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기업 사장은 예산·인사·조직에 대한 권한 없이 정부 시키는 일만 하도록 돼 있어”
⊙ “공기업 직원들 눈에 사장은 ‘임시직원’에 불과”
⊙ 직원들에 “정말 회사의 주인이라면 스스로 성과 위주의 문화를 만들어야” 설득
정승일
⊙ 1945년생. 한양대 공과대학 졸업.
⊙ 현대건설 발전사업부문장, 삼성물산 건설부문 발전사업팀장,
GS건설 발전사업 경영관리 고문 역임.
⊙ “공기업 직원들 눈에 사장은 ‘임시직원’에 불과”
⊙ 직원들에 “정말 회사의 주인이라면 스스로 성과 위주의 문화를 만들어야” 설득
정승일
⊙ 1945년생. 한양대 공과대학 졸업.
⊙ 현대건설 발전사업부문장, 삼성물산 건설부문 발전사업팀장,
GS건설 발전사업 경영관리 고문 역임.
한국지역난방공사(이하 한난)는 열병합(熱倂合) 발전설비를 통해 아파트와 업무용, 상업용 건물 등에 전기와 열을 동시에 공급하는 집단에너지사업자다.
그런데 이 회사의 정체(?)가 아리송하다. 회사 이름에 ‘공사(公社)’라는 말이 들어가는 것을 보면 분명 공공기관(공기업)이다. 1992년 이래 회사의 법적 성격이 ‘집단에너지사업법’에 따른 공공법인(公共法人)이라는 점, 정부가 ‘에너지 및 자원사업 특별회계’에서 100억원을 출자(出資)했다는 점, 정부가 사장을 임명한다는 점을 봐도 이 회사는 공기업이 맞다.
그런데 이 회사가 금년 1월 증시(證市)에 상장(上場)됐다. 실적에 따라 회사 이익의 일부를 사장이 직원들에게 인센티브로 나누어줄 수도 있게 됐다. 그뿐이 아니다. 다른 공기업들과는 달리 이 회사는 오래전부터 20여 개의 민간사업자들과 시장(市場)에서 경쟁을 해 왔다.
외양(外樣)은 공공기업이지만, 그 실질을 들여다보면 민간기업적인 요소가 강한 회사라고나 할까? 한난은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에 의해 ‘시장형 공기업’(자산규모가 2조원 이상으로, 총 수입액 중 자체 수입액이 85% 이상을 차지하는 공기업)으로 지정됐는데, 법적 개념과 관계없이 ‘시장형 공기업’이라는 말은 이 회사의 성격에 딱 맞는다는 생각이 든다.
플랜트 수출 분야의 1세대
이 회사의 민간기업적인 특색을 더 강화시켜 주는 요소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이 회사의 CEO다. 2008년 취임한 정승일(鄭勝一·65) 사장. 그는 1969년 현대건설 입사(入社) 이래 40여 년간 발전(發電)설비 등 플랜트 수출 분야에서 일해 왔다. 스스로 말하듯이 그는 플랜트 수출 분야의 1세대다.
인천화력발전소 1호기 건설과 함께 시작된 그의 건설 인생은 국내에서는 인천화력 3, 4호기, 평택화력 1~4호기 공사로 이어졌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1984년부터는 해외를 누비기 시작했다. 타이완(臺灣), 베트남,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아르메니아, 쿠웨이트, 이란, 이라크, 방글라데시 등이 그의 무대였다.
1998년 발전사업부문장(部門長)을 끝으로 현대건설을 떠났지만, 그의 일복은 끝나지 않았다. 2000년 삼성물산 건설부문에서 발전사업팀을 꾸리면서 그를 끌어당긴 것이다. 여기서 5년을 일했을 무렵, 이번에는 GS건설에서 그를 고문으로 초빙했다.
그러는 사이에 그가 현대건설에 입사할 무렵 그 회사 과장(課長)이었고, 이후 사장ㆍ회장으로 모셨던 이명박(李明博) 전 현대건설 회장이 서울시장을 거쳐 대통령이 됐다. 이듬해인 2008년 그는 한난 사장 공모(公募)에 응모(應募), 사장이 됐다.
공기업 사장이 된 그는 2009년 한난의 오랜 숙원이었던 증시 상장을 성사시켰다. 기획재정부와는 ‘기관장 자율경영계약’(MOU)을 체결했다. 조직과 인원을 감축하고 출자회사를 매각하는 등 일련의 구조조정을 단행했고, 공기업 최초로 전(全) 임직원 기본급 반납 및 잡 셰어링(Job Sharingㆍ일자리 나누기)을 시행했다. 정부의 저탄소 녹색성장 기조에 맞춰 신재생에너지사업에도 적극 뛰어들었다. 작년에 한난이 공기업 최초로 한국능률협회컨설팅(KMAC)의 ‘CS(고객만족)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것도 기억할 만한 경사였다.
문득 이명박 정권이 던진 ‘공기업 선진화(先進化)’라는 화두(話頭)가 떠오른다. 정승일 사장 취임 후 한난의 변화와 실적은 ‘공기업 선진화’의 한 모델로 주목받을 만하다.
“공기업 사장은 경영자가 아니라 관리자”
경기도 분당에 있는 한난 본사로 정승일 사장을 찾아갔다. 기자를 맞은 홍보실 직원은 “사장님은 <월간조선>(月刊朝鮮)의 오랜 애독자”라면서 “<월간조선> 인터뷰를 하게 됐다고 무척 긴장하고 계신다”고 말했다. 순간 ‘이거 큰일 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뷰 대상자가 긴장하고 말을 아끼기 시작하면, 그 인터뷰는 표류하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우(杞憂)였다. 정 사장은 자신감에 찬 어조로 거침없이 자신의 경영철학을 토로했다.
―민간기업에서 평생 일하다가 공기업에 와 보니 어떻습니까.
“솔직히 공기업은 제게 생소했습니다. 저는 40년 동안 직장생활하면서 정부나 여의도(국회) 근처에는 갈 일이 없던 사람이에요. 그런데도 임명권자가 저 같은 사람을 임명한 이유가 뭐겠습니까? 흔히 공기업을 두고 경영이 방만하다, ‘신(神)의 직장’이다라고 지적하는데, 민간기업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공기업을 혁신하고 효율성을 향상시키라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 걸 바로잡으려면 원인을 알아야 하잖아요? 그런데 업무를 파악하면서 보니까, 사장이 할 일이 없더라고요.”
‘신의 직장’의 정점(頂點)에 있는 공기업 사장이 할 일이 없다니 이게 무슨 소린가 싶었다. 정 사장의 얘기는 한마디로 정부가 모든 것을 쥐고 있다는 얘기였다.
“회사가 수익을 내고 혁신을 하려면 사장에게 책임과 권한이 있어야 합니다. 권한 중에서는 예산·조직·인사권이 핵심인데, 이걸 전부 정부가 쥐고 있어요. 거기다가 공공성(公共性) 확보라는 명목 때문에 국정감사 등 감사도 많고, 정부의 규제도 많아서 사장이 자율권이 없어요. 공기업 사장은 ‘경영자’라기보다는 정부의 지침에 따라 행동하는 관리자, 감독이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조직문화도 많이 다르죠.
“민간기업은 능력위주, 성과중심이고, 그 성과에 대한 보상이 확실합니다. 반면에 공기업은 연공서열(年功序列) 위주이고, 성과에 대해 평가한다고는 하지만 내부적으로 보면 별 차이가 없어요.
민간기업은 투자분석·위험분석을 하고 원가(原價)를 의식하는데, 공기업은 법령과 규정을 준수하는 것을 우선시합니다.
무엇보다도 민간기업은 구성원이 생존을 위해 도전적·자율적·창의적으로 일을 하고 경쟁적 분위기 속에서 자기계발을 위해 노력하는 반면, 공기업 구성원은 무사안일한 행태를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직원들 눈에 사장은 ‘임시직원’에 불과”
정승일 사장이 얘기하는 공기업의 문제점들은 사실 새삼스러운 문제가 아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이명박 정부는 집권 초기에 ‘공기업 민영화(民營化)’를 내걸었다. 하지만 공기업 노조(勞組)들은 ‘공공성’을 내걸고 이에 저항했다. 2008년 광우병(狂牛病) 촛불사태 때에는 수자원공사, 철도공사 노조 등이 ‘사유화(私有化) 반대’를 내걸고 거리로 뛰쳐나왔다. 결국 이명박 정부는 ‘공기업 민영화’를 ‘공기업 선진화’라는 ‘중도실용적’ 용어로 탈색(脫色)해야 했다.
정승일 사장이 한난 사장 임명장을 받은 것은 광우병 사태가 겨우 마무리되어 가고 있던 2008년 8월이었다. 한난 사장이 된 그는 같은 무렵 임명된 공기업 사장들과 함께 청와대로 들어가 이명박 대통령과 식사를 같이했다고 한다.
“대통령께서는 ‘내가 여러분이 지금까지 해온 일을 잘 알고 있다. 그 자리에 보낼 만해서 보내는 것이니 잘해낼 줄 믿는다’면서, 공기업 개혁을 주문하시더군요.”
‘공기업 개혁’의 특명(特命)을 받고 내려온 민간기업 출신 사장을 노조원들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정 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민간기업 출신, 그것도 건설회사 출신 사장이 왔다니까, 노조가 ‘밀어붙이기 식으로 하면서 업무 강도를 높이는 것 아니냐’고 긴장하는 것 같았습니다. 노조원들을 만났더니, 그들의 마음도 이해가 가더군요.
회사가 1985년에 설립됐는데, 제가 8대 사장이에요. 그 당시 노조원들의 평균 나이가 38세였는데, 정년이 58세입니다. 20년은 더 회사에 있을 사람들이에요. 그러니 그들 눈에는 사장, 이사, 감사 등은 임기 3년만 채우면 떠나갈 ‘임시직원’으로 보일 수밖에요. 사장은 한 번씩 왔다 가면서 조직을 흔들어 놓고 가는 존재라는 피해의식도 갖고 있더군요. 이런 경영환경 속에서 경영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먼저 노조원들의 마음을 사고, 그들에게 비전을 주고, 솔직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정부에 “인센티브 줄 수 있도록 해달라” 요구
정 사장은 자신이 느낀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나섰다. 우선 직원들의 창의력과 도전정신을 자극하고 경쟁풍토를 조성하기 위해 인센티브 제도를 확대했다. 예컨대 사내(社內) 제안제도에 따라 채택된 제안에 대해 종전에 몇십만 원 수준에서 포상하던 것을 몇백만 원 단위로 올렸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했다. 작년 9월 기획재정부와 청와대 국정기획수석비서관실 관계자들과 몇몇 공공기관장들이 참여하는 간담회가 있었다.
“그 자리에서 ‘공기업 사장들에게 자율권을 주고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게 하라. 경영지표를 설정하고 재무적 성과에 따라 사장이 자율적으로 인센티브를 줄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그의 주장은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공기업 선진화’와도 맥락을 같이하는 것이었다. 그 연장선상에서 한난은 작년 12월 31일 기획재정부와 ‘기관장 자율경영계약’을 체결했다. 영업이익률 10% 달성을 비롯해 소정의 경영성과를 낼 경우, 초과 이익분의 10%(15억원가량으로 예상됨) 이내를 직원들에게 인센티브로 제공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한난의 각 부서와 지사들은 성과 목표를 정하고, 목표 달성 정도에 따라 인센티브를 가져간다. 한난 외에 한국가스공사, 인천국제공항공사, 기업은행 등이 ‘기관장 자율경영계약’을 체결했다.
―이익률 10%는 달성 가능한 목표입니까? 유가(油價)상승 등 외부 요인으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경우 직원들의 실망이 크지 않겠습니까.
“작년에는 유가가 비교적 안정된 덕분에 13%였고, 금년 들어서는 현재까지 8~9% 정도입니다. 이익률 외에도 다른 기준들이 있어요. 정부도 꼭 이익률만 보겠다는 게 아니라, 여러 항목에 걸쳐 다양한 기준을 설정해 놓고, 얼마나 노력했는가를 보자는 것입니다.”
증시 상장
정승일 사장이 한난을 맡은 후 눈에 띄는 변화 가운데 하나는 한난의 증시 상장이다. 사실 증시 상장은 한난의 오랜 숙원이었다. 처음 이 얘기가 나온 것은 김대중(金大中) 정권 시절이던 1998년이었다. 하지만 증시 상장이 될 경우 난방요금 급등을 우려한 지역주민들의 반발이 거셌다. 전국 곳곳의 지역난방이 들어가는 곳에서는 반대투쟁협의회가 생겨났고, 증시 상장은 결국 이루어지지 못했다. 노무현(盧武鉉) 정권 시절에도 증시 상장 시도가 있었지만 실패했다. 정 사장의 말이다.
“주민들은 과거 부천 지사가 LG에 매각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요금 30% 인상을 요구했던 사례를 들면서 ‘당신은 이제 사장으로 왔지만, 우리는 10년 전부터 이 투쟁을 해온 사람들’이라고 하더군요. ‘그렇게 반대하면 기업자금 조달은 어떻게 하고, 투자는 어떻게 하느냐’고 설득했습니다. 야당에는 ‘이건 김대중-노무현 정권 시절에 하려던 일 아니냐’고 말했습니다.”
결국 한난은 정부 등 공공지분(持分)을 51% 이상 유지하는 범위 내에서 총 발행주식의 25%를 신주(新株·우리 사주, 일반청약자, 지방자치단체, 기관투자자 등) 모집했다. 한 사람 혹은 회사가 보유할 수 있는 지분은 3%로 제한했다. 상장 후 지분을 보면, 정부가 34.5%, 한국전력(19.6%), 에너지관리공단(10%), 서울시(10.4%) 등 공공지분이 75%에 달한다.
이렇게 해서 1300억원이 조달됐다. 한난은 이 돈을 파주열병합발전소 건립 등에 사용할 예정이다.
‘시장형 공기업’ 지정, 기관장 자율경영계약 체결, 증시 상장, 이 모든 것은 결국 한난이 민영화로 가는 과정 아닐까? 이에 대해 정 사장은 사견(私見)임을 전제로 한난의 지배구조는 KT나 포스코처럼 국민주(國民株) 형태의 민영화가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표했다.
정승일 사장은 자율경영계약 체결, 인센티브 강화 등을 추진하는 한편, 구조조정도 단행했다. 자(子)회사였던 안산도시개발, 한국CES, 중국진황도합작사 등의 지분을 매각했고, 직제 개정을 통해 본사 5본부 13처 40팀을 3본부 11처 36팀으로, 14개 지사 57팀이던 것을 13개 지사 54팀으로 축소했다. 직원도 1116명에서 993명으로 줄였다.
―경쟁을 강조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구조조정을 하는 데 대해 노조의 반발은 없었습니까.
“개인 가치 높여야 스카우트된다” 설득
“노조에서는 당연히 사람을 줄이고 업무 강도를 높이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했습니다. 그들에게 ‘나야 임기 마치고 떠날 사람이지만, 당신들은 이 회사에 계속 남아서 일할 사람 아니냐? 여러분이 정말 이 회사의 주인이라면 스스로 성과와 효율성 위주의 문화를 만들어 놓아야 한다. 그러면 앞으로 누가 사장으로 온들 당신들을 건드릴 수 있겠느냐?’, ‘중요한 것은 여러분 하나하나가 개인의 가치(價値)를 높여 놓는 것이다. 그러면 이 회사를 그만두더라도 다른 민간회사에서 여러분을 스카우트해 간다. 세상이 변하는 데 변하지 않고 있다가 쓰나미에 휩쓸려 가듯 휩쓸려 버리고 말겠느냐, 아니면 자신의 몸값을 높이겠느냐’고 설득했습니다.”
―세상에는 자기가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보다, 현재 위치에서 편하게 가려는 사람이 더 많은 법 아닌가요.
“어디나 그런 사람들은 있기 마련이죠. 그들까지 끌고 가기는 솔직히 어려워요. 하지만 저는 민간기업에서의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그들에게 비전을 보여주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그런 경험을 얘기하면, 그런대로 귀담아듣는 것이 느껴져요.”
정치화되어 있지 않은 노조에 감사
한난은 작년에 노사(勞使) 간 자율합의를 통해 전 임직원이 자발적으로 1~10% 임금을 반납했다. 한난은 이렇게 해서 마련된 임금반납분 6억원과 경비절감분 4억원 등으로 일자리 나누기 재원을 마련, ‘ECO 서비스단’ 80명을 채용했다. 잡 셰어링이다.
―임금 반납에 노조가 흔쾌히 동의했습니까.
“당초 임금 반납은 간부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어요. 내가 먼저 10%를 반납하겠으니, 간부들만이라도 함께해 달라고 했습니다. 노조에는 얘기 안 했는데, 노조까지 동참해 줬습니다.”
―원래 한난의 노사관계가 좋았던 건가요.
“제가 오기 전부터 좋았어요. 기술계통이 많아서인지 노조가 비교적 순수하고 정치화되어 있지 않아요. 늘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자리 나누기로 창출된 ECO서비스단은 아파트 단지 등을 다니면서 효율적인 열관리 방법 등을 홍보한다. 당초 사람들을 뽑을 때, 정 사장은 “그 사람들에게 잡초 뽑는 일 같은 것은 시키지 마라”라고 했다고 한다. 희망근로 등 공공근로사업의 폐단을 되풀이하지 말자는 얘기였다. 사내에서는 이 인력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지역난방이 들어가는 곳에 사는 주민들이 의외로 효율적으로 열관리를 하는 방법을 잘 모른다는 데 착안해 ECO서비스단이라는 방안을 내놓았다.
저탄소 녹색성장이 화두가 되고 있는 오늘날, 한난은 신·재생에너지사업에도 열심이다. 대구와 신안에는 태양광발전소를 설치·운영 중이고, 분당지사 옥상에도 태양열 설비를 가동 중이다. 서울 난지도, 대구 방천리 매립장에서는 매립가스를 포집(捕執)한 LFG사업을 하고 있다. 전국 12개 쓰레기 소각장에서는 폐열을 활용한 난방, 용인에서는 하수열을 이용한 히트펌프를 운영 중이다. 한난은 2009년 말 현재 지역난방 열생산량의 약 16.1%(186만7000Gcal)를 신ㆍ재생에너지로 생산하고 있다.
“태양광발전이 수익성이 있느냐”고 묻자, 정 사장은 “아직 수익이 안 난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한난의 신·재생에너지 사업은 정부의 저탄소 녹색성장 정책에 ‘코드’ 맞추는 건 아닌가요.
“그건 아닙니다. 한난의 설립 목적 자체가 에너지의 효율적 이용입니다. 저탄소 녹색성장이 논의되기 훨씬 전부터 우리 회사는 이를 실천해 왔습니다.”
한난에 의하면, 집단에너지 공급 확대 등으로 2009년에는 93만6000TOE(Ton of Oil Equivalent·석유환산톤·원유 1톤의 순발열량으로 ITOE=107kcal)의 에너지와 500만 톤의 이산화탄소를 저감(低減)했으며, 이로 인해 6004억원의 에너지 절감 효과, 1327억원의 환경개선효과, 3088억원의 온실가스 감축효과를 얻었다.
이명박·정주영과의 인연
앞에서도 얘기한 것처럼 정승일 사장은 현대건설에서 잔뼈가 굵은 현대맨이자, 플랜트 수출 1세대 인물이다.
이명박 대통령과 특별한 인연이라도 있나 싶어 질문을 던져보았지만, 정 사장은 말을 아꼈다.
“제가 입사 당시에 이 대통령은 과장이었지만, 그분은 관리 부문이었고, 저는 건설 부문이어서 직접 만날 일은 없었습니다. 1977년 인천화력 3, 4호기 건설 당시 현장소장 하면서 시찰 나온 이명박 대통령과 대면할 기회가 생겼어요. 이후 그분이 사장·회장으로 계실 때에는 업무 보고차 뵙곤 했습니다. 아마 대통령께서는 제 이름을 들으면 ‘아, 발전소 많이 한 놈’이라고 기억하실 겁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잘하고 있는 것 같습니까.
“다른 건 잘 모르겠고, 오랫동안 플랜트 수출을 해 왔던 입장에서 작년에 아랍에미리트(UAE) 원전(原電) 수주(受注)를 보면서는 ‘아, 저건 그분이 대통령으로 있었기 때문에 해결이 됐겠다’ 싶은 부분들이 눈에 보이더군요.”
―정주영(鄭周永) 회장은 어떤 분이었나요.
“선견지명(先見之明)이 있는 분이었습니다. 정 회장이 현대조선소 기공식 때 ‘조만간 우리가 만든 배가 오대양(五大洋)을 누비고, 과장급 이상이면 누구나 자기 차를 갖는 마이카시대가 온다’고 하던 것이 기억납니다. 그때는 ‘허풍 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현실이 됐어요.
현대가 그 시절 국내 다른 건설회사들과 달랐던 점은 플랜트에 일찍 눈을 떴다는 것입니다. 다른 건설이나 토목이 3중주, 4중주라면 플랜트는 토목, 건설, 기계, 엔지니어링 등을 두루 망라하는 오케스트라입니다. 우리나라의 해외건설 수주 규모가 500억 달러 정도인데, 그중 플랜트가 300억~400억 달러 정도인 것으로 알고 있어요(금년도 해외건설 수주는 700억 달러 규모, 이 중 플랜트는 500억 달러 정도로 예상됨 - 기자 주). 사실 다른 건설분야에서 우리나라는 이미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어요. 이제 우리나라 건설은 플랜트로 먹고살아야 합니다. 현대에서 일한 덕분에 그 부문에서 일찍부터 일할 수 있었다는 데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UAE에 수출하는 원전도 결국 플랜트 아닙니까?”⊙
그런데 이 회사의 정체(?)가 아리송하다. 회사 이름에 ‘공사(公社)’라는 말이 들어가는 것을 보면 분명 공공기관(공기업)이다. 1992년 이래 회사의 법적 성격이 ‘집단에너지사업법’에 따른 공공법인(公共法人)이라는 점, 정부가 ‘에너지 및 자원사업 특별회계’에서 100억원을 출자(出資)했다는 점, 정부가 사장을 임명한다는 점을 봐도 이 회사는 공기업이 맞다.
그런데 이 회사가 금년 1월 증시(證市)에 상장(上場)됐다. 실적에 따라 회사 이익의 일부를 사장이 직원들에게 인센티브로 나누어줄 수도 있게 됐다. 그뿐이 아니다. 다른 공기업들과는 달리 이 회사는 오래전부터 20여 개의 민간사업자들과 시장(市場)에서 경쟁을 해 왔다.
외양(外樣)은 공공기업이지만, 그 실질을 들여다보면 민간기업적인 요소가 강한 회사라고나 할까? 한난은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에 의해 ‘시장형 공기업’(자산규모가 2조원 이상으로, 총 수입액 중 자체 수입액이 85% 이상을 차지하는 공기업)으로 지정됐는데, 법적 개념과 관계없이 ‘시장형 공기업’이라는 말은 이 회사의 성격에 딱 맞는다는 생각이 든다.
플랜트 수출 분야의 1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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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지역난방공사는 금년 1월 증시에 상장됐다. 지난 1월 29일 한난의 증시 상장식 모습 (오른쪽에서 네 번째가 정승일 사장). |
인천화력발전소 1호기 건설과 함께 시작된 그의 건설 인생은 국내에서는 인천화력 3, 4호기, 평택화력 1~4호기 공사로 이어졌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1984년부터는 해외를 누비기 시작했다. 타이완(臺灣), 베트남,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아르메니아, 쿠웨이트, 이란, 이라크, 방글라데시 등이 그의 무대였다.
1998년 발전사업부문장(部門長)을 끝으로 현대건설을 떠났지만, 그의 일복은 끝나지 않았다. 2000년 삼성물산 건설부문에서 발전사업팀을 꾸리면서 그를 끌어당긴 것이다. 여기서 5년을 일했을 무렵, 이번에는 GS건설에서 그를 고문으로 초빙했다.
그러는 사이에 그가 현대건설에 입사할 무렵 그 회사 과장(課長)이었고, 이후 사장ㆍ회장으로 모셨던 이명박(李明博) 전 현대건설 회장이 서울시장을 거쳐 대통령이 됐다. 이듬해인 2008년 그는 한난 사장 공모(公募)에 응모(應募), 사장이 됐다.
공기업 사장이 된 그는 2009년 한난의 오랜 숙원이었던 증시 상장을 성사시켰다. 기획재정부와는 ‘기관장 자율경영계약’(MOU)을 체결했다. 조직과 인원을 감축하고 출자회사를 매각하는 등 일련의 구조조정을 단행했고, 공기업 최초로 전(全) 임직원 기본급 반납 및 잡 셰어링(Job Sharingㆍ일자리 나누기)을 시행했다. 정부의 저탄소 녹색성장 기조에 맞춰 신재생에너지사업에도 적극 뛰어들었다. 작년에 한난이 공기업 최초로 한국능률협회컨설팅(KMAC)의 ‘CS(고객만족)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것도 기억할 만한 경사였다.
문득 이명박 정권이 던진 ‘공기업 선진화(先進化)’라는 화두(話頭)가 떠오른다. 정승일 사장 취임 후 한난의 변화와 실적은 ‘공기업 선진화’의 한 모델로 주목받을 만하다.
“공기업 사장은 경영자가 아니라 관리자”
경기도 분당에 있는 한난 본사로 정승일 사장을 찾아갔다. 기자를 맞은 홍보실 직원은 “사장님은 <월간조선>(月刊朝鮮)의 오랜 애독자”라면서 “<월간조선> 인터뷰를 하게 됐다고 무척 긴장하고 계신다”고 말했다. 순간 ‘이거 큰일 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뷰 대상자가 긴장하고 말을 아끼기 시작하면, 그 인터뷰는 표류하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우(杞憂)였다. 정 사장은 자신감에 찬 어조로 거침없이 자신의 경영철학을 토로했다.
―민간기업에서 평생 일하다가 공기업에 와 보니 어떻습니까.
“솔직히 공기업은 제게 생소했습니다. 저는 40년 동안 직장생활하면서 정부나 여의도(국회) 근처에는 갈 일이 없던 사람이에요. 그런데도 임명권자가 저 같은 사람을 임명한 이유가 뭐겠습니까? 흔히 공기업을 두고 경영이 방만하다, ‘신(神)의 직장’이다라고 지적하는데, 민간기업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공기업을 혁신하고 효율성을 향상시키라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 걸 바로잡으려면 원인을 알아야 하잖아요? 그런데 업무를 파악하면서 보니까, 사장이 할 일이 없더라고요.”
‘신의 직장’의 정점(頂點)에 있는 공기업 사장이 할 일이 없다니 이게 무슨 소린가 싶었다. 정 사장의 얘기는 한마디로 정부가 모든 것을 쥐고 있다는 얘기였다.
“회사가 수익을 내고 혁신을 하려면 사장에게 책임과 권한이 있어야 합니다. 권한 중에서는 예산·조직·인사권이 핵심인데, 이걸 전부 정부가 쥐고 있어요. 거기다가 공공성(公共性) 확보라는 명목 때문에 국정감사 등 감사도 많고, 정부의 규제도 많아서 사장이 자율권이 없어요. 공기업 사장은 ‘경영자’라기보다는 정부의 지침에 따라 행동하는 관리자, 감독이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조직문화도 많이 다르죠.
“민간기업은 능력위주, 성과중심이고, 그 성과에 대한 보상이 확실합니다. 반면에 공기업은 연공서열(年功序列) 위주이고, 성과에 대해 평가한다고는 하지만 내부적으로 보면 별 차이가 없어요.
민간기업은 투자분석·위험분석을 하고 원가(原價)를 의식하는데, 공기업은 법령과 규정을 준수하는 것을 우선시합니다.
무엇보다도 민간기업은 구성원이 생존을 위해 도전적·자율적·창의적으로 일을 하고 경쟁적 분위기 속에서 자기계발을 위해 노력하는 반면, 공기업 구성원은 무사안일한 행태를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직원들 눈에 사장은 ‘임시직원’에 불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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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9월 6일 열린 노사문화 우수인증기업 현판식. 오른쪽 줄 현판 바로 앞이 정승일 사장. |
정승일 사장이 한난 사장 임명장을 받은 것은 광우병 사태가 겨우 마무리되어 가고 있던 2008년 8월이었다. 한난 사장이 된 그는 같은 무렵 임명된 공기업 사장들과 함께 청와대로 들어가 이명박 대통령과 식사를 같이했다고 한다.
“대통령께서는 ‘내가 여러분이 지금까지 해온 일을 잘 알고 있다. 그 자리에 보낼 만해서 보내는 것이니 잘해낼 줄 믿는다’면서, 공기업 개혁을 주문하시더군요.”
‘공기업 개혁’의 특명(特命)을 받고 내려온 민간기업 출신 사장을 노조원들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정 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민간기업 출신, 그것도 건설회사 출신 사장이 왔다니까, 노조가 ‘밀어붙이기 식으로 하면서 업무 강도를 높이는 것 아니냐’고 긴장하는 것 같았습니다. 노조원들을 만났더니, 그들의 마음도 이해가 가더군요.
회사가 1985년에 설립됐는데, 제가 8대 사장이에요. 그 당시 노조원들의 평균 나이가 38세였는데, 정년이 58세입니다. 20년은 더 회사에 있을 사람들이에요. 그러니 그들 눈에는 사장, 이사, 감사 등은 임기 3년만 채우면 떠나갈 ‘임시직원’으로 보일 수밖에요. 사장은 한 번씩 왔다 가면서 조직을 흔들어 놓고 가는 존재라는 피해의식도 갖고 있더군요. 이런 경영환경 속에서 경영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먼저 노조원들의 마음을 사고, 그들에게 비전을 주고, 솔직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정부에 “인센티브 줄 수 있도록 해달라” 요구
정 사장은 자신이 느낀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나섰다. 우선 직원들의 창의력과 도전정신을 자극하고 경쟁풍토를 조성하기 위해 인센티브 제도를 확대했다. 예컨대 사내(社內) 제안제도에 따라 채택된 제안에 대해 종전에 몇십만 원 수준에서 포상하던 것을 몇백만 원 단위로 올렸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했다. 작년 9월 기획재정부와 청와대 국정기획수석비서관실 관계자들과 몇몇 공공기관장들이 참여하는 간담회가 있었다.
“그 자리에서 ‘공기업 사장들에게 자율권을 주고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게 하라. 경영지표를 설정하고 재무적 성과에 따라 사장이 자율적으로 인센티브를 줄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그의 주장은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공기업 선진화’와도 맥락을 같이하는 것이었다. 그 연장선상에서 한난은 작년 12월 31일 기획재정부와 ‘기관장 자율경영계약’을 체결했다. 영업이익률 10% 달성을 비롯해 소정의 경영성과를 낼 경우, 초과 이익분의 10%(15억원가량으로 예상됨) 이내를 직원들에게 인센티브로 제공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한난의 각 부서와 지사들은 성과 목표를 정하고, 목표 달성 정도에 따라 인센티브를 가져간다. 한난 외에 한국가스공사, 인천국제공항공사, 기업은행 등이 ‘기관장 자율경영계약’을 체결했다.
―이익률 10%는 달성 가능한 목표입니까? 유가(油價)상승 등 외부 요인으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경우 직원들의 실망이 크지 않겠습니까.
“작년에는 유가가 비교적 안정된 덕분에 13%였고, 금년 들어서는 현재까지 8~9% 정도입니다. 이익률 외에도 다른 기준들이 있어요. 정부도 꼭 이익률만 보겠다는 게 아니라, 여러 항목에 걸쳐 다양한 기준을 설정해 놓고, 얼마나 노력했는가를 보자는 것입니다.”
증시 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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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남 신안 증도에 있는 한난의 태양광발전시설. |
“주민들은 과거 부천 지사가 LG에 매각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요금 30% 인상을 요구했던 사례를 들면서 ‘당신은 이제 사장으로 왔지만, 우리는 10년 전부터 이 투쟁을 해온 사람들’이라고 하더군요. ‘그렇게 반대하면 기업자금 조달은 어떻게 하고, 투자는 어떻게 하느냐’고 설득했습니다. 야당에는 ‘이건 김대중-노무현 정권 시절에 하려던 일 아니냐’고 말했습니다.”
결국 한난은 정부 등 공공지분(持分)을 51% 이상 유지하는 범위 내에서 총 발행주식의 25%를 신주(新株·우리 사주, 일반청약자, 지방자치단체, 기관투자자 등) 모집했다. 한 사람 혹은 회사가 보유할 수 있는 지분은 3%로 제한했다. 상장 후 지분을 보면, 정부가 34.5%, 한국전력(19.6%), 에너지관리공단(10%), 서울시(10.4%) 등 공공지분이 75%에 달한다.
이렇게 해서 1300억원이 조달됐다. 한난은 이 돈을 파주열병합발전소 건립 등에 사용할 예정이다.
‘시장형 공기업’ 지정, 기관장 자율경영계약 체결, 증시 상장, 이 모든 것은 결국 한난이 민영화로 가는 과정 아닐까? 이에 대해 정 사장은 사견(私見)임을 전제로 한난의 지배구조는 KT나 포스코처럼 국민주(國民株) 형태의 민영화가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표했다.
정승일 사장은 자율경영계약 체결, 인센티브 강화 등을 추진하는 한편, 구조조정도 단행했다. 자(子)회사였던 안산도시개발, 한국CES, 중국진황도합작사 등의 지분을 매각했고, 직제 개정을 통해 본사 5본부 13처 40팀을 3본부 11처 36팀으로, 14개 지사 57팀이던 것을 13개 지사 54팀으로 축소했다. 직원도 1116명에서 993명으로 줄였다.
―경쟁을 강조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구조조정을 하는 데 대해 노조의 반발은 없었습니까.
“개인 가치 높여야 스카우트된다” 설득
“노조에서는 당연히 사람을 줄이고 업무 강도를 높이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했습니다. 그들에게 ‘나야 임기 마치고 떠날 사람이지만, 당신들은 이 회사에 계속 남아서 일할 사람 아니냐? 여러분이 정말 이 회사의 주인이라면 스스로 성과와 효율성 위주의 문화를 만들어 놓아야 한다. 그러면 앞으로 누가 사장으로 온들 당신들을 건드릴 수 있겠느냐?’, ‘중요한 것은 여러분 하나하나가 개인의 가치(價値)를 높여 놓는 것이다. 그러면 이 회사를 그만두더라도 다른 민간회사에서 여러분을 스카우트해 간다. 세상이 변하는 데 변하지 않고 있다가 쓰나미에 휩쓸려 가듯 휩쓸려 버리고 말겠느냐, 아니면 자신의 몸값을 높이겠느냐’고 설득했습니다.”
―세상에는 자기가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보다, 현재 위치에서 편하게 가려는 사람이 더 많은 법 아닌가요.
“어디나 그런 사람들은 있기 마련이죠. 그들까지 끌고 가기는 솔직히 어려워요. 하지만 저는 민간기업에서의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그들에게 비전을 보여주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그런 경험을 얘기하면, 그런대로 귀담아듣는 것이 느껴져요.”
정치화되어 있지 않은 노조에 감사
한난은 작년에 노사(勞使) 간 자율합의를 통해 전 임직원이 자발적으로 1~10% 임금을 반납했다. 한난은 이렇게 해서 마련된 임금반납분 6억원과 경비절감분 4억원 등으로 일자리 나누기 재원을 마련, ‘ECO 서비스단’ 80명을 채용했다. 잡 셰어링이다.
―임금 반납에 노조가 흔쾌히 동의했습니까.
“당초 임금 반납은 간부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어요. 내가 먼저 10%를 반납하겠으니, 간부들만이라도 함께해 달라고 했습니다. 노조에는 얘기 안 했는데, 노조까지 동참해 줬습니다.”
―원래 한난의 노사관계가 좋았던 건가요.
“제가 오기 전부터 좋았어요. 기술계통이 많아서인지 노조가 비교적 순수하고 정치화되어 있지 않아요. 늘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자리 나누기로 창출된 ECO서비스단은 아파트 단지 등을 다니면서 효율적인 열관리 방법 등을 홍보한다. 당초 사람들을 뽑을 때, 정 사장은 “그 사람들에게 잡초 뽑는 일 같은 것은 시키지 마라”라고 했다고 한다. 희망근로 등 공공근로사업의 폐단을 되풀이하지 말자는 얘기였다. 사내에서는 이 인력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지역난방이 들어가는 곳에 사는 주민들이 의외로 효율적으로 열관리를 하는 방법을 잘 모른다는 데 착안해 ECO서비스단이라는 방안을 내놓았다.
저탄소 녹색성장이 화두가 되고 있는 오늘날, 한난은 신·재생에너지사업에도 열심이다. 대구와 신안에는 태양광발전소를 설치·운영 중이고, 분당지사 옥상에도 태양열 설비를 가동 중이다. 서울 난지도, 대구 방천리 매립장에서는 매립가스를 포집(捕執)한 LFG사업을 하고 있다. 전국 12개 쓰레기 소각장에서는 폐열을 활용한 난방, 용인에서는 하수열을 이용한 히트펌프를 운영 중이다. 한난은 2009년 말 현재 지역난방 열생산량의 약 16.1%(186만7000Gcal)를 신ㆍ재생에너지로 생산하고 있다.
“태양광발전이 수익성이 있느냐”고 묻자, 정 사장은 “아직 수익이 안 난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한난의 신·재생에너지 사업은 정부의 저탄소 녹색성장 정책에 ‘코드’ 맞추는 건 아닌가요.
“그건 아닙니다. 한난의 설립 목적 자체가 에너지의 효율적 이용입니다. 저탄소 녹색성장이 논의되기 훨씬 전부터 우리 회사는 이를 실천해 왔습니다.”
한난에 의하면, 집단에너지 공급 확대 등으로 2009년에는 93만6000TOE(Ton of Oil Equivalent·석유환산톤·원유 1톤의 순발열량으로 ITOE=107kcal)의 에너지와 500만 톤의 이산화탄소를 저감(低減)했으며, 이로 인해 6004억원의 에너지 절감 효과, 1327억원의 환경개선효과, 3088억원의 온실가스 감축효과를 얻었다.
이명박·정주영과의 인연
앞에서도 얘기한 것처럼 정승일 사장은 현대건설에서 잔뼈가 굵은 현대맨이자, 플랜트 수출 1세대 인물이다.
이명박 대통령과 특별한 인연이라도 있나 싶어 질문을 던져보았지만, 정 사장은 말을 아꼈다.
“제가 입사 당시에 이 대통령은 과장이었지만, 그분은 관리 부문이었고, 저는 건설 부문이어서 직접 만날 일은 없었습니다. 1977년 인천화력 3, 4호기 건설 당시 현장소장 하면서 시찰 나온 이명박 대통령과 대면할 기회가 생겼어요. 이후 그분이 사장·회장으로 계실 때에는 업무 보고차 뵙곤 했습니다. 아마 대통령께서는 제 이름을 들으면 ‘아, 발전소 많이 한 놈’이라고 기억하실 겁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잘하고 있는 것 같습니까.
“다른 건 잘 모르겠고, 오랫동안 플랜트 수출을 해 왔던 입장에서 작년에 아랍에미리트(UAE) 원전(原電) 수주(受注)를 보면서는 ‘아, 저건 그분이 대통령으로 있었기 때문에 해결이 됐겠다’ 싶은 부분들이 눈에 보이더군요.”
―정주영(鄭周永) 회장은 어떤 분이었나요.
“선견지명(先見之明)이 있는 분이었습니다. 정 회장이 현대조선소 기공식 때 ‘조만간 우리가 만든 배가 오대양(五大洋)을 누비고, 과장급 이상이면 누구나 자기 차를 갖는 마이카시대가 온다’고 하던 것이 기억납니다. 그때는 ‘허풍 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현실이 됐어요.
현대가 그 시절 국내 다른 건설회사들과 달랐던 점은 플랜트에 일찍 눈을 떴다는 것입니다. 다른 건설이나 토목이 3중주, 4중주라면 플랜트는 토목, 건설, 기계, 엔지니어링 등을 두루 망라하는 오케스트라입니다. 우리나라의 해외건설 수주 규모가 500억 달러 정도인데, 그중 플랜트가 300억~400억 달러 정도인 것으로 알고 있어요(금년도 해외건설 수주는 700억 달러 규모, 이 중 플랜트는 500억 달러 정도로 예상됨 - 기자 주). 사실 다른 건설분야에서 우리나라는 이미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어요. 이제 우리나라 건설은 플랜트로 먹고살아야 합니다. 현대에서 일한 덕분에 그 부문에서 일찍부터 일할 수 있었다는 데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UAE에 수출하는 원전도 결국 플랜트 아닙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