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佳瑩 現 지리산친환경농산물유통 대표이사
⊙ 1986년 서울 출생.
⊙ 선린인터넷고 졸업. 이화여대 사회학과 재학 중.
⊙ 상훈: 제4회 여성창업경진대회 은상, 제1회 청소년창업아이디어경진대회 대상.
⊙ 저서: 〈경제를 깨치면 공부도 잘해요〉 <17살, 나를 바꾼 한 권의 책>(공저) 등.
⊙ 1986년 서울 출생.
⊙ 선린인터넷고 졸업. 이화여대 사회학과 재학 중.
⊙ 상훈: 제4회 여성창업경진대회 은상, 제1회 청소년창업아이디어경진대회 대상.
⊙ 저서: 〈경제를 깨치면 공부도 잘해요〉 <17살, 나를 바꾼 한 권의 책>(공저) 등.
- 2007년 12월 태안의 한 해변에서 태양을 바라보며 만세를 외치는 자원봉사자들. 20대 청년들이 개척해나갈 20년 후 미래는 이들의 마음처럼 밝아 보인다.
얼마나 던지기에 열중했을까. ‘펑’하는 소리와 함께 우리 박이 먼저 터졌다. 우리 백군은 하늘을 향해 뛰어올랐고, 청군 녀석들은 못내 아쉬워한다. 청군 부모들은 “열심히 했으니 충분했다”며 아이들을 다독였고, 반대편 부모들은 백팀 아이들에게 “일단 가서 청팀 친구들 손잡고 밥 먹으러 오라”고 한다. 이 모든 것이 한 컷의 스틸 사진처럼 지나간다.
달콤한 꿈을 꿨다. 그때가 가장 행복했었는지, 요즘 잠이 들면 자꾸만 그날로 돌아간다. 한 가득 미소를 머금은 채 꿈속을 누비다 잠이 깨면 어느새 스물셋으로의 일상이 시작된다.
눈을 뜨자마자 시간표부터 찾아본다. 대충 옷을 챙겨 입은 후 집밖을 나선다. 수업시간이 임박해 교문에서부터 함께 달리기 시작한다. 헐레벌떡 도착한 강의실에서 수업은 시작되고, 학생들은 졸음을 이기려 안간힘을 쓴다.
그저 흘러가는 오늘 일상이 흰 띠를 둘러매고 박을 향해 콩주머니를 던지던 시절엔 모두 ‘설레는 미래’였다. 노란 은행나무 길을 지나 만나는 중앙도서관도, 교내에서만 마실 수 있는 1500원짜리 커피도, 익숙한 학교 후문과 그곳을 함께 거니는 친구들도, 모두 머나먼 미래일 뿐이었다.
20여 년 후인 2030년의 내 일상은 어떤 모습일까. 내 조국 대한민국은 어떻게 바뀌어 있을까. 생각만으로도 설렘과 걱정이 동시에 밀려온다.
◈ 대학생 CEO가 바라본 한국의 ‘현재’
미래를 보기 전에 먼저 내 현재와 과거를 돌아봤다.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사업을 시작했다. IT회사인 ‘이누스 C&C’를 차려 교육 소프트웨어를 직접 개발·판매했다. 혼자 한 것이 아니라 성인 직원을 고용해 사업다운 사업을 했다.
2005년 4월, 나는 ‘농산물 유통’이란 영역에 새로운 도전장을 내밀었다. 내가 본 지역의 농민들이 제대로 된 유통망을 이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시장조사를 통해 상추라는 품종을 선택했고, 지금은 연매출이 18억원에 이른다.
3년 전 농산물을 도시에 팔아보겠다고 처음 농촌에 갔던 때가 기억난다. 농업을 천하의 근본이라 했던 과거의 전통은 사라졌고, 젊은 사람들이 떠나간 빈 자리를 연세 지긋하신 분들이 남아 마지막 힘을 다해 지켜나가고 있었다. 이후 농업기업을 만들겠다는 내 생각에 知人(지인)들은 반대했다.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상추로 상품을 정한 후 직접 발로 뛰며 사람들을 찾아 다녔다. 농산품의 품질로 경쟁할 수 있다고 아무리 설명해도 사 주는 곳이 없었다. 하지만 이 글을 쓰고 있는 2008년의 끝자락, 내 마음은 든든하다. 세상은 우리 농업을 인정하기 시작했고,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상품의 판로를 찾고 단가를 맞추기 위해 나는 1년 두 차례 전국의 농촌 곳곳을 돌아본다. 현장에서 느낀 점은 농촌이 한 해 한 해 조금씩 변화한다는 것이다. 눈에 번뜩 띌 정도는 아니지만, 진하고 짙게 바로잡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고향 농촌으로 돌아가기를 희망하고 있고, 이들이 과거를 미래의 밑거름으로 삼아 현재를 완성해가는 모습을 자주 목격한다. 우리는 긍정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3년이란 시간은 그만큼 내게 큰 의미를 주었다.
◈ 걷기 전에 뛰는 것부터 배운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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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젊은이들은 세상을 향한 큰 도약을 위해 지금 잠시 학교 도서관에서 웅크리고 있다. |
농촌의 3년만큼 2030년의 대한민국도 지금보다 더 나아질 것이다. 나는 이를 확신하고 있다. 혹자는 “세상이 어려워졌다”, “사람들의 얼굴에서 웃음을 찾아볼 수 없다”며 어지러운 현재와 미래를 외치지만, 위기의 시대는 언제나 더 큰 도약을 위한 변화의 시대였다.
춘추전국시대 어지러운 戰亂(전란)이 지난 후 중국 최초의 통일국가가 완성됐다. 冷戰(냉전)의 시대를 극복한 미국은 현재의 초강대국으로 자리잡았다. 유대인에게 가해졌던 세상의 박해는 가장 유능한 민족으로의 탈바꿈을 불러왔다.
이러한 변화의 과정이 무조건 일어나지는 않겠지만, 미래는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역량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모두가 위기를 감지하고 있는 이 시대에 감사한다.
아직 어떻게 걷는지도 배우지 않은 아기 사장이지만, 시장 한가운데서 사람 냄새 풀풀 맡으며 자라서인지 걷기 전에 뛰는 것부터 배웠다. 또래보다 빨리 사회에 뛰어들었고, 좀더 앞서서 좌절과 실패를 경험했다.
대한민국도 그랬으리라. 한국전쟁 직후 아무것도 없는 한반도 남녘 땅에서 우리의 부모님들은 걷기도 전에 뛰는 것을 배워야 했다. 끊임없는 시행착오를 경험하며 기적과 같은 성장을 이뤄냈다.
언젠가 내 할머니의 무릎에 누워 함께 대화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할머니에게 “1930년대부터 지금껏 살아오면서 가장 행복한 시대가 언제였느냐”고 물었다. 할머니는 내 이마에 꿀밤을 한 대 주시곤 당연한 것을 왜 묻느냐는 듯 대답하셨다. 지금이 제일 좋은 시대라고. 따뜻한 방안에 앉아 TV 드라마를 보고 있는 이 모습을 그땐 상상도 못했다고. 항상 세상은 당신의 욕심보다 더 빠른 행복을 가져왔다고. 돌이켜보니 할머니의 농담 섞인 대답에 큰 뜻이 담겨있었다.
1980년대 눈부신 경제 성장기의 정점에서 태어난 내게 대한민국은 그 출발부터 든든한 모습이었다. 지금 대학생의 신분으로 바라보는 대한민국 또한 여느 세계 속의 선진국과 비교해도 움츠릴 필요가 없을 정도로 자부심을 느낀다.
우리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은 식민지 시대를 피로써 이겨냈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열심히 일한 덕에 먹고 살 만해졌다. 우리네 언니들과 오빠들이 잘 싸운 덕분에 독재를 지나 민주화란 선물까지 얻었다.
◈ 20년 후를 바라보는 열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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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용박람회 취업게시판 앞에서 선 청년 구직자들 모습. ‘88만원 세대’로 불리는 이들이 곧 대한민국의 가까운 미래상이다. |
과거를 바라보는 열쇠가 우리네 할머니·할아버지에게 있다면, 20년 후 미래를 바라보는 열쇠는 현재 20대 청년들에게 있다. 청년의 눈을 보면 20년 후 한국이 보인다.
이들은 지금 세상을 향한 큰 도약을 위해 잠시 학교 도서관과 강의실에 웅크리고 있다. 무조건적인 신분상승과 개인의 영달을 위해서만은 아니다. 과거세대를 부정적으로 보기보다는 조금 더 민주적이고 이상적인 시대를 위해 잠시 기다리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현재의 20대에겐 식민역사에 대한 죄의식도, 독재에 대한 부채의식도 없다. 이전 세대에 愛憎(애증)의 대상이었던 태극기는 지금의 젊은이들에겐 자랑스러움의 상징이다. 태어날 때부터 우리에겐 천부적으로 허락된 민주주의와 풍요로움이 있었다. 나는 이들을 ‘태극기 세대’라 부르고자 한다. 그리고 2030년의 대한민국은 우리 태극기 세대에 달려있음을 의심치 않는다.
풍요를 타고난 이들은 이상세계에서의 상향평준이 아니라 현실에서의 상향평준을 지향한다. 비록 지금은 ‘88만원 세대’로 불리고 있지만, 그것은 우리가 붙인 이름이 아니라 세상이 붙여준 것일 뿐이다. 20년이 지나면 이들은 가슴에는 사회공영의 뜻으로 새로운 가치의 기준을 정하고 발전을 주도할 것이다. ‘88만원’이란 작명은 한 순간의 꿈일 뿐이다.
‘태극기 세대’에게 수동적이고 저항하지 않는 세대라고 속단하기엔 이르다. 이들은 2030년의 위대한 영광을 위해 때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일찍이 사업을 시작한 덕분에 일본과 유럽 등지의 청년 CEO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종종 있었다. 그들은 예상보다 훨씬 능동적이고 활기찬 대한민국에 한 번 놀라고, 그러나 그 속에서 젊은이들의 지속적인 도전이 이루어지지 않음에 다시 놀란다.
그들을 놀라게 한 눈부신 발전의 밑거름은 창조적인 기업가들과 활동가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러나 풍요 속에 자란 세대는 활동가적 정신이 부족하다. 그리고 지금의 글로벌경제위기는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다. 마치 광복과 전쟁 이후 아무것도 남지 않은 나라여서 더욱 멋진 발전을 이룩해 내었던 것처럼 IMF 이후 닥친 또 한번의 위기에 더욱 창조적인 인재들이 사회에 등장할 것이다.
이전 세대가 무조건적인 성장의식과 분배의식에 빠져있다면, 지금의 20대는 우리의 파이 자체를 키워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선 철저히 실력으로 무장된 자신만의 가치를 키워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벤처기업, 또는 이노베이션 기업이란 이름으로 불리며 관심을 모았지만 청년의 열정밖에 없어 무너지는 기업들을 수없이 목격했다. 앞으로 세워질 새로운 기업들은 기존의 벤처와는 또 다른 양상을 보이며 성장할 것이다. 또한 기업의 이윤과 함께 사회적 역할의 중요성이 대두될 것이다.
모든 것이 변해가는 세상이지만, 우리 민족에겐 뼛속까지 새겨진 우리만의 힘이 있다. 혹자는 이를 ‘恨(한)’이라 하고, 혹자는 ‘熱情(열정)’이라 부른다. 대한민국은 이 기묘한 두 성격으로 급속한 성장을 이뤘고, 또한 수많은 역사적 실수를 저질렀다. 이는 2030년의 대한민국도 마찬가지리라.
◈ ‘세계 속의 강한 한국’ 이룰 것
오늘 자 신문을 펼쳤다. 20~30년 전 과거의 사건들이 오늘에서야 새롭게 평가되고 정립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사회적 현상은 단절되는 것이 아니라 항상 지속되고 있다.
정치·경제·북한·사회 등 사회 곳곳에서 지금 이 순간 벌어지고 있지만 깊이 감춰진 다양한 문제들이 20년 후에 수면 위로 떠오를지 모른다. 아니, 20년 동안 끊임 없이 문제를 인식한 이들의 노력과 여러 정책과정을 통해 나름의 해결과정을 거쳐나갈 것이다.
꿈 속의 운동회가 다시 떠오른다. 우리는 왜 그렇게 행복해했을까. 찬란한 금박을 뿌리며 터진 상대편의 박을 보면서 울먹이는 청군, 승리의 기쁨에 젖어 하늘 향해 만세를 외치는 백군. 이들의 싸움은 치열했지만, 그 후는 지나치게 싱겁다. 다시 친구로 만나 서로 격려하고 위로한다. 같이 김밥 먹고 같이 뛰어 논다.
대한민국도 그러하리라. 지금은 치열하게 다투며 서로를 이기려 경쟁하지만, 20년 후엔 서로 오붓하게 둘러앉아 김밥을 먹으며 지난날의 운동회를 둘러보고 있지 않을까. 우리는 자본주의가 오롯이 경쟁이나 온전히 협동이 아니라 두 가지가 적절히 어울려 만드는 것임을 배웠다.
20년 후 미래에 대한 예측은 현재 사회를 주도해 나가는 세대의 몫이지만, 그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현재 20대인 우리에게 있다. 나는 풍요의 나라에서 태어나 ‘세계 속의 대한민국’을 외치는 이 순간이 자랑스럽다. 그리고 이러한 환경을 준 지난 세대에 감사한다.
우리 20대는 과거에 머무를 수 없다.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고, 이제는 주도적으로 미래를 설계해야 한다. 한국의 빠른 성장과, 그 속에서 일어났던 적지 않은 부작용들을 가슴으로 떠안아 새로운 20년을 이끌어가야 한다. 치열하게 비판하고 과감하게 승부를 걸어야 한다.
2030년, 그날이 오면 우리는 태극기를 자랑스러워하는 세대가 아니라 전 지구를 자신의 가치로 여기고 진정한 의미의 ‘강한 한국’을 외치는 새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 믿는다. 이 모든 것은 끊임없는 고민 끝에 이룩해온 선배들의 노력과 그 과정에 가치를 부여하고, 이를 잘 계승해나갈 20대의 몫이다. 또한 우리의 선배들이 우리의 미래를 위해 보다 많은 기회와 소통의 장을 만들어 줄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한국은 걷기 전에 뛰는 것부터 배웠다. 20년 후엔 하늘을 훨훨 날고 있을 세계 속의 우리나라를 상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