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根 厚 의사
1935년 대구 출생. 경북大 의과대학 졸업. 이화女大 신경정신과 교수. 대한신경정신의학회장 역임. 열린마음의원장.
1935년 대구 출생. 경북大 의과대학 졸업. 이화女大 신경정신과 교수. 대한신경정신의학회장 역임. 열린마음의원장.
오래 전 이야기다.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되던 해에 우리나라가 일제의 압박에서 해방이 되었다. 광복과 동시에 미군들이 진주하여 처음으로 서양문화를 접하게 되었다.
우리 꼬마들은 호기심에 미군부대 근처를 찾아갔다. 보초를 서던 미군이 우리들에게 「C레이션」이라는 낯선 군용 야전 양식을 몇 통 주었다. 레이션을 뜯어 보고 그 안에 들어 있던 신기한 먹거리들을 하나하나 챙겨 가면서 즐겼다.
그 안에서 처음으로 커피라는 것을 보게 되었는데 설명이 모두 영어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도무지 어떻게 먹어야 할지를 몰랐다. 친구들이 커피 봉지를 뜯어 맛을 보았는데 아주 썼다. 설탕이 함께 있는 것을 보면 타서 먹으라는 것인가. 머리를 굴려가면서 큰 냄비에 그 커피 가루를 넣고 열심히 끓였다. 쓴 한약 같은 맛이었지만 낯선 것이라 너도 나도 다투어 마셨다. 그 후 우리는 병원에 실려 갔다. 가슴이 콩닥콩닥 뛰고 숨도 가빠지고 두통도 나고… 그때 기억으로는 큰일이 날 것 같은 예감이었다.
이렇게 처음 맛본 커피를 본격적으로 마시기 시작한 것은 대학에 들어가서부터다. 다방엘 가면 으레 커피를 주문했다. 이런 습관은 학교 졸업 후 전문의가 되어 환자를 진료·회진할 때, 환자와 커피를 한 잔 나누며 대화를 나누곤 했었다.
1980년대 초 학회가 있어 빈(Wien)에 갔을 때 카페에 들른 적이 있었다. 『비엔나 커피…』 그렇게 주문을 해서 나온 커피맛이 영 아니었다.
내가 일생 동안 마셔 온 커피맛이 아니었다. 가짜인가? 내가 가짜(?) 맛에 익숙한 나머지 본고장의 비엔나 커피맛을 못 알아보았으니…. 적어도 나에겐 커피는 멋으로 마신 것이 아니었다. 나 같은 사람이 그런 이유로 커피를 마신다면 커피가 아마도 창피해할지도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