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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년 1월호

[대한민국 2030] 한국인은 무엇을 먹고 살까?

요리는 로봇이, 농산물은 주차장 터에서 직접 재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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朱永河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부교수
⊙ 1962년 마산 출생.
⊙ 서강대 사학과 졸업, 한양대 대학원 문화인류학 석사, 중국 중앙민족대학 대학원 민족학 박사.
⊙ 저서: <음식전쟁 문화전쟁> <중국 중국인 중국음식> <그림 속의 음식 음식 속의 역사> 등.
서울 양재천변의 벼농사 학습장에서 어린이들이 추수를 하고 있다. 미래에는 아파트단지의 빈공간에서 농사를 지어 농산물을 자급자족하게 될 것이다.
  2030년, 만 30세가 된 회사원 홍석씨는 재작년부터 월·수·금·일 4일에 한 시간씩 부모님이 참여하는 먹을거리 공동센터에 나가기 시작했다. 재작년에 결혼을 했고, 작년에는 아들 하나를 낳았으니, 이제 어엿한 가장이 되었다. 결혼을 하면서 아내와 함께 먹을거리를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의견을 모았다. 오후 5시 회사에서 퇴근을 하여 6시쯤에 공동센터가 있는 집 근처에 도착했다. 벌써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서 모인 회원들이 즐거운 담소를 나누면서 음식을 먹고 있다. 아내와 두 살 된 아이도 와 있다. 부모님은 오늘 공동센터를 쉬는 날이라 보이지 않는다. 약 한 시간의 식사가 끝나면 각자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신들이 할 일을 맡아서 한다.
 
  홍씨는 새로운 천년이 시작된 2000년에 태어났다. 2000년대를 두고 사람들은 희망찬 미래가 되리라고 믿었다. 하지만 2008년부터 시작된 각종 농수산물의 안전 문제는 한국 사회만이 아니라, 전 지구촌의 삶을 위협하는 문제가 되었다. 특히 지구 온난화 문제는 먹을거리를 확보하는 문제로까지 이어졌다. 홍씨가 10대가 된 2010년에 들어와서 세계적인 기후 불안으로 먹을거리의 확보는 더욱 심각해졌다. 이런 와중에 외국에서 수입한 농수산물에서 인체에 해로운 성분들이 발견되어 초등학생들이 집단으로 사망하는 일이 일어났다.
 
  홍씨의 부모님은 2015년이 되었을 때 먹을거리를 스스로 생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가졌다. 마침 부모님 주변에는 이런 문제를 함께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농촌으로 가서 아예 농사를 직접 지으면서 안전한 먹을거리를 생산하겠다는 분들도 있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먹을거리의 유통에 있었다. 유통회사가 자신의 이익을 포기하지 않는 한 품질이 좋은 농수산물을 싼값으로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 공급되기는 어려웠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도 스스로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방법을 확보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도시에는 토지도 거의 없고, 있어도 그 가격이 너무 비싸서 어려웠다.
 
 
  ◈ 주차장 자리에 들어선 먹을거리 공동센터
 
주말농장에서 채소를 재배하는 가족들. 식품안전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면서 이런 모습이 일반화될 수 있다.

  그때 나온 아이디어가 아파트 단지의 불필요한 공간을 논과 밭으로 바꾸자는 것이었다. 가장 먼저 사람들의 눈에 들어온 공간은 광장과 주차공간이었다. 물론 지하에 주차장 시설이 있는 아파트 단지에서는 그곳을 활용하자는 주장도 나왔다. 그런데 문제는 승용차의 주차를 어떻게 할 것인가였다. 그래서 시작된 운동이 승용차를 없애자는 캠페인이었다. 비록 전기자동차가 이제 상용차가 되었지만, 그래도 지구 온난화 방지를 위해 아예 개인 승용차를 없애고, 주차공간을 논밭으로 만들자는 운동이 2020년이 되면서 사회적인 대세가 되었다. 홍씨 가족이 살고 있던 아파트 단지에도 2020년에 ‘먹을거리 공동센터’라는 것이 정부 지원으로 세워졌다.
 
  ‘먹을거리 공동센터’의 시설은 쌀·밀·메밀 등의 곡물농사를 지을 수 있는 논과 15~20가지 채소를 재배하는 밭으로 구성된다. 모든 시설은 자연 상태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만들어졌다. 온실은 지구 온난화 문제와 연결되기 때문에 설치할 수 없게 되어 있다. ‘먹을거리 공동센터’의 중앙에는 공동부엌과 공동식당이 자리를 잡았다. 지자체에서는 이 시설을 운영하는 전문 지식과 기술을 가진 사람들을 배치시켜 주었다. 하나의 공동센터에 참여하는 회원은 50가족을 넘지 않았다. 왜냐하면 너무 많은 가족이 참여할 경우, 그 규모도 커져야 하기 때문이다. 배추를 수확하는 가을에는 공동센터에서 일하는 조리사가 주도하여 맛있는 김장김치를 함께 담갔다. 물론 모든 재료는 스스로 마련한 것이었다. 젓갈의 경우, 홍씨가 참여하는 공동센터와 연결된 어촌의 공동센터에서 원료를 구입해 왔다.
 
  회원들은 매주 정해진 시간만큼 이곳에서 일을 한다. 품앗이 방식을 노동력 투하에 도입한 결과다. 정해진 시간만큼 작업에 참여하지 못한 사람은 돈으로 노동을 대신했다. 이것은 조선시대 두레 조직에서 행했던 작업 분배 방식을 도입한 결과다. 하지만 회원들은 가족의 먹을거리를 자신들이 스스로 확보한다는 점에서 매우 적극적이다. 그렇다고 매일 공동식사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작업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함께 식사를 할 뿐, 재료가 확보되면 음식의 조리는 각자 집에서 했다. 각자 좋아하는 음식이 별도로 있기 때문이다.
 
  홍씨가 요즘 좋아하는 음식은 메밀가루로 만든 국수를 삶은 다음에 닭고기 국물을 붓고, 그 위에 각종 채소를 올린 음식이다. 자신이 10대일 때 먹은 음식들과 비교하면 그다지 자극적인 맛은 없지만, 싱싱한 재료의 맛이 좋아서 즐기는 편이다. 더욱이 모든 재료가 먹을거리 공동센터에서 생산한 것이라 안심할 수 있기 때문에 더 좋아한다.
 
 
  ◈ 요리하는 로봇
 
  예전에는 수퍼마켓에 가서 메밀국수를 사다가 이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하지만 요즘에는 요리로봇이 집에 있기 때문에 기본적인 재료만 있으면 국수를 만드는 일은 간단하게 이루어진다. 다만 완성품을 만드는 일은 자신이 직접 한다. 암만해도 요리로봇이 만든 음식에는 깊은 맛이 없기 때문.
 
  요리로봇은 2020년에 가장 유행했던 가전제품이었다. 처음에는 재료만 넣으면 완성된 요리를 만들어 주어 사람들로부터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음식의 맛이 어머니의 그것을 따라가지 못했다. 그래서 완성품 위주가 아니라, 요리의 재료를 만드는 요리로봇이 인기를 누렸다. 다만 간장·된장·고추장·마요네즈·케첩 등과 같은 소스 음식은 요리로봇이 완성품까지 스스로 만들고 저장과 보관까지 해준다. 더욱이 자신이 좋아하는 다양한 맛의 소스를 만들 수도 있기 때문에 소스요리로봇은 대단한 인기를 누린다.
 
  홍씨는 아내와 결혼을 하면서 다양한 종류의 소스를 만들 수 있는 요리로봇을 구입했다. 홍씨의 요리로봇은 한국음식뿐만 아니라, 중국·일본·이탈리라·프랑스의 음식에 들어가는 소스를 만드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홍씨 부부가 가장 신경을 쓰고 자신들의 시간을 많이 투자하는 가정의 일 역시 먹을거리와 관련된 것이다. 이런 일은 할아버지·할머니 혹은 아버지·어머니 시대와 다르지 않다. 다만 그 전과 달라진 점은 자신들이 먹을 음식 재료를 대부분 직접 장만한다는 데 있다. 부엌에서 조리를 하는 일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작업 내용은 요리로봇을 이용하여 각종 소스를 직접 만드는 것이다. 다만 설거지나 청소와 같은 일에 들어가는 시간이 그 전에 비해 많이 줄었다. 그래서 이제 더 이상 음식 장만이 아내의 일로 여겨지지 않는다. 홍씨 부부는 음식 장만과 육아를 공동으로 한다.
 
  이러다 보니 집에서 먹는 음식은 매우 간단한 편이다. 재료의 안전성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에 확보할 수 있는 먹을거리가 그 전에 비해서 많이 줄었다. 2010년에 먹던 음식들은 집에서 더 이상 소비되지 않는다. 그 대신 소스가 다양해졌고, 재료가 신선해졌다. 음식의 양도 전에 비해 줄었다. 특히 쇠고기·돼지고기·닭고기나 생선은 전과 달리 사람들이 많이 먹지 않는다. 2020년대에 제3세계에서 肉食(육식)으로 인한 전염병이 문제가 되어 그 이후로 육고기의 수입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 ‘소스’가 요리의 핵심
 
다문화사회가 되면서 외국음식점들이 인기를 끌게 될 것이다. 사진은 서울 이태원의 케밥 전문점.

  그 사건 후 정부에서 육고기와 생선을 생산하는 시스템을 국가에서 직접 관장하기로 했기 때문에 지금은 매우 안전한 음식을 구입할 수 있다. 비록 그 양은 적지만 안전한 육고기와 생선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사람들의 식생활 방식도 지난 10년 동안 꾸준히 바뀌었다. 즉 질 좋은 음식을 가능한 한 적게 먹는 방식이 널리 퍼졌다. 이로 인해 요리 방법도 좋은 재료를 이용하여 영양가가 풍부하도록 만들면서 맛을 내는 방향으로 변했다. 그중 하나가 맛과 영양을 지닌 소스의 다양화다.
 
  식품회사에서도 예전처럼 원재료를 만드는 사업을 주력으로 하지 않는다. 그 대신 최첨단 소스를 개발하는 일에 승부를 건다. 홍씨가 어릴 때 보았던 음식 광고는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렵다. 요즘은 주로 맛과 영양을 강조하는 각종 소스의 선전 광고가 주류를 이룬다. 만약 스스로 재배한 채소가 있다면 그것을 어떻게 맛있게 조리하여 먹을 수 있는지를 소개하는 광고가 나온다.
 
  이런 경향은 음료수나 술에서도 마찬가지다. 직접 음료수를 만들 때 영양과 맛이 있도록 만드는 데 필요한 소스가 중요하게 되었다. 홍씨는 술도 직접 집에서 만든다. 술과 음료수를 전문적으로 만들어주는 요리로봇이 집에 있다. 다만 술과 음료수를 만드는 재료는 외부에서 구입한다.
 
  그래도 외식을 전혀 하지 않을 수는 없다. 직장에서 먹는 점심식사는 집에서 직접 만든 도시락으로 해결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식사를 홍씨 자신이 해결하기는 어렵다. 외식업체는 대부분 집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음식들을 판매한다. 각종 외국 음식점이나 역사 음식점이 인기를 누린다. 외국 음식점은 홍씨의 어린 시절과 비슷하다. 다만 조리사나 서빙(serving)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그 음식이 출발한 현지의 외국인이 직접 하는 경우가 많다. 2000년 이후 한국사회가 多文化(다문화) 사회로 접어든 후, 지금은 전체 국민 중에서 형질적으로 한국인과 외국인이 거의 반반에 이른다. 한국화된 외국 음식이 인기를 누리는 이유도 이런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다.
 
  최근에 홍씨가 자주 가는 식당은 조선시대 선비들이 먹었던 음식들을 판매하는 곳이다. 모든 음식은 18세기 선비들이 먹었던 검박한 식단으로 짜졌다. 특히 18세기에 선비들이 즐겼던 것으로 알려진 ‘두부장’이란 음식은 영양과 맛이 너무나 신선하여 홍씨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다.
 
 
  ◈ ‘먹을거리 휴가’
 
  역사 음식점에서는 각종 역사문헌에 나오는 음식들 중에서 영양과 맛이 독특한 것을 찾아내 새로운 메뉴로 선보인다. 이 식당에 가면 삶에 대한 지혜도 함께 배운다. 특히 음식에 대한 철학을 강의해주고 토론도 이루어진다. 홍씨가 아내를 처음 만난 장소도 바로 이 역사음식점에서다.
 
  역사음식점에서 조선시대 청주를 한 잔 마신 홍씨는 집으로 가기 위해 전철역으로 향한다. 식당들이 모여 있는 골목을 지나면서 본 식당 간판은 자신이 어릴 때 본 도심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다. 하지만 식당 간판의 신호는 크게 다르다. 갈비·감자탕·회·중화요리 등의 식당 간판이 사라진 대신 각종 영양소와 건강을 강조하는 네온사인이 식당을 상징하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귀가 시간이 늦는 바람에 아내와 약간의 말다툼을 했다.
 
  아내를 위로하기 위해 아파트의 발코니에 마련된 미니 바에 앉았다. 자신이 만든 맥주를 근사한 잔에 담아 아내를 위로하며 발코니 밖을 내다본다. 한여름 밤의 보름달에 누렇게 익어가는 벼가 눈에 들어온다. 추수를 할 때가 다 되어간다. 올 가을에도 회사로부터 2주일의 ‘먹을거리 휴가’를 받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작년에도 1주일은 각종 곡식을 추수하는 데 썼고, 나머지 1주일은 김장을 하는 데 썼다. 덕분에 당분간은 먹을거리로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내일 아침에는 논길을 산보할 생각을 하면서 2030년 한여름 밤의 무더위에 잠을 청한다. 밖에서는 먹을거리 공동센터의 논밭에서 울려 퍼지는 개구리 소리가 무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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