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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책부록
  1. 2008년 11월호

[르포] 경기도의 IT산업

세가지 神器로 세계를 제패
기술표준을 우리가 정한다

金演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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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제품을 살펴보는 하이닉스 연구원.
  1970년대. 안방 제일 좋은 자리에 모셔 둔 소니 TV와 전화기는 부잣집의 상징이었다. 소니 텔레비전 위에는 으레 손으로 짠 하얀 뜨게 천이 얌전하게 놓여 있었다. 소니 TV 수상기에는 빨강 노랑 초록 3색의 색 막대로 구성된, 손톱만한 마크가 붙어 있었다. 그게 ‘컬러 TV’를 뜻하는 표지라는 걸 알고, 보통 집 아이들은 기가 죽었다.
 
  그 시절 우리는 17인치 흑백 TV(1969년, 금성사), 12인치 흑백 TV(1973년, 삼성전자) 14인치 컬러 TV(1980년, 금성사)를 ‘국내 최초’로 생산했다고 기뻐했다. 일본 사람들은 컬러, 우리는 흑백의 세계에 살았다. 소니의 ‘워크맨’이 세계를 휩쓸 때 금성과 삼성은 어른 베개만한 ‘카세트 레코드 플레이어’를 만들었다.
 
  1970년대에 청소년기를 보낸 우리 세대에게 ‘삼성전자가 소니를 꺾었다’는 뉴스는 비슷한 시기에 벌어진 소련 동구의 몰락만큼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2007년의 수치를 보자. 삼성전자는 세계 LCD TV시장에서 18.7%의 점유율로 세계 1위를 차지했다. 2위는 소니(17.1%), 3위 샤프(11.7%), 4위 필립스(9.9%), 5위 LG전자(8.0%)다.
 
  LCD TV의 핵심 부품인 액정화면(LCD 패널) 시장의 절반 가까이를 삼성과 LG가 점유하고 있다. 삼성이 26.0%로 1위, 그 다음이 LG디스플레이(22.0%), 3위가 AUO(19.4%), 4위가 CMO(13.3%), 5위가 샤프(12.3%) 順(순)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3종의 神器(신기)’로 불리는 반도체, LCD TV, 휴대전화로 세계시장을 제패했다. 삼성전자의 2007년 수출액은 543억 달러였다.
 
  그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주력업체들이 경기도에 있다. 삼성전자의 頭腦(두뇌)인 ‘디지틀 컴플렉스’가 수원에, 삼성반도체의 공장은 기흥과 화성에, 하이닉스 반도체는 이천에, 삼성과 함께 세계 LCD 시장을 반분하고 있는 LG디스플레이가 파주에 자리잡고 있다. 외자유치를 담당했던 경기도의 한 공무원이 들려준 얘기다.
 
  “‘경기도’의 영어발음이 어렵잖아요. 외국 투자자들이 잘 못알아 듣고, 알아듣더라도 경기도가 어디에 있는지 아는 사람이 없어요. ‘경기도는 서울을 에워싸고 있고, 인천 국제공항에 가까워 물류가 편리하다’, ‘중국시장 공략이 용이하다’고 설명을 해봐야 반응이 시원찮아요. 하지만 ‘삼성전자와 LG전자의 본거지가 우리 경기도’라고 얘기하면, 외국인 투자자들의 눈빛이 달라집니다. 금방 ‘경기도라는 곳에 세계적인 기업이 그렇게 많이 있느냐’, ‘우리도 한번 가보고 싶다’고 합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세계 어디서나 통하는 글로벌 브랜드입니다. 만약 이런 회사가 외국기업이어서 경기도가 유치에 나섰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아마 불가능했을 겁니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경기도에 있다는 것은 대한민국의 축복입니다.”
 
  삼성전자·LG전자·하이닉스 반도체 홍보실에 연락을 했더니, 처음에는 ‘비상경영’이라며 난색을 표시했다. “공장을 돌아보는 것은 가능하지만, 임원들이 나와서 브리핑을 하기는 어렵다”는 얘기였다.
 
  무엇보다 반도체 시장이 우울하다.(표 1) 주력 수출 품목인 메모리 반도체(D램)와 낸드 플래시(데이터를 저장하는 플래시 메모리)의 가격이 크게 떨어졌다. 낸드 플래시 가격은 6개월 전에 비해 반 토막 이하로 떨어졌고, D램은 반 토막이 났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반도체는 생산품의 95% 이상을 수출한다. 시장가격의 추락은 곧 매출과 순익의 감소를 의미한다.
 
 
  尹鍾龍, “어떤 상황에서든 이익을 내는 게 기업인의 숙명”
 
  원화 환율이 1달러당 1400원 선을 돌파해 치솟아 오르고, 주가가 1300 선 아래로 곤두박질치던 10월의 둘째 주에 세 공장을 모두 돌았다. 주식시장과 금융계, 언론이 난리를 치는 것과 달리 생산 현장의 분위기는 담담했다.
 
  흑백 TV를 자체 개발하면서 소니의 컬러 TV를 꺾은 게 한국의 전자업체들이다. 그들이 미국發(발) 경기침체의 ‘쓰나미’에 맞서 奮戰(분전)할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환율 탓하지 마라. 환율이 1달러당 800원이 되든, 1300원이 되든 어떤 상황에서든 이익을 내야 하는 것이 우리 기업인의 숙명이다. 방관자처럼 환율 얘기 하지 마라. 우리는 기업인이다.”(尹鍾龍 삼성전자 고문)
 
  “반도체 경기 전망이 내년에도 나아지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올해 투자를 축소할 계획은 없다. 기존 투자분을 거의 집행했으며, 남아 있는 부분을 예정대로 집행할 계획이다.”(權五鉉 삼성전자 반도체총괄 사장)
 
  “세계 1등을 유지하겠다는 엔지니어들의 열의가 아직 살아 있다. 밤잠 안 자고 연구하는 연구원들이 우리 회사에 4000명이나 있다. 1995년 400명의 연구인력이 TFT LCD 패널을 자체 개발 생산했다. 세계적인 불황이 닥쳐온다지만 내년에 우리는 더 많은 LCD 패널을 생산하고 수출할 것이다.”(민병률 LG 디스플레이 상무)
 
 
  [삼성전자 수원공장]
 
  서울에서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내려가다 수원 IC를 빠져나갔다. 5분쯤 달리다 보니 30층 높이의 거대한 빌딩 두 채가 눈길을 끈다. 141만9000㎡(43만평) 정도의 부지에 자리잡은 삼성전자 수원공장이다. 정확한 이름은 삼성전자의 ‘수원 디지털 컴플렉스’다. 한때 전자제품 공장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었지만 연구단지로 변모했다.
 
  이곳은 삼성전자의 母胎(모태)다. 故(고) 李秉喆(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자는 1969년 1월 ‘삼성전자공업주식회사’를 발족시키고 수원공장 건설에 착수했다. 이병철은 회사를 설립하자마자 제일 먼저 기술자 63명을 합작선인 일본의 산요전기에 연수 명목으로 파견했다.
 
  수원에 43만평이나 되는 공장 부지를 확보하려 하자 삼성의 간부들은 일제히 반대했다. ‘생산설비와 회사 규모에 비해 공장부지가 너무 크다’는 이유였다. 이병철은 ‘죽어도 43만평을 해야겠다’고 고집했다. 이병철은 이렇게 얘기했다.
 
  “일본 히타치 공장이 40만평이다. 우리가 사업을 했으면 언제고 일본과 일본 기업을 능가해야 될 거 아이가. 그러니 저기보다 3만평이라도 더 커야 하는 건 당연한 거 아이가. 안 그렇노, 어디 내 말이 틀렸노.”
 
  해질 무렵 도착한 수원 디지털 컴플렉스는 대학 캠퍼스 그대로였다. 일과를 마친 대학원생 차림의 연구원들이 축구장과 농구장으로 몰려 나왔다. 김진호 인사팀 부장은 “생산공장들이 몰려 있을 때는 ‘족구’가 붐이었는데, 연구소로 변모한 이후에는 농구가 인기 종목”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 수원 디지털 컴플렉스의 야경.

  43만평의 삼성전자 수원공장에는 ‘공장’이 없다.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전자레인지 등을 생산했던 생산설비들은 대부분 해외로 이전됐다.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전자레인지 공장 부지 3만1000여㎡(9400평)을 갈아엎고 나무를 심고 있었다. 전자레인지 공장 터 전부를 공원으로 조성할 계획이다.
 
  삼성전자는 이병철의 悲願(비원)대로 일본의 전자업체들을 모두 꺾었다. 일본에 기술을 베끼러 갔던 63명의 기술인력은 이제 1만6000여명으로 늘어났다. “쓸데없이 크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43만평을 연구인력으로 가득 채웠다.
 
  삼성전자는 2007년 매출 63조2000억원, 당기순이익 7조4000억원을 달성했다. 연결 매출로 1034억 달러의 매출을 올려 전세계 전기·전자업계 ‘톱 3’에 진입했다. 매출 규모에서 삼성과 비견할 만한 업체는 HP(휴렛팩커드)와 지멘스 두 곳뿐이다. 1000억 달러 매출 달성은 국내 업계 최초다.
 
  부문별로 보면 반도체 매출이 18조6600억원(2007년 기준), LCD가 14조6600억원, 휴대전화 등 통신기기가 19조5500억원이다. 흔히 ‘白色(백색) 가전’으로 불리는 세탁기 냉장고 에어컨 같은 가정용 전자제품의 매출은 3조5200억원에 불과하다.
 
  수원 ‘디지털 컴플렉스’에는 두 개의 연구집단이 있다. 하나는 LCD 등 디지털미디어 분야를, 다른 하나는 휴대전화 등 정보통신 분야를 총괄한다. 각각 6000명의 연구인력을 확보하고 있다. 이 연구개발(R&D) 인력이 세계시장을 공략할 첨단기술을 개발하고, 상용화된 기술을 벼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두뇌가 바로 이 연구단지다.
 
  삼성은 메모리 반도체, LCD 패널 분야에서 국제 기술표준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세계 반도체 시장을 지배해온 ‘黃(황)의 법칙’을 보자. 삼성전자의 黃昌圭(황창규) 사장은 2002년 “반도체의 메모리(저장) 용량이 1년마다 두 배씩 증가한다”고 선언했다.
 
  ‘황의 법칙’은 ‘마이크로 칩에 저장할 수 있는 데이터 용량이 18개월마다 2배씩 증가하며, 이를 개인용 컴퓨터가 주도한다’는 인텔 창업자 고든 무어의 법칙을 대체했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1999년 256메가 낸드 플래시 메모리로부터 2007년 64기가바이트 제품까지, 매년 두 배씩 반도체의 저장용량을 늘려 ‘황의 법칙’을 입증했다.
 
  삼성전자는 LG전자와 앞을 다퉈가면서 7세대 LCD 패널을 상용화했고, 8세대 LCD 패널의 생산에 돌입했다. LCD 패널은 ‘세대’가 높아질수록, 화면을 만드는 유리 원판의 크기가 커진다. 8세대 LCD 패널의 원판은 가로 2.5m 세로 2.2m 크기다. LCD의 세대가 높아질수록, 보다 큰 TV 화면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고객들은 집적도가 높은 반도체, 큰 화면의 TV를 원한다. 국제 기술표준을 만들어내는 기업은 시장을 선점한다. 1970년대 일본의 소니가 그랬던 것처럼.
 
 
  “삼성을 세계 1위로 만든 건 화형식”
 
2006년 12월 40나노 32기가(낸드플래시) 반도체 신기술을 발표하는 黃昌圭 삼성전자 사장.

  일본 기술을 베끼며 진공관 흑백 TV를 만들던 삼성전자가 어떻게 소니를 넘어섰을까? 삼성전자는 기술개발의 최전선을 사수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을까? 박종갑 부장(디지털미디어 분야 기획 담당, 공학박사)은 “삼성전자가 세계 1위를 하게 된 것은 화형식 덕”이라고 했다.
 
  “구미공장에서 휴대전화를 500억원어치 모아 놓고 불태웠습니다. 그게 1995년입니다. 휴대전화만 태운 게 아니고 팩시밀리도 태우고…. 李健熙(이건희) 전 회장이 ‘3만명이 만들고 6000명이 고치는 이런 3류회사가 어디 있는가’라고 했잖아요. 삼성전자는 화형식 그 자리에서 다시 출발한 겁니다.”
 
  ―그때의 삼성전자는 어떤 회사였습니까.
 
  “이건희 전 회장이 ‘3류’라고 했으니까 정확한 평가겠죠. 자체 개발 인력이 있었지만 초보적인 수준이었습니다. 1998년 한국의 휴대전화 개발인력이 삼성과 LG, 중소기업을 다 합쳐서 2000명이고, 노키아의 연구인력이 6000명이었습니다. 지금 삼성전자의 휴대전화 연구인력만 1만명이 넘습니다. 이 연구인력이 삼성전자의 힘입니다.”
 
  ―화형식 이후에 삼성전자가 어떻게 달라졌나요.
 
  “결국 사람이고, 기술개발입니다. 연구원들이 1주일씩 집에 안가고 새벽에 회의하는 게 다반사였습니다. 삼성이 세계 1등 하게 된 것은 운이나 시장상황이 아니라, 노력의 결과입니다. 삼성전자가 디지털 TV(LCD)에서 1등이지만, 우연히 디지털 시대가 열려서 그렇게 된 게 아닙니다. 20년 전부터 연구개발을 했습니다. 그런 노력이 지금 꽃을 피우는 거죠.”
 
  ―삼성전자가 1994년 256MD램 반도체를 생산, 일본과의 기술개발 격차를 6개월로 벌리고 반도체 세계 1위 자리를 굳혔습니다. LCD는 언제 1등을 했다고 봐야 합니까.
 
  “진공관을 사용하던 아날로그 TV 시절, 소니는 우리에게 넘을 수 없는 벽이었습니다. 우리 연구원들이 ‘디지틀 TV 시대에는 일본 전자업계와 같은 선에서 출발할 수 있다. 디지틀 시대에는 일본을 따라잡자’고 칼을 갈았어요. 2000년 들어 디지털 TV 상품을 내기 시작했고, 2005년 2006년 무렵 ‘화질에서 일본을 따라잡았다’는 평가를 얻었습니다. 확고하게 일본을 제친 건 2006년이라고 봐야죠.”
 
  ―휴대전화는 언제 1등으로 올라설 수 있을까요.
 
  “노키아가 아직은 부동의 1등입니다. 우리가 2등이고요. 하지만 고급, 高價(고가) 제품에서는 우리가 노키아를 압도하고 있습니다. 곧 따라잡아야죠.”
 
 
  컴퓨터가 내장된 TV 연구
 
박종갑 박사.

  ―LCD 분야에서는 삼성과 LG가 세대 경쟁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세계 1등’을 고수하기 위해 지금 수원에서는 어떤 연구를 하고 있습니까.
 
  “LCD TV 화면이 점점 커져, 7세대 46인치 화면에서 8세대 50인치 화면으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거기에 화질 경쟁이 계속됩니다. 플랙시블 디스플레이(휘거나 접을 수 있어 휴대용으로 갖고 다닐 수 있는 LCD 화면), 3차원 입체화면을 즐길 수 있는 기술 등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기업비밀상 거기까지만 말씀 드리겠습니다.”
 
  ―박 부장 팀이 집중하고 있는 연구분야는 어떤 겁니까.
 
  “음질입니다. 삼성전자가 LCD 분야에서 화질과 디자인으로 세계 1등을 했고, 이제 음질로 승부하려고 합니다. 디지털 TV 제품이 얇아지면서 스피커가 들어갈 자리가 마땅치 않습니다. 디자인과 함께 음질을 어떻게 살릴 수 있을까 연구 중입니다. 또 다른 연구과제는 IPTV 시대에 어떤 콘텐츠를 공급할 것인가, 하는 고민입니다.”
 
  IPTV는 초고속 인터넷망을 이용하여 제공하는 양방향 텔레비전 서비스다. 시청자가 자신이 편리한 시간에 보고 싶은 프로그램만 볼 수 있다는 점이 일반 케이블 방송과 다르다.
 
  ―IPTV가 등장하면 TV 수상기에 변화가 옵니까.
 
  “TV 안에 컴퓨터가 내장되는 상황을 생각하면 됩니다. TV에서 직접 인터넷을 쓸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방송 3사에서 보내주는 화면을 채널을 돌려 선택하기만 하면 됐습니다. IPTV 시대가 되면 채널 수가 수없이 늘어나고, 채널과 콘텐츠를 선택하는 것이 복잡해집니다. 어떻게 하면 그런 상황에서 TV를 쓰기 편하게 만들까, 할 일이 많아진 ‘컴퓨터형 TV’를 어떻게 만들까 연구하고 있습니다.”
 
  ―마이크로 소프트와 소니 사이에 ‘컴퓨터가 TV 속으로 들어가느냐, TV가 인터넷 속으로 들어가느냐’ 하는 ‘디지털 컨버전스’ 논쟁이 있었습니다. 그때 삼성전자는 ‘인터넷과 컴퓨터가 모두 휴대전화 속으로 들어간다’고 했죠. TV 속으로 컴퓨터가 들어가는 상황에서 휴대전화의 역할은 축소되는 것 아닐까요.
 
  “휴대전화는 들고 이동할 수 있는 강점이 있죠. ‘화면이 작아서 답답하다’는 분들이 많은데, 작은 화면에서 볼 수 있는 그런 콘텐츠를 중심으로 발전할 겁니다.”
 
  ―MP3(고음질의 오디오 압축 기술)를 삼성이 개발했지만, 정작 재미는 iPOD(아이팟)을 만든 애플社(사)가 봤습니다. 첨단 기술을 개발했다고 해서 곧바로 상품화해서 돈을 버는 것은 아니겠죠.
 
  “삼성이 사실 MP3를 하다가 말았습니다. 중소기업들이 MP3 시장을 늘려가던 중에 애플이 콘텐츠와 연계시킨 아이팟을 내놓아 평정을 했죠. 콘텐츠 서비스를 연계시킨 최초의 MP3 제품이 아이팟입니다. 디지털 TV에 이런 콘텐츠를 어떻게 접목시킬까 준비하고 있습니다.”
 
  ―삼성전자의 기술력을 중국이 언제쯤 쫓아올 수 있까요.
 
  “당분간은 힘들 겁니다. 중국 업체들이 중국시장에서는 잘합니다. 그런데 밖으로 나오면 우리와 경쟁이 안 돼요. 제가 미국 매장에 일년에 두세 번은 꼭 갑니다. 중국의 신제품들이 나왔다가 어느 순간에 사라지고, 초저가 제품만 남아 있어요.”
 
  ―‘삼성전자가 보유한 박사가 3700명으로 서울대보다 많다’고 들었습니다.
 
  “수원의 우리 연구원 중에 국제 표준화 단체의 의장을 맡고 있는 분이 15명입니다. 20명을 넘을 때가 있었습니다. 중국이 생산을 쉽게 따라올 수 있을지 몰라도, 연구개발은 힘겨울 겁니다.”
 
  수원 연구단지 앞길이 삼성路(로)다. 삼성로는 출퇴근 시간마다 차가 밀리는 만성 정체 구간이다. 경기도와 수원시가 삼성로 3.2km를 확장해 주기로 했다. 기존 도로 주변 토지 매입이 진행 중이다. 지금의 왕복 4차선 도로는 왕복 6차선 혹은 8차선으로 확장된다. 공사비 1000억원의 절반 정도를 삼성전자가 부담한다.
 
  “공장이 처음 섰을 때 4차선 도로였는데 40년 만에 확장이 됩니다. 그런데 일부에서 ‘삼성에 특혜 준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수원의 연구인력이 1만6000명입니다. 고급 연구인력을 유치하려면 좋은 교육환경과 주거환경은 기본입니다. 경기도가 광교 신도시 아파트의 일부를 연구원들에게 특별 분양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는데, 또 ‘삼성 봐주기’라는 비판이 일고 있어 무산되지 않을까 싶어요.”(김진호 수원지원센터 인사팀 부장)
 
 
  [하이닉스 반도체]
 
  ‘콩밭’을 제일 먼저 보고 싶었다.
 
  하이닉스 반도체 이천공장 한가운데에 5만6000여㎡(1만7000평)짜리 ‘콩밭’이 있다는 보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공장부지로 쓰려고 1982년 일찌감치 구입해둔 땅이지만 ‘절대농지이니 농사를 지으라’는 정부 유권해석에 따라 콩밭을 만들었다고 한다. 하이닉스는 이 땅에 반도체 공장을 증설하려고 했지만 수도권정비계획법에 발이 묶였다.
 
  영동고속도로 이천IC를 빠져나가면 곧바로 하이닉스 이천공장으로 이어진다. 이천공장은 허허벌판에 서 있었다. 빙 돌아가면서 논이다. 회사 안에 있는 1만7000평의 ‘콩밭’에는 옥수수와 들깨가 드문드문 자라고 있었다. 잡초가 무성했다. 풍문에 들려온 ‘콩밭’이 아니라 버려진 땅이었다.
 
  하이닉스 이천공장과 공장 주변을 돌아보면서 ‘이천 시민들이 억울하겠다’는 생각이 언뜻 들었다. 청주시민들이 흥분할지 모르겠지만, 이천의 낙후는 청주 못지않다. 이천은 전체 면적의 18%만이 도시화돼 있다.
 
  국도변에 경쟁적으로 내걸린 ‘이천 쌀밥집’ 간판이 이 지역이 농업도시임을 역설한다. 청주의 기업체는 5200개, 이천의 기업체는 1800개다. 지역균형발전을 이유로 개발이 더 진행된 청주에 공장을 증설하고, 더 낙후된 이천의 공장은 문을 닫도록 하는 역설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환경부는 하이닉스에 족쇄를 하나 더 채웠다. 이 공장에서 하루 배출되는 구리의 양을 24g 이하로 줄이면 공장증설을 허가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2006년 12월의 일이다. 경기도에 따르면 구리 24g은 돼지 120마리가 하루에 내놓는 분뇨에서 나오는 구리의 양과 비슷한 양이다. 이천에서 기르고 있는 돼지는 38만 마리. 환경부는 이천지역 양돈 농가에 대해서는 ‘구리 배출 규제’를 적용하고 있지 않다.
 
  하이닉스 반도체는 이천공장 증설을 포기하고 청주에 새 공장을 지었다. 지난 8월 가동을 시작한 청주 11공장은 지금 300mm 웨이퍼(반도체 원료가 되는 원형 판. 실리콘으로 만든다)를 생산하는 최신 설비를 갖추고 있다. 11공장 신설에 든 비용은 1조원. 하이닉스는 1조원을 더 투자해 청주에 12공장을 지을 계획이다.
 
  하이닉스는 최근 지름 200mm 웨이퍼를 생산하던 이천 공장의 설비를 폐쇄했다. 하이닉스의 ‘청주 공장 신설, 이천 공장 일부 폐쇄’에 항의해 이천 시민 2000명이 삭발했다. 정부의 수도권 규제 입장은 바뀌지 않았다.
 
  더구나 하이닉스는 2006년 10월 ST 마이크로社(사)와 공동으로 20억 달러를 투자하여 중국 장쑤(江蘇)성 우시(無錫)시에 반도체 공장을 설립했다. 이 공장 역시 지름 300mm 웨이퍼를 이용해 낸드 플래시 메모리와 D램을 제작한다.
 
 
  피닉스처럼 부활한 하이닉스
 
  하이닉스가 균형발전과 규제완화의 결투현장에 주인공으로 등장하면서 잊혀진 게 하나 있다. 하이닉스 반도체의 화려한 부활이다. 하이닉스는 피닉스처럼 잿더미 속에서 다시 살아났다.(표 2)
 
  현대전자는 1999년 LG반도체를 현금 2조5600억원, 4조원의 부채를 떠안는 조건으로 인수했으나 곧바로 유동성 위기에 빠졌다. 현대그룹에서 계열분리를 택한 하이닉스는 2001년 은행 관리에 들어갔다. 재계에는 ‘하이닉스가 부활하는 것은 침몰한 타이타닉호가 다시 떠올라 항해를 하는 것보다 어렵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그런 하이닉스 반도체가 2007년 매출 8조4338억원 순익 3286억원을 냈다. 전년 대비 11%의 매출 성장이다. 16조원의 부채를 안고 있던 부실기업이 6년 만에 세계적인 반도체 제조기업으로 다시 돌아온 것이다.
 
  하이닉스 반도체는 2007년 기준으로 세계 반도체업체 가운데 6위를 차지했다. 1위는 인텔, 2위는 삼성전자, 3위는 텍사스 인스트루먼트, 4위는 도시바, 5위는 ST마이크로다. D램 시장 점유율에서는 삼성에 이어 2위(21.3%), 낸드 플래시 메모리 점유율에서는 삼성, 도시바에 이어 3위(17.1%)를 기록했다(2007년 기준).
 
  하이닉스 반도체의 成炳虎(성병호) 상무(전략관리사무국장)는 “반도체 국제가격의 큰 하락에도 불구하고 2008년의 매출이 2007년에 비해 소폭 하락할 것으로 예상한다”며 “적자 폭을 줄이기 위해 연말까지 비상근무 체제를 가동할 것”이라고 했다.
 
  ―하이닉스가 6년 만에 부활한 비결은 뭡니까.
 
  “다 팔았습니다. 현대전자는 삼성전자처럼 모든 사업군을 갖추고 있었는데 반도체 사업 하나만 남기고 다 팔았습니다. 임원의 절반 가까이를 줄였고, 2000년부터 2003년까지 4년간 임금인상이 없었습니다. 투자를 거의 안 했고, 돈이 생기면 빚을 갚았습니다. 16조원이나 되던 부채를 3조 이하로 낮췄고요. 그래서 일찍 ‘워크아웃’에서 졸업할 수 있었습니다.”
 
  ―반도체산업은 대규모 시설투자와 연구개발 비용이 필요한 산업입니다. 투자를 거의 안 하고 어떻게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까.
 
  “최소한의 투자를 하면서 남들이 투자한 만큼 효과를 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았습니다. 반도체 생산공정은 크게 자르면 20~30개, 잘게 자르면 1000여개입니다. 이 공정 가운데 병목 현상이 생기는 공정을 찾아내 숨통을 텄습니다. 웨이퍼 5만장을 생산하는 공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하면 6만, 7만장을 생산할 수 있을까’ 연구했습니다. 그 결과 기존의 공장들을 세계에서 원가 경쟁력이 가장 우수한 공장으로 변모시킬 수 있었습니다.”
 
  ―반도체 가격의 등락이 이렇게 심한 이유가 뭔가요.
 
  “세계 경기와 반도체 경기가 함께 가기 때문입니다. 반도체는 경기에 민감합니다. 경기가 나빠지면 바꾸려던 컴퓨터, 전화기를 더 쓰게 마련 아닙니까.”
 
  ―미국 경제가 대공황으로 치닫고 있다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반도체업계 역시 2009년은 최악의 한 해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반도체는 2004년과 2005년이 좋았고, 2006년이 호황의 정점이었습니다. 2007년은 보합세였고, 올해 확 떨어졌습니다. 이제 저점이 어디냐가 관심입니다. 2009년 하반기를 저점으로 올라서지 않을까 예상하고 있습니다. 시장이 너무 나빠 생산수율이 낮은 200mm 웨이퍼 공장을 모두 문닫고, 300mm 웨이퍼 생산으로 전환하고 있습니다.”
 
하이닉스 이천공장 전경. 하얀 선으로 표시한 부분은 하이닉스가 공장부지로 사용하기 위해 매입했으나 절대농지로 묶여 옥수수와 들깨를 재배하고 있는 땅이다.

 
  “공장에서 배출된 물을 벼농사에 쓰는데…”
 
성병호 하이닉스 상무.

  ―문을 닫은 공장의 종업원들은 어떻게 합니까.
 
  “300mm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1000명의 인원이 남아 돕니다. 자연감소 인원을 보충하지 않고, 신입사원을 뽑지 않는 방법으로 버틸 계획입니다. 잔업을 다 없앴습니다.”
 
  ―이천 공장 증설을 포기하고, 청주에 공장을 신설했습니다. 하이닉스 입장에서는 이천 공장 증설이 더 경제적인가요.
 
  “이천에 공장을 증설하면 두 가지 이점이 있습니다. 서울이 가까워 우수인력 확보가 쉽고, 이미 잘 짜여진 이천의 연구소와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습니다. 수도권규제와 환경규제 때문에 증설이 무산됐습니다.”
 
  ―이천에 공장을 증설할 계획이 있습니까.
 
  “현재로선 없습니다. 하지만 반도체 경기가 좋아지면 곧바로 공장을 더 지어야 합니다. 반도체 공장은 기술발전이 빨라 공장의 수명이 짧습니다. 이천 공장 증설은 수도권 규제에 달려 있습니다.”
 
  ―이천 공장 구리배출에 대한 환경규제가 지나치다고 생각하십니까.
 
  “환경부가 공장 증설 허가를 해주면서 조건을 하나 걸었습니다. ‘공장에서 나오는 폐수를 모두 받아서 경기도 밖에다 폐기 처분하라’는 겁니다. 지금 우리 공장에서 나오는 재처리 공업용수로 벼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몇몇 국회의원들은 정화한 물을 마셨습니다. 반도체 공장에 이렇게 엄격한 환경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한국뿐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LG 디스플레이]
 
  경기도 파주 월롱산 아래에 있는 LG 디스플레이 공장은 포병부대와 담장을 함께하고 있었다. 개성공단과의 직선거리는 16km. 날씨가 화창해 개성공단에 입주한 우리 기업체 건물이 육안으로 보였다.
 
  오전에 공장을 둘러보고 임진강이 내려다 보이는 장어구이 집에서 점심을 했다. 강변에 설치된 녹슨 철책선과 軍(군)의 감시초소, 21세기형 최첨단 공장이 뒤섞인 풍경이 눈 아래로 펼쳐졌다. 냉전과 세계화가 이뤄내는 불협화음에 마음이 스산해졌다.
 
  휴전선에 인접한 군사작전 지역에 최첨단 LCD 패널공장이 건설된 데는 孫鶴圭(손학규) 전 경기도지사의 공이 컸다. 2006년 4월 7일 준공식에 참여한 盧武鉉(노무현) 전 대통령은 축사를 하기 전 이런 농담을 했다.
 
  “공장부지 결정을 국무회의에서 했습니다. 어려운 결정이었는데 잘된 결정이었습니다. 손 지사께서 이것 해달라고 그렇게 떼를 쓰시더니 이제 만족하십니까?”
 
  문을 열 때는 ‘LG필립스 LCD’였으나, 2008년 3월 ‘LG 디스플레이’로 이름이 바뀌었다. 1999년 16억 달러를 투자하면서 ‘LG 필립스’의 지분을 50% 인수했던 필립스社(사)는 지분을 꾸준히 매각해 2008년 10월 현재 13%의 지분을 갖고 있다. 필립스는 2008년 3월 경영에서 손을 뗐다.
 
  LG 디스플레이는 2007년 매출 14조3500억원, 순이익 1조3400억원을 기록했다. 삼성전자에 이어 LCD 패널 시장에서 세계 2위를 차지하고 있다. 파주 공장이 LG 디스플레이 전체 매출의 약 40%를 차지한다고 한다. LG 디스플레이는 경북 구미에 6개의 공장을 더 갖고 있다.
 
  민병률 상무(파주 경영지원 담당)는 “미국 증시에 상장되어 있어 정확한 수치를 공개하기는 곤란하지만, 2008년의 매출과 순익이 2007년을 크게 상회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파주 공장은 4조 3교대, 365일 24시간 가동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파주공장이 지역에 준 이익
 
경기도 파주의 LG디스플레이 LCD패널 공장.

  171만6000여㎡(52만평)의 부지에 자리잡은 파주공장은 7세대 LCD 패널을 생산한다. 이 패널은 주로 47인치 LCD TV 화면용으로 쓰인다. 구미의 6개 공장은 6세대 이하의 패널을 생산한다. LG 디스플레이는 파주공장의 7세대 공장 바로 옆에 8세대 공장을 새로 짓고 있다. 높이 72m의 공장 하나를 짓는데 4조원 안팎의 자금이 투입된다. 민병률 상무는 “삼성과 LG가 새로 짓는 LCD 공장은 공장 하나가 세계 LCD 시장의 3~4%를 차지할 정도로 대규모”라며 “LCD산업은 거대한 장치산업”이라고 했다.
 
  ―LG가 파주에 LCD 공장을 지음으로써 이 지역사회에 준 이익은 무엇입니까.
 
  “첫째가 고용창출이죠. 우리 공장 직원만 6400명입니다. 파주 공장과 연계된 협력업체, 장비지원업체의 직원이 1만1000명입니다. 둘째, 공장 건설에 따른 도로 수도 전기 가설 같은 인프라 구축이 있겠죠. 셋째, 파주시가 거두는 稅收(세수)를 들 수 있습니다. 수도권 집값과 땅값이 떨어진다고 하는데 파주 금산 문산 지역 땅값은 변동이 없다고 합니다.”
 
  ―노무현 정부가 파주공장 신축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면, LG는 어떤 선택을 할 생각이었습니까.
 
  “LG 필립스를 공동 경영하던 필립스는 ‘중국이나 대만에 LCD 공장을 짓자’고 했습니다. 필립스는 한국의 노사분규가 워낙 심하니까, 위기관리 차원에서 중국 대만을 검토했습니다. 우리는 중국과 대만에 기술을 넘겨줄 수 없다는 입장이 확고했습니다. 구미공단에 부지를 더 확보할 여지가 없어서, 이곳 저곳 검토하던 중에 경기도에서 제안이 들어왔고, 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됐습니다.”
 
  ―삼성과 LG가 세계 LCD 패널 시장의 절반을 점유한 원동력이 뭔가요.
 
  “기술력이죠. LG전자가 1980년대 말에 안양에 연구소를 만들고 LCD 패널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합작선이 일본의 히타치였는데 우리 기술자들이 가면 공장 근처에 못 오게 막았습니다. ‘휴지통에 버려진 설계도를 가져왔다’는 전설 같은 얘기가 전해져 옵니다. 1995년 8월 16일 구미공장에서 처음으로 2세대 LCD 패널을 생산했습니다. 제가 현장에 있었는데 엔지니어들 눈이 다 퉁퉁 부었습니다. 엔지니어들의 열의가 있었으니까 가능한 일이죠.”
 
  민 상무는 “한국이 세계 LCD 시장을 계속 제패하느냐는 우수한 고급 인력을 얼마나 확보하느냐에 달렸다”며 ‘이공계 기피 풍조’를 우려했다.
 
  “머리가 좋은 사람들이 이공계로 가서 연구 개발을 해야 합니다. 그게 대한민국이 살 길입니다. 우리가 가진 자산은 사람밖에 없지 않습니까. 머리 좋은 학생들이 전부 醫大(의대)로 가면 어떻게 합니까? 의대는 머리 좋은 사람보다 심성이 좋은 사람이 가야 하는 것 아닙니까?”
 
 
  “10세대 패널 생산에 들어가면 공장 부지 더 필요”
 
민경률 LG디스플레이 상무.

  ―공장 하나를 짓는데 3조원, 4조원이 들어가니 투자를 결심하기가 쉽지 않겠습니다.
 
  “일본의 <닛케이 비즈니스>가 한국이 LCD산업에서 일본을 추월한 요인의 하나로 오너 경영체제의 과감한 투자결정을 꼽은 적이 있습니다.”
 
  ―52만평이나 널찍하게 자리를 잡았으니 당분간 땅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8공장이 완공되고 나면 공장 세 개를 더 지을 공간밖에 남지 않습니다. 경기가 좋아져서 ‘투자하라’고 결정이 나면, 공장을 곧바로 세워야 합니다. 공장 하나를 짓는데 1년6개월이면 충분합니다.”
 
  ―8세대 공장을 지은 후 9세대, 10세대 공장을 지을 계획이 있습니까.
 
  “당장은 없습니다. 하지만 10세대 패널 생산에 들어가면 지금의 공장 부지로는 버틸 수가 없는 상황이 옵니다.”
 
  ―왜 그렇죠.
 
  “10세대 LCD 패널의 원판은 크기가 가로 3.5m 세로 3m입니다. 8세대까지는 유리공장에서 원판유리를 차에다 실어와서 LCD 공장에서 가공을 했습니다. 10세대 생산에 들어서면 원판을 차로 실어 나를 수 없습니다. 유리공장을 LCD 공장 옆에 지어 일관 제조공정을 만들어야 합니다. 파주공장 옆에 또 부지를 얻을 수 있을까, 벌써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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