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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추적

‘1일 국회의원에게도 연금’ 법안의 탄생 내막

반대한 의원은 2명뿐이었다!

글 : 최우석  월간조선 기자  woosu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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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8월 김형오 의장 헌정회육성법 개정 의견 제시
⊙ 개정안 통과 당시 여야 수장은 각각 정몽준, 정세균
⊙ 좌파 대표하는 이정희도 2010년 운영위 법안심사소위에서 찬성 입장
⊙ 대한민국 부정하는 종북 성향 의원들도 평생 종신연금 혜택
죽기 살기로 싸웠던 여야는 자기들 노후 대비에는 한마음이었다. 2012년 5월 17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19대 국회 초선의원들을 위한 설명회가 열린 가운데 자리에 앉은 초선의원들이 기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는 모습.
  ‘금배지의 힘’은 대단하다.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종북(從北) 인사들도 국회의원만 되면 확실한 노후(老後)를 보장받을 수 있다. 대한민국헌정회육성법 일부개정법률안(헌정회육성법개정안)과 헌정회 정관(定款)에 따르면 단 하루라도 의원을 지낸 사람은 만 65세부터 매달 120만원(2012년 현재 기준)의 종신연금을 받을 수 있다. ‘의원 재직 시 제명(除名) 처분을 받을 경우 지급대상에서 제외된다’는 예외조항이 있지만, 우리 헌정사에서 국회의원이 제명된 것은 딱 두 번뿐이다.
 
  헌법과 국회법에는 국회의원 3분의 2 이상의 동의가 있으면 국회의원을 제명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분명히 있다. 하지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어 내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민주통합당 지도부도 “국회의원 자격 심사를 통해 제명할 수 있다”고 했다가 말을 바꿨다. 종북 논란의 중심에 선 이석기, 김재연 의원도 결국 ‘전직 의원 보너스’를 챙기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평생 월 120만원 누구 돈인가
 
  공무원연금 평균 수령액이 월 210만원, 사학연금 평균액이 월 240만원을 넘는 상황에서 “그 정도야…”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국민연금 수령자 중 월 120만원 이상을 받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더욱이 수년 전 국민연금법 개정으로 받는 돈이 대폭 줄어든 탓에 개정 이후 연금에 가입한 사람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월 120만원을 받지 못한다. 《조선일보》 김동섭(金東燮) 보건복지전문기자는 전문기자 칼럼을 통해 “최고액으로 보험료를 30년간 내도 월 89만원, 40년을 내야 겨우 117만원을 받는다. 이런 사람들은 ‘월 120만원 의원연금’에 절망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럼에도 국회의원들은 한 푼 기여한 바도 없이 국민연금 가입자보다 더 많은 연금을 챙기는 셈이다.
 
  평균수명이 늘어난 요즘 80대 중반까지 사는 건 보통이다. 전직 의원이 65세부터 80대 중반까지 약 20년 동안 월 120만원씩 받으면 종신연금 총액은 3억원 정도가 된다. 국회의원 당선의 보너스가 3억원짜리 로또복권 당첨인 셈이다.
 
  이렇게도 황당한 국회의원 연금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전직 국회의원 모임인 헌정회가 1988년 70세 이상 연로(年老) 회원들의 최소생활 보장과 품위유지를 위한 사업비 명목으로 국고에서 지원받은 자금 일부를 떼어내 연로회원보조금 명목으로 다달이 20만원씩 지급했을 때 처음 제기됐다.
 
  당시 정치권은 이를 그냥 보아 넘기지 않았다. 여야 정치권은 전직 국회의원 모임에 대한 특혜라는 국민의 비판 목소리가 높았음에도 1991년 4월 16일 ‘헌정회육성법’ 제정(制定)을 밀어붙여 처리했다. 민자당 김종호(金宗鎬) 원내총무, 서정화(徐廷和) 수석부총무와 신민당 김영배(金令培) 원내총무, 김덕규(金德圭) 수석부총무 등이 중심이 됐다.
 
  법은 ‘운영비’만을 지출할 수 있도록 규정했지만, 국회는 변칙적으로 예산을 지급, 연로 회원이 매달 받는 보조금은 1996년 30만원, 1997년 50만원, 2000년 65만원, 2002년 80만원, 2004년에는 100만원, 2009년에는 110만원으로 올렸다. 간혹 정치권에서 “명확한 법적 근거도 없이 국회사무처 예산에서 연로회원지원금이 지급됐다. 법적 근거 없는 예산집행과 지출은 명백한 불법이다”(새천년민주당 김택기 의원, 2000년) “민주노동당은 헌정회 연로회원지원금 폐지를 당의 국회개혁 과제 18개 항 가운데 하나로 채택했다”(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 2004년) 등 헌정회 연로 회원 지원 문제가 제기되기도 했지만, 본격적으로 문제 삼은 의원은 없었다. 동병상련 탓이런가.
 
 
  헌정회육성법 개정 이정희도 찬성
 
헌정회육성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할 당시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수장은 각각 정몽준 정세균 의원이었다. 2009년 12월 9일 국회에서 구 국회의장 공관에 입주하게 된 헌정회 회관 입주식에서 만난 두 사람이 인사하고 있는 모습.
  비난 여론은 2010년 극에 달했다. 같은 해 2월 관행적으로 연로 회원에게 지급해 온 지원금을 법제화한 헌정회육성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법안은 2월 국회에서 처리됐지만, 대중에게는 6개월이 지난 8월에야 알려졌다. 전기톱·해머·최루탄을 던지고 휘두르며 죽기 살기로 싸웠던 여야는 자기들 노후 대비에는 한마음이었다.
 
  시곗바늘을 당시로 돌려 봤다. 2010년 2월 17일 국회의 소관 상임위원회인 운영위원회 법안심사소위는 2009년 8월 7일 국회의장(김형오)이 개정 의견으로 제시한 헌정회육성법 개정안을 심사 중이었다. 이날 소위에 출석한 의원들은 일사천리로 법안의 일부 내용을 수정, 위원회 안(案)으로 제안하기로 의결했다. 주목되는 점은 전직 국회의원 연금 지급에 회의적(懷疑的)이었던 통합민주당의 수장인 이정희(李正姬) 전 의원도 헌정회육성법 개정에 찬성 의견을 밝힌 것이다.
 
  2010년 2월 17일 운영위원회 법안심사소위 회의록의 일부분이다.
 
  <이정희 위원 “저도 좀 여쭤 보고 싶은데요.
 
  소위원장 김정훈 “이정희 위원님 말씀해 주십시오.
 
  이정희 위원 “제가 신·구 조문대비표를 못 봐서 그런데요. 지금 현행법은 국회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헌정회 운영에 필요한 보조금을 교부할 수 있다고 되어 있잖아요?
 
  수석전문위원 김성곤 “예, 그렇습니다.”
 
  이정희 위원 “그런데 연로 회원 지원에 관한 보조금을 교부할 수 있도록 하면 실제로 얼마 정도를 더 교부받아야 된다고 보시는 건가요?”
 
  수석전문위원 김성곤 “돈 나가는 것은 현재하고 같습니다. 그런데 운영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실제로 지원금만 나가고 있거든요.”
 
  사무차장 임인규 “사무차장입니다. 지금 예산사업으로 120만원 주고 있는 것을 법적 근거를 둬 가지고 제도화하자는 그런 취지입니다.
 
  이정희 위원 “그동안에는 근거가 없었다는 말씀이십니까?”
 
  사무차장 임인규 “예, 예산사업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이정희 위원 “보조금의 액수는 달라지는 것이 없습니까?”
 
  수석전문위원 김성곤 “같습니다.”
 
  (중략)
 
  소위원장 김정훈 “다음 의사일정 제144항 대한민국헌정회육성법 일부개정법률안은 이상에서 논의한 소위원회의 내용을 반영하여 우리 위원회 안으로 제안하고자 하는데 이의 없으십니까? (‘없습니다’ 하는 위원 있음) 가결되었음을 선포합니다.”>
 
 
  헌정회육성법 개정안 처리 一瀉千里로 진행
 
번복하긴 했지만 이정희 전 의원(오른쪽)은 2010년 2월 17일 운영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 헌정회육성법 개정안을 찬성했다. 이 전 의원 옆은 종북 논란의 중심에 선 김재연 의원.
  운영위원회는 일주일 뒤인 24일 동 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 의결된 헌정회육성법 개정안을 제안했다.
 
  제안자는 운영위원장이었다. 당시 운영위원장은 한나라당 원내대표였던 안상수(安商守) 전 의원이었다. 운영위원장은 여당 혹은 원내 제1당의 원내대표가 맡는 게 관행(慣行)이다. 한나라당은 정몽준, 민주당은 정세균 대표 체제였다. 실제는 양당의 전체 의견으로 봄이 타당하다.
 
  이날 10시33분 위원장인 안상수 전 의원은 헌정회육성법 개정안을 포함한 8건의 개정안을 일괄상정하고 나서 김정훈(金正薰) 법안심사소위원장에게 소위원회 심사결과를 보고하라고 했다. 김 위원장은 “의장이 의견을 제시한 대한민국헌정회육성법 일부개정법률안은 대한민국헌정회 연로 회원에 대해 지급되는 지원금의 법적 근거를 명확히 하고, 연로회원지원금의 지급 대상 및 지급 금액 등 필요한 사항은 헌정회 정관으로 정하도록 하며, 헌정회의 장에게 연로회원지원금 해당 여부의 확인을 위하여 필요한 자료의 제공을 관계 기관에 요청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자 하는 것으로 이를 심사한 결과, 주요 내용은 의장 의견대로 의결하되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헌정회의 장이 관계 기관에 자료를 요청할 경우 연로 회원 본인의 동의를 얻도록 수정하여 위원회 안을 제안하기로 했다”고 보고했다.
 
  보고가 끝나자 안 전 의원은 “다음 의사일정 제4항 대한민국헌정회육성법 일부개정법률안은 소위원회에서 심사보고한 내용을 우리 위원회 안으로 채택하고자 하는데 이의 없으십니까?”라고 물었다. ‘없습니다’고 답하는 위원들이 나오자 헌정회육성법 개정안을 처리한 뒤 법제사법위원회에 올렸다. 당시 운영위원회 회의에는 안 전 의원을 비롯하여 김동성·김재윤·김정훈·노철래·류근찬·박보환·배은희·손범규·안효대·우윤근·원희목·이학재·장제원·전혜숙 등 15명의 여야 위원이 참석했다.
 
  같은 날 15시09분 법제사법위원회에서는 운영위원회로부터 올라온 헌정회육성법 개정안을 우선 처리하기 위해 의사일정 상정 순서를 바꿨다. 이날 법사위가 처리할 안건은 119개였는데 이 중 헌정회육성법 개정안의 처리 순서는 114번째였다.
 
  회의록을 토대로 당시 상황을 재구성해 봤다.
 
  “의사일정 상정 순서를 바꾸어서 의사일정 제114항부터 119항까지를 먼저 상정하겠습니다. 의사일정 제114항 대한민국헌정회육성법 일부개정법률안(위원회 안), 의사일정 제115항 국회법 일부개정법률안(위원회 안), 의사일정 제116항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위원회 안), 의사일정 제117항 국회에서의 증언 및 감정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위원회 안), 의사일정 제118항 국회의원수당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위원회 안), 의사일정 제119항 박지원 의원이 대표 발의한 대통령 등의 경호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 이상 6건을 일괄해서 상정합니다. 이상 6건의 법률안에 대해서 우윤근(禹潤根) 위원 나오셔서 제안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유선호(柳宣浩) 법제사법위원장의 말이 끝나자 우윤근 위원이 제안설명을 시작했다.
 
  우 위원은 “존경하는 유선호 법사위원장님, 그리고 선배, 동료 위원 여러분! 국회운영위원회의 우윤근 의원입니다. 먼저 대한민국헌정회육성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해서 설명드리겠습니다. 동 법률안은 현재 65세 이상 연로 회원에 대해 지급되고 있는 지원금의 법적 근거를 명확히 하고, 대한민국헌정회의 연로회원지원금 지급과 운영에 대한 국회의 관리, 감독을 체계화하고 합리적으로 개선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헌정회에서 연로 회원에 대해서 연로회원지원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법률에다가 그 지원금 지급 근거를 규정하고자 하는 것입니다”라고 했다. 법안 설명이 끝났고 이곳에서도 역시 이의를 제기하는 위원은 없었다. 당시 출석 위원은 14명(노철래·박민식·박영선·박지원·손범규·우윤근·유선호·이주영·이춘석·이한성·장윤석·주광덕·최병국·홍일표)이었다.
 
 
 
강기갑 포함, 재석 191명 중 187인이 찬성표

 
헌정회육성법 개정 의견은 2009년 김형오 의장이 제안했다.
  헌정회육성법 개정안은 아무 문제 없이 본회의에 상정됐다. 본회의는 하루 뒤인 25일 14시20분 열렸다. 한 시간이 조금 넘은 15시33분 당시 부의장이던 이윤성(李允盛) 의원은 김형오 국회의장으로부터 의사봉을 넘겨받아 헌정회육성법 개정안을 포함, 6건의 개정안을 일괄 상정했다.
 
  국회운영위원회의 우윤근 위원은 “동 법률안은 국회의장이 제시한 대한민국헌정회육성법 개정 의견에 대해서 우리 위원회가 심도 있게 논의한 결과 이를 위원회 안으로 제안키로 의결한 것으로 현재 65세 이상의 연로 회원에 대해서 지급하고 있는 지원금의 법적 근거를 명확히 하고, 대한민국헌정회의 연로회원지원금 지급과 운영에 대한 국회의 관리 감독을 체계화하고 합리적으로 개선하고자 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단말기의 회의자료를 참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라고 심사보고 및 제안설명을 했다. 곧이어 투표가 시작됐고 재석 191인 가운데 찬성 187인, 반대 2인, 기권 2인으로 헌정회육성법 개정안은 가결됐다. 18대 국회의원이었던 통합진보당 강기갑(姜基甲) 혁신비상대책위원장도 찬성표를 던졌다.
 
  통과된 헌정회육성법 개정안은 기존의 제정안 제2조 1항 중 ‘헌정회에 대하여 그 운영에 필요한 자금과 비용’ 부분을 ‘헌정회에 대하여 그 운영과 연로 회원에 필요한 지금과 비용’으로 고쳤다. 수정된 2조 1항은 다음과 같다.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는 헌정회에 대하여 그 운영 및 연로 회원(회원 중 65세 이상인 자를 말한다. 이하 같다) 지원에 필요한 자금과 비용 등에 충당하기 위하여 보조금을 교부할 수 있다.”
 
  또 ① 헌정회는 연로 회원에 대하여 지원금(이하 “연로회원지원금”이라 한다)을 지급할 수 있다. ② 연로회원지원금의 지급대상 및 지급금액 등 필요한 사항은 정관으로 정한다. ③ 헌정회의 장은 제2항에 따른 지급대상 해당 여부의 확인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 본인의 동의를 받아 국가기관, 공직유관단체, 그 밖의 공공기관의 장에게 해당 자료의 제공을 요청할 수 있으며, 요청받은 기관·단체의 장은 다른 법령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지체없이 자료를 제공하여야 한다는 2조 2항도 신설됐다. 결론적으로 관행에 따라 지급되던 지원금을 법으로 명문화한 것이다.
 
  전직 의원들에게 종신연금을 지급하는 것을 골자로 한 헌정회육성법 개정안이 관련 상임위인 국회 운영위에서 본회의 통과까지 걸린 시간은 열흘이 채 안됐다. 운영위원회, 법사위원회, 본회의에 이르는 심의 절차를 단 하루 만에 찬반토론 없이 통과시켰기에 가능했다. 지난 18대 국회가 북한인권법, 국방개혁 관련법들을 내팽개친 ‘무책임 국회’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심히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는 지적이다.
 
  여론의 비판이 거세지자 당시 의원이었던 이정희 등 일부 의원들이 종신연금을 못 주도록 하는 헌정회육성법 개정안을 만들었지만 흐지부지됐다. 사실 개정안 발의 자체가 ‘쇼’라는 비판이 많았다. 이 전 의원도 처음에는 헌정회육성법 개정안에 찬성한 데다 국회의원 대부분이 내심 종신연금 폐지에 반대하는 상황에서 발의한 법안이기 때문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들통나지 않았으면 그냥 지나갔을 것”이라고 했다.
 
 
  “후다닥 처리하다 보니…”
 
  살벌한 정쟁에 매달렸던 여야가 한마음으로 헌정회육성법 개정안을 처리한 이유는 ‘특권의식’ 때문이다. 외국과 달리 우리나라의 전·현직 국회의원들은 의원직을 ‘4년간 봉사하는 임시직’이 아닌 ‘부와 권력의 상징’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짙다. 특히 전직 국회의원들은 현역 때 누렸던 200여 개의 특권을 영원히 누리고 싶어한다. 정치권에서 헌정회육성법 개정안 처리를 위해 헌정회 측이 꾸준히 로비를 해 왔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나도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현역들도 언젠가는 전직이 되기 마련이다.
 
  최근 헌정회는 인천국제공항에 VIP 주차장을 이용하게 해 달라고 요구해 물의를 빚었다. 공항의 VIP 주차장은 주요 인사들이 ‘귀빈실’을 이용하기 위해 별도로 주차하는 공간으로, 귀빈실 이용 자격은 ‘공항에서의 귀빈예우에 관한 규칙’ 등에 따라 전·현직 대통령, 전·현직 3부 요인(국회의장·국무총리·대법원장), 정당의 대표 및 현직 국회의원 등이다. 이 사건만 보더라도 권한만 누리려고 하는 그들의 특권, 특혜 의식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을 잘 알 수 있다. 헌정회 사무처 관계자는 “공항 사정을 봐 가면서 일부 원로에 한해 주차장을 쓸 수 있도록 요청한 것일 뿐, 특혜를 누리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반박했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없다.
 
  김형오 전 의장에게 2009년 8월 7일, 논란이 있을 수밖에 없었던 헌정회육성법 개정 의견을 제시한 이유를 물었다. 최근까지 터키를 방문했다는 그는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 다음은 김 전 의장과의 일문일답.
 
  ―91년 제정 이후 개정되지 않았던 헌정회육성법의 개정 의견을 제시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전직 국회의원 중에는 식대가 없어서 밥을 굶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루에도 식권을 타기 위해 헌정회를 방문하는 사람이 100명이 넘습니다. 선배 의원들이 이렇게 힘들게 사는데 어떻게 그냥 넘어갈 수 있습니까?”
 
  ―그렇지만 하루만 국회의원을 해도 평생 종신연금을 받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요.
 
  “그렇죠. 그래서 제가 개정 의견을 내면서, 생활이 풍족하거나 임기가 짧았던 전직 의원들에게까지 연금을 지급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이런 점을 잘 논의해서 법안을 처리하라고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그렇다면 운영위원회에서 법안을 잘 검토하지 않고 처리한 것으로 봐도 됩니까.
 
  “(법안 논의를)내밀하게 했어야 됐는데, 후다닥 처리하다 보니….”
 
  ―헌정회 측에서 법안을 개정해 달라는 로비가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로비는 없었어요. 다만 헌정회 예산을 올리기 위해 선배 의원들이 현역 운영위 소속 의원들에게 고개 숙이고 부탁하고 하는 것을 자존심 상해했어요. 그쪽(운영위원회)에서 예산을 배정하는 과정에서 인격적으로 모멸감을 줘 가면서 한 모양이더라고요. 이런 부분을 저에게 건의하기도 했는데 그래서 제가 ‘이왕 지원을 할 거면 법적으로 근거를 마련해서 하자’고 판단해 헌정회육성법의 개정 의견을 제시한 것입니다.”
 
  ―국민연금 수령자 중 월 120만원 이상을 받는 사람은 극히 드뭅니다.
 
  “제가 기자 출신인데요. 기자들도 퇴직금만 있고 연금은 없습니다. 그런데 국회의원들은 연금도 없어요. 물론 그 전에도 지원금이 지급되긴 했지만 불쌍한 분들 많습니다. 저야 상황이 괜찮은 편이지만 국회의장 출신 선배 중에도 어렵게 사는 분들이 있습니다. 국회의장의 의전서열은 대통령 다음인데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없어요. 대통령 경호는 ‘삐까뻔쩍’하지 않습니까.”
 
  ―정치권이 연로회원지원금 지급을 전면 재검토한다는 방침을 세웠는데요.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국회의원을 하루만 했는데도 연금을 지급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생활이 넉넉한 분들도 마찬가지지요. 하지만 어려운 분들에게는 연금이 지급돼야 한다고 봅니다. 지금 헌정회가 굉장히 욕을 먹고 있는데. 뭐 (정치권에서) 알아서 잘하겠지요.”
 
 
 
금배지 종신연금 특혜 폐지 움직임

 
  새누리당은 헌정회육성법 개정안으로 인해 지급되는 ‘연로회원지원금’ 지급을 전면 재검토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현재 원내대표단 차원에서 전액 국고로 충당되는 재원을 수익자도 부담하도록 하거나, 재직 기간이나 재산에 따라 차등 지급하는 방안 등이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위해 원내지도부는 전직 국회의원 모임인 ‘헌정회’ 측과 의견 교환을 하고 있으며, 기존 회원들에 대한 혜택 축소는 최소화하면서 19대 국회의원들부터 적용하는 것으로 절충 방안을 찾고 있다. 새누리당 이한구(李漢久) 원내대표는 “우리가 정권을 잡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국민의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다. 확실히 우리가 달라지는 모습을 보이지 못하면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며 개혁 의지를 확실히 했다.
 
  민주통합당 박지원(朴智元) 원내대표도 “임기를 단 하루만 해도 연금 대상자가 되는 것은 불합리하고, 생활이 좋은 분이 구태여 연금을 탈 필요가 있겠는가”라고 반문한 뒤 “헌정회가 국회와 협의하면 합리적 안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치권은 늘 이런 식이었다. 자신을 돌보다 여론이 들끓으면 짐짓 물러서는 시늉을 한다. 그러다 여론이 잠잠해지면 ‘언제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듯’ 은근슬쩍 넘어간다. 대선이 있는 해인 만큼 ‘헌정회육성법 개정안’에 대해 말은 많겠지만, 그들이 진짜 ‘1일 국회의원 연금법’을 고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들도 곧 ‘연금 대상’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국회의원의 현 수준이다.⊙
 

  2010년 2월 25일
  제287회 10차 본회의 대한민국헌정회육성법 일부 개정법률안 투표 결과

  (총 297명 중 찬성 187명 반대 2명 기권 2명 불참 68명 출장 5명 청가 9명 결석 24명)
 
  찬성
  한나라당: 120명 (강길부 강명순 강석호 강성천 강승규 강용석 고승덕 고흥길 공성진 권경석 권영진 권택기 김금래 김기현 김동성 김무성 김선동 김성수 김성식 김성조 김성태 김세연 김소남 김영선 김영우 김옥이 김장수 김정권 김정훈 김태원 김태환 김학송 김학용 김효재 나경원 나성린 박근혜 박대해 박민식 박보환 박순자 박영아 박종근 박준선 배영식 배은희 백성운 서병수 손범규 손숙미 신성범 신지호 심재철 안상수 안형환 안홍준 안효대 원유철 원희목 유기준 유승민 유일호 유재중 유정복 윤상현 윤석용 윤영 이계진 이군현 이두아 이명규 이범관 이범래 이병석 이사철 이성헌 이애주 이인기 이정선 이정현 이종구 이종혁 이주영 이진복 이철우 이학재 이한구 이한성 이혜훈 이화수 임동규 장윤석 장제원 전여옥 정갑윤 정두언 정병국 정옥임 정의화 정진섭 정태근 정희수 조문환 조원진 조진래 조진형 조해진 주광덕 주성영 진성호 진영 최구식 최병국 허원제 허태열 현경병 현기환 홍일표 홍준표 황영철)
  민주당: 42명 (강창일 김부겸 김성곤 김성순 김영환 김유정 김재균 김재윤 김춘진 김충조 김효석 노영민 박기춘 박병석 박상천 박선숙 박은수 백원우 백재현 서종표 신학용 안규백 안민석 양승조 우윤근 우제창 이강래 이낙연 이성남 이종걸 이찬열 이춘석 전혜숙 정동영 정장선 조경태 최규식 최문순 최인기 최철국 홍영표 홍재형)
  민주노동당: 3명 (강기갑 곽정숙 권영길)
  무소속: 4명 ( 송훈석 유성엽 정수성 최연희 )
  자유선진당: 13명 (권선택 김낙성 김용구 류근찬 박상돈 박선영 변웅전 이명수 이상민 이영애 이용희 이진삼 이회창)
  친박연대: 5명 (김정 김혜성 송영선 정영희 정하균)
 
  반대(2명)
  진보신당: 1명 (조승수)
  창조한국당: 1명 (이용경)
 
  기권(2명)
  한나라당: 1명 (정해걸)
  민주당: 1명 (최영희)
 
  불참(68명)
  한나라당: 29명 (구상찬 권영세 김성회 김용태 김충환 남경필 박상은 박진 신상진 신영수 안경률 여상규 원희룡 유정현 이상득 이윤성 이은재 이춘식 이해봉 장광근 정몽준 정미경 정양석 조전혁 차명진 홍사덕 홍정욱 황우여 황진하)
  민주노동당: 1명 (홍희덕)
  민주당: 30명 (강기정 강봉균 강성종 김동철 김상희 김진애 김희철 문학진 문희상 박영선 박주선 변재일 서갑원 송영길 신건 신낙균 오제세 원혜영 유선호 이미경 이석현 이용섭 이윤석 장세환 전병헌 전현희 조배숙 조정식 최규성 추미애)
  무소속 :2명 (김형오 이인제)
  자유선진당 : 4명 (김창수 이재선 임영호 조순형)
  친박연대 : 2명 (노철래 윤상일)
 
  출장(5명)
  한나라당: 3명 (성윤환 이경재 한선교)
  민주당: 2명 (조영택 천정배)
 
  청가(9명)
  한나라당: 3명 (송광호 임해규 정진석)
  민주당 : 5명 (김영록 김우남 정범구 주승용 최재성)
  창조한국당: 1명 (유원일)
 
  결석(24명)
  한나라당: 13명 (권성동 김광림 김재경 박희태 서상기 임두성 임태희 전재희 조윤선 주호영 진수희 최경환 허천)
  민주노동당: 1명 (이정희)
  민주당: 8명 (강운태 김영진 김진표 박지원 송민순 이광재 이시종 정세균)
  무소속: 1명 (심대평)
  친박연대: 1명 (김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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