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鎭炫
⊙ 1936년 경기 안성 출생.
⊙ 서울 양정고·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美 하버드大 니만펠로 과정 수료, 고려大 명예경제학 박사,
광운大 명예공학박사.
⊙ 동아일보 논설주간, 한국경제연구원 대표이사 부원장, 과학기술처 장관, 한국경제신문 회장,
문화일보 회장, 세계화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 서울시립대 총장 역임. 한국미래학회 창립회원.
⊙ 저서: <한국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한국의 선택> <소명으로서의 기업>
<일본친구들에게 정말로 하고 싶은 이야기> 외 다수.
⊙ 1936년 경기 안성 출생.
⊙ 서울 양정고·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美 하버드大 니만펠로 과정 수료, 고려大 명예경제학 박사,
광운大 명예공학박사.
⊙ 동아일보 논설주간, 한국경제연구원 대표이사 부원장, 과학기술처 장관, 한국경제신문 회장,
문화일보 회장, 세계화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 서울시립대 총장 역임. 한국미래학회 창립회원.
⊙ 저서: <한국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한국의 선택> <소명으로서의 기업>
<일본친구들에게 정말로 하고 싶은 이야기> 외 다수.
- 태백산의 일출.
그러나 지난 60년 ‘근대화 혁명’의 성공, 1945년 이후 독립한 140개에 가까운 非(비)서방 제3세계 국가 중 유일하게 근대 시민·근대 자유사회 창조에 성공한 대한민국의 정상과 일탈을 뼈아프게 성찰해 ‘근대 뛰어넘기’에 성공하면 2030년을 낙관할 수도 있다. 즉, 대한민국은 ▲사회 통합력·신뢰할 수 있는 리더십 창출 ▲전쟁 포비아(공포증)에서 해방되는 통일의지 ▲善進化(선진화), 軟性(연성), 세계적 한국모델(Global Korea Model)의 창출에 성공하면 평화·안전·매력·가치에서 세계적 모범국가가 되고, 워싱턴 기준(Washington Consensus), 베이징 기준(Beijing Consensus)의 실패를 뛰어넘어 서울 기준(Seoul Consensus)이 세계 기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지난날의 경제 결정론적 낙관주의, 한민족 우월주의 같은 편협성을 버리고 ‘희망을 잃지 않는 온건한 비관주의’ 입장에서 미래를 분석, 접근해야 한다. 극단의 낙관주의, 극단의 비관주의 그 어느 것도 옳지 않다. 이들 입장에 서면 미래 예측, 미래 분석의 필요성이 없어진다.
1977년 1월 20일자 조선일보는 당대 최고의 선승 呑虛(탄허) 스님의 인터뷰를 싣고 있다. 인류의 60% 내지 80%가 줄어드는 종말론적 미래를 논하고 있었다. 그러나 탄허 스님은 “그것은 종말이 아니라 성숙으로 보고 한국의 미래를 낙관한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세계적인 지진과 해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요즘 지진이 전혀 없던 나라도 지진으로 많은 피해를 입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나라는 간방(艮方·八方의 하나로 正東과 正北 사이 한가운데를 중심으로 한 45도 각도 안의 방향-편집자 주)이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요동이 적고 해일의 피해도 극히 적을 것입니다. 역학 원리에 의거해서 한마디로 말한다면 한국의 미래는 세계적으로 가장 좋아진다고 보겠습니다.”
그러나 이런 낙관론은 점술적 참고는 되나 정책적 미래 모색의 길잡이가 되지는 않는다.
◈ 11년 전인 1998년, 21년 뒤인 2030년
2009년 1월 대한민국 국민은 1998년 1월의 악몽을 떠올리며 새해를 맞는다. 11년 전에 비해 훨씬 원인의 깊이나 파도의 폭이 큰 세계적 위기 속에서 새해를 맞는다. 1998년과 2009년 사이에는 네 가지 다른 점이 있다.
첫째, 11년 전 한국은 외환위기로 IMF(국제통화기금)와 미국 재무성, 월스트리트로부터 기업 금융의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라는 채찍질을 맞았다. 이번에는 세계금융의 중심이요, 세계금융 시스템 관리자인 이들이 도덕적 해이의 주범이다. 금융지진의 진앙지가 서울이 아니라 월스트리트여서 그 쓰나미가 전 세계를 덮고 있다.
둘째, 당시 한국은 金泳三(김영삼)-金大中(김대중) 정권 교체기의 한가운데, 즉, 정치적·행정적 공백기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경제 대통령을 자부하며 등장한 李明博(이명박) 정부가 출발한 지 1년 가까이 되었다. 반대로 미국은 클린턴 대통령 재선 임기 중으로 그의 전성기였으며, 지금은 아들 부시와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오바마 간의 정권 교체기라는 점이다.
셋째, 그간 북한의 일괄된 핵 장난과 남한 교란, 韓美(한미)동맹 교란이 성공하고 있다는 점이다. 11년 전만 해도 상상의 대상이 아니었던 북한이 핵 실험을 실시한 지 3년째가 되었는데도 6자회담은 形骸化(형해화)되고 한반도 非(비)핵화의 길은 멀어지고 있다. 특히 이에 대응하는 대한민국의 국내 역량이나 대외 협상력이 계속 떨어지고 있다.
넷째, 11년 전 대한민국의 GDP(국내총생산)는 세계 11위, 무역 거래액은 12위였으며, 당시 한국개발연구원(KDI)의 2020년 장기비전은 GDP 7위(2010년 8위), 무역 6위(2010년 7위)였다. 그러나 그간 브라질, 인도, 스페인, 멕시코 등의 부상으로 GDP는 13위, 무역은 현재 11위로 제자리걸음 하고 있다. 게다가 원화 저평가와 환율 급락 등 2008~2009년 GDP 계산은 더욱 추락할 것이다.
우리는 비전이나 역사 문명이라는 거대담론을 제쳐 놓고 지난 11년간의 변화의 비교만으로도 21년 뒤 2030년을 조망할 수 있는 기준, 근거, 명제를 찾기에 충분하다. 潘基文(반기문), 曺秀美(조수미), 신지애, 김연아, 삼성, LG, POSCO, 동원, BBQ 치킨 등 개별 단위로는 단군 이래 최초로 전 지구를 휘날리는 명성을 얻고 있음에도 대한민국의 상대적 위상은 전진하지 못했다.
선진권이 아닌 후진권의 상대적 도약이 더 컸기 때문이기도 하다. 개별단위, 특히 개인플레이와 가족이기주의가 두드러진 곳은 그 능력이 비약했으나, 사회 전체의 통합력·통치력·구심력·내구력은 현저히 감퇴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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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업들은 이미 한국이라는 울타리를 넘어 세계와 경쟁하고 있다. 사진은 뉴욕의 밤거리를 밝히고 있는 삼성의 광고판. |
◈ 유일한 ‘近代化 革命’과 正常性 일탈
대한민국의 미래, 특히 2030년쯤을 조망할 때 몇 가지 당위적 명제가 있다. 그것은 남북통일·남북연방 또는 한반도 평화정착이 가능할까, 韓人(한인)·韓民族(한민족)의 일류 선진국 따라잡기가 가능할까 하는 것이다.
한국인의 관점으로 보면 미래예측의 초점, 그리고 미래담론의 명제는 우리가 중진국 달성에 성공했으니 선진국으로의 비상도 가능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분단된 한반도도 대한민국 중심으로 통일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즉, 선진-발전-번영-국력(선진일류)-통일-평화라는 키워드로 미래를 보는 것이다. 더 쉽게 풀면 경제성장, 민주화, 세계적 수준의 교육·과학·예술의 고도화라는 근대적 현상, 근대적 변화만 지속적으로 성공하면 통일과 선진 일류국가와 평화가 달성된다는 패러다임이다.
이런 패러다임에서 지나간 60년을 보면 대한민국의 장래는 크게 낙관해도 된다. 대한민국의 광복 이후 60년의 성취는 1945년 이후 독립한 140개 가까운 비(非)서방 국가 중 ‘유일한’ 근대화의 성공케이스다. 가히 ‘대한민국 근대화 혁명’이라 부를 만하다. 정치 민주화, 시민의 권리, 언론자유, 근대경제성장(1인당 소득, 산업구조 고도화), 고등교육, 과학기술, 사회문화적 다양성, 개방, 해외진출 등 그 어떤 근대화 기준으로도 대한민국 60년만큼 완벽한 근대화를 성취한 나라가 없다.
프리덤하우스의 ‘정치 자유지수’, RBS의 언론자유지수, 쿠즈넷(S. Kuznet) 교수의 근대 경제성장 개념, 기독교라는 비전통 종교인구 비율, 과학기술 인력과 대학생 수, 해외유학, 해외교포 등의 객관적 국제비교를 보면 대한민국은 근대화에 완벽하게 성공한 여러 나라 중의 유일한 나라가 됐다. 그런데 왜 1987~1988년과 2008~2009년의 비교에서 보듯 11년이 지난 지금 번영·선진·평화의 국제적 위치가 전진하지 않고 정체·혼란·후퇴하고 있는가.
첫째, 그간의 근대화 발전이 과도하게 압축·폭발적이고 극단적·대극적으로 전개돼 왔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든 부문, 정치, 행정, 사법, 경제, 교육, 사회, 문화, 체육 등 각 영역에서 외형적, 물리적, 양적 모방에 치닫고 이상적 모형에 매몰돼 각 부문 근대화의 원리, 원칙, 기능, 실체에 충실하지 못했다. 근대화의 ‘정상화’에는 실패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근대화 선진성이란 보이지 않는 곳, 만질 수 없는 기초까지를 정상적으로, 제대로 하는 것이다.
◈ ‘근대화’의 세계화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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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인도의 본격적 근대화 참여는 불과 한 세대 만에 세계경제지형을 바꾸었다. 사진은 프랑스와 합작해 시트로앵 및 푸조 자동차를 생산하는 중국 우한의 자동차 공장. |
1980년대 이후 세계의 균형추가 대한민국에 최적의 상황일 때 우리는 근대화의 기초에 충실한 ‘정상화’ 순화기간을 가졌어야 했다. 즉, 정치 경제 근대화가 외형으로 증진단계에 이르렀을 때, 그리고 냉전의 종식과 함께 한반도의 남북관계가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등 브릭스(BRICs) 등장 이전에 근대화의 기초에 충실했어야 했다.
이러한 순화와 성숙기간을 거쳐 본원적 국력(정치의 신뢰, 경제의 효율, 산업의 경쟁력, 사회적 통합, 안전한 복지지향, 유연한 연성외교 등)의 충실, 본원적 근대화를 정착시켰어야 했다. 오늘날 한국 근대화의 극단성 또는 ‘過(과)근대화’ 현상을 빚는 정치, 언론, 종교, 예술 부문과 병적 현상마저 보이는 아파트 주거, 골프 문화, 세계 최저 출산율, 세계 최고 이혼 증가율, 세계 최고를 치닫는 노인 자살률 등은 확실히 정상적인 근대화도 정상적인 전통도 아니다. 삶의 正常性(정상성)을 逸脫(일탈)한 것이다.
대한민국이 지난 60년간의 근대화 성취로 선진권의 막내이며 후진권의 맏형으로 자리매김됐을 때 ‘근대화의 세계화’라는 새로운 세상이 전개되고 있다. 즉, 중국, 인도 등 세계 최대 인구 大國(대국)인 ‘히말라야권’ 국가들의 근대화 본격 참여는 산업혁명 이래 소수 특별지역에 한정됐던 ‘근대화’가 지구적 현상으로 변환되면서 근대화, 근대방식의 종말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13억 인구의 중국, 12억 인도의 본격적 근대화 참여는 불과 한 세대 만에 세계 경제력의 구도를 바꿔 버렸다. 이것을 전통적인 근대경제, GNP 중심 사고로는 대서양시대에서 태평양시대로, 미국 일극주의의 終焉(종언) 같은 현상으로 해석됐다.
그러나 브릭스의 등장, 히말라야권의 근대 경제성장, 도시화, 자동차 중심 교통시스템의 본격화는 경제를 포함한 ‘근대’의 지속이 불가능함을 뜻한다. ‘근대화의 세계화’는 히말라야 산맥과 만리장성에 부딪히면서 그 수명을 끝내게 된다.
중국은 1인당 소득 2000달러 정도, 인구비례 자동차 보유대수 4%(6000만대)에 불과한 수준에서 이미 이산화탄소 배출 세계 1위 국가로 변모했다. 1인당 소득에서 20배가 넘고 자동차 보유비율 100%(3억대)인 미국을 제친 것이다. 중국의 인구비례 자동차 보유대수가 일본 수준이면 8억대, 한국 수준이면 4억대가 된다. 현재 전 세계 자동차 보유대수는 약 9억대다. 니시사와 준이치(西澤潤一) 전 도호쿠(東北)대학 총장의 계산으로는 중국인이 모두 수세식 화장실을 사용할 경우 화장실에 사용하는 물만으로도 중국의 현재 산업용수와 농업용수를 합친 양보다 많아진다.
◈ 근대 뛰어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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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9월 선저우 8호의 중국 우주인들이 우주유영에 성공했다. 사진은 선저우8호의 발사장면. |
중국과 인도의 근대화는 에너지와 물, 식량, 즉, 생명자원의 세계적·지구촌적 문제를 일으킨다. 미국의 근대화 참여, 일본의 근대화 참여, 한국과 아시아 네 마리 용이 근대화에 참여했다 해서 세계적 에너지 파동, 식량 파동, 물 부족 파동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중국과 인도의 근대화 초기단계에서 이미 에너지 전쟁, 식량 파동, 히말라야를 水源(수원)으로 하는 7대 강의 댐 건설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 중국이 석유수출 국가에서 불과 15년 전 석유수입 국가로 바뀌면서 석유값이 폭등하고 이란, 미얀마, 수단, 나이지리아, 베네수엘라,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자원수출 국가들의 국제관계가 변하고 있다. 콩 수출국 중국이 세계 최대 콩 수입국으로 바뀌면서 국제 콩 값이 불과 5년 만에 5배가 뛰었다.
앞으로 중국과 인도 대륙 국가를 합친 히말라야권 40억의 근대화 진입은 현재의 근대 방식으로는 근대를 더 지속시킬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엔환경계획(UNEP) 사무총장이었던 클라우스 퇴퍼는 현재의 성장 방식대로 중국의 2020년 소득 倍增(배증) 계획이 성공했을 경우, 중국의 환경악화는 ‘세계적 재앙’이 될 것이라고 했다.
중국이 우주항공 기술을 열심히 개발하고 유인 우주선 선저우(神舟)를 띄우는 이유를 군사목적이 아니라 지구라는 행성에서는 공급이 부족한 에너지 자원을 다른 행성에서 채취하기 위한 것이라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는 진실 여부를 따질 필요가 없다. 중국과 인도를 중심으로 한 히말라야권의 근대화가 현재대로의 방식으로 지속되기 위해서는 지구의 자원만으로 부족할 것이라는 사실을 중국 스스로가 알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이제 중국, 인도를 넘어 전 인류가 교육의 향상, 인터넷, 모바일 폰의 확장을 통해 정보화되고 교육받은 ‘시민’이 되어 간다. ‘근대화의 세계화’는 근대의 지역·도시·국가의 단위, 부락민·국민·종족·민족의 단위, 또는 특정 종교의 신념체계 단위 안으로 안주할 수 없고 이를 넘어야 하는 세상을 만들었다. 근대가 만든 성장방식, 에너지와 먹을거리의 생산 유통 소비 방식, 쓰레기 발생 처리 방식, 주거와 교통 방식으로는 인간·인류의 생존을 보장할 수 없고 종말론을 재촉한다. ‘근대 뛰어넘기’를 강요하고 있다.
◈ 낙관적 전망을 위한 필요충분 조건
2030년, 21년 뒤를 낙관할 수 있기 위해서 대한민국은 다음의 세 조건을 해결해야 한다. ① 格(격)과 능력에서 선진국이 되고 ② 한반도의 통일, 또는 평화가 정착되고 ③ ‘근대 뛰어넘기’, 즉 중국문제군 또는 히말라야권 문제군을 극복해야 한다.
사회 통합력
대한민국은 이미 지난 60년 ‘근대화 혁명’이 보여주듯 개인·개별 단위의 능력향상은 독보적이었으나 외환위기 이후 사회 통합력·국가 경쟁력·국민의 내성(인내력)은 오히려 후퇴하고 있다. 일본에 대한 상대적 지위는 향상되고 있으나 중국, 인도, 러시아, 브라질, 멕시코, 스페인 등에 대한 상대적 지위는 떨어지고 있다.
대한민국은 경제 제일주의, 경제 결정론을 넘어 각계 지도자들의 신뢰, 더 직설적으로는 이 땅에서 한 번도 가져 보지 못했던 ‘성공한 대통령’, ‘성공한 국가 지도자’, 어린아이에서 어른까지 그의 인격과 능력을 믿을 수 있는 ‘어른’을 갖는 경험을 쌓아야 한다. 존경과 모범을 보이는 사회의 어른, 국가 어른을 가져보지 못하고는 선진국이 될 수 없다.
일본이 자랑하는 경제학자이자 영국 런던 정경대학 교수였던 故(고) 모리시마 미치오(森嶋通夫) 교수는 <왜 일본은 몰락하는가>(1999)에서 “제 아무리 좋은 교육개혁을 통해 훌륭한 관료와 기업인 그리고 문화인을 육성해도 훌륭한 정치가를 만들어 내지 못하면 그 사회는 장래가 없다”며 무신념, 무정책, 무책임의 일본정치가 일본의 몰락을 재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도요타와 교세라, 소니와 닌텐도가 있는 세계 2위의 경제대국 일본, 그러나 일본정치는 무기력과 침체에 빠지고, 예의 바른 일본사회에서 프리터(아르바이트로 생활하는 사람)의 ‘묻지마 살인’이 횡행하는 추락을 보고 있다.
한국은 일본과 어떤 차이가 있는가. 일본보다 더 낮은 출산율, 더 빠른 노령화, 더 심한 갈등을 보이는 노사관계, 더 낮은 지도자에 대한 신뢰, 정치불신, 교육불신 등으로 한국은 그 어느 것도 사회통합과 정치신뢰의 미래를 낙관할 수 없다. 이제 대한민국의 최대 명제이자 최우선 명제는 경제성장도 교육개혁도 외형적 민주주의도 아니다.
신뢰할 수 있는 지도자를 어떻게 가질 수 있느냐에 있다. 그런 희생, 봉사, 관용, 公益(공익)을 우선하는 인간형을 우리가 키우고 가꿀 수 있느냐에 달렸다. 꼭 인도의 간디, 이란의 호메이니 같은 도덕주의자나 성직자의 정치 리더십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公德(공덕), 공익, 共同善(공동선)을 지키는 부도덕하지 않은 봉사자를 찾는 것이다.
평화를 지킬 능력과 전쟁 공포증에서 해방되려는 의지
북한에도 대한민국과 같은 시민사회가 형성되고, 최소한의 인간다움이 보장되는 최저복지가 이뤄지고, 法治(법치)와 국제적 약속이 지켜지는 나라가 되기까지 진정한 남북통일이나 한반도 평화는 오지 않는다. 다만 북한의 自責(자책), 즉 급격한 내부 붕괴나 1인 독재체제의 최대 약점인 집권자의 생물학적 생명의 이상 현상이 발생하거나 소련의 체르노빌사건과 같이 대량살상 무기를 잘못 관리해 자멸하는 등 비정상적인 사건이 발생할 때만 ‘순리 아닌’ 방식으로 통일이 가능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대한민국의 ‘自力(자력)’으로 북한을 통일시키거나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킬 힘은 지금도 미래도 없을 것이다. 대한민국은 자력에 의한 남북한 관계전환의 결정적 시기였던 1990~1995년을 낭비하고 말았다.
이제부터 대한민국은 우방 또는 이해 관련국과의 협력에 의한 북한 관리만이 가능할 것이다. 북한이 先軍(선군)정치, 핵무기를 앞세운 위협과 살라미 외교(요구사항을 쪼개 단계적으로 접근하는 전술)를 펴는 한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유엔,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협력해 긴장을 관리할 수 있을망정 통일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통일의 길이 있다면 북한에 의하든 남한에 의하든 무력 통일이 있을 뿐이다.
평화와 통일을 확실히 확보할 수 있는 길은 있다. 그것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정통성이 민주정치·시민자유·경제력·교육력·문화적 다양성과 해외협력에서 계속 향상되고, 선진국으로의 國格(국격)이 정착된다는 ‘전제’ 아래 북한과 전 세계를 향해 북한이 군사도발을 감행하면 확실히 보복하고 더 나아가 북한을 통일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길이다. 그러기 위해 남쪽의 경제적 손실도 분명히 감수하겠다는 의지를 확실히 증명할 필요가 있다. 북한이 도발하면 ‘전쟁할 각오’가 돼 있다는 의지와 능력을 북한과 세계에 확신시키는 것이다.
이 각오가 서 있으면, 선진국격 확립이라는 전제조건이 충족된 이후 10년을 전후해 평화정착과 통일의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2030년경이면 통일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은 어느덧 두 가지 포비아(공포증)의 덫에 걸려 있다. 경제 제일주의, 경제 결정론의 덫이다. 전쟁이 나면 당연히 경제와 민생이 타격을 입는다. 그러나 경제나 민생보다 더 큰 인간 가치, 사회 안정, 국가 이익을 위해서는 필요하면 전쟁도 하는 것이다.
그런데 GNP와 1인당 소득기준이 절대시되어 GNP와 소득증가에 害(해)가 되는 일은 그 어떤 것도 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공포증이 생겼다. 구조개혁을 위해, 정치개혁을 위해, 재난을 예방하기 위해 필요하면 GNP도 소득도 일시적 손해를 볼 수 있는 것이다. 하물며 전쟁을 예방하기 위해, 통일을 하기 위해 경제가 잠시 희생되는 일은 당연히 있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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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발에 대해서는 ‘전쟁할 각오’가 있다는 의지와 능력을 북한과 세계에 보여주어야 한다. 사진은 국산 K9자주포의 火力 시범. |
◈ 평화에 대한 환상
두 번째 포비아 덫은 平和(평화)에 대한 환상이다. 지금 북한이 어떤 도발을 하건 퍼주기만 하면 평화가 유지된다는 환상의 한 극단이 현실적으로 존재한다. 또 평화의 레토릭과 노래와 접촉과 회의만 늘어나면 평화에 가깝게 간다는 환상이 커지고 있다. 상대방은 거꾸로 남쪽의 전쟁 포비아 증폭을 對南(대남)공작으로 이용할 수 있다. 실제 우리는 상당히 북한에 의해 이용당하고 있는 사실을 ‘평화’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눈을 감고 있다.
평화는 지킬 수 있는 능력과 의지가 있을 때라야 평화가 오는 것이다. 스위스의 평화, 스위스의 중립은 전형적인 무장평화·무장중립이다. 전쟁의 각오를 인접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오스트리아에 확실히 증명하는 27만개의 방공호와 3000개의 핵방어 대피시설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유지되는 평화다. 2006년 10월 북한이 핵실험을 했을 때, 미국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지의 유명 경제칼럼니스트 윌리엄 페섹은 “이제 한국 경제의 전망이 밝아졌다”고 했다.
이유가 가관이다.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게 되었기 때문에 대한민국에 의한 통일이 불가능해졌고, 따라서 ‘북한 통일비용’을 부담할 필요가 없어졌으니 한국의 경제성장에 유리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경제 동물’들의 경제성장 논리다. 분단·통일·평화라는 정치·외교·사회적 문제의 깊이를 무시한 ‘경제전문가’, ‘경제 동물’들의 소견일 뿐이다.
문제는 이런 류의 경제지상주의, 전쟁 포비아, 평화환상의 덫이 민족통일의 주체가 될 수밖에 없는 대한민국 안에 덮여 있다는 데 있다. 전쟁이라는 비극을 예방하기 위한 최대한의 유연한 외교가 필요하나, 끝내 이성적 대화가 끊기고 군사적 강압이 닥치면 이에 맞서는 의지와 정책은 한 국가의 외교와 안보의 기초 중의 기초다.
스위스식 평화 모델, 즉 보다 높은 삶의 가치, 인간의 자유, 사회안정, 국가이익, 인류의 안전을 위하여 필요하면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대한민국의 의지가 확실하고, 그 의지가 북한과 주변국과 세계에서 믿게 되면 전쟁도 방지되고 평화통일도 가능하다.
善進化, ‘세계적 한국모델’
이미 제국주의 시대가 지났거니와 대한민국은 군사대국, 경제대국을 꿈꾸기에는 지정학적 조건과 생명자원 조건이 이를 허락지 않는다. 지정학적 조건은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주변 4강에 둘러싸여 있는 지구상 유일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이들과 1 대 1의 군사경쟁을 하기에는 절대량이 부족하다. 다만 4강 간의 균형을 깰 수 있는 정도의 기본 군사력은 갖추어야 한다.
◈ 세계를 매혹하는 韓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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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유엔사무총장. |
생명자원, 즉 에너지와 먹거리를 90% 이상 해외에 의존하는 선진권과 OECD 국가는 한국과 일본밖에 없다. 일본은 해외자원 개발과 유통시장 참여로 실질적 ‘자립률’은 상당히 높다. 한국은 GNP 신화에 갇혀 1인당 소득만 높았지 생명자원의 안전공급이라는 측면에서는 중진, 선진권을 통틀어 가장 취약한 나라에 속한다.
한국의 지정학적, 생명자원적 조건은 군사대국, 경제대국 지향이라기보다 軟性(연성)국력(soft power) 지향을 요구하고 있다. 프랑스의 사상가며 작가인 자크 아탈리는 2025년 미래 유망 11개 국가 중 아시아 최대 세력으로 한국을 꼽았다. 이유는 ‘탁월한 기술과 문화적 다이내미즘이 세계를 매혹하는 세계적 모델’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탈리는 “중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일본까지도 성공하기 위한 모델로 한국을 모방할 것”이라고 했다. 그 이유는 IT와 韓流(한류)에서 얻은 직관 때문일 것이다.
그런 직관이 아니라 한국의 연성력에 의한 ‘근대 뛰어넘기’ 가능성의 논리적 근거는 몇 가지가 있다. 첫째, 2차 대전 후 독립한 비서방 제3세계 국가 중 유일하게 ‘근대화 혁명’에 성공한 대한민국은 근대화에 관한 한 선진국의 막내이며 비서방 제3세계 후진국의 맏형이 됐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 선진국이었던 제국주의의 침략을 받은 대한민국은 선진권과 피식민 비서방 후진권 간의 다리, 소통, 접점, 융화점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제국주의, 침략, 식민지 경영이라는 역사적 범죄를 저지르지 않고 근대화에 성공한 유일한 나라이기에 이런 중간자, 중립자, 조정자의 역할이 가능하다. 동양과 서양, 전통과 근대, 태평양과 대서양, 대륙과 해양의 융화점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潘基文(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등장은 세계적 한국모델의 한 상징일 수 있다. 과거에도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 제3세계 출신 유엔 사무총장들이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인종적으로만 제3세계이지 성장 과정을 들여다보면 제3세계 문화의 사람이 아니었다. 반 총장처럼 제3세계에서 자라 제3세계 근거를 쌓은 경력이 아니라 일찍부터 서양문화에 동화된 인물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 녹색성장의 원조는 대한민국
둘째, 세계적 ‘녹색성장’(Green Growth)의 모델이 될 수 있는 가능성 때문이다. 2008년 8월 15일 李明博(이명박) 대통령은 건국 60년 경축사에서 ‘녹색성장’이라는 말을 했다. 세계 200개가 넘는 국가 중에서 국가 미래 비전의 제1순위를 저탄소 녹색성장이라 천명한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다. 그만큼 선언적 의미도 크다.
이보다 녹색성장을 개념화, 국제화한 주체는 鄭來權(정래권) 현 기후변화 대사다. 그는 일찍부터 시장코스트 효율에서 탈피, 생태효율성 중심의 성장 패러다임 변화를 시도했다. 정 대사가 유엔 아시아태평양경제사회위원회(ESCAP) 환경국장 시절, 그의 주도로 2005년 3월 서울에서 5차 유엔 아시아태평양 환경과 개발 장관회의(MCED)가 열렸고 녹색성장을 ‘서울선언’으로 채택하게 했다. 사실상 서울이 녹색성장의 發祥地(발상지)다. 지금 녹색성장 개념은 이명박 대통령,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중국 후진타오(胡錦濤) 주석,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 당선자에 의해 그 구호가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대한민국이야말로 에너지와 식량 등 생명자원의 수입의존 비율이 최고로 높고, 過(과)근대화가 진행된 나라다. 게다가 대한민국은 근대화의 정상성 일탈로 나타나는 에너지 과소비 국가다. OECD 회원국 중 미국을 제외하고 대형자동차 비율 최고, 소득대비 1인당 전력 사용량 최고, 1인당 생태발자국 최고를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대한민국은 생태효율성을 중심으로 한 경제, 산업, 서비스, 소비, 사회활동 등 시스템 전반을 녹색성장 지향으로 바꾸지 않으면 미래 생존 자체가 위태롭다.
대한민국의 기본명제는 1인당 소득의 위치와 상관없이 번영의 硬性(경성)이 아니라 생존, 안전의 軟性(연성)이다. 先進化(선진화)를 지향하되 善進化(선진화)여야 하는 것이다.
현재 65억명인 지구의 인구는 2040~2050년경 80억~90억명으로 늘어날 것이다. 이러한 지구촌 인구의 증가는 교육과 정보화로 인한 계몽된 인류를 시민화하고, 욕망의 기하급수적 증가 등으로 ‘한국형 녹색성장’의 필요성을 선진·후진을 막론하고 지구촌적 필요로 만들고 있다.
녹색성장은 한국인이 創發(창발)하고, 서울이 본적지고, 이를 한국 대통령이 최초로 국가정책 최우선 순위로 선언한 대한민국의 모델이다. 현재로서는 비전, 지향, 의욕에 머물고 있는 이 모델의 실천적, 보편적 내용이 충실히 채워지면 명실공히 ‘근대 뛰어넘기’, 근대 이후 지구촌 인류사회 상생·공생의 ‘서울 컨센서스(Seoul Consensus)’, 연성의 힘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
◈ 대한민국 軟性 국력의 가능성
셋째, 대한민국의 해외교포는 중국의 화교나 인도의 교포에 비해 숫자로는 열세이고 유대인의 영향력에 비교해도 열세다. 하지만 일제 식민지배로 인한 강제출국 또는 기아탈출로 시작된 해외이주, 1970년대 이후 ‘대한민국 시민’으로 자발적으로 발전적 운명개척을 위해 해외로 나간 근대적 해외교포들의 존재는 대한민국의 세계적 위치를 매우 독특하게 만들고 있다.
세계의 국가원수 중 해외에 순방하러 나가 ‘현지 교포와의 간담회’를 반드시 갖는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다. 중국은 우리가 교포라고 부르는 조선족 동포에 대해 “엄연히 중국시민인데 왜 대한민국 대통령이 만나느냐”고 반대해 현지 대한민국 ‘주재원’ 등만을 만날 수 있다. 대한민국은 서울을 구심점으로 하는 교포가 전 세계 구석구석 존재하며, 이들을 대통령이 만나는 것이 관행이 된 세계 유일한 나라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대한민국은 기독교인이 인구의 30%, 1200만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대한민국은 세계 기독교 파견 선교사 숫자에서 미국 다음으로 2위를 기록하고 있고, 인구 크기와 선교 역사가 우리보다 월등한 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스페인·캐나다 등을 추월하고 있다. 이는 ‘한국판 세계화(팍스코리아나)’의 한 장르를 발견하게 한다.
선교역사 400년의 서구 諸國(제국)에 비해 불과 30년의 선교역사를 가진 대한민국이 1만6000명의 선교사를 해외에 파송하고, 이를 재정적으로 부담하는 것은 경이로운 일이다. 특히 미국이나 유럽인이 접근 불가능한 아랍세계와 외국인의 선교를 금하는 중국, 인도, 러시아까지 선교에 나서고 있다. 미국을 제치고 기독교 해외 선교 1등 국가를 꿈꾸는 크리스천 팩스 코리아나(한국 기독교에 의한 세계평화)를 외치는 그룹도 있다.
나는 이것이 가능할지 여부에는 관심이 없다. 다만 ▲대한민국 시민에겐 이제 세계의 奧地(오지)가 없어진 사실 ▲근대사의 비극으로 인해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세계 4대 강국에 골고루 교포를 두고 있는 세계에서 유일한 나라 ▲크리스천 팍스 코리아나를 꿈꾸는 해외선교 활동의 경이 또는 돌출적 특이성 등을 한데 묶어보면 韓人(한인), 韓民族(한민족)의 해외활동을 통한 대한민국 연성국력이 세계적 한국모델을 가능케 하는 중요한 단초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