루어 함께 책을 읽고 토론하는 ‘북버디’는 반포영어센터의 인기 프로그램이다. 센터를 이용하는 아이들의 절반 이상이 외국 어학연수 경험이 있어 이 프로그램은 더 큰 관심을 끌고 있다. 신청자가 워낙 많아 7월부터는 한 팀을 4명으로 늘리고 토론 시간도 늘리는 ‘북클럽’을 운영할 계획이라고 한다.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미국 16개 공립학교에서 쓰고 있는 독서역량지수 프로그램을 사용해 영어 독서능력을 점검하고 관리해 주는 것도 특징이다. 초등학생에서부터 중·고등학생까지 수준별 읽기 능력 및 이해력 평가 등을 통해 독서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러닝 센터(learning center)에서는 읽기, 수학·과학, 다감각, 동물, 요리 등의 정규 과정을 운영한다. 도서관 이용료와는 별도로 週(주) 2회 50분 수업에 유치원생은 6만5000원, 초등학생은 8만원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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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수 반포영어센터장. |
반포영어센터 조계수 센터장(웅진씽크빅 영어교육사업단)은 “도서관 프로그램만 잘 활용하면 유학을 갈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한다.
오전에는 성인 강좌가 마련되어 있다. 현재 수준별로 4개 학급이 편성되어 100여 명이 영어를 공부하고 있다. 외국에서 오래 거주하고 돌아온 주부들을 위해 프리 토킹(free talking)반도 운영된다.
조 센터장은 “외국어 실력이 뛰어난 주부들이 많아 학부모 자원봉사단인 PHO(Parent Help Organization)를 만들었다. 이들이 6월부터 1일 司書(사서) 등으로 활동하며 도서관 운영을 도울 것”이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시도되는 형태의 도서관이라 주민들의 관심이 높고, 다른 지자체에서도 문의가 많아요. 주민들의 영어 실력과 독서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공공 도서관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겠습니다.”
영어 지옥훈련 실시
서초구청도 전 직원이 영어 사용 환경 조성에 나섰다. 지난 2007년, 5급 공무원 이상의 간부급 회의를 영어로 진행한다는 지침이 내려진 것이 그 시작이었다.
그해 6월부터 매일 업무가 끝난 저녁 7시부터 10시30분까지 3시간30분 동안 집중적인 영어교육을 실시했다. 일정 수준 이상의 테스트를 통과한 간부들에게는 수료증을 주었다. 영어 학습이 부진한 직원들은 실력이 우수한 직원들의 도움을 받는 멘토링 제도도 운영했다.
오랫동안 영어책을 손에서 놓고 지냈던 50대 직원들은 일정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 한동안은 주말도 없이 영어공부에 매달려야 했다. 이 과정은 지금도 ‘지옥영어훈련’으로 불리고 있다.
이런 준비를 거쳐 첫 영어회의가 열린 것은 2007년 12월. 난생 처음 진행하는 영어회의에 국장급, 과장급 직원들은 진땀을 뺐다. 회의 자료를 만드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고, 즉석에서 영어로 질문을 던지는 구청장에게 영어로 답하는 일도 苦役(고역)이었다.
하지만 회를 거듭할수록 실력은 눈에 띄게 달라졌다. 分期(분기)마다 한 번씩 진행되는 영어회의는 이제 직원들에게 자연스러운 일상이 됐다. 보고서를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과 스트레스가 크게 줄었다. 무엇보다 영어에 자신감을 갖게 된 것이 가장 큰 성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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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구청은 국·과장급 직원들을 대상으로 분기마다 한 번씩 영어회의를 진행한다. |
정보전산과 金時煥(김시환) 과장은 “처음에는 정말 힘들었지만, 그래도 그렇게 공부한 덕분에 ‘영어 울렁증’을 극복했다”면서 이렇게 말한다.
“공무원들이 영어로 회의를 한다고 하니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겠느냐’는 회의적인 시각도 있었어요. 하지만 영어로 회의자료를 만드는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영어를 익힌다는 데 의미가 있지요. 행정용어도 알게 되고, 原語民(원어민)에게 내용이나 발음을 교정받으면서 반복적으로 연습하니 다들 나아지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지금까지 영어회의가 다섯 번 진행됐는데 처음과 비교하면 정말 많이 좋아졌어요.”
직원들을 위한 주 2회 영어회화반도 개설했다. 수준에 따라 초·중·상급반으로 나뉘는데, 상급반은 원어민 수업으로 진행된다. 영어 외에 일본어·중국어 과정도 있다.
일정 수준의 테스트를 통과한 사람들은 목요일부터 월요일까지, 5일간 반포영어센터에서 집중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실생활에서 많이 쓰이는 표현들만 뽑은 145문장을 반복해서 외우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 참가했던 김과장은 “그동안 외국인을 만나면 아주 쉬운 표현인데도 어떻게 말해야 될지 몰라 난감했는데, 이제는 그런 고민을 덜었다”고 말했다.
홈페이지 12개 국어로 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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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중 구청장으로부터 외국인 자문위원단 위촉장을 받고있는 방송인 이다도시 씨. |
서초구는 관내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의 생활편의를 위한 지원에도 나섰다. 그동안 영어·프랑스어·일본어·중국어 등 4개 국어로 운영되던 구청 홈페이지를 모두 12개 언어로 늘린 것이다. 이제는 독일어·폴란드어·러시아어 등 유럽권 3개 언어와 아랍어·태국어·터키어· 몽골어·베트남어 등 아시아권 5개 언어까지 서비스된다.
외국어 번역은 전문 번역가 및 해외 한인회의 협조를 받았으며, 보다 정확한 표현과 정보를 위해 한국에 소재하는 각국 대사관의 검토를 거쳤다.
외국어 홈페이지에는 서초구 생활안내, 교통, 관광명소, 가격정보, 교육문화, 각종 통계자료 등 한국생활에 필요한 다양한 정보가 담겨 있다. 서초구에서 추진하고 있는 각종 정책 등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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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포영어센터 영어 도서관 내부. |
현재 서초구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은 6000여 명이다. 터키계 국제학교인 ‘레인보우 외국인학교’를 비롯해 반포4동의 프랑스마을, 외교안보연구원, 외교센터, 외국기업 지원을 위한 인베스트 코리아 등이 서초구에 자리 잡고 있어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들이 생활하고 있다.
김시환 과장은 “국내 거주 외국인뿐 아니라 전 세계 42개국에 퍼져 있는 100여 개의 韓人會(한인회)와 온라인으로 정보와 문화를 교류하는 월드서초 네크워크를 통해 해외교민들도 홈페이지를 이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모든 민원을 한곳에서 처리하는 통합민원실인 OK민원센터 안에 외국인 도움코너(Help desk for foreigners)도 마련했다. 외국어에 능통한 자원봉사자들이 요일별로 나뉘어 구청을 방문하거나 전화로 문의하는 외국인들에게 영어·불어·일어·중국어 등 해당 언어로 통역을 해 일상생활에서의 불편을 해소해 주고 있다. 모든 직원이 외국인 응대를 효과적으로 할 수 있도록 기본적인 표현들을 담은 매뉴얼 북도 제작 중이다.
영문판 생활안내서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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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동에 있는 터키계 국제학교 ‘레인보우 인터내셔널 스쿨’. |
외국인들을 위한 영문 생활안내서도 발간했다.
한국에서의 은행거래 방법, 휴대전화 개설하기, 전기·가스·수도 등 공과금 납부방법, 건강보험 및 교통시설 이용안내, 생활쓰레기 상담 등 실생활에 필요한 정보를 사례 위주로 소개하고, 외국인의 입장에서 쉽게 이해하고 적용할 수 있도록 한국의 문화 및 생활 전반에 걸친 설명도 곁들여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온 유학생이자 KBS TV <미녀들의 수다>에 출연해 유명해진 브로닌 멜렌(서초구 거주) 씨는 “가이드 북의 도움을 아주 많이 받았다”며 구청으로 직접 감사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특히 글로벌 시대를 맞아 서초구에 자리 잡고자 하는 기업인들을 위해 비즈니스타운, 생활공간, 세제 혜택 및 관련 업무에 필요한 서비스도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최근에는 외국인 주민들을 지원하기 위한 자문위원회를 구성했다. 외국인들로 구성된 자문위원회는 서초구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을 대표해 외국인 지원과 관련한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고, 외국인 전용 주민센터(동사무소)라 불리는 서래글로벌빌리지센터의 운영주체로도 활동하게 된다.
글로벌 다문화축제 개최
이번에 위촉되는 자문위원은 총 13명(외국인 9명, 내국인 3명)이다. 국적별로는 프랑스인 7명, 호주인 1명, 일본인 1명, 한국인 3명이다. 프랑스 출신 유명방송인 이다도시 씨를 비롯해 프랑스학교장, 프랑스학교 학부모대표, 교수, 작가, 일어강사 등이 참여한다. 한국인의 경우 외국 거주경험이 있거나 외국인 지원에 관심이 많은 주민을 참여시켜 본인의 외국체류경험 등에 비추어 타향살이를 하고 있는 외국인들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줄 예정이다.
지난 6월 1일에 있었던 자문위원 위촉식에서 박성중 구청장은 “다문화시대에 외국인은 더 이상 이방인이 아니라 지역 주민의 일원으로 우리와 함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지자체의 역할”이라며 “이들을 통해 우리의 것을 알리고 또 이들의 아이디어를 區政(구정)에 적극 반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영어 사용 환경 조성을 위해 서초구가 보유하고 있는 유·무형의 자산들도 적극 활용하고 있다. 매년 5월 서초구민의 날을 전후해 1주일 동안 반포4동 프랑스마을(서래마을)을 중심으로 국내 거주 외국인이 대거 참여하는 세계문화주간 글로벌 다문화축제를 개최하는가 하면, 외국인 자원봉사단 구성, 외국인과 주민 간 1대1 영어가족 맺기 등 다양한 행사를 진행 중이다.
앞으로는 관내에 있는 아리랑 국제방송, EBS 등과 연계해 구청 직원, 주민들을 위한 영어 교육 프로그램도 만들 계획이다.
▣ 터키인들이 세운 레인보우 국제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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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보우 국제학교 누스렛 첼릭 교장. |
지난 2007년 9월 서초구 양재동에 문을 연 레인보우 외국인학교는 터키인들이 세운 국제학교다. 미국식 교육제도를 채택하고 있으며, 현재 미국·일본·터키·인도·사우디아라비아·이라크·아프가니스탄·아제르바이잔·방글라데시 등 12개 국가에서 온 110명의 학생이 재학 중이다. 이 중에는 한국인 학생도 3명 있다.
교육 과정은 유치부와 초등부로 나뉜다. 유치부의 경우 영어유치원처럼 운영돼 입학에 제한이 없다. 초등부는 다른 국제학교와 마찬가지로 내국인은 해외 거주 3년 이상 등의 요건을 채운 경우에만 입학이 가능하다. 올 8월부터는 중학교 과정이 신설된다.
터키를 비롯해 캐나다·미국·영국 등에서 온 22명의 교사가 영어로 수업을 진행하며 제2외국어로 터키어·한국어를 선택할 수 있다.
학교 설립자인 에쉬레프 사을란 이사장의 부탁으로 몽골 국제학교장으로 근무하다 올 초 한국으로 온 누스렛 첼릭 교장은 “한국과 터키 간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한국에 거주하는 터키인들이 많아졌고, 이들의 자녀 교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학교를 설립했다”고 말했다.
그에 의하면 이슬람 문화권인 터키인들에게 미국, 영국계 국제학교는 문화적인 차이가 커 아이들이 적응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고 한다.
학교부지로 양재동을 선택한 이유를 묻자 알타이 디케치 교감은 유창한 한국어로 “터키인들이 서초구에 많이 모여 살고 있고, 교통이 좋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한국에서 생활한 지 10년째라는 그는 “학교 개교 때부터 지금까지 서초구청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학교에 야외 행사가 있을 때면 구청 인조잔디구장을 하루 종일 빌려 주고, 학교 앞 도로에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과속방지턱을 설치해 주는 등 도움을 요청하면 언제든지 도와주어 늘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어 디케치 교감은 “여기서 교육받은 터키 아이들과 한국 아이들이 나중에 어른이 되어 양국의 문화대사 역할을 한다면 형제의 나라이기도 한 두 나라 간의 관계는 더욱 굳건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