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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년 7월호

「2007 만점논술」통합 교과서 속 논제 읽기 (사회) - 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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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제 예상 포인트]
● 역사의 두 가지 의미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가?
● 역사를 연구하고 학습하는 데 필요한 자세는 무엇인가?
● 우리는 왜 역사를 연구하고 학습하는가?
● 역사 연구의 기초인 사료는 무엇이며, 이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사관(史觀)이란 무엇이며, 이는 역사의 이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역사의 의미
 
  역사라는 말은 사람에 따라 매우 다양한 뜻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과거에 있었던 사실’과 ‘조사되어 기록된 과거’라는 두 가지 뜻을 지니고 있다. 즉, 역사는 ‘사실로서의 역사(history as past)’와 ‘기록으로서의 역사(history as historiography)’라는 두 측면이 있다. 전자가 객관적 의미의 역사라면, 후자는 주관적 의미의 역사라 할 수 있다.
 
  사실로서의 역사는 객관적 사실, 즉 시간적으로 현재에 이르기까지 일어났던 모든 과거 사건을 의미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역사란 바닷가의 모래알과 같이 수많은 과거 사건들의 집합체가 된다.
 
  기록으로서의 역사는 과거의 사실을 토대로 역사가가 이를 조사하고 연구하여 주관적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필연적으로 역사가의 가치관과 같은 주관적 요소가 개입하게 되며, 이 경우 역사라는 말은 기록된 자료 또는 역사서와 같은 의미가 된다.
 
  우리가 역사를 배운다고 할 때 이것은 역사가들이 선정하여 연구한 기록으로서의 역사를 배우는 것이다.
 
  기록으로서의 역사는 과거의 모든 사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가들이 특별히 의미가 있다고 선정한 사실에 한정되어 있으며, 이를 연구할 때는 과학적 인식을 토대로 학문적 검증을 거쳐야 한다.
 
  - 고등 학교 『국사』(교육 인적 자원부)
 
 
  역사 학습의 목적
 
  역사를 배운다는 것은 역사 그 자체를 배운다는 의미와 역사를 통하여 배운다는 의미가 동시에 담겨 있다. 전자가 과거 사실에 대한 지식을 늘리는 것을 의미한다면, 후자는 역사적 인물이나 사실들을 통하여 현재의 내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능력과 교훈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역사는 지식의 보고라는 말이 있다. 이는 역사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 등 여러 방면에 걸친 지식이 포함되어 있는, 과거 인간 생활에 대한 지식의 총체라는 것을 의미한다. 역사를 배움으로써 우리는 인간 생활에 관한 지식의 보고에 다가갈 수 있다.
 
  아울러 우리는 역사 속의 인물과 사건을 통해서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첫째, 우리들은 역사를 배움으로써 과거의 사실을 토대로 현재를 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 지나온 과거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 지금 서 있는 자신의 참모습을 찾지 못하게 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역사는 개인과 민족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매우 유용하다.
 
  둘째, 우리들은 역사를 통하여 삶의 지혜를 습득할 수 있다. 현재란 과거의 연속이며 과거 없는 현재는 있을 수 없듯이, 역사를 배움으로써 현재 우리가 당면하게 되는 여러 문제들을 올바르게 파악하고 대처할 수 있다. 나아가, 우리는 역사를 통하여 미래에 대한 전망을 할 수 있다.
 
  셋째, 우리들은 역사를 배움으로써 역사적 사고력과 비판력을 기를 수 있다. 역사 학습은 역사적 사실의 외면에 대한 파악에서 시작하여 역사적 사실의 내면의 이해로 발전해 가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역사적 사건의 보이지 않는 원인과 의도, 목적을 추론하는 역사적 사고력이 길러지게 된다. 또, 역사는 비판력을 길러 주는 학문이다. 비판이란 잘잘못을 가려 정당한 평가를 내리는 것을 의미하는데, 역사는 비판력을 기르는 데 가장 적합한 학문이다.
 
  - 고등 학교 『국사』(교육 인적 자원부)
 
 
  역사의 어원
 
  한자의 역사(歷史)라는 말 중에서 역(歷)이란 세월, 세대, 왕조 등이 하나하나 순서를 따라 계속되어 가는 것으로서 ‘과거에 있었던 사실’이나 ‘인간이 과거에 행한 것’을 의미하며, 사(史)란 활쏘기에 있어서 옆에서 적중한 수를 계산, 기록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서, ‘기록을 관장하는 사람’ 또는 ‘기록 한다’는 의미로 쓰였다. 한편, 영어에서 역사를 뜻하는 ‘history’라는 단어의 어원으로는 그리스 어의 ‘historia’와 독일어의 ‘Geschichte’를 들 수 있다. 그리스 어의 ‘historia’라는 말은 ‘탐구’ 또는 ‘탐구를 통하여 획득한 지식’을 의미하며, 독일어의 ‘Geschichte’라는 말은 ‘과거에 일어난 일’을 뜻한다.
 
  - 고등 학교 『국사』(교육 인적 자원부)
 
 
  사료의 가치 이해
 
  역사가는 사료에 의하여 사실을 인식하고 판단한다. 따라서 사료의 탐사, 수집, 정리, 해석 등 일련의 과정은 역사 연구의 출발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사료에 의한 역사 연구 방법론은 19세기 독일의 근대 사학에서 학문적으로 체계화되어 역사학을 실증적 기초 위에 선 과학으로서 발달시키는 데 크게 공헌하였다.
 
  역사 연구 방법론은 일반적으로 사료학과 사료 비판으로 나눌 수 있다. 사료학은 사료의 수집과 정리 및 분류를 그 내용으로 하며, 사료 비판은 사료의 진위를 구별하는 것을 말한다. 사료 비판은 외적 비판과 내적 비판으로 나눌 수 있다.
 
  외적 비판이란 사료 그 자체에 관하여 그것의 진위 여부, 원사료에 대한 타인의 첨가 여부, 필사(筆寫)인 경우 필사 과정에서의 오류, 혹은 사료가 만들어졌을 단계에서 작자·장소·연대 및 전거(典據) 등에 관하여 사료의 가치를 음미하는 것이다.
 
  내적 비판이란 사료의 내용이 신뢰할 만한 것인가를 분석하고, 사료의 성격을 밝히는 작업으로서, 이는 사료로서 전하는 것이 반드시 역사적 진실이라고는 할 수 없기 때문에 연구자가 행하는 작업이다. 즉, 내적 비판은 사료의 기술(記述)을 분석하고 기술의 개개의 점에 관하여 신뢰할 수 있는 이유의 유무를 조사하는 것이다.
 
  - 고등 학교 『국사』(교육 인적 자원부)
 
 
  ▣ 교과서 속 숨은 주제 이해하기
 
 
  역사는 현재 진행형인가 완료형인가?
 
랑케

  앞의 교과서 내용에서도 보았지만 ‘역사’를 둘러싸고는 ‘있는 그대로의 역사’와 ‘쓰인 역사’, ‘사실’과 ‘해석’, ‘과거’와 ‘현재’ 가운데 무엇을 더 중요하게 여길 것인가를 두고 늘 논쟁이 벌어져 왔다. 그리고 그 각각을 대표하는 역사관을 실증주의와 현재주의라고 부르고 있다.
 
  먼저 실증주의를 자세하게 살펴보자 이 입장을 대표하는 사람은 ‘역사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독일인 랑케(Leopold von Ranke)이다. 그는 역사가의 임무는 과거를 평가하거나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교훈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오직 ‘본래 있는 그대로’를 보여 주는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곧 역사적 사실이 역사가의 눈과 생각에 따라 굴절되고 주관적으로 해석된다면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역사는 가능하지 않으므로, 역사가는 도덕의 목적이든 종교의 목적이든 사실 자체를 넘어서는 모든 주관적인 해석을 거부해야 하며, 역사를 서술할 적에는 자기의 선입견, 편견, 가치관 따위를 완전히 배제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진정한 ‘객관’이라는 것이 가능할까? 뒤에서 살펴보겠지만 역사라는 것은 사회의 조건 속에서 벗어날 수 없다. 따라서 이를 서술하는 역사가도 마찬가지다. 랑케의 저작들은 이후 인간의 자유 대신 국가 권력을 숭배하는 사상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되어, 그의 주장과는 달리 정치 참여와 편향의 본보기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랑케의 주장을 비판하며 나타난 것이 현재주의(또는 주관주의)역사관이다. 크로체(Benedetto Croce)나 콜링우드(Robin G. Collingwood)와 같은 사람들은 실증주의를 비판하며, 과거를 본래 있는 그대로 복원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역사란 현재의 사고와 관심을 과거에 반영시키는 것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곧 모든 역사는 현재 살아 있는 역사가의 머리 속에서 재구성되는 ‘현재의 역사’라는 것이다. 그들의 주장을 요약하자면, 역사가와 사건은 서로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으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역사를 인식하는 것은 거울이 빛을 반사하는 것처럼 수동적인 것이 아니라 역사가의 역할 때문에 항상 능동적인 것이 되고, 역사가는 항상 사회적으로 사고하며, 그 때문에 ‘주관성’을 지닐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여기에도 몇 가지 문제가 있다. 현재주의처럼 역사가의 주관적인 해석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면 하나의 역사적 사실을 두고 쓰인 역사들이 모두 진실을 담은 역사가 되는 혼란이 일어날 수밖에 없고, 결국은 역사가 ‘역사가들의 역사에 관한 생각’으로 나타나게 되는 한계가 나타난다.
 
  위의 두 입장의 한계를 극복하려 한 사람이 바로 에드워드 카(Edward Hallet Carr)이다. ‘과거의 사실’만 지나치게 강조하게 되면, 그것이 현실과 갖는 관련성을 간과하게 되어 역사가 마치 과거 사실에 대한 연대기적인 나열의 수준으로 떨어지게 된다. 그리고 ‘현재의 해석’만 지나치게 강조하게 되면, 역사는 역사가가 만들어 낸 것에 지나지 않게 된다. 그래서 사실과 해석 간의 끊임없는 상호 작용으로 역사를 보게 된 것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와의 끊임없는 대화이다.’라는 명제는 이렇게 등장한다.
 
 
  역사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역사적 조건과 관계 없이 일어나는 사회 현상은 없으며, 또한 역사 밖에서 살아가는 인간도 없다. 역사를 바로 보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사회를 조금 더 근원적으로 알 수 있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도 찾아 낼 수 있다.
 
  하지만 무턱대고 역사책을 많이 본다고 해서, 과거의 사실들을 많이 배운다고 해서 역사를 바르게 이해한다고 할 수 없다. 물론 과거의 역사적 사실에 대한 다양하고 풍부한 지식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러한 지식 이전에 올바른 관점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 역사 이해의 어려움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관점을 바로 사관(史觀)이다.
 
  역사는 과거의 인간 활동에 대한 기록이다. 하지만 ‘과거’는 이미 지나가 버려 우리 앞에 객관적인 대상으로 실재하지 않는다. 또한 어느 누구도 인간의 모든 활동을 총체적으로 인식하고 기록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우리가 접하는 역사적 사실과 정보들은 누군가에 의해서 선별되고 재구성된 것들일 수밖에 없으며, 그 안에는 인간과 사회에 대한 특정한 사람의 특정한 가치 판단이 개입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결국 언제나 ‘역사’는 ‘단수’가 아니라 ‘복수’로 존재하며, 그 ‘역사들’ 가운데에서 올바른 교훈을 이끌어 내려면 역사를 이해하는 올바른 관점이 전제되어 있어야 한다. 또한 올바른 역사관이란 결국 인간과 사회에 대한 올바른 인식일 것이다. 역사는 단지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나’ 자신과 사회의 현실을 바라보는 현재의 문제 인식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음에서는 잘못된 역사 인식의 사례에 대해 살펴보겠다. 그 폐해는 잘못된 역사 인식을 가진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더 나아가 인류 전체에 미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의 역사 왜곡의 문제점에 대해
 
  먼저 일본의 역사 왜곡에 대해 이야기하면 일본은 과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즉 제2차 세계 대전의 전범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저질렀던 범죄들 즉 위안부 문제나 징용 문제들을 전혀 인정하고 있지 않으며, 나아가 한일 합방의 불법적이고 폭력적인 부분까지 왜곡하려 하고 있다. 이러한 역사 왜곡 문제가 중요한 것은 에드워드 카가 이야기했듯이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이기 때문이다. 즉 역사라는 것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사실로서의 과거를 현재의 입장에서 재구성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역사란 과거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고, 현실의 세계는 또한 역사적으로 형성되어 간다고 말할 수 있다.
 
  예를 들자면 1980년 5월 18일 광주에서 발생한 사건에 대해 시대별로 바라보는 관점은 달랐다. 똑같은 사건에 대해 그 당시 군사 독재 정권은 광주 사태를 빨갱이들의 폭동으로 이야기했고 오늘날의 정권은 민주화 운동으로서 평가한다. 즉 역사는 단순히 현재의 배경으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모습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기도 한 것이다.
 
  따라서 역사 왜곡 문제는 단순히 과거사를 거짓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외교 문제이며, 일본과 중국은 각각 자국의 위치를 유리하게 하기 위해 역사를 왜곡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역사 왜곡 문제를 적극적으로 대응하여 일본이나 중국이 자국의 이익에 맞도록 역사를 왜곡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만 낮았다면?
 
  우리가 흔히 역사를 논할 때 클레오파트라의 코는, 역사가 우연의 연속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다. 로마의 장군인 안토니우스가 악티움 해전에서 패전한 이유가 클레오파트라의 아름다움에 빠져서 전쟁 대비를 소홀히 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다. 즉 역사는 우연적이고 사소한 사건에 의해 변화되고 달라진다는 것이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도 이러한 생각을 쉽게 할 수 있다. 아침 등굣길에 간발의 차이로 버스를 놓치고 다음 버스를 탔는데, 그 버스가 고장이 나는 바람에 학교에 지각한 경우를 생각해 보자. 이런 경우 여러분들은 “5분만 빨랐어도 지각은 안하는 건데…….”라고 생각하게 된다. 역사에 있어서 우연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개인들의 우연적 사건들을 역사에 확대해서 적용한다. 그 사례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만 낮았다면 안토니우스가 전쟁에서 패배하지 않았을 것이고 세계 역사는 달라질 수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을 비판하는 입장도 존재한다. 에드워드 카는 이러한 입장을 통렬하게 비판하며 무엇보다도 개인들의 사소한 일들은 역사가에 의해 선택되지 않기 때문에 역사가 될 수 없고, 역사로서 기록되는 사건들은 분명히 우연적 사건들도 존재하지만 커다란 틀 속에서 하나의 흐름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즉 역사가는 모든 과거 사실의 원인들에 대해 상호 관계를 설정하고, 어떤 사건의 인과 관계를 결정하며, 특정한 그 사건에 통일성을 부여한다. 하지만 역사가도 사람이기 때문에 그러한 해석이나 평가의 기준은 절대적인 객관성을 가질 수만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가가 정한 기준이 보편성을 끌어 낼 수 있다면 그것은 매우 합리적인 것이 될 수 있다. 이것으로 볼 때 역사는 결코 우연적인 것이 될 수는 없으며, 또한 역사를 관통하는 하나의 법칙으로서 역사가 결정된다는 결정론적 입장도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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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인비의 ‘역사의 연구’
“창조적 인물이 나타날 때에는 다행히 뜻을 같이하는 동지를 몇 사람은 얻을 수 있다 하더라도 언제나 그는 타성적이고 비창조적인 대중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모든 사회적 창조의 행위는 창조적 인물 개개인의 노력이거나 아무리 많아도 창조적 소수의 노력이다. 그러므로 잇따른 전진이 있을 때마다, 그 사회 구성원의 절대 다수는 뒤떨어지게 된다. 오늘날 세계에 현존하고 있는 위대한 종교들, 즉 크리스트 교, 이슬람 교, 힌두 교를 보면, 우리는 이름만 신자인 대다수의 사람이 입술로만 고백하는 신조가 아무리 고매하다 할지라도 종교에 관한 한 순진한 이교 정신과 별로 멀지 않은 정신적 분위기 속에 아직도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현대 물질문명의 업적도 마찬가지이다. 서구 사회의 과학 지식과 그것을 응용하는 기술은 위험할 만큼 밀교적(密敎的)이다. 민주주의와 산업주의라는 새로운 사회의 위대한 흐름은 극소수의 창조적 소수가 일으킨 것이고, 인류의 대다수는 아직도 이 거대한 새로운 흐름이 나타나기 이전과 본질적으로 동일한 지적 중간점, 도덕적 수준에 머물러 있다. 사실 ‘땅의 소금’을 자처하는 서구 세계가 왜 오늘날 그 맛을 잃어버리려는 위험에 처하고 있느냐 하는 주요한 이유는 서구 사회를 구성하는 대다수의 인간들은 아직도 소금의 역할을 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토인비(Arnold Toynbee)는 우선 민족이나 국가가 아닌 문명을 역사 연구의 주요 단위로 설정한다. 이 때 문명은 계속 진보하는 것이 아니라 흥망성쇠의 과정을 겪는다. 토인비는 ‘문명의 순환적 반복’을 ‘도전과 응전’이라는 틀로 개념화한다. ‘도전과 응전’이라는 틀이야말로 ‘역사의 연구’에서 제시되는 핵심 개념이다. 토인비는 바로 ‘도전과 응전’이란 틀에 의해 문명의 발생과 몰락을 설명한다. 그는 문명이 특별히 좋은 조건으로부터 저절로 발생한다는 관점을 비판한다. 문명은 자연 환경이나 앞선 문명의 해체에서 오는 자연적, 사회적 도전에 대해 응전함으로써 발생하고 성장한다. 그런데 이 때 응전의 주체로 ‘창조적 소수’가 설정된다. 토인비는 창조적 소수와 비창조적 다수를 구분한다. 문명이 한참 성장할 때에는 비창조적 다수가 창조적 소수를 기꺼이 따르고 모방함으로써 일체감이 형성되어 문명은 통일성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창조적 소수의 창조성이 약화되고 이에 따라 지도력이 결핍되어 사회의 통일성이 깨어지면, 다수와 소수의 조화의 상실은 곧 문명의 좌절로 이어진다. 따라서 새로운 도전에 응전할 수 있는 새로운 창조적 소수가 끊임없이 등장할 때에만 문명은 유지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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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케(Ranke, Leopold von, 1795 ~ 1886)
독일의 역사가. 라이프치히 대학을 졸업하고 베를린 대학 교수를 지냈다. 사료의 엄밀한 비판과 객관적 역사 서술에 힘써 19세기 독일 사학의 기초를 세웠다. 그는 역사학을 현실의 철학 및 정치에서 해방시켜 역사학 독자의 연구 시야를 개척하였다는 공적으로 ‘근대 역사학의 아버지’로 일컬어지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세계사』, 『프로이센사』 등이 있다.



크로체(Croce, Benedetto, 1866 ~ 1952)
이탈리아의 역사학자이자 철학자. 나폴리 대학 교수를 지냈으며, 1921년에는 이탈리아의 교육부 장관으로 있었으나, 파시즘의 등장에 대항하여 스스로 장관직을 사임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인 1945년에 다시 장관이 되었으며, 뒤에는 이탈리아 자유당의 당수로도 활동 하였다. 크로체는 헤겔과 마찬가지로 정신의 자기 실현으로 세계사를 이해해 ‘신헤겔주의’로도 불린다.



카(Carr, Edward Hallett, 1892 ~ 1982)
영국의 정치학자, 역사가. 케임브리지 대학을 졸업하고 외무성에서 잠시 일한 뒤 웨일스 대학 국제 정치학 교수를 지냈으며,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정보성 외교부장과 런던 타임스 논설 위원 등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에 『새로운 사회』, 『역사란 무엇인가』, 『볼셰비키 혁명』 등이 있다.



역사관이란?
역사에 대한 견해나 역사를 생각하는 방식을 나타내는 말에는 역사관, 역사 의식, 역사적 사고, 역사를 보는 눈 등의 용어가 쓰이고 있다. 그러나 이들 용어의 기반이 되고 있는 것은 역사관(歷史觀) 또는 사관이라 할 수 있다. 개인에 따라 다른 인생에 대한 관점을 인생관(人生觀)이라 하듯이 개인의 역사에 대한 서로 다른 관점을 역사관이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학문과 교육의 세계에서 말하는 역사관은 이념 체계 혹은 주의를 배경으로 하는 특정한 견해를 지칭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과거, 유럽에서 보이는 역사관으로는 그리스에 기초한 운명론적 순환 사관, 크리스트교 사관, 인간 중심의 진보 사관, 그리고 토인비의 문명 사관 등을 들 수 있고 우리의 역사 인식 발전 과정에서 보이는 역사관으로는 왕조 사관, 민족 사관, 유물 사관, 실증주의 사관, 민중 사관 등을 들 수 있다.


 
  ◎ 생각 정리하기
 
 
  [01] ‘역사’에 대해서는 다양한 관점이 존재한다. <보기>에서 제시된 세 가지 견해의 차이점에 대해 서술하시오.
 
  [보 기]
  (가) 역사가는 자기 자신을 숨기고 과거가 본래 어떠하였는가를 밝히는 것을 그의 지상 과제로 삼아야 하고, 이 때 오직 역사적 사실로 하여금 이야기하게 해야 한다.
  (나) 역사가가 연구하는 과거는 죽은 과거가 아니라 어느 의미에서 아직도 현재 속에 살아있는 과거이다. 역사는 역사가가 자신이 연구하고 있는 역사적 사실들을 그의 마음속에 재현하는 것이다.
  (다) 역사가와 사실은 서로를 필요로 한다. 사실을 갖지 못한 역사가는 뿌리 없는 존재로 열매를 맺지 못하며, 역사가가 없는 사실이란 생명이 없는 무의미한 존재이다.
 
  [예시답안]
  (가)의 입장은 랑케에 의해 주장된 실증주의 사관으로서 사실로서의 역사를 강조하여, 역사가는 자신의 견해를 숨기고 최대한 객관적으로 역사를 서술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비해 (나)의 입장은 콜링우드, 크로체 등에 의해 주장된 주관주의로서 객관적인 사실이란 없으며, 역사란 역사가의 주관에 의해 해석되고 평가되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역사가의 역할과 주관성을 강조하였다. (다)는 에드워드 카에 의해 주장된 것으로서 실증주의와 주관주의를 절충하여 사료를 통하여 과거 사실을 객관적으로 밝힘과 동시에 이를 바탕으로 한 주관적 해석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문제해결 TIP
역사를 보는 관점
  ● 실증주의 : 사실로서의 역사를 강조, 객관적 의미의 역사
  ● 주관주의 : 기록으로서의 역사를 강조, 주관적 의미의 역사
  ● 에드워드 카의 절충 : 앞의 두 가지 입장을 모두 수용하며, 역사의 객관적 측면과 주관적 측면을 절충하여 역사가와 역사적 사실은 뗄 수 없는 관계라 주장함.

 
  [02] 역사를 학습할 때 가져야 할 바람직한 태도에 대해 서술하시오.
 
  [예시답안]
  첫째, 역사를 연구하는 역사학자는 자료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둘째, 역사관이 뚜렷해야 한다. 자기 나름대로의 사관을 지니지 못한 채 역사를 연구한다면, 그 결과물은 실로 꿰지 않은 구슬처럼 단순한 사실의 나열에 불과할 것이다. 셋째, 객관적 태도를 지녀야 한다. 객관적 태도 없이 과도한 주관성만 내세운다면, 그것은 역사를 왜곡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만다.
 
문제해결 TIP
역사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한 바른 자세는?
  한 나라의 역사는 그 민족만의 것이 아니라 주변 나라나 민족의 역사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발전해 왔음에 주목하여, 우리 역사의 특수성과 보편성을 제대로 인식하여야 한다.

 
  [03]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보 기]
  역사가는 사료에 의하여 사실을 인식하고 판단한다. 따라서 사료의 탐사, 수집, 정리, 해석 등 일련의 과정은 역사 연구의 출발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사료에 의한 역사 연구 방법론은 19세기 독일의 근대 사학에서 학문적으로 체계화되어 역사학을 실증적 기초 위에 선 과학으로서 발달시키는 데 크게 공헌하였다.
  역사 연구 방법론은 일반적으로 사료학과 사료 비판으로 나눌 수 있다. 사료학은 사료의 수집과 정리 및 분류를 그 내용으로 하며, 사료 비판은 사료의 진위를 구별하는 것을 말한다. 사료 비판은 외적 비판과 내적 비판으로 나눌 수 있다. 외적 비판이란 사료 그 자체에 관하여 그것의 진위 여부, 원사료에 대한 타인의 첨가 여부, 필사(筆寫)인 경우 필사 과정에서의 오류, 혹은 사료가 만들어졌을 단계에서 작자·장소·연대 및 전거(典據) 등에 관하여 사료의 가치를 음미하는 것이다.
  내적 비판이란 사료의 내용이 신뢰할 만한 것인가를 분석하고, 사료의 성격을 밝히는 작업으로서, 이는 사료로서 전하는 것이 반드시 역사적 진실이라고는 할 수 없기 때문에 연구자가 행하는 작업이다. 즉, 내적 비판은 사료의 기술(記述)을 분석하고 기술에 관하여 신뢰할 수 있는 이유의 유무를 조사하는 것이다.
 
  (1) 사료란 무엇이며, 역사 학습에 있어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가?
  [예시답안]
  사료란 역사를 구성하는 여러 재료들을 말한다. 사료의 종류로는 문헌 기록과 금석문, 각종 유물과 유적 등이 있으며, 구전되어온 전설, 가요, 이야기 등도 포함된다.
  사료는 역사 학습에 있어 가장 기초가 되는 것으로 이에 대한 객관적 수집과 분석이 있어야 정확한 역사 서술이 가능하다.
 
  (2) 밑줄 친 ‘사료 비판’, ‘외적 비판’, ‘내적 비판’에 대해 설명하시오.
  [예시답안]
  사료 비판이란 사료의 신뢰성을 평가하는 것으로서, 크게 외적 비판과 내적 비판으로 나뉜다. 외적 비판이란 사료가 조작되거나 위조 또는 변조된 것이 아닌지 진실성을 비판하고 해당 사료의 제작 연대와 장소, 작자에 대한 내력을 비판하며, 해당 사료가 원사료인지 2차 사료인지를 판단하는 본원성 비판을 통해 사료의 가치를 판단하는 것이다. 내적 비판은 외적 비판을 거친 사료의 내용에 대해 신뢰성을 결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문제해결 TIP
사료(史料)의 사전적 의미
  역사의 연구와 편찬에 필요한 문헌이나 유물 따위의 자료. 사재(史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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