白 善 燁 예비역 대장
1920년 평남 강서 출생. 평양사범학교, 만주군관학교, 군사영어학교 졸업. 육군참모총장, 한국군 최초 육군 대장, 프랑스·캐나다 대사, 성우회 회장 역임. 태극무공훈장·미국 은성무공훈장. 저서 「軍과 나」 다수.
1920년 평남 강서 출생. 평양사범학교, 만주군관학교, 군사영어학교 졸업. 육군참모총장, 한국군 최초 육군 대장, 프랑스·캐나다 대사, 성우회 회장 역임. 태극무공훈장·미국 은성무공훈장. 저서 「軍과 나」 다수.
길고 무덥던 여름날인 1950년 8월, 多富洞(다부동) 전투에서 나는 커피 덕을 톡톡히 보았다. 彼我(피아) 8000여 명의 전사자를 낸 多富洞 전투에서는 야간 전투가 다반사였다. 잠은 고사하고 군화 벗을 여유조차 없었다. 참모들은 어디서 구했는지 커피를 내 수통에 가득 채워 놓았다. 수통의 커피는 밤에 졸음을 쫓아 주는 「각성제」였고, 때로는 「비상식량」이었다. 커피에는 당시 「貴物(귀물)」인 설탕까지 들어 있어 한 모금만 마셔도 정신이 번쩍 날 정도로 탈진한 몸에 힘이 됐다.
1958년 가을, 육군참모총장이었던 나는 영국, 서독, 프랑스, 이탈리아, 에티오피아, 태국 등 한국전 참전국들을 약 두 달간 순방하는 답례 여행길에 올랐다.
아프리카 유일의 참전국인 에티오피아에 도착했을 때, 하일레 셀라시에 1세(Haile Selassie Iㆍ1892~1975)가 우리를 대대적으로 환영했다.
셀라시에 1세는 그의 고향이자 別宮(별궁)이 있는 에티오피아 남부 「하라」로 우리 일행을 안내했다. 그곳에서 황제는 우리에게 육군의 군사 훈련을 참관하게 했다. 셀라시에 1세가 마련한 저녁 만찬에서 에티오피아의 전통 음식과 스테이크를 먹으며 에티오피아産 커피를 한 모금 마셔 보았다.
「아! 이것이 바로 원산지 커피맛이구나」
나는 에티오피아 커피맛이 美軍들과 연합작전을 하면서 마신 커피맛과는 색다른 맛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셀라시에 1세는 『에티오피아는 세계 최고의 커피 産地(산지)』라며, 『커피 수출로 얻은 외화가 우리나라의 가장 큰 財源(재원)』이라고 자랑했다.
지금도 한국군 1사단 작전처의 美 군사고문관 메이(May) 대위가 야전 텐트에서 나를 위해 미국 특유의 심심한 커피를 스테인리스 컵에다 끓여 주던 기억이 생생하다. 콜롬비아, 터키軍들도 자신들의 지휘소를 방문한 내게 제각기 自國(자국)의 독특한 커피를 대접했다. 한국전쟁은 민족의 悲劇(비극)이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세계 각국의 커피를 한 자리에서 맛볼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