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탈북자 단체 간부로 활동하며 10년여 위장… 정찰총국 지령 수령 후 “배신자에 대한 강력한 경고”
⊙ 공작금 1277만원 받아 대포폰과 베트남 도피 항공권 등 구입… 범행 전 시체유기 장소 답사까지 마쳐
⊙ 감시망 피하기 위해 수ㆍ발신 흔적 없이 ‘임시우편함’에 메시지 남기는 ‘사이버 드보크’ 기술 활용
⊙ 국정원 수사관, 맨주먹으로 차창유리 깨부수고 범인 체포한 사연
⊙ “김정일은 내게 ‘악마의 독침’을 날리려다 실패했지만, 나는 김정일을 향한 ‘진실의 독침’(대북전단)을
오늘도 날린다”(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
⊙ 공작금 1277만원 받아 대포폰과 베트남 도피 항공권 등 구입… 범행 전 시체유기 장소 답사까지 마쳐
⊙ 감시망 피하기 위해 수ㆍ발신 흔적 없이 ‘임시우편함’에 메시지 남기는 ‘사이버 드보크’ 기술 활용
⊙ 국정원 수사관, 맨주먹으로 차창유리 깨부수고 범인 체포한 사연
⊙ “김정일은 내게 ‘악마의 독침’을 날리려다 실패했지만, 나는 김정일을 향한 ‘진실의 독침’(대북전단)을
오늘도 날린다”(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
지난 9월 3일 오후 4시10분. 탈북자 안모(54)씨가 서울 강남 한 일식집에 들어섰다. 평범한 옷차림에 작은 서류가방을 든 이 40대 남자를 종업원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예약된 자리에 앉은 그는 애써 태연한 척했지만, 불안한 기색을 완전히 감출 순 없었다. 양복바지 오른쪽 주머니에 든 만년필형(型) 단발 독총, 왼쪽 주머니에 든 독약, 서류가방에 든 손전등형 독총이 계속 신경 쓰였다.
몽골에서 이미 수차례 독침과 독총의 사용법을 익힌 터, 안씨는 ‘목표물’만 도착하면 즉시 암살이 가능하리라 생각했다. 이날 안씨와 만남을 약속한 인물은 탈북자 박상학(朴相學ㆍ43)씨로, 대북전단(삐라)을 주기적으로 북한에 날리는 등 반(反) 김정일(金正日) 통일운동을 활발히 펼쳐온 대북운동가다.
잠시 후, 안씨는 ‘뭔가 이상하다’란 느낌이 들었다. 암살 타깃인 박씨는 여전히 도착하지 않았다. 식당 내부를 살피던 그는 이내 식당 출입구로 이동해 나갈 듯 말 듯 망설이다가, 계산대에 서 있던 종업원에게 자신의 차 열쇠를 달라고 했다. 열쇠를 건네받은 그는 들고 있던 서류가방을 차에 밀어넣었다.
순간 한 건장한 남자가 그를 덮쳤다. 안씨는 황급히 차에 올라타 문을 잠갔다. 시동이 걸린 차는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때 다른 남자가 차 앞을 몸으로 가로막았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안씨는 우물쭈물했다. 이때 차 옆에 있던 남자가 운전석 창문을 맨주먹으로 깨부쉈다. 유리창은 산산조각났고, 안씨는 순식간에 제압당했다. 남자들은 범인의 자살을 막기 위해 독총과 독침 등 증거품부터 압수했다. 국가정보원 수사관들이 테러범 현장 체포에 성공하는 순간이었다.
2주간 3차례 독침 공격
북한의 ‘독침테러’가 다시 시작됐다. 1996년 10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최덕근(崔德根) 영사가 북한 간첩으로 추정되는 괴한의 독침에 피살된 후 15년간 뜸했던 독침 공격이 지난 8월부터 2주 동안 총 세 차례 서울과 중국 동북 3성 일대에서 잇달아 발생했다. 지난 8월 21일 중국 단둥(丹東) 시내 한 백화점 앞에서 대북(對北)선교사 패트릭 김(46) 목사가 택시를 기다리던 중 갑자기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져 병원으로 호송됐으나 숨졌다.
김 목사가 평소 탈북자를 돕고 김정일 비판 문건과 성경 등을 북한에 밀반입한 활동 정황과, 사망 전 북한이 직간접적으로 대북선교사들에게 “반드시 응징하겠다”고 위협한 사실을 볼 때, 북한 간첩의 소행으로 추정된다. 《중앙일보》는 재중(在中) 대북 소식통을 인용해 “정찰총국이 사건의 배후이며, 고도로 훈련된 정보요원이 사전에 공격 대상자를 선별했다”고 보도했다.
김 목사 사망 다음 날인 22일 옌지(延吉)의 한 주차장에선 대북 선교 활동을 하던 한국인 강모(58) 목사가 차에 타려다 괴한의 주사기 공격을 받고 쓰러졌다. 강 목사는 병원으로 긴급 호송돼 목숨을 구했다. 북ㆍ중 접경의 동서 양끝에서 하루 시차를 두고 ‘독침 공격’이 자행된 셈이다.
1996년 옌지에서 발생한 기아자동차 기술훈련원 박병현(朴炳鉉ㆍ당시 54세) 원장 피살 사건도 북한 소행으로 추정되며, 1982년 망명해 김정일의 사생활을 폭로한 김정일 전처(성혜림)의 조카인 이한영(李韓永)씨도 1997년 북한의 남파 공작원에 의해 살해됐다.
과거 박정희(朴正熙)ㆍ전두환(全斗煥) 대통령 등 한국 최고위급 인사를 겨눴던 북한의 테러 목표가 최근 탈북자 단체 간부, 북한인권운동가, 대북선교사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들의 활동이 김정일 체제에 치명적인 위협을 가한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사례다.
이번 독침테러 사건의 타깃이 된 박상학씨는 대남(對南)공작부서 ‘35호실’에서 고위급 공작원으로 활동하다 1999년 일본으로 탈출한 박건길(朴健吉·70)씨의 아들로, 2004년부터 김정일의 악행과 가계도를 폭로하는 대북전단을 휴전선 인근에서 대량 살포해 왔다. 북한은 끊임없이 정부에 이를 중단시키라고 협박했고, 남한 좌파단체들은 전단 살포 저지를 위해 현장에서 박씨와 몸싸움을 벌였다.
“공화국에 못되게 논다. 손봐줘야”
정보당국과 박상학씨에 따르면, 간첩 안씨는 지난 2월경부터 박씨에게 접근하기 시작했다. 박씨는 “안씨가 탈북자 단체의 간부라 서로 알고 지냈는데, 2005~06년경 행적을 감췄다 다시 연락이 온 것”이라며 “탈북자로 위장한 간첩이 10년 정도 내부적응 기간을 거친 후 활동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 있는데, 안씨가 1995년 탈북한 사실을 볼 때 시기상 일리가 있다”고 했다.
탈북 후 국내 탈북자 단체의 사무국장을 맡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해온 안씨는 2005년경 활동이 뜸해진 후 사업에 나섰다. 그는 2010년 3월부터 몽골을 왕래하며 북한 평안북도 의주의 ‘황치령 샘물’ 개발 합작사업 등 남북경협을 추진한다는 이유로 북한 측 인사와 자주 접촉했다.
같은 해 7월, 안씨는 울란바토르 시내의 한 커피숍에서 북한 정찰총국 소속 간첩 C를 만났다. C는 안씨에게 “대북사업을 도와주겠다”며 “서로 믿기 위해 필요한 ‘자서전’을 제출하라”고 했고, 안씨는 ▲출생 ▲성장과정 ▲탈북경위 ▲남한정착생활 등의 내용이 담긴 5장 분량의 문서를 작성해 주고 귀국했다.
2달 후 C를 만나기 위해 몽골로 출국한 안씨는 C의 소개로 그의 상관인 간첩 K를 만났다. C와 함께 정찰총국 소속인 K는 북한대사관에 안씨를 수차례 불러 사업 논의를 진행해 왔다.
올해 3월 31일 몽골로 출국한 안씨는 울란바토르 시내 프랑스 레스토랑, 커피숍, 북한대사관 등에서 세 차례 K와 만났다. 이때 K는 1997년 황장엽(黃長燁ㆍ작년 10월 사망) 전(前) 노동당 비서와 함께 망명한 김덕홍(金德弘) 전 여광무역 대표를 암살하라는 지령을 안씨에게 내렸다. 안씨가 북한 항공육전대 출신으로 20여 년간 군 복무했다는 사실을 파악한 K는 “김덕홍 암살에 성공하면 북한 내(內) 통제구역에서 생활하는 가족들을 평양으로 옮겨 편하게 살 수 있도록 해주고, 사업에도 도움을 주겠다”며 안씨를 회유했다. 이때 K는 박상학씨에 대해 “공화국(북한)에 못되게 놀고 있다. 손봐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사용법 익히려 수차례 실습
당시 K는 북한대사관 직원에게 노트북을 가져오라 해 미리 저장해 놓은 동영상을 안씨에게 보여줬다. 내용은 북한에 있는 안씨의 아버지 산소를 촬영한 것이었다. K는 “(당신) 어머니는 잘 계신다. 죽기 전에 아들을 꼭 만나보고 싶어 한다”며 가족의 근황을 알려주고, 이를 빌미로 “반드시 (암살) 임무를 완수하라”고 압박했다.
4월 3일, 독침과 독총 등 암살도구가 제공됐다. K는 북한대사관에서 안씨를 만나 “우리가 여러 가지 장비를 가지고 왔다. 한번 보라”며 독총 2정(만년필형ㆍ손전등형 각 1정), 독침(볼펜형) 1개, 독약 캡슐 3개 등을 꺼내 보여줬다. K는 볼펜형 독침을 안씨 눈앞에 들이대고 “이 뚜껑을 잡고 오른쪽으로 다섯 바퀴 돌려 누르면 침이 나온다. 이를 찌르기만 하면 된다. 단발형 독총도 똑같이 뚜껑을 오른쪽으로 다섯 바퀴 돌리면 장전이 되고, 뚜껑을 밀거나 당기면 발사된다”며 사용법을 알려줬다.
또 손전등형 독총을 들고선 “검은색 마개를 떼어내고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된다. 1발 발사 후 버튼을 다시 누르면 장전이 되고, 다시 누르면 또 발사가 된다. 이런 식으로 세 발까지 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무기 시연도 그 자리에서 이뤄졌다. K는 손전등형 독총을 손에 든 채 “이걸로 실습을 해보자. 내가 시범을 보이겠다”며 손전등을 비추듯 손을 앞으로 뻗었다. 4~5m 앞엔 미리 준비해 놓은 합판이 놓여 있었다. K가 버튼을 누르는 순간 ‘핑’ 소리와 함께 약한 화약 냄새가 났다. 발사된 탄환은 합판을 관통했다.
K는 “이건 연습용이라 독도 없고 그냥 발사만 되니 실제로 한 번 쏴보라”며 총을 안씨에게 건넸다. 안씨는 사격 직후 ‘위력이 상당하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독총 사격 연습을 마친 후, K는 암살에 필요한 폭탄 제조법도 알려줬다. “독침만으로 살해하면 잡힐 수밖에 없다”는 이유였다. K는 “폭약 원료는 한국에서 구할 수 있으니, 신관(기폭장치) 제조법만 알려주겠다”며 20여 분간 설명했다.
설명과 시연을 마치니 오후 5시였다. 안씨는 K 일행과 함께 북한대사관에서 나와 대통령궁 앞 수흐바타르 광장 인근의 ‘평양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헤어졌다.
2~3일 후, 간첩 C는 안씨에게 전화를 걸어 “수흐바타르 광장 옆 백화점에서 만나자”고 했고, 안씨는 약속장소에 나가 대기하고 있던 C의 차에 탔다. 목적지는 북한대사관, 만남 상대는 K였다. 안씨와 단독으로 만난 K는 “김덕홍을 반드시 처리하라. 그도 사람이니 움직일 것이다. 외부 식당에서 식사할 때나 운동할 때 접근해서 처리하라. 전승기념일(7월 27일)까지 반드시 임무를 완수하라”고 지시하며, 독총과 독침 등 암살 무기 일체를 안씨에게 건넸다.
‘사이버 드보크’
공안당국의 수사결과에 따르면, 무기에 장전된 독약은 ‘브롬화네오스티그민(neostigmine bromide)’이란 성분으로, 청산가리보다 독성이 5배 강하고, 10㎎만 신체에 흡수돼도 호흡정지ㆍ심장마비로 사망할 수 있는 치명적인 독극물이다. 1996년 러시아에서 피살된 최덕근 영사의 시신에서도 같은 성분의 독극물이 검출된 바 있다. 빗나갈 경우 치명상을 입히지 못할 수도 있는 권총과 달리, 독총은 손끝이나 발끝에만 맞아도 독약이 온몸에 퍼져 사망하게 된다.
검거 당시 독총 탄환 1발엔 분말 형태 독약 100㎎, 독침엔 액체 형태 독약 1㎖ 분량이 충전돼 있었다. 만년필형 독총은 1995년 10월 부여에서 검거된 무장간첩 김동식이 갖고 있던 독총과 같은 기종이다. 손전등형 독총은 이번 사건으로 처음 드러난 북한의 무기이다.
안씨의 입국 후 지령과 보고는 이른바 ‘사이버 드보크(Cyber Debok)’를 통해 이뤄졌다. 북한 대남공작부서에서 사용하는 신종 연락수단으로, 최근 검거된 ‘왕재산 간첩단’이 사용한 ‘스테가노그라피(Steganography)’와 함께 인터넷과 이메일 등을 통한 교신 방법이다.
안씨는 K가 알려준 포털 구글(Google)의 메일 서비스인 G메일(Gmail) 계정에 접속해 지령과 보고문을 주고받았다. 메일을 보낼 경우 수ㆍ발신 흔적이 남고 추적 위험이 있기 때문에 1개 계정을 두고 서로 공유했다. K가 계정 내 ‘임시우편함’에 메시지를 남겨놓으면, 안씨가 확인 후 덮어쓰기로 보고문을 작성해 다시 저장하는 방식이다.
메일 작성은 미리 약정한 음어를 사용했다. 공격 타깃이 된 박상학씨는 ‘ㅂ철강’으로, 안씨 본인은 ‘이병두’ 또는 ‘이 이사’로, K는 ‘김 사장’으로 불렀다. 또 독약은 ‘한약’으로, 단발 또는 연발 독총은 ‘기계식’ 또는 ‘자동식’으로, 암살은 ‘결재’ 또는 ‘계약’으로 표기했다. 당시 통신 내용 중 일부다.
“ㅂ철강 쎌러(박상학)가 현재 출장 중으로 알고 있는데 이미 예견하였던 출장인지 알고 싶습니다. 회사(북한 정찰총국)에서는 자기 날자(암살 예정일ㆍ9월 3일)에 반드시 계약(암살)하기를 바랍니다. 2부두 코타번호(베트남 도피처 전화번호)는 OK입니다. 현지부두에서 선적한 코타번호(남한 대포폰 전화번호)가 이미 알려준 번호와 같은지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시체유기현장 사전답사
안씨는 지령대로 암살 대상인 김덕홍씨의 소재 파악에 성공했지만, 당시 주요 탈북자들에 대한 당국의 신변보호 조치가 강화돼 입국 후 4개월 동안 임무를 수행할 수 없었다. 지난 7월 안씨의 이메일 보고에 K는 “김덕홍을 처치하기 어렵다면 대신 지난번 몽골에서 논의한 바 있는 ‘반북(反北)활동가’ 박상학, 김성민(자유북한방송 대표), 이민복(기독북한인연합 대표)을 암살하라”면서 “‘조국해방일’인 8월 15일 전까지 임무를 완수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김성민(金聖玟)씨는 북한 인민군 대위 출신으로 1999년 탈북해 탈북자동지회 회장 등을 역임한 후, 2004년 대북방송인 자유북한방송을 세워 김정일 정권 비판과 북한 주민 인권에 대한 방송을 송출해 왔다. 북한 농업과학기술원 연구원 출신인 이민복(李民馥)씨는 직접 개발한 타이머를 대형 풍선에 설치해 2005년부터 연간 수천만 장의 대북전단을 날려왔다. 두 사람 모두 박상학씨와 함께 김정일 체제의 급소를 공격하는 탈북자들이다.
안씨는 3명을 동시에 암살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K와 수차례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대상을 조율했고, 결국 ‘우선 박상학’이라는 지령을 받았다.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안씨는 K에게 준비자금이 필요하다며 ‘공작금 1만2000달러’를 요청했고, 얼마 후 자신의 동거녀 명의 통장으로 1277만원을 송금받았다. 안씨는 이 돈을 수사기관의 추적을 피하기 위한 ‘대포폰(차명 휴대전화)’과 해외 도피용 항공권을 구입하는 데 사용했다.
안씨는 박상학씨에게 연락해 “대북전단 살포사업을 지원할 일본인을 소개해 주겠다”며 유인했고, 9월 3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어반하이브’ 빌딩 내 커피숍에서 만나 인근 일식집으로 이동하기로 약속했다.
범행 4일 전인 8월 30일, K는 “무조건 성공하라. 끝까지 조심하라. 이메일 사용을 일시 중지하라”는 최종 지령을 보냈고, 안씨는 “배신자에 대한 강력한 경고를 위해 독총ㆍ독약을 모두 사용하겠다”고 보고했다.
안씨는 자신의 ‘범행성공’ 사실을 북한 측에 알리기 위해 시체 유기 계획도 세웠다. “시신 발견이 쉽다”는 이유로 유기 장소를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 인근으로 정하고 현장답사까지 마쳤다. 암살 성공 후 곧바로 외국으로 도주하기 위해 다음 날 오전 베트남 하노이행(行) 항공편도 예약했다.
박상학, “국제형사재판소에 김정일 제소할 것”
안씨의 ‘치밀한’ 범행 계획은 결국 수포로 돌아갔다. 사전에 첩보를 입수해 동향을 추적해 오던 국정원에 덜미를 잡혔고, 잠복요원들에 의해 현장에서 검거됐다. 안씨는 범행 현장에서 독총 등 증거물을 압수당하자 “박상학을 암살하러 왔다가 뭔가 이상해 도주하려 했다”며 범행을 순순히 인정했다.
안씨는 체포 후 범행 계획에 대해 시인(是認)과 부인(否認)을 반복하며 “10년은 감옥에서 살 각오가 돼 있다”는 등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추석 연휴 4일간 이뤄진 집중 수사에 결국 손을 들었다. 수사 중 실시된 독총 위력시험 참관에 대해선 “1발 이상 발사하는 시험이라면 참관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북한 정찰총국이 증거인멸을 위해 3발 발사 후 자동 폭파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였다. 수사당국이 엑스레이 투시검사를 통해 검증했지만, 실제 폭파장치는 발견되지 않았다.
박상학씨는 독침테러 위협에도 대북전단 살포를 강행했다. 황장엽 전 비서 서거 1주기인 지난 10월 10일, 그는 탈북자 단체 회원들과 함께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에서 황 전 비서의 생전 활동과 북한 3대 세습 비난 내용 등을 담은 전단 20만 장을 대형 풍선에 띄어 보냈다.
“북한이 위협할수록 더 많은 전단을 보내고 국제사회에 호소하겠다”는 박씨는 국제형사재판소(ICC)와 UN에 김정일을 살인미수 테러범으로 제소하는 구체적 방안을 강구 중이다. 또 조지 W 부시(Bush) 전 대통령 등 미국 고위급 인사에게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再)지정할 것을 적극 호소할 예정이다. 부시 행정부는 2008년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제외했으며, 박씨는 같은 해 9월 미국을 방문해 미얀마와 티베트 등 10개국 반체제 인사들과 함께 부시 대통령을 만난 바 있다.
박씨는 사건 당일 국정원 수사관들과 승강이를 벌였다. 평소 알고 지내던 동료 탈북자가 간첩 테러범이란 수사관들의 경고를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박씨는 ‘일본인 후원자’라는 그럴듯한 손님까지 내세워 접근한 안씨에게 국정원 측이 ‘큰 무례’를 범할 것이라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
대북공작원 출신 아버지를 둔 ‘베테랑’ 대북운동가 박씨도 속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15년 전 탈북해 정착에 성공한 탈북자를 공작원으로 활용했다는 점과, 외국인 후원자를 내세워 접근했다는 사실이다. 북한이 공작원을 위장 탈북 형태로 파견한 사례는 있었지만, 기존 탈북자를 테러범으로 포섭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민간단체 입장에선 절대 허투루 대할 수 없는 ‘후원’을 미끼로 이용한 것도 박씨를 혼란케 했다.
北 타깃된 ‘A급 탈북자’
북한은 이번 독침테러를 통해 남한 내 탈북자 사회의 분열을 노렸지만, 대다수 탈북자는 초연하게 대처하고 있다. 박상학씨는 “지난 60년간 그래 왔듯, 북한 정권과 김정일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살인 공갈 협박밖에 없음이 이번 사건을 통해 또다시 증명됐다”며 “어떠한 위협이 있더라도 대북전단 살포를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씨의 말이다.
“김정일은 제게 비겁한 ‘악마의 독침’을 날리려다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김정일을 향한 ‘진실의 독침’을 오늘도 날리고 있습니다. 저희의 무기는 대북전단입니다. 이미 수십 차례 협박을 받았고, 충분히 각오돼 있습니다. 내가 죽더라도 더 많은 탈북자가 결단해 김정일 정권을 무너뜨릴 것입니다.”
박씨와 함께 테러 대상에 올랐던 이민복씨는 이번 사건에 대해 “예견했던 일”이라며 “결국 대북전단이 김정일에겐 가장 무섭다는 사실을 입증한 사례”라고 설명했다. 인터뷰를 위해 전화한 순간에도 그는 대북전단을 날리고 있었다. 이씨의 말이다.
“이미 목숨 걸고 대형 풍선 기술을 5년 동안 개발해 북한의 온갖 협박에도 묵묵히 전단을 날리고 있습니다. 북한에 언론의 자유가 생기고 개방되는 날까지 이 운동은 계속됩니다. 전단(삐라)뿐 아니라 DVD, 라디오, 현금(달러)까지 보낼 수 있어요. 서로 말싸움할 것도 없습니다. 통일을 앞당기는 가장 빠른 길은 바로 풍선입니다.”

김성민씨는 “탈북자 단체장이라면 예외 없이 누구나 테러의 타깃이 될 수 있다”며 “김정일의 의도를 남한 정부가 꿰뚫어봐야 한다”고 했다. 김씨의 말이다.
“이번엔 실패했지만, 김정일은 꼭 다시 테러를 시도할 겁니다. 테러를 중단할 인물이 아니란 건 역사가 증명하고 있죠. 김정일 입장에선 실패해도 얻는 게 있습니다. 포섭한 탈북자를 일회용 소모품으로 써 탈북자 사회의 분열을 조장할 수 있습니다. 그럴수록 탈북자들이 먼저 단결해야 합니다. 지금 저희는 경찰 경호를 받고 있지만, 수동적인 대책보단 적극적인 전략이 필요합니다. 탈북자도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국민이 테러위협을 당했다면, 국가는 상응한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북한에도 ‘전 세계가 다 아는 테러의 대상’이 있다는 사실을 강력하게 표명해야 합니다.”
현재 북한이 노리는 일명 ‘A급 탈북자’는 10여 명으로 추정된다. ‘테러 1순위’였던 황장엽 전 비서가 지난해 사망한 후, 그 뒤를 잇는 단체장 또는 대북인권운동가가 주요 타깃이다. 이번 테러 목표였던 김덕홍, 박상학, 김성민, 이민복 외에도 KAL858기 폭파범 김현희(金賢姬)씨, 강철환(姜哲煥) 《조선일보》 기자, 김흥광(金興光) NK지식인연대 대표, 조명철(趙明哲) 통일교육원 원장, 홍순경 북한민주화위원회 위원장, 한창권 탈북인단체총연합 회장, 강명도(康明道ㆍ강성산 전 북한 정무원 총리의 사위)씨 등이 공격 대상에 포함돼 있다. 이 중 상당수 인사는 실제 직접 테러 위협을 당하거나 관련 첩보가 입수돼 당국의 신변보호를 받고 있다.⊙
몽골에서 이미 수차례 독침과 독총의 사용법을 익힌 터, 안씨는 ‘목표물’만 도착하면 즉시 암살이 가능하리라 생각했다. 이날 안씨와 만남을 약속한 인물은 탈북자 박상학(朴相學ㆍ43)씨로, 대북전단(삐라)을 주기적으로 북한에 날리는 등 반(反) 김정일(金正日) 통일운동을 활발히 펼쳐온 대북운동가다.
잠시 후, 안씨는 ‘뭔가 이상하다’란 느낌이 들었다. 암살 타깃인 박씨는 여전히 도착하지 않았다. 식당 내부를 살피던 그는 이내 식당 출입구로 이동해 나갈 듯 말 듯 망설이다가, 계산대에 서 있던 종업원에게 자신의 차 열쇠를 달라고 했다. 열쇠를 건네받은 그는 들고 있던 서류가방을 차에 밀어넣었다.
순간 한 건장한 남자가 그를 덮쳤다. 안씨는 황급히 차에 올라타 문을 잠갔다. 시동이 걸린 차는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때 다른 남자가 차 앞을 몸으로 가로막았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안씨는 우물쭈물했다. 이때 차 옆에 있던 남자가 운전석 창문을 맨주먹으로 깨부쉈다. 유리창은 산산조각났고, 안씨는 순식간에 제압당했다. 남자들은 범인의 자살을 막기 위해 독총과 독침 등 증거품부터 압수했다. 국가정보원 수사관들이 테러범 현장 체포에 성공하는 순간이었다.
2주간 3차례 독침 공격
북한의 ‘독침테러’가 다시 시작됐다. 1996년 10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최덕근(崔德根) 영사가 북한 간첩으로 추정되는 괴한의 독침에 피살된 후 15년간 뜸했던 독침 공격이 지난 8월부터 2주 동안 총 세 차례 서울과 중국 동북 3성 일대에서 잇달아 발생했다. 지난 8월 21일 중국 단둥(丹東) 시내 한 백화점 앞에서 대북(對北)선교사 패트릭 김(46) 목사가 택시를 기다리던 중 갑자기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져 병원으로 호송됐으나 숨졌다.
김 목사가 평소 탈북자를 돕고 김정일 비판 문건과 성경 등을 북한에 밀반입한 활동 정황과, 사망 전 북한이 직간접적으로 대북선교사들에게 “반드시 응징하겠다”고 위협한 사실을 볼 때, 북한 간첩의 소행으로 추정된다. 《중앙일보》는 재중(在中) 대북 소식통을 인용해 “정찰총국이 사건의 배후이며, 고도로 훈련된 정보요원이 사전에 공격 대상자를 선별했다”고 보도했다.
김 목사 사망 다음 날인 22일 옌지(延吉)의 한 주차장에선 대북 선교 활동을 하던 한국인 강모(58) 목사가 차에 타려다 괴한의 주사기 공격을 받고 쓰러졌다. 강 목사는 병원으로 긴급 호송돼 목숨을 구했다. 북ㆍ중 접경의 동서 양끝에서 하루 시차를 두고 ‘독침 공격’이 자행된 셈이다.
1996년 옌지에서 발생한 기아자동차 기술훈련원 박병현(朴炳鉉ㆍ당시 54세) 원장 피살 사건도 북한 소행으로 추정되며, 1982년 망명해 김정일의 사생활을 폭로한 김정일 전처(성혜림)의 조카인 이한영(李韓永)씨도 1997년 북한의 남파 공작원에 의해 살해됐다.
과거 박정희(朴正熙)ㆍ전두환(全斗煥) 대통령 등 한국 최고위급 인사를 겨눴던 북한의 테러 목표가 최근 탈북자 단체 간부, 북한인권운동가, 대북선교사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들의 활동이 김정일 체제에 치명적인 위협을 가한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사례다.
이번 독침테러 사건의 타깃이 된 박상학씨는 대남(對南)공작부서 ‘35호실’에서 고위급 공작원으로 활동하다 1999년 일본으로 탈출한 박건길(朴健吉·70)씨의 아들로, 2004년부터 김정일의 악행과 가계도를 폭로하는 대북전단을 휴전선 인근에서 대량 살포해 왔다. 북한은 끊임없이 정부에 이를 중단시키라고 협박했고, 남한 좌파단체들은 전단 살포 저지를 위해 현장에서 박씨와 몸싸움을 벌였다.
“공화국에 못되게 논다. 손봐줘야”
정보당국과 박상학씨에 따르면, 간첩 안씨는 지난 2월경부터 박씨에게 접근하기 시작했다. 박씨는 “안씨가 탈북자 단체의 간부라 서로 알고 지냈는데, 2005~06년경 행적을 감췄다 다시 연락이 온 것”이라며 “탈북자로 위장한 간첩이 10년 정도 내부적응 기간을 거친 후 활동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 있는데, 안씨가 1995년 탈북한 사실을 볼 때 시기상 일리가 있다”고 했다.
탈북 후 국내 탈북자 단체의 사무국장을 맡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해온 안씨는 2005년경 활동이 뜸해진 후 사업에 나섰다. 그는 2010년 3월부터 몽골을 왕래하며 북한 평안북도 의주의 ‘황치령 샘물’ 개발 합작사업 등 남북경협을 추진한다는 이유로 북한 측 인사와 자주 접촉했다.
같은 해 7월, 안씨는 울란바토르 시내의 한 커피숍에서 북한 정찰총국 소속 간첩 C를 만났다. C는 안씨에게 “대북사업을 도와주겠다”며 “서로 믿기 위해 필요한 ‘자서전’을 제출하라”고 했고, 안씨는 ▲출생 ▲성장과정 ▲탈북경위 ▲남한정착생활 등의 내용이 담긴 5장 분량의 문서를 작성해 주고 귀국했다.
2달 후 C를 만나기 위해 몽골로 출국한 안씨는 C의 소개로 그의 상관인 간첩 K를 만났다. C와 함께 정찰총국 소속인 K는 북한대사관에 안씨를 수차례 불러 사업 논의를 진행해 왔다.
올해 3월 31일 몽골로 출국한 안씨는 울란바토르 시내 프랑스 레스토랑, 커피숍, 북한대사관 등에서 세 차례 K와 만났다. 이때 K는 1997년 황장엽(黃長燁ㆍ작년 10월 사망) 전(前) 노동당 비서와 함께 망명한 김덕홍(金德弘) 전 여광무역 대표를 암살하라는 지령을 안씨에게 내렸다. 안씨가 북한 항공육전대 출신으로 20여 년간 군 복무했다는 사실을 파악한 K는 “김덕홍 암살에 성공하면 북한 내(內) 통제구역에서 생활하는 가족들을 평양으로 옮겨 편하게 살 수 있도록 해주고, 사업에도 도움을 주겠다”며 안씨를 회유했다. 이때 K는 박상학씨에 대해 “공화국(북한)에 못되게 놀고 있다. 손봐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 독총, 독침, 독약 제원![]() ⊙ 크기: 130㎜×10㎜ 무게: 57g ⊙ 작동방법: 뚜껑을 오른쪽으로 5번 돌리고 뚜껑을 밀면 발사 ⊙ 독약성분: 브롬화네오스티그민(호흡정지, 심장마비로 사망) ![]() ⊙ 크기: 165㎜×37㎜ 무게: 263g ⊙ 작동방법: 안전장치를 빼고 발사버튼을 누르면 1발 발사, 다시 한 번 누르면 장전, 다시 누르면 발사 ⊙ 독약성분: 브롬화네오스티그민 ![]() ⊙ 크기: 132㎜×10㎜ 무게: 35g ⊙ 작동방법: 뚜껑을 오른쪽으로 5번 돌리고 뚜껑을 밀면서 찌름 ⊙ 독약성분: 브롬화네오스티그민 ![]() ⊙ 독약성분: 모노플로르초산나트륨(최장 5일 내 폐부종 또는 폐렴으로 사망) |
당시 K는 북한대사관 직원에게 노트북을 가져오라 해 미리 저장해 놓은 동영상을 안씨에게 보여줬다. 내용은 북한에 있는 안씨의 아버지 산소를 촬영한 것이었다. K는 “(당신) 어머니는 잘 계신다. 죽기 전에 아들을 꼭 만나보고 싶어 한다”며 가족의 근황을 알려주고, 이를 빌미로 “반드시 (암살) 임무를 완수하라”고 압박했다.
4월 3일, 독침과 독총 등 암살도구가 제공됐다. K는 북한대사관에서 안씨를 만나 “우리가 여러 가지 장비를 가지고 왔다. 한번 보라”며 독총 2정(만년필형ㆍ손전등형 각 1정), 독침(볼펜형) 1개, 독약 캡슐 3개 등을 꺼내 보여줬다. K는 볼펜형 독침을 안씨 눈앞에 들이대고 “이 뚜껑을 잡고 오른쪽으로 다섯 바퀴 돌려 누르면 침이 나온다. 이를 찌르기만 하면 된다. 단발형 독총도 똑같이 뚜껑을 오른쪽으로 다섯 바퀴 돌리면 장전이 되고, 뚜껑을 밀거나 당기면 발사된다”며 사용법을 알려줬다.
또 손전등형 독총을 들고선 “검은색 마개를 떼어내고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된다. 1발 발사 후 버튼을 다시 누르면 장전이 되고, 다시 누르면 또 발사가 된다. 이런 식으로 세 발까지 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무기 시연도 그 자리에서 이뤄졌다. K는 손전등형 독총을 손에 든 채 “이걸로 실습을 해보자. 내가 시범을 보이겠다”며 손전등을 비추듯 손을 앞으로 뻗었다. 4~5m 앞엔 미리 준비해 놓은 합판이 놓여 있었다. K가 버튼을 누르는 순간 ‘핑’ 소리와 함께 약한 화약 냄새가 났다. 발사된 탄환은 합판을 관통했다.
K는 “이건 연습용이라 독도 없고 그냥 발사만 되니 실제로 한 번 쏴보라”며 총을 안씨에게 건넸다. 안씨는 사격 직후 ‘위력이 상당하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독총 사격 연습을 마친 후, K는 암살에 필요한 폭탄 제조법도 알려줬다. “독침만으로 살해하면 잡힐 수밖에 없다”는 이유였다. K는 “폭약 원료는 한국에서 구할 수 있으니, 신관(기폭장치) 제조법만 알려주겠다”며 20여 분간 설명했다.
설명과 시연을 마치니 오후 5시였다. 안씨는 K 일행과 함께 북한대사관에서 나와 대통령궁 앞 수흐바타르 광장 인근의 ‘평양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헤어졌다.
2~3일 후, 간첩 C는 안씨에게 전화를 걸어 “수흐바타르 광장 옆 백화점에서 만나자”고 했고, 안씨는 약속장소에 나가 대기하고 있던 C의 차에 탔다. 목적지는 북한대사관, 만남 상대는 K였다. 안씨와 단독으로 만난 K는 “김덕홍을 반드시 처리하라. 그도 사람이니 움직일 것이다. 외부 식당에서 식사할 때나 운동할 때 접근해서 처리하라. 전승기념일(7월 27일)까지 반드시 임무를 완수하라”고 지시하며, 독총과 독침 등 암살 무기 일체를 안씨에게 건넸다.
▣ 정찰총국의 실체 북한 정찰총국은 2009년 2월 ‘조선로동당’ 산하 대남공작 조직이었던 ‘작전부’와 ‘35호실’, 인민무력부 산하 대남공작 조직인 ‘정찰국’이 통합돼 국방위원회 산하 인민무력부 총참모부 소속으로 확대·개편된 거대 대남공작 조직이다. 조직의 주 임무는 ▲간첩양성 교육기관 운영 ▲간첩 침투 및 복귀 안내 ▲육·해상 대남침투기지 운영 ▲군사정찰 등 정보수집 ▲암살·폭파·테러·납치 ▲대남 및 해외정보 수집 등이다. 1983년 10월 아웅산 테러, 1996년 9월 강릉 잠수함 침투, 1987년 11월 KAL858기 폭파, 1996년 7월 간첩 정수일 필리핀 국적세탁 우회침투, 2006년 간첩 정경학 태국·필리핀 우회침투, 1998년 6월 속초 잠수정 침투, 1998년 12월 여수 반잠수정 침투 등을 주도했다. 김영철(65) 정찰총국장은 김정일의 후계자 김정은의 최측근으로, 2010년 3월 천안함 폭침사건을 주도했고, 같은 해 4월 검거된 탈북자 위장간첩 김명호ㆍ동명관에게 ‘황장엽 처단’을 지령한 장본인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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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 표적이 된 박상학씨는 “김정일의 ‘악마의 독침’은 실패했지만, 김정일을 향한 ‘진실의 독침’은 승리할 것”이라고 했다. 박씨가 대북전단을 날리는 모습. |
검거 당시 독총 탄환 1발엔 분말 형태 독약 100㎎, 독침엔 액체 형태 독약 1㎖ 분량이 충전돼 있었다. 만년필형 독총은 1995년 10월 부여에서 검거된 무장간첩 김동식이 갖고 있던 독총과 같은 기종이다. 손전등형 독총은 이번 사건으로 처음 드러난 북한의 무기이다.
안씨의 입국 후 지령과 보고는 이른바 ‘사이버 드보크(Cyber Debok)’를 통해 이뤄졌다. 북한 대남공작부서에서 사용하는 신종 연락수단으로, 최근 검거된 ‘왕재산 간첩단’이 사용한 ‘스테가노그라피(Steganography)’와 함께 인터넷과 이메일 등을 통한 교신 방법이다.
안씨는 K가 알려준 포털 구글(Google)의 메일 서비스인 G메일(Gmail) 계정에 접속해 지령과 보고문을 주고받았다. 메일을 보낼 경우 수ㆍ발신 흔적이 남고 추적 위험이 있기 때문에 1개 계정을 두고 서로 공유했다. K가 계정 내 ‘임시우편함’에 메시지를 남겨놓으면, 안씨가 확인 후 덮어쓰기로 보고문을 작성해 다시 저장하는 방식이다.
메일 작성은 미리 약정한 음어를 사용했다. 공격 타깃이 된 박상학씨는 ‘ㅂ철강’으로, 안씨 본인은 ‘이병두’ 또는 ‘이 이사’로, K는 ‘김 사장’으로 불렀다. 또 독약은 ‘한약’으로, 단발 또는 연발 독총은 ‘기계식’ 또는 ‘자동식’으로, 암살은 ‘결재’ 또는 ‘계약’으로 표기했다. 당시 통신 내용 중 일부다.
“ㅂ철강 쎌러(박상학)가 현재 출장 중으로 알고 있는데 이미 예견하였던 출장인지 알고 싶습니다. 회사(북한 정찰총국)에서는 자기 날자(암살 예정일ㆍ9월 3일)에 반드시 계약(암살)하기를 바랍니다. 2부두 코타번호(베트남 도피처 전화번호)는 OK입니다. 현지부두에서 선적한 코타번호(남한 대포폰 전화번호)가 이미 알려준 번호와 같은지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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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첩 안모씨가 정찰총국 간첩 K에게 보낸 대북보고문 메일과 약정 음어표. |
시체유기현장 사전답사
안씨는 지령대로 암살 대상인 김덕홍씨의 소재 파악에 성공했지만, 당시 주요 탈북자들에 대한 당국의 신변보호 조치가 강화돼 입국 후 4개월 동안 임무를 수행할 수 없었다. 지난 7월 안씨의 이메일 보고에 K는 “김덕홍을 처치하기 어렵다면 대신 지난번 몽골에서 논의한 바 있는 ‘반북(反北)활동가’ 박상학, 김성민(자유북한방송 대표), 이민복(기독북한인연합 대표)을 암살하라”면서 “‘조국해방일’인 8월 15일 전까지 임무를 완수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김성민(金聖玟)씨는 북한 인민군 대위 출신으로 1999년 탈북해 탈북자동지회 회장 등을 역임한 후, 2004년 대북방송인 자유북한방송을 세워 김정일 정권 비판과 북한 주민 인권에 대한 방송을 송출해 왔다. 북한 농업과학기술원 연구원 출신인 이민복(李民馥)씨는 직접 개발한 타이머를 대형 풍선에 설치해 2005년부터 연간 수천만 장의 대북전단을 날려왔다. 두 사람 모두 박상학씨와 함께 김정일 체제의 급소를 공격하는 탈북자들이다.
안씨는 3명을 동시에 암살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K와 수차례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대상을 조율했고, 결국 ‘우선 박상학’이라는 지령을 받았다.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안씨는 K에게 준비자금이 필요하다며 ‘공작금 1만2000달러’를 요청했고, 얼마 후 자신의 동거녀 명의 통장으로 1277만원을 송금받았다. 안씨는 이 돈을 수사기관의 추적을 피하기 위한 ‘대포폰(차명 휴대전화)’과 해외 도피용 항공권을 구입하는 데 사용했다.
안씨는 박상학씨에게 연락해 “대북전단 살포사업을 지원할 일본인을 소개해 주겠다”며 유인했고, 9월 3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어반하이브’ 빌딩 내 커피숍에서 만나 인근 일식집으로 이동하기로 약속했다.
범행 4일 전인 8월 30일, K는 “무조건 성공하라. 끝까지 조심하라. 이메일 사용을 일시 중지하라”는 최종 지령을 보냈고, 안씨는 “배신자에 대한 강력한 경고를 위해 독총ㆍ독약을 모두 사용하겠다”고 보고했다.
안씨는 자신의 ‘범행성공’ 사실을 북한 측에 알리기 위해 시체 유기 계획도 세웠다. “시신 발견이 쉽다”는 이유로 유기 장소를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 인근으로 정하고 현장답사까지 마쳤다. 암살 성공 후 곧바로 외국으로 도주하기 위해 다음 날 오전 베트남 하노이행(行) 항공편도 예약했다.
▣ 북한의 독침테러 사례 박병현 피살 사건 1996년 8월 16일 중국 지린(吉林)성 옌볜(延邊)조선족자치주 옌지(延吉)시에서 기아자동차 기술훈련원장 박병현이 퇴근길 북한 공작원으로 추정되는 신원불명의 괴한들에게 볼펜 모양의 물체에 옆구리 부분을 찔려 사망했다. 독침테러 견해가 제기돼 중국 공안당국이 신체부검을 했지만, 박씨가 독극물에 의해 사망했다는 해부학적 근거는 나오지 않았다. 시신의 한국 이송 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재부검을 했으나 중국이 장기 제거 후 방부 처리한 상태여서 끝내 사인을 밝혀내지 못했다. 최덕근 영사 피살 사건 1996년 10월 1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주재 최덕근 영사가 저녁식사 후 귀가 중 자택 아파트 계단에서 습격을 받고 사망했다. 당시 최 영사는 극동지역의 북한 정보를 수집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한국으로 최 영사의 시신이 인도된 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부검 과정 중 작은 침(針) 구멍을 통해 독극물이 최 영사에게 투입됐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발견된 독(毒)성분은 북한 공작원이 주로 사용하는 ‘만년필 독침’에 사용되는 것으로 판명됐다. 당시 러시아가 사건을 단순 강도사건으로 종결한 것에 대해 최근 우리 정부가 러시아에 재수사 촉구와 함께 사건 공소시효(15년) 연장을 요청했다. 부여침투 무장간첩 사건 1995년 10월 초 충남 부여군 정각사(正覺寺)에서 간첩활동의 징후를 포착한 국가안전기획부와 경찰 대공 요원들이 24일 사찰을 불심 검문해 노동당 사회문화부 소속 간첩 2명을 급습한 사건. 생포된 남파간첩 김동식은 검거 당시 만년필형 독총 2개를 소지하고 있었다. 다른 공작요원 박광남은 도주과정에서 경찰의 사격을 받고 병원으로 후송 조치됐으나 끝내 사망했다. 검거 과정의 총격전에서 경찰 순경 1명이 숨지고 1명이 중상을 입었다. 동북 3성 대북선교사 피습 사건 2011년 8월 말 중국 단둥과 옌지 등 동북 3성 지역에서 대북 선교 활동을 하던 선교사 패트릭 김씨와 강모 목사가 괴한의 독침 추정 공격을 받은 사건. 김씨는 사망했고, 강 목사는 목숨을 건졌다. <정리=張在軫 月刊朝鮮 인턴기자> |
박상학, “국제형사재판소에 김정일 제소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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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학씨와 탈북자 단체 회원들이 황장엽 전 비서 서거 1주기에 맞춰 북한으로 보낸 대북전단. 황 전 비서의 생전 활동과 북한의 3대 세습 비판 등의 내용이 담겼다. |
안씨는 체포 후 범행 계획에 대해 시인(是認)과 부인(否認)을 반복하며 “10년은 감옥에서 살 각오가 돼 있다”는 등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추석 연휴 4일간 이뤄진 집중 수사에 결국 손을 들었다. 수사 중 실시된 독총 위력시험 참관에 대해선 “1발 이상 발사하는 시험이라면 참관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북한 정찰총국이 증거인멸을 위해 3발 발사 후 자동 폭파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였다. 수사당국이 엑스레이 투시검사를 통해 검증했지만, 실제 폭파장치는 발견되지 않았다.
박상학씨는 독침테러 위협에도 대북전단 살포를 강행했다. 황장엽 전 비서 서거 1주기인 지난 10월 10일, 그는 탈북자 단체 회원들과 함께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에서 황 전 비서의 생전 활동과 북한 3대 세습 비난 내용 등을 담은 전단 20만 장을 대형 풍선에 띄어 보냈다.
“북한이 위협할수록 더 많은 전단을 보내고 국제사회에 호소하겠다”는 박씨는 국제형사재판소(ICC)와 UN에 김정일을 살인미수 테러범으로 제소하는 구체적 방안을 강구 중이다. 또 조지 W 부시(Bush) 전 대통령 등 미국 고위급 인사에게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再)지정할 것을 적극 호소할 예정이다. 부시 행정부는 2008년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제외했으며, 박씨는 같은 해 9월 미국을 방문해 미얀마와 티베트 등 10개국 반체제 인사들과 함께 부시 대통령을 만난 바 있다.
박씨는 사건 당일 국정원 수사관들과 승강이를 벌였다. 평소 알고 지내던 동료 탈북자가 간첩 테러범이란 수사관들의 경고를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박씨는 ‘일본인 후원자’라는 그럴듯한 손님까지 내세워 접근한 안씨에게 국정원 측이 ‘큰 무례’를 범할 것이라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
대북공작원 출신 아버지를 둔 ‘베테랑’ 대북운동가 박씨도 속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15년 전 탈북해 정착에 성공한 탈북자를 공작원으로 활용했다는 점과, 외국인 후원자를 내세워 접근했다는 사실이다. 북한이 공작원을 위장 탈북 형태로 파견한 사례는 있었지만, 기존 탈북자를 테러범으로 포섭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민간단체 입장에선 절대 허투루 대할 수 없는 ‘후원’을 미끼로 이용한 것도 박씨를 혼란케 했다.
▣ 북한의 탈북자 포섭 및 對 탈북자 테러 사건 김정일 처조카 이한영 피살 사건 1997년 2월 15일 김정일 전처 성혜림의 조카 이한영이 경기도 분당의 아파트 현관에서 머리에 총격을 받고 사망했다. 저서 《대동강 로열패밀리》를 통해 북한의 실상과 김정일의 사생활을 폭로한 것이 암살의 직접적 원인이 됐다. 살해현장에서 북한제 권총에서 사용되는 탄피가 발견됐으며 이씨가 의식을 잃기 전까지 ‘간첩’이라고 말한 전황을 근거로 공안당국은 북한사회문화부 소속 테러 전문요원인 ‘최순호 조’에 의해 암살이 전개된 것으로 최종 결론지었다. 심영섭 청해실업 대표 1956년 6월 국군 중부전선 15사단으로 귀순한 심영섭은 탈북 이후 ‘대한귀순자 동지회’의 부회장을 역임하는 등 남한에 성공적으로 정착했다. 그러나 1991년 4월 사업 상담을 목적으로 한 태국 출장에서 북한의 형 심호섭을 만나 재북(在北) 가족 상봉 조건으로 북한에 포섭됐다. 심씨는 남한으로 돌아와 북한으로부터 받은 거액의 활동비로 남한조선노동당 설립을 추진하며 간첩활동을 벌이다 1992년 9월 안기부에 검거됐다. 이창성 보위부 공작원 보위사령부 중국지역 공작원으로 2002년 2월부터 11월까지 활동한 이창성은 2003년 1월 귀순했으나, 북한에 있는 가족을 탈출시키기 위해 2004년 4월 다시 밀입북했다. 그 과정에서 북한 보위사령부 상부와 재접촉하고 국가기밀을 누설했다. 이후 지령을 받고 5월에 국내에 잠입해 공작활동을 벌이다 자수했다. 여간첩 원정화 1989년부터 북한 특수부대에서 훈련을 받은 간첩 원정화는 1998년경 보위사령부의 지령을 받고 조선족으로 위장해 2001년 10월 남한으로 들어왔다. 탈북자 신분을 이용해 군 장교들과 성관계 및 동거활동을 하며 국가 기밀을 탐지해 북한에 보고했다. 군 장병을 대상으로 한 안보강연을 통해 북한을 찬양·고무하는 등 군부대에서 주로 활동했다. 원은 한국 정보요원과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이중간첩 생활을 했다.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 거처 파악 및 대북 정보요원 암살 임무도 함께 부여받았으나 대부분 실패하고 2008년 7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검거됐다. 황장엽 암살 미수 2009년 11월 북한 정찰총국 소속 공작원 동명관, 김명호는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를 암살하라는 정찰총국장의 지시를 받고 중국 연변과 태국 방콕을 거쳐 탈북자 신분으로 위장해 남한에 들어왔다. 황 전 비서에게 접근하기 위해 ‘황명혁’이라는 가명으로 황씨의 먼 친척임을 사칭했으나, 탈북자 합동 심사과정에서 신원상 허점이 드러나 적발됐다. 같은 해 8월 정찰총국 공작원 이동삼도 동일한 암살지령을 받고 탈북자로 위장해 중국과 태국을 거쳐 한국으로 들어오던 중 국정원의 탈북자 심문과정에서 적발됐다. 김관진 국방장관 암살 위협 2011년 8월 10일 《중앙일보》는 김관진 국방부 장관의 암살을 시도하는 특수임무조가 국내에서 활동을 시작했다는 첩보를 한미 군 정보당국이 입수하고 색출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북한의 도발에 대한 김 장관의 강경한 태도가 북한 당국이 암살 지령을 내린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18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 장관 본인이 암살설은 사실이 아니라고 밝힘으로써 암살논란은 일단락됐다. <정리=張在軫 月刊朝鮮 인턴기자> |
北 타깃된 ‘A급 탈북자’
북한은 이번 독침테러를 통해 남한 내 탈북자 사회의 분열을 노렸지만, 대다수 탈북자는 초연하게 대처하고 있다. 박상학씨는 “지난 60년간 그래 왔듯, 북한 정권과 김정일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살인 공갈 협박밖에 없음이 이번 사건을 통해 또다시 증명됐다”며 “어떠한 위협이 있더라도 대북전단 살포를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씨의 말이다.
“김정일은 제게 비겁한 ‘악마의 독침’을 날리려다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김정일을 향한 ‘진실의 독침’을 오늘도 날리고 있습니다. 저희의 무기는 대북전단입니다. 이미 수십 차례 협박을 받았고, 충분히 각오돼 있습니다. 내가 죽더라도 더 많은 탈북자가 결단해 김정일 정권을 무너뜨릴 것입니다.”
박씨와 함께 테러 대상에 올랐던 이민복씨는 이번 사건에 대해 “예견했던 일”이라며 “결국 대북전단이 김정일에겐 가장 무섭다는 사실을 입증한 사례”라고 설명했다. 인터뷰를 위해 전화한 순간에도 그는 대북전단을 날리고 있었다. 이씨의 말이다.
“이미 목숨 걸고 대형 풍선 기술을 5년 동안 개발해 북한의 온갖 협박에도 묵묵히 전단을 날리고 있습니다. 북한에 언론의 자유가 생기고 개방되는 날까지 이 운동은 계속됩니다. 전단(삐라)뿐 아니라 DVD, 라디오, 현금(달러)까지 보낼 수 있어요. 서로 말싸움할 것도 없습니다. 통일을 앞당기는 가장 빠른 길은 바로 풍선입니다.”

김성민씨는 “탈북자 단체장이라면 예외 없이 누구나 테러의 타깃이 될 수 있다”며 “김정일의 의도를 남한 정부가 꿰뚫어봐야 한다”고 했다. 김씨의 말이다.
“이번엔 실패했지만, 김정일은 꼭 다시 테러를 시도할 겁니다. 테러를 중단할 인물이 아니란 건 역사가 증명하고 있죠. 김정일 입장에선 실패해도 얻는 게 있습니다. 포섭한 탈북자를 일회용 소모품으로 써 탈북자 사회의 분열을 조장할 수 있습니다. 그럴수록 탈북자들이 먼저 단결해야 합니다. 지금 저희는 경찰 경호를 받고 있지만, 수동적인 대책보단 적극적인 전략이 필요합니다. 탈북자도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국민이 테러위협을 당했다면, 국가는 상응한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북한에도 ‘전 세계가 다 아는 테러의 대상’이 있다는 사실을 강력하게 표명해야 합니다.”
현재 북한이 노리는 일명 ‘A급 탈북자’는 10여 명으로 추정된다. ‘테러 1순위’였던 황장엽 전 비서가 지난해 사망한 후, 그 뒤를 잇는 단체장 또는 대북인권운동가가 주요 타깃이다. 이번 테러 목표였던 김덕홍, 박상학, 김성민, 이민복 외에도 KAL858기 폭파범 김현희(金賢姬)씨, 강철환(姜哲煥) 《조선일보》 기자, 김흥광(金興光) NK지식인연대 대표, 조명철(趙明哲) 통일교육원 원장, 홍순경 북한민주화위원회 위원장, 한창권 탈북인단체총연합 회장, 강명도(康明道ㆍ강성산 전 북한 정무원 총리의 사위)씨 등이 공격 대상에 포함돼 있다. 이 중 상당수 인사는 실제 직접 테러 위협을 당하거나 관련 첩보가 입수돼 당국의 신변보호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