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철
종로학원 본원 강사·종로논술연구소 연구위원
주제 1 개인과 사회종로학원 본원 강사·종로논술연구소 연구위원
홉스, 『리바이어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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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제대로 지어지려면 벽돌, 시멘트, 철골, 유리, 목재 등이 적절하게 어울려야 한다. 이 때 집의 구조란 바로 이런 구성 요소들의 관계이다. 옷도 제대로 만들려면 옷감, 실, 단추, 지퍼 등이 적절하게 관계를 맺도록 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옷의 구조도 바로 이런 구성 요소들의 관계이다.
그렇다면 사회 구조란 무엇일까? 사회는 옷이나 집처럼 한눈에 파악하기는 쉽지 않으나 인간들끼리의 관계로 이루어져 있다. 부부 관계, 친구 관계, 스승과 제자 사이의 관계들과 같이 사람들의 사회적 상호 작용이 반복, 지속되면서 유형화되고 안정된 틀을 갖춘 상태를 사회 관계라고 한다. 그리고 사람들의 사회 관계가 통일적이고 조직적인 총체를 이루고 있는 상태를 사회 구조라고 한다.
예를 들어, 학교의 경우를 보자. 학교는 교사와 학생의 인간 관계, 학생과 학생의 인간 관계, 교사와 교사의 인간 관계 등이 일정하게 유형화되어 있다. 그러므로 전학 온 학생이라고 하더라도 학교 생활에 금방 적응할 수 있게 된다. 그 구성원, 관계의 구체적인 내용들은 바뀌지만 학교라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구조들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 구조는 개인의 행동할 수 있는 범위나 행동 양식을 정해 주는 사회적 틀로 작용하면서 개인의 자유를 구속하기도 한다.
사회 구조의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사회 구조는 지속적이다. 이를테면, 구조화된 학교 사회에서는 선생님이 바뀌고 학생이 바뀌어도 교사와 학생의 관계는 유사한 모습으로 상당 기간 유지된다.
둘째, 사회 구조는 안정적이다. 즉, 교사와 학생 관계에서 구조화된 행동을 함으로써 그들의 사회적 관계는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셋째, 사회 구조는 변화한다. 예를 들어 이전까지 학교 사회를 구조적으로 안정시켜 주던 사회적 관계들의 변화하자 학교 붕괴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데, 이 때 붕괴되고 있는 것은 학교 사회의 구조인 것이다.
- 고등 학교 『사회·문화』(중앙교육진흥연구소)
개인과 사회라는 주제로 고전을 읽을 때 가져야 할 문제 의식은 인간의 사회적 관계가 어떤 원리에 기초하고 있는가이다. 사회를 구성하는 기본 원리를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개인과 사회의 관계가 설정되기 때문이다. 중세에는 사회가 신의 의지나 목적에 의해 구성되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근대 계몽주의 시기로 접어들면서 인간 사회로부터 그 구성 원리를 이끌어 내어 설명할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홉스의 『리바이어던』은 루소의 『사회 계약설』과 더불어 자연 상태의 인간이 특성과 권리에 기초하여 국가와 사회의 형성 원리를 밝힌 책으로서 이 주제를 정리하기 위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저자 소개
홉스 (Tomas Hobbes, 1588~1679)
영국의 철학자·정치 이론가.
근대 민족 주권 국가 합리화에 공헌한
사회 계약설의 선두 주자.
자유주의와 절대주의의 중대한 이론적 전제가 되는 개인의 안전과 사회 계약에 관한 저서로 유명하다. 홉스는 1608년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한 뒤 데번셔 2대 백작이 된 윌리엄 캐번디시의 가정 교사가 되었는데, 그는 캐번디시와 함께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여러 차례 여행한다. 이 여행 중에 과거 옥스퍼드 대학교 시절에 배웠던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이 갈릴레오와 존 케플러의 이론에 의해 붕괴되는 과정을 목도하게 되었다.
홉스는 운동이라는 사상에 몰두하여, 운동하는 물질이야말로 근본적인 실재라고 결론짓고, 엄격한 논증을 통해 이러한 원리로부터 만물의 본질을 연역하려 했다. 그는 파리의 마린 메르센 모임에서 이러한 견해를 개진했다. 1636년에 갈릴레오와 이에 대해 토론한 뒤 그의 철학 3부작을 계획했다. 제1부 『물체론 De Corpore』(1655)은 운동의 관점에서 신체적인 현상을 설명한 것이고, 제2부 『인간론 De Homine』(1658)은 어떤 특정한 육체적 운동이 인간의 지각과 충동에 연관되는가를 밝힌 책이며, 제3부 『시민론 De Cive』(1642)은 인간 사회의 고유한 조직을 논급한 것이다.
1637년 영국으로 돌아간 홉스는 국내 정세가 내전 직전의 정치적 소요에 휩싸여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는 이러한 현실적인 압력 때문에 우선 계획된 철학서의 후반부를 발간하기로 결정하고, 왕권이 주권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증명하는 일에 착수했는데 당시 주권은 왕에 귀속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1640년 인간과 시민권에 대한 저서 『법의 원리 The Elements of Law, Natural and Politic』가 필사본의 형태로 발간되었다. 여기에서 인간은 절대적인 주권에 스스로 종속되는 데 동의할 때만 평화적인 공동 생존이 가능하다는 홉스의 독특한 사상이 구체화되었다. 홉스에 따르면 개인 간의 사회적 계약에 의하여 형성된 민주적 주권이 개인이나 소수에 권력을 넘김으로써 군주 정치와 전제 정치가 대두된다.
책 소개
구성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으로 잘 알려진 『리바이어던』에는 국가 형성 과정에 대한 홉스 사상의 요체가 들어 있다. ‘리바이어던’은 구약 성서 ‘욥기’에 나오는 거대한 영생의 동물인데, 교회 권력으로부터 해방된 국가를 상징한다.
1651년에 출간된 『리바이어던』은 크게 4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는 「인간론」, 2부는 「국가론」, 3부는 「그리스도교 국가론」, 4부는 「몽매의 세계론」이다. 1부에서 홉스는 신이 자연을 만든 기술을 본떠 인간이 인조 인간, 즉 국가를 만들었다는 견해를 보인다. 그래서 주권은 영혼이며 관리들은 관절이고, 상벌은 신경, 재산은 체력 등으로 국가를 인간과 비유하여 이해한다. 또한 홉스는 인간이 극히 이기적 존재라는 성악설을 주장했다. 인간 행동이나 인식의 동기가 되는 것은 권력욕인데 그 욕망은 죽지 않는 한 소멸하지 않기 때문에, 인간 본성이 방임되면 무한한 혼란과 투쟁의 자연 상태가 벌어진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국가는 개인의 호전성과 허영심을 철저히 부정할 수 있는 절대적 권력을 지닌 실체가 되어야 한다. 2부 「국가론」에서는 자연주의적·합리주의적 자연법 사상으로 전제 정치 사상을 서술한다. 이것은 종교적·신학적으로 왕권 신수설을 합리화한 것에 대한 비판이다. 3부에서는 자연 이성의 논리로 해명한 주권론을 성서에 입각하여 논증하고 있고, 4부에서는 당시의 몽매와 정신적 암흑이 어디서 유래하는가를 밝히고 있다.
역사적 의의
이 책에 서술되어 있는 홉스의 정치 사상의 역사적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서부 유럽에서 봉건 제도가 무너지고 중세 교회의 정신적 권위가 동요되기 시작할 무렵, 그 부패한 봉건 제도를 자연법 사상에 기초하여 비판했다는 점이다. 홉스가 『리바이어던』에서 다루고 있는 ‘사회 계약론’은 봉건적 질서가 해체되고 모든 개인이 공동체로부터 독립한 자율적 실체가 되었을 때, 개인들이 어떻게 사회를 구성하고 질서를 유지하는가에 대한 문제 의식과 대답이다. 홉스의 사회 계약론은 물리적 힘이 자연적으로 동등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즉 본질적으로 도덕적인 지위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 사이의 권리의 동등성은 물리적 동등성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이러한 홉스의 사회 계약론은 존재론적 개인주의에 기초를 두고 있다. 이들은 사회를 단순히 개인의 집합으로 간주할 뿐 아니라 사회의 성격 또한 개인의 성격에 의해 결정되는 것으로 본다. 자유주의가 존재론적·도덕적 개인주의를 자신의 뿌리로 삼고 있다는 것은 곧 사회나 어떤 사회적 집단보다도 개인에게 더 높은 도덕적 가치를 부여하며 개인의 권리와 요구가 우선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홉스는 이 책에서 평화와 안전의 필수적 조건을 분석하고 사회 계약 이론을 통해 이러한 전제 조건이 충족되는 이상 국가 건설의 방책을 제시했다. 홉스의 해결책은 개인을 보호하기에 충분한 권력을 창출함으로써 만인에게 타인의 선행을 보장해 주는 것이었다. 선택된 몇몇 사람들이 전체의 평화와 보호를 위해 요구하는 명령이 모든 개인에 의해 수행될 때 이러한 권력이 창출될 수 있다고 보았다.
홉스에게 사회 계약이란 자기 보존이라는 최고선(最高善)의 관점에서 목적·수단 관계를 효율적으로 계산한 도구적 합리성의 결과이며 결국은 ‘국가(리바이어던)’라는 지배 장치에 의존하는 시민 사회의 모습을 만들게 된 것이다. 홉스의 사회 계약에 등장하는 국가가 근대 국가의 모습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의 권리 이론에서는 근대적 권리의 단초를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권리를 외부적 힘에 귀속시키는 것이 아니라 권리의 양도라는 ‘계약’에 의해 국가와 인민을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본문 읽기
제2부 국가론
제1장 국가의 원인·발생 및 정의에 대하여
제1장 국가의 원인·발생 및 정의에 대하여
국가의 목적은 개인의 안전이다
인간 자신에 대한 구속(우리는 그들이 국가의 구속 안에 사는 것을 본다.)을 도입하는 데 있어서(천성적으로 자유와 타인에 대한 지배를 사랑하는) 인간의 궁극적 동인이나 목적 및 의도는 그들 자신의 보존과 그로 인한 보다 만족된 삶에 대한 안목이다. 즉, 제1장과 제15장에서 규정된 자연법의 준수와 계약의 이행에 대해 그들을 두렵게 하고 처벌에 대한 공포로 그들을 옭아매는 가시적 힘이 없을 때 인간의 자연적 정념에 대해(앞에서 본 바와 같이)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그 처참한 전쟁 상태에서 스스로 벗어나고자 하는 안목이다.
자연법으로부터 얻지 못하는 것
왜냐하면 자연법은(정의·평등·온화·자비심, 그리고 우리에게 행해지는 것과 똑같이 타인에게 베푸는 것과 같은), 그것을 준수하도록 하는 강력한 힘에 대한 공포 없이는 우리를 편파성·자만심·복수심 및 그와 유사한 것으로 이끌어 가는 우리의 자연적 정념과 상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칼 없는 계약은 말에 지나지 않고 인간을 보호할 힘이 전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그것을 지키려는 의지를 가졌을 때, 그가 안전하게 지킬 수 있을 때 지켰던) 자연법에도 불구하고, 만일 수립된 힘이 없거나 그것이 우리의 안전을 위해 충분할 만큼 크지 않으면 모든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 대한 경계심 때문에 그 자신의 힘과 기량에 의존하려 하고 또 합법적으로 그에 의존할 수 있다. 그리고 인간이 소가족으로 생활한 모든 곳에서는 서로 강탈·약탈하는 것이 상습이며, 이 경우 자연법을 위반하는 것으로 알려지기는커녕 그들이 전리품을 많이 얻으면 얻을수록 그들의 명예도 더욱 높아졌다. 따라서 인간은 그런 경우에는 명예라는 법 이외에는, 잔인성을 절제하고 인간의 생활과 생업의 방편을 일임시키는 어떠한 법도 준수하지 않았다. 또 그 때 소가족이 행했던 것과 같이, 그보다 큰 가족에 지나지 않는 도시와 왕국들은 (그들 자신의 안전을 위해) 외침(外侵)의 위험과 공포 또는 침략자들에게 부여될 수 있는 원조라는 구실 아래 그들의 지배권을 확대시키고, 다른 방비책이 없기 때문에 노골적인 힘과 간계에 의해 그들의 이웃을 정복하고 약화시키기 위해 그들이 할 수 있는 만큼 노력하며, 바로 그 때문에 영구히 명예롭게 기억되는 것이다.
소수인이나 소수 가족의 결합으로부터 얻지 못하는 것
소수의 인간들이 결합하더라도 그들에게 안전은 주어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소수에 있어서, 어느 한쪽 또는 다른 쪽에 대한 소수의 증가는 승리를 거두는 데 충분할 정도의 위대한 힘을 이용하는 이득을 취하게 함으로써 침략을 조장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안전을 위해서 신뢰할 수 있는 충분한 다수라는 것은 어떤 특정한 수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두려워하는 적과의 비교에 의해 결정된다. 그리고 적과의 수적 비율이 전쟁을 기도하도록 충동할 만큼 전쟁을 결정하는 데 가시적이거나 현저한 위기가 아닌 시기에는 그로써 충분하다.
단일 판단에 의해 지도되지 않는 한 그 다수로부터도 얻지 못하는 것
그리고 그와 같이 위대한 다수가 결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라면, 게다가 만일 그들의 행동이 그들 각자의 판단과 욕구에 따라 지도된다면, 그들은 그로 인해 공동의 적과 서로의 상해에 대해서 방비나 보호를 전혀 기대할 수 없다. 그들의 힘을 가장 잘 사용하고 적용하는 데 관계되는 여론에 있어서 혼란되기 때문에, 그들은 서로서로 돕지 않고 방해하게 되며 쓸데없는 것에 대한 상호 반대로 인하여 그들의 힘을 감소시키게 된다. 그리하여 그들은 쉽사리 서로 일치하는 극소수인들에 의해 정복될 뿐만 아니라, 공동의 적이 없을 때에는 그들 각자의 이해 때문에 서로 투쟁을 벌이게 되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그들 모두에게 외경감을 주는 공통의 권력 없이도 정의와 기타 자연법의 준수에 동의하는 위대한 다수의 인간을 가정할 수 있다면, 우리는 또한 모든 인류가 그와 같이 행할 것이라는 사실을 가정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때에는 어떤 세속 정부나 국가가 전혀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또한 존재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예속 없는 평화가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다수를 지도하는 단일 판단이 항구적이 아닐 때
그 다수로부터도 얻지 못하는 것
인간이 전투 또는 전쟁과 같이 일정 기간 동안 단일 판단에 의해 지배되고 지도된다는 것은, 인간이 일생 동안 계속되기를 바라는 안전을 위해서는 충분한 것이 아니다. 그들이 외적에 대해 일치된 노력으로 승리를 획득한다고 할지라도 그 후에 그들이 공동의 적을 갖지 않거나 또는 한 편에 의해 적으로 생각된 자가 다른 편에 의해 친구로 여겨지는 때에는, 그들은 그들 이해의 차이에 의해서 해산되고 서로 전쟁 상태에 빠지게 되기 때문이다.
국가의 발생
인간을 외적의 침입과 상호간 상해로부터 방어할 수 있는 국가를 수립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리고 그로 인해 그들 자신의 노력과 대지의 열매에 의해 그들 자신을 자라게 하고 만족스럽게 살 수 있도록 보장해 주는 것은, 그들 모두의 권력과 힘을 하나의 인물 또는 한 집단의 인간들에게 부여해서 그들 모두의 의사를 다수의 소리에 의해 단일 의사로 만드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그것은 그들의 인격을 책임지는 자가 공동 평화와 안전에 관계되는 사물 속에서 행동하는 모든 행위 및 행동하도록 만드는 모든 것의 창조자임을 스스로 승인하고 시인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범위 안에서 만인은 그들의 의사를 그의 의사에, 그리고 그들의 판단을 그의 판단에 복종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동의나 합의 이상의 것이며, 만인 상호간의 계약에 의해서 창조된 바로 단일 인격에 있어서의 만인의 진정한 통일이다. 그것은 마치 만인이 만인에게 “나는 당신들이 그에게 당신의 권리를 포기하고 그와 같이 그의 모든 행동을 승인한다는 조건하에 내 자신을 지배하는 내 권리를 이 사람 또는 이 집단의 인간들에게 포기하고 승인한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하나의 인격에 있어서 통일된 다수는 국가, 라틴 어로 ‘divitas’라고 불린다. 이것이 저 위대한 ‘리바이어던’ 또는 (보다 경건하게 말하자면) 우리의 불멸의 신의 가호 아래 우리의 평화와 보호를 의탁하고 있는 저 필멸의 신의 발생인 것이다. 국가 안의 모든 개개인이 그에게 부여한 이러한 권위에 의해서 그는 그에게 주어진 그 막대한 권력과 힘을 사용할 수 있고, 그 권위의 위협에 의해 그는 국내에서는 평화를 위해, 그리고 대외적으로는 그들의 적에 대한 상호 원조를 위해 만인의 의지를 형성할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국가의 본질이 그에게 존재하는 것이다.
국가의 정의
(그것을 정의하자면) 그것은 ‘다수가 상호간의 계약에 의해 스스로 모든 사람을 그것의 행동의 창조자로 만들었고, 그것을 그들의 평화와 공동 방위를 위해서 편리하다고 생각하는 대로 그들 모두의 힘과 수단을 끝까지 사용할 수 있는 한 하나의 인격’이다.
참고 - 『고전 탐구의 신』
생각 거리 홉스가 생각하는 국가는 어떤 모습일까? 인간을 외적의 침입과 상호간 상해로부터 방어할 수 있는 국가를 수립하는 유일한 방법은 구성원 모두의 권력과 힘을 하나의 인물 또는 한 집단의 인간들에게 부여해서 단일한 의사를 만드는 것이라고 홉스는 말한다. 즉, 만인의 계약을 항상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공통의 권력이 필요한 것이다. 이것을 홉스는 ‘공통의 검’이라고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 주권은 절대적이며, 무제한적이다. 그렇게 해야만 계약을 위반한 사람들에게 위협을 줄 수 있는 것이며,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라는 원시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
주제 2 경제와 윤리
막스 베버,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교과서 들여다보기
우리나라 기업들 중 일부 기업은 회계를 정확하거나 투명하지 않게 해 온 것으로 밝혀졌다. 이러한 회계 관행이 외국 투자가들에게 신뢰를 주지 못하고 결국 IMF 경제 위기를 초래한 여러 가지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는 지적이 있다.
따라서 21세기 세계 시장에서 우리 기업이 발전을 계속할 수 있기 위해서는 선진화된 회계 관행이 정착되어야 한다. 그리고 기업 운영의 전반에 걸쳐 투명한 경영이 이루어지도록 하여야 한다. 투명하지 못한 경영은 노사 분쟁의 원인이 되기도 하고, 사회적 비판을 초래하여 기업에 대한 사회적 지지 기반을 좁게 만드는 결과가 될 것이다.
또한 기업은 혁신을 위한 노력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 슘페터(J. Schumpeter)는 혁신이란 단순히 생산면에서의 혁신만이 아니라, 새로운 생산 수단의 도입, 새로운 시장의 개척, 원료 및 반제품 공급원의 확보, 새로운 조직체의 형성 등 여러 가지 영역에 걸쳐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러한 기업가의 혁신을 통하여 경제가 성장하게 된다고 보았다.
기업의 기술 혁신은 노동 생산성을 향상시키며, 새로운 제품, 보다 성능이 좋고 값이 싼 제품을 생산하게 하여 새로운 산업의 형성과 기존 산업의 변혁을 일으켜 이에 대한 수요 구조를 변화시킨다. 따라서, 기업의 혁신은 기업의 성장뿐 아니라 경제 발전의 원동력이 된다.
기업은 사회적 존재로서 사회 내부에서 자원을 투입받고 생산물을 산출한다. 다른 개인이나 집단과 상호 작용하는 존재로서의 기업은 일정한 게임의 룰(rule)을 지켜야 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다. 기업의 일차적인 목적은 이윤의 극대화라고 하더라도 이를 추구하는 방법이나 결과에는 어느 정도 윤리적 한계가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경제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지만 일부 기업들은 비윤리적 행위로 비난을 받기도 했다. 정경 유착, 환경 오염, 근로자 임금 체불, 불공정한 마케팅 등이 그러한 사례이다.
기업은 경영 성과의 지표로 일컬어지는 수익률, 매출액 점유율, 생산성 등 단기간의 이익에만 급급하여 장기간에 걸친 기업의 생존 기반을 잃어서는 안 된다. 기업의 생존 기반은 바로 사회적 지지와 동의이다. 따라서, 사회적 정당성을 획득하여 경쟁력 있는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윤리 의식에 투철하지 않으면 안 된다.
기업들은 이를 위해 자체적인 윤리 규범을 제정하여 실천하기도 하고, 업계 자율적인 윤리 규범을 시행하기도 한다. 최근 들어서는 국제적으로도 부패 라운드라고 하는 논의를 거쳐 부패를 방지하는 규범이 통용되고 있고, 우리나라도 이에 관한 규정을 만들어 시행하고 있다.
- 고등 학교 『경제』 (천재교육)
지식창고 font color="#000CA3">부패 라운드 뇌물 등 부패 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국제적 논의로서 1997년 12월 OECD에 의해서 뇌물 방지 협약이 만들어졌고, 우리나라도 이를 비준하였다. |
저자 소개
막스 베버(Max Weber, 1864~1920)
프랑크푸르트 에르푸르트 출생. 상인 출신의 국회 의원 아들로 태어나 하이델베르크 대학·베를린 대학 등 독일 각지의 4개 대학에서 철학 역사학·경제학을 공부하였다. 졸업 후에는 재판소의 사법관시보(司法官試補)로 근무하는 한편, 연구를 계속하였다. 1892년 베를린 대학을 시작으로 프라이부르크 대학·하이델베르크 대학 등에서 강의와 연구에 종사하였다. 베를린 대학의 교수 자격 논문인 「로마 농업사(農業史)」(1891)와 프라이부르크 대학 취임 강연인 「국민 국가와 국민 경제 정책」(1895) 등은 당시의 중요한 논문이다.
베버가 성장하던 시기에 독일은, 역사적 과도기의 혼란을 겪고 있었다. 영국에 비해 한참 늦게 산업 혁명이 시작된 독일은 봉건적 농업 사회에서 자본주의적 산업 사회로 넘어가면서 경제적으로든 정치적으로든 대립과 갈등을 피해갈 수 없었다. 민족주의적 성향이 강했던 베버는 독일의 미래에 관해 고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보기에 독일의 지도자들은 무능하고 부패했으며, 독일 민족을 선진국의 대열로 이끌어 갈 만한 자질을 갖고 있지 못했다.
이 때문에 독일은 활력 있게 성장하지 못하고 영국에 비해 후진성을 면치 못했다. 바로 이러한 상황이 베버의 문제 의식을 심화시켰다. 무엇 때문에 영국은 합리적이고 진취적인 자본주의 발전을 선도해 갈 수 있었는가? 반면 독일 자본주의는 무엇을 결여하고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하고자 하는 노력 속에서 베버는 경제학과 경제서, 역사학, 종교학, 법학 등 다양한 방면으로 파고들게 되었다.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라는 저작도 이와 같은 배경 속에서 태어난 것이다.
베버의 사회학적 방법론은 19세기 후반 독일에서 주류를 이룬 신역사학파 또는 강단 사회주의자와 대결 과정에서 형성되었다. 역사학파가 가지는 이론적 약점을 지적하고, 그 극복에 노력하였다. 『사회 과학적 및 사회 정책적 인식의 객관성』 등에서 보인 사회 과학 방법론은 그 성과이다. 여기서의 방법론상의 개념은 과학과 가치 판단을 명확히 구별하는 이른바 ‘몰가치성(沒價値性)’이며, 또 사회 현상에 대해서 인식 주체(認識主體)가 하나의 문제 의식(問題意識)을 가지고 주관적으로 구성하는 ‘이념형(理念型)’이다. 그는 이로써 여러 역사적·사회적 현상에 대한 과학적 인식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였다.
베버의 사회 과학의 인식론은 역사학파에 대한 비판일 뿐 아니라,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였다. 즉, 마르크스주의를 유물 사관(唯物史觀)에 의하여 주관적으로 구성된 하나의 이념형이라고 봄으로써 이를 상대화(相對化)하였고, 또 여러 경제적 요인에 의하여 역사적 인과 관계(因果關係)를 설명하는 유물 사관에 대하여 종교나 정치 영역에서의 행위의 동기와 관련시켜 역사적 현상을 설명하려고 하였다.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의 정신』은 그 성과 중의 하나이다. 여기서는 근대 유럽에서의 자본주의의 발생을, 프로테스탄티즘 특히 칼뱅주의의 교리하에서 금욕(禁慾)과 근로에 힘쓰는 종교적 생활 태도와 관련시켜 설명하고 있다.
베버는 또한 근대 유럽과 비교하는 관점에서, 그리스도교의 원류(源流)인 고대 유대 교와 불교·유교 등 비(非)그리스도교 세계에서의 종교와 사회의 관련도 추구하였다. 그가 결론내린 마르크스주의 비판의 타당성 여부는 접어놓더라도, 그의 사회 과학 방법론이 오늘날 여러 사회 과학 분야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책 소개
저자인 M. 베버가 편집을 맡고 있던 잡지 『사회 과학 및 사회 정책 Archiv fur Sozialwissenschaft und Sozialpolitik』에 1904~1905년에 걸쳐 발표한 학위 논문이다. 저자의 논저 중 가장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킨 역작으로, 한국에서도 1980년대에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라는 제목으로 다수 출판되었다.
이윤 추구 동기에 의해 작동하는 모험가적 자본주의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느 시대 어느 곳에나 존재했다. 서부 유럽이 매우 독특했던 점은 모험가적 자본주의와 구분되는 ‘합리적’ 자본주의의 출현에 있다. 베버는 서구의 합리적 자본주의의 특징적 현상으로 ‘형식적이고 자유로운 노동의 합리적인 자본주의적 조직화’와 ‘정기적 시장에 맞추어진 합리적 산업 조직의 존재’를 들고 있다. 그는 이러한 합리적 자본주의가 가능하기 위해 무엇보다 사람들의 생활 양식이 변화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서구에서 생활 양식의 변화를 가져온 것이 바로 자본주의 정신이다.
자본주의 정신은 ‘돈벌이를 자신의 물질적 생활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삶의 목적 자체’로 여기는 소명 의식이나 다름없다. 금욕적 생활과 저축 관념을 핵심으로 하는 자본주의 정신으로 인해 비로소 노동과 이윤 추구 행위가 끊임없이 이루어지게 되었으며, 근대적 자본 축적에 유리하게 작용하였다고 막스 베버는 생각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유럽의 자본주의, 특히 독일 자본주의 기업의 성공과 프로테스탄티즘 사이에는 통계학적인 상호 관련이 있음을 주장하였다. 그에 따르면 자본주의 정신은 종교 개혁 이후 생겨난 프로테스탄트 정신, 그 중에서도 칼뱅주의를 비롯한 청교도 신학의 예정설(豫定說)과 소명 의식의 심리적인 결과였다. 예정설은 J. 칼뱅(Jean Calvin)이 체계를 세운 것인데, 칼뱅의 제자들은 예정설로 인해 생기는 심리적 불안감을 없애기 위하여 세속적인 소명에 대한 끊임없는 노력과 그를 통해 얻어지는 이윤을 절약하는 금욕주의적 윤리를 강조하였다. 이러한 믿음과 실천의 결과로서 자본이 빠르게 축적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베버의 논의는 마르크스의 유물론적인 자본주의 분석과 대립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베버는 ‘물질적·경제적 토대의 차이’보다 ‘정신적·종교적 전통의 차이’를 더 중요하게 보았을 뿐이다. 그런데 베버는 종교적 원인이 자본주의 발전에 있어서 유일한 요인으로 이해하지는 않았다. 다만 칼뱅과 같은 종교 개혁가들에 의해 새로운 종교 윤리가 확립된 곳에서 자본주의는 정상적인 궤도로 발전했기 때문에 자본주의의 형성과 발전에 종교적 원인이 있음을 피력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르크스와 베버 두 사상가의 입장을 상호 보완적인 것으로 받아들일 때 근대 자본주의의 역학과 모순에 대한 이해에 보다 충실해질 수 있다. 그들은 각각 자본주의의 정신적 측면과 물질적 측면을 강조하면서도 이념적 기초와 물질적 조건을 서로 경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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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일생은 선택됨을 확인하기에 너무나 짧고 소중한 것이다. 사교, 무익한 담화, 사치로 인한 시간의 손실, 건강에 필요한 여섯 시간이나 여덟 시간 이상의 수면까지도 도덕적으로 비난을 받는다. 아직 프랭클린처럼 시간은 돈이라고까지는 생각하지 않지만 이 명제는 어느 정도 정신적 의미에서 타당하다. 즉 잃어버린 모든 시간은 신의 영광을 위하여 일하는 기회가 상실되기 때문에 시간은 한없이 귀한 것이다. 그리하여 무위의 명상조차도 직업이나 노동을 희생하여 이루어진다면 가치 없는 것이며 배척해야 할 것이기도 한다. 직업에 있어 신의 의사를 적극적으로 실행하는 것보다 신이 달갑게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명상을 위해서는 일요일이 있으며 백스터(Richard Baxter)에 의하면 직업에 나태한 사람은 언제나 신을 위하는 시간이 있을 때에도 시간이 없다고 한다.
이리하여 백스터의 주저에는 반복해서 엄격하고 계속적인 정신적·육체적 노동의 중요성이 어느 때는 열정이라고 할 만큼 쉴 사이 없이 설교되고 있다. 그리고 거기에는 두 개의 다른 동기가 결합되어 있다. 서양의 교회에서는 노동이 금욕의 수단으로서 효과적이라는 점이 옛날부터 판명되어 있다. 이는 동양뿐 아니라 전세계의 수도적 규율과도 판이하게 대조된다. 특히 그것은 퓨리터니즘이 ‘타락한 생활’이라고 일괄한 모든 유혹에 대한 독자적 예방 조치였으며, 그 역할은 결코 적지 않은 것이었다. 퓨리터니즘의 성적 금욕은 원칙적으로 수도원의 그것과 별로 다를 것이 없었고 더구나 결혼 생활에까지 미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영향은 훨씬 더 큰 것이었다. 부부 간에조차 성적 교섭이 허락되는 것은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계명에 따라 신의 영광을 더하게 하는 수단으로서 신의 의사에 합치될 때에만 한정되었던 것이다. 종교적 회의나 마음 조이는 자기 책망을 극복하기 위해서일 뿐 아니라 모든 성적 유혹을 이겨 내기 위하여 채식과 절식, 냉수욕, 그리고 ‘직업에 열중하라.’고 설교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노동은 그런 의미를 넘어 생활에 있어 신이 정한 자기 목적인 것이라는 점이다. 성 바울의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 말라.’라는 명제는 무조건, 그리고 만인에게 타당하며 노동 의욕의 결핍은 신의 은총의 상실의 징후이다.
이렇게 해서 중세적 견해와의 차이점이 명백해진다.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도 성 바울의 명제에 주석을 달았으나 그에게 노동은 개인과 전체의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자연의 이성일 따름이었다. 그 목적이 달성되면 명령의 적용도 정지되며 그것도 개개인이 아니라 총체를 기준으로 적용될 뿐이었다.…… 독특하고 시민적인 직업적 에토스가 생겨난다.
신의 은총 안에 서 있고, 신의 축복을 눈으로 볼 수 있다는 의식을 갖는 시민적 사업가는 형식적 정당성의 한계를 지키고 도덕적 행동에 흠이 없으며 부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에게 해를 주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영리를 추구하고 또 그럼으로써 의무를 수행한다고 느낀다. 종교적 금욕주의는 그들에게 또한 성실하고 양심적이며 열심히 일하며 노동이 신으로부터 받은 생활 목표라고 굳게 믿고 있는 노동자들을 제공했다.
최종적으로 금욕주의는 사업가에게 이 세상에서 재산의 불평등한 분배는 신의 섭리에 의한 특별한 처리이며 은총에서와 같이 이 차이에서 신은 사람들이 모르는 비밀의 목적을 수행하기 위한 것이라는 즐거운 보장을 제공했다. 칼뱅 자신이, 노동자 대중은 빈곤해야 신에게 복종한다고 말한 것은 너무나 유명하지만 네덜란드에서는 피터 드 라쿠우르 등이 이를 세속화하여 대중은 필요성에 의해 강요당해야만 노동한다고 했다. 그리고 자본주의 경제의 지도 이념의 이 정식화는 후의 저임금의 생산성이라는 이론으로 흡수되게 되었지만, 여기서도 누차 우리가 본 바대로의 도식에 따라 종교적 바탕이 사멸하고 공리적 경향이 모르는 사이에 스며들었다.
중세의 금욕 윤리에서는 동냥을 용인했을 뿐만 아니라 탁발승단(托鉢僧團)으로 찬미하기까지 했다. 세속의 걸인들까지도 가진 자에게 자선을 통한 선행의 기회를 주는 것이기 때문에 때로는 하나의 ‘신분’으로까지 취급했다. 스튜어트 시절 영국 교회의 사회 윤리조차 이와 대단히 가까운 것이었다. 이와 같은 상황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 것은 가혹한 영국의 ‘빈민법’ 이후였다. 청교도적 금욕주의가 그 법의 제정에 관여했는데,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프로테스탄트의 여러 교파들이나 청교도 교단에서는 실제 걸인 생활을 자세히 몰랐기 때문이다.
한편 노동자의 편에서 볼 때, 가령 경건주의를 따르는 진젠도르프파에서는 영리는 바라지 않고 직무에 충실한 노동자는 사도의 생활을 모범적으로 한 것이라고 하여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카리스마를 갖고 있는 것으로 찬양했다. 동일한 사상이 침례교의 경우에는 더 극단적으로 지배했다.
물론 살아가는 데에서 다른 기회를 얻지 못한 자는 저임금으로도 충실하게 노동하는 것이 신을 기쁘게 하는 것이라는 사상은 거의 모든 그리스도교 교파의 금욕주의적 문헌에 담겨 있다. 이 점에 있어 프로테스탄트의 금욕주의는 새로운 점을 부가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가장 강력하게 이 사상을 심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작용면에서는 결정적인 힘을 창조해 냈던 것이다. 노동은 곧 소명이며 은총을 확인하는 가장 좋은,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함으로써 심리적 기동력을 가져온 것이다. 그리고 한편, 고용주의 영리 활동도 소명이기 때문에 노동 의욕의 착취도 합법화된다. 직업의 의무를 수행함으로써 신의 왕국을 찾으려는 배타적 노력과 교회의 훈련이 특히 재산이 없는 자들에게 가히 엄격한 교육이 자본주의적 의미에서는 노동 생산성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었는가는 자명한 것이다. 노동을 소명으로 생각하는 것은 기업가가 영리를 소명으로 생각하는 것과 같이 근대 노동자의 특징으로 되었다. 윌리엄 페티 경과 같은 예리한 관찰자는 17세기 네덜란드의 경제력이 발전한 원인을 설명하는 데에서 그 나라에 대단히 많았던 교회 반대파(칼뱅파와 침례파)들 거의 전부가 ‘노동과 근면은 신에 대한 의무’라고 주장했던 데 귀속시켰다. 그 당시로서는 상당히 새로운 견해였다.
참고 - 『고전 탐구의 신』
생각 거리 font color="#000CA3">프로테스탄티즘의 금욕주의는 자본주의 형성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청교도의 금욕주의는 종교적 회의나 마음 조이는 자기 책망을 극복하기 위해서일 뿐 아니라 모든 성적 유혹을 이겨 내기 위하여 채식과 절식, 냉수욕, 그리고 ‘직업에 열중하라.’고 설교했다. 그 결과 종교적 금욕주의는 그들에게 또한 성실하고 양심적이며 열심히 일하며 노동이 신으로부터 받은 생활 목표라고 굳게 믿고 있는 노동자들을 제공했다. 또한 시민적 사업가로 하여금 신의 은총 안에서 근면하고 성실한 금욕적 생활을 한다면, 신의 축복을 감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의식을 갖도록 했다. 도덕적 행동에 흠이 없으며 부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에게 해를 주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영리를 추구해도 된다는 의식은 자본주의 형성의 토대가 되었다. |
주제 3 정보화 사회
마뉴엘 카스텔, 『네트워크 사회의 도래』
교과서 들여다보기
최근 전세계적으로 커다란 변화의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첫째, 인구, 영토, 천연 자원, 노동력과 자본보다는 과학 기술과 정보가 경제적인 부의 원천이 되고 있고, 경제가 삶의 핵심으로 자리잡고 있다. 따라서 정치, 국제 관계, 심지어 학문 연구에까지 경제적 가치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둘째, 정치적으로는 국가의 권력이 약해지는 반면, 시민 사회의 힘이 커지고 있어서 과거의 어느 때보다도 더 시민의 다양한 의견과 이해 관계가 국가의 정책과 국제 관계에 반영되고 있다. 셋째, 문화적으로는 100여 년간 당연한 것으로 인정되었던 서양 문화 우월주의가 퇴조하고 각 지역의 다양한 문화가 제 목소리를 내는 다원주의가 확산되고 있다. 각 지역의 전통적인 종교, 풍속, 예술, 놀이, 관습 등이 다시 살아나며 새로운 관심과 평가를 받고 있다. 넷째, 교통과 정보 통신 기술이 고도로 발달하여 전세계가 하나의 마을, 하나의 시장으로 통합되는 세계화 현상이 일어나는가 하면, 사람들의 자치 능력이 커져서 지역의 문제는 중앙 정부가 아니라 그 지역 공동체가 스스로 해결하는 지역화 현상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
이런 변화들은 개인들이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개발하고 자기가 원하는 삶을 이끌어 갈 수 있는 자유, 가능성, 기회를 확대시켜 주고, 다양한 공동체들이 그들의 독특한 성격과 자율성을 유지할 수 있게 한다. 그러나 동시에 물질주의적 가치관이 확산되고 사람의 삶이 지나치게 인공적이 되는 약점도 가지고 있다.
현대 사회가 이렇게 급속하게 변하는 것은 주로 정보 통신 기술이 발달했기 때문이다. 사회는 자연 환경보다 사람들이 개발, 습득, 그리고 이용하는 지식과 기술에 의하여 그 성격이 결정되고 변한다. 특히 컴퓨터와 같이 지식과 관계된 기술은 다른 기술보다 그 영향력이 훨씬 더 크다. 증기 기관과 자동화된 기계의 발명이 사람의 노동력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하여 산업 사회를 등장시켰다면, 최근에 많이 개발되고 있는 정보 통신 기술은 또다른 지식과 기술의 개발, 전달, 이용이 쉽게 이루어지도록 함으로써 지식 사회를 이룩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이런 기술이 발달하면 사회의 모습도 크게 변하고 그 변화 속도도 빨라질 것이다. 예를 들어 고밀도 회로 반도체가 개발되면 휴대 전화기의 무게는 가벼워지는 대신 그 기능은 오히려 다양해져서 개인 간의 통화뿐만 아니라, 인터넷 등 컴퓨터의 기능도 대체할 수 있게 된다. 사용하기가 편리해지고 기능이 다양해지면 더 많은 사람들이 휴대 전화기를 이용할 것이고, 따라서 대량 생산과 가격 인하가 이루어져 대중화가 가속될 것이다. 이미 전세계적으로 휴대 전화기 이용자의 수는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고, 그 결과로 정보의 전달과 확산은 매우 쉬워지고 있다. 그 반면 사람들의 직접적인 접촉은 오히려 줄어들어 사회 조직이나 가족 관계에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 고등 학교 『사회』(두산)
저자 소개
마뉴엘 카스텔(1942~현재)
‘사이버 공간의 철학자’, ‘정보화 시대의 계몽주의자’로 불리는 마뉴엘 카스텔(Manuel Castells)은 1942년에 스페인의 카탈로냐 지방에서 태어났다. 그는 바르셀로나 대학에서 법학과 경제학을 공부하면서 프랑코 독재에 저항하는 운동가로 활동을 했다. 그 후 프랑스로 망명, 1967년에 소르본느 대학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25세라는 젊은 나이에 파리 대학 교수로 임용됐고 프랑스 고등 사회 과학원, 마드리드 대학 교수를 거쳐 1979년부터 버클리대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현재 이 대학 사회학과와 도시 및 지역 계획학과의 교수로 있다.
카스텔은 지금까지 약 20권의 저서와 15권의 편저, 100여 편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주요 저작으로는 사회 과학 분야의 최고 저작에 수여되는 라이트 밀즈 상을 수상한 『도시와 민초들』(1985) 외에 『도시 문제』, 『정보 도시』, 『소비에트 공산주의의 몰락』 등이 있다.
카스텔은 최근에 『정보 시대 : 경제, 사회, 문화』 3부작을 출간하였는데 1권은 『네트워크 사회의 도래』, 2권은 『정체성의 힘』, 3권은 『밀레니엄의 종언』이다. 이 3부작의 핵심 내용은 산업 사회의 축이 되었던 정치ㆍ경제의 논리와 문화적 정체성이 정보화 사회에서는 구심력을 잃고 네트워크가 모든 것을 지배하는 사회로 이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카스텔은 소련의 붕괴와 외환 위기, 그리고 새로운 사회 운동의 대두 등에 대해 분석하고 있다. 전통적인 시간ㆍ공간 개념이 소멸되는 자리에 ‘시간 없는 시간’과 ‘흐름의 공간’이 들어서서 기존의 권력과 사회 질서를 대체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19세기 자본주의적 산업 혁명기의 사회 변화에 비견하는 새로운 경제적 질서가 정보화 사회의 도래를 통해 현실화되고 있다는 것을 방대한 자료를 동원해 입증하고 있다.
마뉴엘 카스텔은 앨빈 토플러와 함께 산업 사회를 넘어서는 현재의 격렬하고 복잡한 전환기의 문제들에 씨름한 대표적인 학자이다.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초기 산업주의의 작동과 사회적 갈등에 대해 분석했다면 그는 지구적 정보화 시대의 자본주의를 분석해 왔다. 토플러의 『제 3의 물결』이 정보 사회의 도래에 대한 서곡이었다면, 그의 『네트워크 사회의 도래』는 전문가다운 식견과 체계를 가지고 엄밀하게 정보화 사회의 문제를 다루었다.
책 소개
이 책은 총 7장의 방대한 체계로 구성되어 있다. 1, 2장에서는 정보 기술의 혁명적 발전이 어떻게 전 지구적 경제와 정보 자본주의에 기반해 네트워크를 형성하는지 설명하고 있으며, 3, 4장에서는 노동과 고용의 변화가 실은 사회의 파편화와 노동의 개별화라는 더욱 근본적인 변화 속에 자리잡고 있음을 분석한다. 5장에서는 매스미디어의 형성, 인터넷의 출현, 사이버 공동체의 등장이라는 3가지 계기를 살피면서, 새로운 문화가 출현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6장에서는 서비스와 제조업 두 부분의 관계와 지위가 어떤지 살피면서, 최근의 도시 형태의 변화 경향을 ‘흐름의 공간’이라는 공간 논리로 종합한다. 끝으로 7장에서는 네트워크 망이 만들어 내는 ‘무시간적 시간’을 소개한다.
마뉴엘 카스텔은 이 책에서 인간 활동과 경험의 전반적 영역이 점차 네트워크화되는 것이 역사적 추세임을 주장한다. 네트워크는 우리 사회의 새로운 사회적 지형을 구성하며, 네트워킹의 논리가 확산되면서 생산, 경험, 권력 그리고 문화적인 과정의 작동과 결과에 대한 실질적인 조정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말한다. 그는 사회 조직의 네트워킹 형태는 다른 시공간에서도 존재했지만, 현재는 새로운 정보 기술 패러다임으로 인해 네트워킹 형태가 사회 구조 전체에 파급되는 점을 특징으로 꼽고 있다.
이 책은 네트워크란 네트워크 내에서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는 한, 즉 동일한 커뮤니케이션 코드(예를 들어, 가치나 수행 목표)를 공유하는 한, 새로운 결절을 통합하여 무한히 뻗어나갈 수 있는 개방 구조임을 들어 네트워크에 근거한 사회 구조는 사회 구조의 균형을 위협하지 않고도 손쉽게 혁신을 꾀할 수 있는 고도로 역동적이고 개방적인 체계임을 입증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네트워크가 혁신, 지구화, 분권화된 집중에 근거한 자본주의 경제에 있어서 적절한 도구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이 책은 유연성과 적응성에 근거한 노동, 노동자, 기업을 위해서, 끝없는 파괴와 재구성의 문화를 위해서, 새로운 가치와 공공의 분위기를 순간순간 계산하여 그에 맞게 조정하는 정치적 조직체를 위해서, 공간의 폐기와 시간의 절멸을 목적으로 하는 사회 조직을 위해서 네트워크가 필요함을 역설한다.
그러나 그는 네트워크 형태가 권력 관계를 역동적으로 다시 조직하는 원천임을 지적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네트워크를 연결하는 스위치들(예를 들어, 정치적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미디어 제국을 통제하는 금융 흐름)은 특권이 주어진 권력 도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스위치를 조작하는 사람들은 권력을 가지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네트워크 간 정보 처리 상호 운용 코드와 스위치는 사회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인도하기도 하지만 잘못 인도하기도 하는 근본적인 원천이 될 수 있음을 지적한다.
이 책에서 소개된 내용은 주로 자본, 경영, 정보의 지구적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신경제가 조직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신경제에서는 기술적 노하우에 대한 접근이 생산성과 경쟁력이 근본이 되는데, 이를 위해 기업뿐 아니라 모든 조직과 제도가 변덕스러운(?) 결합 구조를 가진 네트워크로 편성되고 있음을 보인다. 그러나 서로 뒤엉켜 있는 이런 결합 구조, 즉 경영과 생산의 네트워크가 자본주의의 종말을 의미한다고 여기지는 않는다. 다만 네트워크 사회가 역사상 처음으로 자본주의 생산 양식이 사회 관계를 전세계적으로 형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자본주의와 다름을 지적하고 있다.
이 책은 현재의 자본주의는 지구적이고, 상당 부분 금융 흐름의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자본은 지구를 하나의 단위로 삼아 실시간으로 작동하고, 주로 순환의 영역에서 금융 자본으로 구현, 투자되며 저축됨을 보여 주고 있다. 이런 네트워크를 통해 자본은 지구적 차원에서 모든 활동 부문, 정보 산업, 미디어 사업, 고차 서비스, 농업 생산, 보건, 교육, 기술, 오래된 혹은 새로운 제조업, 교통, 무역, 문화, 환경 관리, 부동산, 전쟁 및 평화, 종교, 엔터테인먼트, 스포츠 등에 투자되고 있음을 다양한 자료를 통해 증명함으로써 정보화 사회의 특징을 좀 더 과학적으로 분석해 내고 있다.
이런 분석을 통해 그는 새로운 시대가 야기하는 문제점을 검토한다. 그는 국수주의, 종교적 근본주의, 극단적 페미니즘 등은 새로운 시대가 제기하는 사회적 과제에 인류가 응답하지 못함으로써 발생하는 문제적 현상으로 보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자아’가 탄생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가 제시하는 해결 수단은 첫째, 인터넷망을 이용한 풀뿌리 민주주의와 직접 민주주의의 증대, 둘째, 정보 교육의 보편적 확산, 셋째, 부유한 나라들이 가난한 나라들에 대한 원조 강화, 넷째,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다섯째, 반세계 운동·신사회 운동 등 국경을 뛰어넘는 사회적 소통망의 확장 등이 필요함을 역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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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정보 기술은 세계를 지구적 수단의 네트워크로 통합시키고 있다. 컴퓨터를 매개로 한 커뮤니케이션은 다양한 가상 공동체를 만들어 내고 있다. 그렇지만 1990년대의 뚜렷한 사회적, 정치적 경향은 초보적인 정체성을 중심으로 한 사회 활동 및 정치의 구축이었으며, 이들은 특정한 역사나 지리에 귀속되고 뿌리내린 것이었거나 의미와 영성에 대한 간절한 탐구에서 새롭게 구축된 것이었다.
정보화 사회의 첫 번째 역사적 단계는 정체성이 정보화 사회의 지배적인 조직 원리가 되어 간다는 사실이다. 정체성은 사회 행위자가 스스로를 인식하는 과정이며, 또한 여타의 사회 구조에 대하여 광범위하게 고찰하지 않은 채 기본적으로 행위자에게 주어진 하나의 또는 여러 개의 문화적 특수성에 근거하여 의미를 구성하는 과정일 것이다. 정체성을 확인한다는 것이 다른 정체성과 관련지을 수 있는 가능성(예를 들어, 여성은 여전히 남성과 관련이 있다.)이나 사회 전체를 특정 정체성 하나로 포괄하는 가능성(예를 들어, 종교적 근본주의의 모든 사람들을 개종시키길 열망한다.) 등을 완전히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사회적 관계는 정체성을 구성하는 자신만의 문화적 특수성을 기초로 다른 사회들과 대비되어 규정된다. 예를 들어 요시노는 그의 니혼진론(일본의 독특성에 관한 논의) 연구에서 문화적 국수주의를 ‘국가 공동체가 무언가를 결여하고 있거나 위협받고 있다고 느낄 때, 사람들의 문화적 정체성을 창출하고 보전하는 동시에, 이를 강화하여 국가 공동체를 재생시키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정의 내리며 ‘문화적 국수주의자들은 국가를 독자적인 역사와 문화의 산물이자 독특한 특수성이 부여된 집합적인 결속체로서 상정한다.’고 날카롭게 지적한다. 칼훈은, 이런 현상의 역사적 새로움을 거부하면서도, 현대 미국 사회 특히, ‘다양한 수단이 되는 목표뿐만 아니라 소외되었던 정체성을 공적으로 훌륭하고 정치적으로 중요한 것으로 인정받으려는’ 여성 운동, 동성애 운동 및 시민권 운동 속의 미국 정치를 정의하는 데 있어서 역시 정체성의 중요한 역할을 강조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알랭 투렌은 “문화적 서비스가 생산 과정의 핵심에 있던 물질적 재화를 대체하는 후기 산업 사회에서는 기구와 시장의 논리에 대응하여 개성과 문화의 영역에서 주체를 방어하는 일이 계급 투쟁의 개념을 대체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핵심적인 문제점은 칼데론과 라제르나가 언급했듯이, 동시적인 지구화와 파편화가 특징인 세계에서, ‘새로운 기술과 집합적 기억, 보편적 과학과 공동체적 문화, 열정과 이성을 어떻게 연결시킬 것인가?’라는 것이다. 정말 어떻게! 그리고 왜 우리는 전세계적으로 나타나는 상반된 추세, 즉 지구화와 정체성, 네트워크와 자아의 거리가 멀어져 가는 것을 보게 되는가?
레이먼드 바글로우는 이 문제에 대하여 사회 심리학적 관점에서 쓴 그의 훌륭한 논문에서, 정보 시스템과 네트워킹이 인간의 조직화와 통합 능력을 증대시키는 동시에 독립적으로 분리되어 있는 주체라는 전통적인 서구식 개념을 뒤엎고 있는 역설적 상황을 지적한다. 즉 ‘기계 기술에서 정보 기술로의 역사적 전환은 2000년 전 그리스 철학자들이 개별적인 정체성 개념을 더욱 정교하게 만든 이래 이 정체성을 이데올로기적으로 뒷받침해 왔던 주권과 자기 충족성의 개념을 파기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간단히 말해, 기술은 세계에 대한 종래의 시각을 분해하는 데 한몫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그는 프로이드의 저서에 기록된 고전적인 꿈과 1990년대 샌프란시스코의 고도 기술 완경에서 자기가 치료하고 있는 환자의 꿈에 대한 매우 흥미로운 비교를 제시한다. ‘머리의 이미지 … … 그리고 그 뒤에는 컴퓨터 키보드가 매달려 있다. … … 나는 바로 이 프로그램화된 머리다!’ 이런 절대적인 고독의 느낌은 고전적인 프로이드적 재현과 비교해 보면 매우 새로운 것이다. ‘꿈꾸는 이는 …… 세계의 구조 속에서 조립되어 실존적인, 그리고 탈출할 수 없는 고독감을 표현한다. 완전히 고립되어, 자아는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그 자체를 잃어버린 듯이 보인다.’그리하여, 공유되고 재구성된 정체성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연결을 탐색하게 된다.
그렇지만, 아무리 통찰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 가설은 일부분만을 설명할 뿐이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통제가 불가능한 연결성 때문에 흔들리고 있는 자아, 즉 서구의 개인주의적인 개념으로만 한정되어 이해되고 있는 자아의 위기를 암시한다. 그러나 새로운 정체성과 영성을 위한 탐색 작업은 동양에서도 진행되고 있다. 이 지역들은 집합적 정체성이 보다 강하게 자리잡고 있었던 지역이고 또한 가족에 대한 개인의 순종이 전통과 문화로 자리잡고 있는 지역이다. 1995년 일본의 옴 진리교가 고학력의 젊은이들에게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현상은 영성, 선진 기술, 지구적 사업 연계, 그리고 천 년 왕국의 종말 문화 등을 혼합하여 새롭고도 집합적인 자아를 구축하려 하는 절박한 필요성이 표출된 것이라 볼 수 있으며, 이와 동시에 종래의 정체성 양상에서 위기가 발생하였다는 징후로 간주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정체성 권력의 등장을 설명하는 해석 구조의 요소들을 파악하고자 할 때는, 새로운 지구적 체제의 출현과 상당 부분 연관되어 있는 제도 변화라는 거시적인 과정과의 관계에서 더욱 폭넓게 파악해야 한다. 따라서 서유럽에 만연한 외국인 혐오증과 인종주의적 태도는, 알랭 투렌과 미셀 위비오르카가 지적했듯이, 유럽 인들이 점차 더 추상화(유럽적으로)됨으로써 아직도 유럽 사회에 소수 인종이 존재한다는 것과 관련되어 나타난 것일 수도 있다. 이와 유사한 사례로 러시아와 그 외 구소련 지역을 살펴볼 수 있다. 이 지역들이 탈공산화된 이후에 나타난 강력한 민족주의는, 역사적으로 불우했던 소베츠키 나로드(소련 인민)가 뿔뿔이 흩어진 후에 유일한 의미의 원천으로서 본래의 역사적 정체성(러시아적이라는, 또는 그루지아적이라는 정체성)으로 회귀하려는 움직임과 함께, 지난 70년 동안 강제되었던 독점적인 이데올로기 정체성으로 인해 발생한 문화적 공백 양자 모두와 관련된 것일 수도 있다.
종교적 근본주의의 출현 또한 지구적 유행과 제도적 위기 모두에 관련되어 있는 것 같다. 우리는 역사에서 모든 종류의 사상과 신념은 항상 어떤 상황에서 불붙기를 기다리며 축적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슬람 교든 기독교든 간에, 근본주의는 계속 확산되어 왔으며, 권력과 부의 지구적 네트워크가 지구 곳곳에서 조직의 중심과 중요 개인들을 연결하고 또한 사회와 지역, 심지어는 국가의 큰 부분을 제외시키는 시기에도 계속 전세계로 확산될 것임은 분명하다. 이슬람 사회 가운데서 가장 현대화된 사회인 알제리가 민주적인 선거에서 패배했을 때, 갑자기 근본주의의 구세주가 되어 (반식민주의 운동을 했던 선조가 그랬던 것처럼) 테러리스트 국가가 되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교황 요한 바오르 2세의 전통주의적 설교가 제3세계의 가난한 대중들에게 압도적인 반향을 불러와, 구원받아야 할 영혼의 수를 감소시킬 낙태권을 확보하기 위해 투쟁하는 몇몇 선진국의 소수 페미니스트들을 바티칸이 무시할 수 있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배제자를 배제하는 논리, 컴퓨터 문맹, 무소비 집단, 커뮤니케이션 빈곤 지역처럼 기회가 줄어드는 세계에서 가치와 의미에 대한 기준을 다시 정의하는 논리가 있는 것 같다. 네트워크가 자아를 단절할 때, 자아는 개별적이건 집단적이건 간에 지구적 도구가 되는 네트워크와 상관 없이 그 의미를 구축한다. 단절의 과정은 구조적 지배와 사회적 배제라는 일방적 논리 때문에 배제된 이들에 의해 거부된 다음에 상호 보완적이 된다.
생각 거리 마뉴엘 카스텔은 정보화 사회의 첫 단계의 특징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가? 마뉴엘 카스텔은 정보화 사회의 첫 번째 역사적 단계의 특징을 정체성이 지배적인 조직 원리가 되어 간다는 데서 찾는다. 정체성은 사회 행위자가 스스로를 인식하는 과정이며, 기본적으로 행위자에게 주어진 문화적 특수성에 근거하여 의미를 구성하는 과정일 것이다. 그는 정체성을 확인한다는 것이 다른 정체성과 관련지을 수 있는 가능성이나 사회 전체를 특정 정체성 하나로 포괄하는 가능성 등 사회적 관계망을 확장시킬 수도 있음을 완전히 부정하는 것은 아님을 지적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가 주장하는 정보화 사회의 첫 단계에서는 사회적 관계가 자신만의 문화적 특수성을 기초로 정체성을 구성하는 것이 원리로 작용한다는 사실이다. |
주제 4 자유와 평등
존 롤스, 『정의론』
교과서 들여다보기
산업 혁명 이후 발달된 근대 경제 체제는 자유 방임주의적 자본주의 체제였다. 스미스(Adam Smith)의 자유 방임주의 사상에 따라, 국가는 최소한의 공무를 담당하는 최소 국가였고 그 이상으로 국민들의 일상 생활에 개입하지 않았다. 이러한 체제는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여졌고, 생산 증대 등에 큰 공헌을 하였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발달함에 따라 자유 방임주의의 여러 가지 문제점이 드러났다. 자유 방임주의의 문제점이 나타나면서 국가가 여러 가지 사회 문제의 해결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게 되었다. 특히, 국민의 복지 증진을 위하여 적극적으로 개입하면서 국가의 역할이 확대되었다. 산업 혁명 이후 삶이 더욱 열악해진 노동자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사회주의 운동이 전개되자 이에 대응하여 1884년 독일의 비스마르크가 사회 보험 제도를 실시하였다. 그리고 이것이 유럽 및 미국 등으로 확산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후 사회 보장 제도는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사회 보장을 제창한 영국의 베버리지에 의하여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현대적 의미의 복지 국가가 성립하게 되었다.
현대 국가에서 실시하는 복지 정책에는 사회 보장 제도와 사회 복지 정책이 있다. 사회 보장 제도는 자립할 수 없는 사회 구성원에게 인간다운 최저 생활을 보장하는 소극적 의미의 복지 정책인 반면, 사회 복지 정책은 적극적인 의미에서 일반 국민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이다. 이에는 고용 정책, 주택 정책, 보건 정책, 교육 정책 등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1963년 ‘사회 보장에 관한 법률’이 공포되었지만, 기본법으로서 갖추어야 할 실질적인 내용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다. 그리하여 1995년에 ‘사회 보장에 관한 법률’이 폐지되고 새로운 ‘사회 보장 기본법’이 공포되었다. 이 기본법에서는 사회 보장을 질병·장애·노령·실업·사망 등의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모든 국민을 보호하고 빈곤을 해소하며 국민 생활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제공되는 사회 보험·공공 부조·사회 복지 서비스 및 관련 복지 제도로 규정하고 있다.
- 고등 학교 『정치』(법문사)
저자 소개
존 롤스(John Rawls, 1921~2002)
존 롤스는 1921년 미국 볼티모어에서 태어났다. 1950년 프린스턴 대학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이후 코넬 대학과 매사추세츠 공과 대학을 거쳐 1962년부터 하버드 대학에서 철학과 명예 교수로 재직하다가 지난 2002년 세상을 떠났다. 주요 저서로는 『정의론』 외에도 『정치적 자유주의』, 『만민법』, 『공정으로서의 정의』 등이 있다.
1958년 「공정성으로서의 정의」라는 논문을 발표한 뒤, 그의 관심은 사회의 정의에 대한 현대적 해석 문제에 집중되어 「분배적 정의」, 「시민 불복종의 정당화」, 「정의감」 등 일련의 논문을 발표하여 학계의 주목을 끌기 시작했고, 그러한 글에서 단편적으로 제시된 생각들의 요지를 일관되게 정리했다. 그는 근 20년 동안 정의의 문제를 파고들었을 뿐 아니라 정의의 문제만을 파고든 단일 주제의 철학자로 유명하다. 『정의론』은 바로 그 결과물이다.
롤스는 모든 사람에게 어떠한 정치적 이유나 전체를 위한다는 명분 속에서도 침범할 수 없는 권리가 있다고 믿었다. 그것은 바로 정의의 원리에 의해 규정되어야 할 인간적 권리이다. 그리고 그 권리가 무엇인가를 명확하게 규정하는 일이 철학자의 중요한 과제임을 깨닫고 스스로 이 문제에 도전하였다. 그 결과 정의의 문제에 관한 선배 철학자들의 연구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하나의 종합적인 체제를 구축하기에 이르렀다.
롤스에게 정의는 진리와 더불어 인간 생활의 제1의 덕목이다. 사상 체계의 제1의 덕목이 진리라고 한다면 정의는 사회 제도의 제1의 덕목인 것이다. 그는 고귀한 정의에 대한 절대적 신뢰와 우선성을 바탕으로 로크, 루소, 칸트로 대표되는 사회 계약론을 고도로 추상화함으로써 일반화된 정의관을 제시하였다. 그는 『정의론』을 통해 정의의 원칙을 중심으로 자유주의 사회의 기본적인 사회적 제도의 정의에 대한 문제, 자유나 다른 사회적 가치에 대한 배분의 문제, 정치 권력의 정당한 사용에 대한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하였다.
존 롤스는 기존 사회 윤리학의 개념이었던 공리주의(功利主義)를 대신할 실질적인 사회 정의 원리를 ‘공정(公正)으로서의 정의론’으로 체계 있게 전개하여 규범적 정의론의 복권(復權)을 가져왔다. 평등한 기본적 자유를 보장하는 권리의 우선이 강조되었으며, 가장 불리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의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해서는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정당화된다는 ‘격차 원리(隔差原理)’를 제창하였다. ‘원초 상태(原初狀態)’라는 가설적 상황에서 자유·평등한 도덕적 인격자들이 전원 일치로 합의한다는 데서 이러한 정의 원리가 도출·정당화된다는 사회 계약설적 구성이 채택되었으며, 이와 같은 방법론은 자율성과 정언명법(定言命法)에 관한 칸트의 사고 방식을 절차적으로 해석한 ‘칸트적 구성주의’라고 불린다.
책 소개
사회 정의 문제에 대한 현대적 해석에 집중하여 발표했던 「분배적 정의」, 「정의감」, 「시민 불복종의 정당화」 등 일련의 논문에 바탕을 두고 20여 년에 걸친 연구의 결실이 바로 『정의론 A Theory of Justice』이다.
『정의론』은 현대 영미 철학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사회 철학, 도덕 철학 저서로서 자유 경제 사회에 복지주의를 접합시키려는 시도를 담고 있다. 롤스는 사회 제도의 제1덕목이 정의라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그의 이론을 전개한다. 롤스는 정의의 개념을 한 사회 제도 안에서 모든 개인이 완전하게 평등할 수는 없다는 사실에 기초하여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그의 정의론은 사회 구성원 간의 이익의 충돌과 갈등을 제도적 원리를 통해 해결하는 절차를 확립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롤스는 근대의 사회 계약론을 새롭게 변형한다.
사회 계약론이 논리적으로 전제하는 자연 상태는 롤스에게 원초적 입장이라는 개념으로 사용된다. 원초적 입장이란 계약 당사자들이 자신들의 사회적 지위나 타인과의 모든 차이에 대해 전혀 모르는 무지의 베일에 가려 있는 상태를 말한다. 그러나 합의에 참여하는 개인들은 합리적이면서 동시에 이기적인 존재로서 도덕적 인격과 권리, 기회, 자유, 협동 등과 같은 사회적 기본 가치에 대해서는 알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계약자들이 맺게 되는 계약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를 최소화하는 원리를 담게 된다.
이 원리로부터 모든 사람은 자유에 대한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는 자유 우선성의 원칙과 최소 수혜자에게 최대한의 이익을 보장하고 불평등의 원인이 모든 사람에게 균등하게 열려 있어야 한다는 차등의 원칙이 도출된다. 이것이 롤스 정의론의 핵심이 되는 정의의 두 원칙이다. 이 중 자유의 원칙은 차등의 원칙에 우선하고 차등의 원칙 중 균등의 원칙은 수혜의 원칙에 우선한다. 이러한 원초적 상태에서의 계약은 공정성과 중립성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여기서의 계약을 공정으로서의 정의라고 말할 수 있게 된다.
롤스는 다시 이러한 원칙들이 사회의 제도적 구성에 적용되는 과정을 논의한다. 여기서 구성되는 제도는 입헌 민주주의의 제도들이다. 롤스는 이와 관련하여 자유와 법과 분배 등에 대해 논의한 뒤 자유의 원칙이 헌법에 의해 보장되고 차등의 원칙은 입법을 통해 실현된다는 결론을 도출한다. 또한 이러한 법에 대한 복종의 의무와 정의의 원칙들이 반영되지 않는 법에 대한 불복종의 권리에 대해 논증한다.
롤스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공리주의의 원리는 정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노예와 같은 소수 집단이나 개인의 희생에 대해서도 실질적인 대안을 줄 수 없기 때문에 사회의 안정성을 지키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칸트의 의무론적 윤리 이론을 받아들여 자유주의 안에서 정의의 실현 가능성을 확인하고자 했다. 이러한 그의 노력은 복지주의 또는 수정 자본주의와 같은 전향적인 자유주의 질서를 모색하는 새로운 사회 관계에 대한 이론이라 할 수 있다.
본문 읽기
나의 목적은 이를테면 로크, 루소, 그리고 칸트에게서 흔히 알려져 있는 사회 계약의 이론을 고도로 추상화함으로써 일반화된 정의관을 제시하는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원초적 계약을 어떤 사람이 특정 사회를 택하거나 특정 형태의 정부를 세우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핵심이 되는 생각은 사회의 기본 구조에 대한 정의의 원칙들이 원초적 합의의 대상이라는 점에 있다. 그것은 자신의 이익 증진에 관심을 가진 자유롭고 합리적인 사람들이 평등한 최초의 입장에서 그들 공동체의 기본 조건을 규정하는 것으로 채택하게 될 원칙들이다. 이러한 원칙들은 그 후의 모든 합의를 규제하는 것으로서, 참여하게 될 사회 협동체의 종류와 설립할 정부 형태를 명시해 준다. 정의의 원칙들을 이렇게 보는 방식을 공정으로서의 정의관이라 부르고자 한다.
그래서 우리는 사회 협동체에 참여한 자들이 하나의 공동 결의를 통해서 기본적인 권리와 의무를 할당하고 사회적 이득의 분배를 정해 줄 원칙들을 함께 채택한다고 상상해 볼 수 있다. 사람들은 그들이 상호간에 상충하는 요구를 조정하는 방식과 그들 사회의 기본 헌장이 무엇인가를 우선 정하게 된다. 각 사람은 합리적인 반성을 통해서 무엇이 자신의 선인지를, 다시 말하면 그가 추구할 합리적인 목적의 체계가 무엇인지를 결정해야 하듯이 사람들의 집단을 그러한 목적 체계 가운데서 무엇이 정의롭고 무엇이 불의로 간주될 것인가를 한꺼번에 정하게 된다. 합리적인 인간들이 평등하고 자유로운 가상적 상황에서 행하게 될 선택은 일단 이러한 선택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될 경우에는 정의의 원칙들을 결정해 줄 것이다.
공정으로서의 정의관에 있어서 평등한 원초적 입장이라는 것은 전통적인 사회 계약론에 있어서 자연 상태에 해당한다. 이 원초적 입장은 역사상에 실재했던 상태로 생각해서는 안 되며 더욱이 문화적 원시 상태로 생각해서도 안 된다. 그것은 일정한 정의관에 이르게 하도록 규정된 순수한 가상적 상황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상황이 갖는 본질적 특성 중에는 아무도 자신의 사회적 지위나 계층상의 위치를 모르며 누구도 자기가 어떠한 소질이나 능력, 지능, 체력 등을 천부적으로 타고났는지를 모른다는 점이다. 심지어 당사자들은 자신의 가치관이나 특수한 심리적 성향까지도 모른다고 가정된다. 정의의 원칙들은 무지의 베일 속에서 선택된다. 그럼으로써 보장되는 것은 원칙들을 선택함에 있어서 아무도 타고난 우연의 결과나 사회적 여건의 우연성으로 인해 유리하거나 불리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모든 이가 유사한 상황 속에 처하게 되어 아무도 자신의 특정 조건에 유리한 원칙들을 구상할 수 없는 까닭에 정의의 원칙들은 공정한 합의나 약정의 결과가 된다. 각자가 상호 동등한 관계에 있게 되는 원초적 입장의 여건들이 주어질 경우 도덕적 인격으로서, 즉 자신의 목적과 정의감을 가진다고 생각되는 합리적 존재로서의 개인들에게 있어서 이런 최초의 상황이란 공정하다고 볼 수 있다. 원초적 입장이란 적절한 최초의 원상이라 할 수 있으며 따라서 거기에서 도달된 기본적 합의는 공정한 것이다. 이로 인해서 ‘공정으로서의 정의’란 말이 적합하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그것을 바로 정의의 원칙이 공정한 원초적 상황에서 합의된 것이라는 생각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명칭은 정의라는 개념과 공정이라는 개념이 동일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는 마치 ‘은유로서의 시’라는 구절이 시라는 개념과 은유라는 개념이 동일하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미 말했듯이, 공정으로서의 정의는 사람들이 함께 선택하게 될 가장 일반적인 것들 중의 하나로 시작된다. 즉 그것은 제도들에 관한 그 후의 모든 비판과 개혁을 규제하게 될 정의관의 제1원칙들을 선택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일단 정의관이 선택된 다음에는 그에 의해 헌법과 입법 기관이 선택되는데 이러한 것들은 모두 이미 처음에 합의된 원칙들에 따라서 이루어진다. 만일 이러한 일련의 가정적 합의에 의해서 우리의 사회적 상황을 규정해 줄 규칙들의 일반 체계가 약정된다면 우리의 사회적 상황은 정의롭다고 할 수 있다. 나아가 일단 원초적 입장에서 일련의 원칙들이 정해진다고 가정할 경우(즉 어떤 특정한 정의관이 선택될 경우) 사회 제도가 이 원칙들을 실현하고 있을 때에는 거기에 참여하는 자들은 서로 간의 관계가 공정한, 즉 자유롭고 평등한 사람들이 합의하게 될 조건으로 그들이 서로 협동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들은 모두 그들의 체제가 원칙의 선택에 있어 널리 인정되고 합리적인 제한 조건들을 구체화한 원초적 상황에서 그들이 채택하게 될 규정을 충족시킨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일반적으로 주지시킴으로써 그에 상응하는 정의의 원칙들을 공공적으로 승인받게 될 기반이 마련될 것이다. 물론 어떤 사회이든 사람이 문자 그대로 자발적으로 가담하는 협동 체제란 있을 수 없다. 각자는 이미 어떤 특정 사회의 특정 지위를 갖고 태어나게 되며 이러한 지위의 성격이 그의 인생 전망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러나 공정으로서의 정의의 원칙을 실현하는 사회는 가장 자발적인 체제에 가까이 접근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 사회는 공정한 여건 아래 자유롭고 평등한 사람들이 합의하게 될 원칙들을 충족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 사회의 성원들은 자발적이며 그들이 받게 되는 책무는 스스로 부과한 것이 된다.
공정으로서의 정의관이 갖는 또 하나의 특징은 원초적 상황의 당사자들이 합리적이고 상호 무관심한 것으로 생각한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해서 당사자들이 이기주의자들, 즉 이른바 재산이나 특혜, 지배권 등 특정 종류의 관심만을 갖는 개인들임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들은 서로 타인의 이해 관계에는 관심이 없는 것으로 생각되어진 듯이 그들의 정신적인 목적까지도 대립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나아가 합리성이란 개념은 경제 이론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바, 주어진 목적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수단을 취한다는 뜻에서 가능한 한 좁은 의미로 해석되어야 한다. 나는 이 개념에 약간의 변경을 가해서 사용하려 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 개념 속에 논란의 여지가 있을 윤리적 요소를 가미시켜서는 안 될 것이다. 원초적 상황이란 널리 받아들여질 수 있는 규정들로 특징지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참고 - 『고전 탐구의 신』
참고 자료 신자유주의와 복지 국가 위기론 1980년대 세계 경제의 장기적인 불황에 대응하기 위하여 영국의 대처 정부와 미국의 레이건 정부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하였다. 신자유주의는 경제에 대한 국가의 개입 축소를 주장하였는데, 그 이유는 국가의 과도한 개입이 경제의 효율성을 저하시켰고 이것이 경제 불황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스웨덴, 노르웨이 등의 복지 국가들이 복지 제도의 위기를 겪고 있다고 강조하였다. 그것은 국가가 과다한 사회 보장을 실시하기 위하여 소득세와 법인세 등 조세를 많이 징수함으로써 근로 의욕과 생산성의 하락을 초래하여 재정에 위기가 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최저 생계 보장 이상의 상호 보장은 가난한 사람들의 자립 정신을 해치고 도덕적 해이 현상을 가져오기 때문에 불필요하다고 보고 복지 예산을 줄이고 세금도 덜 거둘 것을 주장하였다. |
생각 거리 롤스가 말하는 ‘공정으로서의 정의’란 무엇인가? 롤스는 자신의 정의론을 ‘공정으로서의 정의관’이라 명명하면서 이것이 자신의 이익 증진에 관심을 가진 자유롭고 합리적인 사람들이 평등한 최초의 입장에서 그들 공동체의 기본 조건을 규정하는 것으로서 채택하게 될 원칙들이라고 주장한다. 공정으로서의 정의관을 전개하면서 롤스는 ‘평등한 원초적 입장’을 가정한다. 이것은 정의의 본질에 대해 질문함으로써 정의를 발견하려는 것이 아니라 공정한 절차에 의해 합의된 것이면 정의로운 것이라는 순수한 절차적 정의를 내세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