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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5년 9월호

「논술만점 가이드」⑦ 실제 논술고사 예문과 평가 | 논술에서 범하기 쉬운 오류 사례

논술에 대한 이해와 실전 연습이 뒤따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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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진한 종로학원 국어과 강사
1967년 강원도 정선 출생. 서울大 국어교육과 졸업. 同 대학원 국어교육과 박사과정 수료. 현 서울女大 강사.

[진행·정리]
李相欣 월간조선 기자〈hanal@chosun.com〉
李相姬 월간조선 조사요원〈gwiwon27@chosun.com〉
  논술에 익숙하지 않은 학생들은 갖가지 유형의 잘못을 보여 주는데 그 주된 이유는 논술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부족하고, 실전 연습이 뒤따르지 않은 데서 비롯된다. 이에 학생들이 작성한 답안들을 대상으로 그들이 범하고 있는 잘못된 논술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아래 예시문 중 띄어쓰기가 잘못된 것은 원문 그대로를 옮겨오는 과정에서 생겨난 것임을 밝혀 둔다.)
 
 
  1. 평범형
 
  자신을 돌아보는 사람은 성공의 가능성이 그만큼 크다고 할 수 있다. 매일 그냥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자기 성찰을 늘 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에는 분명 차이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자신을 늘 되짚어보아야 한다. 자신을 돌아보는 방법으로는 일기를 쓰는 것, 명상을 하는 것, 계획표를 살펴보는 것을 들 수 있다. 일기를 씀으로써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것은 미래를 생각하기에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늘 돌아보는 사람이 되어서 성공의 길에 들어서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언뜻 보아서는 무난하게 보이는 단락이다. 그러나 평가자는 이 단락을 평범 그 자체라고 생각한다. 자기 성찰의 가치를 밝히고 있는 이 단락의 내용은 누가 쓰더라도 이 정도의 생각을 펼칠 수는 있을 것이다. 평범한 글을 쓰려고 논술문을 쓰는 것이 아니다. 논술문은 나만의 창의적인 사고를 보여 주는 과정으로 생각해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이 단락은 창의성과는 거리가 먼 단락이 되고 말았다. 「무난한 글 쓰기」의 유혹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하는 수험생이 좋은 논술문을 쓸 수 있다.
 
 
  2. 감정노출형
 
  부정의한 사회에 복종하는 것이야말로 권리를 포기하는 노예의 길일 뿐이므로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 정의로운 사회를 지향하기 위해 저항해야 한다는 생각은 옳다. 사회와 국가의 진정한 발전과 안정은 정의의 토양에서만 자랄 수 있다. 주체적, 적극적 자세로 정의로운 사회에 협조하며 부정의한 사회에 항거해야 한다. 광주민주화 운동, 4·19 혁명으로 그리고 수많은 불의에 대한 저항으로 우리 사회가 진일보할 수 있었다는 것은 반론의 여지조차 없을 것이다.
 
  한 편의 웅변을 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 글이다. 자신의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고 주관적 진술을 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항거해야 한다」, 「반론의 여지조차 없을 것이다」와 같은 표현은 논술에서는 가능한 한 배제되어야 할 표현이다. 논술문은 객관적이고 타당한 근거를 토대로 진술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경우는 자신의 감정을 노출하고 있고, 그로 인해 적절한 논증에까지 이르지 못하였다. 주장만 있을 뿐 근거는 없기 때문이다.
 
 
  3. 동문서답형
 
  현재 우리 사회 주변을 둘러보면 당사자들 간의 의사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갈등을 빚고 있는 사례들을 자주 접할 수 있다. 정치적인 면을 보자면 연일 여당과 야당이 그리 생산적이지 못한, 소모적인 논쟁만을 하고 있다. 순수하게 정치적인 면에서의 그러한 논쟁은 정치의 본질상 어쩔 수 없다 쳐도, 국가의 앞날을 결정하는 중대사에서도 제대로 된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을 적이 종종 있어 국민들의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학생이 논하고자 하는 바는 「의사소통의 부재와 그로 인한 갈등」에 있다. 그 예시로 여당과 야당의 비생산적인 논쟁을 거론하고 있다. 그런데 마지막 문장의 서술부는 동문서답이라고 할 수 있다. 「국민들의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는 구절은 자연스럽지 못하다. 또한 「국가의 앞날을 결정하는 중대사에서도 제대로 된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을 적이 종종 있어」라는 부분은 의사소통의 부재와는 관계가 없는 내용이다. 논의가 이루어지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의사소통의 부재와는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글은 자신이 현재 무엇에 대해 글을 쓰고 있는지를 잊을 때 발생한다. 모든 문장은 논제를 중심으로 긴밀하게 연결되도록 하는 집중력을 길러야 이러한 오류를 막을 수 있다.
 
 
  4. 논지 누락형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처럼 학문의 시작은 자신의 무지함을 깨닫고 인정하는 데 있다. 즉 이것은 좀더 높은 학문의 단계로 갈 수 있는 초석이 된다. 「제시문 1」의 아큐처럼, 주변 사람들을 경시하고 경멸하는 오만한 태도를 고수한다면, 이는 결코 바람직한 삶이라고 할 수 없다. 바람직한 삶을 위해서는 학문을 할 때처럼, 자신의 불완전성을 자각할 필요가 있다. 즉, 개방성과 포용성을 지녀야 한다.
 
  「자신 외엔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고수한다면 공동체 속에서 원만한 관계를 형성할 수 없게 된다. 개방성을 가지고 상대방의 의견에서도 배울 점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불치하문이라는 말처럼 배울 점이 있다면, 자신보다 낮은 지위의 사람에게 기꺼이 가르침을 청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단락은 학문과 바람직한 삶의 관계를 논지로 하여 글을 전개하고 있다. 학생은 바람직한 삶을 위한 방법으로 「개방성과 포용성」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의미 있는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문제는 개방성에 대해서는 논의를 했지만 포용성에 대해서는 한 마디의 뒷받침 문장도 없다는 점이다. 실제로 많은 학생들이 이러한 실수를 범한다. 그 원인은 집중력과 욕심에서 비롯된다. 집중력을 갖지 않기 때문에 누락한 내용을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고, 욕심을 부리기 때문에 논의할 수 없는 내용까지 진술하는 것이다.
 
 
  5. 좌충우돌 논지일탈형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공식적 자리, 집회, 조회 등에서 애국가와 함께 국기에 대한 경례로 국가에 충성을 다짐해야 한다. 지금뿐만 아니라 이전에도 국가에 대한 공개적인 충성의 표현은 일종의 침범할 수 없는 신성한 행위였다. 이러한 행위는 국민의 의무이며 의심할 여지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군부의 개발 독재 시절을 거치며 국민은 이러한 행위들로 나타나는 충성을 국가의 안녕과 발전을 위해 해야만 할 태도로서 더욱 굳게 인식하였다. ① 무조건적이고 일방적인 국민의 복종으로 국가의 강력한 통치로 어느 정도 발전을 이룬 듯 하였으나 희생을 바탕으로 한 발전은 걸림돌에 부딪칠 것이었다. 민주화에 대한 열망, 개인주의의 대두, 시민의식의 성장, 즉 국가의 상대적 개념으로서 희생된 개인은 국가의 지배에 회의를 품었고 저항하였다. 국가와 개인의 바람직한 관계, 이상적인 사회의 모습은 민주화된 오늘의 과제이기도 하다.
 
  이 글의 논제는 「국가의 안정과 발전을 위해 취해야 할 개인의 바람직한 태도」이다. 그런데 학생의 글은 이러한 논지를 일탈하였다. 논제에 접근한 마지막 문장을 제외하고는 모든 문장은 논제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엉뚱한 이야기로 일관하고 있다. 「국가의 불의와 그에 대한 개인의 저항」만을 장황하게 다루다가 갑자기 논제로 들어가는 것은 학생들의 범하는 일반적인 실수이다.
 
  물론 ①에서 발전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는 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좌충우돌 논지일탈형이 발생하는 원인은 논술에서는 반드시 서론을 써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이러한 어색한 글을 낳은 것이다. 자연스럽게 글을 써 내려가는 습관을 들이기 전에 「서론-본론-결론」의 형식부터 익히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6. 부적절한 동거 유형
 
  ① 인간은 태어나자마자 가족이라는 집단을 제일 먼저 접하게 된다. 이 집단에서 새로운 구성원으로 인정받고 이후에 출생신고라는 과정을 통해 그 존재를 법적으로 인정받게 된다. 이러한 절차없이 개인은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자격을 갖추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온전한 삶을 살아갈 수 없게 된다. 이처럼 우리는 개개인이 홀로 독립적인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사회 집단 속에 포함되어 타인들과 상호 연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있다.
 
  ② 하지만 오늘날과 같이 민주주의라는 기치 아래 다수의 국민들에게 자율적 권리를 부여하고 그들의 정치적 참여를 장려하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된 지는 그다지 오래되지 않았다. 과거 군사 독재 정권을 청산하고 민주적인 국가를 이루기 위해 그동안 수많은 시민들의 희생이 이루어져 왔지만 아직까지 완성적인 민주적 국가 운영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진 못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올바른 민주 문화의 확립과 국가의 안정, 발전을 위해 노력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①과 ②는 유기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내용이 아니다. ①은 일반적인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논하고 있고, ②는 현재의 민주화된 사회에서의 개인과 국가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한 단락 안에 있는 ①과 ②는 부적절한 동거를 이루고 있다고 지적할 수 있다. 이 경우 역시 논술문은 「서론-본론-결론」으로 구성되고, 서론은 무언가 특별한 이야기를 통해 서술해야 한다는 인식이 굳어져 있기 때문에 발생한 잘못이다.
 
 
  7. 억지로 꿰 맞추기 유형
 
  ① 권력·완력·금력에는 모두 「힘 력(力)」자가 붙어 있다. 즉 권력·완력·금력은 사람이나 사물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의(正義)라는 말에는 힘 력(力)자가 붙지 않는다. 정의력이라는 말을 들어본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진리의 힘, 또는 정의의 힘이라는 표현을 쓰기는 하지만 그것은 진리나 정의, 그 자체에 힘이 있다는 말은 아니다. ②그런데 정의는 사회 정의를 말한다. 가령 로빈슨 크루소에게 정의는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에게 진리는 여전히 의미를 가지나 정의는 그가 무인도에 표류한 순간부터 그 의미를 상실하고 만다. 따라서 우리들에게 제기되는 정의의 문제는 모두 사회관계에서 발생하는 사회정의의 문제인 것이다. 한 사회의 안정과 발전의 밑바탕에는 사회정의가 깔려 있어야 함은 분명하다.
 
  이 단락에서 ①은 자연스러운 흐름을 보여 줄 뿐만 아니라 나름대로 참신한 내용 전개를 보여 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정의」의 속성을 부정적인 힘과 대비하면서 부각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②는 ①과 관련이 없는 내용 전개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애초부터 학생은 ②를 쓰고 싶었던 것이다. 이를 위해 ①을 서두에 넣은 것인데 결과적으로 꿰 맞추기 형식이 되고 말았다. 단락에 대한 좀더 면밀한 검토를 한 후 서술에 임해야 한다는 점을 잊지 않아야 범하지 않을 실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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