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 恩 晶 성우
1936년 서울 출생. 숙명여대 영문학과 졸업. KBS 방송극회 1기. 한국성우협회 이사장, 現 방송위원회 방송언어특별위원회 위원장. 고은정언어학원장.
1936년 서울 출생. 숙명여대 영문학과 졸업. KBS 방송극회 1기. 한국성우협회 이사장, 現 방송위원회 방송언어특별위원회 위원장. 고은정언어학원장.
그랬던 시절 직함을 뽐내며 찾아온 명사 한 분과 다방에서 대면한 적이 있다. 용건이 특별하게 있는 것도 아니고, 처음 대면에 할 얘기도 없어 커피잔을 서둘러 비웠는데 이 사람이 갑자기 『한 잔 더 하십시오, 한 잔 더 해요』라며 마치 막걸리 한 잔 더 하라는 투로 호기를 부려 쓴웃음을 지은 일이 있다.
19세기 말 한국에 와서 살았던 선교사의 기록에는 일본이나 중국과 달리 유독 우리나라만 차를 마시지 않는 것을 기이하게 여기고 있었다. 사찰이나 궁중 등 극히 일부층의 기호품이었던 차가 보편적으로 확산되면서 커피는 차의 대명사가 되다시피 하더니 이제는 오히려 커피를 기피하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으니 우리처럼 커피가 겪는 우여곡절이 많은 나라도 없는 것 같다.
커피를 일본 발음으로 「고히」라고 부르던 시절부터 커피를 마신 나 개인의 역사도 그럭저럭 반세기가 훌쩍 넘었다.
커피에 飢渴(기갈)이 나서 마신 일도 없고 건강에 나쁘다고 기피하는 일도 없이 때로는 맛있게 때로는 그저 그렇게 마셨지만, 커피 하면 언제나 한 번쯤 떠오르는 추억이 있다. 처음으로 세계 여행을 떠났던 1970년대 프랑스 파리의 개선문 앞 노천 카페에서의 일이다.
저녁 늦은 시각에 호텔을 물어 물어 찾아 준 당시 KBS 특파원 L씨가 파리의 밤을 호텔에서 잠이나 자면 어쩌느냐고 부추겨 파리의 야경을 둘러보며 마셨던 카페오레 한 잔의 맛을 나는 지금도 혀끝에 되새기고 있다.
밤이 이슥하도록 나눴던 그 많은 삶의 얘기, 민족 얘기, 고국 얘기 등….
커피맛은 그런 것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