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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역대 대검 중수부장 列傳

‘정치권의 외압’에 맞서 출근 거부하기도

곽창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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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대 29명의 중수부장, 대부분 고검장으로 승진
⊙ 출신고교 경북고, 경기고, 광주일고·서울고 順
    출신 대학은 서울대, 고려대 제외하면 사실상 全無
⊙ ‘국민 중수부장’ 애칭 얻지만, 부실수사 논란으로 좌천되기도
  “어두운 막에 가려져 있는 국정원이나 기무사 말고, 陽地(양지)에서 수사하는 국내 최고 사정부서의 수장 아닙니까? 언론 감시도 받고 정권의 눈치도 살피다 보면 자기 멋대로 할 수 없는 자리기도 하죠.”
 
  대검 중수부장을 지낸 A 변호사의 말이다. 대검 중수부장은 굵직굵직한 사건으로 나라가 들썩일 때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TV에 등장했다. 盧泰愚·全斗煥(노태우·전두환) 前(전) 대통령 구속, 金泳三(김영삼) 전 대통령 아들 현철씨 구속, 金大中(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들 홍업·홍걸씨 구속, 盧武鉉(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 등 한국 현대사의 획을 긋는 큰 사건의 지휘는 대검 중수부장의 몫이었다.
 
  대검 중수부장은 검찰총장의 지시를 받아 권력형 비리 사건 등 큰 사건 수사를 지휘해 왔다. 관심을 한몸에 받으면서 국민에게 강한 인상을 주기도 하지만 부실수사, 편파수사 등으로 구설에 휘말리기 시작하면 여론의 큰 압박을 받게 된다. 현 정권 비리 수사를 제대로 파헤치지 못하면 여론의 뭇매를 맞고 역적으로 몰리기도 하고,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했다.
 
  대검 중수부장에는 보통 지방의 일선 검사장이나 대검 부장을 한두 차례 거친 중견 검사장이 임명된다. 중수부장 출신 B 변호사는 “수사 실력이나 이런 것도 중요하지만 보통 검찰에서 가장 힘이 있고, 세력을 많이 가진 사람이 중수부장에 임명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별 무리 없이 중수부장직을 수행하면 검찰 고위직 진출이 보장되는 요직 중의 요직이다.
 
  1981년 대검 중수부 설립 이후 역대 대검 중수부장을 역임한 인물은 총 29명. 이 가운데 현 金洪一(김홍일) 대검 중수부장과 姜原一(강원일·5대), 鄭城鎭(정성진·10대), 安剛民(안강민·13대), 崔炳國(최병국·14대), 柳昌宗(유창종·21대), 李仁圭(이인규·28대) 등 6명을 제외하면 모두 고등검사장으로 승진했다.
 
  정성진 중부수장의 경우 부인의 상속재산 시비에 휘말려 검찰을 떠났고, 안강민·최병국 중수부장은 나란히 YS 정권시절 중수부장을 지냈지만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자 눈 밖에 나 고검장 승진에서 낙마했다. 이인규 중수부장은 노 전 대통령의 서거로 스스로 사표를 쓴 케이스다.
 
 
  재직 기간 17일 중수부장도
 
초대 중수부장 이종남.
  역대 대검 중수부장들의 평균 재임 기간은 약 1년이다. 중수부장을 가장 많이 배출한 고등학교는 경북고로 5명이며, 경기고가 4명, 서울고와 광주일고가 각각 2명의 대검 중수부장을 배출했다.
 
  대학별로는 서울대가 21명으로 대부분을 차지했고, 고려대가 6명, 부산대가 1명, 충남대 1명이며 다른 대학 출신은 한 명도 없다. 출생 지역으로는 경북이 6명으로 가장 많고, 경남이 5명, 전남이 3명, 서울·경기·충남·충북이 각각 2명, 부산·대구·광주·울산·전북·제주·평남 각각 1명씩이었다.
 
  가장 오랜 기간 중수부장으로 재직한 사람은 3대 韓永錫(한영석) 부장으로 2년2개월여 동안 중수부장직을 역임했다. 재임기간이 가장 짧았던 부장은 10대 정성진 부장으로 재직 기간은 단 17일이었다.
 
  검찰총장까지 오른 중수부장은 李種南(이종남·1대), 金斗喜(김두희·2대), 朴鍾喆(박종철·6대), 金泰政(김태정·11대), 朴舜用(박순용·16대), 李明載(이명재·17대), 金鍾彬(김종빈·22대) 등 총 7명.
 
  법무부장관을 지낸 인사는 이종남(1대), 김두희(2대), 정성진(10대), 김태정(11대), 李貴男(이귀남·26대) 등 5명이다. 23번째로 중수부장을 역임했던 安大熙(안대희) 전 서울고검장의 경우 현재 대법관직을 맡고 있다.
 
  29명의 역대 중수부장 가운데 4대 金慶會(김경회), 7대 崔明夫(최명부)씨를 제외하고는 모두 생존해 있다.
 
  1981년 대검 특별수사부가 중수부로 개편되면서 초대 중수부장에 임명된 사람은 이종남씨였다. 이씨는 1982년 대형 경제범죄인 이철희·장영자 부부 어음사기사건을 처리하는 등의 성과를 올렸다.
 
  2대 김두희 부장은 명성그룹 김철호 회장 사건과 영동개발사건을 처리했다. 김두희 부장 역시 검찰총장과 법무부장관을 역임했다. 3대 한영석 부장은 1985년 금강 상수도 등 정부공사 발주 비리사건을 지휘했고, 4대 김경회 부장은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을 지휘하여 당시 치안본부장을 구속했다. 김 부장은 인천지검장 재직 당시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을 지휘하며 사건 축소조작 압력을 막아낸 것으로도 유명하다.
 
  5대 강원일 부장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생 전경환씨의 새마을운동본부 비리를 수사했다. 당시 여권실세의 비리를 포착했지만 정치권으로부터 압력을 받자 출근 거부를 하기도 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인 1999년 조폐공사 파업유도 의혹사건의 특별검사를 맡았다.
 

 
  ‘나는 새’도 떨어뜨려
 
  6대 박종철 부장은 노태우 정부 시절인 1989년 5공화국 비리 수사를 맡아 장세동, 이학봉 등을 구속한 뒤 김영삼 정부 출범 직후 검찰총장에 올랐다.
 
  7대 최명부 부장은 1991년 수서지구 택지공급 비리사건을 지휘하면서 이태섭 의원 등 국회의원과 장병조 전 청와대비서관 등을 구속했다.
 
  8대 辛建(신건) 부장은 대검 중수부 과장 재직 당시 이철희·장영자 사건을 매끄럽게 처리해 훈장을 받았으며, 대검 중수부장을 지낸 뒤 YS 정부에서 법무차관, 김대중 정부에서는 국정원장을 지냈다. 국정원장 시절 불법도청을 한 혐의로 2005년 구속됐지만 지난 4월에 치러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됐다.
 
  9대 宋宗義(송종의) 부장은 노태우 정부 시절 대검 강력부장을 맡아 범죄와의 전쟁을 지휘하며 폭력조직 서방파 두목 金泰村(김태촌)을 구속했다. 이후 대검 중수부장에 올라 전국에 있는 특수부를 지휘하며 범죄와의 전쟁 수사를 마무리하고 서울지검장, 대검차장, 법제처장을 역임했다. 현재는 고향인 충남 논산으로 내려가 농사를 짓고 있다.
 
  송씨는 “왕후장상도 자기가 싫으면 안 하는 건데 나는 원래 변호사 할 생각이 없었다”며 “대검 중수부 폐지와 존치 두 주장 모두에 일리가 있지만 제도 자체에 대해 말하기보다는 그 제도를 어떻게 운영하는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10대 정성진 부장은 역대 최단기간 중수부장으로 재임했다. 1993년 3월 17일부터 4월 2일까지 단 17일이었다. 정씨는 김영삼 정부 출범 직후 공개된 차관급 이상 공직자 재산 공개에서 부인의 상속재산 신고액이 60억여 원으로 정치적 논란에 휩싸이자 스스로 중수부장직에서 물러나 검찰을 떠났다.
 
  대검 중수1~2과장,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장 등을 역임한 그가 물러나자 “단순히 재산이 많다는 이유로 옷을 벗을 수 있느냐”며 아쉬워하는 분위기가 많았다.
 
  이후 국민대 교수와 총장을 역임한 뒤 14년 후인 2007년 말 노무현 정부 마지막 법무부장관을 지냈다.
 
13대 안강민 중수부장.
  11대 김태정 부장은 율곡 비리, 군인사 비리, 동화은행 비자금 사건, 안병화 한전사장 비리 사건 등의 대형 사건을 수사하며 비자금 사건과 깊은 인연을 맺었다. 슬롯머신 사건에서 선배인 이건개 당시 대전고검장을 구속했다.
 
  1997년 대선 직전 검찰총장에 임명돼 김대중 비자금 수사를 중단시키면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후 김 전 대통령이 취임하자 법무부장관에 올랐지만, 부인 연정희씨의 고급 옷로비 의혹 사건이 터지면서 재직 15일 만에 경질됐다.
 
  12대 李源性(이원성) 부장은 이형구 전 노동장관 수뢰사건과 덕산그룹 연쇄부도 사건, 서석재 의원의 4000억설 수사를 맡았다. 대검차장을 끝으로 검사생활을 마친 뒤 새천년민주당에 입당해 고향인 충북 충주에서 16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13대 안강민 부장은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수사를 맡아 국민에게 널리 알려졌다. 안 부장은 헌정사상 최초로 전직 대통령(노 전 대통령)을 구속하고 이건희 삼성회장 등 재계 인사 10여 명을 법정에 세웠다.
 
 
  항명 파동 일으키기도
 
15대 심재륜 중수부장.
  14대 최병국 부장은 중수부장이 되자마자 김영삼 정권 말기 한보그룹 대출 비리사건 수사를 지휘하던 도중 김영삼 대통령 차남 현철씨 등에 대한 수사 미흡 등을 이유로 임명 두 달 만에 전격 교체됐고, 전주지검장을 끝으로 검찰을 떠났다. 이후 한나라당 소속으로 16대부터 18대까지 3번 연속 고향인 울산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돼 지금은 국회 정보위원장을 지내고 있다.
 
  15대 沈在淪(심재륜) 부장은 한보사건을 재수사하고 YS 차남 현철씨 의혹 사건을 지휘했다. 정보근 한보그룹 회장을 구속하고 정씨 일가의 재산을 압류했으며 현철씨를 구속했다.
 
  심씨는 대구고검장 시절인 1999년 1월 대전법조비리 사건 당시 검찰 수뇌부로부터 사표제출을 요구받자 이를 거부해 검찰 초유의 항명 파동을 일으켰다. 이후 법원에서 복직 판결을 받아 2년7개월 만에 검찰로 돌아왔고 부산고검장을 끝으로 검찰을 떠났다.
 
  16대 박순용 부장은 15대 대선 직전인 1997년 8월 임명돼 1998년 3월까지 대검 중수부장을 지냈다. 당시 김대중 비자금 사건을 적절히 처리한 공로를 인정받아 서울지검장을 거쳐 검찰총장에 올랐다.
 
  ‘최고의 칼잡이’라고 불리던 17대 이명재 부장은 1998년 PCS·종금사 비리사건, 換亂(환란), 稅風(세풍)사건 등을 처리했으며 2001년 서울고검장을 마지막으로 검찰을 떠났다가 이용호 게이트 사건으로 신승남 검찰총장이 물러나자 2002년 검찰총장에 올랐다.
 
  18대 李鍾燦(이종찬) 부장은 1999년 6월 임명됐지만, 검찰 고위직 인사가 다시 나면서 부산지검장으로 자리를 옮기고 서울고검장을 끝으로 검찰을 떠났다. 이후 지난해 이명박 정부 초대 민정수석을 지냈다.
 
  19대 辛光玉(신광옥) 부장은 중수부장을 지낸 김태정 전 법무부장관과 박주선 전 청와대 법무비서관을 옷로비 의혹 사건 관련 사직동팀 보고서 유출 혐의로 구속하는 등 1999년 옷로비 의혹사건 수사를 마무리했다. 이후 청와대 민정수석과 법무부차관까지 지냈지만 ‘진승현 게이트’에 연루돼 구속됐다.
 
  20대 金大雄(김대웅) 부장은 고속철도 로비사건과 안기부 선거자금지원 사건을 지휘했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 차남 홍업씨 수사 기밀을 유출한 혐의로 불명예 퇴진했고, 21대 柳昌宗(유창종) 부장은 이용호 게이트 수사를 맡았지만 부실수사로 논란을 빚었다.
 
 
  이인규 부장은 노 전 대통령 자살로 스스로 물러나
 
23대 안대희 중수부장.
  22대 김종빈 부장은 2002년 DJ 차남 홍업씨 비리 수사를 지휘하면서 홍업씨를 구속하고, 선배인 신승남 전 검찰총장과 김대웅 전 광주고검장을 불구속 기소했다. 노무현 정부 들어 검찰총장에 올랐지만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사를 받던 강정구 동국대 교수에 대해 당시 법무부장관이던 천정배 민주당 의원이 불구속 수사 지휘를 내리자 이에 반발해 스스로 물러났다.
 
  노무현 정부 초기 중수부장에 임명된 23대 안대희 중수부장은 2003년 헌정사상 초유로 여야 불법 대선자금을 수사해 스타 중수부장이라는 애칭을 얻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측근인 안희정씨, 최도술 청와대 총무비서관 등을 구속하고,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한 이학수 삼성그룹 부회장과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등 대기업 CEO들을 줄줄이 법정에 세웠다. 안 부장은 서울고검장으로 검찰을 떠난 뒤 지난 2006년 대법관에 올랐다.
 
  24대 朴相吉(박상길) 중수부장은 대검 중수 1·2·3과장, 서울지검 특수 1·2·3부장. 대검 수사기획관, 대검 중수부장 등 검찰 내 특수수사 보직을 하나도 빠짐없이 거친 검사로 유명하다.
 
  25대 朴英洙(박영수) 중수부장은 SK 비자금 사건과 현대·기아차 비자금 사건, 론스타 외환은행 헐값 인수 의혹 사건 등 대형사건을 지휘했다.
 
28대 이인규 중수부장.
  26대 이귀남 부장은 노무현 정부 말기에 중수부장에 임명됐으며 이명박 정부 들어 법무부차관에 올랐다. 동기인 천성관 전 서울중앙지검장이 검찰총장에 내정되자 검찰을 떠났다가 지난 9월 법무부장관으로 복귀했다.
 
  이명박 정부 첫 중수부장을 지낸 27대 朴用錫(박용석) 부장은 휴켐스·세종증권 매각 비리 수사를 맡아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과 정대근 전 농협회장,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 건평씨 등을 구속했으며 부산지검장을 거쳐 현재 법무연수원장을 지내고 있다.
 
  28대 이인규 중수부장은 올 한해 우리나라를 뜨겁게 달궜던 박연차 사건을 맡아 노무현 전 대통령 일가를 수사하고, 노 전 대통령을 직접 대검 청사로 불러 소환조사까지 벌였지만 노 전 대통령이 자살하자 최종 수사기록을 발표한 뒤 스스로 검찰을 떠났다.
 
 
  영욕의 자리
 
29대 김홍일 현 대검 중수부장.
  29대 김홍일 현 대검 중수부장은 1987년 지방대(부산대) 출신으로 김경회씨가 중수부장에 임명된 이후 22년 만에 지방대 출신(충남대)으로 중수부장에 올랐다. 2007년 대선 직전 서울중앙지검 3차장으로 도곡동 땅 수사와 BBK 김경준씨에 대한 수사를 지휘해 이명박 후보의 당선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인물로 야권이나 親朴(친박) 진영에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다.
 
  역대 중수부장을 지낸 인물들이 탄탄대로만 걸은 것은 아니다. 수서 비리를 수사한 7대 최명부씨는 국회의원과 청와대비서관 등을 구속했지만 노태우 전 대통령의 개입 의혹을 파헤치지 못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김태정씨는 동화은행 축소수사 시비에 휘말리는 흠집을 남겼고, 최병국씨는 한보 부실수사 논란으로 인천지검장으로 전보됐다. 김대웅씨는 이용호 게이트, 신건씨는 슬롯머신업자 정덕진씨 수사과정에서 후배들로부터 조사를 당하는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대검 중수부장을 지낸 최병국 한나라당 의원은 대검 중수부장이라는 자리가 막강한 권한을 지닌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최 의원은 “대검 중수부장은 여러 가지 사건을 주도 면밀히 살펴보고, 파장이 어떨 것인지 검토해서 수사에 들어가는 것이지 그냥 아무렇게나 중수부장 마음대로 하는 게 아니고 조직이 그럴 수도 없다”면서, “대검 중수부장은 실무선에서 수사하는 검사들의 바람막이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지금 와서 대검 중수부장의 업적이 이렇다저렇다 하는 것은 모두 헛것”이라고 덧붙였다.
 
  중수부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이런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쭉 한번 보세요. 일을 열심히 하고 정권의 눈 밖에 났던 일부 중수부장은 높이 올라가지 못했지만 일 안 하고 조용조용히 말랑말랑했던 중수부장들은 대부분 높이 올라가지 않았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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