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일어나야 세계가 움직인다. 세상이 바뀌고 있으니 새 주체세력이 나와야 한다. 한나라당은 보수로 위장한 親左정당이니 희망이 없다』
● 일시: 3월8일 오후 2~5시
● 장소: 코리아나 호텔 9층
● 사 회 : 趙甲濟 月刊朝鮮 대표
● 토론자:
李東馥 북한민주화포럼 대표(前 남북고위급 회담 남측 대변인)
李暉潤 국가정보원 對北문제자문위원
金尙哲 미래한국신문 회장
韓基弘 북한민주화네트워크 대표
金聖玟 자유북한방송 대표(前 북한군 대위)
탈북자 前 북한노동당 통일전선부 근무
정리: 李根美 月刊朝鮮 객원기자〈www.rootlee.com〉
● 일시: 3월8일 오후 2~5시
● 장소: 코리아나 호텔 9층
● 사 회 : 趙甲濟 月刊朝鮮 대표
● 토론자:
李東馥 북한민주화포럼 대표(前 남북고위급 회담 남측 대변인)
李暉潤 국가정보원 對北문제자문위원
金尙哲 미래한국신문 회장
韓基弘 북한민주화네트워크 대표
金聖玟 자유북한방송 대표(前 북한군 대위)
탈북자 前 북한노동당 통일전선부 근무
정리: 李根美 月刊朝鮮 객원기자〈www.rootlee.com〉
역사를 움직이는 것은 여론입니다. 일본 납북자 문제를 보면서 여론이 정부에 영향을 주고 정부의 정책을 바꾼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프론티어 타임즈」라는 인터넷 신문 여론조사에서 작년 12월에 「미국과 북한이 싸울 때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을 했더니 20%의 응답자가 「한국은 북한과 손잡아 미국과 대항해야 한다」고 했고, 49%는 「韓美동맹에 따라 미국과 손잡아야 한다」고 대답했습니다. 북한과 손잡아야 한다는 20%의 사람들은 국가와 헌법의 敵입니다. 우리는 「敵과의 동침」을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최근 金正日이 핵보유 선언을 한 뒤 盧武鉉 정부가 對北 자세를 조금 변화시켜서 미국 쪽과 일치시키려고 하는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앞으로 「50만t의 비료를 북한에 보낼 것인가, 아니면 줄여서 보낼 것인가」 하는 구체적인 정책으로 나타날지는 지켜봐야겠죠. 「유엔의 북한인권결의안이 세 번째 상정됐을 때 우리 정부가 과거처럼 기권할 것인가. 정책으로 어떻게 나타날 것인가」 하는 것도 지켜볼 상황입니다.
李東馥 核문제 때문에 국제적으로 새로운 긴장이 조성되고 그 과정에서 북한정권의 안정성 문제가 새삼 여러 군데서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북한의 金正日 정권이 과연 核을 포기할 수 있느냐, 金正日이 核을 포기하지 않으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하는 게 관심사죠.
2003년 말 조선일보와 미국의 某기관이 워싱턴에서 큰 세미나를 열었어요. 그 자리에서 몇 사람이 북한정권의 붕괴 가능성을 거론했습니다. 공개적인 모임에서 처음 언급된 겁니다.
최근 허드슨 연구소의 마이클 호로위츠 선임연구원이나 美 기업연구소(AEI)의 니콜라스 에버슈타트 연구원 등이 『2005년 말에 金正日 정권이 무너진다』고 연설하고 국회 청문회에서도 증언했습니다.
클린턴 정권과 가까웠던 학자들은 북한의 核이 흥정용이라고 했습니다. 북한은 케리가 당선되도록 영향력을 행사했는데, 부시가 再選됐습니다. 盧武鉉 정권과 미국의 여러 사람이 북한에 대해 부시가 험한 소리를 못 하게 견제하였습니다. 그 견제가 주효해서 부시 대통령의 年頭敎書(연두교서)에서 북한을 자극하는 표현이 빠졌습니다. 그러자 곧 6者회담이 열릴 거라며 김칫국들을 마셨죠. 그러나 북한은 核문제로 미국과 힘겨루기를 시작했습니다. 金正日 정권이 核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그 다음 수순은 「레짐 체인지(정권교체)」 쪽으로 가는 게 아니겠느냐고 생각됩니다.

趙甲濟 레짐 체인지가 미국의 정책으로 나올 수 있다고 보십니까.
金尙哲 조지 W. 부시 대통령 취임사를 보면 「暴政(폭정) 종식」이 미국과 그 행정부의 궁극적 목표입니다. 「惡의 軸(축), 폭정의 기지」로 지목된 나라는 북한과 이란입니다. 이란보다 북한의 위험성이 더 크죠.
당연한 논리적 귀결은 부시 대통령이 임기內에 金正日의 폭정을 종식시키는 것이라고 봅니다. 부시의 연설에 대해 「(폭정 종식은) 수세기에 걸쳐 이루어지는 것을 뜻한다」는 식으로 자기 희망사항을 섞어서 말하는 논평은 부시의 연설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부시의 연설 중에 「자유를 위해서 국민이 일어나라. 그러면 도와줄 것이다」라는 게 있습니다. 美 행정부가 레바논이 일어나자 당장 시리아에 대한 제재조치를 공언했거든요. 부시의 정책은 金正日 폭정정치에 맞춰져 있다고 봅니다. 역사는 뜻을 가진 자에 의해 진행됩니다. 전문가들의 분석은 해설에 불과한 겁니다. 북한의 운명을 방관할 것인가, 아니면 책임감을 갖고 개입할 것인가에 대해 한국인들이 결단해야 합니다. 한 사람, 혹은 극소수가 결단해서 그 여론을 불러일으키느냐 못 일으키느냐로 결판이 나는 겁니다.
金正日이 멸망한다면 세상이 완전히 바뀝니다. 북한뿐만 아니라 남한도 바뀝니다. 한나라당 혁신위원장이라는 사람이 『한나라당은 對北강경책을 버리고 對北화해와 협력을 해야 보수꼴통이라는 소리를 안 듣고, 차기에 집권가능성이 있다』고 했더군요. 그는 현재의 여론조사만 들여다보는 사람 같아요. 자기의 철학이 없는 거지요. 철학이 없는 사람은 정치가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趙甲濟 「레짐 체인지」라는 말이 몇 년 전부터 실감 있게 다가오는 것은, 북한이 核을 포기하지 않을 경우 金正日을 정치적으로 제거해서 근원적으로 그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일본이나 미국 사람들이 金正日을 「인류의 敵」으로 규정하면서 도덕적 당위성과 정책적 필요성이 맞아떨어지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북한 안에서는 체제가 바뀔 만한 본질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을까요.
탈북자 제가 소속되어 있던 통일전선부는 對南관리도 하지만 북한內 정세도 보기 때문에 내부 실상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습니다. 金正日이 『햇볕정책을 무조건 나쁘다고 하지 말고 우리 정책으로 소화해야 한다. 한국內 햇볕정책 지지세력과 반대세력 간의 갈등에서 통전부가 이용할 점을 찾으라. 햇볕정책을 역이용하자』면서 여섯 가지 지침을 내렸습니다.
서해 NLL(북방한계선)을 무력으로 침투해 긴장을 조성하는 건 對內用입니다. 평화공존만 있으면 북한 주민들이 원수의 실체를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원수의 실체를 인식시키고 그것을 근거로 先軍정치를 주장하기 위해서 서해에 침투하는 겁니다.
전략전술 가운데 「흡수통일 방어전」과 「주동적인 흡수통일」이 있습니다. 「흡수통일 방어전」은 NLL 침투입니다. 한국의 인도적 지원이 증가될수록 對內교양을 심화하느라 인권유린도 더 커집니다. 주민통제를 해야 하니까…. 「주동적인 흡수통일」이라는 건 한국 국민 정서를 장악하는 겁니다. 지금 북한 내부변화를 보면 한국에서 생각하는 이상으로 심각합니다. 金正日이 숨어다닐 정도지요.
趙甲濟 金正日이 공장이나 농장 방문은 하지 않고 군대방문만 한다는 건 신변안전을 보장 못 받는다는 건데, 최근 일이 아니라 옛날부터 있었던 일 아닙니까.

탈북자 2003년 정찰국장이 저격받아 죽은 뒤 金正日은 주민지대에 새벽 아니면 밤늦게 옵니다. 정부와 주민 간의 불신이 극에 이르렀습니다. 金正日을 따르는 사람이 없어서 「無卒장군」이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趙甲濟 金日成에 대해서는 조작된 민심이더라도 존경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金正日에 대해서는 주민들의 80%가 마음이 떠났다고 합니다. 그러나 북한 같은 체제는 90%의 민심이 이반되어도 정권이 유지됩니다. 金正日이 물러나거나 제거되려면 군부 쿠데타나 암살이 있어야 하는데, 과연 군부에서 金正日 제거 세력이 조직될 수 있을까요.
金聖玟 북한은 정치적인 것과 생활이 다릅니다. 한국 TV 드라마를 보고 라디오를 듣지만, 정치적으로 金正日을 따르지 않더라도 지도자로 생각하는 건 변하지 않았다고 봅니다. 군인들은 특히 안 변했다고 봅니다. 북한은 돈이면 다 된다고 생각하지만, 조직화되지는 않았습니다. 제일 필요한 건 金正日 외에 代案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미국이나 일본이 代案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심어 주면, 즉 확실하게 믿음을 넣어 주면 가능할 수 있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趙甲濟 북한 주민들로 하여금 구체적인 행동을 할 수 있게 하는 게 돈이라고 봅니다. 예컨대 「북한 주민들이 탈출할 때 비디오를 갖고 오거나 生體실험 자료를 갖고 오면 현상금을 준다」고 방송을 통해서 북한에 알린다면 주민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金聖玟 1978년 말에서 1980년대 초까지는 북한의 모든 군인들이 한국에서 뿌린 삐라나 스타킹, 담배 등을 한데 모아서 다 버렸습니다. 1980년대 중반부터는 그런 것을 몽땅 챙겨 집에 갖고 가서 팔았습니다. 그런 현상금은, 지금은 엄청난 효과를 내리라고 봅니다. 돈에 대한 생각들이 광범위하게 퍼졌기 때문에 사진이나 그런 게 다 나올 수 있다고 봅니다.
趙甲濟 金正日을 정치적으로 무력화시키려면 민심이반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反金正日 세력을 조직해야 하는데, 그 단계가 금명간에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金聖玟 그건 아직 이르다고 생각합니다. 군인들을 활용하는 게 가장 빠른 길입니다.
탈북자 북한의 보통 사람들을 조직하는 것은 이런 공포정치 아래 있어서 힘듭니다. 북한의 전문분야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지능·양심·감정으로 결집이 됩니다. 제가 지난해에 북한에서 왔는데, 실제로 저도 움직여 봤습니다. 공중전화로 아무 번호나 돌려서 누가 받으면 『金正日 반대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끊지 않고 다 듣습니다.
그런데 먹고살기 급급한 백성들은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집도 있고 먹을 것도 있는 사람들은 자기네들도 뭔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金正日이 神이 아니라는 것을 안 이상 나도 인간으로서 뭘 할 수 있다는 자존심이 나옵니다.

李東馥 내가 공직에 있을 때 북한에서 귀순하는 사람들이 갖고 오는 물건에 대한 보상법을 만들었어요. 1977년에 만들어서 시행하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철폐되었어요. 별로 보상할 만한 사유가 생기지 않더군요. 최근에 북한에서 남쪽의 방송을 많이 듣고 비디오를 많이 본다는데 과연 사실일까요. 1980년대까지만 해도 북한에서는 극소수를 제외하고 라디오 채널이 납땜으로 봉인되었고, 단파방송도 극소수가 들었습니다. 북한이 어려워졌는데 생필품이 아닌 VCR과 TV를 어떻게 구입하는지 궁금합니다.
탈북자 제가 여기 와서 본 드라마보다 북한에서 본 게 더 많습니다. 북한 주민들은 먹을 게 좀 풀리니까 「뭐 좀 알아야겠다」, 이런 생각에서 한국의 목소리(방송)가 나오는 라디오는 누구나 소유하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북한 사람들도 모두 다 미래에 희망을 걸고 살기 때문입니다. 미래가 언제 올까, 그걸 알고 싶어합니다.
2003년에 중앙당에서 집에 있는 라디오를 바치라고 했을 때 평양시민이 자발적으로 바친 게 3만 대였습니다. 평양에 200만 명이 사니까 40만~50만 가구되겠지요. 3만 개가 걷히니까 중앙당에서 충격을 받고 검열대를 조직해서 집집마다 다 뒤졌어요. 갖다 바친 건 다 큰 거고, 작은 건 휴대하고 다녔지요.
내가 북한에서 월급을 2800원 받았어요. 중간 정도 되는 수준인데 VCR은 2만8000원 합니다. 중국제여서 좀 쌉니다. 「열 달치 월급인데 어떻게 사느냐」고 생각하시는데, 북한에 월급으로만 사는 사람은 없어요. 돼지고기 1kg에 700~800원 하는데 그걸 월급으로 어떻게 사먹어요. 온 나라 주민들이 시장에 매달려 있습니다. 거기서 하루에 나오는 돈이 1만원도 될 수 있으니 VCR을 살 수 있지요.
金尙哲 북한에서 통용되고 있는 달러와 유로화, 중국돈을 美貨로 환산하면 얼마나 될까요. 2년 전에 총액이 10억 달러, 1조원이 된다는 얘기가 있었습니다.
탈북자 너무 많습니다. 그렇게는 안 될 겁니다.
李東馥 녹음기나 VCR이 있다 하더라도 배터리나 전기는 어떻게 해결합니까.
탈북자 탱크 배터리는 많이 갖고 있습니다. 군수산업이 그런대로 돌아가니, 거기서 조달합니다. 그러니 군수사업이 망가집니다. 평양에 하루 4시간만 전기가 들어오는데 그때 북한의 중앙TV를 보는 사람은 적고 한국 드라마의 비디오 테이프를 보지요. 상류층뿐만 아니라 중산층들도 다 한국 드라마를 봅니다.

趙甲濟 배급하면서 탄압해야 먹혀드는데, 1995년에 배급기능이 마비되면서 감시기관의 탄압력이 약화되었겠지요. 북한에서는 처음 만난 사람들끼리 金正日 욕을 슬쩍 해보고, 얘기가 되면 서로 신뢰할 수 있는 사이라고 판단한다고 하더군요.
탈북자 그게 사교전략입니다.
趙甲濟 배급의 붕괴가 이런 결과를 초래했다고 보는데, 한국 정부는 북한 해체전략을 쓰지 않고 있습니다. 북한에 대해 민간부분에서 무얼 할 수 있을지 모색해봐야 합니다.
韓基弘 북한의 절대다수 주민들에게 정보를 계속 확대해 나가야 합니다. 非정부기관(NGO) 차원에서 라디오를 보내고, 민간차원에서도 심리전 방송을 조직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비디오나 성경책을 몰래 들여보내는 분들도 있습니다.
탈북자 북한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은 문화적 침투입니다. 방송을 통해 對北심리전을 펼쳐야 합니다. 북한 사람들 사이에서 비교의식만 일반화되면 金正日은 끝납니다.
趙甲濟 「金正日의 요리사」라는 책을 북한 사람들이 보면 충격을 받을 거라고 하더군요. 金正日이 반바지 차림으로 유람선을 타는 사진을 보면 북한 주민들이 돌아버린다는 겁니다. 「겨울연가」 같은 드라마를 통해 남한 사회가 잘 사는 걸 보여주는 것도 좋겠지요. 이런 것말고도 핵심 되는 고리가 있을까요?
탈북자 북한 사람들이 이미 다 돌아섰습니다. 더 이상 사상사업을 안 해도 될 정돕니다. 그 사람들이 『왜 안기부선이 우리에겐 와 닿지 않냐』고 농담할 정도로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조직되지 못하고 봉기가 안 되는 건 그 사람들이 주체사상 때문에 창조적인 삶을 살아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李暉潤 金正日이 40여 년간 지은 죄악 중에 가장 큰 것은 북한에 살고 있는 우리 민족을 열등민족으로 만든 겁니다. 창조의식을 뺏은 것, 평균 키를 15cm 작은 피그미族으로 만든 것, 백성을 300만 명이나 굶겨 죽인 것, 수많은 사람을 이산가족으로 만든 것 다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북한사람들은 주체사상에 세뇌되어 창조의식이 없다는 말이 맞습니다.
1979년 金大中씨가 사형선고를 받았을 때 이탈리아에서 「세계 金大中 생명구출 국제회의」가 열렸어요. 북한에서 駐佛공사·駐오스트리아 공사 등 여러 사람 나왔습니다. 그때 보니 최고 수준의 對南공작 요원들이라는 게 그 대화 수준이 우리나라 고등학생 정도였습니다.
나는 그때 유학생이었는데 북한 사람 대여섯 명과 논쟁을 벌였어요. 북한 측에서 『학생들이 왜 全斗煥도 못 몰아내고 혁명을 안 하냐』고 하더군요. 그래서 내가 『우린 그동안 4·19 혁명도 해보고 5·16 혁명도 겪어 보고, 그것도 시원찮은 거 같아서 4년에 한 번씩 대통령을 뽑기도 한다. 북한은 혁명을 몇 번이나 했냐』고 했더니 답변을 못 해요. 탄력성이나 융통성이 거의 없어요. 간부들도 마찬가집니다. 1980년대 말부터 북한의 국가보위부 간부들까지 우리 측에 포섭되기 시작했습니다. 북한 주민들의 일탈현상이 의식적으로 깊어졌기 때문에 문화적인 침투가 상당히 많이 이루어진 것 같습니다.

趙甲濟 분위기와 토양은 이뤄졌는데 역사가 바뀌려면 구체적인 反체제 조직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李暉潤 1980년대 말 보위부 요원들이 반역혐의로 구속되고 노동당內에서도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구속되었습니다. 그때 해외에서 反金日成·金正日 조직이 생겼습니다. 일본에 있는 前 남로당 지하총책 朴甲東씨가 앞장섰는데, 러시아·중국·일본에 있는 교포들을 조직화하는 것이었지요. 북한內의 조직도 맡았는데, 사실 어려운 일이었죠.
그런데 반응이 중요해요. 그 당시에 金正日은 보위부원 1000명을 풀어서 중국에 보냈습니다. 조직원들을 색출한다고. 그렇게 동원하려면 예산과 인력이 많이 듭니다. 그들이 反金조직 색출 활동을 전개하는 시기에 영변 核문제가 생겼어요. 우리는 「核을 폭파하는 특공요원을 보내겠다, 자기 민족에게 核을 쓰려고 하는 金日成의 생각을 고쳐야겠다」며 金日成·金正日 압박공작을 입체적으로 벌였지요.
그때 한쪽에서는 남북고위급 회담이 착착 진행되었습니다. 배후에서 압력을 넣으니까 공개적인 남북고위급 회담 합의문의 70% 이상이 우리가 요구하는 대로 되었습니다. 지금 봐도 그 합의문 내용은 나무랄 데가 없어요. 金大中 대통령이 북한에 가서 남북기본합의서의 합의문을 無力化시키는 결과를 낳았죠.
金日成·金正日 같은 공격적인 독재자도 입체적으로 압박하자 영향을 받아 많은 부분을 양보하고 패배적인 자세를 취했습니다. 이건 앞으로 북한을 어떻게 변화시키느냐 하는 방향을 제시하는 사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趙甲濟 1998년까지 우리 정부는 국정원을 중심으로 金正日 정권 제거 또는 無力化시키는 공작계획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1998년부터 그런 계획이 없어지고 정권이 오히려 金正日에게 屈從(굴종)하는 모습을 보이고, 親北세력은 「從金(종김)세력」으로 더 악화되었습니다.
북한해방운동의 찬스가 국제적으로 조성되어 있는 데도 불구하고 남한 정권은 북한동포들을 해방시킬 의지가 없고, 오히려 그 功을 민간단체가 받아서 북한해방 국민대회를 하는 현실입니다. 당위론은 굉장히 강한데, 수단이 제한되어 있습니다. 국민들이 주체적으로 할 게 무엇이 있을까요.
金尙哲 북한해방운동은 지금까지 수동적이고 방관적이던 한국 민족의 입장을 전환하는 유일한 기회입니다. 8·15 광복도 우리 손으로 한 게 아닙니다. 광복 60년인 지금, 북한을 해방시켜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국제적인 정세도 한국 사람들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움직임이 없으면 미국도 결행하기가 쉽지 않다고 봐요. 지금은 정세가 아주 무르익었거든요. 제일 중요한 건 북한의 암시장 활동이 왕성해서 金正日의 통제 바깥에서 북한 주민의 생활이 영위되거든요. 북한 주민의 90%가 「金正日 하나 때문에 이 고생」이라는 생각을 다 갖고 있습니다.
작년 연말을 기해서 한국의 從金세력도 좌절됐습니다. 남북 頂上회담 추진이 좌절됐고, 국가보안법 폐지와 사립학교법 개정 기도가 좌절됐습니다. 2년 동안 많은 사람이 反核反金 국민대회를 해온 덕분입니다. 그것 외에는 다른 행동이 없었습니다.
남한의 從金세력은 위축되어 엎드려 있습니다. 제가 아는 북한 노동당 당원 출신인 한 열린당 국회의원은 그전에 활발하게 활동하다가 지금 고향에서 칩거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再選 대통령이 4년 임기 중에 폭정을 종식시키겠다고 했는데 金正日은 「내가 核을 보유하고 있다」며 자살골을 넣었습니다. 英美法의 원칙에 따르면 범죄의 자백엔 증거조사가 필요 없습니다(웃음).
金正日은 협박으로 그 말을 했는데 그 협박이 미국에는 먹히지 않아요. 일본에는 좀 먹힐지도 모릅니다. 有罪 시인에는 증거조사가 필요 없어서 핵사찰이고 뭐고 할 이유가 없습니다. 金正日은 지금이라도 처벌하면 돼요.
그들이 일본에 가짜 유골을 준 것도 자살골입니다. 그런 기만이 일본 국민의 公憤(공분)을 일으켰기 때문에 돌이킬 수 없어요. 지금 시기가 딱 왔어요. 작년 6월부터 나는 『金正日은 끝났다』고 얘기했습니다. 작년 5월에 마이클 호로위츠를 초청했을 때도 『金正日은 끝났다』고 했어요. 그 사람이 한국에 와서 용기를 얻어 미국에 가서 『金正日은 죽었다』고 얘기하고 있는 겁니다.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첫째, 대대적인 함성이 있어야 합니다. 「金正日은 끝났다! 북한은 당장 해방시켜야 한다!」 역사 이래 처음 있는 일이기 때문에 지금은 여론이 확산되는 과정입니다. 현재 여론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모든 종류의 해방운동도 최초 주장자는 극소수지요. 「함성을 외치면 뭐하느냐」고 하는 사람은 유물론자라고 봅니다. 세상의 변화는 함성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여론이 세상을 움직이는 거죠. 여기서 함성을 외치면 북한에도 그 소식이 가고, 미국·일본에도 갑니다. 「남한에서 북한 해방운동이 일어났다. 조직이 됐다. 대대적으로 움직인다」는 소식이 북한 사람 누구에게 한마디만 딱 던져져도 그 사람들은 용기백배하는 거죠. 그게 아주 중요합니다.

趙甲濟 북한해방 단체가 조직되었다고 했을 때 북한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까요.
탈북자 「해방」이라는 표현만으로 북한 사람들에게 충격은 안 됩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들은 단어에 얽매이지 않기 때문에 해방이라고 하면 8·15 해방쯤으로 생각할 겁니다.
제가 생각할 때 분위기는 다 되어 있습니다. 이걸 정돈하고 부각시키는 일만 남아 있습니다. 정돈만 해줘도 큰 효과가 납니다. 북한 내부에서도 反체제 활동을 생각으로든, 이론으로든 조직화하는 극소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을 부각시키려면 한국에서 박수를 쳐주어야 합니다. 黃長燁 선생이 나서야 합니다. 북한해방이라고 했으면 수위를 높여서 조직화하고 한국內 左派에 타격이 되고 골칫거리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金正日은 탈북자를 피부로 무섭게 느낍니다. 탈북자들이 나서면 金正日의 對南전략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趙甲濟 북한해방운동의 주체는 남한의 건전한 시민들이 되어야 합니다. 黃長燁 선생은 상당히 부정적이지만, 黃선생을 추대하여 임시정부 같은 걸 만들자는 요구가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북한해방운동이라는 게 북한 사람에게 먹히지 않는다면 어떤 용어가 먹힌다는 겁니까.
탈북자 용어보다는 「미국에서 북한인권법안이 통과되었다」 이런 게 중요합니다.
韓基弘 소수의 사람들이 話頭를 제기하고 그것을 대중들이 인식해서 그 방향으로 가는 게 역사적 실체입니다. 金正日은 惡이고, 남한의 親北·從金 세력은 惡에 봉사하는 건데, 그 사람들도 어떤 역할을 하기 때문에 세상이 우리의 선한 뜻대로만 돌아가지 않는다는 게 문제입니다.
첫 번째 북한해방, 북한자유화, 북한민주화의 깃발을 소수가 제안했을 때 저쪽 힘이 강할 때는 우리 뜻을 관철시키는 데 시간이 걸립니다. 해방·자유·민주, 이런 개념을 북한에서 엉뚱하게 해석해 사용했기 때문에 한국 사람이 생각하는 것과 북한 사람이 생각하는 게 너무 많이 다릅니다. 북한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요소의 개념이나 어젠다를 던져야 합니다. 그러지 않는다면 남쪽에서 생각하는 관념과 다르게 작동될 요소도 있다고 봅니다.

李東馥 낙관론을 갖고 매사를 보는 것은 필요하지만 과연 「金正日은 끝났다고 단정할 수 있는 상황이냐」 하는 것에는 견해를 달리합니다. 현재 남북에 전개되고 있는 이데올로기 갈등 상황에 대해 북한에서는 다른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남조선의 경우 진보적 사상을 지향하고 친북적이며 聯共的(연공적)인 세력들은 少數에 불과할 뿐만 아니라 감옥에 가고 사회의 눈초리를 받아야 하는 사회였으나, 6·15 이후에는 반대로 사회의 主流였던 반공보수 세력들이 밀려나고, 탄압당하고 숨어 살아야 했던 진보적 운동세력들이 활개를 펴고 主流로 등장했다.
당국의 탄압을 받아 왔던 운동권 출신들이 권력의 칼자루를 쥐었고, 386세대들이 사회적 중추는 물론 청와대에까지 진출하고 있다. 수많은 애국자들을 학살·처형했던 각종 사건들이 탄압사건으로 再규명되고, 오히려 지난 시기 탄압사건을 조작했던 絞刑吏(교형리)들이 처벌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남한에서 6·25도 北侵이라고 생각하는 여론이 등장하고 있고, 만약 미국이 조선반도에서 전쟁을 일으키면 미국 편이 아니라 북한 편에 서서 미국과 싸우겠다고 응답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바로 위대한 金正日 장군이 역사적 6·15 북남공동선언을 마련하여 남조선에서 진보세력의 활동공간을 넓혀 주고 극소수 반공보수분자들을 철저히 고립시킨 결과다」
북한 문서는, 이렇게 보고 있단 말이에요. 그럼 과연 우리 사회에 그런 상황이 없느냐, 2002년 대통령 선거와 2004년 국회의원 총선결과를 어떻게 봐야 할 것이냐, 그 뒤에 어떤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이번에 자유지식인 선언에서 核문제에 관해 포지션 페이퍼를 냈습니다. 북한정권 교체 문제를 거론했습니다. 그 내용이 발표되었지만 언론에서 취급을 합니까?
사실 좀 충격적인 얘기를 들었습니다. 제가 영문본을 워싱턴에 있는 여러 사람에게 보냈더니 국무성에 있는 친구가 어제 이런 전화를 했습니다.
『당신이 옛날부터 갖고 있던 생각이 담겨 있는 거 같다. 이게 한국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의 지지를 받고 있느냐. 우리가 알기로는 한국 盧武鉉 정권과 지배세력들은 이미 그러한 노선에서는 떠나 있지 않느냐. 바로 엊그제 金元基(김원기) 국회의장이 한국문제에 대해서 일가견이 있는 사람들을 모아 놓고 연설과 질의응답을 했는데 金의장은 정반대 얘기를 하더라』
남한 안에서 아직은 유리한 정세가 전개되지 않고 있으나, 다행히 국제적으로 연대운동이 일어나 옥죄고 밀어붙이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데 굉장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습니다. 이 운동을 처음 시작한 사람 중의 하나가 칼 거쉬먼입니다.
2002년 10월에 북한을 포함해서 독재정권과 공산정권의 인권에 대해 국제적 연대운동을 시작하면서 칼 거쉬먼은 『가능성의 예술로 추구해야 한다. 가능성이 있으면 해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거쉬먼이 한반도에 불씨가 마련됐다고 보는 건 북한 정치범수용소 해체 운동이 일어났고, 북한민주화네트워크에서 전향한 젊은 사람들과 접촉한 결과 희망을 갖기 시작한 일입니다. 이것이 시작이 되어 북한인권법이 추진되었고, 북한인권법에 많은 수단이 담겨 있습니다. 그 많은 수단을 우리가 활용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희망을 갖고 북한을 대해야 하지만 지나치게 낙관하는 건 이르지 않나 생각합니다.

金尙哲 우리가 1999년 3월부터 2001년 5월까지 벌인 탈북자 국제법상 난민지위청원 서명운동을 먼저 언급해야 합니다. 1180만 명의 서명을 받았고, 외신이 다 보도했습니다. 제가 2001년 5월17일 美 의회에 가서 크리스토퍼 칵스를 만났습니다. 그 사람이 美 의회에서 탈북자를 국제법상 난민으로 보호하는 결의안을 추진해 보겠다고 한 뒤 1년 2개월 만에 통과시켰습니다. 1180만 명의 서명이 세계를 움직였습니다.
북한인권법이 통과된 건 대단한 일이지만 그들도 정책수단을 별로 갖고 있지 않습니다. 미국도 정책수단이 없어요. 우리 한국 국민이 일어나야 합니다.
서명운동도 1170만 명은 한국인이고, 10만 명이 외국인이었습니다. 10만 명 중 절대다수는 해외동포고, 순수 외국인은 적어요. 북한해방이든 북한구원이든 거국·세계적으로 벌여야 합니다. 외국에서 소수가 참여해도 상징적인 의미는 큽니다. 국내에서는 거국적으로 대대적으로 벌어야 합니다.
최근에 한국의 기독교 단체에서 300억 원 이상을 북한에 지원했다고 합니다. 그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이 사람들은 金正日의 배를 불리는 데 300억원을 갖다 줬는데 북한 주민을 살려 주는 데 100억원은 못 모으겠나」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 거국적인 운동을 세계적으로 벌여야 합니다.
탈북자 1180만 명이 서명한 것은 탈북자들이 쫓겨다니는 동영상을 보고 한국 사람들이 감성적으로 인식이 됐기 때문에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논리적으로는 다 얘기했으니 이제 감성적으로 하면 얼마든지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습니다. 감성적 차원에서 문제를 부각시켜야 합니다.
趙甲濟 탈북자가 북한 사람들에게 굉장히 중요한 고리입니다. 黃長燁 선생을 중심으로 임시정부를 조직하자고 하는데, 임시정부는 우리 헌법과 배치될 수도 있을 거예요. 그거 말고 북한해방을 목표로 黃長燁 선생을 중심으로 탈북자들이 정치적 구심체를 만들어 낼 가능성에 대해 얘기해 보죠.
金聖玟 북한에서 금방 온 사람들은 「脫北者 너희들은 그동안 뭐했느냐」 이런 얘기를 많이 합니다. 우리는 黃선생님을 모시고 동맹을 만들었습니다. 객관적으로 보면 아무것도 아니고 기대했던 만큼은 아니나, 북한해방의 주체세력은 정부와 애국적 시민이 되어야 합니다. 現 정부는 포기한 상태라고 봅니다. 黃長燁 선생 같은 북한 내부에 알려진 분이 나서야 할 필요가 있죠. 남한 애국시민들이 만든 북한해방을 위한 거국적인 모임에 黃선생님이 들어가면 북한 사람들에게 효과가 커질 거라고 봅니다.
북한 사람들의 마음을 잡는 일이 예전에는 어려웠지만, 이제는 쉽게 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어 있는 데도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KBS 사회교육방송이 거의 포기하다시피 하고 있습니다.
유일하게 남은 건 VOA(「미국의 소리」)와 「프리 아시아」·극동방송인데, 세 방송조차 「金正日 국방위원장」으로 써야 한답니다. 한마디로 북한과 심리적인 게임을 안 하겠다는 소립니다. 북한 동포 개개인보다 어떤 집단이나 조직을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을 상대로 방송을 하면 됩니다. 「혁명을 하라. 주체세력인 너희들이 새 정권에서 당당하게 주역이 될 수 있다」고 분명한 대상을 겨냥하는 방송, 공세적인 방송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 「자유북한방송」은 행동을 합니다. 거의 한 달간 밤을 새우면서 만든 CD 500장과 테이프 500개를 북한에 보냈습니다. 북한의 경음악과 탈북자들이 약간 改詞(개사)한 노래를 넣고 중간중간 탈북자들의 대담과 黃長燁 선생님 말씀, 자유북한방송 정론인 「金正日은 투항하라」, 이런 내용을 담았습니다. 月刊朝鮮에서 발행한 「金正日의 요리사」도 현재 북한에 35권 들어갔습니다. 사진이 많이 들어 있어서 효과가 있을 것으로 봅니다. 애국단체가 밀어 주셔야 합니다.

趙甲濟 북한해방운동은 3·1 운동처럼 거국적으로 벌이고, 전략적인 목표는 북한 주민들에게 영향을 주고 정부의 정책을 바꾸도록 하는 것입니다. 盧武鉉 정부가 對北 해방정책을 실시하도록 압력을 넣는 것, 미국·일본 등 국제적 여론과 연계하여 중국에 압력을 넣는 것, 유엔의 對北 인권결의안에 盧정부가 찬성하도록 여론을 뒷받침하는 것 등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李東馥 그 부분에 대해 黃長燁 선생과도 얘기 나눴습니다. 黃長燁 선생은 북한의 金正日 정권 교체를 위해 세 가지 수순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시더군요.
첫째는 중국과 북한 간의 관계 변경, 둘째는 북한의 인권문제, 셋째는 基地로서 한국 내부가 정돈되어야 한다. 이는 올바른 정책을 펴지 못하는 지도자의 입장이 변화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변화가 일어나지 않고는 귀 빠진 그릇에 머물 수밖에 없습니다. 위의 세 가지를 잘 생각하면 전력과 전술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탈북자 통전부에 있을 때 對南 심리전을 담당했습니다. 한국을 정돈하거나 基地化한다는 건 어렵습니다. 충격적인 게 없으면 힘듭니다. 북한과 중국의 관계를 변화시킨다는 것도 이론 아니겠습니까.
趙甲濟 한국의 여론을 바꿔서 정부에 영향을 주고, 국제여론이 힘을 발휘하니 중국이 탈북자를 북한으로 송환하지 못하게 하는 데까지 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는 있겠지요. 성공하느냐 못 하느냐 이전에 국제적인 여론이 형성되고 있으니 구체적으로 생각해 봅시다. 黃선생이 계속 강조하는 게 중국이 북한과의 관계를 청산하면 金正日이 끝난다는 건데, 이 假設(가설)도 검증해 봐야 하는 거 아닙니까. 과연 중국이 북한에게 그만큼 결정적인 영향력이 있을까요.
李東馥 중국과 북한의 관계를 「중화인민공화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관계로 보느냐」, 「중국 특정정권과 북한 특정정권의 관계로 보느냐」에 따라서 관계와 성격이 달라집니다. 중국은 지난 몇 년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金日成·金正日 정권은 별개」라는 입장을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정리를 하더라도 중국 입장에서 북한을 버릴 필요를 느끼지 않겠지요.
첫째는 金正日 정권이 중국의 이해관계를 결정적으로 배신하는 일을 하지 않았고, 더 중요한 건 金正日이 핵문제를 갖고 나오니 중국이 역사상 처음으로 주도적으로 외교적 역할을 할 기회를 갖게 됐습니다. 1949년에 중국 본토를 점령한 이래 중국외교는 항상 非동맹 외교 같은 변방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北核문제 때문에 국제무대에서 완전히 주인공이 됐어요.
중국은 金正日과 연결하는 것이 중국의 이익에 부합되기 때문에 아직은 움직이지 않습니다. 중국으로 하여금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과 金正日 정권을 구분하도록 유도할 방법이 아주 없는 건 아닙니다.
탈북자 중국은 國益을 생각해서 북한과 갈라질 수 없고, 북한은 중국과 헤어질 수 없는 순치관계인데 바란다고 될까요? 중국과 북한의 관계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합니다. 현재 북한은 중국과 主從관계입니다. 2~3년 전 중국內 북한 공작원들의 활동이 문제가 되었어요. 그 일로 金正日이 중국에 사죄하러 가고 그랬지요. 金正日은 중국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습니다. 金正日의 核선언을 실수라고 하는데 중국이 金正日과 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다이가 북한에 갔다 와서 『金正日이 核이 있다고 시인하더라』 이렇게 한 번 더 강조하는 걸 보고 「중국이 왜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중국과 북한은 갈라 놓을 수 없다고 봅니다.

李東馥 그 말씀에 8~9할 수긍합니다. 하지만 북한이 중국의 국가 이익에 손상을 줄 정도가 되면 중국으로서는 생각을 달리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탈북자 金正日이 자기 운명과 직결된 사안인데 쉽게 그렇게 하겠습니까.
李東馥 그런 경계선상을 오르내리게 하는 현안문제가 核입니다. 核문제가 어떻게 진전될지 예측하기 어렵지만, 核문제가 움직여 나가는 방향과 정도에 따라서 북한이 중국의 국제적·국내적·정치적·외교적 필요를 충족시키는 데 부담스러워 질 수 있습니다.
趙甲濟 미국이 「대만 核을 허용하겠느냐, 북한 核을 막겠느냐」는 선택을 중국에 정면으로 강요한다든지, 「北京 올림픽 개최지 변경 움직임에 우리도 동참하겠다」든지 하는 강한 압력을 주면 중국도 고민하겠죠.
韓基弘 現 정부의 386세대들이 중국을 과대평가하고 기존의 韓美동맹 약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흐름이 있었습니다. 중국은 1978년 개혁·개방 이후로 성장에 따른 빈부격차, 56개 소수민족 분열 가능성, 북한 문제가 풀릴 때 오는 혼란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중국이 金正日 정권을 지키는 지렛대로 작용하는 면이 강한데 金正日이 核을 갖고 장난치는 과정에서 중국의 이해관계와 金正日의 이해관계가 계속 같이 갈 수 있겠는가, 전환점이 오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李東馥 북한의 核문제는 金正日 독재체제를 유지하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核을 포기하면 金正日 독재체제를 유지할 수 없다고 봅니다. 북한이 核유지 의지를 꺾지 않으면 중국에 그 불똥이 튀어서 중국의 국가 이익을 해치는 상황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그때 중국과 북한의 관계에서 일종의 전환점이 생깁니다. 金正日 정권이 核을 포기할 수 있느냐, 거기에 대해 우리 나름의 판단을 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趙甲濟 金正日은 核을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죽게 되는 상황에 몰렸을 때 포기할 겁니다. 그렇다면 죽게 되는 상황을 어떻게 만드느냐가 관건입니다. 6者회담의 진전이 없어 유엔안보리로 이 문제를 가져가면 그때부터 중국과 金正日의 고민이 시작됩니다. 유엔에서 여러 가지 수순을 밟아 북한에 대한 경제봉쇄를 결의했을 때 중국과 한국이 동참하느냐 하는 것이 변수입니다. 對北 경제제재가 계속될 때 북한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요.

李暉潤 한국에 추동력을 갖추게 하는 건 정부 당국입니다. 직업 공무원 출신인 저는 서글픔을 느낍니다. 예전에 北에서 오신 분들을 북한자유화 전선에 서도록 조직화하고 부탁하고 그랬는데, 이제 반대가 되었습니다. 대통령이 걱정해야 할 걸 민초들이 걱정하고, 국정원이 해야 할 일을 언론사에서 나서서 걱정해 주고 있습니다. 「남북대화한다」, 「교류한다」 하면서 각양각색의 사람이 나와서 對北지원 접촉을 하고 회담을 하는데, 이쪽은 각 분야 아마추어들이 나서고 있습니다. 저쪽은 전부 일괄창구에서 연출하고 직업적 전문가들이 나옵니다. 10여 년 동안 무방비 상태로 당하는 겁니다.
對北정책이나 북한해방을 위해서는 통합적이고 통제된 역할이 제일 중요합니다. 국가기관에서 앞장서서 전략 방향을 수립해야 합니다. 北核 문제는 金正日이 있는 한 해결이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북한은 對南정보전 차원에서 모든 걸 관장하고 있습니다. 對北정보전을 수행하는 기관의 전략 방향이 제대로 설 수 있도록 통수권자가 방향을 잡게끔 하는 게 제일 중요합니다.
「통일」이라는 용어를 붙인 공개된 부처가 있는 게 과연 통일 환경조성에 도움이 되느냐 하는 생각을 합니다. 조용하게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게 낫지, 통일이라는 이름을 내세워 공개적으로 하자니 여론과 국민의 눈치만 보고, 생산성 없는 대화에 매달리고, 성과만 생각하는 분위기로 끌고 가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가장 중요한 건 전문적인 경험을 갖고 있는 국가기관에서 북한해방을 위해서 주도적으로 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겁니다.
李東馥 재작년에 하와이에서 한국·미국·중국 학자들이 北京 3者회담이 결렬된 직후, 회의를 열었어요. 北京회담이 결렬된 이유는 북한의 차석대표가 켈리 차관보에게 『북한이 核을 갖고 있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하와이 회의에서 『북한이 核을 보유한 게 확인됐으니 브레인 스토밍을 하자』고 했습니다.
미국 정부가 『이제 데드라인을 넘어섰다. 多者방식의 대화를 포기하고 유엔으로 가져가려 한다. 그럼 한국이나 중국·일본은 여기 대해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얘기해 보자』고 하니 중국 대표들이 재미있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중국은 『한번 더 외교적으로 설득해 보겠다. 북한이 核을 포기하지 않으며 중국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安保理)에 가는 걸 찬성하겠다. 그럴 경우 중국은 우선 중국과 북한의 국경선에 군대를 배치할 것이다. 유엔 安保理 제재 조치에 단계적으로 참여할 것이다』라고 얘기했습니다.
아직도 미국이 유엔 安保理에 가져가는 단계에 이르지 않은 건 이라크 문제 때문입니다. 국내 여론도 있고 상황이 자꾸 변하기 때문에 미국은 北核 문제를 安保理로 가져갈 겁니다. 유엔으로 간다면 중국도 찬성하고 한국도 찬성할 겁니다. 유엔 安保理로 가면 자동적으로 유엔 헌장에 따른 설득이 들어가고 외교적·準군사적·경제적 제재조치가 따라갑니다. 그런 제재조치가 가해졌을 때 북한이 견딜 수 있을까요?
중국이 북한에 제공하는 연간 80만t의 원유도 못 들어가고, 年 20만t의 곡물도 못 들어가고, 한국도 경제협력을 못 하겠죠. 그렇게 되면 金正日은 무너집니다. 核문제는 남쪽에서 시민 차원에서 많은 수고를 하고 있지만 여기서 해결의 실마리가 결정적으로 생기긴 힘듭니다. 정부를 움직일 수 없어요. 정부의 변화가 오고, 우리 시민사회의 축적된 힘이 얹어져서 金正日 정권을 무너뜨려야지요.

趙甲濟 유엔의 對北 경제제재 결의가 가능하다고 할 때 한국 정부가 참여하느냐 안 하느냐가 문젠데, 참여하게 할 힘이 우리 안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내부의 여론이 들고 일어나면 국제여론과 링크업 되어서 盧武鉉 정부가 동참하게 되고, 그게 북한해방운동으로 가는 큰 계기가 될 겁니다. 북한해방운동이라는 것이 북한에 라디오 보내는 운동에서부터 국내의 여론을 움직이는 운동도 되니까요.
金尙哲 盧武鉉 정권은 金正日 共助정권이고, 현재 국민적 저지 때문에 위축되어 있는 것에 불과합니다. 최대변수는 한국內에 있다고 봅니다. 지금 親北·從金 세력은 지향할 목표를 완전 상실했습니다. 主思派 출신들은 다 위축되어 있습니다. 이철우 의원이 金日成에게 충성맹세한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에 머리만 내밀었다 하면 여론에 의해서 사살된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부 엎드려 있습니다.
親北세력에는 논객이 없어서 이렇다 할 논문도 없어요. 親北·從金을 어떻게 이론적으로 정당화할 수 있나요? 불가능하죠. 저쪽 세력은 권력만 쥐고 TV만 갖고 있지 정당성과 명분이 없어졌다고 봅니다. 얼마든지 정권으로 하여금 對北제재에 동참할 수밖에 없도록 여론을 형성할 수 있다고 봅니다.
국민적 운동을 벌일 필요성이 있습니다. 金正日의 멸망과 그 후 문제를 생각할 때, 한국內에 남북한을 포함한 대한민국의 중장기 전략을 갖고, 그걸 추진하는 주체세력이 형성되어야 합니다. 한나라당 연구기관인 여의도연구소에서 내놓은 통일정책이 對北화해 협력입디다. 독재자 金正日과 화해하고 협력할 게 뭐가 있습니까. 야당이 그걸 통일방향이라고 내놓다니 국민을 기만하는 거죠. 한심합니다.
한나라당이든 열린당이든 새로운 주체세력이 반드시 형성되어야 합니다. 정치하겠다고 형성되는 게 아니라 일을 해서 형성되어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운명을 개척할 수 있는 세력이 형성되어야 하고, 그 의지를 행동으로 입증해야 합니다.
趙甲濟 지금 말씀이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국내외 정세나 북한 내부의 정세를 봐서 金正日의 종말이 가까워 오고, 결정적 찬스가 왔는데 누가 이 일을 하겠느냐? 남한內에 애국세력은 있으나 조직된 정치세력은 없습니다. 애국세력은 있으나 애국당은 없고, 보수세력은 있으나 한나라당은 보수정당이 아닙니다.
한나라당은 「보수를 위장한 親左정당」이라고 생각됩니다. 「애국세력이 정치세력을 어떻게 만드나,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에 출마할 각오를 하고 진흙바닥에 들어가겠나 말겠나」까지 와 있습니다.
金尙哲 金正日을 멸망시키지 않으면 북한 동포를 구할 수 없습니다. 지금 한국 사람이 광복 60년을 맞아 자유를 구가하고 있는데, 북한 동포는 金日成·金正日의 노예 60년을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걸 좌시할 수 없습니다. 이제는 국내외 정세가 무르익었으니 「金正日을 멸망시키고 북한 동포를 구원하여 자유를 회복시켜야 한다」고 외쳐야 합니다. 이 메시지는 지금 남한에서 돌팔매를 맞을 주장입니다.
현재 북한해방을 거론하는 연구기관이 하나도 없다는 게 문젭니다. 정당은 투표를 해야 하니 영향을 받는다지만 국가 장기전략을 모색해야 하는 연구기관에서조차 북한해방과 북한구원을 거론하는 데가 한 군데도 없습니다. 한민족이 일제로부터 해방되어 60년 회갑을 맞은 금년은 우리 민족의 장래운명을 결정짓는 일대 승부의 해입니다.
趙甲濟 북한해방운동이라는 테마를 갖고 우리나라 젊은 사람들의 정의감과 의분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까요. 「북한해방운동으로 金正日의 종말이 가까워 왔다」는 분위기가 한국의 親北·左翼 세력을 과연 위축시킬 수 있을까요.
韓基弘 우리가 대학생 회원들에게 북한 주민들의 열악한 상태와 인권유린을 얘기하면 『정말 그러냐』며 의분심을 갖고 정의감에서 뭘 해야겠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金正日을 욕하지만 돈과 시간을 투자하는 행동으로는 연결되지 않습니다. 20代는 극도의 청년실업 때문에 자기 눈앞이 안 보이고, 386세대는 1980년대 물을 먹은 유죄가 남아 있습니다. 북한 측이 거의 망했다는 것을 알지만 과거와 절연하고 행동하는 것으로는 연결이 안 됩니다.
親北的인 사고를 하지 않는 사람들도 左派가 이미 정치·사회·문화·언론의 主流가 되었습니다. 이해관계가 엄청나게 커졌습니다. 盧武鉉 정부 들어와서 몇천 개의 자리를 그 사람들이 가졌습니다. 私席에서 친구들과 북한 얘기를 하면 모두들 먼 나라 이야기로 받아들입니다. 아무리 개인양심이 있다 해도, 운동주체로서 正義라는 어젠다를 폭풍으로 불러내는 일과 실제로 행동에 이르기하기까지는 이해관계가 복잡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사람들의 힘을 발동시켜야 하는 건 당연한데 진행되는 사항과는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노력한다는 것과 실제로 정부를 변화시키고 정책을 강구하고 압력을 가해서 북한 체제를 바꾸는 것은 차이가 있습니다. 金正日이 망하게 되면 한국도 엄청난 폭풍에 휘말리겠죠. 與野가 재편되고 광복 이후 최대의 거대 사건이 될 거라고 보지만 그것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면서 갈 수 있는 주체적 역량이 있느냐, 지금 2~3년 내에 준비할 수 있을 것인가는 좀 다른 문제라고 봅니다.

李東馥 마이클 호로위츠 같은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금년 안에 金正日 정권이 무너진다면 그에 따라서 임기응변해야 할 일이 생기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비교적 적다고 봅니다. 金正日 정권이 무너지는 시기가 앞당겨지도록 우리가 노력해야 하는데 그 노력의 첩경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한국의 정치를 주도하는 세력에 변화가 오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둘째는 젊은 세대가 북한에 대해 올바른 가치판단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교육해야 합니다.
조선일보가 분석한 걸 보니 「한나라당이 열린당과 과연 다른 정당이냐?」는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어요. 121석 가운데 민자당 출신이 4석, 민주당 출신이 4석, 운동권 출신이 12석, 그 외 101석은 열린당과 마찬가지로 젊은 사람이 좋아할 사람을 공천했습니다. 대한민국 50년史의 정체성과 정통성을 이어가는 신념이 투철한 분이 이끌어가야 하는데, 한나라당 지도체제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상황입니다.
한나라당이 이러한 구성요소에도 불구하고 애국적 시민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안심할 수 있는 방향으로 노선을 바꾸든지, 그렇지 않을 경우 代案을 생각할 수밖에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李暉潤 여론이라는 것은 항상 변합니다. 어떤 면에서 중요하고 어떤 면에서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건 「누가 金正日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하고 운동을 일으킬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7할의 親北활동을 하더라도 3할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盧武鉉 대통령이 지금까지 反美 발언을 하고 북한을 용납하는 태도를 보였지만 8할 정도는 우리 국민을 걱정하는 게 있지 않겠습니까. 그 8할을 9할, 10할로 옮기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열린당의 20%가 문제인물이라고 하여 열린당을 몹쓸 집단이라며 멀리할 게 아니라 6~7할 정도 올바른 안보관을 가진 분들을 동원하면 됩니다.
한나라당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실 정치세력을 문제시하고 배제할 게 아니라 그중에서 활용할 건 활용하면서 같이 끌고 나가서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도록 하는 게 좋습니다. 그들을 배제하기보다는 동화시킬 수 있는 게 뭔지 찾는 게 효과적입니다.
金尙哲 북한해방운동은 사회운동이나 국민운동, NGO운동이 아닙니다. 우리 민족의 운명을 개척하는 운동입니다. NGO운동의 관점에서 보는 건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운동에 현역 국회의원도 黨과 관계없이 많이 동참할 겁니다. 사람 의견이 다 똑같은 건 아니니까, 약간의 차이는 있어도 큰 슬로건에 동감하면 동참할 사람이 꽤 있다고 봅니다.
요즘 「선진국이 되자」는 말에 모두 동감하는 모양인데, 자기 동족이 60년 노예로 비참하게 신음하는 걸 번연히 알면서 거기 돈 내고 동참할 젊은이가 없다면 어떻게 선진국이 되겠어요. 여태까지 우리 편이라고 상정했던 그룹에서 떠나야 합니다.
우리나라가 세계 10大 경제대국인데, 이 정도 나라에서는 사람이 반드시 있습니다. 이제까지 애국세력이라고 분류했던 세력의 고정관념을 떠나야 합니다. 찾아야 합니다. 젊은이들 중에도 애국자가 있다고 봅니다. 젊은이와 늙은이의 두뇌구조가 다릅니까?
북한해방, 이 명제를 절대절명의 조건이라고 생각하고 이 조건을 어떻게 실현시킬 것인지 그걸 찾아야 합니다. 일하는 요령이 있습니다. 일은 되는 대로 좇아가야 됩니다. 우리가 구상을 잘해도 그대로 되는 거 아닙니다. 국회의원 중에도 생각지 않은 분들이 얼마든지 참여할 수 있다고 봅니다. 누구를 배제해서는 안 되겠지만, 북한해방운동의 주체세력은 새로 형성되어야 합니다.
趙甲濟 2년 전 3·1절 국민대회 때 누군가 「金正日 편과 대한민국 편으로 나눠야 한다」고 했는데, 맞는 말씀이라고 봅니다. 북한해방운동의 원칙으로서 가장 중요한 건 大同團結(대동단결)과 白衣從軍(백의종군)입니다.
이라크 파병문제가 대두됐을 때 강연회에 가서 『盧武鉉 대통령이 파병하기로 한 것은 잘한다고 해줘야 한다』고 했더니 다들 『盧武鉉은 구제불능인데 왜 그런 소리를 하느냐』며 반대하는 말을 했습니다. 구제불능이라도 우리가 이용할 부분이 있으면 주체적으로 이용하면 되는 것입니다. 한 집단이나 한 인간을 완전히 구제불능이라고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런 사람도 별로 없을 겁니다.
남파 간첩들도 와서 고민하는데, 그 고민하는 부분을 이용하면 전향합니다. 이라크 파병 때도 오히려 애국단체가 盧武鉉 대통령 편을 들었습니다. 유엔의 對北제재결의안이 나왔을 때 盧武鉉 정부가 동참하는 모습을 보여 주면 애국단체는 盧武鉉 정부 편을 들어야 합니다. 우리 나름의 기준으로 주체적으로 大義에 맞춰서 행동을 결정하면 될 겁니다.

金聖玟 4월 유엔인권委에 對北결의안이 再상정된다고 하는데 한국 정부는 틀림없이 반대한다고 봅니다. 한나라당의 자유포럼에 가봤는데, 그 문제에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크든 작든 북한 사람들을 생각해야 합니다. 한국 정부나 국정원이 안 하는 일을 북한민주화네트워크나 탈북자 모임에서 해야 합니다.
趙甲濟 우리가 정부입니다.
金聖玟 정부는 북한 사람들을 상대로 하는 모든 일에 손을 놓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일인데 우리 자유북한방송이 해체 직전에 와있습니다. 7명의 직원을 1인당 30만원씩 주고 있는데, 더 이상 돈이 없어서 못 합니다.
정부에서 도와주는 건, 국정원에서 테러 위험수위를 알려 주는 것밖에 없습니다. 그런 통보를 받을 때마다 깜짝깜짝 놀랍니다. 대한민국 경찰이 하는 일은 그냥 하루 종일 우리를 감시하는 거밖에 없습니다. 누구 만나나, 어느 기자 만나나, 어디 가나 이런 것만 체크하고 있습니다. 한심한 일이죠.
李東馥 북한인권법안이 전면적으로 발동되지 않고, 예산도 금년 하반기부터 부분적으로 집행되는 모양인데 자유북한방송 관계를 북한인권법안과 연계시켜서 가능성을 모색해 본 일이 없습니까? 미국 쪽의 지원을 받을 방법은 없나요?
金聖玟 가능성이 없습니다. 미국 쪽의 지원을 받아서 일을 하는 것은 내키지 않습니다.
李東馥 지난 3월3일 자유지식인선언에서 북한 문제에 관한 입장을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6者회담이 北核문제 해결의 무대로 기능하는 데 실패할 경우 北核 문제가 갈 곳은 당연히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다. 이것은 제재로 가는 길이며, 이 길은 불가피하게 북한의 정권교체로 가는 길이다. 만약 북한의 선택이 이 외길이라면 우리로서도 이 길을 회피할 방법은 없다.
그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4800만 국민과 함께 북한 金正日 정권의 교체 가능성에 대하여 열린 마음으로 대비할 때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6·25의 아픈 추억 속에서 전쟁방지와 평화정착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우리는 전쟁의 위험을 무릅쓰고 평화를 위협하는 무모한 방법으로 북한의 정권교체를 추진해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北核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그렇게 하는 것이 필수적인 것으로 판명되고 또 평화를 위협하지 않는 방법으로 이를 추진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판단될 경우에도 북한의 정권교체를 禁忌視(금기시)하는 잘못을 범해서는 안 된다」
趙甲濟 지식인 사회에서 그처럼 명백하게 입장을 밝힌 것은 상당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우리 언론이 보도를 안 하는 겁니다. 구체적인 실천방안 가운데 하나인 유엔 對北 인권결의안에 대해 우리 정부의 태도가 바뀌도록 우리가 노력해야 합니다. 「비료 50만t을 주지 말라」는 쪽으로 노력하고, 우리도 북한인권법안을 만들자 하는 쪽으로 노력해야 합니다. 그간 총론적인 쪽에 노력을 기울였는데, 이제 각론 쪽으로 가야 합니다.
지금까지 구체적으로 일이 안 된 건 손발이 적었기 때문입니다. 직업적인 애국운동가 1000명이 있으면 세상이 바뀝니다. 1000명을 먹여 살리는 건 어떻게 보면 간단합니다. 자본주의를 지키겠다는 세력이 돈이 모자란다는 것은 모금 능력이 없든지, 한국 사람들이 양심이 없든지 둘 중 하나라고 봅니다. 그래도 金正日 붕괴의 가능성이 있으니까 여기에 중점을 크게 두고 밀고 나가는 사이에 좋은 일들이 생길 것입니다. 오랜 시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