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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년 7월호

「2007 만점논술」테마로 읽는 고전 / 역사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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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드워드 카 (Edward Hallett Carr, 1892 ~ 1982)
 
  E. H. Carr는 영국 런던에서 태어나 케임브리지 대학교를 졸업하였다. 1916년 외무성에서 일하다가 웨일스 대학교 국제 정치학 교수(1936~1946)를 지냈으나,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정보성 외교부장(1939~1940), 『타임』 논설 위원(1941~1945)을 역임하였다.
 
  주요 저서로는 『새로운 사회(The New Society)』(1951)이다. 여기서 그는 소비에트형과는 다른, 자유와 평등을 기조로 하는 사회주의의 실현을 시사하는 한편, 아시아의 민주주의 운동을 유럽 인들도 이해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이 밖에도 『역사란 무엇인가?(What is History?)』(1961), 『카를 마르크스(Karl Marx)』(1934), 『위기(危機)의 20년(Twenty Year Crisis)』(1939), 『서구 세계에서의 소비에트의 충격(The Soviet Impact on the Western World)』(1947), 『볼셰비키 혁명(The Bolshevik Revolution)』(1958) 등 많은 저작이 있다.
 
 
  ▣ 책소개
 
  역사란 무엇인가? (What is History?)
 
  『역사란 무엇인가?』를 통해 E. H. Carr는 역사란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라는 간결한 표현으로서 역사의 의미를 밝히고 있다. 그런데 학생들이 E. H. Carr를 생각하면서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국사 첫 시간에 배운 사관(史觀)의 문제일 것이다. 즉 랑케의 사실을 강조하는 역사관과 E. H. Carr의 기술(記述)로서의 역사관이 그것이다. 랑케의 경우 역사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반면에 E. H. Carr는 역사가의 관점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E. H. Carr는 단순히 역사가의 관점만을 중요하게 바라보고 있지는 않다. 흔히 사람들은 E. H. Carr의 입장을 설명할 때, 그의 유명한 어구를 인용하곤 한다. 즉 “역사는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이다.”가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그는 역사를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부단한 상호 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이다.”라고 분명하게 표현하고 있다. 역사는 단순히 역사가의 관점(현재)으로 역사(과거)를 바라보는 것뿐만 아니라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부단한 상호 작용의 과정임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그는 역사가의 주관적인 관점만을 강조하다 보면 회의주의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을 분명하게 지적하고 있다. 하나의 역사적 사건을 역사가에 따라서 모두 다르게 기술한다면,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왜곡된 역사인지 알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E. H. Carr는 역사가의 관점뿐만 아니라 역사적 사실의 중요성도 분명하게 지적하고 있다.
 
 
  ▣ 원문읽기
 
  1830년대 랑케는 역사가가 할 일에 대해 ‘도덕주의적 역사에 대해서 정당한 항의를 시도하고, 오직 틀림없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것뿐이다.’라고 했지만, 이(그다지 심오하다고 할 수 없는) 경구(警句)는 놀라운 성공을 거둔 바 있다. 과학으로서의 역사를 역설하는 실증주의자들은 그 강력한 영향력을 과시하여 이 사실 숭배를 조장했다. ‘우선 사실을 확인하라, 그런 다음 사실에서 결론을 추출해야 한다.’고 실증주의자들은 말했다.
 
  그러나 우리의 논의는 과거에 관한 모든 사실이 역사적인 사실인 것도 아니고 역사가에 의해서 역사적 사실로서 취급되고 있는 것도 아니라는 문제에 당면하게 된다. 과연 역사적 사실이란 무엇인가? 흔히 사실은 그 자체로서 말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이다. 사실은 역사가가 사실에 입김을 불어넣었을 경우에만 말하는 것이다. 역사가는 필연적으로 선택을 한다. 역사가의 해석에서 떨어져 나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역사적 사실이라는 단단한 핵심을 믿는다는 것은 앞뒤가 전도된 오류다.
 
  하지만 역사 서술에 관한 역사가의 역할을 강조할 경우, 그것을 논리적 귀결까지 끌고 가면 결국 객관적 역사를 배제하게 되고 역사는 역사가가 만들어 내는 것이 되어 버린다. 이렇게 되면 결과적으로 완전한 회의주의에 빠지게 되어 프루드(J. A. Froud - 영국의 역사가, 1814 ~ 1894)의 말처럼 ‘역사란 어린아이의 글자 맞히기와 같아서 무엇이나 좋아하는 말을 이어 가면 된다.’는 식이 되어 버릴 것이다.
 
  사실을 존중해야 하는 역사가의 의무는 그 사실이 정확하다는 것을 확인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알려져 있는 것이거나 알려질 수 있는 것이거나, 자기가 연구하고 있는 주제나 기도하고 있는 해석과 어떤 의미에서나 관련된 사실을 그려 내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역사가는 사실의 천한 노예도 아니고, 군림하는 주인도 아니다. 역사가와 사실의 관계는 주고받는 평등한 관계이다. 역사가는 자신의 해석에 따라서 자신의 사실을 만들어 내고, 자신의 사실에 따라서 자신의 해석을 만들어 내는, 연속적인 과정에 속해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한쪽을 다른 쪽 위에 올려놓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역사가는 사실의 일시적 선택과 해석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일이 진척됨에 따라 해석과 사실의 선택, 정리도 그 상호 작용을 통하여 거의 무의식적이고 미묘한 변화를 겪게 된다.
 
  역사가는 현재의 일부이고 사실은 과거의 속하므로 이 상호 작용은 현재와 과거의 상호 관계를 포함하고 있다. 역사가와 역사상의 사실은 서로가 필요한 것이다. 사실을 소유하지 못한 역사가는 뿌리도 없고 열매도 맺지 않는다. 역사가가 없는 사실은 생명도 없고 의미도 없다.
 
  여기서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나의 최초의 대답을 하기로 한다.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부단한 상호 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중략)
 
  역사에 대한 상식적인 견해로 본다면 역사란 개인에 의해서 기술된 개인에 대한 기록이다. 그러나 이것은 지나치게 단순하고 불충분한 견해로 생각되므로 좀 더 자세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역사가의 지식은 개인적인 소유물이 아니라, 여러 세대에 걸친 사람들이 여러 나라에서 그 축적에 참가해 온 것이다. 그리고 역사가, 즉 그 행위를 연구하는 당사자들만 하더라도 진공 속에서 행위하는 고립된 개인이 아니라 과거 어느 사회의 문맥 속에서 또 그것에 충동을 받으면서 행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자리에서 내가 목적하는 바는 두 가지 중요한 진리, 즉 첫째로, 역사가가 연구하는 입장을 먼저 파악하지 않으면 그 역사가의 연구를 제대로 이해할 수도 평가할 수도 없다는 것, 둘째로 이러한 입장은 그 자체가 사회적·역사적 배경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을 밝히는 것뿐이다. 역사가는 역사를 쓰기 시작하기 전에 이미 역사의 산물인 것이다. 역사가들의 사상도 시간적·공간적 환경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역사에서의 위인의 역할은 무엇인가? 위인도 한 개인이기는 하지만, 탁월한 개인이므로 동시에 탁월한 중요성을 가진 사회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위인이란 역사적 과정의 산물이면서 대행자이고 동시에 세계의 양상과 인간의 사상을 바꾸는 사회적인 여러 힘의 대표자이며 창조자인, 뛰어난 개인임을 인정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따라서 역사란 하나의 사회 과정이며, 개인은 사회적 존재로서 이 과정에 참여하는 것이다. 사회와 개인 사이의 상상적인 대립은 우리의 생각을 혼란시키기 위한 함정일 뿐이다.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상호 작용이라는 과정은, 추상적이고 고립된 개인과 개인의 대화가 아니라 오늘의 사회와 어제의 사회 사이의 대화인 것이다.
 
  역사의 연구는 원인의 연구다. 여기서 나는 별로 마음이 내키지 않지만 방향을 바꾸어 우리의 앞길에 가로놓여진 매력적인 두 개의 함정에 대해서 이야기해야만 되겠다. 그 하나에는 ‘역사에 있어서의 필연’이라 할 수 있고, 다른 하나는 ‘역사에 있어서의 우연’의 문제이다. 먼저 역사에 있어서의 필연을 주장하는 대표적인 학자로는 헤겔과 마르크스를 들 수 있는데, 그들의 주장은 결정론적 역사 철학이라 할 수 있다. 결정론이란 모든 사건에는 하나 또는 몇 가지 원인이 있으며, 그 하나 또는 몇 가지 원인 가운데 어떤 것에 변화가 없는 한 그 사건에 변화가 있을 수 없다는 신념이다. 결정론은 역사의 문제라기보다는 오히려 모든 인간의 행위 문제이다. 인간의 행위가 원인이 없고 따라서 행위가 결정되어 있지 않은 그런 인간은, 지난번 강연 때 언급했듯이 사회의 외부에 있는 개인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추상적인 관념일 뿐이다. 인간의 행위에 대해 일상생활에서는 그것을 결정론이냐 도덕적 책임이냐 하는 큰 문제로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자유 의지와 결정론에 관한 논리적 딜레마는 실제의 생활에서는 발생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의 어떤 행위는 자유지만, 어떤 행위는 결정되어 있다는 뜻은 아니다. 모든 인간의 행동은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서 자유롭기도 하고 결정되어 있기도 한 것이다.
 
  자, 그러면 역사가의 경우를 생각해 보기로 하자. 역사가도 역시 보통 사람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행위에는 원칙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원인이 있다고 믿고 있다. 역사가는 자유 의지를 거부하지 않는다. 역사가는 필연성이라는 문제로 인해 고민하지도 않는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역사가도 때로는 과장된 표현을 사용하여 어떤 사건을 ‘필연적’이라고 말할 때도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 사건을 기대하게 하는 여러 요소의 결합 관계가 압도적으로 강했다는 것을 뜻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
 
  또다른 함정은 역사란 일반적으로 우연의 연속이며 우연의 일치로 결정된 아주 변덕스러운 원인에만 의거한다고밖에 볼 수 없는 일련의 사건이라는 이론이다. 역사에 우연은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다. 또한 역사에 있어서의 우연이 단지 우리의 무지의 증거, 즉 우연이란 우리가 알 수 없는 어떤 것의 또다른 이름일 뿐이라는 견해 또한 타당하지 않다.
 
  어떤 일을 불운이라고 설명하는 것은 그 원인을 규명하는 귀찮은 의무에서 벗어나려고 할 때 곧잘 이용되는 방법이다. 어떤 사람이 나에게 역사는 우연의 연쇄라고 말한다면, 나는 그를 지적으로 게으르거나 지적 생명력이 나약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진지한 역사가에게는 평범한 이야기라서 새삼스레 말할 것도 없지만, 지금까지 우연적인 것으로 다루어 온 어떤 일이 결코 우연이 아니며, 합리적으로 설명될 수 있고, 보다 넓은 사건의 범주에 넣어서 그 의미를 분명하게 할 수 있는 경우가 있는 법이다. 그러나 이것도 우리의 문제에 충분한 대답을 주지는 않는다. 역사에 있어서의 우연의 문제 해결은 역사가의 역할에서 찾을 수 있다.
 
  원인이 역사적 과정에 대한 역사가의 해석을 결정함과 동시에 역사가의 해석이 원인의 선택과 정리를 결정한다. 여러 원인 사이의 상하 관계, 그 중 하나나 한 쌍의 원인이 지닌 상대적 중요성이야말로 역사가의 해석의 본질이다. 역사적 의미라는 관점에서 본 선택의 과정이다. 역사에서도 우리는 합리적 원인과 우연적 원인을 구별한다. 우연적 원인은 일반화될 수 없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특수한 것이므로 어떤 교훈도 주지 않고 어떤 결론도 낳지 않는다.
 
 
  ▣ 쟁점이것
 
  E. H. Carr의 『역사란 무엇인가』 중 1장, 4장을 요약 발췌하였다. 먼저 1장의 내용은 사관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 부분은 고등 학교 1학년 국사 교과서 첫머리를 장식하는 사실로서의 역사(랑케)와 기술로서의 역사(Carr)에 대한 부분이다. 이 부분에서 Carr는 랑케의 사실을 중시하는 사관을 배격하고 역사가의 관점을 중시하는 주장을 펼친다. 물론 이 때 역사가의 역할만을 강조하는 것은 아니고 사실과 끊임없이 상호 작용하는 역사가의 모습을 제시하고 있다.
 
  4장의 내용은 역사에서의 인과 관계에 대한 것이다. 역사는 필연적 과정인지 아니면 우연의 연속인지에 대한 Carr의 입장이 담겨 있다. 결론적으로 그는 필연론과 우연론을 모두 배격한다. 즉 역사에 하나의 법칙이 존재해서 역사가 그에 따라 결정된다는 결정론적 시각과, 역사는 하나의 운동 법칙이 있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우연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라는 우연론을 모두 비판하고 있다. Carr에 의하면 역사에는 수많은 우연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들 우연들은 하나의 커다란 인과 관계로 설명할 수 있고 그러한 작업을 담당하는 것이 바로 역사가라는 것이다.
 
지식창고

랑케 (Ranke, Leopold von, 1795 ~ 1886)
19세기 독일의 저명한 역사가. 랑케는 역사가는 본질을 추출하면서도 전체를 염두에 두고서, 가능한 한 객관적으로 ‘있는 그대로’를 기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랑케의 주장은 E. H. Carr의 주장과 배치된다. 하지만 랑케도 모든 역사가들이 시간·장소의 제약을 받는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었다. 따라서 그는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자신을 국가 자체와 동일시함으로써 역사 서술에 있어서 최대한의 객관성을 얻으려 애썼다.



실증주의 (實證主義, positivism)
실증주의자들의 기본 주장은 모든 지식은 실증적 경험 자료를 바탕으로 얻어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에게는 관찰과 경험의 결과에 따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즉 역사 기술에 있어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객관적 사실의 확인이다. 따라서 랑케의 주장은 사료를 통한 사실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때문에 실증주의의 전통을 따른다고 할 수 있다.



자유주의 (自由主義, liberalism)
자유주의는 19세기에 이르러 서구의 지배적인 문화가 되었다. 자유주의 문화는 르네상스를 시작으로 종교 개혁을 거치면서 개인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시대적 상황을 통해 형성되게 된다. 따라서 자유주의에서는 무엇보다 개인의 중요성이 강조되는데, 즉 개인이 사고와 행위의 주체가 되면 개인의 행복이 모든 도덕 판단과 가치 판단의 궁극적 기준이 되는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자유주의가 개인의 중요성을 강조한다고 해서 개인주의나 이기주의 등과 동일시되어서는 안 된다. 자유주의는 개인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때문에 동시에 인본주의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회의주의 (懷疑主義)
회의주의자들은 모든 주장에 대해 의심을 품는 태도를 견지한다. 여기에서 Carr가 회의주의에 빠질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는 것은, 역사 서술에 있어서 역사가의 관점만을 중요하게 여기다 보면 역사적 사실에 대한 객관성을 잃게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즉 실재하는 역사가 역사가의 관점에 따라 모두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객관적인 역사는 존재할 수 없게 되며 역사는 역사가들만의 역사가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 생각 정리하기
 
 
  [01] 박정희 대통령이 없었다면 우리나라는 경제 발전에 실패했을까요? 여러분의 생각을 서술해 보시오.
 
  [예시답안]
  E. H. Carr는 위인은 탁월한 개인이자 동시에 탁월한 중요성을 가진 사회 현상이라고 보고 있다. 이 말의 의미는 박정희라는 개인에 대해서도 중요한 평가를 할 수 있지만, 동시에 1960 ~ 70년대 한국 사회에 대해서도 중요한 평가를 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쉽게 설명해서 박정희는 1960 ~ 70년대의 인물이며 당시 시대 상황 속에서 살아갔던 인물이라는 것이다. 누군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오늘날 박정희와 같은 사람이 있다면 오늘날의 혼란을 수습할 것이라는 등 아니면 독재를 펼칠 것이라는 등의 이야기는, Carr의 견해에 의하면 허황된 소리이고 전혀 의미가 없는 소리다.
  산업화 초기 단계인 1960년대, 우리나라는 수출 주도형 산업화 전략을 채택하고 국가 주도의 경제 개발을 진행해 나갔다. 이 시기 대통령이었던 박정희는 국가 주도의 여러 정책들을 추진한 장본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산업화나 경제 발전을 모두 박정희 개인의 업적으로 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수출 주도 산업화를 위해 저임금으로 일했던 많은 노동자들, 저곡가 정책으로 피폐화된 농촌의 농민들 모두 경제 발전의 기여자라 하겠다. 또한 박정희라는 개인이 아니었더라도 내수 시장이 부족한 한국의 상황에서 수출 주도, 국가 주도라는 경제 개발, 산업화 방식은 추진되었을 것이다.
 
문제해결 TIP
역사에서 위인의 역할을 생각해 보자.

 
  [02] 여러분들 대부분은 국사 시간 중에 조선 말기에 대해 공부하면서 다들 “흥선(興宣) 대원군이 쇄국 정책을 펼치지 않았다면 우리나라가 일본에게 식민지가 되는 일은 없었을 텐데…….”라고 한 번쯤 생각해 봤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E. H. Carr의 입장에서는 역사가의 생각이 될 수 없다. E. H. Carr의 입장에서 이러한 생각을 비판해 보시오.
 
  [예시답안]
  E. H. Carr에 의하면 흥선 대원군의 선택은 당시의 시대 상황에서는 그러한 선택(쇄국 정책)을 할 수 있는 개연성이 가장 높았다. 물론 역사에서 우연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조선 말기의 혼란한 시대 상황 속에서 흥선 대원군의 선택은 어쩌면 ‘필연적’- 개화보다는 통상 수교를 거부하는 정책을 채택할 가능성이 높은 - 일 수밖에 없었다.
  E. H. Carr는 역사를 ‘과거와 현재와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정의한다. 과거 사실에 대해서는 실증적 방법으로 객관적 자료를 수집하고, 이를 역사가의 주관적 입장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실증적으로 파악해야 할 과거의 사실들에 대해 가정을 한다는 것은 역사가의 생각이 될 수 없을 것이다.
 
문제해결 TIP
역사는 우연으로 이루어진 것인가 아니면 필연적인 법칙에 의해 결정되는 것일까? 2번 질문은 역사가 우연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 비판하라는 질문이다. 흥선 대원군의 선택에 대한 고민의 경우, 학생들은 재미난 상상으로 치부해 버리면 그만이지만 역사가로서는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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