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프랑스의 석학 자크 아탈리는 저서 <미래의 물결>에서 한국은 지정학적ㆍ경제적ㆍ문화적 강점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국제 사회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며 북한과의 관계 해결, 출산율 문제 해결, 물류거점 개발 등에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미래의 물결> 중 마지막 장 ‘한국의 가까운 미래’의 내용을 요약했다.
자크 아탈리(Jacques Attali) 佛 아탈리 아소시에 대표
⊙ 1943년 알제리 출생.
⊙ 파리 소르본大 경제학 박사.
⊙ 前 대통령 특별보좌관 및 유럽부흥개발은행 총재, 現 아탈리 아소시에 대표,
프랑스 정부 국정자문역.
⊙ 저서 <호모 노마드-유목하는 인간> <미래의 물결> <인간적인 길> <합리적인 미치광이> 등.
프랑스의 석학 자크 아탈리는 저서 <미래의 물결>에서 한국은 지정학적ㆍ경제적ㆍ문화적 강점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국제 사회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며 북한과의 관계 해결, 출산율 문제 해결, 물류거점 개발 등에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미래의 물결> 중 마지막 장 ‘한국의 가까운 미래’의 내용을 요약했다.
자크 아탈리(Jacques Attali) 佛 아탈리 아소시에 대표
⊙ 1943년 알제리 출생.
⊙ 파리 소르본大 경제학 박사.
⊙ 前 대통령 특별보좌관 및 유럽부흥개발은행 총재, 現 아탈리 아소시에 대표,
프랑스 정부 국정자문역.
⊙ 저서 <호모 노마드-유목하는 인간> <미래의 물결> <인간적인 길> <합리적인 미치광이> 등.
- 인천 송도 신도시는 동북아 물류 중심이 되려는 야심의 표현이다. 사진은 2009년 10월 개통을 목표로 공사 중인 인천대교.
첫 번째 이유를 보자. 과거에 한국은 제조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윤, 이동성, 기술혁신, 운송기술 등보다 농업과 식품산업, 地代(지대)와 그 지대에 밀접한 이해관계로 얽혀 있는 관료들의 이익을 우선시해 왔다. 뿐만 아니라 권력을 숭배하고 민중의 힘을 두려워했으며, 철옹성처럼 견고한 관료계급을 떠받들며 과거를 미화하고 과거에 대한 향수 속에서 살아왔다고 말할 수 있다.
두 번째로, 한국은 오랫동안 해양산업을 소홀히 했다. 거북선의 발명 등 16세기에 이뤄진 기술적인 혁신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해 지속적으로 해양을 제어할 수 있는 능력으로 발전시키지 못했으며, 30여년 전에야 비로소 경제적 도약을 뒷받침할 만한 실질적인 해양상선단을 형성했다. 농업과 제조업의 배후지만 놓고 본다면 ‘거점’이 될 만 했음에도 불구하고, 지극히 최근에 와서야 항구를 집중적으로 키우기 시작했으므로 외부 세계로의 개방이 그만큼 늦어졌다.
마지막으로, 한국은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자력으로 ‘창조적 계급’을 키우거나 외부로부터 이들을 받아들이는 데 실패했다. 따라서 한국은 충분한 선원, 엔지니어, 기업 창업가, 상인, 제조업자들을 길러내지 못했으며, 외국으로부터 대규모로 과학자, 은행가, 기업가들을 끌어들이지도 못했다. 한국은 이 같은 ‘창조적 계급’ 대신 어떻게 해서든지 위험 부담을 줄이려고 애쓰는 이론가나 관리계급, 다시 말해서 개개의 문제를 종합하고 행정적으로 처리하는 達人(달인)들을 키워냈을 뿐이다.
◈ 북한과의 갈등 해결해야
그리고 앞으로 한국이 평안한 상태에서 미래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과거가 빚어놓은 갈등, 즉 북한과의 관계를 해결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만일 북한의 급변하는 상황으로 말미암아 무력충돌로 치닫거나, 혹은 북한 정권이 갑작스럽게 붕괴되는 일이 발생한다면, 양자 모두 한국으로서는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서울은 북한과의 국경에서 겨우 50km 정도 떨어져 있을 뿐이기 때문에 무력충돌이 발생할 경우 최근 40년 동안 이뤄 놓은 성과가 하루아침에 초토화될 위험이 크며, 북한 정권이 붕괴되어 북한 주민들이 대거 남쪽으로 넘어오는 경우 이들을 소화하고 국토를 재정비하는 데 들어가는 천문학적 비용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는 북한의 핵무기 야욕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처하는 동시에 개성공단 같은 산업시설을 통해 북한과의 경제교류를 활성화시키는 정책 또한 병행해야만 할 것이다. 그래야만 평양 정권이 점진적으로 개방의 길로 들어설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이 점진적인 개방에 이어 중국을 모델로 하는 체제변화를 실현한 다음에 비로소 남한과 북한이 점차적으로 하나로 수렴되는 방식을 택하는 길만이 한국이 피해를 입지 않고 통일을 이룰 수 있는 최상의 시나리오가 될 것이다.
남한과 북한의 통일이 성공적으로 이뤄질 경우 한국의 미래는 지금까지는 한국이 그다지 개의치 않았던 미래의 역사를 이끌어 가는 법칙, 이를테면 관계 위주의 환경을 조성하고, 운명 공동체에 스스로 편입되기를 욕망하며, 창조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고, 거대한 항구, 대규모 금융시장을 건설하며, 공정한 방식으로 시민들에게 새로운 지식을 교육하고, 미래의 신기술을 자기 것으로 만들고, 지정학적인 위치를 확립하고, 필요에 따라 동맹을 맺는 따위에 필요한 법칙에 순응하느냐 아니냐의 여부에 달려 있다.
이러한 미래의 다양한 도전 중에서 한국은 신기술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분야, 그중에서도 특히 정보산업(IT)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내고 있으며, 이는 확고한 정부의 의지와 삼성전자, LG전자, SK텔레콤 등을 비롯한 역동적인 재벌, NHN, 오마이뉴스, 엔씨소프트, 넥슨 같이 기술혁신적인 기업들이 합심해 노력한 결과다. 이 분야에 있어서의 투자와 수출은 바이오테크놀로지, 로봇테크놀로지, 우주기술 같은 미래산업 분야 혹은 자동차나 조선업 등 보다 고전적이지만 여전히 역동적인 분야들과 맞물려서 한국의 지속적인 성장 동력이 될 것이다.
◈ 동북아 물류 허브 가능성
한국은 이미 물류와 금융의 허브가 되겠다는 야심을 천명했으며, ‘동북아시아의 관문’이 되겠다는 전망도 피력했다. 하지만 그와 같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몇몇 비중 있는 개혁이 필수불가결하다.
남한과 북한이 통일된다는 전제하에서 볼 때, 물류에 관한 야심은 현실적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부산항은 세계에서 가장 큰 항구 중 하나이고, 2001년에 준공된 서울 근처의 인천공항 또한 세계적인 규모를 자랑하고 있으며, 인근에서는 송도신도시 건설 계획까지도 진행되고 있다. 송도신도시는 자유경제지역이면서 동시에 완벽한 유비쿼터스 환경을 구비한 도시가 될 것이다.
![]() |
세계 유수의 항구 중 하나인 부산항 감만부두의 夜景. |
이렇게 볼 때, 부산에서 시베리아를 횡단해 헬싱키에 이르는 철도노선 구축을 충분히 상상해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시설은 북아시아와 유럽 간의 물류이동 시간을 확실히 단축시킬 수 있을 것이다. 반면, 금융 허브로서의 야심을 구현시키기란 사실상 이보다 훨씬 요원해 보인다. 서울은 우선 도쿄, 홍콩, 싱가포르, 상하이 등 기존의 금융 중심지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할 것이다. 그뿐 아니라, 금융거래의 투명성, 부패방지, 족벌경영 체제 등을 타파하기 위해 보다 치열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 |
부산에서 핀란드 헬싱키에 이르는 철도가 구축될 경우 북아시아와 유럽간 물류이동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을 것이다. 사진은 눈 덮인 벌판을 달리는 시베리아 횡단열차. |
함께 운명을 짊어지겠다는 공동체 의식은 한국이 지닌 대단한 강점 중의 하나다. 한국의 놀라운 경제적 도약은 반세기 가량 이어진 일본의 강점, 동족끼리 총부리를 들이댄 전쟁의 비극에서 비롯된, 가난과 열강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집단적인 욕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바로 이 공동의 열망과 의지 덕분에 한국인들은 단결하여 함께 노력한 결과, 불과 30여년 만에 전쟁으로 피폐해진 나라를 세계 제12위 경제대국으로 변모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한국 사회의 가장 큰 걱정거리인 사회적 불평등의 가속화로 말미암아 이 같은 힘은 점차 약화되고 있다. 노동시장의 양분화와 소득 불평등이 첨예해지고 있으며, 주로 중소기업들이 고용하는 비정규직 근로자 또는 불법 노동자의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다. 대기업이나 공공 기업들은 고용인들에게 적절한 사회보장을 제공하는 반면, 이들 중소기업은 기업의 사회비용을 전혀 지불하지 않거나 고용인들의 복지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2004년의 경우, 정규직 근로자 평균임금은 노동시장의 48.6%를 차지하는 비정규직 근로자 평균임금의 2배에 이른다.
◈ 가족정책, 교육정책 개혁 시급
이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97년 아시아 경제위기 이후 차츰 도입되기 시작한 고용보험은 건강보험, 개인연금 등과 더불어 첫걸음을 내디뎠으나, 아직 미미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OECD 기준에 따르면, 한국은 2015년에 가서야 복지예산으로 GDP의 15.2%를 쓰는 수준, 즉 2001년 미국 복지예산 수준에 도달할 것이다. 2001년의 일본 복지예산인 GDP의 17.5% 수준에 도달하려면 2020년까지 기다려야 한다.
더구나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가임여성 1인당 1.09명)과 더불어 인구의 급격한 노령화로 말미암아 조만간 사회비용 지출의 증가가 시급한 과제로 대두될 것이다. 이러한 추세로 인해, 지금까지는 유교적 전통에 따라 자식들의 부양을 받으며 장남과 함께 살던 노인들의 퇴직연금 문제 또한 매우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여성해방 추세와 더불어 노동시장에 뛰어들어 자기 일을 가지려는 여성들의 열망은 점점 강해지고 있지만, 육아시설이 부족한 현실은 낮은 출산율이라는 사회적 우환을 낳았으며, 여성들은 일과 가정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당하는 형편에 놓여 있다.
![]() |
저출산으로 텅빈 산부인과 병원. 한국이 선진국이 되려면 인구저하를 막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
이와 같은 인구저하를 막기 위해서 한국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개혁을 반드시 이뤄야 한다.
첫째, 가족정책의 개혁이다. 여성들에게 실질적인 출산휴가를 보장하고, 출산 후에도 어머니로서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병행할 수 있도록 법제화하는 강제적인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러한 정책은 출산율 증가와 여성 노동인구 확대라는 두 가지 효과를 동시에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정책이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국민들의 사고방식에 깊이 뿌리 내린 家父長的(가부장적) 체제를 재고해야 할 필요가 있다.
둘째, 교육정책이 개혁돼야 한다. 한국에서 교육은 지나친 경쟁과 지나친 비용을 유발함으로써 출산을 저해하는 걸림돌이 됐다. 이러한 교육풍토로 인해 한국 사람들은 GDP의 3%를 사교육비로 지출하고 있는데, 이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비율임에도 불구하고 그 성과는 미미하기 그지없다.
예컨대, 한국 사람들은 영어 과외를 위해 7억5200만 달러를 지출하는데도 전 세계 토플 순위는 110위에 머무르고 있다. 또 영국의 <타임스>지 조사에 따르면, 한국에서 가장 우수한 대학교인 서울대학교는 세계 랭킹 63위에 불과하다.
교육개혁은 수업의 양을 줄이면서 노동시장의 현실과 세계 표준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다. 교육개혁은 특히 한국의 대학들을 외국에 알림으로써 외국의 인재들을 한국으로 끌어오는 데 역점을 둬야 할 것이다.
◈ 위기가 기회다
![]() |
한국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이민정책의 개혁이 필요하다. 사진은 외국인 근로자 행사에 참석한 외국인 근로자들. |
셋째, 이민정책의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 한국은 외국의 재능 있는 인재들에게 국경을 점진적으로 개방해야 할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 한국 사람들은 이민을 받아들이는 것이 결코 국가 정체성이나 단일성에 위협적인 요소가 되지 않음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 같은 개방정책은 실질적인 ‘동북아시아의 관문’이 되기 위해 여러 분야로 확대돼야 할 것이다.
예를 들면, 첫째 외국을 보는 관점과 외국이 한국에 줄 수 있는 이득을 보는 관점을 달리해야 한다.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들 중 43%는 자신들이 한국에서 받는 대우가 만족스럽지 못하며, 자신들이 모든 종류의 차별, 특히 언어 장벽으로 인한 차별 때문에 희생당하고 있다고 답하고 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둘째, 외국의 투자자들에게 한국 경제를 좀 더 개방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금융위기 이후 많은 발전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금융의 투명성과 기업경영의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요사이 한국은 기술적인 면에서 최첨단을 달리고 있는 일본과, 자국 영토 내에서 만들어내지 못할 것이 없는 중국 사이에 끼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될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위협적인 상황은 오히려 한국에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중국과 일본, 한국 각국은 벌써 오래 전부터 나머지 두 나라의 가장 중요한 무역상대국 3위 안에 들 정도로 서로가 서로에게 매우 중요한 경제 파트너 역할을 해 왔다. 한국은 이처럼 긴밀한 경제상황을 좀 더 적극적으로 다져 나감으로써 북아시아 공동시장을 만드는 데 앞장설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한국은 중국시장 진출에 특혜를 부여 받을 수도 있고, 동시에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시장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세 나라는 공동의 에너지정책을 펼칠 수 있으며, 으뜸가는 지역금융 중심지로서의 자리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미국과 아시아 사이의 거시적 무역 불균형이 야기할 수도 있을 경제위기에도 보다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아시아개발은행은 이 지역 전체의 화폐를 통일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3국을 보다 밀접하게 묶으려는 시도는, 아시아에서의 리더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혈안이 돼 있는 중국이나 일본으로부터는 시작되기 어렵다. 중국이나 일본과의 사이에 놓여 있는 과거 역사나 영토 문제로 인한 현안을 한국이 슬기롭게 해결할 수 있다면, 위에서 언급한 대로, 중국과 일본이라는 두 경쟁 국가를 정치 경제적으로 가깝게 만드는 데 견인차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두 나라는 경쟁관계에 놓여 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치관이나 이해관계에 있어서 많은 공통점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할 수 있다면, 한국은 이 같은 새로운 경제적ㆍ지정학적 상황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으며, 미래에 중심적인 국가로 부상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